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토박이도 몰랐던 우리동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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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지금의 홍천을 시간이 멈춰버린 시골로 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홍천을 매년 발전하는 지역으로 볼 것이다.
거침없이 살다 보니 벌써 홍천에서 산 지도 3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에 따라 그만큼 홍천에서의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지금의 홍천은 내가 어렸을 적 알던 홍천하고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떠한 변화는 발전이라 부를 만큼 좋아졌지만, 또 다른 변화는 마음을 아리게 할 만큼 홍천을 바꾸어 놓았다.
내 삶에 많은 변화를 주며 발전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지만 나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홍천이 변화하는 모습에 발맞추어 나 또한 한 걸음 변화하여 살아가지만 아름답던 지난 그 시간 들을 가슴에 담아 현재와의 연결을 통해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미래에 대해 나누고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그때는 그만큼의 아름다운 홍천이 있었노라.” 이야기 나누고 싶다.
어찌 보면 이 책의 이야기는 본인의 이야기일 수 있고 완전히 이해 못 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그때의 홍천을 마음에, 눈에 담아 두고자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작게 남아 그 시절 홍천을 이해하고 가슴 따뜻해짐이 전달되었으면 한다.
작가정보
목차
- 1부 봄에는 그랬더라.
갯벌의 진주, 홍천강 봄 벚꽃 야경
봄 소풍도 산으로, 등산의 민족 홍천인
미로 같던 골목길
우리동네 장 공장
2부 에어컨 없이 찌는 여름에
계곡보다 다리 밑
우리집만 홍수가 ?!
지금은 갈마곡리
장맛비에 흙냄새
3부 벌써 가을은 지나서
밤나무는 어디에
가을운동회와 볼거리
엿장수와 야시장
백일장과 무궁화 공원
4부 호빵과 함께했던 따끈한 겨울
호빵과 겨울 군것질
눈만 오면 동네가 전쟁터
크리스마스와 달란트
나의 터전 연봉리
책 속으로
1. 봄에는 그랬더라.
- 갯벌의 진주와 홍천강 봄 벚꽃 야경
홍천 야경의 아름다움은 갯벌의 진주와 같다.
나는 걷는 것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걷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좋은 길의 뚜렷한 주관을 가질 만큼 걷는 것에 진심인 사람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는 날 날씨가 좋아 걷기 시작해서 20일을 걸어 서울서 부산까지 걸어갈 만큼 나는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 기준에서 좋은 길이란 걷기도 편하고 너무 힘들지 않으며, 볼거리가 많은 길이다.
그에 맞추어 볼 때 홍천강 강변은 참으로 걷기 좋은 곳이다.
특히 홍천강 강변은 밤에 걷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누군가는 홍천강 강변을 강원도의 일반적인 시골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는 9시부터 낮보다 더 밝아지고 밤이 더 화려하게 변화하겠지만,
홍천은 9시가 되면 대부분 가계가 문을 닫고 읍내 전체가 쉼의 시간으로 들어선다.
그때의 홍천은 적막 그 자체이고, 읍내 전체가 잠을 자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 적막한 시간에 홍천의 강변 풍경은 고희의 걸작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가깝다.
조용한 홍천의 정취와 강에 번지는 별빛과 조명의 조화로 아름다운 명화의 모습처럼 보인다.
읍내에 강이 흐르기에 강변을 따라 걷는 코스는 잘 정비 되어있다.
특히 밤에 강변을 걷는다면 은하수처럼 펼쳐진 조명들과 별빛과 조명들에 반짝거리는 강물을 보면서 신선놀음하듯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많은 홍천의 사람들이 저녁이면 홍천강 강변을 걷고는 한다.
가족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걷고, 연인끼리도 달달 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홍천강 강변을 걷다 보면 강변의 여러 조명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기본적인 위에서 아래로 내려주는 조명부터, 레이저 조명에, 색상이 계속 변경되는 조명 그리고 바닥에 붙어서 별처럼 빛나는 조명도 발견할 수 있다.
바닥에 붙어 있는 조명은 그리 환하지 않지만, 그만큼의 아름다움과 분위기를 전달해 준다.
바닥에 붙어 있는 조명을 받으며 걸으면 별빛을 밝고 걷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 센서가 달려 있어 내가 지날 때마다 연달아 켜지는 조명길이 있는데, 순차적으로 계속 켜져서 아름답기도 하고 뭔가 드라마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화양교는 저녁이면 시간에 따라 조명을 바꾸며 조명 쇼를 하기도 한다.
이처럼 걷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조명들을 찾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조명뿐만 아니라 홍천강 강변을 걷는 사람에게 흥미를 주는 요소가 몇 가지 있는데 그것 중
하나는 돌 징검다리이다.
