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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

이병석 시집
모아드림 기획시선 152
이병석 저자(글)
모아드림 · 2024년 0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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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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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드림 기획시선 152권. 태권도 명인으로 최고 급수인 9단에 이른 무도인(武道人) 이병석 시인이 첫 시집이다.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는 4부로 나누어져 총 71편의 가편을 수록했다. 시집을 펼치면 그의 세계관이나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사뭇 서정적이면서도 선량하다는 후감(後感)을 얻을 수 있다. 망설일 것 없이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나 『논어』에서 이른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을 떠올리게 된다.

생각에 사악함이 없고, 시가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해준다는 뜻이다. 이병석 시인은 그와 같이 순후한 마음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았고, 그 가운데서 삶이 형성하는 경이로움 시로 포착했다. 이 미려(美麗)에 대한 발견과 외경(畏敬)의 인식은 그의 시 세계를 일관하는 정제된 시 의식이다. 그리고 그 양자가 연합하여 결이 고운 합주(合奏)를 들려주는 것이 그의 시다.

이 책의 총서 (51)

작가정보

저자(글) 이병석

크리스천 사회복지학 박사
전북 고창 출생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거주
경북일보 주최, 청송객주문학대전, 시부문 입상
재외동포청 주최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2023)
Ronald Reagan 훈장 2004 & 2005 by NRCC
Congressional Medal of Distinction by NRCC
미국 대통령 자원봉사 평생공로상(2021)
전 City of Greenville NC 시의회 산하 인권위원회
의장 겸 위원(2012-2017)
미공화당 노스케롤라이나주 상공회의 명예의장
East Carolina University, Chowan University,
Midwest University 겸임교수
세계태권도연맹 품새 기술위원, 국기원 명예자문위원
현재 Pitt County, NC 카운티 의회 인권위원회 위원
(초대 의장 2021-현)
태권도 9단이자 태권도 품새 국제심판
태권도 도장 운영

작가의 말

나는 여행 중이다.
그동안의 일상에서 벗어나 꿈으로의 여행이다.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란 게 이런 것인가 보다.
37년 동안 같은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행복하지 않았냐고?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도 행복하다.
하지만 이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다르다.
이 여행을 통하여 일상을 벗어나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동안 못 보았던 일상의 아름다움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와 떠난 여행에서
하늘이 나에게 허락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었고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났고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시가 대신 말해주어 고맙다.
아마도 나의 이 여행은 오래 계속될 것이다.
이제 정원의 꽃들을 돌보러 가야겠다.
- 2024년 4월, 이병석

목차

  • 시인의 말

    1부 나에게 사랑은
    나에게 사랑은 13
    오늘 아침 웃음의 천사가 다녀갔나요? 14
    달 15
    님바라기 16
    그리움 1 17
    세 번째 사랑 18
    편지 20
    너의 빈자리 22
    그리움 2 23
    사랑하는 당신 24
    해거름 바닷가 26
    송사리의 노래 27
    클리띠오나 28
    두 줄 기타 30
    포우와 버지니아 31
    Can I hug you 32
    바람의 이야기 34

    2부 당신 떠나가신 아침에
    별이다 37
    은하수 38
    만남 40
    동굴 41
    마른 나뭇잎 42
    딱따구리 44
    기다림 45
    해리 46
    작별 인사 48
    장독대 50
    당신 떠나가신 아침에 52
    이별 53
    대나무꽃 55
    할미꽃 56
    하늘 호수로 여행 58
    전갈의 시지프스 60
    애가 63

    3부 동백꽃 피었다 진 이유는
    새해 소망 67
    새해 첫날 68
    봄으로 달려온 수레바퀴 69
    해질녘 바닷가 풍경 71
    여름이 왔다 73
    구름, 바람, 햇살 74
    산기슭에 봄 나비 노랑매미꽃 76
    비 맞으며 가는 가을 78
    천년화 79
    봄보다 먼저 온 꽃 80
    찬바람을 입은 봄이 온다 81
    풀잎의 눈물 82
    국화꽃 편지 84
    나팔꽃 85
    동백꽃 피었다 진 이유는 86
    동백꽃 피는 곳 88
    민들레 89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 90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91

