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면화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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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한겨레신문 > 2024년 5월 1주 선정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부터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까지,
부채꼴 화폭에 펼쳐지는 선면화의 향연
『선면화의 세계』는 부채그림(선면화)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이다. 미술사연구자인 저자 이인숙은 이 책에서 한국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부채그림의 기원과 발전상을 소개하고,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우리 부채그림 명작 80선을 꼽아 그 특유의 아름다움과 미학을 조명한다.
작가정보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경북 영주 외갓집에서 1961년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영남대학교 회화과, 같은 학교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 같은 학교 대학원 한국학과를 졸업했다. 석사논문은 「판교 정섭의 회화세계와 우리나라 서화계에 끼친 영향」이며, 박사논문은 「정조의 시서화 연구: 국왕 문예의 정치성과 심미성」이다. 한국미술사 관련 강의를 여러 대학에서 했으며 지금은 경북대학교 미술학과 강사이다.
「조선시대 편지[簡札]의 서예사적 의의」, 「파초의 문화적 의미망들」, 「근원 김용준(1904-1967)의 기명절지화 연구」, 「20세기 대구 전통화단의 묵죽화 지속에 대한 연구」, 「1920-50년대 한글 서예의 한글 인장 사용 연구」 등 서예, 수묵화, 사군자화, 전각 분야를 중심으로 40여 편의 논문을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수록했다. 저서로 『석재 서병오 필묵에 정을 담다』가 있다.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을 『매일신문』에 연재하고 있다.
목차
- 이인숙의 『선면화의 세계』에 부쳐(유홍준) 5
소물진품의 부채그림 6
1부 부채와 부채그림
1. 부채의 내력 17
깃털부채, 비단부채 | 고려 학령선 | 평평한 원선과 접이식 접선 |
접첩선, 국교품 | 합죽선, 접부채, 부채꼴 | 유행하는 부채는 선자장 솜씨 따라 |
팔덕선
2. 부채그림의 시작 41
부채의 회화 매체로서의 효능을 개발한 미술 강국 고려
3. 부채그림의 특징 45
반원형의 특이한 부채꼴 화폭 | 옛 선비들이 지녔던 휴대용 미술품
4. 오래된 부채그림 52
금물로 그린 이금 산수화: 이징 〈금니 산수〉 | 효종의 동생: 이요 〈일편어주〉 |
미인도이자 신선도: 신범화 〈여협도〉 | 낚싯대 들고 조는 소년: 홍득구 〈한일조어〉
2부 명작 부채그림 80선
1장 금강산, 실경산수 62
01 특별한 수묵 금강전도 정선 〈금강내산〉
02 가을 금강산 정선 〈풍악전면〉
03 눈앞에 펼쳐진 만이천봉 정선 〈정양사〉
04 봉우리마다 이름을 써넣다 허필 〈금강산〉
05 천하명인과 천하명산 최북 〈금강총도〉
06 스승이 제자에게 그려주다 김규진 〈마하연 동자석〉
07 팔만대장경 법보종찰의 어느 가을날 정선 〈해인사〉
08 불후의 이름 퇴계, 불멸의 장소 도산 정선 〈도산서원〉
09 겸재 정선의 한양전도 정선 〈소의문망도성도〉
10 계곡의 바위 위에 지은 정자 정선 〈세검정〉
11 자신의 별장을 그린 실경산수 윤두서 〈백포별서도〉
12 멀리 서울을 바라보며 강세황 〈남산여삼각산도〉
13 바다, 계곡, 강의 잘생긴 바위 이윤영 〈능파대〉, 〈화적〉, 〈옥순〉
14 이성계의 꿈을 해몽한 자리 조석진 〈석왕사〉
