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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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매일경제 > 2024년 6월 5주 선정
작가정보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LG애드 PR/SP 부문 근무.
현재 광고 마케팅 프로모션 회사 운영.
2020년 계간 ‘미래시학’ 시 부문 신인문학상 당선.
2020년 ‘월간 시’ 제29회 추천 시인상 수상.
2021년과 2023년에 발간된 두 권의 시집, 『꼭 온다고 했던 그날』과 『지금이 바로 문득 당신이 그리운 때』를 출간했다. 첫 번째 시집은 2021년으로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점이고 개인적으론 암이라는 병마로 고통받던 시기였다. 2023년 두 번째 시집이 나올 때도 시인의 병마는 지속되었다.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광고 회사를 꾸려가는 일은 이중의 무게가 되어 시인을 짓눌렀고, 역설적으로 시는 그 시기에 집중적으로 씌어졌다. 거의 하루에 한 편꼴로 쓰여진 시는 그의 강력한 자기 위안이자 치유 역할도 했다. 시를 쓰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고통과 직면하고, 그 결과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 과정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어떤 치료보다 강력한 치유 효과를 지녔다. 시인은 이 시기 자신의 끝을 예감하면서 쓴 절박한 시들을 계속 분출해 냈다. 비감하고 비장한 가운데 정신의 줄을 놓지 않고, 동시에 가족을 포함한 주변을 챙기려는 노력은 사투에 가까우면서 숭고하기까지 했다.
리얼리티와 인본주의, 이는 그가 펴낸 두 권의 시집과 이번의 시집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그가 쓰고자 하는 시들 또한 더 깊어지기는 할지언정 그 두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건 그것들이 그의 인생 주제이자 필사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사실 나이가 먹으면서도 경험과 지식은 쌓이지 않았다. 수만 겹의 다양한 생존 본능이 묵은 때가 되어 겨울바람을 막아 주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좋았고 옳다고 믿었을 뿐이었다. 지금도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내일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목차
- 시인의 말
1부
문득 생각나는 것들·버릴 수 없음의 시편들
7대 불가사의 / 13
긴머리 소년 1 / 14
긴머리 소년 2 / 16
긴머리 소년 3 / 18
난 봄을 보고 넌 봄을 맡고 / 20
고담 시티Gotham City / 22
너는 봄과 같고 / 23
다양한 조작 가능성 / 24
동물은 사람과 같고 때론 사람은 동물과 같다 / 26
딸에게 / 27
말달리자 / 28
명품 / 29
문득 생각나는 것들 / 30
2부
하현의 밤·부딪힘의 시편들
밥 짓기 / 35
반기지 않는, 반갑지 않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 36
불면증 1 / 38
불면증 2 / 40
사소한 몇 가지 / 42
슬픈 일 / 43
악인전 / 44
어느 아침 / 46
어려운 세상 1 / 47
어려운 세상 2 / 48
대부The Godfather / 50
이상한 일 / 52
이프if / 54
저녁 준비 / 55
조국 / 56
좌익 / 58
직관적 혹은 감각적 / 59
진술 / 60
3부
스콜squall·다가가고픔의 시편들
가끔은 원한다고 생각하는 / 65
참으로 가까운 인천시립승화원 / 66
가만히 조용히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보고 / 68
겨울 이야기 / 69
개똥철학 / 70
귀소 본능 / 72
