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가는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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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총서 (12)
작가정보

경주 관문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200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습니다.
2013년 동시 「대장이 바뀌었다」 외 11편으로 푸른문학상을 받고, 같은 해 《어린이와 문학》에 동시가 추천 완료되었습니다.
동시집에 『화성에 놀러 와』, 『콩알 밤이 스물세 개』, 『강아지 학교 필독서』, 『우산이 뛴다』가 있고 제15회 서덕출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현재 울산남구문화예술창작촌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
너구리에게 옥수수밭을 선물하자
새우깡 맛을 알아버린 너구리가 있습니다.
이 일은 어느 가을밤에 일어났습니다.
“아나, 니도 무라.” 종이 접시에 수북이 새우깡을 부어주는 술꾼 아저씨. 갈매기가 ‘깡’ 어쩌며 자랑하던 맛. 흙냄새 풀풀 나는 산밭의 고구마 감자와는 차원이 다른 맛. 너구리 굴이의 인생을 깡그리 바꿔놓은 새우깡.
‘깡! 깡! 깡! 깡! 깡이 있어야 이 강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그러면서 찾아 나선 새우깡을 강가 편의점에서 발견했던 것이지요. 마음씨 좋은 알바 삼촌, 굴이에게 새우깡만 줬겠어요.
고구마깡도 주고 오징어땅콩도 주고 꼬깔콘, 맛동산까지 과자란 과자는 다 줬을 거예요.
빗물을 줄줄 흘리며 나타난 늦가을 어느 추운 밤엔 전자레인지에서 갓 꺼낸 뜨끈한 어묵탕을 건넸을 거예요. 고마운 삼촌에게 굴이는 샛강에서 잡은 붕어며 잉어를 안겼을 테지요.
코로나19와 싸우느라 마음을 못 썼더니 굴이 행방이 묘연합니다. 전단지라도 붙여야 할까 봅니다. 남생이 영감님도 꿩 할멈도 본 지 오래라고 합니다. 고향 서사마을에 갔을까요. 손수건만큼 남은 야산 어딘가에서 눈물범벅인 채 떨고 있는 건 아닐까요.
굴아, 샛강에 징검다리가 새로 놓였어.
개양귀비밭 너머에 감자밭 생긴 것 모르지?
하지 때맞춰 감자 캘 건데 그전에 와서 먼저 맛봐.
하루살이들은 여전히 천사의 날개로 몰려들고 있어.
왜가리 촌장님은 목이 더 길어졌고
강둑은 첫 풀을 벴어.
삼호대숲은 백로 시계를 걸었어.
뻐꾸기와 소쩍새도 왔어.
얼른 와.
개정판 서문이 굴이 걱정으로 빼곡합니다. 감자꽃이 굴이를 데려올 거라 믿습니다. 정원사에게 부탁해 굴이 최애 간식 옥수수도 심어달라고 해야겠습니다.
국가정원에 옥수수밭이라니. 우리 굴이는 이렇게 말하겠죠.
“깡 키우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옥수수가 최고야!”
2024년 늦봄
남 은 우
목차
- 시인의 말 4
1부 청화탕 하얀 고양이
어느 꿀벌의 SOS 12
갈색 개가 살던 방 14
청화탕 하얀 고양이 16
공룡을 돌아오게 하는 방법 18
플라밍고 21
기차와 접시꽃 22
우리 동네 시계 24
출렁다리 26
반달 28
두꺼비와 영화를 30
2부 두더지에게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말
너구리 강변에 자취시키기 34
너구리 흔들기 36
편의점 가는 너구리 38
풀밭 시계점 40
너구리, 그래 42
도깨비바늘 44
맹꽁 아저씨가 울면 46
달팽이 가출기 48
두더지에게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말 50
토끼가 택시를 탄 까닭 52
3부 별똥별
버스를 탄 들꽃 56
코끼리거북이 58
냄새가 바뀐 동네 60
왜가리 촌장님 62
꿩 할머니 64
소금쟁이 66
백일홍과 고추잠자리와 말뚝 68
납량축제 70
미루나무 도서관 72
별똥별 74
가로등 76
4부 고래사진관
일요일의 까마귀 80
하루살이 82
제비 엄마 아빠는 집을 지을 수 있을까 84
고래사진관 86
편지 88
크리스마스 선물 90
감염 92
두더지 손톱 94
긴팔원숭이 96
시인의 글 99
책 속으로
시인의 글
1평 우주에서 보내는 봄
동시집 『편의점 가는 너구리』가 휴가를 주었다. 지금 나는 고래의 고향 장생포에 체류 중이다. 90일간의 장기 휴가. 오롯이 시인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장생포야” 부르는 것만으로 울컥거리는 친구가 생겼다. 포성은 잠들었지만 바다 뒤란 생태체험관에 갇힌 고래를 어쩔 것인가. 고래들이 이른 잠을 청하고 있을 저녁 여섯 시. 그 곁에서 서성이고 있을 날들이 선하다.
