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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시화
박소란 저자(글)
아침달 · 2024년 07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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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짙은 어둠에서도 실루엣을 감지하는
시인 박소란의 첫 산문집
생활 속에서 탐구하는 테마와 시를 나란히 두고, 시적인 순간과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침달의 에세이 시리즈 〈일상시화〉에서 박소란 시인의 『빌딩과 시』가 출간되었다. 2009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세상과 타인을 섬세히 돌보는 언어로 생의 감각을 담아내는 시를 쓰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이번 책은 시 쓰기에 전념했던 시인의 첫 산문집으로,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걸어 다니면서 마주한 풍경과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와 상실이 남긴 흔적 등 바쁜 현대의 삶에 치여 놓쳤던 이야기를 도회적인 시선으로 담아냈다.
『빌딩과 시』에서 시인은 부러 더 나은 미래를 찾진 않는다. 애써 희망을 말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숱한 빌딩 속을 드나드는 이들의 뒷모습만은 기억하려고 한다.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깜깜한 빌딩 속 홀로 불을 켜고 과거의 상흔을 적을 뿐이다. 열세 편의 산문과 사이사이 담긴 여섯 편의 시가 책에 담겨 도시 속 빌딩에서 만난 사람과 사랑이 섬세한 관조적 시선과 시인 특유의 감수성 풍부한 언어로 그려졌다.

이 책의 총서 (5)

작가정보

저자(글) 박소란

박소란

2009년 《문학수첩》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있다』, 『수옥』을 냈다. 신동엽문학상, 내일의한국작가상, 노작문학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 외곽 한 작은 빌딩에 살고 있다.

목차

  • 들어가며, 빌딩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르골
    ‘나’라는 옥상
    천사의 얼굴
    비상, 계단
    비상구
    있다, 없다, 없다
    손님
    초대
    어떤 방
    장마
    유리에게
    사랑하는 악몽
    암순응
    후경
    붕괴, 그리고
    more games, more
    사다리를 타고
    안과 밖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 감히 쓸 수 없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빌딩에 대해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속에 든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그런 걸 쓰고 싶어서 더 빨리, 더 오래 걸었던 것 같다.
-p.9 「들어가며, 빌딩으로」 부분


빌딩이라는 크고 단단한 상자 속에 든 작고 무른 사람. 이따금 상자 밖을 어슬렁거리는 사람. 상자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사람. 결국 사람.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p.19 「사람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부분


찢어진 마음으로 마음의 찢어진 자리를 친친 동여매주는
사람이 있었다
-p.22 시 「오르골」 부분


옥상은 참 묘한 공간이다. 옥상을 생각하면 맨 먼저 나는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헤아리는 사람이 떠오른다. 저 깊은 아래를 응시하는 사람의 젖은 눈망울 같은 것.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막한 마음 같은 것. 그와 동시에 한숨을 삼키며 다시금 가파른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사람의 구부정한 등도 떠오른다. 그의 묵묵한 뒷모습.
-p.28 「‘나’라는 옥상」 부분


나는 떨어지고 싶었다. 모든 걸 던지고 싶었다. 단번에 짓이겨지고 싶었다. 거짓말, 거짓말, 다 거짓말이다. 나는 날고 싶었다. 살고 싶었다.
-p.39 「비상, 계단」 부분


앓는 이가 병원에 누워 있을 적 내 꿈은 하나였다.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 작은 방에 함께 누워 새 이불을 깔고 낮잠을 자는 것. 그러나 그것은 꿈, 끝내 이루지 못했지.
-p.70 「어떤 방」 부분


그가 복도 끝 작은 점으로 사라지고 나면 다시 짙은 어둠만이 남는다. 나는 미동도 없이 서 있다. 아, 지금은 꿈속이고, 꿈에서도 꿈이라는 걸 아는 그런 꿈속이다. 나는 혼자 있다. 주위는 어둡고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복도를 다시 천천히 걷고 있다.

-p.91 「사랑하는 악몽」 부분


나는 아직 답을 알지 못한다. 지금 내게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는 쓰기란 그저 신기루에 가까운 듯 보인다. 아무리 애를 써도 쓰는 나는 언제든 무너지고 또 무너뜨릴 수 있다. 진심은 전해지지 않을뿐더러 너무 쉽게 훼손되고 붕괴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하지만, 쓰기란 얼마나 위험천만한가. 위태롭기 짝이 없는가. 그리고 그만큼 얼마나 막강한가. 쓰는 나는 얼마나 잔혹한가. 나날이 체감하고 있다.