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 / 74
다 지났다고 생각하고 어쨌든 이겨 냈다고 생각하고 / 75
달이 바뀌면 / 76
당신 / 77
불행하진 않았지만 슬펐던 그때 이야기 / 78
서울역 / 81
스콜squall / 82
오월이 오기 전에 / 83
한정식집 경복궁 / 84
현실 / 86
우체국 / 87
4부
명현瞑眩·가득함의 시편들
맑은 몸 자연치유연구원 / 91
성덕이 형 / 94
왜관읍 이기혁 1 / 96
왜관읍 이기혁 2 / 98
이상한 이상적인 뉴스 / 100
참다랑어 전문점에서의 어느 날 저녁 식사 / 102
우리들의 우상 재언이 형 / 104
4021년 극동 아시아 고고학 탐사 발표회 / 107
진료 / 110
초기 치매는 옛것만 기억한다 / 112
풍경 2020 / 114
꼰대 연대기 1 / 118
꼰대 연대기 2 / 123
명현현상瞑眩現像 / 127
해설
고통을 통과해 가는 시 / 133
책 속으로
우리들 꼰대들은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또 어떤 것들이 바뀌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더 확실하게는 아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니, 어쩌면 그냥 그 현실이 힘겨웠을지 모른다
(중략)
사실 나이가 먹으면서도 경험과 지식은 쌓이지 않았다
수만 겹의 다양한 생존 본능이 묵은 때가 되어
겨울바람을 막아 주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좋았고 옳다고 믿었을 뿐이었다
지금도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내일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꼰대 연대기 1」에서
나이가 들었음에도 별로 준비해 둔 게 없어 걱정이라 생각하고 있다
좀 더 젊을 때 많은 것을 모아 놨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와 큰일이고
자식새끼들의 미래가 더 큰일이고
마누라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거칠어지는 것 같아 내심 또 큰일이다
죽음이 하루하루 가까이 오는 듯해 큰일이지만,
특히,
이 힘들게 느껴지는 세상을
조금 더 살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정말 더 큰 일이다
-「어려운 세상 2」에서
어느 나치 부역자의 변명을 듣는다
코코 샤넬 그 욕망의 핸드백을 본다
종당엔 유태인의 승리로 끝나는
이상하지만 당연한 서사를 읽는다
그녀의 차가운 목을 두르고 있는
여우 목도리 같은 세련되고 잔인한 말을 기억한다
-「명품」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분명히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는 그를 기억하라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그를 기억하라
기억하지 못한다는 그를 기억하라
인생이 원래 그렇다는 그를 기억하라
매력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는 그를 기억하라
선한 악인은 없지만 악한 선인은 많다는 것을 꼭 기억하라
절대 두려워하지 말라
-「악인전」에서
진리는 복잡한 것에 있다고 믿는 것
진실은 항상 밝은 곳에 있다는 신념을 가진 것
어젯밤 한 움큼 입속에 털어 넣은 약이 한 시인의 고뇌와
동량(同量)일 거라는 기대를 갖는 것
삼십 년 전 헤어진 그때의 연인은 아직도 날 그리워할 거라 믿는 것
네게 기대어 울고 싶지만 이미 몸이 굳어 그리할 수 없는 것
결정적으로
너를 진심으로 따뜻하게 안아줄 수 없는 것
-「사소한 몇 가지」에서
그곳은 내 오래된 기억
내 잊지 못할 연민
이제는 박제되어 버린 꿈
그 붉은 벽돌 건물 안
닳아빠진 대리석의
그 퀴퀴한 냄새가 그립다
이제는 회한과 아쉬움이 곱게곱게 쌓여
문화재로 남은 곳
문득문득
땀에 절은 아버지의 힘겨운 노동이,
그 선견(先見)이 공명으로 퍼지는 곳
이놈아, 열심히는 서울역 지게꾼도 해
-「서울역」에서
지금은
눈이 안보이지만
더욱 밝아진 코로
이제는
냄새를 못 맡게 된
주인님을 대신해
세상 온갖 냄새를 킁킁거리고 있네요