15 복사꽃 핀 강가의 집 변관식 〈화계선방〉
2장 설경, 정형산수, 시의산수 106
16 부채에 안성맞춤인 설경 최북 〈설중귀려〉
17 포근하고 맑은 겨울 풍경 박승무 〈설경〉
18 물지게 진 겨울 농부 이상범 〈설경〉
19 눈 쌓인 댓잎 이병직 〈설죽〉
20 망망대해의 돛배 한 척 정선 〈창범도해〉
21 누구라도 좋아할 풍경 이인문 〈송계한담〉
22 박진감 넘치는 현대적 정형산수 노수현 〈추경산수〉
23 협곡의 우렁찬 강물 심사정 〈백제 시의도〉
24 소나무 옆에서 폭포소리 듣다 이인상 〈송변청폭도〉
25 세상의 먼지 없는 물 속의 누각 이인상 〈강남춘의도〉
26 부채꼴 창을 낸 작은 정자 강세황 〈소정유경도〉
27 한눈에 보는 추사의 젊은 시절 시서화 김정희 〈송백간노형〉
28 산에서 살리라 허련 〈산거술사〉
29 빈 배에 달빛 가득 싣고 허백련 〈귀주재월〉
3장 인물 146
30 한종유, 이명기한종유, 이명기가 그린 강세황, 강이천의 부채 초상화부채 초상화
31 동파관 쓰고 나막신 신은 오세창 정종여 〈위창 선생 옥조〉
32 오세창의 은유적 초상화 이도영 〈획수도강〉
33 부채 속 부채 든 신선 김은호 〈수여적송〉
34 도연명의 귀향 안중식 〈귀거래도〉
35 나무꾼의 질문에 어부가 대답하다 이인상 〈어초문답도〉
36 마구간 앞에서 종일 말을 관찰하다 윤두서 〈견마도〉
37 달과 대면한 고귀한 정신 박노수 〈고사상월〉
38 서원아집을 모방한 풍류 이도영 〈동림아집도〉
39 대숲에서 홀로 연주하네 김홍도 〈죽리탄금도〉
40 누구나 늙는다는 진리 윤두서 〈수하노승〉
41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년과 누렁소 김기창 〈목동〉
4장 화조 186
42 찔레꽃에 날아드는 호랑나비 김홍도 〈화접도〉
43 오덕을 갖춘 매미 이한복 〈선성소류〉
44 나라꽃 무궁화 김정현 〈국화서양〉
45 향원익청의 화중군자 장우성 〈연꽃〉
46 화려한 모란을 우아하게 그리다 송영방 〈모란〉
47 물에 비친 꽃을 흩어버린 오리 신명연 〈화지유금〉
48 호신의 효과까지 있는 매 그림 이한철 〈기응소규〉
49 노년의 평안을 기원하다 안중식 〈노안도〉
50 비를 내려주는 용왕 윤덕희 〈창룡〉
51 절집 단청에 매혹되다 박생광 〈용〉
52 우리나라에만 있는 장수 상징 박생광 〈십장생〉
5장 사군자류 218
53 사군자 연작 부채그림 강세황 〈매〉, 〈난〉, 〈국〉, 〈죽〉
54 매화를 사랑한 남자 매정 김용준 〈묵매〉
55 난초 그림에 진심이었던 묵란화가 김정희 〈증청람란〉
56 오세창의 귀한 그림 오세창 〈묵란〉
57 합죽선에 더욱 잘 어울리는 대나무 그림 서병오 〈묵죽〉
58 소동파를 기리는 그림 신위 〈고목죽석〉
59 우정을 시각화한 부채그림 김정희 〈지란병분〉
60 여름날 그림부채 선물 오경석 〈홍매〉
61 돌을 사랑한 애석가 서세옥 〈벽영롱〉
62 혜석에게 혜초와 괴석을 그려주다 이도영 〈혜복석정〉
63 신선처럼 장수하고 복을 누리소서 김용진 〈수선과 불수감〉
6장 합작 254
64 공평하게 반씩 그린 선면화 강세황·허필 〈산수〉
65 스승과 제자가 그림과 글씨로 합작하다 김홍도·강세황 〈서원아집도〉
66 민족문화의 앞날을 기원하며 조석진·안중식 〈도원도〉
67 근대기 거장 8명이 합작한 〈군자락지도〉
68 이도영과 고희동이 합작하고 스승 안중식이 제화를 쓴 〈기명절지〉
69 현명한 음주를 위해 김돈희·이한복 〈감음도〉
70 이용우이용우와 최우석 최우석이 합작한 연작 3점
71 1901년 일본 부채에 합작한 황철 황철과 요시츠구 하이잔요시츠구 하이잔
7장 색다른 부채그림 284
72 검은 종이에 금니로 그린 부채그림 강세황 〈단청금취〉
73 단옷날 벽사진경의 홍선 이응노 〈산수〉
74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홍백매〉
75 화가이자 화가의 아내 박래현 〈화조〉
76 유명 여성화가의 재빠른 담채화 천경자 〈금붕어〉, 〈개구리〉
77 아프리카 기행화 천경자 〈세네갈의 땀땀춤〉, 〈세네갈의 꽃 파는 여인들〉
78 50자루 부채에 50척 초공간 비행물체 손동현 《하이퍼스페이스》
79 서양화가의 선면화 장욱진 〈문방도〉, 〈산천풍경〉