돌 징검다리는 두 개나 있는데, 이 또한 걷는 이에게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걷다가 보이는 돌 징검다리는 뭔가 도전해 보고 싶은 도전 욕구가 생기게 만든다.
보기에는 작고 별거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홍천강 강변의 돌 징검다리는 그런대로 꽤 길어
한번은 건너 볼만하다.
위태위태하게 걷는 징검다리는 그 나름의 스릴과(?!) 재미를 주지만 가끔 사람이 넘어지거나 빠지기도 하니 조심해야 하는 곳일 것이다.
돌이 계속 물살에 깎여 반질반질하고 물이끼도 끼고 해서 보기보다 미끄럽다.
낮에는 잘 보여 괜찮으나 밤에는 위험하니 돌다리를 건너는 도전은 꼭 낮에 하기를 바란다.
요즘의 강변은 화려한 조명으로 사람들이 밤에도 불편하지 않게 환하게 길을 비추어 준다.
코스도 작은 코스 2km(소요시간 20분)부터 4km(소요시간 40분), 긴 코스 7km(소요시간 80분)까지 있어 자신이 원하는 코스대로 맞추어 걸을 수 있어 좋다.
홍천에 가장 큰 휴식 시설은 강변의 길이 아닌가 싶다.
특히 홍천의 강변길은 4월 벚꽃이 피었을 때 절경을 이룬다.
강변을 따라 벚꽃이 피어 있어 강변을 걷는 내내 벚꽃과 함께하게 된다.
벚꽃 길을 한참 걷고 집에 도착하면, 뭔가 나에게도 벚꽃 향기가 나는 듯하다.
벚꽃의 발화는 홍천의 아름다운 강변의 모습에 벚꽃이 화룡점정을 찍는 느낌이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을 보며 걷는 강변길은 오늘의 피곤함과 슬픔을 날려줄 만큼 아름답다.
그래서 봄에는 더 많은 사람이 강변을 걷고는 한다.
홍천의 강변이 사실 처음부터 이리 아름다운 길은 아니었다.
본인이 처음으로 기억하는 홍천의 강변은 사실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강변은 거의 무법천지 같은 모습이었다.
강변의 정비가 되지 않아 녹색 말도 많았고 강변에 쓰레기도 많이 버려져 있었다.
하수 정화 시설이 제대로 안 되는 곳에서는 하수 냄새가 심각하게 나기도 했다.
그러하였기에 그 당시만 하더라도 강변을 걷거나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지금이야 밖에서 운동하는 문화가 생활이 되었기에 저녁마다 조깅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강변이 그리 아름다운 모습만은 아니었다.
냄새도 나고 정화 시설도 제대로 되지 않고 몰래 버리는 쓰레기에 홍천군의 골머리를 쓰게 하는 공간 중에, 하나였다.
다행히도 홍천군의 변화에 한 분야로 홍천강 강변의 변화가 생겼다.
홍천군에서 홍천강 강변을 정비하는 사업을 진행했고 물길이 깨끗하게 변화하고 정화 시설도 예전보다 잘 정비되어 냄새도 많이 없어졌다.
이제는 홍천강 강변은 홍천군민들의 쉼터로서의 큰일을 하고 있다.
홍천강 강변의 변화는 홍천군에서의 삶에 변화 중 쉼이라는 변화를 주는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매년 겨울마다 읍내 홍천강에서는 홍천강 꽁꽁축제를 열린다.
축제를 열고자 강바닥을 얼려서 장소를 마련해야 하고 강에서 포크레인이 얼리는 틀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매년 그렇게 겨울이 오면 축제를 위해 강바닥을 뒤집어 축제장을 만들고, 축제가 끝나면 다시 원상 복구한다.
매년 반복되는 이러한 상황은 홍천강 에게는 매우 안 좋을 것이다.
쉼터가 되어주는 홍천강에 우리는 매년 이러한 피해를 주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홍천의 새로운 한 걸음이 된다고 생각한다.
홍천강 강변은 과거에 비해 많은 발전을 이룬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좀 더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
조금 더 달라질 방향을 이제 깨달았으니 좀 더 창의적인 생각과 자연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더욱 아름답고 보존되는 홍천강 강변으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갯벌의 진주처럼 홍천의 가장 빛나는 아름다운 홍천강 강변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 봄 소풍도 산으로 등산의 민족 홍천인
살면서 한 번도 산을 타지 않았다면 당신은 홍천 사람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는 겁 많고 키 작은 어린아이였다.
그 당시 나는 홍천 초등학교를 다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입학한 학교는 홍천국민학교였다.