내가 머무는 집 ‘아트스테이’는 여인숙을 개조한 2층짜리 건물이다. 프라하성의 황금소로를 연상케 하는 좁은 복도와 복도를 마주하고 늘어선 쪽방들이 정겨운 집이다. 황금소로에 ‘No.22 카프카의 방’이 있다면 이곳 장생포 고래로 139번길에는 ‘No.19 남은우 창작실’이 있다. 19번방 창문은 부지런해서 뭐든 들여놓는다. 쥐똥나무, 까불대는 새 꽁지, 바다, 배, 지붕들, 골목, 언덕, 벚꽃, 공장, 거인굴뚝, 오늘은 노란색 등대까지 들여 마음을 흔든다.
19번방과 덜렁이 나는 금세 친해졌다. ‘1평의 우주’라며 격찬을 마지않는 시인에게 줄 수 있는 건 다 준다. 늦은 밤까지 머물러 있으면 자고 가라며 엉덩이를 잡아당긴다. 그럼 못 이기는 척 의자 곁에 몸을 뉘는데 아늑하다. 노트북과 트렁크, 포트주전자, 옷 두어 벌, 책 서너 권이 전부인 살림은 조촐하지만 넉넉하다. 여기에 뱃고동과 봄비까지 보태면 1평 우주가 꽉 차고도 남는다.
마당가 탱자나무에 움이 트고 있다. 빗방울 수만큼 동글동글 꽃을 말고 있는 가시들이 기특해서 쓰다듬어 주는 게 일이다. 꽃인가 싶으면 잎이고 잎인가 싶으면 꽃인 탱자나무. 동백나무가 울타리에 숨어서 꽃을 던지는 반면, 탱자나무는 굽은 노구에도 꽃을 피우며 가시나무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가시를 뒤집어쓴 탱자나무를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것을 보니 안심이다. 동시를 쓸 수 있을까. 문학은 무슨 문학.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트렁크를 쌌다. 그런데 오고 있다. 가시가 말을, 가시의 말을 받아 시로 도근도근 받아 적는 시간이.
어느새 체류 한 달째를 맞고 있다. 꽃분, 두리, 도담, 장수, 고래 가족과도 상봉을 했다. 보면 눈물만 난다고, 발걸음을 끊은 사이 막둥이 돌고래 ‘장수’가 태어나 귀염을 독차지하고 있다. 동시가 오면 동시를 쓰고, 소설도 읽고, 산문도 쓰고 있다.
‘쑥고래’ 잡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월요일마다 청소 봉사를 하러 오는 장생포 아주머니 소개로 쑥밭을 알게 되었다. 스테이 온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장생포가 숨겨놓은 쑥밭. 소주병, 검정비닐, 도깨비바늘 같은 것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지만 운동화 코로 쓱 차버리면 된다. ‘에덴의 쑥밭’이란 작명을 쑥밭도 꽤나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히브리 민족의 만나처럼 한 줌씩 한 줌씩 쑥을 뜯어 나르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봄비가 다녀간 어느 아침나절, 작심하고 쑥을 뜯었다. 두 시간 반을 투자했으니 쑥 양이 상당했다. 고래를 생각하며 눈을 내고 동그랗게 숨구멍도 파주고 하트모양 꼬리도 만들어 주었다. 그랬더니 쑥고래 헤엄치는 소리로 주방이 왁자했다. 기념 촬영을 한 후, 옆구리 쪽을 뚝 떼 쑥국을 끓였다. 남은 부위들은 봉지 봉지 담아 태화강으로 향했다. 장생포와 쑥고래 이야긴 이쯤에서 각설하고 『편의점 가는 너구리』 동시들을 만나본다.
