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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걷는사람 시인선 109
김수목 저자(글)
걷는사람 · 2024년 0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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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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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시인선 109
김수목 시집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출간

“어둠을 뚫고 먼 인가의 불빛이 다가오다 망설인다
이 버스가 닿는 곳이 내일이다”

사랑과 자유를 찾아 떠도는 방랑자
당신과 나는 아직 꾸어야 할 꿈이 많은 사람
김수목 시인의 새 시집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109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을 읽는 하나의 이정표로서 표제작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를 들여다보면, “항상 무언가를 쥐고 있어야 했던 손이지만/항상 비어 있다고 기억하려 했다”라는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막막함’의 사전적 의미는 “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답답한” 상황을 말하는데, 시인은 막막함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기보다 오히려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라고 긍정한다. 결국 김수목 시인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외로움과 어둠을 등에 진 존재임을 인식하되, 사랑과 자유를 찾아 떠도는 보헤미안으로서의 여정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시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십여 년 전 쓴 시집에서 “낡은 여행 가방을 찾으러 다시 간다면/파랗고 깊은 눈동자의 베두인 주인은/밤하늘의 물뱀자리로/택배 보냈다고 할지도 몰라”(「바그다드 카페」)라고 적었던 것처럼, 그는 여전히 스스로 ‘낡은 여행 가방’이 되어 사막의 밤하늘이 마냥 검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체득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시인은 ‘어둠’을 통하여 도저한 시적 물음을 지속한다. “심해라는 말은 심장 속이라는 말과도 같다 (중략) 어디에 있든 너와 나는 심해라는 짐을 나누어 살고 있구나”(「심해에서」)라는 시구는 그 단적인 표현이며, 시인은 삶에 드리워진 암연(黯然)을 떨쳐내기보다는 그것에 더욱 밀착해 들어가고자 한다.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감으로써 어둠 저편에 반짝이는 ‘불빛-불 비늘’을 발견하려고, 그리고 결국엔 자신이 곧 ‘불빛-불 비늘’이 될 그날을 꿈꾸며 그는 시를 쓰는 것이다.
「야간 산행」에서 주지하고 있듯, 밤 산행을 떠난 그에게 “유일한 기억 방식은 보행”이며, 그는 “몇 번의 넘어짐을 빼고는 밤새워 걷는다”. 야행 길을 나선 자는 온몸의 감각 신경을 곤두세운 채 어둠을 벗하면서 어둠 속 길을 걷는다. 김수목은 그것이 바로 삶의 길이라고 믿는 듯하다.
교사로서 첫 발령을 받아 섬마을 선생님이 되었던 시절(「나의 70년대식」), 희망대공원 아래 남의 집 문간방에 세를 살았(「나의 70년대식」)던 시절,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되새기며 걸었던 숱한 여행지(추전역, 톤레삽과 훈자 마을과 카슈가르…)에서의 뚜벅뚜벅한 행보가 이 한 권의 시집에 녹아 있다.
“갈 곳 없는 나의 청춘도 훔쳐 가라고”(「나의 80년대식」) 부르짖던 날들을 건너와 이제는 “언제부터인지 목걸이는 목에 맞지 않았다/꾸어야 할 꿈이 너무 많아서/어느 사이엔가 뚝 끊어져 사라졌다”(「인정하긴 싫겠지만」)고 말하는 사람. 빛나는 목걸이보다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두 다리를 더 믿고 의지하는 사람. 소박하고 단출한 자연인 김수목의 면모가 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전 세계가 위중하던 시절에도 그는 산티아고 길을 순례하고 돌아온 이력이 있다. 기나긴 길 위에서 정상이 어디인가 가늠해 보는 건 무의미하다고, 나는 아직 꿈을 꾸고 있는 중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 가슴속에 든 ‘붉은가슴딱새’ 한 마리의 울음을 대신 들려주면서.

이 책의 총서 (123)

작가정보

저자(글) 김수목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2000년 《문학과창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바그다드 카페』 『슬픔계량사전』, 산문집 『지중해를 전전하다』 등을 냈다.

