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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리나무 겨울눈

서정시선 정의순 시집
실천 서정시선 100
정의순 저자(글)
실천 · 2024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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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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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순 시인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포착해서 바라보는 예리한 눈과, 시인의 내밀한 경험을 객관화시켜 보편적인 공감대를 잘 이끌어 낸다. 또한 인간의 깊이를 탐색하고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주는 능력이, 누구보다도 훨씬 탁월한 시인이다. 시집 전반에 걸쳐 시인은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특히 가족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세대 간의 소통, 애정, 그리고 이해를 주제로 다룬다.

이 책의 총서 (4)

작가정보

저자(글) 정의순

서울교육대학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2022년 계간 《미래시학》 등단
시연회 동인

목차

  • 1부

    부부
    액자 속의 키스
    콜라비
    명품 만들기
    네 살
    할아버지
    1호선 첫차
    셋째 손녀, 주은이
    도와주세요
    수채화
    상고대
    주문
    덩굴손
    지렁이 글씨
    일방통행
    해산

    2부

    너도 예뻐
    이름
    아침 신문
    봄에게

    잠시, 멈춤
    불면증
    미역국
    생강나무꽃
    마 원피스
    무제Ⅰ
    무제Ⅱ
    손녀 말 배우기
    한탄강
    약속
    꼬리표
    홈트 강사



    3부

    부러운 시바타 도요
    시 쓰는 할머니
    어반스케치
    오월
    습작시대
    그때는
    수첩
    김치 냉장고
    친정엄마
    갱년기
    새해에는
    용답동 매화
    게으름
    태백산
    일흔 살 새해
    502호 할머니
    소심한 일상


    4부

    허브 카페
    거울
    바늘귀
    시작 Ⅰ
    시작 Ⅱ
    시작 Ⅲ
    김장
    다이어트
    古稀
    버팀목
    화해
    오십견
    내 친구
    달력
    어떤 일상
    양배추 물김치
    해설

출판사 서평

일상에서 발견한 푸른 성찰
김용길 (시인/문학평론가)


‘시 쓰는 할머니’ 시인의 놀라운 시적 성취

30년 전만 해도 시인으로 등단하는 나이가 무척이나 젊었다. 30대에 등단을 해도 늦깎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요즘은 60대가 넘어서도 시단의 문을 두드리거나 아예 시집을 출간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70~80대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현상은 100세 시대를 맞이해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의순 시인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포착해서 바라보는 예리한 눈과, 시인의 내밀한 경험을 객관화시켜 보편적인 공감대를 잘 이끌어 낸다. 또한 인간의 깊이를 탐색하고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주는 능력이, 누구보다도 훨씬 탁월한 시인이다.
시집 전반에 걸쳐 시인은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특히 가족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세대 간의 소통, 애정, 그리고 이해를 주제로 다룬다.
이제부터 정 시인의 시 세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각 부문별로 주제를 정해 차근차근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

1부: 부부의 일상과 삶의 조각들
2부: 이름과 삶의 흔적들
3부: 시를 쓰는 할머니
4부: 거울 속 나와의 대화


1부: 부부의 일상과 삶의 조각들

한 입 베어 문 감자를
맛있게 익었다고
얼른 건네준다

냉큼 잘 받아
먹는다/ 〈부부〉/전문

이 시는 부부 사랑의 본질을 따뜻하게 사유한 작품이다.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 부부간의 신뢰와 서로를 위한 배려, 그리고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이 담겨 있다.
첫 연에서 감자가 ‘맛있게 익었다고/얼른 건네주는’ 행위는 단순한 일상적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배려와 사랑이 담겨 있다. 여기서 감자는 따뜻함, 안락함, 그리고 둘 사이의 정서적 유대감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저 음식을 주고받는 행위일 뿐이지만, 그것이 주는 의미는 깊다. 상대방을 생각하며 건네는 작은 제스처 속에 사랑과 행복이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두 번째 연에서 ‘냉큼 잘 받아/먹는다’라는 표현은 그 배려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상대의 모습으로, 두 사람 간의 신뢰와 소통을 강조한다. 이 과정은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전하는 수 십년 간 동거동락한 부부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 시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수사나 거대한 사건을 다루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일상 속 작은 행동을 통해 부부의 사랑과 소통을 묘사하며, 삶의 작은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준다.

