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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소설 14
노현수 저자(글)
걷는사람 · 2024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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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연꽃도 진흙탕에서 피잖아요.”

지금 나의 통증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거대한 사회 담론 속 은폐된 진실을 찾아 묵묵히 나아가는 힘
경남 창원 마산에서 태어나 2019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노현수 소설가의 첫 소설집 『대리인』이 걷는사람 소설 열네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앤솔러지 소설집 『그녀들의 조선』을 통해 선보인 바 있듯, 일상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예리한 시선과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두드러지는 작품들이 마침내 한 권의 소설집으로 묶였다. 여기 실린 7편의 소설은 각기 다른 주제와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지만, 인간의 실존적 고뇌와 부조리한 사회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독자들은 작가의 세계관에 입각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의 자기 정체성과 진실을 재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표제작이자 작가의 등단작이기도 한 「대리인」에는 “인생은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의미심장한 대사가 등장하며, 이는 노현수의 소설 세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그는 탈세와 돈세탁을 목적으로 한 페이퍼 컴퍼니와 관련된 금융 범죄부터 복잡한 기업 내부의 구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화자가 ‘대리인’으로서 타인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부정부패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독자들에게 깊은 사회적 통찰을 제공하는 이 작품은 사회 곳곳에 만연한 권력 남용, 비리, 그리고 불투명한 권력 구조를 구체적으로 묘파한다. 이렇듯 진흙탕에서 질척거리는 신세로 전락할 내부 고발자의 말로를 알면서도 부정의 거대 담합 청부 카르텔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리는 「대리인」에서부터, 죽음에 맞선 투병의 심리적 정황을 찬찬하고 세밀하게 그려내는 「중첩」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고유한 세계관을 담아내며 탄탄한 서사와 필력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팝업창」은 거짓이 거짓을 낳는 상황 속에서 방황하는 개인의 고뇌를 그리며, 「기억의 침몰」은 지워진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고독 속에서의 방황을 이야기한다. 「상식적인, 너무나 상식적인」은 몰상식이 상식을 지배하고 잠식하는 세계를 담아내며, 「덕봉, 송종개」를 통해서는 동등하지 않은 사회적 규범에 대응하는 조선 여성의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마지막 작품 「딥페이크」는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 세계에 속한 인물이 겪는 고통과 혼란을 묘사하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고찰하게 한다. 작가는 흡입력 있는 필체로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며, 현대 사회의 이면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해설을 쓴 한영인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노현수는 “인간과 사회가 앓고 있는 병증의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또, 추천사를 쓴 이성모 평론가가 이야기하듯 노현수는 악덕이 세상 사는 법이며 탐욕이 자본주의의 번영을 이끈다는 틈에 끼어 오가지 못하거나 잠식되는 인간, 그 아포리아의 세계를 천착하는 일에 능숙하다. 그렇기에 노현수의 소설이 ‘나 안의 지옥’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인간상과 미궁의 세계상을 그려내고 있음은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상살이란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 그러니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나 관점에서 새로이 탐구하는 출발점을 제시하는 아포리아의 정점에 노현수의 첫 소설집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설의 힘을 믿는”(작가의 말) 노현수의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실존적 문제와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부조리함의 실체를 냉정하게 직시하게 만드는 경험을 선사한다. 인간 군상의 복잡한 내면을 깊이 탐구하며 독자를 향해 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 책을 펼친다면, 우리 주변에 살아 숨 쉴 법한 인물들이 거대한 사회적 담론 속에서 자신만의 진실을 찾아 묵묵히 나아가는 과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면 깊이 있는 성찰의 기회와 고요한 감동의 물결을 생생하게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총서 (123)

작가정보

저자(글) 노현수

노현수

경남 창원 마산에서 태어나 2019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앤솔러지 소설집 『그녀들의 조선』을 냈다.