작가의 말

눈을 떠 보니 잊고 있었던 나의 어제가 떠올랐다.
어제보다 더 먼 옛날들도 차례로 떠올랐다.
읽고 쓰고 걷고 사랑했던 그 긴 날들이
늘 나와 함께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살아내는 게 그랬다.
지구의 어느 한 곳에서
시간의 어느 한 점에서

2024년 2월
김수목

목차

  • 1부 누가 나의 감추어진 손을 끌어내 줄까
    심야 버스
    봄날
    아직 가만히 놓다
    긴 잠깐
    금영노래방
    어제는 생일이었다
    오늘
    생각은 끝났습니다
    그러고 싶었던 것처럼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적벽, 그 아래서
    끝은 없었다

    2부 밤의 긴 침묵이 날아다녔다
    상사초
    일식의 하루
    부르지 못할 이름
    공모
    붉은가슴딱새
    셋, 동행
    저의 불찰입니다
    빈 술병이 쓰러져 우는 시
    어두움 너머
    나의 70년대식
    나의 80년대식
    나의 90년대식

    3부 짧은 사랑의 기록이라고 해 두자
    야간 산행
    식물학
    물푸레나무
    입하
    가을의 구도
    사과
    표해록
    노란 선 안으로
    패턴으로 기억해
    쑥보다 레몬그라스
    잉카인들은 고향을 감자라고 불러
    심해에서
    카슈가르에서 한나절

    4부 꾸어야 할 꿈이 너무 많아서
    세월
    들여다보다
    연애 고샅길
    1월은 길었다
    직선과 사선
    스물에서의 한밤
    재경향우회
    골목 끝에 우리 집이 있는데
    4월은
    삼거리 버스 정류장
    인정하긴 싫겠지만
    한낮

    해설
    어둠의 저편, ‘불빛−불 비늘’의 욕망
    -고명철(문학평론가)

추천사

  • “살아내는 모든 게 적벽”(「적벽, 그 아래서」)인 세상에서 그는 “외로운 이의 창가를 밝히고 싶”(「심야 버스」)어 소박하나 따듯한 시의 등불을 찾아다니는 시인이다. 그 등불을 찾으려 “한때는 비구니가 되어 세상을 떠돌”(「그러고 싶었던 것처럼」)거나 스스로 불빛을 만들어 보려 “비공개 지하 수장고에 청춘을 처박아 두고” 살기도 했다. 어두운 밤 전철역 근처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의 힘겨움을 견딜 수 없어 슬픔을 물어 날으는 딱새처럼, “붉은 갈색의 가슴에 혼자”, 타인의 슬픔을 담아 가는 딱새처럼(「붉은가슴딱새」)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적당히 거절하며/적절하게 싫은 티도 내면서” “다음 생에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멋지게 살아내고 싶다”(「봄날」)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천성적으로 나와 너의 분리가 없어 어쩌면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나의 80년대식」) 우리들 속으로 영원히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해라는 말은 심장 속이라는 말과도 같”(「심해에서」)아서 그는 분리되지 않은 심해에서 심장을 나누어 살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는 “항상 무언가를 쥐고 있어야 했던”(「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우리들에게 자신의 손이 “항상 비어 있”음을 보여 주는 시인이다.

책 속으로

어둠이 밤새 일렁일 때마다 불 비늘이 되어
외로운 이의 창가를 밝히고 싶었다

심야 버스의 낯선 실내등이 파랗게 질려 간다
어둠을 배경 삼아 더 파랗게 질려 가는 찌든 얼굴들

이마가 창문에 차갑게 닿는다
출렁거리며 어둠이 다가왔다가 물러선다

어둠을 뚫고 먼 인가의 불빛이 다가오다 망설인다

이 버스가 닿는 곳이 내일이다
-「심야 버스」 부분

추전역을 지나면서
아직 오늘이 다 가지 않았다는 것과
더 기다릴 여력이 남아 있다는 것에 숨을 내쉰다

(중략)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발부리에 차인 돌멩이를 주워 던지며
그리워할 사람이 없을 때가 좋았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손이 펴지지 않았다
항상 무언가를 쥐고 있어야 했던 손이지만
항상 비어 있다고 기억하려 했다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부분

손에 넣으면 금세 부러질 듯한 몸매와
인기척에 놀라 그림자까지 떠메고 사라지는 딱새가
그 어마어마한 슬픔을 어떻게 물어 날랐을까

슬픔은 어둠이 흔들어 깨워
아침이면 유리창에 기대어
딱새를 기다리게 하는 것
-「붉은가슴딱새」 부분

홀로 감전되는 자동 점멸등이 식구들의 흩어진 신발짝들을 찾는 동안 냉장고의 불빛이 파르스름하게 새어 나온다 벽에 붙어 있는 몇 개의 포스트잇과 메모의 흔적들, 필요한 것은 지나갔고 잊어버릴 것만 남았다 회전의자의 높이를 조절하여 길게 몸을 눕힌다. 몸의 길이는 그대로이지만 의자는 몸이 늘어났을 거라고 믿는다. 믿음이 곧 신념이 되는 시대여서 내 몸은 늘어나야 한다 의무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의 목록이 마트 영수증 길이만큼 길다
-「빈 술병이 쓰러져 우는 시」 부분

