반달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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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목차
- 반달의 시간 _ 차례
시인의 말
1부
마법을 그리다
이별로 서성거린다
동거
반달의 시간
사랑의 흔적
나의 힘
풍류만에 서서
그곳의 시
바다에 빈집을 짓고
슬픔의 구근
피아골
사랑은 나팔꽃 같다
청춘역
어제와 내일처럼
안개 너머
눈발이 되어
채석강
2부
톱머리 해수욕장
연애편지
겸허의 시간에
하늘에
나이테
하늘 구름은 소리 없이 흐르고
가을엔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어제
탄도 1
탄도 2
한밤중에
비파 열매
3부
붉어지다
뜬금없이 생각나면
눈 감고 간다
내 나이
에말이오
채석강
일몰
무안에서
가을 해후
묵 다방
시
가을 고독
사랑
노을
서른게
짱돌의 전설
그리움에 젖어
4부
시인
사랑
가버린 사람
섬을 바라보며
가을 촉매
가을은
가을
엄마의 바다
낙조머리에 앉아
단맛
그곳
늘 그렇게
그때는 몰랐다
운조루
덕유산
그물
낭만 항구
| 평설 |
남도 서정의 줄기를 잇는 맑고 담백한 시적 감각 | 강대선
팽나무 밑동 북쪽에 핀 이끼 _ 차례
책 속으로
마법을 그리다
마법처럼 고깃배가 출렁거리고 있는
항구, 등대가 불씨를 품는다
먼 추억이 뚜벅뚜벅 걸어와
실금이 간 내 가슴으로 스며 들어온다
내 유년이 자랐던 땅에서 고구마, 양파가 올라온다
익숙한 동네와 길을 밝히던 등
불빛 아래 시간을 더듬는다
화폭 위의 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따스하게 안겨 오는 나를 사랑한다
유년의 젖줄이 드리운 고향에서 수수꽃이 웃는다
바람처럼 맴돌던 유년이
한 폭의 그림으로
불빛을 머금은 나의 젖줄, 현경면
이별로 서성거린다
정원 옆에 핀
장미 한 그루의 붉음
서럽다고 느꼈을까
슬픔은 가시로 돋아나도
목마름을 채울 수는 없다
이른 이별이 싫어 하늘 끝머리로 오른다
그리운 얼굴이
가슴 한 견에 햇살을 나르고
저녁엔 바람으로 들어온다
그를 함께 살아온 긴 생애가 몇십 초처럼 느껴지는 시간
사랑이 허락한다면
눈 감은 내 사랑
오로지 마음에 담고 싶다
생애를 바쳐 여기까지 왔건만
이별은 마른 풀처럼 슬프고
나는 교회당 종소리를 들으며
시름으로 그림자를
늘어뜨린다.
동거
대만동에서 쫓겨난 복실이 강아지를 게이트장에서 만났다
게이트장에서 만났으니 너의 이름은 게이트
오늘부터 나는 너와 동거를 약속한다
내 발걸음 소리를 듣고 문 앞에서 기다리는 게이트
너를 보면 외로움도 미소로 변하는 샘물
보드라운 너의 털에 내 가슴은 온기로운 전율이 인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이트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시름없는 날이기를
네가 꼬리를 흔들면 내 안에서 웃음의 불씨가 일어난다
반달의 시간
칠순을 넘긴 나이
절망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던 젊음이 있었다
가슴 깊이 가둬 놓았던 슬픔도 있었다
무거워서 가라앉고 싶었던 시간도 있었다
이제야 알았다
채워지지 않은 반달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돌아갈 길도 없는 텅 빈 가슴의 시간을 지나
지금 여기에 와 보니
절망마저 그립다
그때가 청춘이었다
사랑의 흔적
사랑의 흔적은 사랑일 뿐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은 사랑의 머리카락일 뿐