작가의 말

첫 소설집이다. 처음이라는 말 안에는 설렘이 들어 있다. 습작을 벗어난 첫 단편의 제목이 ‘이카로스의 날개’였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소설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보고 느낀 시간들을 모아 본다.
소설은 항상 내게 무거운 짐이었다. 이것만 내려놓으면 편하게 살 것 같은데, 그래서 몇 년 동안 애써 무시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소설은 날개를 감추고 내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가슴 한편에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을 응시하는 맹수의 눈처럼 섬뜩했다. 외면하는 순간, 날카로운 공격에 만신창이가 될 것이었다. 힘겹게 다시 날개를 폈다. 아직까지는 무겁지만 그래도 견딜 만은 해서 다행이다. 소설의 힘을 믿는다. 그 힘으로 가벼워진다면 아주 멀리, 우주까지라도 날아가고 싶다. 가서 티끌 같은 지구를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싶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아주 세세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늦었지만 끝이 없는 처음처럼, 추락이 없는 날개처럼 묵묵히 나아가겠다.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들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 삶의 거대한 버팀목으로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 주고 계신 어머니, 아들로서 존경합니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이 책을 바칩니다. 항상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는 아내와 아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기꺼이 추천사를 맡아 주신 이성모 선생님, 더 좋은 소설로 선생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만나면 항상 즐거운 ‘쓸아그데’, 그대들의 진심 어린 조언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해설을 맡아 주신 한영인 평론가, 애정으로 읽고 작업해 준 걷는사람 편집부에도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2024년 가을
노현수

목차

  • 대리인
    팝업창
    기억의 침몰
    상식적인, 너무나 상식적인
    덕봉 송종개
    중첩
    딥페이크

    해설
    통증의 그림자
    -한영인(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추천사

  • 참 오래되었다. 대학 글터 동아리 지도교수로 현수 군을 만났다. 서슬서글한 문체답게 시원스러운 성정을 지녔다. “자네는 소설가가 딱이야”라는 한마디로 대학 전공을 바꾸는 전과자로 만들었다. 소설은 타락과 단절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거라서 삶의 지옥도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그는 으레 그렇듯 싱긋 웃음을 날렸다. 눈과 입이 먼저 웃는 게 탈이었다. 착한 심성으로 꽤 오랜 시간 견뎌내었다. 악덕이 세상 사는 법이며 탐욕이 자본주의의 번영을 이끈다는 틈에 끼어 오가지 못하거나 잠식되는 인간, 그 아포리아의 세계를 천착하였다.
    죽음에 맞선 투병의 심리적 정황을 찬찬하고 세밀하게 그려내는 필력이 맵차다(「중첩」). 탄탄한 서사와 필력 강정으로 작가의 세계관에 입각한 인간 군상과 세계상을 그려내었다. 진흙탕에서 질척거리는 신세로 전락할 내부 고발자의 말로를 알면서도 부정의 거대 담합 청부 카르텔에 맞서는 윤 과장(「대리인」). 거짓이 거짓을 증식하는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팝업창」). 기억에서 지워진 단절과 고독 혹은 기나긴 방황(「기억의 침몰」). 몰상식이 상식을 지배하고 잠식하는 세계(「상식적인, 너무나 상식적인」). 사내는 가능하고 아녀자는 불가능한 세계에 맞선 당당함(「덕봉, 송종개」). 거짓을 참으로, 참을 거짓으로 감추거나 흐지부지 덮어 버리는 세계(「딥페이크」)에 내던져진 이른바 실존적 인간들이다.
    손창섭의 1955년 작 「미해결의 장」이 분열된 주체로서 무능한 인간상을 보여 준다면, 노현수의 소설은 ‘나 안의 지옥’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인간상과 미궁의 세계상을 그려내고 있다. 세상살이란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나 관점에서 새로이 탐구하는 출발점을 제시하는 아포리아의 정점에 노현수의 첫 소설집이 있다. 첫발을 내딛는 이 순간이 참 오래된 미래가 되기를 기원한다.