    4부 씨앗 되게 하소서
    도전 95
    일 안하고 놀기 96
    자화상 98
    What a wonderful World 100
    석아 102
    산다는 것은 104
    버려진 택배 상자 106
    닭보다 오리 108
    나 무엇을 보고 있나? 110
    새가 높이 나는 이유는 아래를 더 잘 보기 위함입니다 112
    이랴 워워 114
    씨앗 되게 하소서 116
    반올림 118
    내 가는 길 보이지 않아도 120
    동주의 별 121
    태권도 122
    소녀 유관순 124
    판문점 경계석 126

    해설 / 삶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의 합주_김종회 130

책 속으로

바람입니다.
바람이 찾아와 문을 붙들고 속삭입니다.
별들이 노래를 부르며
문밖에 있으니 들어오게 해 달라고 속삭입니다.

바람입니다.
바람이 창문을 흔들며 서서 이야기합니다.
큰 두 눈 더 크게 뜨고
목청을 가다듬은 부엉이의 목소리로
문을 열어달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집니다.
떨어지는 별을 향해
바람이 서둘러 달려갑니다.
별이 영원히 기억에서 사라질세라
어두운 데 떨어져 빛을 잃어버릴세라
바람이 산 넘어 저쪽으로 갔습니다.

별을 쫓아간 바람은 오질 않고
온 밤 고요로 가득하고
하늘은 별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어두움 가득한 방 안
노부부의 긴 밤이 계속됩니다.
- 「바람의 이야기」 전문, 본문 32-33쪽

대나무가 꽃을 피웠습니다.
울 엄마 꽃가마 타고 올 때
시작된 대나무의 전설이
뒤뜰 가득 채우고
숲을 이루더니
아흔다섯 울 엄마 하늘행 꽃마차 타고 떠나니
대나무가 꽃을 피웠습니다.
- 「대나무꽃」 전문, 본문 55쪽

나는 구름이고 싶다.
몽글몽글 피어 올라 그늘을 주기도 하고
메마른곳에 단비를 주는 구름이고 싶다.
구름은
비를 내려 숲을 더 푸르게 하고
계곡에 물을 흘러가게 하여
온갖 생물이 즐거이 살 수 있는 곳 만들어주는
촉촉한 눈을 가졌다.

나는 바람이고 싶다.
들판을 달리고 산을 오르는 바람이고 싶다.
바람은 들판의 곡식을 익게 하고
바람은 산에게 계절마다 새로운 옷을 입혀주는
귀한 손을 가졌다.

나는 햇살이고 싶다.
꽃밭을 환하게 만들고 하늘을 가득 채우는 햇살이고 싶다.
햇살은 꽃밭의 꽃을 더 화사하게 하며
하늘을 깊게 만들어 주어 많은 꿈들로 채워주는
따스한 가슴을 가졌다.

오늘 나는 누군가에게 구름이고, 바람이고, 햇살이고 싶다.
촉촉한 눈으로 너와 함께 울며 위로하고
손을 내밀어 힘든 너를 붙잡아 주는
그리고 따스한 가슴으로 너를 안아줄 수 있는 그러한 존재이고 싶다.
- 「구름, 바람, 햇살」 전문, 본문 74-75쪽

바람 불고 비 내린 들판을 보라
비바람 속에서 꽃들은 피고
나무는 흔들림 속에서 더 꼿꼿하나니
구름 가고 비 멎으면 나비와 새들이 난다.

뜨거운 태양열과
모래바람 부는 사막에도
생명이 존재하듯
너의 삶 속에도 지친 네 목젖을 적셔줄 오아시스는 있다.
일어나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물을 주어보라
나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알 것이다.