사랑은 지워지지 않은 자국
사랑으로 사랑은 존재의 영역이다
단순한 것 같지만
어려운 일
사랑은 지우는 게 아니라
더 큰 사랑으로 보태는 일
나의 힘
산다는 것은 잔모래로 성을 쌓는 일
희망과 절망의 포말은 숨 가뿐 세월의 수평선
성장과 고뇌가 반복되는 나의 삶이었다
닳아지고 문드러지는 가슴이 나의 힘
삶의 무게에 눌려 허우적거릴 때에도
나의 영혼은 대답하리
덧없이 흘러버린 세월에 울지만은 않으리
나의 꿈은 영혼의 외침
희망으로 오는 내일로 답하리
길고 긴 여정의 줄 놓지 않고 사랑으로 달려가리
출판사 서평
| 평설 |
남도 서정의 줄기를 잇는
맑고 담백한 시적 감각
- 박태순 시인의 『반달의 시간』을 읽고
강 대 선
(시인)
박태순 시인은 첫 시집 『그리움은 거리가 없다』(「천년이 시작」)에서 목포와 바다,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삶을 시로 구축했다. 남도의 서정에 물든 시인의 시는 색다른 시적 감각과 함께 시적 지평을 보여주고 있다. 바다와 향토를 기반으로 한 시인의 시풍은 스승이었던 송수권 시인이 말했던 대와 황토, 뻘의 정신에서 연유하고 있다. 그럼,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먼저 인간의 유한성이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흔의 나이는 새로운 인식의 문이 열리는 지점이다.
마법처럼 고깃배가 출렁거리고 있는
항구, 등대가 불씨를 품는다
〉
먼 추억이 뚜벅뚜벅 걸어와
실금이 간 내 가슴으로 스며 들어온다
내 유년이 자랐던 땅에서 고구마, 양파가 올라온다
익숙한 동네와 길을 밝히던 등
불빛 아래 시간을 더듬는다
화폭 위의 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따스하게 안겨 오는 나를 사랑한다
유년의 젖줄이 드리운 고향에서 수수꽃이 웃는다
바람처럼 맴돌던 유년이
한 폭의 그림으로
불빛을 머금은 나의 젖줄, 현경면
- 「마법을 그리다」 전문
고향을 그리워하는 일은 마법과 같다. 고향은 늙지도 변질되지도 않은 상태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먼 추억이 뚜벅뚜벅 걸어”오기 때문이다. 유년 시기를 보냈던 고향에서 “고구마, 양파가 올라”오듯이 “익숙한 동네와 길을 밝히던 등”도 따라서 올라온다. 기억이 기억을 물고 오는 곳이 고향이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다. 화폭에 그렸던 유년의 “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 유년은 내 안에 숨쉬고 있다. 그러니 나는 “따스하게 안겨 오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외롭고 슬플 때 나에게 사랑의 젖줄을 물려주는 곳, 그곳이 바로 시인의 고향, 무안 현경면이다. 이러한 뿌리 의식은 “황토에 묻어 두었던 그리움을 꺼낸다/ 아버지의 숨결이 훅, 나를 껴안는다/ 내 뿌리가 붉어진다”(「무안에서」)와 “일흔 겹의 나이에/ 또 하나의 물결을 기도하며 그린다/ 정직하게 뿌리내리는/ 섬이 되고 싶다”(「섬을 바라보며」)에서 드러난다. 시인의 고향은 시인의 ‘지금’을 있게 한 원천이며 그리움의 뿌리로 형상화되고 있다.
고향은 뿌리이기도 하면서 시인의 시적 영감이 발현되는 곳이다. 다시 말해 유한의 공간이 무한의 상상으로 확장되는 곳 또한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 고향에서 시인의 시가 생명처럼 태어나고 시인에게 길을 제시한다.
