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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아버지

민경탁 시집 | 양장본 Hardcover
황금알 시인선 286
민경탁 저자(글)
황금알 · 2024년 0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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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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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탁의 시에는 야만과 전설의 ‘동시성’이 나타난다. 서로 다른 주체 혹은 머나먼 시공간이 한자리에 결집한다. 현실은 잃어버린 원형의 요람이다. 시인은 현실의 표피를 가르고 끝없이 이어지는 미지의 징후를 따라 심상과 이미지를 불러온다. 시 쓰기는 초혼(招魂)의 풍경 혹은 부조리와 성소를 경계 짓는 제의적 행위다. 이제 현상 너머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근원의 시어들이 소환된다. 시인의 시적 논리 지평에선, 싱클레어의 두 세계(헤세, ‘데미안’)로부터 느끼는 불가항력이나, 뫼르소(카뮈, ‘이방인’) 혹은 시지포스(카뮈, ‘시지포스의 신화’)가 마주한 운명론적 부조리와 같은 맥락이다. 살아있으려면 불가피한 고뇌의 절대성과 은밀한 향수의 잠재력(potential)은 그의 시 세계를 이루는 꼭짓점이다.

이 책의 총서 (298)

작가정보

저자(글) 민경탁

민경탁 시인은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1995년 『시세계』로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이팝꽃 곁에 두고』 『황악산 구름꽃』, 산문집 『살며 사랑하며 깨달으며』, 평전 『작곡가 나화랑 그의 인생과 음악;반짝이는 별빛 아래』 등을 썼습니다. 제17회 김천시문화상, 제57회 경상북도문화상 등을 받았습니다.
현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김천교육지원청 청소년문화예술센터에서 글쓰기와 시창작, 낭송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

힘 모아 다듬어 옮겼다. 세계를 설명하고 인간을 구원하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삶의 땟국을 씻어내고 무늬를 아름다이 펼쳐 보이며, 세상과 사람들에 무엇을 더하고자 한다. 세상을 사랑하고 노래하고 또 아파하리라.
보편성 없는 정서 토로, 의식과 사유의 무의미한 유희, 의미와 가치 없는 서정미는 지양한다. 한 편의 시는 세상에 무엇을 더하였는가 하는, 엄혹한 질문에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는 라이너 쿤체 시인의 말을 존중하며 우리 세상 샛별을 열정적으로 희구하겠다.
이 시편들이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께 육질과 과즙이 알맞은 수밀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족과 많은 도움을 주신 분과 황금알 출판사에 감사한다.

2024년 첫 봄
빛솔의 방에서 민경탁

목차

  • 1부 붙박이별 하나
    윤슬
    붙박이별 하나
    있다
    바다
    에듀피아는 없는가
    무쇠의 야수野獸
    마카 커피
    멧비둘기

    창窓
    도회의 어부
    소식
    찾는다
    신기루
    기다려, 잘 갈게

    2부 물의 천칙
    산은
    물의 천칙天則
    벼꽃
    파계사 앞 연못을 보며
    2월
    8월
    9월의 편지
    빛솔
    매화마을
    동백꽃
    뭉게뭉게
    수양꽃복숭아
    땅끝마을에서
    대마도에서
    소나무가 된 부추꽃

    3부 달의 아버지
    붕어빵을 사러 갔다가
    달의 아버지
    우체국에 가다
    선물 1
    선물 2
    선물 3
    문수사文殊寺
    오이디푸스가 하는 말
    아니마anima
    바위 품은 여자
    철이 드는 듯
    참꽃처럼
    낙동강의 민들레
    맨드라미 꽃몽아리
    새벽녘 서울을 떠나다

    4부 김천역
    추풍령
    김천역
    황금시작
    갈항사葛項寺
    직지천直指川
    감천甘川
    매계梅溪 옛집 가는 길
    직지저수지
    청암사
    황악산길
    고성산 약물내기
    은림리隱林里
    면사무소 터를 지나가다
    원효대사
    별것 아닌 하루가

