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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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서울신문 > 2024년 9월 3주 선정
구조의 중첩과 충돌이 만들어낸 네 개의 콜라주
표제작인 「사이코패스」는 초연 당시 파격적인 주제와 수위 높은 장면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 하나의 사건과 범인을 두고 여러 진술이 엇갈리는 열세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콜라주 같은 희곡이다. 그로부터 3년 뒤에 발표한 「치정」 역시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을 모티프로 하여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대한민국 치정(정치)의 역사를 새로운 스타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작가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한국이라는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채 경계에 머물러야 했던 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다섯 개의 각기 다른 드라마는 마지막에 가서 하나의 큰 그림으로 완성된다.
조만수 연극평론가는 박상현의 작품들을 두고 “구조들이, 구조들의 충돌이 극을 이끌어간다”고 말한 바 있다. 전통적인 플롯을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그의 이러한 작업은 희곡(연극)이라는 낯설지만 매력적인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연극연출가 손원정의 리뷰처럼 이 책은 작가가 “독자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건네는 정성스러운 질문으로” 다가올 것이다. “희곡은 무엇이고 연극은 또 무엇이며, 우리는 왜 희곡을 읽고 연극을 보는 것인가. 우리는 이 세계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거기에 극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책의 시리즈 (4)
작가정보
목차
- 서문
오슬로에서 온 남자
사이코패스
치정
고발자들
리뷰|‘알고 싶어요’와 ‘알 수 없어요’ 그 사이의 세계 - 손원정(연극연출가)
추천사
-
박상현의 희곡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플롯이 보이지 않는다. 플롯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극이 전개되는 논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기 위해서는 왜 그렇게 됐는지가 보여야 할 텐데 박상현은 ‘왜’를 명확하게 제시하기를 거부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참 불친절한 작가다, 라고 단정 지으려는 찰나, 머뭇거리게 된다. 불친절한 건 작가인가, 아니면 그의 눈에 비친 이 세계인가. 등장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상황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않지만, 그렇게 납득할 수 없는 행동과 상황은 한 작품 안에서 여러 인물을 통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현의 극에는 전통적인 플롯이 없는 대신 ‘반복’과 ‘변주’라는 다른 구조가 악보처럼 명확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의 세계가 어지럽게 모양을 갖춘다.
책 속으로
남자1 스무 살 때까지 꿈을 꿨어요. 어머니가 저를 찾아오는 꿈. 그 먼 나라까지 저를 찾으러 오는 꿈.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기에 저 자신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꿈을 꾸고 또 꾸고, 또 꾸고……. 그러다가 제가 어머니를 찾으러 가는 꿈을 꾸고 나서 생각했어요. 이건 가능한 일일 거야. 그렇지만 몸이 쉽게 움직이질 않았어요. 그때까지 저는 양부모님이 저를 버리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아니, 두 분은 전혀 그럴 분들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불가능한 것을 꿈꾸고, 일어나지 않는 일을 불안해하는 게 나이 들 때까지 저의 일상이었어요.
여자1 글로리아 어머니-.
여자2 널 찾다가, 찾다가 어느 세월 내 인생도 여기까지 왔다. 너를 버린 게 아니야. 내가 버린 게 아니야.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 있겠니. 한국에 이런 아버지가 있단다. 그 아버지는 22년 전에 중학생이던 딸을 잃어버렸어. 아버지는 딸을 찾다가 기다리다 기다리다, 트럭에 전단을 싣고 전국을 다녔단다. 큰 거리마다, 고속도로 입구마다 출구마다 현수막을 걸고. 내 딸을 찾아주십시오. 내 딸을 보지 못했나요? 한때 사라지는 것 같았다가, 그래서 사람들이 잊고 있다가, 또다시 서울 어느 거리에 내 딸을 못 보셨습니까. 다리를 절고 허리를 못 쓰는 노인네가 되었어도, 내 딸을 찾아주십시오. 그렇게 20년이 넘게 현수막을 걸었지. 그 현수막을 볼 때면 내가, 내 마음이 부끄러워서, 무기력한 내가 미워서 그만 죽고 싶었다.
「오슬로에서 온 남자」에서
명보 참 이상하다. 어떻게, 어떻게 나를 용서할 수가 있죠?
자애 씨 내가 살기 위해서. 밤에는 잠들고, 아침에 깨기 위해서요.
명보 용서한다구요……, 무조건?
자애 씨 그러니까 한번만 얘기해줘요. 왜 그 애를 그렇게 했는지, 그렇게 그 애가 미웠는지, 그 애가 무얼 잘못했는지.
명보 잘못하다니요, 밉다니요.