그 남자는
살짝 머리를 다쳤는데
두 달째 병상에서 못 일어나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눈만 껌벅거린다

가습기의 수증기가 안개처럼
창을 덮는다
바깥에 나가지 못하는 내가
섬 하나로 떠오른다 / 액자 속의 키스 /부분

안타깝게도 한 남자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살짝 머리를 다쳤는데/두 달째 병상에서 못 일어나고’ 있다. 시인은 병상에 누워 있는 그 남자를 바라보며 속절없는 고립감과 고독감을 느낀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한순간일 수 있다는 시적 성찰을 한다. 시인은 그 남자의 상황을 보면서 자신의 삶도 돌아보고 있다. 이 시에서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한순간인데’라는 구절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끼는 고독함이 잘 드러나 있다. ‘삐죽삐죽한 울음이/섬을 찌른다’라는 구절은 시인의 사유가 단순히 내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표출되는 상처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감정의 표현은 어차피 인생은 혼자이며 ‘섬’이라는 은유로 강화되어, 인생의 고립과 그 안에서 오는 내밀한 감정을 절절히 전달하고 있다.

보고 또 보고
고르고 고른 콜라비
베란다 검은 봉지 속에 넣어두고
깜박 잊었다
며칠 후
우연히 들여다본 그곳에
저장된 울음도 다 말랐는지
기운이 빠져있는 콜라비 / 콜라비 /〈부분〉

이 시는 ‘보고 또 보고, 고르고 고른 콜라비’이건만 방치된 채 말라버린 콜라비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후회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물건을 통해 인간 감정을 투영하고, 생명의 회복과 위로를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콜라비는 단순한 채소일 뿐만 아니라, 외로움, 기다림,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생명의 상징으로 확장된다. 시 속에서 콜라비는 자신을 잊고 방치한 인간의 무관심 속에서 마치 아이처럼 외로움을 느끼고, 다시금 물을 공급받고 관심을 받으면서 본래의 생기를 되찾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사소한 일상에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끌어내고, 그것을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점에 있다.


2부: 이름과 삶의 흔적들

오늘도 새벽을 따라 온
신문을 펼치며 심호흡부터 한다
눈을 질끈 감는다
잠깐 숨을 고르고
살며시 실눈을 뜨며
1면 커다란 활자를 웅얼거려본다

가슴 철렁한 소식이 펼치는 면마다
큰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덮었다가 다시 펴는 손길 사이로
통도사 홍매화가 활짝 피었다 / 아침 신문 /〈부분〉

‘아침 신문’은 일상의 작은 행위인 신문을 읽는 경험을 통해 개인의 감정과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섬세하게 묘사한 시다. 이 시는 세상의 무거운 소식과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충돌하고,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사소한 순간들이 어떻게 떠오르는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시의 첫 부분에서 ‘신문을 펼치며 심호흡부터 한다’는 표현은 신문을 읽는 행위가 단순한 정보 수집 이상의 감정적인 준비를 필요로 함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겁고 충격적인 소식들이 개인에게 주는 심리적 압박감을 암시한다. ‘눈을 질끈 감는다’와 ‘살며시 실눈을 뜨며’라는 표현은 이러한 심리적 긴장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보호 기제를 나타낸다.
신문에 실린 ‘가슴 철렁한 소식’들이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시인은 이러한 무거운 소식들에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홀로 서있는 아이’나 ‘머언 나라 지진과 전쟁 소식’과 같은 사회적 사건과 개인의 고통이 시선을 끌지만, 시인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시인은 ‘통도사 홍매화’라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세상의 중대한 사건들보다도 매화가 피어난 모습이 더욱 눈에 밟히는 것은 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적 피로와 회복에 대한 욕망의 발로다. 홍매화는 새 생명과 희망, 그리고 평온함을 상징하며, 그것이 시인에게 안도감을 주는 상징물이다. 시인은 세상의 무거운 사건들 속에서도 삶의 작은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따뜻한 감정의 소유자다.

