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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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총서 (84)
작가정보
경기도 고양시 거주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도시계획학과
일본나고야 UN지역센터 지역계획과정
샘터문예대학 총재(현)
샘터문예대학 석좌교수
(사)샘문그룹 고문
(사)문학그룹 샘문 고문
(사)샘문학문인협회 고문
(사)샘문뉴스 칼럼니스트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사)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사)한용운문학 회원(샘문)
(사)한국문학 회원
전국한용운시낭송대회 추진위원장
샘문시선 회원
〈수상〉
계간스토리문학 시 등단
한용운대상 수상(샘문그룹)
한용운문학상 최우수상(계관부문)
국가상훈인물대전(문화예술) 등재
한국문학인대사전 등재
국무총리(총무처) 표창
건설부장관(건교부) 표창
부총리(경제기획원) 표창
〈공저〉
첫눈이 꿈꾸는 혁명 외 다수
〈컨버젼스 시집/샘문시선〉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한용운공동시선집/샘문시선〉
〈저서〉
국토와 정책(1998),
땅의혁명(2007주집필) 외 다수
〈시, 시화집〉
존재의 이유
당신의 이야기/ 공가에 피는 꽃
허공에 집짓기/ 엄니 정말 미안해요
포애트리 파라다이스/ 사랑 넘 어려워
봄을 도적질하다/ 탐미/ 풍마
들에는 산에는 꽃이피네 꽃이지네
〈가곡집〉
나 애인이 생겼어요
작가의 말
앞머리에
내 몸은 온 몸에 피가 흐른다. 피는 음식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곧 먹는 것은 피를 만드는 것이다. 살아감은 이같이 먹는 문제가 제일이다. 인간은 이를 위해 땅으로부터 곡식과 식품을 생산하여 얻는다. 인간만이 이러한 창의적인 작법으로 식음료를 생산하여 얻는다. 이는 혁명을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산업혁명과 더불어 승수효과를 일으켜 인간이 먹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곡식과 채소를 대량생산하게 되었다.
인간의 존재는 사랑이라는 피의 총체적 영혼의 집에 머물러 살아가게 된다. 이 사랑은 종교적 사랑과 인간적 사랑과 영혼적 사랑이 뒤엉켜 사랑은 매우 복잡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며 이 사랑으로 인해 인간은 부단히 전쟁하며 살육과 파괴를 일삼아 왔다.
나도 명백한 것은 사랑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내 몸에 사랑이 충만하여 있다. 사랑은 나의 온 힘이다. 사랑은 앞을 열어주는 눈이다. 사랑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이다. 그러나 사랑은 내 가슴에 숨어서 세상을 본다. 진정 사랑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내가 실천해야 할 매일의 일과이다.
사랑은 아름다움이다. 사랑은 보석 덩어리다. 사랑은 구세주처럼 군림한다. 사랑은 잠꼬대처럼 중얼거린다. 사랑은 꿈꾸듯 몽롱하다. 사랑은 되돌아오는 에코러스다.
사랑은 시루떡 가루다. 사랑은 콩가루다. 사랑은 풀밭의 여치다. 사랑은 꽃잎의 이슬이다. 사랑은 뭐 그렇고 그런 거다. 사랑은 뜬 소문처럼 이러쿵 저러쿵이다. 사랑은 단추 구멍 같다. 사랑은 목을 매는 넥타이 같다. 사랑은 귀에 거는 귀고리 같다. 별 볼 일 없는 대수롭지 못한 것 같다. 기찻길 언덕에 열린 늙은 호박 같다.
