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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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는 어떻게 썼을까?
작가의 유일한 창작 노트!
오에가 치밀하게 분석한 창작 방법론!
- 오에 겐자부로
이 책은 중견작가로서 본격적으로 ‘쓰는 행위’를 논한 창작론이다. 오에는 자신의 내부 분석부터 시점·문체·시간·고쳐쓰기 등의 문제까지 실제로 소설을 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얻은 것들을 일종의 임상 보고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렇듯 일반적인 소설 작법서와는 차별화된 오에만의 독특한 창작론은 새롭게 소설을 쓰려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소설을 다양한 방식으로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힌트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총서 (6)
작가정보

大江健三郞
소설가. 1935년 에히메현愛媛県 출생. 1959년 도쿄대 문학부 불문학과 졸업.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 2005년 황석영 소설가와 광복 60주년 기념 대담. 2023년 타계.
소설 : 『외치는 소리』 『개인적인 체험』 『만엔 원년의 풋볼』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 『하마에게 물리다』 『M/T와 숲의 이상한 이야기』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만년 양식집』 등.
평론 :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 『읽는 행위』 『쓰는 행위』 『소설의 전략』 『소설의 방법』 등.
작가의 말
이 책이 단지 나 혼자만을 위한 작업에 머무르지 않고, 이제부터 새롭게 소설을 쓰는 사람들을 위해서, 또는 소설을 비평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유효하기를 바란다.
목차
- 일러두기
오에 컬렉션을 발간하며
1. 작가가 소설을 쓰려 한다
작가의 시간을 살다
텅 빈 원고지를 마주하고
쓰기도 전에 요약은 미친 짓이다
작중 인물은 작가 자신인가?
작가 (1) : 달걀 안에서 달걀을 삶으려는 요리사
숲속 골짜기 소년
작가 (2) : 사자를 상대화하는 들쥐
사르트르와 시점의 문제
작가 (3) : 말의 연금술사
언어의 더듬이 운동
독자의 출현
2. 말과 문체, 눈과 관조
소설 쓰기를 방해하는 괴물들
진짜 문체와 가짜 문체
앨리스의 고양이 묘사하기
현실의 시간과 소설의 시간
언어를 통한 암중모색
가짜 작가는 쉽게 쓴다
세상을 관찰하는 ‘눈’의 도입
소설은 ‘관조’를 타인에게 전달 가능하다
3. 표현의 물질화와 표현된 인간의 자립
시, 에세이 그리고 소설
어둠 속 광맥을 찾아 헤매는 상상력
이미지의 물질화 (1)
이미지의 물질화 (2)
소설 속 인물의 창조와 자립
다양성과 상상력
4. 작가에게 이의를 제기하다
이건 내가 원하던 소설이 아니야
자기 부정만이 감동과 변혁으로 이어진다
상상력의 힘
이의 제기 : 왜 섹스와 폭력에 매달리는가
fuck과 오망코
성聖의 고수와 성性의 고수
이의 제기에 당당히 맞서라
5. 표현되는 말의 창세기
작가의 육체=의식
기억해 주십시오 나는 이렇게 써 왔습니다
연극배우의 독설
말이 사람과 세상을 만든다
언어의 상상력
‘주문이 많은’ 언어
독자가 소설 속에서 작가를 마주하다
6. 지움으로써 쓰다
내 원고가 혐오스럽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 원고를 고치다
팔을 잘라 내는 마음으로 지워라
작중 인물의 이력서 만들기
이력서에서 이력을 지우는 도박
추가보다 삭제가 원칙이다
마지막 작업과 새로운 시작
작가의 말
해설
연보
추천사
-
오에 선생의 치밀하게 고심하는 모습에 글쓰기 지망생들은 기가 눌리겠지만, 최후의 순간에는 반드시 위로받을 것이다.
-
소설을 읽으려는 사람, 또 쓰려는 사람은 프로든 아마추어든 이 책을 읽어라! 나는 이 책을 보며 소설가로서 인생을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
오에 겐자부로는 ‘종이’와 ‘펜’으로 ‘소설’을 쓴 최후의 대작가였다. 『쓰는 행위』는 ‘쓰기’와 ‘지우기’를 둘러싼 ‘육체=의식’의 경험으로서 집필의 현장을 사고한다.
-
오에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라는 내용이 주목받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라는 형식, 즉 표현 방식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 작가이다.