이제 겨우 세 돌 지난 둘째 손녀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마치 내 친구와 이야기하듯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된다

일곱 명이 함께 사는 대가족이라
두 돌이 되기 전에
말문이 트여
온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다

한 살 위 언니가 있어
어쩌다 언니 동생 이름을
바꿔 부르면
얼마나 서운해하는지
“할머니는 맨날 실수해”
금세 입을 삐죽거린다
좋아하는 딸기 간식 챙겨주면
”할머니가 젤 이뻐“
그 조막만한 손으로 엄지척한다

네 살 손녀가 일흔 살 할머니를
들었다 놓았다
힘도 세다 / 네 살/ 〈전문〉

이 시는 할머니와 손녀 사이의 따뜻한 유대감을 담은 작품이다. 소박한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어린 손녀가 할머니에게 주는 기쁨과 유머를 포착하고 있으며, 가정의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을 흐믓한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뭉클한 감동을 끌어내고 있다.
시의 첫 번째 부분에서 손녀가 할머니와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마치 내 친구와 이야기하듯’이라는 구절은 단순히 나이 차이가 큰 관계를 넘어, 서로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는 특별한 유대감을 보여준다. 손녀와 할머니가 나누는 대화는 격의 없고 자유로우며, 어린 손녀가 성숙한 언어 능력으로 할머니와 깊이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이는 세대 차이를 뛰어넘는 소통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시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손녀의 감정 표현이다. ‘할머니는 맨날 실수해’와 같은 아이의 말투는 순수하면서도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며, 아이의 감정이 아주 진솔하게 전달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시에 활력을 더해주고 있는데, 손녀가 ‘입을 삐죽거린다’거나, ‘엄지척한다’와 같은 동작 묘사는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의 무구한 행동과, 그 속에 담긴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할머니와 손녀 사이의 관계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빛난다. 특히 손녀가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젤 이뻐’라고 말하는 장면은 아이의 천진난만한 사랑을 드러내며,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또한 ‘네 살 손녀가 일흔 살 할머니를 들었다 놓았다’라는 것은 손녀의 말과 행동이 할머니에게 얼마나 큰 감동과 웃음을 주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 돋보이는 것은 아이와 어른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 담긴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이다. 손녀가 서운함을 느끼다가도 할머니의 작은 행동에 기쁨을 느끼는 변화가 매우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한마디로 이 시는 가족 간의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3부: 시를 쓰는 할머니

멀쩡하던 무릎이 아프다고
소화가 통 어렵다며
병원 다녀온 끝없는 하소연
딸이 보내준 일본 여행 이야기
사위한테 받은 명품백 자랑
사십 년 넘은 흉허물없는
친구들의 넘치는 수다에
맞장구치다가
조용히 노트북을 켠다 / 시 쓰는 할머니 /〈부분〉

‘시 쓰는 할머니’는 노년의 삶 속에서 시를 쓰는 즐거움과 발견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시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서 시를 창작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삶의 나이 듦 속에서도 여전히 활기차고 창조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시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주로 등장한다. ‘무릎이 아프다’, ‘소화가 어렵다’, ‘병원 다녀온 이야기’와 같은 노년의 흔한 대화들이 펼쳐지고, 딸의 일본 여행 이야기나 사위가 준 명품백 자랑 등이 이어지고, 할머니는 그런 수다에 맞장구를 치다가 조용히 노트북을 켜고 시 쓰는 모드로 넘어간다. 이 대조적인 변화는 단순한 일상의 흐름에서 창작의 세계로의 전환을 나타내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차원 높은 즐거움을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시 쓰기 과정이 시각적으로 묘사된다. 할머니는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춤추는 것을 느끼며, 일상의 갖가지 소리들이 손끝에서 피어난다고 표현한다. 이는 창작의 기쁨과 감각적 발견을 상징하며, 시를 쓰는 과정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는 예술적인 표현임을 나타낸다. 일상에서 흘러나온 소리들이 이제는 시의 언어로 변형되어 할머니의 손끝에서 피어나고, 이는 창작을 통한 내면의 세계가 발현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할머니는 시를 쓰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볼까지 발그레해진다. 이는 단순히 시 쓰기가 즐거운 경험일 뿐만 아니라, 창작의 성취감이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가져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를 통해 할머니는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듯한 새로운 활력을 얻으며, 나이와 상관없이 창작이 주는 감동과 열정의 에너지를 얻는다.
이 시는 노년의 일상성과 창작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점에서 독특하다. 시 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정신적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시를 읽는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아흔 둘에
배운 적도 없는 시를
마음 울림 가득하게
잘 쓰신다

