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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도시괴담 테마소설집
은행나무 · 2023년 06월 14일
9.7
10점 중 9.7점
(6개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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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뜬소문이겠죠?
하지만 앞으로는 당신도 이런 얘기를 보고 듣게 될 거예요
도시의 공포와 불안을 문학의 언어로 포착한 젊은 작가 8인의 도시괴담 테마소설집
폐쇄된 공동체에서 일어난 실종, 도심에 나타나기 시작한 빨간 마스크,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나를 쳐다보는 눈,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순간……. ‘도시괴담’을 테마로 도시가 내포한 공포와 불안을 포착한 젊은 작가 8인의 소설집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여성서사, 고딕-스릴러’와 ‘관종’을 이은, 테마소설집 시리즈 ‘바통’의 여섯 번째 기획이다. 2000년대를 휩쓴 빨간 마스크 괴담부터 어디에서 나를 지켜보는지를 파악할 수 없어 더욱 두려운 몰래카메라까지, 상상의 존재에서 현실의 공포까지 두루 살핀 여덟 명의 소설가 강화길 김멜라 서장원 이원석 이현석 전예진 정지돈 조우리의 단편소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도시괴담은 왜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을 맴도는 것일까. 그것은 도시가 개인이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무수한 이야기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도시에는 사람과 장소, 역사와 자본, 힘의 논리와 일상의 논리 등이 무수히 중첩되어 있다. 그 때문에 도시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일견 자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한순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변화한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괴담은 이 중첩의 틈을 파고들며 우리가 안다고 생각한 것, 그러나 끝내는 믿을 수조차 없는 것들에 대해 폭로한다. 여기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도시의 틈새를 경유하여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2023년의 도시를 다시 사유하게 한다. 음모론과 속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 속 교묘한 균열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이 소설들은, 공동체의 질서에 대해 의심하게 하고, 서로를 겨누는 시선을 깨닫게 하고, 안전한 정상성의 세계를 깨부수며 맹목적인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그것이 도시괴담이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도는 이유, 이 책이 지금의 독자에게 다시 나타난 이유인지도 모른다.
지금 다시 그렇게 탄생한 괴담-소설은 독자의 곁을 맴돈다. 다시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에게 문득 서늘한 소문으로 다가온다. “이미 알아버렸는데, 이 불안, 이 의심이 사라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처럼, 괴담-소설에서 발생한 질문은 독자의 곁을 맴돌며 안온한 현실과 교섭되지 않는 균열을 만나게 할 것이다. 이 소설이 문득 당신의 창문 밖에 어른거리는 것들을 깨닫게 하기를, 그리하여 당신이 도시를 지배하는 어떤 진실에 대해 영원히 알거나 믿을 수 없게 되기를 기대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강화길

강화길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중편소설 《다정한 유전》, 장편소설 《다른 사람》 《대불호텔의 유령》이 있다.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젊은작가상, 백신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자(글) 이원석

이원석

201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까마귀 클럽》이 있다.

저자(글) 이현석

이현석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다른 세계에서도》, 장편소설 《덕다이브》가 있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저자(글) 전예진

201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어느 날 거위가》가 있다.

저자(글) 조우리

2011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 《팀플레이》, 경장편소설 《라스트 러브》, 연작소설 《이어달리기》, 장편소설 《오늘의 세리머니》가 있다.

목차

  • 강화길 꿈속의 여인 … 007
    김멜라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 … 043
    서장원 소공 … 075
    이원석 마스크 키즈 … 99
    이현석 조금 불편한 사람들 … 139
    전예진 베란다로 들어온 … 175
    정지돈 무한의 상태 … 207
    조우리 모르는 척하면서 … 235

책 속으로

“고백하실 분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십시오.”
이기한 목사의 목소리가 교회 안에 울려퍼졌다. 이장댁은 인용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을 때, 이장댁은 소문 하나를 들었다. 인용과 민경의 가족이 해인마을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고. 특히 인용이 그랬다고. 막내딸을 빼돌리고 싶어 했다고. 그러다가 그 사고를 당한 거라고 했다. 허황되고 근거 없을 뿐 아니라, 모욕적인 이야기였다.
이장댁은 소문을 믿지 않았다. 그래.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니까. 하지만 아주 가끔, 이장댁은 인용을 보고 있으면 그 소문이 떠오르곤 했다. 마을을 떠나려 했던 자. 사라지려 했던 자.
감히 그것을 시도했던 자.
-본문 19~20쪽, 강화길 〈꿈속의 여인〉