3학년을 지나면서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나는 어쩌다 보니 홍천 국민학교에서 입학하고 홍천 초등학교에서 졸업한 사람이 되었다.
초등학교라는 표현 자체가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 변경되었다고 한다.
과거의 국민학교 학생과 지금의 초등학교 학생의 차이를 나누어 보라고 하면 나뉘는 것이, 특별히 무엇이 있겠냐 만은 억지 적인 나의 소견으로 나누어 본다면 활동량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의 아이들도 활동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유년 시절을 생각해 본다면 그 시절 아이들은 일단 기본적으로 뛰고 있었다.
pc방과 유튜브가 없고 오락기가 적었던 시절이기에 재미있는 것은 직접 뛰어 찾아 다녀야 했던 시절이었기에 산이나 들 어디든 일단 들어가 보고 넘어지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래서 학교도 야생마(?!) 같은 아이들에 맞추어 많은 활동이 있었다.
홍천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소풍 포함해서 최소 두개비산을 10번 이상은 같던 것 같다.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쥐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한발 한발 그 산을 올랐다.
당시만 해도 반에서 맨 앞에 설만큼 키도 작고 체력도 좋지 않아 나는 등산을 싫어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단체로 오르기에 어쩔 수 없이 산을 올라야 했다.
지금도 올망졸망한 그 산은 전체적으로는 작은 산은 아니지만 정상이 그리 멀지 않아서,
학교에서는 가끔 활동으로 두개비산을 올랐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전교에 학생들이 두개비산을 올랐다.
뭔가 홍천초등학교 학생이라면 당연히 두개비산 정도는 타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힘들고 혹시 모를 사고가 있을까 조심히 오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었는지 산을 자주 올랐다.
두개비산은 높지 않은데다 길도 안정적으로 되어있어서 지금도 작은 아이들이 타고 하는 산이다.
나는 이산을 어렸을 당시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걷는 것을 좋아하여 등산도 나름 괜찮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는 산을 타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어차피 내려와야 하는 산을 타는 것도 싫은데 산을 타는 것, 자체가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학교에서 소풍으로 두개비산을 오르기도 했다.
멀리 가는 소풍도 아니었기에 작은 김밥 정도만 매고 산을 타고는 했는데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 큰 곤욕이었다.
사실 두개비산의 경치는 참으로 좋은 편이다.
산에서 올라서 보는 경치는 홍천의 시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거기다 두개비산은 코스가 여러 개 있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서 코스를 걷는 시간이 달라지기도 했다.
이런 아름다운 두개비산에서 나는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작은 꼬마였던 나는 친한 친구들과 아무 생각 없이 두개비산을 올랐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친구들이 할 것도 없으니 가자는 말에 혼자는 빠지기 싫어 따라나선 길이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따라간 길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뭐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조금만 조심하고 아래로 내려간다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친구들과 모두 꼬맹이였기에 정신이 없었고 무서웠다.
3명의 친구와 함께였는데 뉴스에서 개구리 소년들 실종 사건도 있었고 해서 우리는 겁을 많이 먹었었다.
길을 잃은 이유는 우리가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고 길이 아닌 곳으로 갔다가 길을 잃은 터였다.
다행히 우리는 울지는 않았다. 만약에 누군가가 울었다면 우리는 단체로 멘붕이 와서 내려오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을 것이다.
한 시간이면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두개비산을 우리는 5시간을 헤맨 후에 내려올 수 있었다.
산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서 우리의 모습은 거의 거지꼴에 가까웠다.
어머니는 그때 내 모습을 보고 거지가 들어 온다고 하셨다.
그때부터였을까 이후로 산을 타는 것이 겁나지 않았다.
중학생 때는 가리산으로 학교에서 야영을 갔다.
지금이야 가리산은 휴향지가 되어서 집라인도 있고 서바이벌 등의 시설이 있지만
그 당시 만해도 그러한 시설은 없었고 우리는 폐교에서 잠을 청하고 폐교부터 가리산까지
2시간 정도를 걸어 등산을 하고 내려왔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서 석화산을 올랐다.
참으로 홍천에서의 학교생활에서는 산은 땔래야 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강원도에 산다고 산을 자주 타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참으로 홍천에 살면서 나는 산을 학교에서 자주 탔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에는 친구들과 남산을 자주 올랐다.
나는 연봉리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고 친구들과 가끔 주말이면 연봉리에 위치한 남산을 탔다.
두개비산이나 석화산보다 남산은 홍천에 전경을 제대로 잘 볼 수 있는 곳이고,
가깝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산 이었다.