책 속으로
내포된 이미지는 대부분 작가의 현실 생활 속의 관찰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물리적인 카메라의 눈이 순간 포착하는 이미 고정된 관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 내부로 이어져 항상 살아 움직이는 관찰이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 외부에 방증이 되지는 않는다. (p. 15)
이제부터 쓰려는 소설을 요약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요약을 시도하는 것만으로 전부 손쓸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p. 18)
작중 인물이란 현실 세계의 인간 모습을 그대로 갖춘 채로, 결코 닫히지 않는 원주율처럼, 항시 도약 운동을 하고 있는 불확실·미정형의 존재여야만 한다. (p. 23)
때때로 그렇게 ‘사물’의 기괴한 확실성을 느끼는 주체가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그래서 자신이 어둠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한밤중에는 돌도, 물줄기도, 나무도, 숲조차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부터는, 결국은 마주하게 될 다음 단계의 불안과 그 해결에 대한 힌트 같은 것의 감촉을 느꼈다. (p. 31)
작가에게 있어 문체란 언제나 충분히는 의식화할 수 없는 면이 있는 법이다. 여기에 문체 문제의 핵심에 관계되는 다양한 계기가 잠재해 있다. 작가가 의식적으로 어떠한 문체를 채택하려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얻게 된 문체는 어느 지점에서인가 작가의 의식에 의한 기획을 초월하고 있다. (p. 52)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이미 작가 의식 내부에 존재하는 것의 등가물等價物(équivalent)을 문장을 통해 완성하는 그런 작업이 아니다. (p. 61)
소설을 쓰는 작업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의 뿌리에 도달하려는 시도이다. (p. 67)
문체라는 문제, 그것은 항상 새로운 ‘현재’의 문제이다. 작가 자신의 존재감이 그러하듯 문체는 작가에게 ‘지금’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p. 70)
관조야말로 다름 아닌 독자적인 시점의 설정이고, ‘눈’을 도입함으로써 가장 단적으로 작가에게 주어지는, 작가 자신을 넘어선 세계를 창조하는 열쇠이다. 나는 이 생각을 내 소설관의 근본적인 핵심으로 삼고 있다. (p. 76)
나에게 있어 습작 소설은 방금 죽인 피해자와 같았고, 나는 뒤돌아 그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거의 공포에 가까울 정도로 극도로 혐오스러웠다. (p. 84)
작가는 언어의 광물 표본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땅속 깊은 곳, 어두운 곳에 묻혀 있는 광맥 전체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p. 88)
작가가 ‘사물’의 실현에 성공한, 이미지의 물질화에 성공한 소설을 읽을 때 종종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책장을 넘긴 눈=의식에 주변 사물이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현상이다. (p. 98)
번개 같은 상상력의 섬광으로 전체를 파악하는 시와 달리, 소설의 상상력은 모래 위를 걷는 조개의 발처럼 바로 옆을 천천히 쓰다듬어 가며 조금씩 전체를 파악해 나간다. (p. 111)
작가가 실제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현재의 자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자신에 도달하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고, 그 소망 자체가 글을 쓴다는 행위를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는 의미와 다름이 없다. (p. 116)
문학적 감동이란 그것을 읽는 사람도 결국 자기 부정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자기 자신의 변혁의 위기를 향해 스스로를 앞의 어둠 속으로 내던질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p. 120)
말이 사람을 만든다. 말이 세상을 만든다. 말이 사회를 만든다. (p. 158)
독자는 ‘사물’의 존재감을 담당하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구조재로서 잘 선택된 단어를 접할 때, 매우 관념적인 단어를 접할 때처럼 그 단어를 의식의 표층에 미끄러지듯이 스쳐 지나가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p. 171)
모호한 한 줄은 반드시 정확한 한 줄로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쳐 쓰기를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정확한 한 줄을 뽑아낼 수 없다면 차라리 그 한 줄을 삭제하는 편이 더 낫다. 그 편이 모호한 한 줄보다 더욱 ‘표현적’이다. (p. 197)
너는 오랜 세월 동안 작업을 했고,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종이 위에 쏟아부었다, 너의 존재 자체가 결국 이 정도인 것이다, 육신의 네가 이 현실 세계에서 그런 존재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이 소설 역시 그런 존재로 낯선 타인에게 제시하라. (p. 199)
누구나 인생에서 소설이 될 법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두 개는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직업 작가로서 꾸준히 써 나가려면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방법론과 소설이란 무엇인가 하는 인식론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한다. 아니 완벽하게 갖추어지지 않더라도 그러한 의식을 갖고 써야 한다고 오에는 몸소 보여 주고 있다. (p. 237)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郎, 나카무라 후미노리中村文則 등 현대 일본 소설계를 주름잡는 인기 소설가들이 오에를 ‘소설가의 소설가’, ‘소설가의 스승’으로 칭송한다. 오에의 열광적인 팬임을 자임하던 아사부키 마리코朝吹真理子는 첫 만남에서 실신해 버릴 정도였다. (p. 238)
한 자도 쓰지 않는 날은 없다. (p. 240)
기본정보
ISBN | 9791192533155 |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06월 28일 | ||
쪽수 | 248쪽 | ||
크기 |
128 * 188
* 15
mm
/ 364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오에 컬렉션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書く行為 (岩波書店, 2023)/大江健三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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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무엇을 썼는지가 아니라 쓰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글쓰기는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에서 2023년 발행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의< 쓰는 행위(書く行為)>라는 책 중, 제2부 '문학노트(文学ノート)'를 번역한 것이다. 그는 평생 치열하게 소설이라는 형식을 연구하고 그 방법을 다음 세대의 읽고 쓰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했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되어있다. 1장에서는 소설을 쓰려 할 때 직면하는 막연하고 불안한 상황에 대해, 2장은 문체의 선택과 시점, 3장에서는 이미지의 물질화, 낯설게 하기에 대해, 4장은 자기부정, 5장은 언어, 6장은 퇴고에 관한 이야기다.
<쓰는 행위>에서는 시와 에세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오직 소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오에가 보는 '쓰는 행위'란 작가와 소설의 주인공이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속의 인물과 탯줄을 끊어야 소설화가 시작된다. 소설 속의 인간을 자립시키는 것이다.
'쓰는 행위'는 직접 써야 한다. 어떤 사람이 옆에서 그렇게 금방 찢어 버릴 거면, 쓰기 전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알아보면 좋지 않냐고 묻는다. 요즘은 원고를 노트북으로 쓰지만 옛날에는 원고지에 썼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러긴 쉽지 않다고. 글을 쓰기 전에는 잘못된 한 줄이라도 실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좀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오에는 생각 속에서 존재하는 문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본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는 없다. 작가는 색칠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미궁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마리 괴물은 문체(文體)와 눈(眼, 의식)이다.