나에게는 고단한 시들이 남아 있다
어미 품에 잠기듯 촉촉해진 그리움을 말리고 싶은 곳
끊임없이 나의 불온을 다독이는 시의 온기
어리석음이 굴하지 않는 시와 산다
그곳에 가면 달콤한 향기보다는 연민으로 만난
사랑이 상처 입은 종다리처럼 지저귄다
내 손을 끌며 보고 싶었다고 가슴을 열어보인다
매 처음 서러움을 가르쳐 준 시
그곳엔 짠 내 머금은 눈물이 모여 산다
- 「그곳의 시」 전문
시인에게는 아직 “고단한 시들이 남아 있다”. ‘고단한 시’는 무엇이었을까. 고향에서 나고 자라면서 겪었을 좌절과 고통, 그리고 슬픔 또한 “시의 온기”였음을 말하고 있다. 시가 있었기 때문에 “어리 석음에 굴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고향에는 “사랑이 상처 입은 종다리처럼 지저귀”고 있다. 그 상처가 시의 종자이다. 시인 가슴에 서러움을 심어 준 곳도 고향이며, 그곳에 서러움의 씨가 시로 승화되는 곳도 고향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고향은 그냥 고향이 아닌 끊임없이 “시인의 불온을 다독이는 시의 온기”로 자리하고 있다.
시인은 인생의 좌절과 방황을 지나왔다. 이러한 시간을 성찰하고 돌아보는 시인의 인식을 살펴보자.
칠순을 넘긴 나이
절망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던 젊음이 있었다
가슴 깊이 가둬 놓았던 슬픔도 있었다
무거워서 가라앉고 싶었던 시간도 있었다
이제야 알았다
채워지지 않은 반달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돌아갈 길도 없는 텅 빈 가슴의 시간을 지나
지금 여기에 와 보니
절망마저 그립다
그때가 청춘이었다
- 「반달의 시간」 전문
시인은 자신의 나이를 먼저 고백한다. “칠순을 넘긴 나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는 “절망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던 젊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가슴 깊이 가둬 놓았던 슬픔”도 있고, “무거워서 가라앉고 싶었던 시간도 있”다고 말한다. 그 고백 뒤에 오는 깨달음이 “알았다”이다. “채워지지 않은 반달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한다. 다 채워졌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부족하고 결핍된 나였기에 그 반을 채우기 위해 한 생을 달려왔지 않은가. 그 반이 나를 만들었다는 인식이다. 그리고 지금에 도달해서 바라보니 젊음 시절에 맛보았던 “절망마저 그립다” 왜 그런가. 그 절망이 희망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반달의 시간이 지금을 있게 했다.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고통과 좌절의 시간이다. 고통과 좌절 없이 기쁨과 보람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의 겪었던 절망과 슬픔은 “캄캄한 밤,/ 약속이나 한 듯 손가락 움직임에도/ 슬픔의 구근이 돋아났다// 당신을 보낸 나는 가난한 그리움을 지녔다”(「슬픔의 구근」)에서도 드러나고 “고아가 된 기분으로 역광장으로 나와보니 유달산/일등 바위가 눈에 잡힌다/ 멀리서 뱃고동 소리/ 구슬프게 그리운 이름들을 토해낸다”(「청춘역」)에서도 잘 형상화 되어 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느끼는 생의 유한성과 삶의 과정에서 맛보았던 좌절과 고통을 통과하며 새롭게 지금을 살아가는 시인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일 세상이 끝나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자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스피노자처럼 시인은 삶의 자세를 ‘오늘’에 집중하는 ‘충실’이라고 말한다.
산다는 것은 잔모래로 성을 쌓는 일
희망과 절망의 포말은 숨 가뿐 세월의 수평선
성장과 고뇌가 반복되는 나의 삶이었다
닳아지고 문드러지는 가슴이 나의 힘
삶의 무게에 눌려 허우적거릴 때에도
나의 영혼은 대답하리
덧없이 흘러버린 세월에 울지만은 않으리
나의 꿈은 영혼의 외침
희망으로 오는 내일로 답하리
길고 긴 여정의 줄 놓지 않고 사랑으로 달려가리
- 「나의 힘」 전문
시인은 “산다는 것은 잔모래로 성을 쌓는 일”이라고 말한다. 모래로 쌓은 성은 “성장과 고뇌가 반복되는” 삶이다. 그런에 시인은 역설적이게도 “닳아지고 문드러지는 가슴이 나의 힘”이라고 이야기한다. 고통과 좌절의 시간이 역설적이게도 희망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시인은 “덧없이 흘러버린 세월에 울지만은 않”겠다고 대답한다. 시인의 이러한 언술은 좌절과 허무에 무릎 꿇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상이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인간은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아’라는 문구를 생각하게 한다. 패배하지 않은 오늘을 “희망으로 오는 내일로 답하”는 시인의 여정은 사랑이다. “길고 긴 여정의 줄 놓지 않고 사랑으로 달려가리”란 표현을 통해 시인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 가야 할 여정도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인의 자세는 사랑하는 것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드러난다.