지루한 한낮, 인적 드문 마을 길 사이로 여자아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가는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아이 라이크 애플이라고 말해 버렸다 별 반응이 없이 지나치는 아이에게 다시 한 번 아이 러브 애플이야라고 소리쳐 주었다 여자아이와 스친 지 꽤 많이 지난 후, 기척에 뒤를 돌아보니 아이는 뛰어오고 있었다 은갈색 머리카락이 춤추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상기된 뺨에 호퍼 빙하 속 흑요석 같은 눈이 더욱 커지며 두 팔을 쭉 내밀어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의 손바닥에는 벌레 먹은 사과 한 알이 담겨 있었다
-「사과」 부분

중세 유럽에서는 감자를 관상용 꽃으로 가꾸어 왔지. 시체처럼 땅에 묻어야 자라는 감자를 마녀의 작물이라고 했겠다.

안데스의 중턱에서 제각기의 색깔로 온갖 크기와 모양을 자랑하던 감자를 떠올렸어. 잉카인들은 고향을 감자라고 불러.

싹 난 감자를 꺼냈어. 손바닥 안에서 차가운 감자의 몸통이 만져졌어. 춥고 척박한 땅에서 자랐던 이력에 냉장고 속에서도 싹을 낼 수 있는 건 너의 자유. 독이 오른 너의 싹을 싹둑 자를 수 있는 건 나의 의지.
-「잉카인들은 고향을 감자라고 불러」 부분

어두워지는 여기만큼 그곳은 밝아졌으면 좋겠다 가 보지 못한 도시의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과 늘 잊어버려 그려야 하는 국제 우편물 주소 철자는 아무리 푸념한들 거기에 있는 너의 지난함보다 더할 순 없겠지

심해라는 말은 심장 속이라는 말과도 같다 납작한 몸과 주체할 수 없는 퇴화의 기관들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꾸물거리는 곳이다 가끔씩 어쩌다 기분 좋은 날이면 깊게 심호흡하여 한 가닥 햇살이 닿게 해 주는 곳이다 어디에 있든 너와 나는 심해라는 짐을 나누어 살고 있구나
-「심해에서」 부분

언제부터인지 목걸이는 목에 맞지 않았다
꾸어야 할 꿈이 너무 많아서
어느 사이엔가 뚝 끊어져 사라졌다
-「인정하긴 싫겠지만」 부분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시리즈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93412251
발행(출시)일자 2024년 02월 13일
쪽수 120쪽
크기
126 * 201 * 10 mm / 238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걷는사람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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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다 보면 막막하고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은 일생에 한번일 수도 있고, 몇년에 한번,

한달에 한 두어번, 매일 여러번 찾아올수도 있다.

그런 순간이 찾아왔을때 우리는 쓰러지기도 하고

이를 악물고 버텨보기도 하고, 맞서싸워 이기기도 한다



똑같은 막막함일지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는 다르니

누구의 막막함이 더 크다 작다 더힘들다 덜힘들다 말할수 없다

가장 막막한 사람은 본인이고, 가장 힘든사람도, 가장 어려운사람도

가장 버거운 사람도 본인이다



요 근래 나는 막막함에 갇혀있다

2년전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시더니 3개월만에 돌아가시더니

그 이후로 계속 엎치고 덮치고 겹치고 곱해지고

올해 연초부터 내 수술까지 멈추질 않는 막막함이다

이게 끝이 나나 끝이 있긴 한가

내가 진짜 삶이 편안해 질 날이 있나 싶은 때 만난 책이다





요즘 많이 나오는 위로 담긴 책들과 다르게

이 책은 시집으로 막막함을 이겨내고 있다

작가는 여러 상황에 부딪힌 그때를 간결하고 짧은문장으로

또는 시보다는 조금 길지만 산문보다는 확연히 짧은 한문단으로

때로는 두 쪽을 가득 채울만한 길이의 글로 표현하고 있다



막막함뿐만 아니라 이별도 사랑도 밤도 시간도

작가에게 와 닿았던 그 순간들을....