오에는 작가가 새로운 작품마다 새로운 문체를 고른다는 것을 알맹이가 텅 빈 흰소리라고 했다. 여기서 흰소리는 자랑하는 말, 허풍 떠는 말, 버릇없게 하는 말이다. 신소리는 신박한 소리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이다. 흰소리 들으면 화나고 신소리 들으면 신난다. 오에는 문체 감각에 실체가 있느냐? 있다면 어떤 유의 것이냐고 반문한다. 소설에 문체라는 게 있나?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말로 하는 것과 존댓말로 하는 것, 또는 구어체나 문어체를 말하나?
나는 가끔 나갈 때 개미를 밟는 일이 없도록 발밑을 의식하고 다닌다. 오에는 이때 개미는 물질화되어 '사물(개미)'의 실체를 갖추고 우리의 눈=의식 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원래 개미는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의식함으로써 '사물(개미)'이 되었다. 살아 있는 개미를 사물이라고 표현하긴 좀 그래서 괄호로 개미라고 넣었다. 개미라고 이해했더니 좀 이해가 된다. 이것이 작가가 '사물(개미)'의 실현에 성공한, 이미지의 물질화에 성공한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책장을 넘긴 눈에 주변 사물이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현상이다.
우리는 소설 속 사물의 물질화를 통해 '사물(개미)'의 존재감을 물질화하고, 다시 '사물(개미)'로써 발견한다. 이때 현실의 개미와 언어로 구현된 개미가 동일한 평면에서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작가가 개미를 인식하고 써야 독자도 개미를 인식한다는 말이다. 개미라는 단어는 있지만 내가 비로소 발밑의 개미를 인식하고 밟지 않으려고 했을 때처럼.
오에가 생각하는 작가관을 보자. 작가는 쓰는 사람인 스스로에게 '너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 그리고 모호한 한 줄은 반드시 정확한 한 줄로 바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쳐쓰기를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정확한 한 줄을 뽑아낼 수 없다면 차라리 그 한 줄을 삭제하는 편이 더 낫다. 그 편이 모호한 한 줄보다 더욱 표현적이다. 쓰는 사람은 쓰는 손보다 지우는 손을 격려해야 한다.
이 책은 2023년 8월에 돌아가신 오에 겐자부로를 추모하며 발간된 오에 컬렉션 5권 중 세 번째 책이다. 가볍고 일본 문고본(文庫本)보다 조금 큰 정도여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도 참 좋다. 일반적인 소설 작법서와 차별화된 오에만의 독특한 창작론은 소설을 쓰려는 사람과 소설을 다양한 방식으로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어려운 책을 읽어냈을 때의 희열감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쓰는 행위'는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적 철학과 창작 과정을 다루고 있어요. 이 책에서 오에는 소설을 쓰는 과정이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사회적 현실을 바라보고 글에 녹여내는 예술 활동임을 밝힙니다. 오에는 작가가 글에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기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즉,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다시 읽고, 명확하지 않거나 어색한 표현을 수정합니다. 이를 통해 글은 더욱 명확하고 강력해진다고 오에는 주장합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철사 공예 재료에 불과한 언어'로 우리의 내면의 의미를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이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난독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는 글이 철사 공예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오에 겐자부로의 '쓰는 행위'는 작가가 '철사 공예'를 하는 것처럼 글쓰기를 통해 직면하는 도전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오에는 글쓰기 과정에서 시점, 문체, 시간, 고쳐쓰기 등의 문제를 다루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결 방법을 제시합니다. 특히 전후 일본 사회의 변화와 그로 인한 개인의 정체성 위기를 주제로, 소설을 통해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의 작품은 그의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문제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는 글쓰기가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 인간의 존재와 사회적 현실을 탐구하고 반영하는 중요한 행위라고 강조합니다. '쓰는 행위'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글쓰기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최고의 창작 작업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책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고, 그의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이 틀림없습니다.
책도 가볍고, 번역하실 때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곳곳에 있어요. 이제까지 읽었던 많은 책이 별개로 느껴질 정도로 글이 정갈하고, 논리 정연하며, 냉철한 사고와 적절한 예를 들어 좋은 글을 쓰는 이야기를 엮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의 수준이 높아지는 착각을 가지게 되네요. 진열만 해도 좋으니, 꼭 사서 밑줄을 그으며 읽으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런데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게 우리 민족이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오에 겐자부로라고 하면 단순하게 반전 사상이나 평화주의를 즐겨 주제로 삼은 작가로만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꾼이라고 할 만큼 꽤나 다작을 한 분이며, 또 그 주제의식도 우리 생각보다는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이룹니다. 지금 이 오에 컬렉션에서도 볼 수 있는 대로, 선생은 심지어 소설 이론, 작법, 평론 면에서도 뛰어난 식견을 드러낼 뿐 아니라, 자신만의 독창적인 논의를 전개하기도 합니다. 과연 동경대를 졸업한 엘리트 답습니다. 책 표지에 나온 그의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그 표정과 풍모에 지혜와 통찰력, 인간적 품위가 빛납니다. 사람의 가치를 외모로만 평가할 일은 물론 아니지만, 오에 선생의 경우 그 내면의 공력이 쌓이고 쌓여 저런 겉모습으로 자연스레 표출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p37을 보면 오에 선생은 장폴 사르트르가 모리아크에 대해 전개한 비판에 대해 언급합니다. 자, 이 논쟁은 그 시대적 배경에 대해 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오에 겐자부로보다 대략 십 년 정도 연상입니다.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사르트르보다 이십 년 먼저 태어났고, 안정된 프랑스 제3공화국 체제 하에서 이미 보수 성향의 독자들에게 확고한 지지를 얻었으며, 어떤 이들은 그를 두고 "가톨릭 작가"라고 한 마디로 후려치기도 합니다. 사르트르는 일찍부터 부르주아를 두고 "더러운 자식들"이라 불렀을 만큼 프랑스의 중산계급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감을 표현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르트르의 눈에, 구시대 잔재 같은 모리아크의 작품이나 문학관이 어떻게 보였을지야 불을 보듯 뻔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리아크와 사르트르의 당시 논쟁은 사르트르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전(全) 프랑스 교수 자격 시험을 수석으로 패스한 불세출의 천재, 우리로 치면 율곡 이이 같은 사람을, 양순하고 온화한 모리아크가 무슨 수로 말빨로 이기겠습니까.