새로운 밀레니엄의 도래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무렵, 갖가지 디지털 제품 출시와 함께 영상 산업은 호황을 누렸고, 도시 곳곳에 무료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영상 자료실이 들어섰다. 3호선과 4호선을 잇는 환승역이자 한국 영화의 산실인 충무로에도 역사 지하 통로에 영상센터가 개관했다. 잡귀들은 센터의 벽장을 가득 채운 DVD 자료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 동그랗고 납작한 디스크를 기계에 넣고 재생하면 잡귀들은 알라딘의 램프 속 정령처럼 압축 파일에서 풀려나 지하철로 향했다
잡귀들의 생김새는 영화 속 배우들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겉모습만 따왔을 뿐 실제로 영화에 출연했던 사람이 죽어서 잡귀가 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진열대에 수북하게 쌓인 옷 중에서 하나를 고르듯 영화 속 이름 없는 단역의 형상을 뒤집어썼다고 할까. 영화에 출연한 수많은 엑스트라가 잡귀의 몸이 되었다. 주인공을 지나쳐가는 행인이나 멀리서 바라보는 구경꾼, 재난이 벌어지면 떼죽음을 당하는 익명의 무리, 우르르 등장했다가 좌르르 죽어가는 졸병, 한마디로 대사는커녕 배역 이름조차 없던 사람의 형상이 귀신 중에서도 서열이 낮은 디지털 잡귀가 되어 땅 밑을 떠돌았다.
-본문 50~51쪽, 김멜라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


처음에 호정은 그것이 귀신이라고 믿었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자신이 불필요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가 일종의 환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어떤 사람들이 그것의 존재를 그렇게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여자들만 임신 중지에 대해 상처를 받고 죄책감을 느끼기에 그것을, 그것과 비슷한 것을 여자들로 하여금 보고 듣고 느끼게 한다고.
-본문 84~85쪽, 서장원 〈소공〉

네 번째 마스크가 발견된 곳은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에 위치한 꽃집이었다. 어떻게 읽는 건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인스타그램 계정의 소유주는 호들갑을 떨며 이렇게 썼다.

오늘 아침에 저희 #꽃집 에서 발견된 #빨간마스크!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 가 무슨 대수냐 싶으시겠지만 #어린시절 정말 유행했던 #도시괴담 생각이 나서요. 그때는 마냥 무섭기만 했는데 지금 보니까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네요. 요새 #서울 곳곳에서 이렇게 새빨간 마스크가 발견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강동구 #천호동 에서는 저희 가게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간밤에 정말 #귀신 이라도 다녀간 게 아닐지~?
#괴담 #귀짤 #라떼괴담 #라떼는말이야 #서울꽃집 #강동구꽃집 #천호동꽃집 #꽃다발 #프리저브드플라워 #반려식물 #플라워디자인
-본문 101쪽, 이원석 〈마스크 키즈〉

선생님.
네.
위험이 제로인 건 아니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 모르는 위험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선생님 말씀처럼 얼마 전만 해도 RNA 백신이 불가능하다고 했다면서요? 지금이야 다들 괜찮다고 하지만 나중엔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 아닌가요?
나를 빤히 보며 묻는 혜린을 힐긋 보는데 언젠가 서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참, 디피컬트하군.
난처했다. ‘빨리 나왔다’와 ‘검증이 부족했다’라는 명제가 상호 독립적이라는 사실부터 못 박아야 할지, 예전에 틀렸던 사례를 안다는 것이 지금 내가 옳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준칙부터 설명해야 할지, 과학의 불완전성이나 집단면역의 원리에 대해 개괄적인 강의라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어떻게 답하더라도 도돌이표를 돌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 무해하게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럼요, 당연하죠!
-본문 156쪽, 이현석 〈조금 불편한 사람들〉

그녀가 베란다 창문에 이마를 대고 화단을 내려다봤다.
안녕. 그녀가 말했다. 너 좀 무섭게 생겼다.채원보다 머리 하나가 작은 형체가 그녀를 올려다봤다. 끈적한 액체를 쏟아부은 것처럼 이목구비와 몸이 흐릿했다.
이름이 뭐야? 채원이 묻고는 낮고 희미한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여기 있어?
거실 창을 잡고 그녀를 거실로 끌어당길 채비를 했다.
눈이 내려서…… 사방에 혼이 너무 많대. 채원이 나를 돌아봤다. 누굴 기다리는 중인데 밖은 무섭다고 하네.
기다리든 말든. 못 들은 척해. 내가 말했다.
눈에……. 채원이 말을 계속했다. 내가 가져온 눈이 녹아서…… 그렇다고? 그래서 보이는 거래.
태연한 그녀의 얼굴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채원이 몸을 숙이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흐릿한 형체가 웅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허락해줘야 들어올 수 있대. 그녀가 말을 전했다
-본문 182~183쪽, 전예진 〈베란다로 들어온〉