    ■해설 | 김선주
    미래에서 전하는, 물고기별 전설

추천사

  • 민경탁 시인의 시를 읽어보면 독자와 시인 사이의 거리를 단축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민 시인의 시는 쉽게 읽히면서도 다양한 리듬을 동반한 시적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러한 장점은 그가 힘들인 대중음악사 연구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시적 공간이 그가 평생을 살고 있는 고향이라는 점도 작용한 것이다. 이번 시집은 자연을 그리워하고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 민경탁 시인의 시편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와 자연에 닿아있다. 오래된 풍경과 가족, 지역공동체의 소중한 접점을 순간적으로 잘 포착하여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달의 아버지’라는 독특한 표현으로 한 시대의 고단한 정서와 질곡들을 오히려, “사람 하나 바로 크면/ 사람 하나 올곧게 자라면 그게 제일인기라/ 들판 너머로 초승달을 띄워 놓”는 환한 성과로 견인한다. 특히, 통일벼가 풍성하게 익은 가을날의 농촌 풍경을 그려내며, 작은 것 하나가 크게 자라면 그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메시지 안에는 희망과 아름다움, 인간의 조화로움을 담아내고 있다.
    김천역을 배경으로 “정 갖고 붙잡아도/ 갈 사람은 가더라/ “내비도라”/ 정든 사람도 떠나”(「김천역」)갈 것이라는 인간의 이별과 재회에 따른 감정을 다루면서, 시는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잠시 떠나더라도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오래된 대합실에서의 재회와 인사 속에서 정다운 모습으로 마무리한다.
    한편, 자연과 별을 노래하는 시인은 “이 세상 어디 있으나/ 네가 잘 보인다”(「붙박이별 하나」)라고 긍정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하고 있다. 붙박이별로부터 또 하나의 붙박이별이 태어날 것이라는 희망과 행운의 상징으로서의 ‘천운의 붙박이별’에 대한 기대는 시인의 낙천적인 심상에 닿아있을 것이다. 결국, 붙박이별은 시인의 낙천적인 심상 안에 낙원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책 속으로

1부 붙박이별 하나

윤슬

푸른 강 등줄기에
은빛 숨결이
정갈히 소리친다
바다는
어딨는가, 하고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바다를 향한
금빛 꿈들의
은빛 투혼들이
찬연하다 일렁인다
다시 아침을 맞으며
그곳은 안녕한지
그대는 정말 잘 있는지
묻는다
기꺼이 산화하여
바다에 가 닿으려나
마침내
낯선 별이 되기 위해
달려가는
은빛 메아리들
숨결이 가쁘다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눈부셔라


붙박이별 하나

낯선 별 하나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아닌, 지구 위에
태어났구나

무변 우주 천체 중
기어이 여기 찾아온 너
어디서 본 것도 같애

이 세상 어디 있으나
네가 잘 보인다

큰 땅 위에
새 하늘 열려

희망이 알맞으면
화평이 함께 하고

몸이 수고로운 만큼
세상은 빛날 거야

어느 머언 날 네게서

붙박이별 생겨나리

천운의 붙박이별 하나


있다

하늘에 해가 떠 있다.
강변에 해오라기가 놀고
강변로에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강바닥 크레인 안에
달리는 자동차 속에 사람이
들판엔 일하는 농부가
바다엔 고기 잡는 어부가
있다.
웃는다 화낸다 운다 노래한다.
논밭에 곡식이 자라고
길거리에 삽살개가 다니고
창공엔 전투기가 활공한다.
사랑에 취한 아가씨가
카페에서 겨워하고 있는데
전방에서 병사는 총을 들고 서 있다.
있다.


바다

멀리 있어도
가깝다
푸르고 푸르기에
깊이를 잘 모른다
뭇 생명의 아기집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가진 말라
밤낮 구별 없이
속 깊은 동굴을 안고
촉촉이 젖어 있는 늪이다
은은히 가려 있는 숲이다
정체를 잘 모른다
프로이트 박사에게
물어볼까
가까이 있어도
멀다


에듀피아*는 없는가

서울 강남 8학군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담임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용감하게 단행했다. 학부모 악성 민원이 힘들어
지난해 임용된, 스물셋 새내기 교사가