그러나 오에 선생은 사르트르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주장을 제기했음을 지적하는 겁니다. 그래서 "새삼 사르트르의 주장을 반복 인용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선생 자신이, 그 디테일에 다해 동의를 하지 못하겠는데 무슨 반복까지나 할 의욕이 들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사르트르의 주장에 대해 뭘 반박까지나 할 생각은 또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저 워딩이 그렇게 나왔을 뿐, 사르트르의 본심은(의도는) 그 지점까지는 가지 않았으리라 선해(善解)를 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아무리 시대를 뒤흔든 천재의 생각이라 해도 오류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이를 꼬투리잡아 비판하기보다는 건전한 상식의 범주 안에서 어떤 수정, 혹은 해석의 범주에 맡기는 게 좋지 않냐고 제안하는 선생의 인격적 원숙미와 날카로운 지성을 동시에 엿볼 수 있습니다. 문학의 본질은 자유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보다 중요한 게 인간 정신의 자유인데 고작 소설의 시점(視點. perspective)을 논하면서 리고리즘(rigorism) 따위가 왜 작동하냐는 취지 아니겠습니까. 문학 안에서는 신(神)도 상대적인 신에 불과하니 그 역시 자유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이런 오에 선생의 문학관으로부터 그의 평화주의, 인도주의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연역된다는 점도 우리는 재확인합니다.
우리가 그 존재 자체를 동요시킬 만한 짜릿한 체험을 하고서도, 이를 차마 말로 표현할 길 없어 답답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p42에서 선생은 (스스로가 언어의 마술사이면서도) 그 체험의 온전함, 완결성이 언어로 변용되는 중 훼손될 것을 우려하여, 애써 표현하지 않고 그 느낌만을 (매우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 간직하기만 했다고도 고백합니다. 이런 대목을 보면 누가 뭐래도 그는 여느 유미주의자 못지 않은 예술가입니다. 또 차마 말로 진리의 순일성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삼감의 자세에서 마치 석가모니와 제자 마하가섭 사이에 오간 심심상인, 불립문자, 염화시중의 경지도 느껴집니다.
톨스토이나 위고처럼 웅대한 양심과 도덕을 논하는 문학에서 아마 문체의 아름다움은 부차적 과제로 여겨질 것 같지만 실제로 저들 거장들은 문체마저도 웬만한 문학가들을 압도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오에 선생은 특히 p70 이하에서 "문체라는 문제"에 대해 자세히 논합니다. 여기서 오에는 문체(文體. style)란 언제나 현재의 문제이며, 문학 안에서 생성되는 세계의 핍진성은 말할 것도 없고, 문학 작품을 읽는 독자의 현재성까지 달성한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읽어 보면 선생은 정말로 진보적인 분입니다. 어떻게 독자의 현재성까지 담보한다는 걸까요? 여기에서도 자유가 등장합니다. 작품이 언제 쓰였건, 이를 "현재" 읽는 독자는 그 상상력을 바로 지금에 이르러 해방하기 때문이니 말입니다. 명쾌하고도 논리적 타당성까지 갖춘 언명입니다.
오에 선생은 p139에서 심지어 성(性)의 문제까지 논급합니다. 선생은, 인간이 성에 대해 갖게 되는 심리의 이면에 자기 부정의 동기가 깔렸다고 추정합니다. 선생은 이 대목에서 주로 성적 일탈을 예거하며, 한평생 규범을 지키며 잘 살아온 사람이 느닷 모두로부터 지탄 받는 성범죄를 저질러 그야말로 한순간에 동료들로부터 지탄받고 사회로부터 퇴장하니 이것이 자기부정 심리 아니겠냐고 말합니다. 애초에 교미는 자기 후손을 남기려는 목적인데, 본 개체의 사멸을 전제로 삼지 않는다면 애초에 후손도 필요없는 법이죠.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 나이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복학 후에도 틈틈히 소설을 썼는데 IMF가 발목을 잡아버렸다.
휴학을 하고, 당장 돈을 벌어야만 했기 때문에 소설 창작은 말 그대로 남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세월은 너무도 빨리 흐르고 흘러 이제는 소설 창작에 대한 열정도 자신감도 휘발되어 빛바랜 사진처럼 퇴색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정식으로 등단해야지만 소설가 즉, 작가가 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웹소설의 발달로 컴퓨터만 칠 수 있으면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너무 재미만을 추구하여 함량미달의 문장과 표현력, 허술한 구성, 조사의 부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소설이 많아졌다.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성인인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작법이 고스란히 담긴 문학 노트 <쓰는 행위>는 한 편의 소설, 아니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고심해야 하는지가 담겨 있다.
