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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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나의 것
“나한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가 하는 것뿐이에요.
이제부터 제대로 0이 된 느낌이요.”
제 삶을 손에 쥔 세 여자
해나와 마나, 경희 이야기
이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라. 그리고 네 인생의 주인이 되어라라는. ”
_고영직(문학평론가)
신주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2012년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에 단편 「점심의 연애」로 등단한 이후 『모서리의 탄생』, 『허들』 등을 발표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이번 장편소설을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아가고 있을 오리너구릿과, 오리너구릿속, 오리너구리종 같은 여자들의 이야기”라고 평한다. 오리너구리가 오리에게서도, 너구리에게서도 자유로워져 오롯한 자기 자신의 종(種)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등장인물에 투영되어 있다.
작가는 크기도, 모양도 정해지지 않은 점과 그것이 움직인 선의 시간, 시간으로 채워진 면을 통해 등장인물의 복잡한 삶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그러면서 문학평론가 고영직이 말한 바와 같이 “살던 대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시간을 ‘회전(revolution)’하는 것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 2023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작가정보
목차
- 1 해나
2 마나
3 경희
4 물리
5 장례
6 달걀
7 유전
8 불변
9 융점
10 이상
11 이면
12 복기
13 심연
14 상쇄
15 무사
16 고별
17 마주
해설 : 자기 배려의 시간, 타자 배려의 시간 _고영직(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책 속으로
해나는 자꾸만 이상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훼손하고 있다고 느꼈다. 한 사람의 생각을 이렇게 무게 없이, 맥락 없이 편집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하지만 기계로 재현된 인간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솔직히 마음이란 것을 갖는 것이 맞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_「해나」에서
고통은 마나가 가장 잘 아는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것의 힘에 대해, 외부를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내부를 파괴하는 괴력에 대해. 그런 것을 적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이는 규선이었다. 규선은 고통이란 보험 약관에 적힌 작은 글씨 같은 것이라고 했다. 계약서 끄트머리에 적힌 보일 듯 말 듯한 그것. _「마나」에서
고통의 원인과 실체는 누구보다 마나 자신 탓이 명백했다. 하루라도 빨리 인정하고 진실을 받아들였더라면 문제는 더 쉬웠을지도 몰랐다. _「마나」에서
“이렇게 움직여서 방향을 가지면 면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점의 세계에서 시간은 선이고, 선의 세계에서 시간은 면이야. 인간에게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고 말하지만 실은 달라. 우리는 모두 다른 방향으로 흘러. 그 방향이 인간의 고유한 틀을 결정하는 거야. 틀이 사라지면 모두 똑같은 점인 거야. 물론 거기엔 시간도 흐르지 않고.” _「경희」에서
단지 배고프지 않는 삶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것. 맹숭맹숭한 미래의 비루함 같은 것이었다. 많이 알수록, 의문하고 질문할수록 불행해지는 삶. 소확행이니, 휘게니, 라곰이니, 탕진잼이니 무엇을 갖다붙여도 결국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을 뜻했다. _「물리」에서
‘이런 사람들의 지시에 따라 좌회전과 우회전, 직진과 유턴을 반복하다 어느 틈엔가 길을 잃었을 사람. 알고 보면 평생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은 알까. 그렇게 지난 삶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분하지는 않을까.’ _「장례」에서
“저는 노라입니다. 노라지만 과거만의 노라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노라를 정확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을 사는 노라입니다. 여전히 삶을 원하고, 그것을 위해 매일 공부하는 것이 저의 존재 이유입니다.” _「불변」에서
고통이 그런데요. 그건 위기의 순간을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 것처럼 기억하는 인간의 뇌 때문이래요. 뇌가 그 상황의 시간을 늘리는 거지요. 고통을 확대해서 기억하는 거예요. 나중에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기억해두었다가 조심하려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해요. 뇌는 그 순간을 실제보다 더 크고 길게 기억하니까. 고통이 확대되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거죠. _「이상」에서
마나와 해나는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은 동일한 어둠을 마주했다. 다시 불행의 한가운데로 떨어질 수 있고 그렇게 주저앉아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되는 밤이었다. _「마주」에서
출판사 서평
“결국에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현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식은 종종 과거에 얽매여 후회로 점철된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며, 평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고 한 노자의 말처럼 각기 과거의 삶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해나와 마나, 그리고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경희의 삶은 불안하기만 하다.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있을 경우 결코 평안하지 못한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해나와 마나, 경희가 여실히 보여준다.
“고통이 그런데요. 그건 위기의 순간을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 것처럼 기억하는 인간의 뇌 때문이래요. 뇌가 그 상황의 시간을 늘리는 거지요. 고통을 확대해서 기억하는 거예요. 나중에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기억해두었다가 조심하려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해요. 뇌는 그 순간을 실제보다 더 크고 길게 기억하니까. 고통이 확대되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거죠.”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의 나로 오롯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은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면의 고통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위험을 감수하고 진실을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한 자기 배려에서의 파르헤시아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고영직은 이 작품을 인공지능 시대 소설로 쓴 파르헤시아의 시도로 읽혀야 마땅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라. 그리고 네 인생의 주인이 되어라.”
“삶이란
‘0과 1 그 사이에 셀 수 없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
나경희와 최승구의 일화를 통해 이야기하는 점과 선, 면은 다층적인 사고로 인간 내면의 고통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해나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 엄마를 찾아 헤매다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증오하는 과거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인해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못하는 삶에서 비롯된 밝고 명랑한 미래는 자신의 것이 아닌 듯이 느낀다. 마나는 과거에 친구 영서의 사건에서 받은 충격으로 생긴 조현병 때문에 자신의 딸 해나를 죽이려 했다는 끔찍한 기억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징역형과 같은 삶을 산다. 경희가 “사람들의 관심은 늘 과거나 미래에 있지요. 나는 현재에 관한 이야기가 하고 싶은데 말입니다”라고 이야기한 바와 같이 그녀는 과거에서도, 1920년대를 떠난 지금의 미래에서도 현재의 삶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오늘이 없다는 말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이고, 그 존재에게 미래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점은 각기 고유의 방향으로 움직여 선을 만들고, 그 선은 다시 면을 만들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무수한 점이 이어지는 그 과정은 매 순간 현재였고, 그 현재 속에서의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해나와 마나는 서로 화해하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경희를 이해한다.
문학평론가 고영직은 마나와 해나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며 작고 희미한 이야기공동체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연대의 가능성을 예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쩌면 마나와 해나가 비로소 지상에 구현한 작은 이야기공동체는 자기 배려의 시공간이자 타자 배려의 시공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신주희가 발견한 삶의 이니시에이션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이제 ‘세속의 영역’이 아니라 ‘본질의 영역’을 추구할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3710012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12월 22일 |
쪽수 | 288쪽 |
크기 |
131 * 200
* 28
mm
/ 510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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