행여 내가 무엇이 그리워 갈지자로 걸어가면 내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기대주고. 따스한 등에 기대 사뿐히 걸어갈 수 있게, 내가 디걱딕걱 구두 소리 내며 걸어가면 살짝 다가와 하이힐 소리 내며 삐걱 삐거덕 소리를 들려주오. 내가 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며 걸어가면 천천히 다가와 립스틱 빨간 앵두 오물락 조물락거리는 입술로 말해주오. 내가 한참 멋을 내고 걸어가면 천천히 다가와 미니스커트 살짝 올려 허벅지 보여주오. 이처럼 세상을 쪼금만 엿볼 수 있게 나를 위해 하실 수 있도록 여기 시를 써 올립니다. 바지랑대처럼 빨래를 널 때 필요한 그것처럼 세워 주오. 어쩌나 빨래가 없으니 바지랑대는 아무 소용이 없다. 여기 시를 올리오니 시를 빨아서 바지랑대에 빨래처럼 널어주오.
2023. 7. 10.
雲山 서 창 원
목차
- 생각을 그리다
서창원 제10시집
시인의 말 _ 앞머리에 / 4
평설 _ 자연교감과 자아와 인생탐구 / 손해일… 6
1부 생각을 그리다
생각을 그리다 / 24
詩도 물이다 / 25
詩도 똥이다 / 26
이녁 / 27
천국天國의 계단階段 / 28
등만 기대도 따듯해 / 29
누이 / 30
흰 / 31
흑黑 / 32
별 나라 / 33
우리 집 / 34
한 세월 / 35
이다지 / 36
요사이 / 37
구사일생九死一生 / 38
꽃길 먼 길 샛 길 / 39
술 말 타고 가다 / 40
청강수 / 41
산山 파도波濤 / 42
山는개 / 43
낙선재 / 44
창경궁의 봄 / 45
까치밥 / 46
바람이 꽃물 들어 불어간다 / 47
혼자 / 49
원주민 통고 색 / 50
나비 부채 / 51
손자의 결혼식 / 52
세상의 중심 / 53
끝없는 먹힘 / 54
가리왕산 등마루 / 55
새집 / 56
봄 여름 가을 겨울 / 57
공릉천변 / 58
벽제천이 희다 / 59
꽃 편지 / 60
입춘立春 / 63
춘화春花 / 64
탁탁 때리다 / 65
그녁 / 66
2부 큰 산이 작은 풍경으로 운다
환생還生 / 68
부처님은 홀로 고독하시다 / 69
구룡사의 물소리 / 71
헛불 / 72
종鐘잡을 수 / 73
바람의 도주 / 74
이 세상을 느낀다면 행복해요 / 76
불울佛鬱 / 77
찰나刹那 / 78
무구한 생멸生滅 / 79
만경대에서 / 80
구름 한 점이 / 81
하늘의 꿈 / 82
절 꽃 / 83
큰 산이 작은 풍경으로 운다 / 84
심욕心慾 / 85
오세암五歲菴 / 86
속세의 시발점 / 88
하늘이 가득 하구나 / 89
인연의 옷 / 90
봉정암 / 91
눈을 떠도 옳은 것은 볼 수 없구나! / 93
지장봉 꽃향기 / 95
산 꽃은 늘 외롭다 / 96
가까이 보면 모두 내 것이다 / 97
바람은 물소리로 운다 / 99
바람의 꽃심 / 100
바람은 영원을 일러준다 / 101
바람은 별이 된다 / 102
길상사 / 103
무직 부처님 / 104
꽃이 핀다고 너무 좋아하지 마라 / 105
복수초 / 106
가짜 / 107
나를 사랑해 보자 / 108
나 1 / 109
나 2 / 110
나 3 / 111
나 4 / 112
나 5 / 113
나 6 / 114
나 7 / 115
나 8 / 116
3부 그립다는 것
시간의 역사 / 118
광화光化의 빛 / 119
국도 1호선 / 120
인구폭탄人口爆彈 / 121
그립다는 것 / 122
우리 아버지 / 123
아버지는 공짜 / 124
좋은 동네 아버지 / 125
막걸리 / 126
춤을 추다 / 127
그리워도 안 되겠네 / 128
하이델베르크 / 129
지중해 니스 해안 / 130
강강술래 / 131
해물 칼국수 / 132
씀바귀 / 133
산 등 / 134
어쩌면 / 135
그렇다 / 137
마음의 안경점眼鏡店 / 138
나의 일 / 139
산을 오르며 / 140
친구 / 141
인진人震♂X♀ / 142
북한산 산내1-0 / 143
북한산1-1 / 144
북한산1-2 / 145