마치 팔만대장경에 불경을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새긴 장인의 심정으로 표현에 적절한 한 단어 한 단어를 선택해 새기듯 써내려간 작가의 고뇌가 장편 소설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러>의 창작 과정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실로 대가란 재능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음을, 그만큼의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이 있어야 함을 알려주는 듯 하다.
오에 겐자부로의 <쓰는 행위>는 작가를 꿈꾸거나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 그리고 현직 작가들도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것도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만한 글 쓰기의 바이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선뜻 응하지 않던 오에 겐자부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개하는
문학노트이자 소설작법서
소설작법이라고 썼지만
- 작가로서 잊지 말아야 할 마인드,
- 문체나 시점같은 스킬을 관통하는 그 무엇,
- 놓치지 말고 가져가야할 작가의 정체성
- 소설을 쓰기 위해 작법기술을 어떻게 쓸 것인가?
- 작가의 상상력과 글쓰기 기술과 소신과
허구의 사건과 인물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시킬 것인가?
-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독자에게 닿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예비작가, 글쓰는 취미를 키우고 싶은 분들,
소설을 더 두텁게 읽고 이해하고 싶은 분들께 강추합니다!
< 소설을 쓰는 행위 >
속박에 침묵할 수도 있지만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자신의 시대를 살 수도 있다는 말,
시대에 책무성을 가지고
작가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을
‘’사자 주위를 민첩하게 뛰는 들쥐‘에
비유하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모른 채 살아도 되지만,
그 시대를 상대화하면서 위험한 풍자가 가득한
소설로 시대와 사람들을 일깨울 수도 있다.'
소설을 쓰는 행위를 어떻게 보는지
오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고,
이후에 문체나 시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왜 이런 말을 하는가?'
좀 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어요.
글 쓰는 동안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살았고,
그 결과 무엇을 얻었는지 묻는 것이
소설 쓰기의 마지막 단계라는 말도
글쓰는 사람 또는 독자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요.
< 소설속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 >
- 자신의 말을 통해 인물을 자립시킨 작가는
자신 또한 소설을 쓰기 전의 자신으로부터
분명히 자립하여 한 발짝 더 나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 이 부분도 굉장히 와닿았습니다.
"소설 속 인간에게
다양성을 부여하는 것이
곧 그를 자립시키는 것이며,
그의 자립이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인간인 나 자신을 한 걸음씩,
보다 새로운 작가,
보다 새로운 인간으로
밀어 올리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 시점, 독자와의 연결 >
- 자신의 존재의 뿌리를 향해
침잠하는 내면으로 향하는 벡터와
구체적인 사물을 응시하는
바깥으로 향하는 벡터
이 두 가지 의식의 작용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
- 작가의 창작의 시간과 독자의
수용의 시간과의 일치를 경험하는 것
작가의 대표작 "만 엔 원년의 풋볼"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미쓰사부로"는
태어날 때부터 외모가 좋지 않고,
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어요.
뇌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의 아버지이자 알코올 중독 상태의 아내를 두고 있고요.
집안에서나 바깥에서나 영향력이 없는 사람,
하지만 그 누구보다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에 휘말려 봤기에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허세 없이, 약간은 냉소적으로 해석합니다.
주변의 조롱이나 얕은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 인물로 그려져요.
왜 하찮아 보이는 존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 초라함, 부끄러움을 끌어안고
직시하고, 상기시키는 역할
- 다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게 가진 자의
착각일 수 있다는 걸 일깨워 주는 역할
- 기억의 왜곡을 짚어주는 존재
- 약자의 눈에 힘 있는 자의 위선이
어떻게 보이는지 비춰주는 거울
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 문체, 표현방식 >
- 기교로서의 문체는 알맹이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언어를 통한
암중모색이라는 행위 자체로 인해
작가의 존재감의 질, 자각되는 강도가
계속 갱신되고 있으므로
자신의 문체를 통제하고
때에 따라 알맞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은
진정한 "자각"이 아니라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해요.
- 인간행동의 존재감의 깊이에 대한 궤적이
문장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문체다.
- 창작자에겐 어떤 말이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가?
→ "사물"의 견고함을 갖춘 이미지
- "지움"으로써 문장의 표현력을
돋보이게 한다.
글 쓰는 기술자로서 그럴듯해 보이기 위한 문체,
내 생각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문체가 아니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
소설 속 인물의 내면과 소설 속 배경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확한 매개체로서의 문체,
작가가 글쓰는 시점의 ‘현재’가
독자가 글을 읽는 시점에 잘 닿기 위해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
작가로서 표현에 대한 과신과
집착을 버리려는 태도에 대해 말해요.
