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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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중앙일보 > 2023년 12월 4주 선정
기자이자 작가인 정강현의 5년 만의 산문집
작가는 밤마다 뒤적였던 책들을 어떤 영혼의 내전 기록들이라고 표현한다. 제 마음에서 벌어지는 영혼의 일들을 인간의 언어로 풀어내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했던 흔적들이라고. 그렇게 마음의 표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함께했던 책과 음악 그리고 일상의 순간들을 감정도서관에 담았다.
마음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할 때, 반짝이지 않는 인생은 없다
김윤아(가수), 오은(시인), 김호정(기자) 추천!
늦은 밤, 자신의 내면과 오롯이 만나는 때에 밀려드는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언제나 그렇듯 마음이 한 가지 표정만 짓는 날은 거의 없다. 그럴 때면 누군가 당신 마음을 대신 읽어줬으면 싶다. 작가는 이 마음의 표정을 자신만의 뜻을 담아 감정도서관 서재에 넣었다.
‘태어난다. 만난다. 헤어진다. 죽는다. 영원히, 헤어진다.’ 사람의 일생을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는 작가는 이 시간을 지나오며 사색한 감정에 대해 글로 표현했다. 머뭇거리다, 설레다, 허무하다, 무참하다, 벅차다, 애끊다 등 책에서는 총 30개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늦은 밤. 밤은 익어가고 도시는 물컹해지는 시간. 작가는 감정도서관의 문을 활짝 열어둔다.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독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작가정보
목차
- 프롤로그
1.
머뭇거리다: 마음에 쉼표를 찍는 순간
시큰거리다: 딱 그만큼의 슬픔에서 멈출 때
소중하다: 시간이 자주 빼앗아 가는 것
애통하다: 슬픔의 비명 소리
애틋하다: 세상의 모든 B급에게
두근거리다: 모든 심장의 첫 멜로디
뜨끈하다: 옆은 모르는 곁의 온도
부풀다: 연애와 결혼의 밑감정
공감하다: 마음의 전류가 흐를 때
가난하다: 크리스마스의 마음
2.
자만하다: 삶에 보내는 긍정의 시그널
기울다: 마음이 들리는 순간
막막하다: 슬픔이 얼어붙는 순간
허무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의 마음
설레다: 꿈이 꿈틀대는 순간
욕망하다: 거위의 꿈? 거품의 꿈!
순수하다: 순결해서 위태로운 고집
단념하다: 마음을 잘라내는 마음
무참하다: 당신은 모르는 슬픔 앞에서
가련하다: 같은 아픔에 이웃하는 마음
3.
후회하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마음에 대하여
호젓하다: 가만히 내려앉는 생을 기억하며
참혹하다: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비통함
무너지다: 마음의 건축학개론
벅차다: 까슬까슬한 성장통의 마음
비뚤다: 정치의 마음
꼿꼿하다: 저절로 굳어버린 마음에 대하여
아련하다: 일부러 흐려진 마음
가엽다: 울음을 참는 자의 표정
애끊다: 작별할 수 없는 슬픔
에필로그
추천의 글
추천사
-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정강현 기자의 문장에서 좋은 사람을 발견한다. 책임감 있고 순수하며 사랑 많은 인간의 희망과 절망을 읽는다. 그의 희망과 절망은 어쩐지 나의 것들과 닮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참혹한 세상을 애통해하고 가련한 것들에 공감할 줄 알며 소중한 것을 오롯이 애틋해하는 이 좋은 사람의 이야기를 많은 독자들이 사랑하리라 생각한다.
-
나 자신으로 향하는 문을 열기 위해 기꺼이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이 있다. 책과 사람, 여행 등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예사롭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낯선 세계 속으로 선선히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몸을 경유해 각양각색의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 있다. 작고 연약한 것들의 소리에 성심껏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정강현이다. 그가 이 책에서 건져 올린 동사와 형용사는 하나같이 삶을 수놓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기 쉬운 감정을 직면하는 자에게만 제 비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색하고 공감하고 성찰하고 때로 자책하기도 하면서, 정강현은 감정의 갈피를 잡고 마음의 밀도를 헤아린다. 항시 곁에 두고 심신이 시큰거릴 때마다 열어보고 싶은 책, 방문하고 싶은 도서관이다.
-
그의 단어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그의 형용사와 부사를 사랑한다. 도무지 뻔하게는 못 사는 사람답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사람 모두가 겪는 일은 명사와 동사에 가깝다. 태어나고 성장해 직업을 가지고 가까운 죽음을 경험하는 그런 일들. 하지만 거기에 붙인 형용사나 부사는 그만의 것이다. 정강현 선배의 단어들은 예상치 못한 조합으로 등장해 불쑥 마음에 들어온다. 우연은 아니다. 그는 말할 때나 쓸 때나 기를 쓰고 단어를 골라내니까. 참으로 마음 깊숙이 내려가 쓰는 작가다.
이 책은 순전히 그만이 쓸 수 있는 단어의 모음집이다. 정확하게는 그 단어를 바로 그 자리에 위치시킬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글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버지를 이미 잃었거나 잃게 될 사람들이지만 누구도 이 사람처럼 아름다울 정도로 아프게 쓸 수는 없다. 이 보편적 상실은 그가 적었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박동을 바꾸는 일이 된다. 고르고 고른 단어 덕이다. 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온 힘 다해 표현했는데, 그걸 읽은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내 얘기를 털어놓은 희한한 기분이 된다. 이게 바로 정강현식 단어의 마법 같은 힘이다.