북한산1-3 / 146
북한산1-4 / 147
북한산1-5 / 148
북한산1-6 / 149
나의 봄 / 150
화첩畫帖 / 151
고개를 넘다 / 152
나무 유서遺書 / 153
9시의 별 / 154
눈물 / 155
유월의 평온 / 156
꽃 자궁子宮 / 157
꽃서방질 / 158
구멍 / 159
호박꽃 / 160
산새 / 161
진달래꽃 / 162
4부 신록의 산빛
당신1 / 164
당신2 / 165
당신3 / 166
당신4 / 167
당신5 / 168
당신6 / 169
당신7 / 170
당신8 / 171
당신9 / 172
당신10 / 173
당신11 / 174
당신12 / 175
당신13 / 176
당신14 / 177
당신15 / 178
당신16 / 179
당신17 / 180
당신18 / 181
당신19 / 182
당신20 / 183
당신21 / 184
당신22 / 185
당신23 / 186
당신24 / 187
당신25 / 188
당신26 / 189
시간 멈추기-1 / 190
시간 멈추기-2 / 191
시간 멈추기-3 / 192
시간 멈추기-4 / 193
시간 멈추기-5 / 194
시간 멈추기-6 / 195
시간 멈추기-7 / 196
시간 멈추기-8 / 197
시간 멈추기-9 / 198
시간 멈추기-10 / 199
신록의 산빛 / 200
책 속으로
자연교감과 자아와 인생탐구
- 손해일(시인, 문학박사, 국제펜 35대 이사장)
[1] 머리말
운산(雲山) 서창원 선생의 제10시집 「생각을 그리다」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서창원 선생은 미수가 다된 나이에도 잦은 산행과 애주로 활력이 넘치는 노익장의 시인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40여 년 대한민국 국토개발계획관련 분야에 종사하였으며, 시집 10권을 포함해 많은 저서를 집필하였고, 이제는 90을 바라보는 원로 베테랑 문인이다.
언어예술로서의 시창작 기법은 크게 ‘말하기와 보여주기’로 대별할 수 있다. 문예사조 중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문학에서 주로 나타나는 ‘말하기 기법’은 작자 자신의 시상과 감정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방식이다. 이와 대비해 ‘보여주기 기법’은 모더니즘과 상징주의 문학에서 나타나며, 직설적인 언술 대신 언어의 그림으로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서창원 선생의 이번 시집은 제목 「생각을 그리다」에서처럼 간결하게 이미지를 그림을 보여주는 시들이 많다.
시는 긴 서술보다는 언어의 응축凝縮을 기본으로 한다. 서창원 선생의 이번 시집도 짧은 시들이 대종을 이루며, 정제된 시상으로 군더더기 없이 능숙하게 시어를 다루고 있다. 때로는 동어 반복과 언어유희로 유머와 시니컬한 풍자를 보여주기도 한다. 연령에 비해 젊은 시들이며, 모내기할 때 못줄을 치고 심듯이 반듯하게 정리된 시들이다. 깊은 의미를 품고 있지만 난해하지 않고 쉽게 읽힌다.
서창원 선생의 이번 제10시집 「생각을 그리다」에는 총16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지만 짧은 지면이라 본고에서는 “자연 교감과 자아 탐구” “인생 반추와 세태 풍자”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2] 자연 교감과 자아 탐구
이번 시집은 잦은 산행 등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아를 찾는 도정이다. 직접적인 〈나〉 연작시가 8편이며 〈당신〉 연작시가 26편이다. 일인칭 나와 이인칭 당신은 물론 3인칭 자연과 세상의 탐구도 결국은 이것을 거울로 나를 찾는 과정이다. 먼저 표제시 「생각을 그리다」를 본다.
