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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년 코리아 리포트, 서긍의 고려도경

문경호 저자(글)
푸른역사 · 2023년 12월 27일
8.5
10점 중 8.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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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십자가十字街…몽수蒙首…녹전거祿轉車…추포麤布
미처 몰랐던 900년 전 개경의 고려 사람들
외국인 눈에 비친 고려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
《고려도경》은 꼭 900년 전인 1123년 송 휘종이 보낸 사절단의 일원으로 약 한 달간 고려에 머물렀던 서긍이 기록한 여행기이다. 단순히 여행기라 하기 힘든 것이, 학문과 그림에 뛰어났던 서긍이 꼼꼼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개경을 비롯한 당시 고려의 풍광과 고려인들의 풍속을 생생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조선 시대에 비해 문헌자료가 부족한 고려사를 연구하려면 《고려도경》을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라면 지은이는 12세기 고려가 처했던 상황과 오늘을 견주어 실리외교를 생각해보는 계기로 《고려도경》 읽기를 권한다. 한국사에서 외침을 가장 많이 받았던 고려가 싸울 때와 강화 맺을 때를 잘 구분했던 지혜를 짚어보는 계기로, 《고려도경》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설명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문경호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의 사학과와 역사교육과에서 학위를 마쳤다. 현대는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바다에서 발굴한 고려사》(2023), 《고려시대 조운제도 연구》(2014), 《21세기에 다시 보는 고려시대의 역사》(2018, 공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1323년 왜구 침입 기사를 통해 본 신안선의 항로와 침몰일〉, 〈1123년 서긍의 고려 항로와 경원정〉, 〈여말 선초 조운제도의 연속과 변화〉, 〈태안 마도 1호선을 통해 본 고려시대의 조운선〉 등이 있다.

목차

  • 들어가면서

    1장 서긍 길을 떠나다
    봄날에 떠난 사행길|신선이 점지해 준 아이|현명하고 청렴한 관직 생활|황제도 반한 글씨와 문장

    2장 12세기 초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연운 16주를 차지한 거란제국|탕구트족의 나라 서하|새롭게 부상한 북방의 강자 여진|고집 센 천재 개혁가 왕안석|집권당에 따라 달라진 송의 대외 정책|풍류천자의 방만한 재정 운영

    3장 송의 사신선 신주와 객주
    신주라는 말에 담긴 의미|신주와 객주의 규모와 형태

    4장 신주의 고려 항로
    신주가 있는 사명으로|바다로 나간 신주와 객주|두려움의 바다 흑수양

    5장 고려의 바다에 들어선 송의 사신단
    봉화가 시작되는 흑산도|서긍이 만난 첫 고려인|김부식과 만난 서긍|다양하게 생긴 고려의 선박들|군산도에서 마도로|두 번째 상륙지 안흥정|자연도라고 불렸던 영종도|고려 최대의 무역항 벽란도

    6장 예성강에서 개경으로
    엄숙한 고려 의장대|송의 사신 행렬|산으로 둘러싸인 고려의 도성|서긍의 눈에 비친 개경의 풍경|고구려와 고려를 구분하지 못한 서긍|생각보다 엉성한 고려의 성곽

    7장 서긍이 본 고려의 궁궐과 도성
    장식이 빼어난 신봉문|궁궐 꾸미기를 좋아하는 고려인들|왕의 생일잔치를 열었던 장경전|학술기구 청연각과 보문각|크고 작은 9개의 전각들|도성 안의 여러 관청들|쌀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창고|빈약한 시장과 허울뿐인 화폐

    8장 서긍이 만난 고려 사람들
    어진 왕의 기질을 갖춘 고려왕|고려 최고의 훈척 이자겸|문장이 뛰어난 윤관의 아들 윤언식|소동파와 비견할 만한 김부식|수염이 아름다운 김인규|중화의 풍모를 가진 이지미|연회에서 만난 사람들|학구열이 높은 고려인들|송의 태학에 입학한 고려인들