책 속으로
마음알기의 소중한 가치를 아는 당신은 지금 여러 빛깔의 책들 앞에 앉아 있다. 저 숱한 책들은 어떤 영혼의 내전 기록들이다. 제 마음에서 벌어지는 영혼의 일들을 인간의 언어로 풀어내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했던 흔적들이다. 온갖 책들로 가득한 당신의 서재는 실은 마음의 일들을 해명해 주는 ‘감정도서관’이기도 한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 알기에 달렸다. 마음을 몰라서 그렇지 마음만 잘 알면 반짝이지 않는 인생은 없다. 책은 당신의 마음을 세심하게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전을 건넬 것이다. 늦은 밤. 밤은 익어가고 도시는 물컹해지는 시간. 사회적 삶을 내팽개치고 오로지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깊은 밤. 감정도서관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 당신이 마음의 문만 활짝 열 수 있다면.
_ 「프롤로그」 중에서
몇 해 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상화의 은퇴 기자회견을 보면서, 어떤 장엄한 장례식에 참석한 것처럼 숙연해졌던 것도 그 때문이다. 진짜 장례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생명을 다 소진한 주인공이 직접 참석해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 사실 이날 회견에서 내 마음을 무너뜨린 건 이 군더더기 없는 유언이 아니었다. 이상화는 자신이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상세히 설명했는데, 나는 이 대목에서 조금 울컥했다. “다음 목표를 생각하고 더 달리려 했지만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눈물을 보였다. 그 고백에서 나는 인생의 한고비를 넘고 있는 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진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도 흔히 겪는 일이다. 특히 인생의 반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년의 시기를 지나다 보면, 자주 그런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아, 더 이상 내 지성과 열정의 무릎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_ 「시큰거리다: 딱 그만큼의 슬픔에서 멈출 때」 중에서
이 책의 제목은 “그래, B급이라도 좌파로 살 수 있다면” 이란 대목에서 끌어온 것이었다. 저 문장은 스스로를 낮추기 위한 겸양의 표현이었겠지만, 실은 어떤 사람을 B급으로 지칭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에게도 일정한 등급이 매겨진다는 것은, 아이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서늘한 진실이었다.
…… 말하자면 그때 나는 B급이란 말에 내 삶을 투영하고 있었다. 내 정체성을 지칭하는 어떤 명사를 잇대어도 B급은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B급 아들, B급 남편, B급 아빠, B급 기자…. 어쩌면 저 책을 내민 아이 앞에서, 대체로 B급이었던 내 지난 삶을 들킬까 봐 허둥댔는지도 모른다.
_ 「애틋하다: 세상의 모든 B급에게」 중에서
꿈은 삶의 한 지표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일 순 없다. ‘거위의 꿈’은 대부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로 판명 날 것이므로, 꿈은 삶의 한 추동력 정도에 그치는 게 옳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학에 의탁해 살겠다는 꿈은 비록 이루지 못했지만, 기사 형식일지라도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한때의 꿈이 내 삶을 그 언저리로 추동해 준 결과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문학을 꿈꾸는 일에 관한 한 내 뚜렷한 한계를 인정했고 기자의 길로 방향을 틀었던 것인데, 꿈을 끝내 놓지 못하고 문학을 ‘욕망’하는 것으로 허송세월하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_ 「욕망하다: 거위의 꿈? 거품의 꿈!」 중에서
순수함은 세속에 때 묻지 않으려는 드센 고집이다. 순진함이 어린 시절의 타고난 본성이라면, 순수함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사사롭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다.
…… 하지만 순수한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과 무관하게 순수함은 때론 위태로운 마음의 태도일 수도 있다. 어른들의 세계에선 순수한 것이 살아남기 힘든 법이니까. 순수함이란 단 하나만 아는 마음일 텐데, 복잡한 세상사는 그런 단견은 용납하지 않는다. 비단 세상사뿐 아니라, 순수함의 결정체로 여겨지는 사랑의 영역에서도 그 이치는 비슷하다. 어른들의 사랑은 아이들의 그것과 달라서, 순수함만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일 따위는 잘 벌어지지 않는다.
나는 순수함의 가치를 숭고하게 여기는 편이지만, 순수함이란 말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 인생의 책’을 꼽으라면 맨 앞줄에 세워야 할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은, 그래서 내게 모순적인 서사로 오래 기억되는 중이다.
_ 「순수하다: 순결해서 위태로운 고집」 중에서
당신의 슬픔은 내게 건너오지 않는다. 함께 웃어줄 수는 있어도 함께 울어주기는 쉽지 않다. 당신이 지닌 슬픔의 매장량을, 나는 모른다. 그러므로 ‘타인의 슬픔’이란 난제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다. 슬픔이란 층위에서 당신과 나는 타자다.
…… 나는 끝내 네가 될 순 없지만, 내가 지금 살아서 네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심장의 박동 소리. 서로의 왼쪽과 오른쪽이 포개져 함께 뛰는 심장. 어쩌면 이것이 너의 슬픔에 대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끝끝내 당신의 슬픔은 내게로 건너오지 못하겠지만, 그래서 나는 자주 무참할 테지만, 당신의 슬픔 곁으로 최선을 다해 가까이 가보는 것이다. 마치 울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울어야 할 일도 참 많은 세상. 너의 슬픔과 나의 슬픔은 그렇게 서로 포개지며 겨우 견뎌지는 것이다.