생각을 그리면 점이다/ 점을 연결하면 선이다/
선을 연결하면 면이다/면을 연결하면 공간이다/
공간을 연결하면 우주다/ 우주를 연결하면 팽창이다/
팽창을 연결하면 블랙홀이다/ 블랙홀을 연결하면 초신성이다/ 초신성을 연결하면 끝이다/
끝을 연결하면 종점이다/ 끝의 종점을 연결하면 은하이다/ 은하를 연결하면 별의 허공이다/허공을 연결하면 빈 곳이다/ 세상은 빈 곳이다/ 가장 좋은 곳은/ 내 빈집이다/
- 〈생각을 그리다〉 전문
이 작품에 화자의 생각과 의식, 세계관이 농축되어 있다. 이 시는 마치 끝말잇기 놀이처럼 생각에서 시작하여 점-선-면-공간-팽창-블랙홀-초신성-끝-종점-은하-허공-빈 곳-내 빈집으로 마감한다. 내 생각에서 시작한 우주, 세계까지의 귀결은 결국 내 빈집으로 끝나는 자아와 인생 탐구이다.
서창원 시인의 자연 교감과 자아 탐구는 국내의 크고 작은 산을 오르는 잦은 산행에서 모티브를 얻고 있다. 그중 몇 편을 살펴본다.
산빛이 좋으니/ 봄이 오나 보다/ 꽃나무 붙잡고 아름인다/ 따듯한 햇빛 타고 봄이 오나 보다/
산 등에 꽃나무도 술렁인다/ 산씨 빛나리 날개 달고 멀리서 오나 보다/나무 나무 사이를 몰래몰래 오나 보다/
냇물 따라서 오나 보다/ 오다 오다가다 가다 오나 보다/
- 〈당신 23〉 전문
봄이 오는 정경을 산빛, 꽃나무, 햇빛, 산등, 산씨빛나리, 나무, 냇물 등 구체적 사물을 그려 인식하고 있다. 봄이 와서 풍경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물이 좋아서 봄이 온다고 역으로 말한다.
산 산에 나무가 서 있다/ 봄 산에 나무가 옷 해 입고 서 있다/ 푸른 초록 옷 해 입고 서 있다/
마고자도 입고 나무가 서 있다/ 두루마기도 입고 서 있다/ 온산이 새 옷을 입고 걸어온다/
시냇물도 푸르게 하늘을 끌고 흘러 간다/
-〈신록의 산빛〉 전문
화자는 산을 의인화해서 친근하게 대화하고 있다. 봄 산이 옷을 해입고 서 있다. 푸른 초록 옷, 마고자, 두루마기, 새 옷을 입고 걸어온다. 시냇물도 하늘을 끌고 흘러간다. 산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봄이 오는 소리/ 언덕 쪽에 파란빛이/ 빠꼼이 쳐다본다/
앉아서 바로 보기 어렵다/ 눈을 감아 뜨고/ 비벼 뜨고 본다/
별일 없소/ 씀바귀 잎 하나/ 파란 봄을 조금 보인다/
이 세상은 아직인감!
- 〈입춘〉 전문
절기상으로 입춘은 봄의 시작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겨울의 끝자락이라 춥고 가시적인 봄의 풍경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화자는 까꿍 놀이하듯 잘 안 보이는 봄을 찾으려 애쓰며 자연과 소통하고 있다. 그나마 씀바귀 잎 하나가 파란 봄을 조금 보여주다. 이 시집 전편에서 봄은 주요 제재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봄이 서서히 북상 중이다./ 봄도 맛있게 잰걸음으로 올라오고 있다./ 봄도 서울을 향해 맛있게 올라오고 있다./
강물도 맛있게 흘러오고 흘러간다./
산 틈에서 하늘도 맛있게 물을 먹고 구름에 떠간다./
개울물도 돌과 돌 틈을 빠지며 물을 맛있게 먹고 흘러간다./ 언덕에 핀 씀바귀도 햇빛을 맛있게 먹고 푸릇푸릇하다./
- 〈당신〉 일부
이 작품에서는 서서히 북상하는 봄을 의인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봄은 잰걸음으로, 맛있게 올라오고, 강물도 맛있게 흘러가고, 하늘도 맛있게 물을 먹고, 개울물도 씀바귀도 맛있게 먹고 푸릇하다.