"쓰는" 행위는
- 이전의 나와 다른 내가 되기 위한 과정
-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상대화하여
직시하게 만드는 역할,
- 작가의 의도가 독자에게 잘 전달되기 위해
적절한 시점과 표현방식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대상
- 각종 공모전을 준비하는 예비 작가
- 소설을 보다 깊이 있게 읽고 싶은 독자
- 픽션과 논픽션 중간에 있는 작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고민하는 독자
- 나만의 문체가 없어서 고민 중인 예비 작가
- 본인의 글쓰기 스킬에 자부심이 있지만
2%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
- 오에 겐자부로 작품을 더 이해하고 싶은 오에 덕후
사실, 소설의 전략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커서인지 분명 장점이 많은 책이었지만, 실망도 했다. 이유는 작법서인 줄 알았던 나의 착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쓰는 행위는 모든 기대감을 내려놓고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소설의 전략에서 문장의 난해함으로 인해 긴장감은 두 배를 가지고서. 그런데 깊이는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같은 인물이 쓴 책이지만 번역가가 달라져서인지, 이 도서는 저자가 좀 더 쉽게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기가 훨씬 수월했다. 꼬인 문장이 적었다는 말이지 내용이 가벼워 술술 읽힌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도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여 자신의 내면과 작가의 언어와 끊임없이 교류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21세기문화원에서 출간한 오에 컬렉션 Ⅲ인 오에 겐자부로의 쓰는 행위는 총 1. 작가가 소설을 쓰려 한다, 2. 말과 문체, 눈과 관조, 3. 표현의 물질화와 표현된 인간의 자립, 4. 작가에게 이의를 제기하다, 5. 표현되는 말의 창세기, 6. 지움으로 쓰다의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소제목이 여러 개 존재한다. 매 챕터가 작가라는 길을 꿈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이나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며 자신의 글에 깊이를 더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챕터는 말과 문체에 관한 2장이었다. 예전에는 작가마다 특유의 문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존경하는 저자의 문체를 배우고 싶어 필사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생각은 좁은 시야의 생각이며 꽤 위험한 편견이라는 것을 2장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크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여러 권 읽다가 보니 묘한 차이점이 느껴졌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말과 문체 파트를 읽으면서 나름의 정의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얻게 된 문체는 어느 지점에서인가 작가의 의식에 의한 기획을 초월하고 있다. 만약 초월하는 대신 그 기획의 범주 내에 위축되어 있다면 그것은 애당초 소설을 위한 살아 있는 문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 P.52
먼저 오에는 문체에 대하여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물론 두 가지 모두 한 작품을 쓸 때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어 의아했는데 차근차근 읽으니 나름 이해가 되었다. 오에의 문장으로 표현하려면 굉장히 어려워지니 내가 이해한 것을 예시로 표현하겠다. 내가 이해한 것이 100% 맞다는 확신은 없다.) 우리가 흔히 사람의 아들(이문열)은 만연체, 칼의 노래(김훈)는 간결체를 쓰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는다. 즉, 개인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며 이것은 한 저자가 여러 소설을 쓰더라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나는 이것을 작가가 의식적으로 문체를 바꾸려고 하지만 결코 자신의 의식을 초월할 수 없어 어느새 작품에 녹아 있다고 이해했다.
"작가는 소설이라는 미궁의 입구에서 매복하고 있는 괴물 한 마리를 그 소설에서 작가 자신의 존재감의 행동법, 즉 문체를 파악함으로써 간신히 극복한다. 여기에 더하여 문체의 실체를 매번 새로 선택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전개해 나갈 때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작가 자신을 단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비약의 순간이 찾아온다."
- P.69
오에가 말하는 두 번째 문체는 한 인물이 여러 작품을 쓰더라고 같은 시간에 쓰는 것이 아닌 이상 문체가 항상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꽤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지만, 글을 쉽게 쓰며 자신의 존재감을 작품에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을 가짜 작가라고 표현하는 설명과 함께 그 작품을 쓸 때 그려지는 이미지와 주인공들의 목소리와 더불어 저자 자신의 시간까지 올려져야만 글쓴이의 존재감이 표현된다고 한다. 나는 이것을 작품을 읽을 때 독자가 소설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만들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라고 이해했다. 한 문장을 수십번씩 지우고 다시 쓰는 행위를 반복하며 가장 저자가 느끼는 감각과 상상과 텍스트가 한덩어리가 되도록 만드는 행위라고.
오에 컬렉션 다섯 작품 중 소설의 전략과 쓰는 행위를 읽었다. 쓰는 행위는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정형화된 방법론이 아닌 그 길을 가려는 후배들 가지는 고뇌에 관하여 선배가 이미 느낀 것에 깊은 고찰의 결과에 대한 안내서이다. 그것도 범접할 수 없는 선배가 자신의 새내기 시절의 미흡함까지 꺼내어서 꼭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안내서. 개인적으로 소설의 전략을 읽고 오에 컬렉션은 나의 수준으로는 아직 이해하기 힘든 책이라는 생각에 나머지 책에 대한 구매 의욕이 완벽히 사라졌다. 하지만, 오늘 쓰는 행위를 읽고 나머지 세 권도 구매할 결심을 했다.
요즘 블로그에서 한 문장을 나아가기가 어렵다는 고충을 자주 본다. 이것을 오에의 말로 하자면 쉽게 쓰는 가짜 작가가 아니라 작품 속에 자신의 시간을 얹어 스스로를 담으려고 노력이다. 즉, 고충을 느끼는 것이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한 기본적인 과정인 것이니 어쩌면 자부심을 느껴도 좋지 않을까 한다. 아마 앞으로 글이라는 것을 계속 쓴다면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21세기문화원에서 출간한 오에 겐자부로의 쓰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읽을 것이다.
#쓰는 행위 #오에겐자부로 #21세기문화원 #오에컬렉션3 #노벨문학상수상작가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은 오엔 겐자부로의 「쓰는 행위」를 논한 창작론이다.