_ 「무참하다: 당신은 모르는 슬픔 앞에서」 중에서
내가 느릿느릿 입원한 아버지를 찾아갔던 그날, 다행히 마지막을 알리는 선고는 없었다. 병원에선 며칠간 상태를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퇴원은 가능할 거라고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버지는 삶의 끝자락을 향해가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하기로 했다.
...... 병원을 워낙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아버지는 싱겁기만 한 병원 밥을 못 견뎌 했다. 대신 병원 로비에 있는 편의점의 인스턴트 음식에 입맛이 당긴다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편의점에 가서 인스턴트 비빔밥과 컵라면,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아버지에게 대접한 마지막 밥이 되고 말았다. 나는 후회한다. 하필이면 그 누추한 식단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식사가 되고 말았을까. 병원 안에 있는 고급 한정식이라도 함께 할 것을. 아버지가 떠나고 난 뒤, 편의점에 갈 때마다 나는 울컥 서러운 마음이 쏟아질 듯했다.
……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날 편의점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 표정이 맑았다. 메뉴가 어떻든 멀리 있는 아들이 곁에서 함께 식사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했던 것이리라.
_ 「후회하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마음에 대하여」 중에서
생각해 보면 그날의 벅찬 마음은 성장의 징표였는지도 모르겠다. 생의 한 계단을 올라서고 다음 계단으로 발을 내디딜 때의 가볍고도 초조한 발걸음. 벅차다는 것은 어떤 감정이 한껏 부풀어 올랐단 신호일 텐데, 벅찬 마음엔 풍선이 부풀 때처럼 아슬아슬한 긴장감도 있다는 것.
…… 대학 신입생 시절 내 작은 일상을 깨뜨렸던 표절 의심 사건은 그래서 벅찬 성장의 이야기다. 그날의 벅찬 감정을 떠올리면 어쩐지 마음이 까슬까슬해진다.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는, 잔뜩 움츠린 설렘이랄까. ‘벅차다’는 우리말이 여러 뜻빛깔을 지닌 것도 그것이 성장에 관여하는 말이기 때문일 게다.
어떤 일로 기쁨이나 희망이 넘칠 때도, 어떤 일을 감당하기 힘들 때도, 우리는 똑같이 ‘벅차다’란 말을 쓴다. 기쁨으로 충만한 벅찬 순간이 지나고 나면 감당하기 힘든 벅찬 장벽을 마주하기도 하는 게 삶의 법칙이니까. 벅차게, 벅찬 만큼 생은 익어가고, 일상의 작은 틈에서 당신도 나도 그렇게 조금 성장한다.
_ 「벅차다: 까슬까슬한 성장통의 마음」 중에서
그날 나는 분명히 보았다. 의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병명이 불분명하다”고 말할 때, 아버지 눈에 설핏 비쳤던 눈물을. 인간은 태어나서 부모 손에 이끌리다 다 자란 뒤엔 부모의 손을 이끌어야 하는 존재다.
…… 힘들게 울음을 삼킨다는 건 실은 목 놓아 크게 울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가까스로 눈물을 누르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어쩐지 가엽다는 마음이 들었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어미 잃은 새끼 강아지를 바라보는 마음이랄까. 누군가로부터 어떤 연약함이 사무치게 감지되면, 내 마음은 어김없이 가여움에 가 닿는다. 연약함이란 존재의 한계이므로 쉽게 극복되기 힘든 본성이다. 그러므로 가여움이란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앞에서 쩔쩔매는 처연함이기도 하다. 울음을 참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일이 꼭 그랬단 말이다. 눈물을 끝내 누르고 있는 자의 표정 앞에서 나는 가여운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_ 「가엽다: 울음을 참는 자의 표정」 중에서
출판사 서평
밤의 서재에서 건져 올린 내밀한 사색의 실체
늦은 밤, 기자로서 바쁜 하루를 보낸 저자는 불빛이 꺼진 밤의 도시를 거슬러 집으로 돌아온다. 성가셨던 사회적 삶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제서야 마음의 얼굴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음이 한 가지 표정만 짓는 날은 거의 없다.
한 사람을 하나의 단어로만 표현할 수 없듯, 누군가의 마음도 하나의 단어로만 풀어낼 순 없다는 것. 그러니까 ‘분인’으로서의 인간은 ‘분심(分心)’들로 복잡하게 구축된 영혼의 성채라는 것. 당신의 이런 생각을 마냥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테면 슬픔만 해도 그렇다. ‘슬프다’는 말로는 도무지 해명이 안 되는 슬픈 마음이 있는 것이다. 슬픈 마음은 그 슬픔의 농도와 강도에 따라 애끊거나 애달프거나 애통한 마음으로 분절될 수 있다. ‘슬프다’는 말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의 무게가 ‘분심’의 언어를 통해서만 겨우 해명될 수 있다. (10쪽)
그럴 때면 서재에서 뒤적이던 숱한 책들의 이야기, 함께한 깊은 사색의 또렷한 얼굴을 글로 담았다. 누군가 대신 마음을 읽어주기를 기대하며 넘겨보던 책의 말들, 다정하게 위로해 주던 음악의 소리가 정강현 작가 특유의 따뜻한 문체로 표현됐다.