이제 곧 봄이어요
제 눈이 되어 주어서
봄 하늘 별들을 얘기해 주세요
대신 난 봄 들쑥 향과
겨우내 고생한 냉이의 쌉쌀한 냄새에 대해 말씀 드릴게요
-「난 봄을 보고 넌 봄을 맡고」에서
따가운 가을 햇살이 든 바람
올림픽 도로변 누구도 축복하지 않는 삶
이름이 없다고 하기도 하고 이름을 모른다고 하기도 하는,
통칭으로 기타의 생명들로 불리워도 괜찮은 것들
-「반기지 않는, 반갑지 않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에서
아내는 스무 평 남짓한 식당이 다였다
아침에 환한 촛불로 출근해
저녁엔 다 녹은 촛농으로 퇴근했다
그게 다였다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죽어라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도 일했다
그게 다라 생각하고 일했다
열심히만 일했다
뭔지도 모르고
-「현실」에서
휴대폰에는 긴머리라 저장되어 있다
다들 그를 긴머리 소년이라 불렀다
곧 육십 줄에 들어서지만 아직도 청춘인
찰랑찰랑 긴 머리 중늙은이 소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도 하고
영원한 리버럴리스트라고 하기도 하고
삼손 힘의 원천 같은 그의 아이덴티티 찰랑거리는 긴 머리
-「긴머리 소년 1」에서
11월
모든 것이 떠난다는 그 겨울의 시작
삼거리 포차에는 끝물의 가을 전어가 있고
애초 그 가을 전어가 시작된 바다엔
끝 모를 포말만 시커멓게 넘치고
한 40년은 유행이 지났을 법한 노래를
흥얼거리는 성진호 선장과
산 것과 죽은 것을 가르는
억센 손의 30년 과부 생선 장수 홍천 댁
바람 심한 그 항구에서 가을 전어는 시작되었고
이젠 그 누구도 때늦은 가을 전어를 찾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겐 있을 뿐
눈이 아리도록 푸른 파도,
아니 푸른 바다의 잿빛 파도
그 슬플 것 같은 서사를 각자 쓰고 있는 그곳이
그 푸른 바다가
-「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
그 11월의 일기(日氣)는 그녀의 울음과 같았다
그 오후의 슬픈 소나기
오래지 않고
가늘지 않은
짧고 굵은 눈물들
당신과 나의 불안한 미래였고
그해 겨울을 시작하는 어두운 우울이었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붙잡았던
그해 가을의 끝이었다
늦은 오후 그 뜬금없는 소나기
난 이 착잡한 빗방울 사이
그대의 큰 눈동자를 바라보고
서서히 잊히는 그대의 뒷모습을 애써 잡으며
아
이 소나기는 또 오려나
-「스콜(squall)」
출판사 서평
네게 기대어 울고 싶지만 이미 몸이 굳어 그리할 수 없는 것, 결정적으로 너를 진심으로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없는 것, 내가 시를 못 쓰는 사소한, 아주 사소한 이유.
병마의 고통과 삶의 온갖 실의, 좌절을 딛고 일어선 투혼의 시인 박찬호가 세 번째 시집 『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를 출간했다. 리얼리티와 인본주의 이를 떠받치는 소박한 심상들, 그러나 무엇보다 다소 둔탁한 듯 깊은 울림을 주는 올곧음과 진심, 읽고 또 읽게 되는 시집이다.
시집은 모두 4부, 63편의 시를 싣고 있다.
1부 〈문득 생각나는 것들〉은 ‘버릴 수 없음의 시편들’로 이상과 순수, 진실에 대해 형상화한다.
‘휴대폰에는 긴머리라 저장되어 있다/다들 그를 긴머리 소년이라 불렀다/곧 육십 줄에 들어서지만 아직도 청춘인/
찰랑찰랑 긴 머리 중늙은이 소년/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도 하고/영원한 리버럴리스트라고 하기도 하고/
삼손 힘의 원천 같은 그의 아이덴티티 찰랑거리는 긴 머리’(「긴머리 소년 1」)
쓰러져 있다고 다친 것은 아니며, 꺾여져 있다고 목전에 죽음을 둔 것도 아니고, 잘려 없어졌다고 해서 영원히 죽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과 고민 그리고 욕망과 쾌락 그 사이 어디쯤에서, 때론 이리로 가끔은 또 저리로, 어찌 보면 신(神)보다 나은 생각들을 하며, 인간 존재 본연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직하게 풀어 놓는다.