    9장 고려인들의 복식과 의장
    관등에 따라 장식과 색깔이 다른 관복|갑옷을 입은 말과 여러 종류의 수레|행진할 때 세우는 여러 종류의 기치旗幟|신분에 따라 조금씩 다른 고려인들의 옷차림|고려식 히잡, 몽수를 쓴 고려의 귀부인들|고려 여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한쪽 머리 묶기|물건을 이고 지고 아이까지 업은 고려 여인들|예의 바르고 부지런한 하급 관리들|사신의 시중을 드는 하인들|재주가 좋은 고려의 수공업자들

    10장 고려의 풍속
    부처를 숭상하는 나라|불을 밝히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단술과 떡이 빠지지 않는 잔칫상|관리들의 일 처리|관리가 관리를 만났을 때|관리가 행차할 때|말을 타는 고려의 부인들|깨끗한 고려인, 잘 씻지 않는 중국인|산지에 만들어진 고려의 다락논|고기보다는 생선을 많이 먹는 고려인들|도살과 고기 요리에는 서툰 요리사|고려의 나무꾼|나무에 칼로 새겨서 셈하는 서리들|공덕을 쌓는 고려인들|고려의 특산물

    11장 사신관과 주변의 건물
    사신들의 숙소 순천관|깔끔하면서도 화려한 방|순천관 뒤편의 사신 숙소|여러 사신의 거처와 아름다운 정자들|사우와 도교사원|개경에서 가장 화려한 정국안화사|큰 종이 걸려있는 광통보제사|왕실 사찰 흥국사와 국청사

    12장 고려에서 본 그릇과 도구
    은으로 만든 그릇|백동과 구리로 만든 그릇|물총새 깃을 닮은 고려의 비색 청자|차 마신 후에는 탕을 마시는 고려문화|투박하지만 실용적인 도기 술독|등나무를 엮어서 만든 광주리|죽솥과 물항아리|칼과 붓이 들어있는 만능 필통

    13장 돌아오는 길
    신주에 다시 오른 사절단|위험한 항해, 연속되는 위기|자나깨나 나라 걱정

    나가면서
    《고려도경》은 어떤 책인가|기적처럼 전해진 《고려도경》|21세기에 본 12세기의 동아시아 상황|다시 《고려도경》에 주목하는 이유

    찾아보기

책 속으로

1122년 휘종이 고려에 국신사를 보내려고 준비할 무렵, 송에 입공한 고려의 사신이 글씨에 능한 자를 구해 고려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고려 사신의 요청을 들은 휘종은 노윤적을 국신사로 파견할 때 서긍을 데리고 갈 것을 명령하였다. 그의 임무는 휘종이 고려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고려에 대한 각종 정보를 글과 그림으로 제작해 오는 것이었다(36쪽).

1123년 송 국신사 일행의 고려 사행은 두 가지 임무를 띠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1122년에 세상을 떠난 예종에 대한 조문 조서와 조의 물품의 전달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책봉을 권유하는 휘종의 뜻을 전함으로써 고려와 군사적인 동맹 관계를 견고히 구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휘종은 고려에 대한 송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원풍 시기의 사례에 따라 신주를 제작할 것을 명하였다(58쪽).

고려인들은 송 사신이 흑산에 이르면 밤마다 산의 정상에서 봉화를 피워 다른 지역에 그것을 알린다는 것이다. 사공의 말에 따르면 흑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봉화를 피우면 그것이 해안을 따라 개경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그것은 조정에 사신의 도착 여부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공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등대이기도 했다(89쪽).

물을 실어온 위도 사람들은 본래 함께 출발한 통역관과 길잡이를 제외하면 서긍 일행이 처음 만난 고려 사람이다. 그들은 머리에 삿갓을 쓰고, 긴 삼베 저고리를 입었는데, 아래 바지는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92쪽).

6월 12일 아침에 비가 그치자 사행단은 밀물을 따라 예성항에 이르렀다. 정오가 되자 정사와 부사가 수하를 거느리고 황제의 조서를 채색한 고려의 배에 옮겨 실었다. 서긍이 눈을 돌려 예성강 변을 보니 말을 탄 고려의 장수들과 병졸들이 각종 깃발과 병기 등의 의장물을 들고 해안가에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신주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담장처럼 강가에 늘어서 있었다. 그의 눈에는 구경꾼들이 족히 1만 명은 되어 보였다(120쪽).

