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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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한겨레신문 > 2023년 11월 5주 선정
사랑하기와 한몸
박노식 시집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
“벼락 맞은 나무처럼 누워서/빗소리를 듣는” 것은 “아직도 기다려야 할 사람이 있고/시를 오래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얻기까지 “세상은 쓸쓸하고 사랑은 멀고/꺾인 꽃은 또 꺾이고/나의 노동은 감옥”(「이른 아침, 멍하니 까마귀 울음소리를 듣다」이다.
시인에게는 이처럼 사랑을 기다리는 일과 시를 쓰는 행위가 한가지다. 이것은 시집 뒤표지에 실린 곽재구, 고재종 시인의 ‘표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시인이다. 아침에 눈 뜨면 시를 쓴다, 꽃이 피면 시를 쓰고 바람이 불면 시를 쓴다. 길에서 만난 눈송이에게, 새털구름에게, 물 위에 뜬 산그늘에게 인간의 시를 들려주는 그의 모습은 따뜻하고 평화롭다. 우리의 서정시가 피워 낸 한 송이 들꽃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곽재구 시인)
“박노식에겐 시가 사랑이고 사랑이 곧 시다. 박노식의 한 편 한 편의 시는 사랑의 대상에 대한 울렁거리고, 서럽고, 맹렬하고, 지독히 아픈 사랑의 고백이다. 그 한 편 한 편 사랑의 고백은 다시 시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 대상을 향한 마음에서 모든 시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고재종 시인)
하지만 사랑은 멀고, 시 또한 멀리 있으니 시인은 불화할 수밖에. 시인은 그 연원을 유년의 ‘그늘’에서 찾는다. “내 시의 처음은 그늘에서 왔다/이른 자의식은 끔찍한 독백을 낳는다”
본래 독백 혹은 내밀한 자기 고백은 자조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달빛이 부서지는/대숲 속에서 웅크렸으므로 환희가 없고” “말로 살지 못해서/나에겐 시가 없다”(「꿈속의 옹달샘처럼」)
그런 그가 중년이 된 어느 날 고물상에서 주워 온 둥근 시계를 벽에 걸어두고, 그것의 실존만큼이나 늦어버린 자신의 시 쓰기를 걱정하고 다짐한다.
어느 날 고물상에서 주워 온 둥근 시계를 흰 벽에 걸어두고
금 간 유리를 서너 번 다독여 주었더니 바늘이 움직였다
저것이 나를 끌어당기거나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을 알았지만
너무 늦어버렸으니, 내 시의 씨앗이
저 시간 속에서 얼마나 버틸까 걱정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꿈에서 만난 옹달샘을 나는 믿는다
쉼 없이 토해내는 아픈 물방울들은 아름답다
진지하니까 늘 새로운 것처럼
새로우니까 내가 살아가는 것처럼
- 「꿈속의 옹달샘처럼」 부분
그러니까 그의 시 쓰기는 오래전 잃어버린 ‘환희’와 ‘말’을 되찾는 일이다. 독백에 섬세한 체험이 들어설 때, 어떤 본연의 깨침이 들어설 때 사랑의 감옥, 시의 감옥에서 사계절을 끙끙 앓는 시인의 시에 돌연 생기가 돈다.
“시는 오지 않고/기다림마저 떠나버릴 때/어느 고적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지/눈을 뜨니까 그가 몰래 와서/내 곁에 누워 있었던 거야”(「시가 찾아오는 순간」)
“작은 꽃씨 하나도/견딜 수 없을 땐 터진다/통곡은 이처럼 자기를 깨부순다/빛나는 연애는 여기에 있다”(「빛나는 연애」)
시도 아닌 것을 붙들고 애걸복걸할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시가 기다림마저 떠나버릴 때에야 새들의 노랫소리처럼 곁에 와 있다는 깨달음, 작은 꽃씨 하나도 견딜 수 없을 때 터지듯이 자기를 깨부술 때에야 빛나는 연애가 있다는 깨달음, 이것이 그의 시가, 사랑이 세상과 화해하는 비밀이다.