여덟살부터
글쓰기를 배운 나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한 줄 글이 부끄럽다 / 부러운 시바타 도요 / 〈전문〉

‘부러운 시바타 도요’는 도요 시인의 삶과 시를 바라보며, 시인의 느낌과 자기 성찰을 다룬 짧은 시다. 이 시는 겸손과 함께, 오랜 시간 글을 써 온 시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동요를 다루고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시인의 진솔한 감정에 공감하도록 만든다.
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도요 시인과 정의순 시인의 대비다. 도요 시인은 아흔 둘의 나이에 배운 적도 없는 시를 썼지만, 정 시인은 여덟 살부터 글쓰기를 배운 이로써 ‘한 줄 글이 부끄럽다’고 고백한다. 이 둘 사이의 대비는 시인에게 내재 된 겸손함을 강하게 드러낸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글쓰기는 그녀의 경험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담긴 산물이지만, 정시인은 오랜 시간 글쓰기를 배우고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는 단순히 도요 시인을 부러워하는 차원을 넘어서, 자신의 글쓰기를 되돌아보고 더 나은 표현을 갈망하는 시인의 자세를 보여준다.
도요 할머니와 시인의 연령 차이는 시에서 중요한 상징적 요소다. 도요 할머니는 아흔 둘이라는 나이에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 시작했고, 반면 시인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 나이의 대비는 단순히 시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깊이와 글쓰기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드러낸다.
시인의 내면에 깃든 끊임없는 탐구와 겸손한 마음가짐이 이 시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4부: 거울 속 나와의 대화

손바닥을 활짝 펴
윈도우 브러쉬를 만든다
최강 속도 브러쉬가 쭈욱쭈욱
물줄기를 시원스레 닦아내더니
순간
힘 빠진 브러쉬는 가만히 파들거린다

두 손으로 어깨를 감싸고
도닥도닥
가만가만
두드린다
거울 속 여인네가 해맑게 보인다 / 거울/ 〈부분〉

‘거울’은 평범한 생활 속에서의 자기 성찰과 감정 해소를 표현한 시로,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의 첫 부분에서 화자는 긴 하루를 마친 후 거울 속 자신과 마주한다. ‘눈 하나 깜박 않고 쳐다본다’는 표현은 자신의 내면과 진지하게 대면하는 순간이고, 하루의 감정을 정리하고 자신과 대화하는 순간이다.
화자는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거나 눈을 크게 떠보는 작은 제스처를 취하는데, 이는 일상 속에 감추어진 감정의 해방을 나타낸다. 거울 속 모습이 자신을 따라 하는 것처럼, 이 장면은 마치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순간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의 중간 부분에서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팝콘 터지듯 웃음소리가 거울에 매달린다’는 표현은 하루 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순간을 나타낸다. 웃음은 긍정적인 에너지의 발산으로 해석되며, 이를 통해 화자는 생활 속의 작은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억눌린 눈물도 함께 맺힌다.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는 장면은, 그날 쌓인 피로와 감정적 무게를 나타낸다. 즉 인간의 감정이 다층적임을 보여주며,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그린다.
‘손바닥을 활짝 펴 윈도우 브러쉬를 만든다’는 독특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묘사된 부분이다. 손바닥을 윈도우 브러쉬에 비유한 장면은, 자신의 감정을 깨끗이 닦아내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그날의 감정적 혼탁함을 씻어내고 새로운 마음 상태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나타낸다. 힘 빠진 브러쉬가 파들거리는 장면은, 삶의 피로와 고단함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이 완벽하게 감정을 정리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시의 마지막에서 시인은 두 손으로 어깨를 감싸고 도닥도닥 자신을 위로한다. 하루 동안의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위로하며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려는 모습이다. 이 장면에서 거울 속의 여인이 해맑게 보인다는 표현은, 스스로 위로한 결과로 마음이 정화되고 평화로워졌음을 나타낸다.