한장 한장 시집을 넘기면서 코끝이 찡했다

덤덤한듯 아닌듯 적어내려간 글은

작가의 의도가 어떠했을지는 모르나 그냥 눈물이 나게 했다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났고

힘들게 자신의 길을 찾고있는 아이가 생각이 났고

연초부터 계속 아프기 시작한 내가 생각이 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황을, 이 막막함속에서 버티고 있는

나를 또 생각했다





학교다닐때 시는 화자의 마음을 화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그 시를 제대로 알수 있다고 했다

내가 파악한 것이 작가의 참 된 마음이나 의도가 아닐지언정

나는 작가에게 위로를 받았으면 된거 아닌가 싶다

위로를 받았으니 위로에 대한 값을 하기 위해

힘을 내어 보기로 했다
10점 중 10점
/공감돼요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제목이 끌렸다. 궁즉통 '상황이 절박하면 길이 열린다'라는 말이 떠오르게 되는 제목이 끌린 것은 현재의 상황 때문이었으리라. 3년 전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했고 얼마 전까지 일을 해왔지만 부동산 경기는 좋지 않았다. 커피를 하다 막막하던 시기 요트 세일링 교육을 하게 됐고, 관광객 예약이 몰렸던 때에 코로나19가 터져 결국 부동산 업계로 넘어왔다. 일이 풀리지 않아 다시금 답답한 시기였기에 시집 제목에 손이 갔다.

1부의 첫 시 「심야 버스」의 첫 문장에 내 마음이 들킨 듯했다. 나도 반복되는 일상 중에 미래로 가고 있는데 '파랗게 질려 가는 찌든 얼굴들'에 내 얼굴도 속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시집 제목에 대한 끌림의 연장선이었을까? 표제 시인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를 읽으며 나 역시 잡으려 하는 것들이 많았다. 내 업을 놓치지 않고자 손을 꽉 쥐고 있었기에 오히려 붙들지 못해 빈주먹만 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도 된다.
2부에서는 「붉은가슴딱새」의 시어들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나는 무엇에 마음을 빼앗겼고, 언제부터 기다린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죽음이 더 이상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나이대이기에 2부에서의 몇몇 시는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내가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내용이었는지 모른다.
3부 '짧은 사랑의 기록이라고 해 두자' 그 '짧은 사랑의 기록'은 슬픔을 담고 있는 듯했다. 짧은 여행도 하기 어려웠던 시기는 더 여행을 하기 어렵게 내겐 마무리가 된 것 같다. 병원에서 간병으로 코로나19의 암담한 현실을 체감했고, 병원 내에서도 퍼지는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인 모습들을 봤었다. 아직 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기에 발길을 뗄 수 없는 시기. 나의 짧은 사랑은 기후 동행 카드와 함께 한동안은 이어갈 듯하다.
4부의 첫 시 「세월」에서 익숙한 구절이 보인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대사였기 때문일까? 그러나 세월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다만, 어떻게 순풍처럼 잘 활용하며 가느냐의 문제가 아닐지. 4부의 제목은 마지막 시 「한낮」의 마지막 문장으로 이어져 가는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시를 그리 잘 읽지 못하지만 시집의 제목에 이끌려 읽었다. 그 제목에 끌렸지만 시집 안에 제목보다도 끌어당기는 시들이 있었다. 혹해서 선택했으나 괜찮은 선택이었음을 확인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벌써 걷는사람 시인선이 109가 되었다. 대학시절처럼 시를 쓰진 않으나 여전히 습작을 하는 시기라 이 시집에 끌렸던 것은 아닐까? 그 '막막함'은 이 시기이자 내 마음에 필요한 시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생각하게 된다. 가볍게 제목에 끌려 읽더라도 그 이상의 만족감을 어쩌면 시집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

*이 리뷰는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10점 중 10점
/공감돼요
심야 버스



먼 인가의 불빛처럼 반짝이는 무엇이 되고 싶었다.

어둠이 밤새 이렁일 때마다 불 비늘이 되어

외로운 이의 창가를 밝히고 싶었다.

심야 버스의 낯선 실내등이 파랗게 질려 간다.

어둠을 배경 삼아 더 파랗게 질려가는 찌든 얼굴들

이마가 창문에 차갑게 닿는다.

출렁거리며 어둠이 다가왔다가 물러선다.