사회적 삶과 가정의 삶 그 사이에서 마주한 감정의 얼굴들
두근거림과 애끊는 마음의 소리
책에서는 머뭇거리다, 설레다, 허무하다, 무참하다, 벅차다, 애끊다 등 총 30개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기자이자 직장인으로서, 남편이자 아빠로서 또 그 역시 아들로서 느낀 다양한 감정의 실체를 보기 위해 머물렀던 사색의 시간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시간이란 생명의 다른 이름이다. 시간이 다 소진되면 생명도 그친다. 하루를 산다는 건 하루만큼 죽는다는 뜻이다. 우리의 일상은 실은 죽음의 한 절차인 셈이다.
…… 사십 대의 중턱을 넘어서면서 나는 중요한 일이 아니라 소중한 가족에 내 시간을 내어줄 결심을 밤낮으로 하고 있다. 회사 업무의 압력에 짓눌려 쉽지 않지만, 아주 작은 틈새 시간이라도 소중한 가족과 공유하면서 시나브로 시간의 가치를 다시 가늠해 보려 한다. (43쪽)
40대 중반을 지나가며 사회적 삶과 가정의 삶 그 사이에서 저자는 새로운 시선을 경험한다. 무릎이 시큰거리기 시작하지만 이것이 경고등이라기보다는 방향등에 가깝다는 것을 깨우치고, 심장의 첫 멜로디를 들으며 두근거림을 느낀다. 옆은 모르는 뜨끈한 곁의 온도를 깨닫지만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이로부터 슬픔의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더 이상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눈물을 보였다. 그 고백에서 나는 인생의 한고비를 넘고 있는 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진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도 흔히 겪는 일이다. 특히 인생의 반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년의 시기를 지나다 보면, 자주 그런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아, 더 이상 내 지성과 열정의 무릎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극한 경쟁이 일상처럼 이어진다는 점에서, 스포츠와 인생은 꼭 닮았다. 무릎이 더 이상 말을 안 듣는다는 건 어쩌면 더 이상 경쟁에 매몰되지 말라는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33쪽)
끝내 마주한 작별의 시간
마음의 움직임을 세밀히 관찰할 때 감춰진 영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감정도서관에서 저자가 사색의 시간을 보내던 동안 그의 아버지는 투병했다. 그리고 끝내 저편 세상으로 건너갔다. 오랜 난임 치료 끝에 아이를 만나 아버지가 되었지만, 저자는 끝내 자신의 아버지와 작별했다. 그때 그동안 관성적으로 써오던 애끊는 마음이 실제로 작동하는 경험을 한다. 아버지를 저편 세상으로 떠내 보낸 지 1년이 지났지만 작가는 여전히 아버지를 추억할 때마다 애끊는 마음이 피어난다.
실은 장례가 아니라 면회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 기차에 몸을 파묻고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려 음악을 들으며 내려가는 길이었다. 언니네이발관이 내 귀에 대고 노래했다. ‘너를 떠나보내고 난 침묵 속에 빠졌네 / 오지 않을 날들을 바보처럼 그리다 / 거울 속의 나에게 다짐하듯 했던 말 / 다시는 널 보내지 않겠다’ 〈영원히 그립지 않을 시간〉
그래, 이 시간들은 영원히 그립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삶의 끝자락에서 식사조차 못 해서 관을 삽입하게 된 아버지.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아프지만,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건 아버지일 것이다. 가족들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지금 이 순간은 영영 그립지 않을 테지.
그런 슬픈 생각에 잠겨 깜빡 잠이 들었을까. 다급한 진동음이 울렸고 전화를 받으니 더 다급한 엄마가 울먹이며 소리치고 있었다.
‘태어난다. 만난다. 헤어진다. 죽는다. 영원히, 헤어진다.’ 사람의 일생을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는 작가는 이 시간을 지나오며 움직이던 마음의 소리를 꺼내 놓는다. 기쁨이 넘쳐흐를 때에도 애끊는 슬픔이 나를 덮칠 때에도 스스로 일렁이는 마음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바라보자고. 그럴 때 우리는 감춰진 영혼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기본정보
ISBN | 9791130315102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12월 19일 |
쪽수 | 296쪽 |
크기 |
131 * 200
* 21
mm
/ 548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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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지 못한 꽃은 박제된 시체다10% 15,120 원
감정 도서관이라는 책 제목이 인상 깊었다. 저자는 총 30개의 감정들을 사색하고, 그 감정들에 대해 글로 표현한다. 저자는 늦은 밤 홀로 내면의 감정들을 들여다보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책을 통해 저자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며 나 또한 함께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가졌다. 책 속에 담고 있는 30개의 감정 중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감정들 몇 가지만 소개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설레다'라는 감정이다. 직장 생활 20년 차의 저자는 꿈과 설렘이 가득하던 고교 시절과 대학 시절을 회상하며 또다시 설레기를 희망한다. 눈앞에 닥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인생은 때때로 꿈에 좌절되곤 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부터라도 또 다른 꿈을 품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냐고 말한다. "끝내 좌절되고 무너지더라도 꿈이 꿈틀대지 않으면 삶은 동력을 잃어버린다. 설렌다는 건 살아있다는 강력한 신호음이다"라는 문장이 마음을 울렸다. 이 글을 읽으며 과거의 꿈을 향해 설레던 나의 앳된 모습이 떠올랐고 현실로 돌아와 지금의 나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나 역시 또다시 설레기를 희망한다.