세상이 너에게 손가락질할지라도
눈꺼풀 닫을 만한 용기와 힘 있으면
당당할 수 있고
해거름에 지친 발걸음이 너와 함께할지라도
너를 반겨주고 안아줄 동반자 하나 있다면
네 인생 살 만한 것이다.
-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 전문, 본문 90쪽

출판사 서평

삶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의 합주
- 이병석 시집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


태권도 명인으로 최고 급수인 9단에 이른 무도인(武道人) 이병석 시인이 첫 시집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를 도서출판 모아드림 기획시선 152번으로 출간하였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살고 있는 이병석 시인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국(異國)땅에 태권도의 지경(地境)을 확장하면서, 그동안 〈East Carolina University〉와 〈Chowan University〉 그리고 〈Midwest University〉의 겸임교수를 지냈다. 태권도 9단의 경륜에 걸맞게 세계태권도연맹 기술위원, 국기원 명예 자문위원, 태권도 국제심판 등의 경력이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지방의 시 의회 인권위원장, 공화당 노스캐롤라이나주 상공회의 명예 의장 등의 전·현직을 감당하면서 여러 훈장·메달과 미국 대통령 자원봉사 평생공로상의 수상자이기도 하다. 기실 한국인으로서 미국 사회의 중심에서 활동하면서, 이와 같은 성과를 이루고 온당한 평가를 받기는 지난(至難)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보다도 더 놀랍고 감동적인 사실은 그가 오랫동안 시를 써 왔고 더불어 그 시가 모국에서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2023년 《경북일보》 주최 〈청송객주문학대전〉에서 시 부문 입상, 그리고 재외동포청 주최 〈재외동포문학상〉에서 시 부문 대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가 인천광역시 지하철 센트럴파크 역의 특별전시장에 1년간 전시되는 좋은 소식이 있기도 했다.

미려(美麗)에 대한 발견과 외경(畏敬)
시를 지육(智育)과 덕육(德育)의 합일이라고 한다면, 태권도는 덕육과 체육(體育)의 합일이다. 머리를 써서 언어와 운율을 조합하는 일이나, 손발을 움직여 합당한 무력(武力)을 생성하는 일은, 모두 인간의 가치와 위의(威儀)를 높이는 동일한 목표를 가졌다. 국제적 명성을 가진 태권도 지도자가 한 권의 시집을 상재(上梓)하는 것이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태권도는 우리나라에서 창안되고 발전된 무술로, 이른바 대한민국의 국기(國技)다. 1950년대에 정립되어 이제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며, 그 규정 및 경기 진행에 한국어를 사용한다. 이병석 명인은 바로 그 국제화의 현장에 있다.
이번에 펴낸 그의 첫 시집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는 4부로 나누어져 총 71편의 가편을 수록했다. 시집을 펼치면 그의 세계관이나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사뭇 서정적이면서도 선량하다는 후감(後感)을 얻을 수 있다. 망설일 것 없이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나 『논어』에서 이른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을 떠올리게 된다. 생각에 사악함이 없고, 시가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해준다는 뜻이다. 이병석 시인은 그와 같이 순후한 마음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았고, 그 가운데서 삶이 형성하는 경이로움 시로 포착했다. 이 미려(美麗)에 대한 발견과 외경(畏敬)의 인식은 그의 시 세계를 일관하는 정제된 시 의식이다. 그리고 그 양자가 연합하여 결이 고운 합주(合奏)를 들려주는 것이 그의 시다.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이병석 시인은 순후한 마음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 가운데서 삶이 형성하는 경이로움을 시로 포착했다. 이 미려(美麗)에 대한 발견과 외경(畏敬)의 인식은 그의 시 세계를 일관하는 정제된 시 의식이다. 그리고 그 양자가 연합하여 결이 고운 합주(合奏)를 들려주는 것이 그의 시다. 쉽고 편안하게 읽히지만, 시의 내면에 숨어 있는 함의(含意)는 결코 가볍지 않다”고 평했다.