∴ 오엔 겐자부로 컬렉션의 세 번째 『쓰는 행위』에 해당되는 책으로 기존의 컬렉션 『읽는 행위』를 통해 얻고 느낀 지식과 감동을 이번에는 쓰는 사람이 되어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해주기에 충분합니다.
이 책은 어떻게 쓰는 것인가에 대한 세세한 기교를 논하기보다는 '진정한 작가의 글쓰기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 Ι 오엔 겐자부로는 작가로서 천편일률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창작론을 고민하고 소설을 쓰는 행위에 대한 구도적 자세를 보였다고 칭하고 있습니다.
∵ 제1장 「작가가 소설을 쓰려 한다」에서는 소설의 첫 구절을 쓰려고 할 때 직면하게 되는 막연하고 불안한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그때 느끼게 되는 작가의 생각과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쓰기도 전에 요약은 미친 짓이다'와 같이 소설이 갖고 있는 형식과 형태에 대한 구속이 아닌 각기 고유의 표현방식과 창작 의도대로 소설을 시작하도록 제시합니다.
∵ 2장 「말과 문체, 눈과 관조」에서는 소설을 쓸 때 작가를 괴롭히는 방해물에 대한 이야기로 언어를 통한 '암중모색'을 통해 소설에 딱 들어맞는 문체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언어를 통한 '암중모색'의 필수 불가결로 정의하며 오롯이 작가의 의식과 육체를 통한 승화작용으로 소설을 이어나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작가는 암중모색을 한다. 언어를 통해 암중모색을 한다.
암중모색을 하는 어둡고 깊은 심연에 있는 대상이 점차 교체되고, 결국에는 언어의 더듬이가 핵심에 다다른다. 이 언어의 더듬이는 암중모색의 유일한 지원부대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작가가 암중모색하고 있는 동안, 바로 암중모색 자체에 의해서, 암중모색하는 작가 자신이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심화되기도 하는 것이다. <p.63>」
∵ 3장 「표현의 물질화와 표현된 인간의 자립」에서는 소설을 쓰면서 겪게 되는 소설가의 내면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소설 창작 방법론에 대한 열의를 이야기합니다.
오엔 겐자부로가 창안한 용어로 평소에는 의식 밖에 두고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의식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즉 사물의 존재감을 갖추고 있다는 이미지의 '물질화'에 대하여 설명하며 소설 속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또한 서술하고 있습니다.
∵ 4장 「작가에게 이의를 제기하다」 장에서는 소설가 스스로의 자기 부정에 대한 욕망에 대한 오엔 겐자부로 생각을 뒷받침하며 작가가 의지할 수 있는 척도로 자신의 쓴 글에 대한 이의 제기와 그로 인한 용기의 필요성, 즉 자기 부정의 긍정적인 시각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효과에 대해 역설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파트에서는 소설을 읽을 때의 독자가 가져야 하는 태도 중 상상력의 중요성과 문학적 감동에 이르는 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5장 「표현되는 말의 창세기」 장에서는 소설의 표현 수단인 언어에 대한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의 창조 행위의 원동력인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소설에 대한 표현 능력에 대한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소설을 쓴다면 독자에게 기쁨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이 파트에서 무한한 긍정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도 합니다.
∵ 6장 「지움으로써 쓰다」 소설 퇴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퇴고를 앞둔 시점에서 소설가 스스로 겪어야 하는 심리적 갈등과 소설의 완성본을 마주쳤을 때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며 지속적으로 원고를 수정하고 고치기를 반복하여 완성된 원고는 작가에게서 완전히 분리되고 독립적인 상태로 남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에 컬렉션 Ⅲ _ 쓰는 행위』
소설을 쓰는 방식과 소설가의 심리적 상태 및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서 근본적인 접근 방법으로 조금 더 세밀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오엔 겐자부로를 통해 배우게 되는 여러 감정의 기반으로 소설가 Ι 작가는 조금 더 나은 소설의 쓸모와 그 의미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소중한 글입니다.」
『쓰는 행위』는 오에 겐자부로 자신이 실제 소설을 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쓰기에 대해 설명한다. 스스로의 내부 분석부터 출발하여 시점, 문제, 시간, 고쳐쓰기 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이 책의 발간사를 오에 컬렉션 간행 위원회는 『쓰는 행위』라는 책이 '일종의 임상 보고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p8)고 말한다.