두 번째는 '순수하다'라는 감정이다. 이 단어 역시도 현실의 어른이 된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단어는 어른의 세계에선 무구한 무능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이 단어를 떠올릴 때면 나는 슬퍼지곤 한다. 저자는 순수함이란 세속에 때 묻지 않으려는 드센 고집이라고 말한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사사롭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라는 표현을 쓴다. 공감되는 표현이다. 저자에게는 10대 시절 즐겨 듣던 옛날 라디오 방송이 순수함의 상징처럼 남아있다고 한다. 나 또한 노래만 들어도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열렬히 응원하던 10대 시절의 소녀가 되는 순간이 있다. 마냥 순수해서 눈부시게 빛나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마지막은 '아련하다'라는 감정이다. 저자는 아련하다는 감정은 특정한 추억들을 회피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말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그 순간을 또렷이 되살리는 일이 고통스러워 일부러 흐려진 마음 같은 것이라 표현한다. 저자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추억이 더 아련해지는 것도 눈부시게 빛나던 그 시간이 지나 상실감이 커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책 속에서 40대 가장의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저자는 마흔을 넘으면 근사한 어른이 될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슬픈 일인 것 같다. 무언가 새로운 것에 계속 설레고 희망을 꿈꾸는 것보다 많은 것들을 잃고, 때론 포기하고, 좌절하는 순간들이 늘어간다. 그래서 찬란한 과거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련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바쁜 일상에 지쳐 우리는 때때로 마음속에 쌓여있는 감정들을 제대로 분출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묻어두곤 한다.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그 감정들을 꺼내어 제대로 들여다보고 감정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내 마음을 위로할 시간도 필요하다 생각한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책의 구성은 심플하다. 3개의 장으로 나누었고, 각 장마다 10개의 감정 이야기를 담았다. 독자는 목차에서 자신이 읽고싶은 감정 표현을 찾아 그 감정 표현에 대한 글일 읽으면 된다. 잘 고른 감절 표현 30개다.
1. 머뭇거리다: 마음에 쉼표를 찍는 순간 / 시큰거리다: 딱 그만큼의 슬픔에서 멈출 때 / 소중하다: 시간이 자주 빼앗아 가는 것/ 애통하다: 슬픔의 비명 소리 / 애틋하다: 세상의 모든 B급에게 / 두근거리다: 모든 심장의 첫 멜로디 / 뜨끈하다: 옆은 모르는 곁의 온도/ 부풀다: 연애와 결혼의 밑감정 / 공감하다: 마음의 전류가 흐를 때 / 가난하다: 크리스마스의 마음
2. 자만하다: 삶에 보내는 긍정의 시그널 / 기울다: 마음이 들리는 순간 / 막막하다: 슬픔이 얼어붙는 순간/ 허무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의 마음 / 설레다: 꿈이 꿈틀대는 순간 / 욕망하다: 거위의 꿈? 거품의 꿈!/ 순수하다: 순결해서 위태로운 고집 / 단념하다: 마음을 잘라내는 마음 / 무참하다: 당신은 모르는 슬픔 앞에서 / 가련하다: 같은 아픔에 이웃하는 마음
3. 후회하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마음에 대하여 / 호젓하다: 가만히 내려앉는 생을 기억하며 / 참혹하다: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비통함/ 무너지다: 마음의 건축학개론 / 벅차다: 까슬까슬한 성장통의 마음 / 비뚤다: 정치의 마음 / 꼿꼿하다: 저절로 굳어버린 마음에 대하여/ 아련하다: 일부러 흐려진 마음 / 가엽다: 울음을 참는 자의 표정 / 애끊다: 작별할 수 없는 슬픔
공감하다: 마음의 전류가 흐를 때 : 저자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있었던 경험들을 이야기 하면서 관련 감정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커피 한잔과 함께 사연들과 감정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읽으면서 참 좋은 시간을 보냈다. 먼저 요즈음 미디어에서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공감하다’에 대해서 읽어 보았다. 저자의 공감하다는 마음의 전류가 흐를떄이다. 저자는 코로나가 최악의 상황으로 갈때 미국 연수를 떠났고 그곳에서 느꼈던 정치인 트럼프에 대해 느꼈던 감정과 코로나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는 환자 가족과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공감에 대해서 사색한다.
아련하다: 일부러 흐려진 마음 : 저자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온 나라를 덮치기 전에, 아르바이트로 모은 배낭여행 비용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20대의 젊음은 현재의 저자가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호기있고 대책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뒤 영국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면서 그때와 지금의 자신과의 사이에서 아련함을 느낀다고 한다. 저자는 아련함은 통증을 수반하는 마음으로 야야기한다. 분명히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처럼 흐려져서 내 존재마저 낯설게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련함에는 어떤 비의가 숨어있는데, 바로 특정한 추억들을 회피하고자하는 의지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아련함은 지나온 시간에 가림막을 치고, 그것을 흘겨보려는 절절한 의지의 투영이라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20대의 호기로웠던 생활에 대해서 일부러 기억의 가림막을 치며 현재의 나를 위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아련하다... 나는 참 이말의 어감을 사랑한다. 무언가 내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지 못한 안타까움이 나의 감정에서는 아련함으로 다가온다. 나의 20대에서 꿈꾸고 고민했던 것들, 지금은 잊혀진 그때의 꿈들에 대해서 아련하게 느끼는 것이다. 정강현님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20대의 나의 꿈과 나의 희망에 대해서 다시한번 아련한 감정을 느껴본다. 이래서 수필집이나 산문집이 좋은가 보다...
감정 도서관, 총리뷰
저자의 인생에서 느꼈던 감정 30가지를 물흐르듯이 깔끔하게 쓴 산문집이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만의 인생의 감정 도서관을 하나 만드는데 필요한 모델하우스 같은 책이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아껴가며 읽었다.