80 합죽선에 그린 김창열김창열의 〈물방울〉, 김원숙김원숙의 〈부채 든 여인〉
3부 부채 문화
1. 옛 그림 속 부채 320
선면화의 선구자: 윤두서 〈세마도〉 | 영조시대 고급 부채: 정선 〈독서여가〉 |
도포 끈에 매단 부채: 조영석 〈조영복 초상〉 | 정조가 하사한 부채:
이명기 〈채제공 초상 시복본〉 | 애도를 담은 흰 부채: 채용신 〈황현 초상〉 |
말 위에서 펼쳐든 부채: 김홍도 〈마상청앵〉 | 단오선 들고 단오씨름 구경:
김홍도 〈씨름〉 | 선추를 빙빙 돌리며: 신윤복 〈쌍검대무〉 | 한양 기녀의 나들이:
신윤복 〈전모 쓴 여인〉 | 19세기 초 무당 부채: 신윤복 〈무녀신무〉 |
필통 속에 모셔 놓은 부채: 민화 〈책거리〉 | 무당 교과서 속 무당 부채:
작가 미상 〈제석거리〉 | 부채와 방울 든 무업 번창의 무조신: 작가 미상 〈대신할머니〉 | 전통 예인의 만능소품 부채: 김준근 〈광대 줄 타고〉
2. 백선도와 백납도 352
부채를 가득 그리다: 박기준 〈백선도〉 | 백선도와 군접도의 만남:
남계우·박기준 〈백선군접〉 | 〈백선도 초본〉으로 완성하다: 작가 미상 〈백선도〉 | 백납도의 부채꼴 화폭: 유숙 〈백납도〉 | 백납병의 진화: 작가 미상 〈소상팔경 백납도〉 |
일본의 부채 병풍화: 다와라야 소타쓰 〈선면 첩교 병풍〉
3. 중국인, 일본인이 남긴 부채그림 368
명나라 사신 공용경이 심언광에게 〈관폭도〉 |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류성룡에게 〈묵죽〉 | 북경에서 반정균이 김선행에게 〈묵매〉 | 북경에서 강개가 유득공에게 〈산수〉 | 북경에서 주학년이 김정희에게 〈유득공 시의도〉 |
중국에서 탁병음이 정원용에게 〈창랑정 담시도〉 | 식민지 경성의 일본인 화가
가토 쇼린 〈인왕산 소견〉
부채그림의 한국회화사 384
감사의 글 389
참고문헌 390
출판사 서평
부채그림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부터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까지,
부채꼴 화폭에 펼쳐지는 선면화의 향연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한 손에 들고 다니고, 또 그걸로 바람을 부친다니.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사실 부채는 두루마리, 족자, 화첩, 병풍과 더불어 전통회화의 대표적인 형태 중 하나이다. 모두 사각형인 다른 매체들에 비해 부채꼴 선면에 그려졌다는 독특함이 있을 뿐 아니라, 당대의 사용자들이 가장 가까이 두고 일상에서 향유했던 미술품이었다. 그럼에도 안타깝게도 미술사에서는 별도의 장르로서 주목받지 못하였다.
『선면화의 세계』는 부채그림(선면화)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이다. 미술사연구자인 저자 이인숙은 이 책에서 한국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부채그림의 기원과 발전상을 소개하고,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우리 부채그림 명작 80선을 꼽아 그 특유의 아름다움과 미학을 조명한다.
바람을 부치는 부채, 감상화의 매체가 되다
부채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역사와 함께해 왔다. 청동기시대 유적인 다호리 고분에서는 부채자루가 출토되었고,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부채를 든 인물이 등장한다. 부채는 고려와 조선의 특산품이기도 하였다. 고려 이래로 제지술이 뛰어났고, 질 좋은 대나무가 났으며 죽세공 기술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부채살에 종이를 붙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한 접선은 본래 중국에는 없었는데, 조선에서 보낸 접선에 감탄한 영락제가 이를 본떠 만들게 하면서 명나라 황실에서 애용되었고, 그 영향을 받은 중국 문인들 사이에도 퍼져 나갔다.