고려의 도성은 송악산 아래에 계단형으로 구축되어 있었다. 높고 화려한 문루에 막혀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송의 왕궁과 달리 고려의 궁궐은 층을 이루며 펼쳐져 있어 한눈에도 웅장해 보였다(133쪽).

서긍의 눈에 개경의 지세는 오공산의 산줄기가 왼쪽 배천-남계와 어우러져 마치 ‘시냇물을 마시는 푸른 용’처럼 보였다. 전체적인 지세가 동방을 뜻하는 청룡의 형국이니 “독립된 영토를 보유하고도 중국의 속국이 되는 것이 합당하다”는 《계림지》의 기록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134쪽).

개경 역시 그러한 원칙에 따라 건설되었다. 먼저 도성에는 12개의 문이 설치되었다. 선화宣華, 정북쪽의 문은 북창北昌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사이마다 2개의 작은 문을 더 두었다. 정동에서 정서에 이르는 동부대로와 서부대로, 광화문에서 가장 남쪽의 회빈문에 이르는 남대가와 남부대로는 다른 길보다 더 크고 넓었다. 두 길은 궁궐의 남쪽에서 교차했는데, 고려 사람들은 그곳을 ‘십자가’라고 불렀다(137쪽).

당, 송과 마찬가지로 고려의 시장은 도성 남쪽에 있었다. 고려의 시전은 경시사로부터 남쪽 흥국사 다리에 이르는 길과 광화문에서 봉선고에 이르는 길에 긴 행랑의 형태로 마주 보고 들어섰다. 그 규모는 수백 칸이나 되어 보였다(137쪽).

일반 백성들의 집은 벌집이나 개미구멍처럼 작았다. 목재라고는 서까래 두 개를 세워놓은 정도였으며, 지붕은 대부분 띠로 이은 초가집이었다. 통역관의 말에 따르면 개경의 호수는 약 10만에 이른다고 했다(138쪽).

승평문에 들어서자 예상치 못한 넓은 구장毬場이 나타났다. 고려에 자주 드나드는 상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의 구장은 본래 고려 왕과 왕족, 신하들이 격구를 즐기거나 반승(승려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행사)을 여는 행사장이라고 했다(151쪽).

연영전각延英殿閣은 고려 왕이 진사들을 친히 시험하는 곳이다. 지금 천하에서 과거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곳은 송을 제외하면 고려와 대월大越(베트남 리 왕조)밖에 없다. …… 보문각은 중국의 여러 황제가 내린 조서를 봉안하는 곳이며, 청연각은 여러 유교 서적과 제자諸子, 문집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한다. 앞서 고려에 다녀간 사신들의 기록에 따르면 왕순王詢(고려 현종) 때에 이미 임천각에 소장된 책이 수만 권이나 되었다고 하였다(161쪽).

서긍이 들으니 죽은 왕우는 신하들에게 자신이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늘 간언을 아끼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신하들이 왕의 뜻을 반신반의하여 몸을 사리고 말을 아끼자 스스로 ‘벌곡조伐谷鳥(고려 말로 뻐꾹새)’라는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뻐꾹새는 아름다운 소리로 잘 우는 새이다. 신하들이 뻐꾹새처럼 계속 왕의 잘못을 비판해도 자신은 개의치 않겠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했다(163쪽).

고려의 창고에 보관된 쌀은 비록 두어 해가 지나도 새것과 같은데, 그것은 섬에 담아 공기가 통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고려에서 섬은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쌀을 담는 것은 물론이고, 숯과 같은 땔감을 담는가 하면, 심지어 밀가루나 면과 같은 음식 재료들도 섬에 담아 나른다(171쪽).

고려의 관리는 현임으로 녹을 받는 사람이 3천여 명이고, 관등만 있고 관직이 없는 산관 동정이 1만 4천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전토는 모두 지방에 있어서 …… 지방에서 곡식이 올라올 때면 예성강에는 쌀을 나눠주는 사람과 그것을 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녹전거祿轉車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녹전거는 바퀴가 크고 짐을 싣는 부분이 넓은 수레이다(173쪽).