사람과 숨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쓴 글.
작가 내면의 이야기를 써내려갔을 뿐이지만
어쩐지 내 마음에 다정한 것이 와닿고, 위로를 받고,
몇 번은 울컥하기도 했다.
머뭇거리다, 설레다, 가련하다, 애끓다…
‘안다’라고 생각해서 쉽게도 쓰던 낱말들이
생생한 삶의 장면으로 불어나 무겁게 다가온다.
기꺼이 삶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고
진득하게 앉아 견뎌낸 사람이라야 이런 글을 쓰는 거겠지.
살다 보면,
갖고 싶은 것이나 해야 하는 것이나 혹은
누군가 내게 기대하는 것을 좇아 마구 달리다 보면,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필수품-돈, 명성, 인맥, 성취…-을 얻는 과정에서 오는
부산물 따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냥 내달리면 되는데
괜히 설레서 일을 그르치고,
괜히 아파서 머무르고,
괜히 멋쩍어서 늦어지고.
그런 것은 아닌가.
이런 마음에 찾아오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던 순간들.
그런데 정강현의 글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을 걸어온다.
오히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되짚어야 할 정도로 동요가 일어난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인생에서 배우고 얻어갈 무언가가 일어난 때라고.
앞으로 그런 순간을 만나게 되면
기꺼이 밤의 서재에 찾아가
사건과 상황과 이를 대하는 내 마음을 살펴보기로.
깊이 천착하여 삶이 선물하는 다채로움을 깨달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아마 오래오래 곁에 두고선
잠 못 드는 밤마다 들러볼 책이 될 것 같다.
+덧붙여, 책 속에서 소개되는 또 다른 책들에 대한 흥미도 마구 생긴다. 저자는 삶의 중요한 순간에 문학을 겹쳐 볼 수 있는 눈을 지녔다. 오랜 시간 읽고 생각하며 쌓아온 지혜 같은 것이리라. 읽을 게 많이 생겨서 기분이 좋다!!
정강현님의 산문집을 읽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감정도서관. 제목답게 목차는 수많은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시큰거리다, 애틋하다, 기울다, 무참하다, 가련하다, 꼿꼿하다와 같은 말들 말이다. 나는 마음에 박힌 단어를 먼저 찾아 읽어보았다. ‘비뚤다’ 부제는 ‘정치의 마음’ 이었다. 어제 정치인 이재명 대표가 부산에서 피습을 당한 기사를 읽고 난 뒤라 더욱 궁금했다. 상당 기간 정치부에서 기자 생활을 한 저자였기에 올해 4월 총선거를 치르는 대한민국에 봄비는 내릴지 되묻고 있던 그였다. 김해화의 ‘아내의 봄비’ 라는 시를 언급한 저자는 서민이라고 우기는 정치인들에게 서럽게 따져 묻고 싶단다. 선거철에나 서민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서민들의 고된 삶을 뼛속까지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일이 서민들의 삶에 꽃을 피우는 일이라고 말이다. ‘봄비 값까지 이천원이면 너무 싸네요’ 라는 시구처럼 노점에서 장사하는 빈궁한 노인의 손을 잡고 봄비 값을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을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지금 우리 정치의 마음은 비뚤기만 하다며 한쪽으로 기울거나 쏠려서 도무지 합쳐질 수 없는 마음들이 여의도 곳곳에서 부유하고 있다. 기왕 비뚤어진 것이 정치라면 서민 쪽으로 확 비뚤어지길 꿈꾸는게 타당하지 않을까 반문하는 그였다.
‘마음이 들리는 순간’ 이라는 ‘기울다’ 라는 단어도 경청을 설명하기에 유익하다. 그것은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는 물리적 행위이지만 실은 마음을 기울이는 내적 움직임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의 모든 대화는 마음의 기울기에 따라 그 성패가 결정된다는 비의를 품고 있는 듯하다. 마음이 기울었다는 것은 내 존재를 기꺼이 쏟아냈다는 뜻이니까. 사소한 가족의 다툼부터 난해한 정치적 논쟁까지 상대방의 주장을 먼저 경청한다면? 난제 속에서도 나와 네가 마음과 마음을 함께 기울여 마주보며 말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이리라. 답을 찾지 못한다한들 우리의 대화를 실어나르는 바람만은 아는 대답일거라 이야기하는 저자의 끝맺음이 인상깊다.
마지막으론 애틋하다라는 단어다. 저자의 아이를 생각하면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워서 이상한 슬픔에 도달해 버린 마음이라 표현했다. 너무 기뻐서 너무 슬픈 마음도 있다는 그 역설적인 마음을 해명하고자 저자의 영세한 언어가 겨우 꺼내보는 말이기도 하단다. ‘나는 내 아이가 자라서 겨우 내가 될까봐 초조했고 내 오랜 상처를 바라볼 때처럼 정답게 서글펐던 것 같다.’ 는 문장을 읽고 눈물이 맺혔다. 보통 사람들의, 그러니까 B급 인생들의 정겨운 밑감정인 애틋함이 아이를 향할 때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것 같다. 아이의 인생에선 아직 모르는 서늘한 진실이라든지 가장 보통의 삶에 매달리는 꼬리표같은 무언가가 사랑의 기슭에 서식하는 감정같아 더욱 애틋하다.