‘목련이 지면/벚꽃이 피고/벚꽃이 지면/진달래 피고/진달래 지면/개나리 피고/개나리 지면/제비꽃 피고/아이고/그렇게/내가 지는 만큼/네가 피고’(「딸에게」)
2부 〈하현의 밤〉은 ‘부딪힘의 시편들’로 내면과 시대의 부조리, 모순 속에서 겪어야만 하는 소외와 갈등을 그린다.
‘달이 밝아 밤이 되어도/부끄러움을 감춰 줄 어둠이 없어서라고는/생각하지 못했다/은은한 달빛 뒤에 숨은/오늘 하루의 부끄러움 때문인 줄 몰랐다/정말 쓰디쓴 커피 때문일 거라 믿었다/고민과 반성이 있었던 밤은 유난히 힘들었으므로/회한이 많은 하현의 밤은 또 그렇게 불안했으므로/그런 밤들의 선명함을/애써 불면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불면증 2」)
시인은 내면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겪어 내는 용기와 함께, 시대적 모순을 관통하며 그 앞에서 움츠리지 않는 투사적 면모도 지닌다.
‘만약/그게 그것이라면/난 이 성긴 우익의 나라에서/기꺼이 나쁜 좌익으로 살련다/빨갛다 못해 검게 붉어진/그런 좌익으로 살련다/통일의 좌익으로/노동자의 좌익으로/아픔의 좌익이 되어/슬픔의 좌익이 되어/고통의 좌익으로 살련다/가난하고 약한 것이 좌익이고/힘없는 것에 분노하고/좌절하며/절규하는 것이 좌익이라면/난 이제껏 그리고 앞으로도/영원히 좌익이다/아니, 그냥 좌익으로 살련다/그 끝도 없는 아픔과 슬픔으로 살련다’ (「좌익」)
아울러 서민 민초들의 삶의 모습, 이 험한 사회를, 엄혹한 시국을 살아가고자 하는 자세, 생각해 보면 정말 눈물이 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우리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형상화한다. 이는 곧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아들, 딸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그런 모습이다.
‘통칭으로 기타의 생명들로 불리워도 괜찮은 것들/죽음이 두렵지도 않고 부활이 시골 아낙 아이 낳기보다 수월한/여건과 조건이 필요치 않은 삶의 강인함/살기 위해 주위의 나약함 따위는 배려의 여지가 없는/그래서 생의 경이로움 따위는 잊힌 지 오래인/누구는 타고난 천성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생명에의/집착이 만들어 온 진화의 과정이라고도 하고’ (「반기지 않는, 반갑지 않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3부 〈스콜squall〉은 ‘다가가고픔의 시편들’로 소박한 사랑과 우수, 그리움을 노래한다.
달이 차고 지기를 몇 번/그리고/두 자리 숫자의 달이 오면/이불장 속 깊이 넣어 두었던/당신의 따뜻한 이불을 꺼낸다/곱게 접어 두었던/그대를 향한 마음과 같은/그 따뜻한 겹이불을 편다/다시 달은 휘영청 차오르고/바람도 차고/또 이불 밖 웃풍은/당신의 마음처럼 냉랭하고/그래도/나는/이제 곧 들이닥칠/추운 바람 속/눈 쌓인 따뜻한 겨울을/
당신에게 보낸다’ (「달이 바뀌면」)
가을 아침 눈부신 햇살, 곱게 접은 손편지, 멀리서 날 부르는 그이. 시인은 병마와 싸우면서 오는, 눈물 나게 신비로운 정서적 변화,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애틋한 필치로 그려 낸다.
‘베고니아 화분은 놓이지 않았다는/그 우체국으로 간다 ...... 그렇게 꼭 가야만 할 것 같은/그 가을 우체국에 간다/따뜻한 아침 해를 기다리며/곱게 접은 손편지가 되어/멀리, 아주 멀리서 날 부르는/그이에게 간다/내 깊은 한숨과/구름 끝 먼 눈길이 향하는/가을 햇살 눈부신/그곳으로 간다’ (「우체국」)
그러나 시인에게는 ‘죽음이 하루하루 가까이 오는 듯해 큰일이지만/특히/이 힘들게 느껴지는 세상을/조금 더 살고 싶어지는’(「어려운 세상 2」) 마음이 생기는 것이 정말 더 큰일이다.
