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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 지기 전에

이건행 시집
현대시세계 시인선 169
이건행 저자(글)
북인 · 2024년 10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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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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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연민과 뭉근한 슬픔’ 절절하게 풀어낸 이건행의 시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1997년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임권택 감독에 의해 〈창〉으로 영화화)를 펴냈으며 경제일간지 등에서 사건·미술·증권 담당 기자로 일했고 인문학 책 비평가로 활동 중인 이건행 작가가 시집 『상사화 지기 전에』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169번으로 출간했다.
이건행의 시집 『상사화 지기 전에』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이다. 시인은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삶의 시계를 자꾸 뒤로 돌린다. 마치 영화 〈박하사탕〉에서 달려오는 열차를 정면으로 마주한 중년 사내가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친 후 가장 순수했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향해 시간을 뒤로 돌리는 듯하다.
후진하던 열차가 멈춘 역마다 특별한 사람들과 사연이 정차해 있다. 첫 번째 역에는 한 신문사 노조위원장을 하다가 백수가 된 나와 어머니(「전어구이」), 두 번째 역에는 꿈 많았던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할 때의 일화(「공장」), 세 번째 역에는 전방 철책선 지하 벙커에서 포르노를 처음 보고 토하던 군대 시절(「파밭 연가」), 네 번째 역에는 학내시위 사건으로 도주 중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하고 돌아선 첫사랑(「사랑의 무게」), 다섯 번째 역에는 박정희 개새끼라고 욕하는 아버지와 이를 말리던 어머니의 가족사(「솔밭에서」), 그리고 춤과 싸움으로 점철된 유년(「싸움」)의 ‘나 자신’이 존재한다.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은 세상의 끝에 서 있는 듯한 불운한 사내라면, 시집 『상사화 지기 전에』의 시인(시적 화자)은 기존 질서에 반기를 드는 강골 기질이 충만한, 혁명을 꿈꾸는 낭만주의자다. 이름조차 사라진 “내가 세 살 때부터 자란 황화”(「황화」)역에는 ‘이건행’이라는 열차가 정차해 있다. 시인은 열차가 후진해 멈출 때마다 흉중에 품고 있던, 미처 소설로 풀어놓지 못한 절절한 이야기들을 고백과 참회의 형식으로 들려준다. “사람과 사람을 만나 피어난 이야기”(「시인의 말」)를 길어올리는 이건행의 시는 “고민의 흔적”(「시」)이면서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 찾기라 할 수 있다.
정한용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의 시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겠다. 하나는 시인이 지난 날 겪었던 사건이나 인물을 회고하는 작품이고, 두 번째는 생활 주변에서 만나는 사물과 풍경을 서정화시키는 작품이며, 마지막으로는 현실의 모순과 질곡을 진술하는 작품이다. 이것이 겉으로 드러난 소재적 구분이라면, 그 내면을 관통해 흐르는 주제는 비교적 한 가지로 수렴된다. 나는 이것을 ‘삶에 대한 연민과 뭉근한 슬픔’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시인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얘기하지만, 이건행 시인만큼 살갗에 통증으로 다가오는 내력을 적는 이는 많지 않다. 젊은 날의 묵은 사랑부터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눈물을 감춘 춤부터 애잔한 복수를 꿈꾸는 것까지, ‘혁명’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모든 아픔이 꼭꼭 눌려, 오랜 세월 발효되고 있다. 뭉근하게 상처 안쪽에서 전해져오는 슬픔, 이 막막한 통증이 시인의 가슴에서 새어나와 독자에게로 흘러가고 있다. 만약 독자가 이 시집을 읽고 슬픔을 슬픔이라 말할 수 있게 된다면, 비로소 우리는 시인이 꿈꾸었던 혁명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된다”라며 이건행 시집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 책의 총서 (138)

작가정보

저자(글) 이건행

이건행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임권택 감독에 의해 ‘창’으로 영화화)를 펴냈으며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린 뮤지컬 ‘상대원 연가’의 모티브가 된 동명 시를 2015년 발표하면서 시 창작을 해오고 있다. 2021년 시집 『호박잎쌈』(디지북스공모 선정·이북)과 인문학 소개서인 『인문독서 가이드북』(편저)을 각각 펴냈다. 경제일간지 등에서 사건·미술·증권 담당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일간지에 ‘이건행 칼럼’을 연재하는 한편 인문학 책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 시인의 말 · 5