저자가 고른 단어들을 새삼 떠올려보며 함께 사색해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공감한다는 것은 함께 마음을 교류하는 일이다. 마음의 전류가 내 쪽에서 당신 쪽으로 , 당신 쪽에서 내 쪽으로 흘러갈 때 우리는 공감의 전원 버튼을 기꺼이 누를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일방적으로 그 전류를 흘릴 뿐, 상대에게서 건너오는 마음의 전류는 닥치는 대로 차단해 버리는 '악성'정치가였다. 그러니까 그는 공무를 수행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차라리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악명 높은 '셀럽'에 불과했다. (-87-)
설렘은 꿈의 마음이다. 설렌다는 건 당신이 이제 막 꿈의 시동을 걸었다는 뜻이다. 가슴 한 켠에서 쿵쿵 설렘의 소음이 들렸다면, 당신은 이제 막 꿈의 기슭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설렘이란, 그러므로 모든 꿈의 신호탄이다. 살면서 숱한 꿈을 품어왔다. 어린 시절 장래 희망부터 시작해 근사한 직업인이 되고 싶다는 꿈, 그리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꿈에 이르기까지, 꿈을 꾸는 건 언제라도 설레는 일이었다. (-137-)
소설 『순수 박물관』이 활자로 만들어진 세계하면, 이스탄불 시내에 문을 연 박물관은 공간과 사물로 창조된 소설처럼 보였다. 7월 하순이었고 ,이스탄불은 낮 최고기온이 38도를 넘나들 정도로 무더웠다. 순수 박물관이 있는 이스탄불 추쿠르주마 거리는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뿌려놓은 물로 축축했다. 입구에는 1445년 세워진 대중 목욕탕이 있었는데, 이 목욕탕은 600 년 가까이 이 거리에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160-)
호젓함이란 외로움의 복수형이다.상대를 상정하지 않고서도 우리는 종종 나 홀로 외로울 수 있지만, 오직 누군가를 가져본 사람만이 호젓함을 안다. 하나였던 마음이 둘로 쪼개져서 홀로 남겨질 때 ,우리는 호젓함의 기슭에 다다른다. 누군가 떠나버린 텅 빈 자리에서 ,호젓함은 복수형의 외로움으로 내려앉아 마음을 더 크게 짓누른다.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는 것이 생의 법칙이라면 , 삶이란 결국 끝없이 이어지는 호젓함의 서사인지도 모르겠다. (-204-)
갓 정치부에 배치됐을 때 가장 의아했던 부분이 정치인이라는 직업 정체성 그 자체였다. 국회의원 대다수는 빼어난 학력에 경력도 눈부신데, 무슨 이유에선지 정치판에만 들어오면 평균 이하의 지성으로 수직 낙하하는 걸까. 사적인 자리에선 지극히 상식적이고 선량한 사람들조차 국회에 입성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뚤어진 마음 상태로 뒤바뀌는 건 왜일까.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평균 재산이 수십억 대인 국회의원들이 선거철만 되면 너도나도 서민이라고 주장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낯 두껍게 서민 코스프레를 했다. (-241-)
정치부기자 생활을 오래하였던 정강현 기자의 산문집 『감정도서관』은 서른 가지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머뭇거리다' 에서'애끊다' 로 끝나고 있으며,작가의'시큰거리다'에는,우리의 삶 속의 희노애락과, 인생관, 생활관,가치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30가지 감정에서 눈에 들어왔던 감정은 '시큰거리다','공감하다','순수하다','설레다','호젓하다'이다. 우리는 살아보면, 시큰거릴 때가 있다. 시큰 거린다는 것은 멈출 때가 되었다는 것이기도 하며, 마음이 시큰거릴 때, 내 삶을 돌아보게 해주는 감정이다. 작가는 동계스포츠 선수 이상화의 은퇴 이야기에서,'시큰거리다'를 주워 담고 있었다.. 도전하고 싶었고, 무언가 하고 싶었던 이상화는 갑자기 홀연히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런 모습은 이상화 뿐만 아니었다. 2002년 포르투갈 결승골 주인공 박지성 선수 또한 비슷하였기 때문이다.
공감하다는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감정이다. 부족하고, 실수가 많아도,우리는 사람을 버릴 수 없다. 공감이라는 단어가 그것을 판단하고,결겅하고,경계를 짓는 단어이면서,인간의 고유한 감정이다. 그리고 공감하지 않은 사람을 경계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나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공감하지 않은 정치인이다.그런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4년뒤 새로운 정치인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그가 왜 대통령 감이 안 되는지, 저거 정강현의 정치적 시선에 따라서 읽을 수 있다.
'셀렌다'는 나의 꿈과 연결되고 잇다. 일에 대해 설레일 수 있고, 사람에 대해서 설레일 수 있다. 무언가에 설레인다는 것은 멈출 수 없다는 말의 다른 의미였다. 공감이라는 감정 만큼 설레임이라는 감정 또한 인간미를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감정이며,위에게 꼭 필요한 생존 도구이기도 하다.
정치인의 본질을 '비뚤다'에 빗대어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감정은 마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돈이 많고, 학력이 높은 정치인은 정치를 할 때면 아수라처럼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비뚤어진 심성이 정치인의 본모습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아쉬울 것 없는 기업인으로 살아온 이가 정치인으로 바뀌자 마자 그의 비뚤어진 모습은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나기도 하였고, 얼굴이 일그러진 채 노출되는 모습이 불편하게 생각된다.