제1장 「작가가 소설을 쓰려 한다」는 작가라고 하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영역에 발을 내디딘' 사람이 소설을 쓰려 할 때 직면하게 되는 막연하고 불안한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오에 겐자부로가 말하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치열하게 고뇌하는 사람이다. 인류 역사 최초로 유일한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전통에 기대지도 않고 이전에 존재했던 지적 모험가들의 업적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혼자의 힘으로 소설이라는 가공의 세계에 무언가를 표현해야 한다. 제2장「말과 문체, 눈과 관조」는 소설을 쓸 때 작가를 괴롭히는 방해물, 즉 문체의 선택과 '눈'의 도입에 관한 내용이다. 오에 겐자부로에 따르면 '소설 진행을 시작할 즈음, 즉 미궁의 입구에서 흡사 괴물처럼 작가를 때려눕히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곤란은 문체의 문제이다'라고 말한다. '문체'라는 단어는 각양각색 제멋대로 쓰이고 있는 문학 용어이다. 틀에 박힌 가짜 문체와 진짜 문체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작가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딱 들어맞는 문체를 찾는 방법은 "문장을 쓰고는 파기하고, 새롭게 문장을 쓰고는 다시 한번 파기하는 시행착오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뿐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눈'이란 시점의 설정을 뜻하는 것이다. 소설을 쓸 때 작가는 자신의 글을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여 특정 시점을 선별하는 고생을 해야 한다. 제3장 「표현의 물질화와 표현된 인간의 자립」에서는 '언어의 광물 표본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땅속 깊은 곳, 어두운 곳에 묻혀 있는 광맥 전체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p89) 창작자의 고통을 말한다. 이 장에서는 '이미지의 물질화', '소설 속 인간' 등과 같은 오에 겐자부로의 독자적인 용어를 만날 수 있다. 제4장 「작가에게 이의를 제기하다」에서는 자기 부정 없이는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수 없음을 강조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의 제기를 통해 고정 관념과 편견에 맞서 싸우고 소설을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제5장「표현되는 말의 창세기」는 소설의 표현 수단인 언어를 다루고 있다. '소설의 언어는 논문이나 정보의 언어와 달리 단순히 지각에 의한 인식으로만 수용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p167) 오에 겐자부로는 소설의 언어를 '주문이 많은 요리점(미야자와 켄지의 단편 소설)'과 같다고 말한다. 독자인 우리는 소설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상상력을 풀가동하여 작가가 만든 구조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야 한다. 제6장 「지움으로써 쓰다」는 퇴고에 관한 내용이다. '방금 쓴 소설을 대폭 삭제한다는 것은 마치 자식의 팔을 도끼로 베어버리는 것과 같은 작업'(p183)이라고 말할 정도로 퇴고는 어려운 과정이다.
『쓰는 행위』는 작고 가벼운 책이지만 읽기가 쉽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광활한 우주를 탐험하는 기분이었고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물론 어느 한 분야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세계를 고작 며칠 투자해서 이해하겠다는 것은 과한 욕심이다. 나는 오에 겐자부로라는 아시아의 지성이자 일본의 대문호가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 소설가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본 것에 가깝다. 모든 작가가 오에 겐자부로처럼 치열하게 고뇌하며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또 진정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뇌하는 작가가 기울이는 노력이 언제나 성공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지도 않을 것이다. 독자인 우리가 문학 속에서 감동과 충격을 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작가들의 헌신과 노고가 있었을까. 작가가 활자로 만들어낸 세계와 사회 속에서 독자인 우리는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다. 『쓰는 행위』를 읽으면서 오에 겐자부로와 같이 구도자의 태도로 소설을 쓴 작가들을 더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한때 나에게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작가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소설에 큰 재미와 감동을 느꼈다.
이후 느린 호흡으로 그의 소설 읽기의 재미를 누린 적이 많다.
이 책도 그 기억 때문에 선택했지만 역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의 소설처럼 이 책도 가독성보다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기존에 알고 있던 글쓰기와 닮은 대목도 있고, 새로운 접근법도 보인다.
깊이 있는 읽기와 새롭게 자주 고쳐 쓰는 그의 글은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간단한 글조차 쓰는 것이 힘든 나에게 많은 반성을 요구한다.
여섯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소제목 중 하나가 ‘쓰기도 전에 요약은 미친 짓이다’이다.
쉽게 생각할 때 작가들이 흔히 하는 말인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는 표현과는 다르다.
글을 쓰는 행위와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지막 장의 ‘지움’이다.
작가와 시점에 대한 그의 글은 그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대표적인 것이 ‘사르트르와 시점의 문제’에 나오는 새롭게 이해하기 부분이다.
우리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 부분과 이어져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는 나에게도 자주 일어난다. 오독이나 나의 수준 때문에 생긴다.
이해되지 않을 때 여러 번 읽으라는 의미가 여기 있다.
문체에 대한 부분은 다시 한 번 더 읽고 싶은 부분이다.
문체는 한 작품이 끝나면 새롭게 바뀐다고 하는데 어디까지 잘못 이해했는지 궁금하다.
문장은 각 소설의 필요에 의해 조금씩 바뀔 수 있는 부분이다.
‘가짜 작가는 쉽게 쓴다’는 장을 읽으면서 이 ‘쉽게 쓴다’란 말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문장이 간결하고 읽기 쉬운 것을 말하는 것인지, 그냥 대충 글을 쓴 것을 말하는지.
‘fuck과 오망코’로 넘어가 이 단어들이 각 문화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말하는데 놀랐다.
단순한 욕으로만 생각했던 단어에 이렇게 깊은 함의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내가 읽었던 오에의 소설 중에 이런 표현들이 심한 게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뛰어난 작가이자 공부하는 작가이고 행동하는 작가가 오에 겐자부로다.
그의 소설이 결코 대중적이지는 못하지만 이 글은 문학을 새롭게 보는데 도움을 준다.
연극배우의 독설 장면 속에 풀어낸 그의 해설과 감상은 그 미묘하고 섬세한 표현 때문에 감탄했다.
마지막 장에서 다룬 ‘지움’은 ‘퇴고’의 발전형이다.
글을 쓰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이지만 다시 한 번 더 퇴고하는 것은 더 큰 노동이다.
하지만 작가라면 이런 노동을 거부하면 안 된다.
‘팔을 잘라 내는 마음으로 지워라’는 표현은 이것을 잘 드러낸다.
‘추가보다 삭제’라는 부분은 결코 쉽지 않고, 많은 노력과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오래 전 오에의 단편 번역이 판본마다 달라 놀랐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