사랑의 눈으로 부른 맑은 노래
이 시집의 1부에 수록된 시들은 모두 연가, 곧 사랑 노래다. 편안하고 쉬운 언어로 노래하지만, 그 언어의 행간에 담긴 의미는 중후하다. 마치 성경의 아가서에서 솔로몬이 쓴 연시(戀詩)처럼. 여러 시의 언사와 어투를 살펴보면, 그의 사랑은 여일하게 자신의 아내를 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심사는 미상불 두 사람 모두에게 하늘의 축복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말한다면, 이는 시가 가진 다층적 의미를 간과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시인은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을 보고도 명상한다. 그것들이 모여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이루기 때문에. 아내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인하여 이웃을,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탄력을 얻을 수 있기에 단선적인 사랑에 그치지 않는다.

바닷가 왕국
천사들마저도 질투하게 사랑한
포우와 버지니아는
바다 향이 올라오는
볼티모어의 한 언덕에 누워
한 줌으로 흙으로 함께 하며
가끔씩 기억되어
찾아와 불러주는 시인의 노래
애너벨 리에 잠을 자고 있다

시와 시인은 가고
그들의 사랑마저
떠나고 없어도
그들을 기억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그 언덕에 올라
바다 바람을 노래 부르며
사라진 왕국의 이야기를 한다
애너벨 리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 「포우와 버지니아」 전문

이 시는 미국의 자연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드거 앨런 포와 그가 사별(死別)한 어린 아내 버지니아 글렘의 이야기를 담은 시 「애너벨 리」와 오버랩하여 읽을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이 사별일까. 시인은 지금 자신의 삶과 사랑에 감사하며, 그 감사가 극명(克明)한 까닭으로 이와 같이 애절한 시심(詩心)에까지 발걸음의 보폭을 넓힐 수 있었을 것이다. 항차 시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러한 마음의 쓰임새는 상찬(賞讚)할 만하다.

자연 친화로부터 사모곡까지
시집의 2부에서는 먼저 1부에 이어 별, 은하수, 마른 나뭇잎, 동굴, 딱따구리 등의 제재(題材)를 동원하면서 맑고 따뜻한 자연 친화의 사유(思惟)를 보여준다. 그 가운데 어린 시절 ‘꿈에 보이던 교정’의 기다림이 있고, 좀 더 확장하면 ‘바다소리 바람소리 교회의 종소리 어울어져 들리던 곳’에 남아 있는 ‘해리’의 안부도 있다. 시라는 날개를 달고 한달음에 시인은 옛 추억의 장소에 이르렀다. 이처럼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시적 상상력의 자장(磁場)은 마침내 이제 세상을 멀리 떠난 부모의 기억을 호출한다.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그 별리(別離)의 아픔이 더욱 애잔하고 절실한 것은,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깊었던 까닭에서다. 오죽하면 그러한 절박함에 대한 비유를 ‘바하 칼리포르니아 전갈’에게서 가져왔을까.

하늘이 내려와 나무 위에 앉고
숲에 머물렀다
나무들 사이로
길이 열리고
개울이 흐른다
하늘이 흐른다
숲의 가장자리에는
깊은 눈망울을 가진 연못이 있고
그 눈에 하늘을 담았다
하늘이 내려와 거기에 담겼다