이 책의 마지막은 '애끊다'로 끝나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소회를 적어 놓고 있었으며, 일흔 여덟, 가난한 삶으로 시작해서,가난한 삶으로 끝난 한 남자의 삶에 대한 애끊은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우리 삶 속에 채워질 수 없는 슬픔으로 채워지는 눈물 한방울을 부정(父情)과 '애끊다'에 함축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책이 좋다. 주입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나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책.
이 책을 읽고 흐리고 넓었던 감정 스펙트럼에 인덱스를 붙인 것 같다. 작가의 생각을 빌어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소중한 독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정강현 산문집 #감정도서관
기자이자 작가인 정강현 저자는
직장인으로서 사회적 삶을 보내며
아빠이자 아들로서 가정의 삶을 지나오며
마주한 감정의 순간들을 이 책에 담아냈어요.
애틋하다, 자만하다, 허무하다, 설레다, 무참하다 등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러한 감정들
30개를 모아둔 책이에요.
이 책을 통해 감정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 좋았어요!
이런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 깊은 사색에 빠져보고 싶으신 분
- 사색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고 싶으신 분
- 내 안의 감정을 살펴보고 싶으신 분
이상하게도 쉽게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바쁜 일정에도 책을 이렇게나 길게 놓은 적이 없었는데, 모든 부분에서 좀 지쳤다고 느껴지는 요즘이기 때문일까.
일 년 간 아이들의 기록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며 그들의 성장을 글로 남기는 이 시기가, 어쩌면 나를 갉아내는 시기라고도 느껴졌다. 과연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지.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그 끝에 나는 후회 없이 시원하게 걸어나올 수 있을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아직도 작업을 다 마무리 짓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일단락 된 상황에서 허겁지겁 책을 잡아 들었다.
오래 달리기 끝에 피맛이 나는듯한 호흡을 내뱉으면서, 물을 콸콸 부어 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오히려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조급할 때에는 물도 체하기 마련이니까.
사회, 문화, 정치부에서 활동했던 정강현 기자님의 산문은 처음 접해보는데, 문장에서 깊이가 느껴졌다. 자세를 바로 잡고 천천히 음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조금 더 젊었을 때에는 나이를 더 먹으면 그 때 무엇인가를 해봐야지 하고 속으로 약속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더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무언가에 머뭇거리게 된다는 것이 마음에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으며
일에 사로잡힌 일상에서도 어떻게든 가만히 사색할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
그것만이 노동에 질식되지 않고 인간의 가치를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방 방도라는 저자의 말이 마음을 쿡쿡 찌른다.
📝 12쪽
소설 속 어떤 인물이, 시 한 줄에 응축된 진실 한 토막이, 철학적 명제가 웅크리고 있는 한 문장이 당신조차 알 수 없는 마음을 해명해 주는 기적적인 일이 가끔은, 아주 가끔은 분명히 일어난다.
📝 37쪽
시간을 영원히 붙잡아 둘 방법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붙잡아 두지 않으면 영영 아름다운 순간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나는 사진기 셔터를 눌러가며 시간을 열심히 오려내곤 했다.
📝 57쪽
하지만 세상을 밀고 가는 절대다수는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존재들이다. 아주 넘치지도 그렇다고 아주 부족하지도 않은 생애. 말하자면 B급 인생들. 나와 나란히 걷고 있는 저 보통의 삶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내 아이를 바라볼 때처럼 애틋하다. 애틋함이란 보통 사람들의, 그러니까 B급 인생들의 정겨운 밑감정이다. 그래, B급이라도 애틋하게 사랑할 줄 아는 생애라면.
#감정도서관 #정강현 #인북 #에세이 #사색 #김윤아추천도서 #마음관찰 #서평 #독후감 #서평단 #이벤트 #도서지원
🌷 위의 서평은 도서지원을 받아 탐독한 뒤,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을 담아 작성하였습니다.
늦은 밤, 당신의 마음이 오롯이 얼굴을 드러내는 밤, 그러나 가만히 그 마음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이 낯설었던 밤, 그런 밤 언제나 그렇듯 마음이 한 가지 표정만을 짓는 날은 거의 없다. 누군가 마음을 대신 읽어줬으면 한다.
인간은 ‘분심’들로 복잡하게 구축 된 영혼의 성체라 한가지 말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의 무게가 ‘분심’의 언어를 통해서만 해명 될 수 있다고 한다.
온갖 책들로 가득한 당신의 서재는 실은 마음의 일들을 해명해주는 ‘감정도서관’이기도 한 것이다. 마음을 몰라서 그렇지 마음만 잘알면 반짝이지 않는 인생은 없다.
- 프로로로그 중에서 -
작가는 머뭇거리다, 소중하다, 공감하다, 가난하다, 자만하다, 설레다, 무너지다 등의 30가지 감정에 대한 단어들을 그의 서재와 그만이 쓸 수 있는 단어로 표현한다.
오은 시인이 말처럼 작가의 동사, 형용사는 하나같이 삶을 수놓는 것들이다.
또 그의 감정에 대한 표현은 김호정 기자의 말처럼 그가 적었기에 사람의 박동을 바꾸는 일이 된다.
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온 힘다해 표현했고, 읽는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30가지 감정 중에서 ‘가난하다’를 가져왔다.
가난하다 : 크리스마스의 마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와락]이라는 시집이 생각난다는 저자. 와락은 마음을 당기는 말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밀어내는 말이라서란다.
작고 연약한 것들에 마음을 내어줄 때, 우리 마음은 가난해진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타인의 슬픔에 가닿으려는 안간힘이다. 97페이지
우리가 마음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해 볼 때 이 책은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고, 따뜻한 와락이 되어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