피터 사사키가 그날 잉카 보로메오를 통해 알게 된 건 “이름 붙일 수 없는 소사이어티”라는 집단이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이름 붙일 수 없고 붙여서도 안 됐는데 그것은 그들이 고대로부터 무한을 다룬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무한은 인간이 그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절대악과 동등한 취급을 받았다. 나쁘거나 사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형용할 수 없고 사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학에 흑사병이 있다면 그건 바로 무한이라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했다. 무한은 신을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것을 존재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중략) 피터 사사키는 진양에게 경험가능한무한을 촬영해줄 것을 의뢰했다.
-본문 220~223쪽, 정지돈 〈무한의 상태〉

“SC-8816? 이게 뭔데요?”
미연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로 화면을 바꾼 뒤, 검색창에 영수증에 찍힌 사업장 이름을 입력했다.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웹사이트가 떴다. 상품 코드 SC-8816. 그건 실시간 와이파이 연결이 가능한 초소형 카메라였다. 방범용 CCTV로 활용하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주로 어디에 쓰이는지는 뻔했다.
“몰카예요.”
혜영이 말했다. 그 영수증은 지난주 시스템 결재 내역을 모니터링하던 미연이 발견했다. 결재가 요청된 내용은 출장 식비였고, 금액은 2만 원이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4만 원짜리 영수증이 첨부되어 있었다. 결재를 올린 사람이 영수증을 스캔하면서 실수를 한 게 분명했다. 흔한 일이었다.
-본문 244쪽, 조우리 〈모르는 척 하면서〉

출판사 서평

있잖아, 비밀인데. 사실 그런 건 없거든.
그러니까 찾아도 나올 리가 없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애초에 알고 있었어.

괴담의 매력은 우선 우리를 낯설고 기이한 곳으로 데려간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낯선 이야기를 여행하는 독자를 위한 표지가 있다. 괴담이 가진 유형, 혹은 역사를 지표 삼아 우리는 낯선 세계를 흥미롭게 여행할 수 있다. 여기, 그러한 괴담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소설들이 있다. 김멜라의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는 지하철이라는 어쩌면 가장 도시적인 공간과 ‘잡귀’라는 환상의 존재를 매치했다. 충무로역 영상센터 ‘오! 재미동’에 보관된 DVD의 단역 출연자 얼굴을 빌린 잡귀는 지하철 안에서 ‘저퀴’라는 악령들을 물리치기도 하고, 귀신들의 율령에 따라 삼도천을 건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근대 도시의 발명품인 ‘영화’가 이야기에 깊게 관여하는 것 역시 흥미로운 지점이지만, 무엇보다 도시의 산물인 지하철은 태생적으로 낯선 이와의 접촉을 강요하는 공간이며 도착지가 아닌 경유지의 특성을 지닌다. 이 고유한 특성이 낯선 존재이며 삼도천을 향해 가야 하는 한국적인 존재, 잡귀의 이야기와 겹쳐질 때, 이야기는 한국의 도시에 사는, 어쩌면 매일매일 서울 한복판 충무로역을 오갈 우리에게 돌아온다.
이원석의 〈마스크 키즈〉에서는 2000년대를 휩쓸었던 빨간 마스크 괴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설은 지금의 서울 도심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빨간 마스크를 등장시키며 어린 시절에 ‘빨간 마스크’를 만나기 위해 모였던 ‘마스크 키즈’들을 다시 소환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가 보편화된 지금 다시 ‘빨간 마스크’를 호명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괴담조차도 마치 마스크 키즈들의 관계처럼 변화하고 영향 받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거나 혹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은 아닐까. ‘빨간 마스크’가 바꿔놓았던 2000년대의 풍경, 그리고 그 시절의 괴담이 2023년에 와서 재-독해되는 방식이 흥미롭다.
‘초자연적 존재는 스스로 문을 열지 못한다’는 속설을 떠올리게 하는 전예진의 〈베란다로 들어온〉에서는 베란다를 기준으로 갈라진 삶의 안쪽과 바깥쪽이 서로를 침범하면서, 삶 그리고 죽음 이후조차도 ‘자신의 자리’를 찾는 지난한 과정임을 상기하게 한다. 상실을 겪은 이가 베란다 밖에서 안쪽을 쳐다보는 시선을 알아차리고 이형의 존재들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불안정한 주거의 시대에 ‘거주 공간’과 ‘맞아들임’이 부딪히는 순간을 고요히 포착한다. 베란다로 들어온 존재를 통해 우리는 삶의 외부가 정말로 점거되지 않은 공간인지 고려하게 된다. 그곳에 존재하는 비-존재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이 도시에 그들 몫의 정당한 자리가 존재할까.
정지돈의 〈무한의 상태〉는 괴담의 가장 오래된 분야 중 하나인 음모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작품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 시내의 한 호텔을 배경으로 ‘이름 붙일 수 없는 소사이어티’라는 집단을 이야기한다. ‘무한’을 쫓는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현대 예술계의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는 도시괴담의 한 장면으로 독자를 이끈다. 합리성 위에 세워진 현대 도시의 기저에 맹목적이고 조직적인 결사가 있다는 정교한 상상은 소설 속 예술계의 면면과 겹쳐지면서 단순한 괴담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이면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괴담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소설들을 보며 독자들은 “사실 이런 건 없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있음에도 지하철이 도착하지 않은 플랫폼을 바라보다, 마스크를 쓴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며, 베란다의 창문 앞에 서서, 역사가 오래된 서울의 한 호텔 앞을 지나면서 문득 낯선 존재를 느낄 수도 있으리라. 그때 이 이야기들은 당신을 진정으로 찾아가게 될 것이다.