취업하기 위해 공부를 할 때도 회사를 그만두고 와 백수가 되었을 때도 친구와 남산을
탔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운동이 필요할 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 가볍게 남산을 탔다.
사실 남산이 그리 높거나 특별한 것이 있다고, 자랑하기 할 만한 대단한 산맥을 가진 산을 아니다.
장비를 준비하지 않고 누구나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산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남산은 좀 더 가슴에 남는 산이 되었다.
예전에는 남산에서 행글라이더도 하고 그랬다.
지금이야 행글라이더를 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많은 사람이 남산으로 올라와 날았다.
하늘을 날고 있는 행글라이더를 볼 때면 뭔가 내가 나는 듯이 시원한 감정도 들었다.
남산은 홍천강 강변 다음으로 홍천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새벽부터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남산을 오르신다.
나물을 캐시는 분들도 있고 버섯을 따시는 분들도 있다.
남산은 입구 부분에 약수터가 있어서 사람들은 산을 타기 전에 약수터 물을 마시기도 하고 내려오면서 시원한 약수를 마시기도 한다.
요즘은 약수터가 관리가 잘되지 않아서 물을 못 마시게 되어있으니 주의하기를 바란다.
남산도 예전과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예전에 남산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산이었다.
약수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제대로 된 의자 하나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남산을 오르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에 가로등이 설치되었고 길마다 의자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체육시설이 생겨났다.
사실 그러한 운동기구를 누군가 이용을 하는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노인분들이 이용을 많이 하시는 듯했다.
남산은 낮은 산이기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 좋은 산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뭔가 생각할게 있을 때 많이 걷고는 했다.
공무원 준비를 그만둘 때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남산을 올랐고 새로운 목표를 생각할 때도 남산을 걸었다.
사실 남산을 탔다기 보다 나는 남산을 걸었다.
어찌 보면 남산은 걷기 좋은 산이라고 할 수 있다.
홍천 시내에 있는 두 개비산, 석화산, 남산 중 나는 남산을 가장 걷기 좋은 산이라 말한다.
가장 시설도 좋고 관리도 잘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인원이 오르고 있는 산이다.
홍천의 산이 아쉬운 점은 이제는 산들의 주변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산의 경우도 앞에 많은 공장이 생겨났고 석화산 주변도 발전에 맞추어 많이 파해쳐졌다.
두개비산의 경우도 시설의 변화를 위해서 산이 많이 파해쳐 졌었다.
산은 변화가 없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시대는 산도 변화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도 등산로가 안정적으로 되어있고, 사람들이 이용할 시설이 많아야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아지기에 군에서도 그에 맞추어 산에 변화를 주고 있던 것 같다. 산속에 화장실조차도 현대식으로 변화되어있는 것을 볼 때면 뭔가 좋으면서도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 두개비산에는 국궁 활터가 있었다.
대단하게도 국궁을 산에서 산으로 화살을 쏘아서 목표표적지에 맞추는 것이었다.
산과 산이라고 하기에는 멀지는 않은 거리지만 그래도 산과 산 사이에 표적지가 있기에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활터가 사라지고 표적지가 있던 곳은 공원이 들어섰다.
공간이 크지는 않지만 작은 공원이 하나 들어선 것인데 그곳까지 차가 들어서기에
환경이 변화가 크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그곳에는 사람만 다녔지 차가 다니는 공간은 아니였다.
이처럼 산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사실 남산도 두개비산처럼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남산에도 언제부턴가 공사를 자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산림시설도 생기고 아이들이 산림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설도 생겨났다.
산속의 교육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는데 컨테이너의 시설도 있고 나무 그네에 징검다리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이 많이 생겼다.
그뿐만이 아니라 배드민턴을 칠 수 있는 시설도 생겨났고 족구장도 있다.
산은 더 이상 산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지는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합 종합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과연 산의 변신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자연의 변화를 좋은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 산의 변화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책을 쓰면서 홍천의 산에 대해서 기존에 생각했던 개념들이 변화 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다니면서 느끼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고는 생각한다.
무분별한 발전으로 환경이 파괴되는 경우 반대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홍천의 산이 변화하면서 그에 따라 산을 이용하는 홍천군민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서 공사 전과 비교를 했을 때 홍천군에서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이용객이 많이 오른 것으로 되어있었다.
변화를 꺼리는 사람도 있지만 변화를 좋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사람이 는다면 그것이 또한 정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홍천의 산들은 계속 변화하고 정비 되어 가고 있다.
내가 알던 산이 몇 년이 흐르면 다른 산이 되어 갈지도 모르겠다.
산의 변화만큼
기본정보
ISBN | 9791198518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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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출시)일자 | 2023년 11월 15일 |
쪽수 | 148쪽 |
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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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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