4부 ‘명현瞑眩’은 ‘가득함의 시편들’로 산문적 일상, 복잡다단한 현실에 대한 끈질긴 응시와 유대를 다룬다.
내친김에 뜬금없이 담배도 끊었다/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조건 없이/몸은 확실히 더 좋아진 듯했다/혈압도 떨어지고 당뇨도 없어지고 혈색도 좋아지고/보이는 모든 것은 좋아졌다/그때쯤부터/이상스레 가끔 가슴이 저려 오기도 하고/환절기 독감을 앓듯 머리가 아파 오는 날이 잦았다/명현현상瞑眩現像일 거로 생각했다
(「명현현상瞑眩現像」)
시인은 주변에 대한 깊은 관심과 예의, 고민까지 기꺼이 짊어진다. 실천하는 지성으로서 사회적 공동선 추구 또한 뿌리칠 수 없는 소명이리.
‘아무도 모른다/아무도 관심 없다/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관심은/이미 식상한 지 오래/관심이 깊으면 깊을수록/애정이 쌓이면 쌓일수록/감당해야 할 번민과 수고로움은 많아진다’ (「왜관읍 이기혁 1」)
시집을 꿰뚫고 있는 인식은 시인 자신이 코비드 시대에 암을 앓으면서 끌어낸 시적 발상이다. 때로는 정서를 죽이고, 서사도 없이, 쉼표를 누락시키고 단속적으로 연계되는 모순율의 문장들 사이로 ‘탈인격화된 존재와 저버려진 사물들’, ‘망각되었던 기억의 상흔들’이 죽음 같은 병환을 직시하는 울증의 증후 속에서 알레고리로 재현되어, 불의한 시대의 현실을 묵시적으로 고발한다. 그러면서 이 고통스러운 시편들은 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곧 ‘강바람에 조용히 몸을 눕히는 이름 모를 잡초들’, ‘누구에게도 주목 받지 못하는 소외된 사물들’, ‘양가적 혹은 모순된 존재의 비극적 양태들’, ‘가치 전도된 개념과 부조리한 삶의 현상’들이 병치되어 몽타주를 형성하고 있는 알레고리의 파노라마 속에서, 서서히 나타나는 변증법적 구성의 이미지로 인간 연대의 소통과 교감을 통한 가치를 추구한다.
한편, 시집 속 시편들은 읽히는 데 큰 막힘이 없다. 하고자 하는 말을 분명하게 발설하고, 리듬과 같은 내재율로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시인 자신의 생각의 흐름과 감정의 분출이 우리가 갖고 있는 기본적이고 평이한 정서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평탄한 언어로 시적 정서를 환기시키고 가슴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 것, 그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드러나지 않는 물밑에서의 긴밀한 연계와 긴장으로 시어들을 단단히 엮어 매며. 마침내 절창을 빚어내는 저 작업과 가치야말로...
‘그 11월의 일기(日氣)는 그녀의 울음과 같았다// 그 오후의 슬픈 소나기/오래지 않고/가늘지 않은/짧고 굵은 눈물들//당신과 나의 불안한 미래였고/그해 겨울을 시작하는 어두운 우울이었다/가지 마라 가지 마라 붙잡았던/그해 가을의 끝이었다//늦은 오후 그 뜬금없는 소나기//난 이 착잡한 빗방울 사이/그대의 큰 눈동자를 바라보고/서서히 잊히는 그대의 뒷모습을 애써 잡으며/아/이 소나기는 또 오려나’ (「스콜(squall)」)
기본정보
ISBN | 9791197682056 |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06월 08일 | ||
쪽수 | 172쪽 | ||
크기 |
130 * 205
mm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다시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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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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