구름이 쌓여서 산을 만들고/ 바람이 모여서 산을 만들고/ 빛이 쌓여서 산을 만들고//......// 큰 자연은 하늘이 꾸는 꿈이구나/ 큰 자연은 소멸을 살리는 숨소리구나!//
- 〈하늘의 꿈〉 1, 5연
화자가 이처럼 자연을 보고 느끼고 묘사하며 찾은 것은 무엇일까? 큰 자연은 하늘이 꾸는 꿈이다. 구름과 바람과 빛이 쌓여서 산을 만드는데 화자가 느끼는 자연의 궁극은 “소멸을 살리는 숨소리이”다.
한파가 겨울을 희게 칠한다/ 그린벨트를 흐르는 벽제천을 희게 칠한다/ 깨끗하게 몸을 사르고 얼음 속에 누웠다/
학이 있던 자리는 갈대가 휘날린다/
송사리 피라미들은 얼음 속에 숨는다/
얼음집은 돌집이라 튼튼하다/ 흰 아파트다//
- 〈벽제천이 희다〉 전문
겨울철 얼어붙은 벽제천을 묘사한 시다. 짧지만 서창원 시인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이 몇 마디 시어로 벽제천을 한 컷, 한 컷 스케치하거나 사진 찍듯이 보여주는 수작이다.
화자는 특히 이 시집에서 ‘바람’ 제재의 시들을 많이 쓰고 있다, 〈바람은 물소리로 운다〉 〈바람의 꽃심〉 〈바람은 별이 된다〉 등을 비롯해 본문에서 바람을 빈번히 언급하고 있다. 화자가 자연을 자주 접하고 느낌을 통해서 찾는 것은 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아래 예시한 두 작품에 보듯이 자신을 껍데기, 북으로 비유하지만, 용서하며 미움과 슬픔을 북처럼 두드리니 ‘세상이 모두 내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예시한 두 번째 작품에서는 ‘이 세상은 거대한 창조의 손’이며 ‘나를 위해 존재하는 세상’이며, ‘세상은 너그러운 것’이라는 인식이다.
나는 비어 있는 껍데기다/ 나는 두드리면 우는 북이다/
가득 채워도 소리나는 북이다 /....../
미움을 북처럼 두드리니/ 벗겨져 용서해준다/
슬픔을 북처럼 두드리니/ 즐겁게 탄탄하게 열린다//
이 세상을 끌어 안으니 다 내 것이다/
이 세상을 크게 보니 모두 내 것이다//
- 〈가까이 보면 모두 내 것이다〉 일부
나는 산을 오르며 산에 감사하고/ 길을 가면 길에 감사하고/ 나를 위해 존재하는 세상임을 알겠다/
이세상은 거대한 창조의 손이구나//......//비켜가고/
돌아가고 하는 물길과 같이/ 나도 돌아가고 굼어 가면/
세상은 너그러운 것/ 그렇다//
- 〈그렇다〉 일부
[3] 인생 반추와 세태 풍자
서창원 시인은 자연 교감을 통한 긍정적인 세계관으로 인생을 반추하는 중에도 유머와 역설로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다음 두 작품에는 강한 자부심과 함께 90살에 이르는 자신의 노경을 되돌아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공직자로서 수십 년간 국토개발계획을 세우고 실제 개발에 참여하였다는 사실과 여러 권의 책 편집에 관여하고 자신의 저서도 발간한 것을 열거하고 있다. 시로 쓴 약식 자서전이다.
