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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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혁 평론가는 이 시집의 해설에서 『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은 요즘 보기 드문 좋은 시집이라는 호평을 남겼다. 이 시집은 여성이라는 서정적 주체가 주인공이 되어 그의 내면적 갈등과 처연한 슬픔을 명징한 이미지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시인만의 독특한 개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선명한 독서체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또한 첫 번째 시집의 시 세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의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단정하고 유려한 시어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이 시집이 가진 힘이라고 평가했다.
시집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의문과 슬픔, 고통을 시를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쉬지 않는다. 그 노력의 끝에 희망이 아닌 끝나지 않는 고통과 가시지 않는 슬픔이 있다 해도, 시인은 자신의 바위로 되돌아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하여 시와 삶이라는 무거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이러한 시인의 자세에서 우리는 시시포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운명을 담은 타로 카드조차 새로이 그리려는 의지는 시인이 슬픔과 아픔을 껴안는 자신만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작가정보

*경남 거창에서 태어남. 동덕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 석사 졸업. 1995년 『시문학』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함.
*저서 : 시집 『톨스토이역에 내리는 단 한 사람이 되어』 『타로카드를 그리는 밤』 『2월의 눈은 따뜻하다』, 에세이집 『여기, 카미유 클로델』 『시인을 만나다』 『고흐씨, 시 읽어 줄까요』, 디카시집 『당신은 어떻게 사랑을 떠날 것인가』, 청소년도서 『셀카와 자화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가 있음.
*수상 : 2016년 사계절 청소년 교양도서 원고공모 우수상
2019년 제5회 디카시 작품상
목차
- 시인의 말
개정판을 내며
제 1부
슬픈 환생
뒤의 초상
모과 두 알
나의 탄생
새장과 알
분홍바늘꽃의 방식
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
해빙기
왜 왔니?
북극 여행자
내 치마에 대한 진실
찬란한 찰나
낭패한 도둑질
비둘기 애인
제 2부
취미
빈방 있나요
바오밥 술집
동해로부터
그녀들의 아크로바트
아름다운 복수
‘척’
윤초(閏秒)
눈물의 용도
얼굴의 팬터마임
조용한 이사
늙은 개와의 산책
스물둘
개종(改宗)
제 3부
블루홀
착각
아주 사적인 나비 이야기
백일홍처럼 오래오래
나로호와 나 홀로
수덕여관
극야(極夜)의 댄서
지구에서의 약속
수국이 필 무렵
옆에 산다는 것
조약돌
햇살이 이럴 땐
세월
제 4부
빈 항아리
꽃을 기다리며
구름과 여자
바꿀 수 없는 버릇
빙어를 먹으며
유리 감옥
모두 옛말
그 뽕나무
발바닥은 어떤가요?
욕을 먹다
봄날의 후회
나뭇잎 한 장
바느질하는 여자
별의 부음을 받다
해설
이성혁-‘시시포스의 바위’를 굴리는 ‘북극 여행자’
추천사
-
숭고한 슬픔이라고 부르겠다. 사적 감정이라는 시작(詩作)의 동인이 공적 영역으로 옮아가기 위해서는 미학화(aestheticization)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하여 언어는 육체를 얻고 그 외연을 모든 존재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개보다 훨씬 길게 슬픔과 싸워야 할” 인간의 시간 속에서 “슬픔으로만 키가 크고 살이 찌”는 “슬픈 환생”이 여기 있다. 운명의 타로 카드에 “슬픔을 섞지 않은 빛깔로 몇 번이고 덧칠”을 해도 “세상은 아침저녁으로 그녀의 눈물”만을 받아갔다. 그리하여 “나와 나 자신과 단 둘이 살/그런 빈방”을 얻고자 해도, 세상은 그 최후의 안식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시가 본질적으로 “인간의 결핍 혹은 근원적인 결함에 대한 판단”(Octavio paz)이라면 그녀의 시는 이러한 시적 계시에 충실하다. “신도 자신의 지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지옥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리킨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그녀의 시에서 드러나는 절망은 간절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눈물의 소질을 타고 난” 그녀는, “1초 만이라도” “정말 못되게 굴고 싶”지만, “슬픔을 편애하는” 숙명에 맞서 선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운진의 시는 자신의 운명과 황폐한 세상에 맞서는 가장 “아름다운 복수”라고 할 수 있다. -