어둠을 뚫고 먼 인가의 불빛이 다가오다 망설인다.

이 버스가 닿는 곳이 내일이다. (-11-)





아직 가만히 놓다.



개나리꽃 흐드러진 날에 친구는 갔다.

들어갈 수 없는 중환자실 복도를 지날 때

잠깐 열린 문을 지나칠 때

친구의 침대에 삐죽이 나와 있는

작은 발바닥을 보았어.

아주 작고 앙증맞았지.

친구는 가기 전에 영정 사진을 골라 놓았다 했다.

자신이 죽은 후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볼 사진을 고르며

제일 예쁜 것으로

장지는 외롭지 않게 붐비는 곳으로 택했다.

너무 외로워서

죽어서라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자주 스치는 그런 곳으로 정해 달라고

온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렁주렁 주삿줄을 달고서

고통 너머 고통까지 간 다음에야

섯히 세상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나는 아직 친구의 손을 잡아 보지 못했는데. (-15-)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손이 펴지지 않았다.

잡아야 할 것들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손으로 잡아야 하는 것들은 모두 사물이다.

팩소주를 마셔 본 기억은 없는데

매번 꿈마다 팩소주 묶음을

배낭 맨 아래에 넣고 여행을 떠난다.

추전역을 지나면서

아직 오늘이 다 가지 않았다는 것과

더 기다릴 여력이 남아 있다는 것에 숨을 내쉰다.

태백이 고향이라는 여자의 말을 듣고

사랑한다고 고백할 뻔 했다.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발부리에 차인 돌멩이를 주워 던지며

그리워할 사람이 없을 때가 좋았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손이 펴지지 않았다.

항상 뭔가를 쥐고 있어야 했던 손이지만

항상 비어 있다고 기억하려 했다. (-29-)





부르지 못할 이름



조문은 늘 밤늦은 시각이었다.

장례식장은 늘 도시의 초입이었으므로

인터체인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죽음이 있듯이

수은등이 천장에서 창백하게 빛나는

로비에서 곱은 손으로 부의 봉투를 쓴다

낯선 한자어를 써서 조의를 표해야 한다.

방명록에 낯선 글씨로 이름을 쓴 후

이름이 맞자 확인한다.

내 이름마저 불확실한 곳

생애 중 가장 많은 꽃들에 싸인

무념한 표정의 영정 앞에

기독교식으로 해야할까, 전통식으로 해야 할까

상주와는 맞절을 해야 하나,목례로도 괜찮을까.

망자는 말이 없다

상주도 말이 없다

조문객도

미리 세팅된 밥상이 뱅반에 담겨 나온다

일회용 스티로폼 국그릇과 플라스틱 숟가락

일회용 생에 일회용 슬픔

반도 안 찬 육개장의 붉은 국물이 숟가락을

붉게 물들인다. (-41-)





주어진 생이 있고,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 있다. 삶의 끝자락에 마주하게 되는 죽음 앞에서 있을 때, 우리는 막막하다는 말을 쓰곤 한다. 시간의 흐름과 노력에 비해 내가 만들어낸 세계의 부질없음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 아픔에 도취되어 마약에 취해 살아가곤 한다.삶이 막막한 그 순간에 새을 놓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생의 마지막 그 순간, 숨이 깔딱 넘어가는 그 상황,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남아 있는 생에 대해서, 후회를 덜어낼 수 있고, 상처를 덜어낼 수 있다. 시인은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에서, 막막함이 나를 살린다고 했다. 여기서 막막함이란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 판단하기 싫은 상황에서, 판단해야하는 그러한 막막함이다. 이러한 것들은 생에 대한 회의감이 봇물터지듯 흘러나올 때가 있다. 살아가되 살아있다고 느껴지지 안는 그 순간이 우리 앞에 당도하게 된다.





시는 우리의 마음을 깊숙하게 품고 있었다. 살아서 꿈꾸는 것을 소원이라 한다. 죽어서 꿈꾸는 것들 유언이라 한다,.인간은 죽음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가 남긴 유언이 살아있는 사람이 들어줄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유언을 마지막 메시지를 무시할 수 없었다. 나도 내 앞에 당도한 타인의 죽음이 나에게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죽음 앞에서, 무형의 유언을 다시 남기게 된다. 그것을 살아있는 사람이 들어주길 바라는 그 막막함, 그 막막함이 나를 살리고 ,죽어있는 그들을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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