서긍이 관찰하고 조사한 결과 고려에는 상설 점포가 없는 것 같았다. …… 고려인들은 해가 떠있는 동안에만 남는 물품을 가지고 나와 필요한 물품과 바꿀 뿐이었다. 심지어 물건을 사고팔 때 화폐를 사용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모시와 삼베, 또는 은병으로 그 값을 지불하는 듯했다. …… 옷감은 옷을 만들어 입기보다는 상거래에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추포麤布’라고 부른다고 했다(174쪽).

남대가라고 부르는 큰 거리에 대시사大市司ㆍ경시사京市司가 동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두 관사는 모두 시장 상거래와 도량형의 정확성 등을 관리하는 관청이다. 만약 상인들이 저울의 눈금이나 도량형기를 속이는 경우 두 관청에서 잡아다 벌을 준다고 한다(176쪽).

서긍은 일찍이 고려 사람들이 사민四民 중에서 선비를 가장 귀하게 여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가난한 집이라고 하더라도 책이 없는 집이 없으며, 선비들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아주 어릴 때부터 스승을 찾아 학문을 익힌다고 했다. …… 사신들의 말을 끄는 마부는 물론이고, 순천관에서 심부름을 하는 아이들도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192쪽).

고려의 선비들은 …… 각촉부시刻燭賦詩라는 것을 하며 즐긴다고 한다. 각촉부시란 초의 중간 부분에 눈금을 새기고, 초가 그 지점까지 타기 전에 시를 짓는 일종의 글짓기 경연대회이다(193쪽).

문벌가의 자손들은 물론이고, 아래로는 군졸과 어린아이들까지 향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고려 조정에서는 지방의 백성들에게도 공부할 기회를 주기 위해 경학박사를 파견한다. 시전거리를 지나다 보니 여염집과 누추한 시장거리에도 책을 파는 가게들이 두셋씩 마주 보고 있었다(194쪽).

서긍이 벽란도에 내릴 때 보니 고려 여인들은 대개가 흰색 모시 저고리에 노란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 《계림지》에서 읽은 구절을 생각해 냈다. 고려의 여인들이 무늬가 들어간 비단옷을 입거나 꽃무늬를 수놓은 옷을 입으면 어사라는 관리가 그것을 압수하고, 그 사람은 벌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개경의 왕성에 들어와 보니 왕비와 비빈들은 물론이고, 고관대작의 부인들도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218쪽).

고려 귀부인들의 복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검은 비단으로 만든 몽수蒙首라는 너울을 쓴다는 것이다. 몽수는 세 폭으로 만들어졌으며, 폭의 길이는 8척(약 160센티미터)이나 된다. 얼굴과 눈만 내놓고 모든 것은 가리는데, 정수리로부터 아래로 늘어뜨리니 땅바닥에 끌리게 된다(219쪽).

고려 여인들은 또한 물건을 머리에 이는 것을 매우 잘한다. 어지간히 큰 물건이 아니라면 어깨에 메지 않고, 머리에 이고 다닌다. …… 항아리에는 두 개의 귀가 있어 한 손으로는 머리에 인 항아리의 귀를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옷을 추스르며 걸어간다(225쪽).

고려인들 중에는 이복형제나 사촌 간에도 혼인을 하는 사례가 많았다. 부유한 사람들은 3~4명의 부인을 맞기도 하지만, 전례典禮(정해진 격식과 절차)가 없어서 쉽게 만났다가 헤어지는 일이 많다. 남편이나 아내가 죽으면 재혼하는 것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재혼한 사람의 자녀가 과거를 보거나 재물을 물려받을 때에도 본처의 자식들과 차별하는 일도 없다(238쪽).

사람이 죽으면 염만 하고, 관은 사용하지 않는데 그것은 왕이나 귀족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가난하여 장례를 지낼 형편이 못 되면 들 가운데 버려두는 일도 있는데, 까마귀와 솔개, 개미가 시신을 훼손하더라도 그것을 크게 잘못이라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개경 근처에는 왕릉을 제외하면 무덤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239쪽).