동행할 수 없는 길에 서 있어요
이제 알았어요,
임종이 도착하신 걸
행여나 길 잃고 헤매지는 않나 싶어
저무는 해어스름에 눈물 흘려요
엄마의 자리를
엄마가 되고 알았어요
낯선 먼 길은 박명일까요
안개 너머
엄마 가신 길 알려주시면
머리 풀고 찾아갈게요
손가락 걸고
다시 만난다는 약속
잊지는 않으셨겠죠
어둠에 등불 하나 밝혀요
미혹도 회오도 없이
엄마 사랑해요
- 「안개 너머」 전문
시인이 말하는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사랑이다. 사랑의 대상을 그리워하는 일도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시인은 “동행할 수 없는 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임종’이라는 단어를 통해 죽음의 이미지를 가져온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염려한다. “행여나 길 잃고 헤매지는 않나 싶어/ 저무는 해어스름에 눈물 흘”리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형상화 되어 있다. 그러면서 고백한다. “엄마의 자리를/ 엄마가 되고 알았”다고 한다.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엄마의 자리가 그렇다. 사랑하는 엄마를 다시 만나고 싶어 “손가락 걸고 다시 만난다는 약속”을 잊지 말라고 한다. 미혹도 회오도 없는 사랑이 담겨 있다.
이러한 그리움의 서정은 “가시에 찔린 당신의 발을 보고 / 찾아갈게요/ 새하얀 눈발이 되어/ 펄펄 날리는 그리움이 되어/ 당신을 찾아갈게요”(「눈발이 되어」)에서도 나타나고 “이별이 없었다면/ 그리움을 모를 것이다/ 헐겁고도 넉넉한/ 사랑을 모를 것이다/ 사랑일 뿐이다/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사랑만 남았다”(「연애편지」에서도 짙게 나타난다. 시집에 그리움을 노래한 시편들이 많은 이유도 시인의 그리움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가 된다. “텅 빈 하늘인 줄 알았는데/ 당신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하늘에」)을 통해서는 새로운 인식이 열려 있다. 인생이 텅 빈 허무인 줄 알았는데 그 허무에 ‘당신’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이다. 사랑은 허무를 채우고도 남는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그리움, 떠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은 앞으로도 시인이 써 내려갈 시의 여정을 가늠하게 한다.
탄도로 가고 싶었지
뻘을 가로질러 뱃길 따라
부푼 꿈을 품고
숯처럼 구워진 바위를 지나
탄도로 가고 싶었지
햇살과 바람도 검은빛으로 환한 탄도
일주도로 따라
반겨주는 진달래 산벚꽃 만나고 싶었지
사방을 돌아보면
푸른 파도 소리
적막을 깨뜨리고
꿈은 실바람을 타고 날아가지
데크로 오가는 섬 둘레길
오가는 사람들은밀물과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들어오지
탄도는 채석강을 탁본한 듯
층층이 검게 돌로
두른 섬
고구마 구워 주시던
어머니 같은 섬
- 「탄도 2」 전문
탄도는 전라남도 무안군에 있는 섬이다. 1시간 정도 걸으면 섬 일주를 할 수 있는 아주 조그마한 섬이다. 시인은 ‘숯이 많이 나는 섬’이라 해서 불린 탄도를 거닐며 “일주도로를 따라 반겨주는 진달래 산벚꽃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곳에 온 이유가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이곳에서 “실바람 타고 날아가”고 싶다. 시인이 정작 말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에 나와 있다. “고구마 구워 주시던/ 어머니 같은 섬”이 탄도가 지닌 의미다. 추억이 깃든 장소로 그리움이 옮아가는 일은 “미혹이 멍든 가슴으로 스밀 때/ 눈을 감는다/ 갔던 길 다시 집으며/ 기억을 더듬거리며/ 사랑에게로 간다”(「눈 감고 간다」)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는 사랑으로 가는 길은 기억을 더듬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떠나고 싶은 마음도 떠나보냈지/ 나뭇잎이 떨어져도 나는 봄이었지/ 당신을 생각하면/ 생각을 하면”(「가을 해후」)에서도 짙은 그리움이 배여 있다. 이러한 서정의 깊이가 잘 드러나 있는 시 한 편을 더 살펴보자.