책 속으로

서류 봉투를 뜯었다. 같은 서류인데도 목적이 바뀌어 있었다. 적발하는 것이 아니라 감추기 위해서였다. 눈은 서류를 보고 있는데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글인데도 읽히지가 않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글자가 보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글자의 그림자였다. 글자에서 그림자가 떨어져 나와 안개처럼 글자 위에 떠 있었다. 떠다니던 그림자들이 먹구름으로 변했다. 금방이라도 그림자들이 비로 변해 사무실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대리인」, 14~15쪽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진흙탕에 빠지는 심청이와 같습니다. 아버지의 눈처럼 국민들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몸을 던집니다. 하지만 심청이는 연꽃을 타고 세상에 다시 나오지만 내부 고발자는 그냥 진흙탕에서 질척거려야 합니다.”
공익신고센터 관계자와 통화한 내용이었다. 나는 짐을 챙겨 호텔 정문으로 나왔다. 예약된 택시가 내 앞에서 멈췄다.
‘연꽃도 진흙탕에서 피잖아요.’ 나는 혼잣말을 하면서 택시 문을 열었다. 갈라파고스로 가서 핀치를 볼 것이다. 새로운 종의 기원이 되었다는 핀치가 너무 보고 싶었다.
-「대리인」, 37~38쪽

주기적으로 머릿속의 통증이 나를 괴롭혔다. 생각이 생각을 만들고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생각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내 뾰족한 해결책은 찾을 수 없었다. 대출금과 대출 이자에 공금까지,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했지만 내게는 소화기조차 없었다. 휴학, 개인 회생, 파산 등의 단어가 어지럽게 머릿속에 떠돌아다녔다.
-「팝업창」, 69쪽

정신이 번쩍 든다. 잊지 말자, 나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하늘을 쳐다본다. 별들 사이로 달이 떠 있다. 주변이 환하게 달무리가 생겼다. 달아, 너는 알고 있잖아, 오늘처럼 그렇게 밝게, 밝게 진실을 밝게 비추어 다오, 손바닥을 맞대어 빌면서 달에게 연신 고개를 숙인다. 달빛을 받은 세상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게 보인다.
-「기억의 침몰」, 100쪽

바람이 얼굴을 때리듯이 지나갔다. 바닥에 나뭇잎이 떨어졌다. 무심코 보니 사람 얼굴이었다. 눈, 코, 입, 웃고 있었다. 아, 민우였다. 망가지고 찢긴 민우가 웃고 있었다. 놀라 일어서려고 나무를 잡았다. 어딜 잡아? 약점 잡아서 좋겠네. 나무줄기가 몸서리치며 서 교사의 손을 뿌리쳤다.
-「상식적인, 너무나 상식적인」, 127쪽

그날도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담양 본가에 있는 배나무에 앉아 있었다. 하얀 이화의 꽃잎처럼 날개가 바람에 하늘거렸다. 달착지근한 향기가 이끄는 곳으로 날개를 퍼덕였다. 어느새 죽녹원이었다. 짙은 녹색의 대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가장 높은 가지에 앉았다. 살랑이며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의 숨결이 따사롭게 느껴졌다.
-「덕봉 송종개」, 165쪽

누군가 뇌를 손으로 잡고 찢는 것 같다. 감은 눈에서 번개가 치듯 빨간불이 번쩍인다. 통증이 내 몸 곳곳을 동시에 두드리고 찢고 공중에서 돌린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다. 깨어 있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 주먹에서 땀이 흘러나온다. 암세포가 동시에 미쳐 날뛰는 것 같다. 아, 그러지 마, 내가 죽으면 너도 죽잖아,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중첩」, 199쪽

조용하다. 세상이 멈춘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든다. 글자들이, 소리들이 나를 가운데 두고 포진하고 있다. 명령만 떨어지면 일제히 공격을 시작할 것 같다. 옥상이라는 글자가 조금 움직인다. 맹렬한 속도로 나에게 달려들어 팔에 박힌다. 따끔거린다. 신호라도 되는 듯 글자들이 나에게 일제히 달려든다. 팔을 휘저어 보지만 소용이 없다.
-「딥페이크」, 232쪽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시리즈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93412527
발행(출시)일자 2024년 09월 30일
쪽수 256쪽
크기
131 * 201 * 20 mm / 409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걷는사람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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