나는 암 수술을 받고/ 막걸리를 26년간 마시며/
책 100권을 집필하고/ 책 20권을 발간하고/
책 시집 100권을 편집하고/ 책 수필 10권을 집필하고/
책 수없이 글을 통해 오늘을 기록한다/
1,000년 후 역사가 말하는/
雲山의 기록물을 국회도서관에서/ 전자화된 것을 확인한다/
40년간 한국발전의 기초를 세운/
국가계획보고서 100권 목록도 기록한다/
ISBN 009-008-007-006-000//
-〈나의 일〉 전문
나는 90세에 이르는 중이니/ 어쩌면 노인이라 할 걸세/ 별로 쓸데없는 사람이라 할걸세/
그래도 나는 40년간을 청춘을 불태워/
국가계획수립과 개발을 한 사람이네/
세계 250개 국가 중국을 제2위로 올린 사람이네/
나는 당당하게 도전해서 이룩한 피땀의 결과이네/
-〈어쩌면〉 일부
서창원 시인은 이런 사회적으로 대단한 이력과 긍정적 인생관임에도 유머와 역설과 아이러니로 세태 풍자를 즐기고 있다. 흔히 인생무상과 허무를 비유한 것이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다. 다음 작품을 보자. 화무십일홍이며 결국은 아무것도 없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365일 중 10일은 잠깐이다
꽃은 열흘도 못 간다/ 피다 지고/ 깨다 간다//
꽃은 모두 벌거벗고 온다/
요기조기 본다/ 뭐가 있나 없나 본다/ 아무것도 없다//
- 〈꽃이 핀다고 너무 좋아하지 마라〉
다음 작품에서는 예쁜 꽃이 유혹하자 벌, 나비, 파리, 잠자리가 찾아드는 자연현상을 ‘꽃서방질’한다고 알레고리 적 풍자를 하고 있다.
꽃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꽃은 푸릇퍼릇 향을 피우며/꽃은 여쁜 옷 차려입고 유혹한다/유곽의 홍등을 달고 매춘부처럼/
나비가 날아와 꽃서방질한다/ 벌이 날아와 꽃서방질한다/
파리가 날아와 꽃서방질한다/
잠자리가 날아와 꽃서방질한다/
- 〈꽃서방질〉 전문
이 시집에서 유머와 세태 풍자와 아이러니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당신 15〉 〈북한산 1-3〉에서는 당신이 간절히 소원을 빌고 비는 부처님도 실상은 가짜요, 허울좋은 금맥끼칠 불상에 불과하다고 규정한다. 불상의 손 모양을 무직의 부처님이 구걸한다고 풍자하고 있다. 작품상의 유머와 풍자이지만 경건한 불교, 기독교 신자에게는 불경스러운 비유이다.
당신이 빌고 빌던/ 부처님은 가짜야/
하나도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가짜야!/
금메끼 탈을 쓰고 사기 친 가짜야/
금을 빙자해 사기 친 가짜야/ 허울만 좋은 금불상/
- 〈당신 15〉
부처님은 일하지 않으시고/ 좌정하여 손 벌려 구걸하신다/ 적선함에 지전 툭 떨어진다/
촛불 밝히며 길을 안내한다/ 밝기 둘레는 2m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움보살//
- 〈부처님〉 일부
부처님은 가짜/ 예수님도 가짜// 살려주세요/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세요/결국 죽고 말았다//
자비와 사랑은 가짜/ 결국, 죽고 떠났다//
- 〈가짜〉 전문
그리워할수록 더 애타고 그리워지니 그리움 같은 건 안 하겠다고 다짐하며 심지어 그리움은 야바위 속임수라고까지 역설적으로 말한다
그리워도 안 되겠네!/ 더 속 타/ 나 안 그리워할 거야/....../
그리움은 속임수야 이랬다저랬다 하는/ 야바위야/ 속지마요/
그리움 같은 것은 이 세상에 없어//
- 〈그리워도 안 되겠네〉 일부
〈구멍〉에서는 신이 남자보다 하나를 더 준 구멍, 여자의 은밀한 그곳, 음부를 외설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남자가 덤비거나 거들먹거리면 남자를 빠트리고 집어넣는 구멍이요, 남자를 구원하거나 방세를 놓는 구멍이기도 하다.