자애 씨 그럼 그 앨 왜 그렇게 했죠?
명보 그 얘길 들으면 날 용서할 수가 없을 거예요.
자애 씨 전 이미 용서했어요.
명보 더 이상 밤에 잠들 수 없고 아침에 깰 수 없을 거예요.
자애 씨 얘기하세요.
명보 ……다 들으실 수 있을는지 몰라. 그럼…… 제목, 푸른 수염 이야기, 투.
「사이코패스」에서
남부장 지금 밖에는 여성단체 회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데모를 하고 있소. “여성 모욕을 중지하라.” “미풍양속을 해하는 소설을 불태우자.” 각하께서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계시드먼. “이북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어째서 남한의 현실, 특히 관공리들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는가?”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계, 재계의 비리를 폭로하고자 한 목적이었는가?” 남한을 음란, 퇴폐하게 만들어 적화하기 위해 북으로부터 공작비를 받고 쓴 것이 아니오?
정비석 내래 이북에서 지주의 아들이라 해서 서러움도 많이 받았드랬소. 어찌 그런 의도에서 작품을 썼겠소.
남부장 지금 이북에서는 ‘『자유부인』은 대한민국 자본주의 체제의 타락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남한은 이렇게 속속들이 썩어가고 있다’고 선전 공세를 펴고 있는 거 알고 있소?
정비석 그렇든 어떻든 내 의도가 아니고, 나와 관계없는 일이외다.
남부장 그래, 앞으로 어쩔 셈이오? 이 소설 끝이 어찌 되려나?
정비석 ……아직 거기까지는…….
남부장 에 또, 어디 보자……. 지난 회가 어디서 중단되었는지 봅시다. ‘다음 날 정오가 다 되어 집에 가까워오자, 오선영 여사는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뜨거워왔다. “아주머니, 인제 들어오세요?” 오 여사는 순이에게 대꾸도 아니하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아저씨는 학교에 나가셨겠지?” 하고 물으며 대청 쪽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으레 집에 없으려니 했던 남편이, 천만의외에도 대청마루 쪽에 염라대왕처럼 우뚝 버티고 서서 심쌀스러운 눈초리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무서운 시선이었다……. 결혼생활 10여 년 동안에, 남편 얼굴에 그처럼 무서운 표정을 보기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이 웬일이세요. 아직 안 나가셨구려? 어젯밤 무척 기다리셨죠?” “이, 더러운 여편네! 나가!” 분노는 드디어 폭발되었다.’ (사이) 이제 오선영 여사는 집을 나가갔지요?
정비석 아직은 모르디요.
남부장 안 나가면, 혀를 깨물고 죽는단 말입니까, 장 교수를 쳐죽이고 집을 차지한단 말입니까.
정비석 나가긴 나가겠디요.
남부장 그런 다음?
정비석 글쎄, 아직은…….
「치정」에서
그냥 참고 지내려 했는데요, 더 이상 채플 시간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선생님은 기독교인이시죠? 저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제가 왜 거기 앉아 있어야 하나요. 채플 시간에 안 들어갈 자유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네 말이 옳다.
나 7급 공무원입니다. 100 대 1, 경쟁 뚫고 여기 들어왔습니다. 애국하려고요. 국가에 헌신할 각오가 돼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멀쩡한 시민의 뒤를 캐고, 댓글 달고, 협박 전화 하고, 그러려고 들어온 건 아닙니다.
협박은 무슨…….
벌써 몇 번쨉니까. 왜 삼성의 스만 나오면 쓱, 가위질입니까? 부장, 차라리 보도지침을 주세요. 그럼 나가지도 않을 기사 쓰느라 헛고생은 안 할 거 아닙니까.
보도지침은 무슨…….
꼭 문서로 돼야 보도지침입니까?
나도 고발한다. 고발할까? 학술진흥재단에서 연구비 받아 지들끼리 나눠 먹은 저 교수님들. 학교 홈페이지에 올릴까? 혼자 할까? 총학생회랑 같이 할까? 비정규직교수노조랑 할까? 내 스승인데……. 어쨌거나 다시는 이 학교에서는 강의를 못 하겠지. 여기 이렇게 폐기 대장에 적힌 것들이 수혈용으로 나갔어. 알고 있었어? 그거 다 감염된 혈액들이야. 다들 정신 나갔어.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이걸로 수혈받은 환자들한테 문제 생기면 어떡할 거야!
「고발자들」에서
기본정보
ISBN | 9791188343737 |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08월 30일 | ||
쪽수 | 336쪽 | ||
크기 |
124 * 189
* 26
mm
/ 45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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