부채, 특히 접부채에 감상화를 그린 선면화(부채그림)는 고려 때부터 시작되었다. 11세기~12세기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에서 온 사신들이 들고 있는 접선에 남녀 인물, 물가 풍경, 꽃과 새 등 온갖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접부채는 회화의 매체로 활용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에 명나라 말기 중국 강남 지방의 문인문화의 영향을 받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접부채에 그려진 부채그림을 애호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전하는 수많은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부채꼴 화폭에 펼쳐진 부채그림의 미학과 그 위상
부채그림은 비사각형의 부채꼴의 화폭에 그려지기에 일반적인 그림들과는 다른 고유한 미감을 가지고 있다.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는 화폭이 산수화와 매우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로 그릴 때도 대상의 특정 부분에 집중하여 액자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부채꼴 자체가 갖는 아름다움도 있어 여기에 매료된 조선 후기의 사대부들은 부채꼴 모양의 백자연적 등 문방구를 애용할 정도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상표는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동화약방(동화약품)의 부채표이다.
부채의 휴대품으로서의 특성 또한 주목할 부분이다. 사대부들은 다른 휴대품들은 수행인에게 맡겨도 부채만큼은 직접 들었고, 부채를 통해 자신의 품위를 드러냈다. 이처럼 부채그림은 휴대하고 다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며 이야깃거리의 소재로 삼을 수도 있는 독특한 미술품이었기에, 전반적인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었으며 아무에게나 그려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지금 전하는 부채그림 중 유독 이인상, 강세황과 같은 이름 높은 문인화가들의 작품이 많은 것도 그 이유이다.
조선 후기부터 21세기 현대미술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부채그림
부채그림은 다양한 소재로 그려졌다. 부채그림은 특이한 화폭의 형태, 선면 뒤의 대오리의 존재 등으로 인해 그리기가 쉽지 않았음에도 옛 대가들은 자신들의 솜씨를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부채그림을 정착시킨 선구자는 윤두서였고, 겸재 정선은 금강산 전부를 한눈에 조망하는 금강전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주제들을 선면에 거침없이 그려냈다. 김홍도는 스승 강세황이 ‘나비 가루가 손에 묻을 것만 같다’라는 감상평을 적을 정도로 실감나는 나비 그림을 그렸다. 강세황과 그 손자 강이천의 선면 초상화가 남아 있는 것 역시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이인문, 심사정, 최북 등도 모두 부채그림을 남겨, 이 책에 실린 부채그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조선 후기의 쟁쟁한 화가들 대부분을 만나볼 수 있다.
현대에도 이상범과 변관식과 같은 전통회화의 대가들은 부채에 산수화를 그렸으며 김창열은 물방울 그림을, 천경자는 개구리 그림과 아프리카 기행화 등을 그려 부채그림의 지평을 넓혔다. 손동현은 접으면 사라지고 펼치면 나타나는 부채그림의 특성에 착안하여 공간을 뛰어넘어 워프하는 우주선 50개를 그린 《하이퍼스페이스》연작을 그렸다. 『선면화의 세계』는 이와 같은 다양한 주제로 그려진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의 부채그림 명작 80선을 장르별로 나누어 소개하여 우리 부채그림의 진면목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림 속 부채로 살펴보는 당대의 생활상
부채에 그림이 그려지기도 하였지만, 그림 속에 부채가 그려진 경우도 여럿 확인할 수 있다.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속 말 탄 양반은 한 손으로는 부채를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고삐를 쥐고 있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에도 부채는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휴대품으로 숱하게 묘사되어 있다. 조영석이 그린 형 조영복의 초상, 정조 대의 명재상 채제공의 초상, 망국에 분노하여 자결한 황현의 초상에도 부채는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부채는 조선 사람들의 필수품이었다.
조선 말기에는 부채 자체가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책가도에 부채가 그려지는가 하면, 아예 부채만 수십 개를 모아서 구성한 백선도도 인기를 얻었다. 특히 백선도는 같은 구성의 작품을 반복해 제작하기 위한 초본, 그리고 이 초본을 바탕으로 제작된 완성품이 모두 남아 있어 조선 말기 미술시장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생생히 증언한다.
부채로 통했던 옛사람들, 그 문화적 교류를 살펴보다
부채그림은 문인들과 화가들의 교유에도 애용되었다. 단짝 친구였던 강세황과 허필은 하나의 선면을 반으로 나누어 반절씩 그림을 그렸고, 김홍도와 강세황은 그림과 글씨로 합작하여 〈서원아집도〉를 완성하였다. 김정희는 먼 길 떠나는 친구를 위해 부채에 그림을 그리고 자작시를 써서 선물로 주었다. 안중식과 조석진을 비롯한 근대의 화가들은 한자리에 모여 부채에 그림과 글을 쓰며 합작하기도 하였다.