여자에게는 왜 구멍 하나를 더 주었을까?/
남자들이 덤비면 빠트리는 구멍이외다/
남자들이 거들먹거리면 집어넣는 구멍이외다/
남자들이 갈데 올 데 없으면 구원하는 구멍이외다/
남자가 좋아지면 방세를 놓는 구멍집 이외다//
- 〈구멍〉 전문
다음 작품에서는 시詩를 물이요, 똥이라고도 규정한다.
시를 물처럼 쓰고 보낸다/ 물이 되어 녹아 입속으로 들어간다/
가슴에서 울렁거린다/ 시도 물이다/ 갈증이다/ 목마름이다/
- 〈詩도 물이다〉 전문
시도 호박전(琥珀煎)이다/ 먹으면 똥이 된다/ 똥도 詩다/
- 〈詩도 똥이다〉 전문
다음으로 서창원 시인이 즐겨 쓰는 기법은 시어나 문장의 반복사용과 언어유희이다. 반복은 언어를 나열하고 반복하여 강조하는 기법이다. 언어유희는 쉽게 말하면 말장난(fun)인데 유머를 언어로 비틀어 구사할 때 흔히 쓰인다.
〈요사이〉 〈당신 11〉 〈당신 9〉 〈눈물〉 〈나2〉 〈좋은 동네 아버지〉 〈산파도〉 〈술 말 타고 가다〉 〈꽃길 먼 길 새길〉 〈당신 9〉 〈강강술래〉 〈창경궁의 봄〉 〈나를 사랑해보자〉 〈흙〉 〈흰〉 〈종잡을 수〉 등이 그 예이다
요사이는 요기와 저기 사이다/ 요사이는 요와 나 사이다/
요사이는 요기와 저쪽 사이이다/요사이는 요기와 내 팔 사이이다/ 요사이는 요새와 금새 사이다/ 요사이는 요와 요강 사이이다/요사이는 요와 봉창 사이이다/
- 〈요사이〉 전문
손에 손잡고 돌아 돌아 빙글 빙글 돌아/
손에 손잡고 치맛자락 끌고 당겨 돌아/....../
손에 손잡고 돌고 돌아 그 자리에//
- 〈강강술래〉 일부
인용은 생략하지만 〈인진〉 〈우리 집〉에서처럼 글자 대신 부호와 기호로 시상을 펼친 작품도 있다.
출판사 서평
이상에서 164편을 수록한 서창원 시인의 제10시집 『생각을 그리다』의 시 세계를 〈자연 교감과 자아 탐구〉 〈인생 반추와 세태 풍자〉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서창원 시인의 시에서는 87세의 고령에도 잦은 산행과 여행, 사진찍기, 애주 등 노익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젊고 쉬운 언어로 정제된 서정적 작품들이라 쉽게 읽힌다. 특히 산, 꽃, 바람 등 자연을 의인화하여 깊게 느끼고 호흡함으로써 물아일체의 행복감과 때로는 인생무상을 느끼는 작품이 많았다. 서 시인의 자연과의 교감은 자아 탐구의 한 도정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가난한 대한민국의 국토개발과정에서 공직자로서 수십 년 기여한 공로와 많은 저서 출간 등 인생을 반추한 작품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언어유희와 유머, 세태 풍자 등으로 다양한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서창원 시인의 제10시집 출간을 감축드리며 건강 건필을 기원하며 독자의 일독을 권한다.
기본정보
ISBN | 9791191111514 |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07월 28일 | ||
쪽수 | 204쪽 | ||
크기 |
130 * 210
* 13
mm
/ 369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샘문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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