    1부 허공의 깊이
    나는 없다 · 13
    시 · 14
    사랑의 무게 · 15
    지는 꽃 주우며 · 16
    상사화 지기 전에 · 17
    전어구이 · 18
    허공의 깊이 · 20
    짬뽕밥 · 22
    파밭 연가 · 24
    영원 · 26
    사랑은 뜨거운 게 아니더군 · 27
    나팔꽃 · 28
    장대비 · 29
    일주문 앞에서 · 30
    엽서 한 장 · 32

    2부 수평적 폭력
    전등사 가는 길 · 35
    서민이 서민을 죽인다는군요 · 36
    솔밭에서 · 38
    수평적 폭력 · 40
    저녁놀 · 41
    복수에 대하여 · 42
    라디오 노인 · 44
    바빌론 강가에서 · 45
    새벽 전화 · 46
    서민적 사랑 · 47
    그녀는 웃고 나는 울고 · 48
    공장 · 49
    싸움 · 50
    봄은 그 자리다 · 51
    진통제 · 52

    3부 죽은 혁명의 사회
    안면도에서 · 57
    완패 · 58
    나의 강강술래 · 60
    어느 가을날의 편지 · 62
    섞어찌개 · 65
    죽은 혁명의 사회 · 66
    막춤 · 68
    민들레 꽃씨 · 70
    박하사탕 · 72
    임금님은 악귀 · 74
    궁평항에서 · 77
    사다리 · 78
    김순복 씨네 채소는 묵직해 · 80
    전집에서 · 81
    공갈빵 · 82

    4부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유년의 접시꽃 · 87
    죽음의 축제 · 88
    거짓말을 함박눈처럼 포근하게 · 90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92
    내 친구 원효 · 93
    물만두 · 94
    비처럼 내리는 과거라는 돌 · 96
    복권 · 98
    유모차 탄 강아지 바라보며 · 99
    고등어구이 · 100
    우리들의 금주 누나 · 102
    코스모스 · 103
    고목나무 아래에서 · 104
    심청의 독백 · 105
    황화 · 106

    해설 후진하는 열차에 올라탄 혁명적 낭만주의자 / 김정수 · 108

책 속으로

[표제시]

상사화 지기 전에
--
백로 지나 술집에서 만난 친구가 머잖아 중앙공원 상사화가 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당의 상사화 서식지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지만 이미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뒤였습니다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 던진 말이 이렇게 깊이 파고들 줄 몰랐습니다 슬프다는 말이 슬프게 와닿지 않은 적은 많았지만 밋밋한 말이 슬프게 와닿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친구와 상사화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감정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잎이 진 다음 꽃이 피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에게서 없던 것이 피어나는 게 문제입니다 상사화 지기 전에 보러 가야겠습니다 피고 지는 꽃의 무심한 일상에서 혹시 나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내게서 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

[대표시]

사랑의 무게
--
사랑에도 무게가 있을까
스물한 살 초겨울
학내시위 사건으로 쫓기던 나는
무작정 서울에서 공주로 향했다
멀리서 공주사대 정문을 바라보며
온종일 누군가를 찾았다
실루엣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 졸였지만
그녀는 흔적조차 없었다
시내 여인숙에서
강소주를 마시며 밤새 흐느꼈고
그것은 작별의식이 되었다
교사 지망생인 가난한 그녀에게
나는 위험인물이어서
무조건 떠나주어야 했다
그 이후로 그녀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이렇게 시시한 사랑을
저울에 달면 저울추가 움직일까
정말 사랑에 무게가 있을까
--

박하사탕
--
내 글에 댓글을 달던
반백의 아저씨가 보이지 않는다.
앞뒤 맞지 않는 주장을 늘어놓거나
욕을 내뱉기 일쑤였던 그가
막상 안 보이니 궁금해진다.
어느 순간부터 사랑 타령을 해
웃음을 주기도 했는데
그는 왜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그렇듯
그와 나는 죽음처럼 절연되었지만
사실 그의 엉터리 글들을
어떤 미끈한 글보다 더 기다렸다.
거친 그 암호문은
새의 울음소리일지 모른다고
이따금씩 생각했었다.
내가 어렸을 적 마을 고샅에서
혹부리영감이 자주 내질렀던
울음 섞인 소리처럼.
그 영감이 내게 박하사탕 하나
불쑥 손에 쥐여주고 사라졌을 때
새가 토해낸 것이라고 믿었었다.
박하사탕을 찾는다.
혹부리영감처럼
늙수그레한 아저씨는 분명 내게
박하사탕 하나 건넸을 것이다.
--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시리즈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65121693
발행(출시)일자 2024년 10월 09일
쪽수 128쪽
크기
130 * 210 * 12 mm / 316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현대시세계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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