고려 사람들은 뇌물을 주고받는 것이 공공연하며, 길을 다닐 때는 바삐 걷는 것을 좋아한다. 서있을 때는 손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뒷짐을 지는 사람이 많고, 부인이나 비구니가 절을 할 때도 남자처럼 한다(241쪽).

“같은 관청에 근무하는 관리들끼리는 길을 가다가 잠시 멈춰 간단히 인사를 합니다. 서로 다른 관청에 있는 관리들은 궁중이나 길에서 만나면 서로 맞절을 합니다. 보통은 관직이 낮은 관리가 먼저 절을 하면, 고관이 답례를 합니다.”(248쪽)

고려에서 부인婦人은 공경이나 귀인의 처를 일컫는다. 부인들이 외출할 때에도 말을 탄다. 그녀들이 타는 말과 그것을 끄는 노복은 나라에서 내려준 것이라고 한다. 서긍은 순천관을 오가다가 간혹 그녀들의 행차를 목격했다. 머리에는 검은 비단으로 만든 몽수를 쓰고, 그 위에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몽수의 끝은 말의 등을 모두 덮을 만큼 길어서 바람이 불면 하늘거렸다(251쪽).

고려인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가장 먼저 목욕을 한 후에 집을 나섰다. 날씨가 더운 여름에는 하루에 목욕을 두 번이나 한다고 했다. …… 중국인과 달리 고려인들은 흐르는 시냇물에 모여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의관을 언덕에 벗어놓은 후 목욕하는 것을 즐겼다. 그들은
속옷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252쪽).

고려 사람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처를 믿어 살생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다만, 송나라 사신들이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으면 그때부터 미리 양과 돼지를 기른다. …… 서긍이 들으니 고려인들이 도축을 할 때는 동물의 네 다리를 묶어 불 속에 던져 그 숨이 끊어지고 털이 없어지면 비로소 물로 씻는다고 한다. …… 내장을 모두 잘라내고 똥과 오물을 씻어내는 것이 손질의 전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고려에 와서 먹은 국이나 구이에서는 야생동물에게서 나는 고기 누린내가 났다(256쪽).

서긍이 고려에 와서 인상적으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고려의 물은 거의 다 그냥 먹을 수 있을 만큼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려 사람들은 특별히 차를 마시거나 물을 끓여 먹지 않는다. 병이나 바가지만 가지고 다니면 어디서든 물을 떠서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나그네들의 짐보따리에는 표주박이 걸려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274쪽).

면약호는 얼굴을 따뜻하게 하는 약을 담은 항아리이다. 한기가 있을 때 약을 담은 물을 끓여 수증기가 오르면 얼굴에 쬐어 체온을 높이고 얼굴이 상하는 것을 막는다. 서긍이 보니 사신들의 방마다 면약호가 준비되어있었다. 다만, 정사와 부사를 비롯하여 상절이 묵는 곳에 있는 면약호는 은으로 만들고, 다른 처소에 있는 것은 구리로 만들었다(291쪽).

서긍이 고려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큰 거리에서 승려들이 죽을 끓여서 행인들에게 대접하는 것이었다. 죽을 쑤는 솥은 철로 만들었으며, 세 개의 발이 달려있고, 위에는 뚜껑이 있다. 솥 아래 세 발 사이에는 불붙은 숯을 담은 그릇이 있어서 늘 따뜻한 죽을 대접할 수 있다(305쪽).

고려에서는 하급 관리들을 일컬어 도필지임刀筆之任이라고 한다. 도필지임이란 칼과 붓을 사용하는 관리, 즉 실무 행정을 맡은 서리라는 의미이다. …… 조그만 칼과 붓을 가지고 다니면서 목간이나 죽간에 글자를 쓰기도 하고, 칼로 깎거나 새기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붙었다(306쪽).