-p.122 「붕괴, 그리고」 부분

시를 쓰며 본다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
가까웠다가 멀었다가 가까웠다가

-p.128 시 「사다리를 타고」 부분

출판사 서평

발자국이 스치는 도시에서
내일의 과거로 걷는 산책자가 쓴 빌딩과 시

2009년 《문학수첩》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있다』, 최근 출간한 『수옥』을 내며 15년 동안 성실히 시대와 타인의 아픔을 독보적인 감수성으로 노래한 시인 박소란의 첫 산문집 『빌딩과 시』가 〈일상시화〉 시리즈에서 출간되었다.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도시적 서정성을 지닌 시인은 이번 책을 통해 ‘빌딩’이라는 테마를 경유하여 도시에서 경험한 일화들과 시 쓰기에 대한 태도를 솔직한 언어로 말한다.
도시에는 가만한 모습으로 빌딩들이 높이 솟구쳐 있다. 빌딩이라는 세계는 내 몸을 품기에 지나치게 크기도 하다. 우리는 빌딩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머무는’ 존재이므로 빌딩과의 관계는 언제나 임시적이고 빌딩 자체도 늘 견고하진 않지만, 나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공간이므로 삶 전체가 투영되는 상징이 된다.

“문 저편에서 펼쳐지고 있는 온기가 선연하다. 그 온기 속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기척, 그런 걸 듣는 일이 좋다.”(「사람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부분)

빌딩과 빌딩 사이를 가르는 밤의 거리에서 시인이 가진 유일한 취미는 ‘걷는 일’이다. 시인 박소란은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다. 화창한 낮엔 천변이나 인근 대학 운동장을 걷는다. 밤이 오면 집집이 밝힌 빛들 속에서 온기를 두른 사람들이 모여 내는 기척들이 더욱 잘 들린다. 시인은 밤에 산책하면서 어둠과 고요 속 가장 작은 빛과 소리를 감지하는 자이다. 시인은 밤에 더 잘 본다. 시인에게 걷는 일은 늘 무언가 보고 들으려는 의지가 된다. “사람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시인 박소란은 항상 사람의 편에 서서 사람을 본다.

불가능한 사랑의 재건축
삶 속에서 무수히 변주되는 사각형 상자

얼핏 보면 닮은 구석이 별로 없어 보이는 빌딩과 시는 밤마다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시인의 부지런한 발걸음을 통해 공통된 의미를 새롭게 획득한다. 예컨대 빌딩과 시 모두 ‘사람’이 드나드는 장소라는 점이나 언어를 담는 시의 형질은 어떤 시절로 기록되어 ‘사각형’ 백지에 담긴다는 점이 그렇다.

시인에게 빌딩은 비단 임대 사무실이 많은 그런 건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이 살고, 살았다면 어디든 빌딩이 될 수 있다. 작은 빌라인 집, 유리, 가지런히 놓인 봉안묘와 봉안담, 테트리스, 추억과 이별, 그리고 시까지. 직조된 사각형 안에 사람이 머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빌딩이 된다.

“나는 결코 그 상자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알 수 없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거기 있다는 것.”(「어떤 방」 부분)

죽음을 담은 빌딩 속은 산 자가 볼 수 없다. 시인조차 끝내 볼 수 없는 것은 한 사람의 죽음이다. 하지만 오히려 시인은 죽음으로 들어찬 빌딩들이 나란한 용미리에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오고 싶다고 말한다. 그곳에서도 나들이를 나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고 아이들이 뛰논다. 이렇듯 시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흐릿하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다시 빌딩 가득한 도시로 돌아와 삶 속에서 무수히 변주되는 사각형을 보며 걷는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려는 불가능한 사랑을 사각형 마음으로 재건축한다.

“내 마음은 그가 여전히 거기 있다고 일러주었다. 바로 그 크고 단단한 세계에. 사랑한 모습 그대로. 굳건히 선 빌딩, 그 하나만이 우리가 나누었을 시간의 증거가 되어주었다.”(「후경」 부분)

시인 박소란이 바라보는 대상은 늘 뒷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이 걸음이 느리다거나 일부러 뒤에 있기를 자처해서가 아니다. 시인은 사람과 끝까지 함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후경(後景)을 사랑한다. 눈앞에 놓인 세계보다 더 멀리, 끝내 문을 열지 못하더라도 이편에 서서 저편에 있는 또 다른 빌딩을 드나들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존재들을 기억한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시리즈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89467548
발행(출시)일자 2024년 07월 04일
쪽수 140쪽
크기
112 * 180 * 13 mm / 263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일상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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