“저부터요!”
「버스를 탄 들꽃」 목소리가 제일 크다. 들꽃학습원만 남기고 아파트 괴물에 잡아먹히는 울주군 범서면 서사마을 들꽃들을 의인화한 동시다. 정족산 무제치늪 등지에서 들꽃학습원으로 이주해온 들꽃들. 2001년 봄부터 음악과 화학비료에 적응하며 뿌리내린 들꽃들이 노인이 되어서야 들꽃학습원을 떠난다는 서사다. 학습원에 갇힌 들꽃들이 안쓰러워 참 많이도 드나들었다. 들꽃 중 ‘얼레지’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다. 심청이 치마 닮은 꽃이라며 틈만 나면 보러 다녔다. 소녀 심청만 할 때 와서 머리칼이 하얗게 센 들꽃들이 무제치늪 정거장에 무사히 내렸기를 바란다.
사람들 다 떠나간 서사마을
들꽃학습원만 살아남아
버스를 기다린다
운전수 아저씨
오줌보 시원하게 비우고
맨손체조 하고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타워크레인 세며 시간 죽일 때
기사 양반, 무제치늪까지 태워줄 수 있소?
운전수 아저씨
들꽃 할머니 보퉁이 받아
얼른
버스에 태운다
- 「버스를 탄 들꽃」 전문
코로나19가 태화강 너구리들을 어찌했을까. 국가정원 산책로나 강둑 수로 입구에서 마주치던 너구리들을 통 보지 못했다. 피부병을 심하게 앓던 아기 너구리 형제, 가을밤 술꾼들에게 다가가 새우깡 동냥을 하던 너구리도 모습을 감췄다. 사라진 때를 더듬어 보니 서사마을 산들이 깎이고 덤프트럭 가장행렬이 줄을 잇던 2년 전쯤인 것 같다. 1만 2천여 세대를 위해 쫓겨난 짐승들이 얼마일지. 그린벨트 대지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려야 했던 나무들의 수난을 강변 너구리들도 들었을 터였다.
이번 동시집은 『우산이 뛴다』(상상, 2021)의 연장이라고 봐도 되겠다. 미처 싣지 못한 태화강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너구리 강변에 자취시키기」, 「너구리, 그래」, 「편의점 가는 너구리」, 「너구리 흔들기」 네 편의 너구리 동시들 배경도 태화강이다. 말이 좋아 너구리를 강변에 자취시키지, 터전인 산을 버려야 하는 약자 짐승들을 대표해 너구리를 등장시킨 것이다. 그나마 배만은 곯지 않는 태화강이 지척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대낮도 모르고 태화강국가정원을 어슬렁거리는 너구리. 볼 때마다 집에 가자고 해서 모습을 감춘 걸까.
굴아, 우리 집에 안 갈래?
외갓집에서
꿀고구마 한 트럭이나 보냈거든
벽난로 할아범
굴이 너랑 나랑 굴뚝 만들려고
고구마 엄청 구워 바칠 걸
엄마는 당장 네 조끼 뜨실 거고
아빠는 장작 안아 나르는 게 일일 거야
멍구?
간식 귀신 걔는
고구마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니
방귀만 좀 피해 다니면 돼
가자, 우리 집에
굴뚝 놀이
너랑 꼭 해보고 싶단 말이야
- 「너구리 흔들기」 전문
태화강 생태에서 지구 환경으로 시선을 확장한 동시도 있다. 기상이변 등으로 인하여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며 동시인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느 꿀벌의 SOS」를 쓸 무렵,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발발했다. 우크라이나 지도를 뒤지며 지명을 찾아내고, 밀밭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영상을 반복 시청하며 동시를 썼다. 꿀벌은 곧 우크라이나 난민이기도 하다.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벌” “꿀을 따지 못하는/꿀벌로 숨어 지내는 게 부끄럽습니다”라는 꿀벌 난민의 고백이 생생하다.