부채를 통한 교류는 나라를 넘어 이어지기도 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부채그림도 중종 때인 1537년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 공용경이 그려서 이조판서 심언광에게 준 것이며, 임진왜란 중에 명나라 구원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이 부채에 대나무 그림을 그려 류성룡에게 주기도 했다. 18~19세기 북경에 온 조선 사신들에게 청나라 문인들이 준 부채그림들은 당대의 활발했던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증거품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89074708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04월 20일 |
쪽수 | 404쪽 |
크기 |
150 * 225
* 24
mm
/ 842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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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의 글이 실린 책을 붙잡고 시간을 보내기에는 너무나 편리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오랜만에 이인숙 선생의 그림과 글이 실린 책을 대하고 보니 시간을 잊었다. 옛 일상에 그것도 손에 들고 애용하며 멋을 부리고, 유명인이 그림 그리고 쓴 것이면, 더욱 자신의 부나 격, 교양을 업그레이드 시켜주기까지 했던 부채... 살랑 살랑 부치며 양반 흉내를 내었고, 때로는 부채를 휙휙 부치며 애환을 날려 보내기도 했지. 이렇게 다양한 부채가 희귀한 작품이 되어 매료를 느끼게 하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화풍과 문풍을 엿볼 수 있는 부채그림에서 옛 사람들은 결코 지면에만 머물지 않고 애장품으로, 실용품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잊고 있었던 당시 화단, 유가의 사회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하고, 그 시대 생활상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어려운 선면화를 얘기로 풀어냄으로 더 깊이와 재미를 함께 주고 있다.
잊었던 옛 사람들을 다시 상기시켜 추억에 머물게도 한다. 쉽게 휙~ 보고 지나갔던 책표지의 다정다감한 부채그림, 부채꼴의 건축・문방사우 등 부채의 소재가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되어졌음을 이 글을 통해 재인식하는 게기가 되었다. 정선의 〈금강내산〉, 〈풍악전면〉도 부터 근대의 천경자 〈금붕어〉, 〈개구리〉 등의 쉬운 소재에 이르기까지 부채에 대한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부채에 대한 전면적인 설명과 함께 상류층에 유행하던 부채를 시대별로 구분하여 구성하기도 하고, 부채란 무생물에 생기와 감정을 불어 넣은 실경산수, 정형산수, 시의산수, 인물, 화조 등 특징별로도 구분하였다. 한자로 써진 화제나 오래되어 글자의 형태를 알기 어려운 부분까지 많은 고심을 거듭하여 풀이해 내었고, 부채를 주고받은 주변 담화들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었다.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자료를 수집했고 작가의 독서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 공력에 찬탄을 할 뿐이다.
부채란 한정된 공간속에서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그림의 변화 발전도 엿볼 수 있다. 옛 사람들의 인문 교양을 측정해 볼 수도 있고, 정신적인 멋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한묵의 향기에 취하게 하고 색감을 넣은 작품은 시선을 끌게 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가는 문화의 한 단면이지만 부채라는 우수한 전통 문화를 적극적으로 보존하고 사랑하리라 다짐한다. 선면화는 옛사람의 발자취이지만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고찰해보면, 새로운 사고와 창작의 결과물을 결합시켜 얼마든지 계승 발전하고 작품과 실용의 한 축을 담당하여 변화를 모색할 수가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한정된 공간에서도 절제된 간결한 붓놀림과 확장되는 부채그림, 때로는 섬세하게, 호방하게 내면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 선인들이 그립다.
부채는 때로 휙휙 부채질을 하면서 농부의 땀을 식혔고 여인의 애환을 날려 보내기도 했다. 미술에는 수많은 작가 작품들이 있고, 글씨로도 유명 서예가들이 많다. 그러나 부채란 한정된 공간에 글과 그림을 함께 담아, 그 속에 많은 사연을 엮어내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부문에 재미를 더하였다.
하나하나의 자료들을 발굴하여 그것을 소재로 장문의 완성된 멋진 책을 엮어내니 작가의 노력과 역량에 찬사를 보낸다. “선면화의 세계”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채 한 점 한 점에서 수많은 세계를 만나게 한다. 부채에 대한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하고, 멋진 글 그림을 실어주셔서 진심으로 그 노고에 감사드린다. 아마도 당분간은 잠속에서도 부채를 부치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