속 솜과 겉이 따로 놀아 돌돌 뭉친 이불
반짇고리 찾아
바늘귀에 실을 꽂느라
후후 불면
어느새 울 엄마 웃고 계시네

명주이불 곱기도 하다
쓰다듬는 손길따라
나도 슬몃 손을 잡는다
눈 어두워 바늘귀 어려우니
네가 하거라
나를 옆에 앉히고
하루해 저물도록 바느질하는
엄마 등 뒤로 햇살이 길다

맞잡은 손길 놓지 못해 머뭇거리는데
바늘귀 꿰줄까
딸이 냉큼 바늘을 잡는다
돌아보는 석양에 울 엄마가
명주처럼 곱게 웃고 계시다 / 바늘귀 / 〈전문〉

‘바늘귀’는 가족의 유대와 세대 간의 연결을 다룬 시로, 소소한 일상의 한 장면을 통해 따뜻한 감정과 추억을 상기시킨다.
참고로 밝혀 두자면, 바늘귀라는 개념과 용어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바늘귀는 세계적으로 매우 좁은 구멍을 비유적으로 사용한다. 영어로는 귀 대신 눈(eye)이라는 표현(eye of a needle)을 사용한다. 탈무드 전체에 걸쳐 여러 번 등장한다. 신약성경은 누가복음 18장 25절에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인용한다. 쿠란 7장 40절에도 “진실로 우리의 구절을 부인하고 그것에 대해 거만한 자들에게는 천국의 문이 그들에게 열리지 않을 것이며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갈 때까지 그들은 낙원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범죄자들에게 보상한다."라고 이야기되어 있다.
정 시인에게, 바늘귀에 실을 꿰는 것은 삶의 어떤 상징적인 연결로 해석될 수 있으며, 어머니와 화자, 나아가 손녀로 이어지는 세대 간의 연결고리다. 바느질하는 손길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전통과 사랑의 표현이다. ‘울 엄마 웃고 계시네’라는 구절에서, 과거의 어머니가 웃는 장면이 떠오르며,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현재가 교차한다.
시의 첫 부분에서, ‘속 솜과 겉이 따로 놀아 돌돌 뭉친 이불’이라는 묘사는 촉각적 이미지로, 삶의 불안정함과 겉과 속이 다른 혼란스러운 상태를 표현하고 있으며, ‘명주이불 곱기도 하다’는 것은, 시각적 아름다움이 강조되고 있다. 명주는 화자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며, 쓰다듬는 손길은 애정과 추억을 상기시킨다.
바늘귀를 꿰기 어려워하는 장면은 세월의 흐름과 노쇠를 의미한다. 눈이 어두워 바늘귀를 꿰기 어려워진 어머니는, 그 역할을 딸인 시인에게 넘겼고, 세월이 흘러 시인의 딸이 냉큼 바늘을 잡는 모습은, 그 변화가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며, 기꺼이 수용되는 과정임을 나타낸다. 이 장면은 세대를 넘어서 가족의 지속성과 연대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어머니에서 딸로, 딸에서 또 다른 세대로 전승되는 사랑의 상징이다.
‘돌아보는 석양에 울 엄마가/명주처럼 곱게 웃고 계시다’라는 마지막 행은 어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여전히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석양의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면서도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바늘귀를 꿰는 행위 속에서 세대 간의 연결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매우 격조 높은 작품이다. 이 시는 한 생애를 오롯이 잘 살아낸 여인만이 쓸 수 있는 시다.


정의순 시인의 시들은 전반적으로 삶의 작은 순간들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일상의 소소한 경험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또한 독창적인 언어와 리듬, 감정의 절제된 표현, 형식과 내용의 균형, 그리고 상징과 이미지를 깊이 있게 전달하고 있다. 시들이 모두 평범한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배치와 연결 방식이 특별하다. 그녀는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언어를 낯설게 재배치하여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적,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고, 시적 사유를 깊이있게 끌어낸다.
시인은 묘사와 철학적 사유의 능력이 탁월하다. 무슨 거대한 담론이나 특별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재미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시인은 독자들이 시 속에서 삶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시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의 시는 단순한 언어적 유희를 넘어, 깊은 인간적 성찰을 제시하는 귀한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정의순 시인의 활기차고 빛나는 시작 활동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계속, 좋은 시집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으시길 소망해본다.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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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92374628
발행(출시)일자 2024년 10월 28일
쪽수 160쪽
크기
126 * 206 * 11 mm / 306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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