출판사 서평

글 읽는 마부, 재혼이 자유로운 과부
《고려도경》은 9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주는 것만으로 읽는 맛이 넘친다. 당초 사절단의 목적은 연려제요聯麗制遼(고려와 연대해 요나 금을 제압한다)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었지만 이를 위해 고려 내정을 탐색한 서긍의 기록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고려의 속살을 보여주어서다. 개경에 ‘십자가十字街’로 불리는 대로가 있었다든가(137쪽) 궁궐의 승평문 안쪽에 왕과 왕족이, 신하들이 격구를 즐기던 너른 구장毬場이 있었다는(151쪽) 대목은 당시 고려의 성세를 짐작케 하는 풍광이다. 그런가 하면 고려는 선비를 가장 귀하게 여겨 사신들의 말을 끄는 마부도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으며(192쪽) 이복형제나 사촌 간에도 혼인을 하고 배우자와 사별했을 경우 재혼이 자유로웠고 그 자식들도 본처 자식과 차별하지 않았다는(238쪽) 둥 조선 시대와도 사뭇 다른 풍속은 《고려도경》에서만 만날 수 있는 기록이다.

새롭게 다듬고 알차게 보탠 ‘타임머신’
원래 총 40권으로 구성된 《고려도경》은 고려의 역사, 도읍과 궁궐의 구조, 군사들의 종류와 장비는 물론 서민과 여인, 기술자들의 모습, 풍속 등을 29개 항목으로 나눠 촘촘히 기술하면서 그림을 덧붙였다(그러기에 ‘도경圖經’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림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은이는 《고려도경》의 역주, 해제 수준을 넘어 완전히 새롭게 썼다. 역사로 시작해서 해로로 끝나는 원저의 구성을, 송나라 출발 장면으로 시작해서 서긍이 휘종에게 《고려도경》을 바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식으로 뒤집었다. 여기에 서긍의 면모, 거란과 여진의 부상 등 당대 동아시아의 긴박한 정세에 대한 설명을 더해 독자들이 시간을 거슬러 고려인들의 진면목을 그려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옛 지도와 사진, 연구 성과 등을 참조해서 화가 김영주 선생의 미려한 그림을 삽화 형태로 곳곳에 넣어 《고려도경》이라는 ‘타임머신’의 효용을 더했다.

역사소설 같은 유려함, 인문서다운 깊이
독자 입장에서 더욱 반가운 점은 역사소설을 방불케 하는 유려한 서술이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급수문(손돌목)에 이르러 “급수문은 산골짜기에 묶여 놀란 파도가 해안을 치고 구르는 돌이 벼랑을 뚫는데 천둥처럼 요란하고, 쇠뇌가 날아가는 소리나 말이 바람을 헤치고 달려가는 소리라고 해도 그 급한 물살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란 서긍의 감상을 인용하는 대목(118쪽) 등은 역사서가 아닌 문학작품의 향기를 전하는 예다. 여기에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의 당송 대 시인의 작품이나 《설문해자》 등 고전을 적절히 인용해 읽는 맛과 인문학적 지식을 더하는가 하면 사절단의 배를 보여주기 위해 18세기 일본의 그림 〈당선지도〉를 보여주는 관련 자료를 풍성하게 보태는 노력이 더해져 그저 그런 역주본이나 역사 교양서 수준을 뛰어넘는다.

사족: 고려 예종은 ‘벌곡조伐谷鳥(고려 말로 뻐꾹새)’라는 노래를 지었단다(163쪽). 신하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간언을 당부했으나 이를 꺼리자 신하들의 비판을 아름다운 뻐꾹새 노래처럼 듣겠다는 뜻이었다나.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56122661
발행(출시)일자 2023년 12월 27일
쪽수 352쪽
크기
152 * 224 * 25 mm / 633 g
총권수 1권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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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번역한 것인지 번역한 내용을 정리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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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돼요
대부분의 역사가 왕조의 흥망을 기록한 것인데, 여기에서는 12세기 고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당시 고려의 실리외교의 단면도 알 수 있고. 한자로 되어 있으면 얼마나 읽기 어렵겠는가. 번역하신 저자께 감사드린다.
10점 중 10점
/쉬웠어요
12세기초의 고려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다. 원본을 이렇게 재미있게 쓴다면 역사책에 대한 어려운 인식이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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