군사부일체는 헌 신발이 되었는가
낡은 옥돌이 되어 박물관으로 가는가

노르웨이에서 무차별 총기난사로 칠십 명 가까운 목숨을
빼앗은 청년은 일본과 한국의 가부장제를 본받으라 했다

교사는 그림자 빼고는 다 밟혀야 하는가
막말과 협박을 받아내는 AI가 되어 가는가

학생은 각성하고 학부모는 존중하라
교사여, 힘을 내라

에듀피아는 어디에 있는가, 학원가에 있는가
말하라 학생은, 학부모는

학생의 인권과 교권이 공존할 수 없는가
에듀피아는 어디에 있는가

* 에듀피아: 에듀케이션(education)+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


무쇠의 야수野獸

속도에 취한 무쇠의 야수들이

무한정 먹잇감을 향해 달린다

쾌속으로 달린다

좀체 멈춰 설 줄을 모른다

거친 식욕에 젖은 짐승들

으르렁 으르렁

속도에 겨워하며 지칠 줄 모르고 달린다

달콤한 먹잇감을 향해, 무쇠의 야수들

속력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거식증에 걸린 듯하다.

좀 천천히 달리면.


마카 커피

마카* 커피 다고**
여기 있어요
이기 무슨 커핀고?
모카커피요
이느무 가시나야
누가 모과 커피 달라캔나
가시나라 하지 마세요
가시나라 앙 칸다만
모과 커핀 왜 가져오노
…… ?

* 마카: ‘모두’의 경상도 방언
** 다고: ‘다오’의 영남 방언

출판사 서평

하늘에 해가 떠 있다
강변에 해오라기가 놀고
강변에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강바닥 크레인 안에
달리는 자동차 속에 사람이
들판엔 일하는 농부가
바다엔 고기 잡는 어부가
있다
웃는다 화낸다 운다 노래한다
논밭에 곡식이 자라고
길거리에 삽살개가 다니고
창공엔 전투기가 활공한다
사랑에 취한 아가씨가
카페에서 즐거워하고 있는데
전방에서 병사가 총을 들고 서 있다.
있다.

-「있다」 전문

야만과 전설 및 부조리와 시원의 ‘동시성’은 현실과 일상의 ‘동시대성’을 내포한다. 시인은 현실성과 일상성을 나누는 시적 논리를 보인다. 그의 시에서 현실은 우리 이웃이나 지구촌 곳곳에 벌어지는 야만의 참상을 드러내고, 일상이란 화자가 느끼는 온갖 체험의 장을 가리킨다. 불안이 서서히 고개를 들게 되기까지 일상은 고요하다. 졸고 있는 의식을 깨워 고요한 순환성을 거스를 때 화자의 치열한 모럴 감각은 작동한다.
현실을 가린 일상의 최면을 거두자, 불안이 엄습한다. 시인은 은폐된 야만의 자취를 발견한다. 즉 ‘있다’라는 표현으로, 커튼을 하나씩 젖히는 효과를 불러오며, 현실의 고현학(考現學)적 알레고리가 발굴된다. 커튼에는 각각 하늘과 태양, 강변과 해오라기, 강변로와 자동차 그리고 사람, 강바닥과 크레인, 들판과 농부, 바다와 어부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존재가 풍경 속에서 웃고, 울고, 화내고, 노래한다. 커튼을 하나하나 넘기자 “전투기”와 “병사”와 “총”이 드러난다.
동시대성과 동시성은 바짝 연결된다. 온갖 희로애락의 일상과 밀리터리 심상의 ‘동시성’은 지난 세기의 뼈아픈 역사를 추체험의 장으로 불러옴으로써 아직 끝나지 않은 비극을 환기한다. 예민한 인식은 ‘동시대성’을 강화한다. 시인은 일상에 가득한 괄호(=익숙함, 권태 등) 속을 불안의 기표로 채운다. 병사나 총의 실존은 지난 세기의 전쟁, 사라진 실재에 의해 보충된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도 전쟁을 직시하지 못한다. 대중 앞엔 갖가지 예쁜 화풍을 수놓은 커튼이 펄럭인다. 일상과 비일상의 병렬식 구조가 너무나 당연하게 일어나 아쉽다. 아이러니를 깨닫고 ‘세기와 세기의 동시대성’을 ‘지금 우리의 동시대성’으로 확장한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시리즈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68150751
발행(출시)일자 2024년 03월 15일
쪽수 128쪽
크기
128 * 210 * 20 mm / 420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황금알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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