구름은 숲에서 나와 나무를 오르고
하늘에 피었다
지는 해를 등에 얹고
붉은 꽃을 피웠다
- 「만남」 전문

인용된 시는 자연과의 친애(親愛)를 넘어, 이제는 그 관계성의 종국(終局)에 놓인 무심(無心)의 경지를 지향하고 있다. 얼핏 보면 도가(道家)의 자연사상을 해명하는 듯하나, 궁극에서는 밝은 눈으로 포착하는 건실한 관점을 잃지 않았다. 하늘이 숲에 머물고, 나무들 사이로 길이 열리고, 또 개울이 흐르는 풍경의 상상화 한 폭을 그리는 시인이 여기에 있다. 시인은 숲 가장자리의 연못에 하늘이 내려와 담겼다고 말한다. 이백의 『산중문답』이나 지난 세기 청록파의 시편들에서 볼 수 있는, 청명한 자연의 숨결을 뒤따라간 행보(行步)다. 거기에 또 있다. 황혼의 구름을 두고 ‘지는 해를 등에 얹고 붉은 꽃을 피웠다’라고 썼다. ‘지는 해’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바탕으로 ‘붉은 꽃’을 관찰하는 시적 방정식은, 삶의 현실에 발을 두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발화(發話)하는 시인의 태도를 말한다.

계절과 꽃 그리고 순정한 시심
시집의 3부에 실린 시들은 한결같이 사시사철의 계절을 묘사의 대상으로 하고, 또 그 계절의 얼굴이 되는 꽃에 시적 의미를 부가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한 해의 서두를 여는 ‘새해’의 시, 철 따라 형용이 다른 계절의 시, 일찍이 괴테가 하늘에는 별이요 땅에는 꽃이라고 노래한 그 꽃의 시들은, 이병석에 이르러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의 다른 이름들이 된다. 어느 시인이 변화하는 계절의 묘미를 노래하지 않겠는가. 또 어느 꽃인들 그 자태가 소중하고 뜻깊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시인의 시에서 만나는 그 계기나 경물(景物)들은, 시인의 내면이 명경처럼 맑고 순전하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감각하게 한다.
「구름, 바람, 햇살」에서는 이 시인이 계절의 외형에 해당하는 구름, 바람, 햇살의 세 가지 소재로 자신의 시적 소망을 나타낸다. 그가 구름이고 싶은 것은, 온갖 생물들이 즐거이 살 수 있게 하는 ‘촉촉한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가 바람이고 싶은 것은, 들판과 산을 축복하는 ‘귀한 손’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가 햇살이고 싶은 것은, 꽃밭을 화사하게 하고 하늘을 꿈으로 채우는 ‘따뜻한 가슴’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 시인이야말로 계절의 변환을 통해 호혜평등(互惠平等)과 만민경애(萬民敬愛) 사상의 시현(示現)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그러한 존재이고 싶다’는 시적 염원은, 그야말로 정당한 시인의 자리에 선 이의 발상이다. 시는 그 언어가 곱기만 해서 값진 것이 아니다.

자기성찰과 신앙고백의 시들
동양 문화권에서 널리 알려진 증자(曾子)의 일일삼성(一日三省)은 사람에 대한 충실, 벗에 대한 신뢰, 학습에 대한 열심을 반성하는 것으로, 『논어』의 〈학이(學而)〉 편에 나온다. 이 시집의 4부에서 볼 수 있는, 시를 통한 자기성찰의 유형은 여러 가지 모습을 보인다. 일상적인 일들, 자화상, 옛일의 회상, 삶의 근본적 의미 등이 여기서 시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 한편으로는 시인이 신실한 신앙인인 터이므로, 그 성찰의 현현(顯現)이 자기 신앙의 주인인 신의 뜻을 묵상하는 지점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생애를 공여한 국기(國伎) 태권도에의 존중, 우리 겨레의 이름으로 길이 반추해야 할 류관순과 윤동주를 향한 경애(敬愛), 남북 분단 현장의 판문점 경계석에 대한 염려 등 공동체적 반성론도 그의 시 세계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랴 워워」 도 참 재미있는 시다. ‘이랴’는 소를 몰 때 앞으로 가게 하는 말이며, ‘워워’는 그 소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말이다. 시인은 이 두 명령어를 사용하여 ‘나의 인생을 조율해 주는’ 누군가를 상정하고 있다. 두말할 것 없이 그의 절대자인 신이다. 이랴를 통하여 시적 자아의 멍에와 걸음걸음이 ‘다른 이의 가야 할 길’이 되기를 기구(祈求)한다. 더불어 워워를 통하여 ‘세상을 향한 부정적 마음’을, 자만과 욕심을 멈추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누구나 자신에게 일어나기를 원하는 일이 있고, 자기가 가담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이 시에 나타난 기도처럼 선량한 반성을 신의 안전(眼前)에 제출한다면, 그는 한 인간으로서도 또 신앙인으로서도 보기 드문 수범(垂範) 사례다