이미 알아버렸는데, 감쪽같이 아닌 척 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는데,
이 불안, 이 의심이 사라질 수 있을까?

도시를 배경으로 창발하는 괴담은 종종 우리의 삶과 너무 가깝기에 더욱 섬뜩한 모습을 취한다. 강화길의 〈꿈속의 여인〉에서는 폐쇄된 공동체 해인마을에서 일어난, 아무도 실종이라고 말하지 않는 실종 사건을 다룬다. 사건보다 강렬하게 소설을 추동하는 것은 소설 전반에 내려앉아 있는 의심의 기운이다. 네 이웃을 의심하는 일.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상의 근간이 되는 공동체와 소속감이 가상의 실체라는 것을 폭로한다. 짐짓 특정한 신념을 가진 공동체의 일처럼 전개되던 이야기는 그 끝에 이르러서는 어떤 모양으로든 공동체에 소속해 있는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나쁜 생각을 하고 있나요?” 어쩌면 나쁜 생각일지도 모를 비규범적인 것들을 보고 듣게 된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한복판 명동, 그 구체적 장소에서 진행되는 서장원의 〈소공〉에는 어깨 위에 작은 생명을 얹어두게 된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오로지 ‘여자만이 상처받고 죄책감을 느끼’기에, 그들이 어깨 위에 올려둔 것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닌 어떤 은유에 가까워진다. 이상하고 기괴한 것들이 그러하듯, 숨겨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죄책감과 수치심. 하지만 서로 다른 시기에 어깨 위에 작은 생명을 얹어두게 된 두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대낮의 도심을 가로지른다. 그 무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일을, 우리의 도시는 감당할 수 있는가.
이현석의 〈조금 불편한 사람들〉에서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두려움의 순간을 그린다. 바로 내가 알던 사람이 전혀 다른 존재로 여겨지는 순간이다. 소설 속에서는 코로나 백신과 주택 청약을 두고 의사인 주인공과 북한이탈주민인 ‘은화’ 사이에서 아이러니한 문답이 계속된다. 공통감이 사라진 사회와 불분명한 가해와 피해의 관계 속에서 도시의 공포는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도시가 주는 공포 중 하나는 그 무시무시한 익명성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나를 쳐다보는 눈이 유령처럼 늘 우리 곁을 맴돈다는 것이다. 조우리의 〈모르는 척하면서〉는 몰래카메라 범죄를 주제로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실존적인 공포를 다룬다. 그러나 공포 앞에 모든 것이 멈추지는 않는다. 도시에 중첩된 시선과 폭력의 문제를 폭로하면서, 소설은 두려움이 추동하는 에너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한다.
도시의 괴담은 사라지지 않을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의심과 동행하면서 우리는 안온한 현실과 교섭되지 않는 균열을 만나게 되고 그것을 건너가기 위해 또 다른 사다리를 만든다. 어떤 것은 현실을 구하는 사다리가 되고 어떤 것은 이야기를 구하는 사다리가 된다.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불균질한 도시 속에서 균열을 없는 셈 하지 않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다시 도시괴담과 만날 것이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67373106
발행(출시)일자 2023년 06월 14일
쪽수 264쪽
크기
137 * 210 * 22 mm / 443 g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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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만 있다면 내 입을 잡아 귀까지 찢어버리고 싶었다. 진영의 죽음 이후 내게 ‘당연’이라는 말은 세상에 없거나 적어도 사라져버린 말이 되었다.
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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