여기 ‘나’를 찾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내 안에 부재하는 ‘나’를 찾기 위해, 자신의 시적 여정을 탐문하는 자의 음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때 시인이 인식하는 ‘나’는 부재하는 자라는 점에서 상처와 결핍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시인은 “처음에 나는 먼지였고”(「나의 탄생」), 그런 내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불탄 자리”(「분홍바늘꽃의 방식」)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인이 펼쳐놓은 한 권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수없이 많은 ‘나’의 이야기가 가슴 아픈 지점을 흐느끼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운진의 『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은 오로지 ‘나’의 상처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시적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여정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상처인가, 후회인가 아니면 되돌릴 수 없는 회한인가. 아마도 시인은 그 모든 것에 사무치는 순간을 지나치며, “내 이름을 조용히 불러 보다가//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것 앞에/가장 가벼운 것을 무겁게 내려놓”(「동해로부터」)고 싶은 것이리라. 그리하여 시인의 언어는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나’를 연민하며, 상실되어버린 ‘나’의 세계를 복원하려 애쓴다. 그런 점에서 “내 눈물의 수심은 얼마일까”(「블루홀」)라는 질문을 던지며, 슬픔의 깊이와 근원을 아프게 감각하려는 그녀의 고백은 참혹한 시적 사투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책 속으로
슬픈 환생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준단다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궁금하다
내 꼬리를 잘라 준 주인은 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
가만히 꼬리뼈를 만져 본다
나는 꼬리를 잃고 사람의 무엇을 얻었나
거짓말할 때의 표정 같은 거
개보다 훨씬 길게 슬픔과 싸워야 할 시간 같은 거
개였을 때 나는 이것을 원했을까
사람이 된 나는 궁금하다
지평선 아래로 지는 붉은 태양과
그 자리에 떠오르는 은하수
양 떼를 몰고 초원을 달리던 바람의 속도를 잊고
또 고비사막의 밤을 잊고
그 밤보다 더 외로운 인생을 정말 바랐을까
꼬리가 있던 흔적을 더듬으며
모래언덕에 뒹굴고 있을 나의 꼬리를 생각한다
꼬리를 자른 주인의 슬픈 축복으로
나는 적어도 허무를 얻었으나
내 개의 꼬리는 어떡할까 생각한다
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
타로 카드 한 장을 뒤집었을 때
무표정한 점술사는 내게
슬픔의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와 같다고
영원히 나의 바위를 향해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계절이
동쪽에서 왔다가 서쪽으로 가고
새들이 남쪽과 북쪽으로 집을 옮겨 다녀도
바위는 나의 운명보다 강할 거라고,
그때 나는
별조차 아무런 이유 없이 떨어지는 곳
내가 불시착한 이생에서
슬픔의 대문자로 이름을 썼다
슬픔은 마음에서만큼이나 가슴에서
몸에서만큼이나 삶에서
나를 베는 연장이 되어
구르는 바위와 나 사이
무엇을 세워도 슬픔을 이기는 튼튼한 벽이 되지 않았다
웃고 그리워하고 싶은 보잘것없는 저녁과
내가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있는 줄 몰랐던 하루를
내게서 영원히 가져간 건 누구인지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바위에게로
돌아가고 돌아가고 또 돌아가게 하는 건 무엇인지
눈물 하나하나가 바위처럼 굴러 떨어지는 밤
신의 유머 같은 내 운명의 타로 카드에
나는 슬픔을 섞지 않은 빛깔로 몇 번이고 덧칠을 했다
기본정보
ISBN | 9791198044723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08월 18일 |
쪽수 | 140쪽 |
크기 |
129 * 205
* 12
mm
/ 321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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