비가 내린 후
무지개가 보이지 않아도
눈이 내려
가야할 길을 잃어버렸어도
내 길을 만들며 가리라
- 「내 가는 길 보이지 않아도」 부분

위 시는 신의 눈길 아래에서, 또 신이 만든 세상의 모든 자연 현상 앞에서, 겸손한 자아의 원망(願望)을 피력해 보인 작품이다. ‘내 가는 길 보이지 않아도’라는 제목은, 그러므로 그렇게 자신을 낮추는 명료한 신호다. 바람과 별의 격려, 친구와 ‘그대’가 보내주는 믿음, 비와 눈이 앞을 막는 역경의 극복 등 이 시에서 열거된 항목들은 ‘내 길’을 추동(推動)하는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문제는 가는 길이 보이지 않고,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가야 할 길을 잃어버렸어도, ‘내 길을 만들며 가리라’는 시인의 확고한 결단에 있고 그 마음에 있다. 그러기에 불가(佛家)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고, 성경에서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적 의지는 어쩌면 무도의 초발심(初發心)과 소통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시인의 정체성과 시에 거는 꿈
왜 이병석은 이렇게 지속적으로 시를 써 왔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무인(武人)의 길과 다소 상거(相距)가 있어 보이는 이 길을 가게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해서는, 왜 시인이 시를 쓰는가에 대한 창작심리학적 논리를 환기하는 것이 유용할 것 같다. 시인은 자기 내부에 있는 표현 욕구를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시작(詩作)을 한다. 또는 그 시대와 사회에 대한 심리적 책임감, 곧 기록 욕구를 감당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병석의 시 창작 또한 이와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유의할 것은, 그의 길이 시와는 좀 다른 모양이나 빛깔을 가졌더라도 그에게 시를 배태(胚胎)하는 예민한 감성과 이를 시가 되도록 표현하는 문장의 기량이 넉넉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와 같은 창작자의 심정을 실제로 시를 통해 풀어 말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시다. 일찍이 1963년에 행한 마르틴루터 킹 목사의 연설 제목을 차용하여, 시인은 시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보였다. 세상을 노래할 언어를 찾는 꿈,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보는 꿈, 사랑을 아름다운 말로 승화시키는 꿈, 이 모든 것을 글로 만들어내는 꿈이 그에게 있다고 하지 않는가. 짐작컨대 그가 문예나 문장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학습한 시간이 있어 보이지 않으나, 그는 이미 시적 문장을 운용하는 방법과 그 요체에 익숙한 것 같다. 이 또한 그에게 주어진 하늘의 선물이다. 아마도 그의 이 역정(歷程)은 앞으로도 계속될 터이고, 우리는 그 경과를 지켜볼 참이다.
〈시인의 말〉에서 그는 자신이 ‘여행 중’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그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꿈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3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태권도인으로 살아 그 명성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바 되었으니, ‘행복했다’고 자평(自評)한다. 그런데 이 여행, 시를 쓰며 떠나는 이 여행은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이 그의 토로다. 우리는 그의 여행이 더 행복하게, 더 성과 있게 앞길을 열어가게 되리라 믿는다. 그의 품성을 믿는 만큼 그의 시도 믿는다.
한 개인으로서는 성취하기 어려운 무력의 도정(道程)을 이룩한 이병석 시인이 첫시집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 상재를 통해 국제무대에서도 빛나는 K-POEM의 꽃을 피우길 소망한다.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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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56641850
발행(출시)일자 2024년 06월 13일
쪽수 174쪽
크기
130 * 220 mm
총권수 1권
시리즈명
모아드림 기획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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