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았다.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지금은 화순군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이 책의 총서 (36)
작가정보
목차
- 5 시인의 말
제1부 봄
13 이른 아침, 멍하니 까마귀 울음소리를 듣다
14 너와 앉았던 그 강가의 앵두나무
15 봄이 오면 아프다는 너를
16 내가 나를 지우고 싶어질 때
17 치자꽃
18 한 장의 엽서
20 시로 돼지나 잡아라
22 시가 찾아오는 순간
24 꿈속의 옹달샘처럼
26 그 사람을 만나고 오던 길에
27 초록 애인
28 목련 앞에서
29 꽃 속에서
30 흰 꽃은 소식이 없네
32 봄 나무에게 건네는 말
33 장미
34 노을
제2부 여름
37 여름 하늘
38 섬진강가에 홀로 앉아
39 인연이 오는 순간
40 여름밤
41 사랑스런 두 발걸음
42 그 느티나무 아래 작은 돌
43 그날, 그 길을 다시 갔을 때
44 그 여름의 끝은 향기로웠다
46 8월
47 더는 아플 일 없이
48 그날, 그 첫 마음
49 무람없는 일
50 새털구름
51 석양
52 괜찮아, 지금은
54 나의 뮤즈
55 별이 내게 준 선물
제3부 가을
59 입추
60 가을은 어떻게 오는가
61 길가의 칸나꽃
62 혀
63 별의 씨앗
64 나는 한때, 조연배우였다
66 궁금했지만 지금은 아닌
67 그 수녀의 눈빛처럼
68 가을이라는 무서운 병
69 빛나는 연애
70 진정한 사람
71 오름
72 애월에서
73 갈대
74 포옹
제4부 겨울
77 젊은 애인과 백석과 아름다운 석인상
78 새 발자국
79 ‘너’라는 이름은 쓸쓸해
80 가혹한 기다림
81 너와 나 사이에 흘러가는 아픔
82 암암리에
83 다정
84 곁
86 네 잎 클로버
88 오지 않는 소식
89 통영에 와서
90 아픔이 오는 순간
91 문장의 무게
92 외면당한 짐승
93 빈집의 살구나무
94 해설 시와 사랑에 대한 ‘이 견딜 수 없는 울렁거림’ _ 고재종
추천사
-
그는 시인이다.
아침에 눈 뜨면 시를 쓴다, 꽃이 피면 시를 쓰고 바람이 불면 시를 쓴다. 초승달이 산마을을 찾아올 때 시를 쓴다. 장맛비에 거미줄을 비운 거미를 생각하며 시를 쓰고 며칠간 거미가 굶을 것을 생각하며 시를 쓴다. 그의 시에 세상을 향한 선언이나 양심을 위한 인간의 고백 같은 고상한 몸짓은 없다. 오직 시와 자신만의 대면이 있을 뿐이다. 시인은 종일 시의 얼굴을 매만져주고 시는 시인의 주름살을 쓰다듬는 모습이 펼쳐진다. 영원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여기 있다고 얘기하는 그의 시는 품격 있는 위로를 준다. 이 위로야말로 시가 지상의 생명에게 전하는 신성이라 할 것이다. 길에서 만난 눈송이에게, 새털구름에게, 물 위에 뜬 산그늘에게 인간의 시를 들려주는 그의 모습은 따뜻하고 평화롭다. 우리의 서정시가 피워 낸 한 송이 들꽃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
박노식에겐 시가 사랑이고 사랑이 곧 시다. 박노식의 한 편 한 편의 시는 사랑의 대상에 대한 울렁거리고, 서럽고, 맹렬하고, 지독히 아픈 사랑의 고백이다. 그 한 편 한 편 사랑의 고백은 다시 시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 대상을 향한 마음에서 모든 시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실제 인물이거나 아니거나, 시는 이미 상상력의 가공을 거치기에, 다다르거나 가닿을 수 없는 사랑의 환상이기도 하리라. 나이 육십 세를 넘어서까지 사랑의 환상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박노식의 사랑의 우울과 서러움은 이게 또한 지옥이 되기도 하는 걸 어떡하랴.
기본정보
ISBN | 9791191277753 |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10월 06일 | ||
쪽수 | 112쪽 | ||
크기 |
125 * 200
mm
/ 151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문학들 시인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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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해지고 힐링이 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에 나온 이 작품도 인간의 마음을 힐링시켜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