하늘이 눈물을 뿌릴 때가 있다
기일忌日이 다가오면
그리움이 증류蒸溜된다
낙조머리에 앉아 마음을 달래본다
바다도
눈두덩이가 붉어져 있다
- 「낙조머리에 앉아」 전문
시인은 해가 떨어지는 낙조머리에 앉아 있다. 기일이 다가오면 그리움이 그만큼 커진다. 시인은 “그리움이 증류蒸溜된다”를 통해 그리움의 깊이를 드러내고 있다. 증류蒸溜는 액체를 가열하여 기체로 만들었다가 그것을 냉각시켜 다시 액체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그러니 그리움이 한바퀴 돌아 다시 그리움이 되는 일이다. 시인은 이런 표현을 통해 그리움이 돌아 다시 그리움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나타낸다. 시인의 마음을 바다가 받아 안는다. 시인의 붉은 눈두덩이처럼 낙조의 바다는 “눈두덩이가 붉어져 있다”. 이러한 그리움의 연속상에서 “그 마음 다 알 수 있을까마는/ 그 사랑만큼은 바다보다 넓으셨지/ 이제는 그 바다를 찾을 수가 없네/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고 싶지만/ 엄마는 바다와 함께 머언 곳으로 가셨네/ 엄마의 바다가/ 언젠가부터 내 눈으로 들어와/ 출렁이고 있네”(「엄마의 바다」)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출렁이다’는 역동성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첫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송수권 시인에 대한 그리움은 다음 시를 통해 드러냈다.
황금빛 열매가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달렸지요
등불을 밝히는 듯
유배지에서 자라난 희망 같은
비파 열매
몇 해 전,
비파 열매 혼자 먹지 말고
같이 먹자고 하셨지요
선생님,
한 아름 따 온
비파 열매 보셨는지요
해마다 그리워하실까 봐,
두원면 고택 모서리에 비파나무를 심었습니다
너희들 기다리며
속살 뜯어 먹고 있다고 하시겠지요
올해, 비파가 열렸대요
솔 향기보다 비파 향이 좋다시던
그 말씀
귀에 생생한데
선생님은 아니 계시고
비파 향기만
가슴에 사무칩니다
- 「비파 열매」 전문
이 시는 “비파 열매 혼자 먹지 말고/ 같이 먹자고” 한 스승의 말을 기억하고 비파 열매를 한 아름 따 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해마다 그리워하실까 봐,/ 두원면 고택 모서리에 비파나무를 심”는 이유이다. 스승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기다리고’를 통해 드러난다. 나도 기다리고 스승도 기다리는 만남. 그 만남이 비파 열매다. 비파 열매를 핑계로 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스승은 없고 제자만 남았다. “솔 향기보다 비파 향이 좋다시던/ 그 말씀/ 귀에 생생한데/ 선생님은 아니 계시고 비파향기만/ 가슴에 사무칩니다”를 통해 절절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박태순 시인은 남도의 서정을 감각적인 언어로 색다른 지평을 열고 있다. 좌절과 고통을 극복하는 역설적인 인식은 허무를 이겨내는 사랑으로 승화되고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장소, 사랑하는 스승을 그리워하는 서정으로 옮겨 가고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 시인의 그리움은 어디로 옮겨질까, 그 길이 사랑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시가 사랑이 아니던가. 시인의 삶이 사랑으로 승화되는 이유는 시인의 가슴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남도 서정의 줄기를 잇는 시인의 시는 반달의 가슴을 채워 내며 밤하늘에서 밝게 빛날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56657455 |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11월 15일 | ||
쪽수 | 114쪽 | ||
크기 |
126 * 202
* 8
mm
/ 280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오늘의 시와사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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