저는 우크라이나 이츠냐 마을의 꿀벌입니다
미사일이 언제 날아들지 몰라
밀밭에 숨어 꼼짝도 못하고 있습니다
노랑 줄무늬 일복을 군복으로 입고
전쟁터로 나간 친구가 한둘이 아닙니다
꽃가루통은 오래 전에 비었고
한 톨의 꽃가루가 절실합니다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벌
꿀을 따지 못하는
꿀벌로 숨어 지내는 게 부끄럽습니다
밀밭이 불탈지 모릅니다
폭격으로부터 부디 마을을 지켜주세요
- 「어느 꿀벌의 SOS」 전문
동시집 4부에는 고래를 주인공으로 한 동시가 두 편 있다. 「고래사진관」과 「편지-귀신고래에게」이다. 주전바다가 배경인 「편지-귀신고래에게」는 작년 추석 무렵에 썼다. 동시와 담쌓은 사람처럼 살 때, 주전바다가 다가왔다. 파도가 굴린 몽돌이 언덕을 이룬 주전바다. 몽돌 언덕에 서둘러 책상을 마련했다. 유난히 눈에 띄던 노란색 등대를 연필 삼아 귀신고래에게 편지를 썼다. 반구대암각화에서 무수히 만난 귀신고래. 장생포고래박물관을 장식한 모형귀신고래. 따개비를 꽃처럼 피워놓고 웃고 있던 눈, 그 귀신고래의 고향이 장생포가 아니라 주전바다일 거라는 소신으로 써 내려간 동시다.
등대가
연필로 보이는데
귀신고래 네 생각이 더 나잖아
그래서 부탁했지
등대야, 너를 연필로 잠시 써도 되겠니
갈매기 방해가 좀 있긴 했지만
무사히 연필을 뽑아 백사장 몽돌 책상에 앉았어
귀신고래야!
네가 보고 싶어 주전바다에 왔어
몽돌이 언덕을 이룬 것 모르지
무슨 일인지 파도는 전처럼 철썩이지 않아
따개비와는 많이 친해졌니?
고것들이 못 살게 굴면
단추로 팔아버린다고 협박해 봐
아님, 아예 고것들을 따서 단추장사로 나서든지
수평선이 물들고 있어
소식 더 전하고 싶은데
연필을 돌려줘야 해서 가 봐야 해
그럼 사냥꾼한테서 몸 잘 지키고 추석 잘 보내
- 따개비 점퍼를입은 귀신고래
네가 몹시 보고 싶은 구월 어느 월요일에
저녁이 연필을 지우기 전에 후딱 꽂아줬어
그랬더니 귤색 등불 하나가 반짝 켜지잖아
등대가 피운 꽃 보고 꼭 와
- 「편지-귀신고래에게」 전문
고래 때문에 장생포에 왔다면 믿을까. 포경은 금지되었지만 고래 가족 수족관살이는 끝날 기미가 없다. 수족관 창문만 뛰어넘으면 바다다. 밥을 위한 점핑만 있을 뿐, 뛰어넘기엔 너무 막막한 벽과 장생포바다마저 고래들을 버린 듯해서 짠하기만 하다.
60일 장생포 체류를 마치면 태화강국가정원 지킴이로 돌아간다. 지금은 장생포 고래 가족 생각만 하련다. 그렇다 하여 너구리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피부병은 괜찮은지, 수로 입구에 엎드린 노숙 생활은 청산했는지, 서사마을 아파트공사장을 떠돌고 있는 건 아닌지, 떠나있어도 떠나있는 게 아니다.
“걱정 마요, 시인 아줌마. 우리는 잘 있어요.”
태화강 배스낚시대회에 출전한다는 소식이 올 것 같다. 초록 양동이 노란 양동이를 든 너구리들로 강둑이 시끌시끌하면 좋겠다. 너구리 ‘깡’은 알바 삼촌의 바통을 받아 편의점 점원이 됐을 수도. 고래 가족만 바다로 돌아가면 더 바랄 게 없겠다.
2024년 봄 장생포에서
남 은 우
기본정보
ISBN | 9791192898148 |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05월 31일 | ||
쪽수 | 112쪽 | ||
크기 |
151 * 216
* 9
mm
/ 331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푸른고래 시인총서
|
상세정보
제품안전인증 |
KC마크는 이 제품이 공통 안전기준에 적합하였음을 의미합니다. |
---|---|
크기/중량 | 151 * 216 * 9 mm / 331 g |
제조자 (수입자) | 푸른고래 |
A/S책임자&연락처 | 정보준비중 |
제조일자 | 2024.05.31 | ||
---|---|---|---|
색상 | 이미지참고 | ||
재질 | 정보준비중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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