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층의 하이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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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작가 김멜라의 첫 장편소설!
수상한 간첩 할머니와 강한 불도저 손녀의 기묘하고 따스한 동거
작가정보
작가의 말
이 소설은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누군가의 기억이자 이제는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제 외갓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추석이면 옥상에 올라 남산에 뜬 보름달을 보고, 성탄절 밤이면 타워 옆으로 불꽃놀이의 폭죽이 터져오르던 기억을 떠올리며 남산 언저리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소설에 이런 군말을 덧붙이는 것은 이 글이 제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많은 분의 삶에 빚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이 살아 있는 저를 움직여 글을 쓰게 합니다. 그렇게 있음과 없음을 넘나드는 질서와 힘에 의지해 하이센스, 높은 감각을 느껴봅니다. 다 떨구었다가 새봄에 다시 싹을 틔우는 산 위의 나무들을 바라봅니다.
2023년 초여름
김멜라
목차
- 1부 ㆍ 그리기 좋은 아세로라
봄, 는개 · 동거인 · 동거란 뭘까 · 겨우살이 · 남산의 가물치 · 도끼 연습 · 츱츱이 · 다한증 수배자 · 피의 뿌리 · 분노의 뿌리 · 생명의 뿌리 · 아픔의 뿌리 · 집이 불타면 · 죄인들 · 서울로 · 빌리지의 개들 · 빌리지의 웃음 많은 고양이들 · 그 여자 · 톱질하는 여자 · 얼굴이 시드는 기분
2부 ㆍ 사귀자의 하이쎈스
화장의 쎈스 · 이름의 쎈스 · 쎈스는 빌어먹을 · 오케바리, 나이스바리 · 소시지를 부치는 쎈스 · 하숙방을 돌며 · 양봉과 음봉의 혈자리 · 부아 덩어리들 · 오란씨 한병, 루주 하나 · 남대문의 뭉칫돈 · 남산으로 · 사귀자의 뿌리 · 농담의 뿌리 · 그런 말씀 마셔요 · 하숙집의 별 · 너럭바위 · 꽃핀 날 · 꽃 진 날 · 꽃이야 피거나 말거나 · 끝내자고, 다시 살자고 · 살 궁리 · 죽으라는 소리 · 원수와 손잡고
3부 ㆍ 없는 층의 간첩 훈련
빌리지의 오후 · 은신처, 아니 무덤, 아니…… · 선글라스 끼고, 판탈롱 · 하이쎈스의 수칙 · 눈동자 안쪽부터 · 새벽 꿈 · 옥상 정원에서 · 정보 수집과 동향 파악 · 탕탕탕의 맛 · 말통 작전 직전 · 말통 작전 · 토바올치 시간 · 간첩 해고 통보 · 왜 자꾸 남산으로 · 사나운 말년 운 · 도끼 작전 직전 · 엔진톱의 시동을 걸어라 · 점 밖으로 · 점 안에서, 점을 돌며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아세로라가 보기에 ‘미(美)’ 자가 붙은 말치고 사람을 우습게 만들지 않는 말이 없었다. 청순미, 볼륨미, 과즙미.
그러나 본인이 깨닫지 못하는 아세로라의 미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비장미였다.(46면)
아세로라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동생을 칭퉁이라 불렀다. 그애는 큰 벌이 나오는 동화책을 읽어주면 까르르 웃었으니까. 칭퉁이는 섹스의 결과가 아닌 그 주변을 맴도는 웃음 같았다. 아세로라는 한번도 동생이란 존재를 꿈꾸지 않았지만 칭퉁이 앞에선 어떤 가면도 쓰지 않고 웃을 수 있었다. 그애도 그렇게 웃어줬으니까. 그런데 왜 그애는 웃지 못하고 아파해야 했을까.(51면)
하지만 단지 그애가 원하는 건 다른 사람들처럼 초콜릿과 라면을 먹는 것이었다. 아이스크림과 젤리를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몸이었다. 편의점 앞을 지날 때면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사람을 넋 놓고 바라봤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들고 지나가는 아이는 단지 손에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을 뿐이었지만, 칭퉁이는 가슴에 총을 맞았다. 총알이 심장을 뚫고 간 것처럼 멈춰 섰다.(55면)
아세로라는 자동 센서가 꺼진 주차장 바닥에 웅크려 앉았다. 돌아갈 곳이 없었다. 아세로라의 집은 점보다 더 작아졌다. 칭퉁이가 떠나고 그애의 몸이 화장장에서 사라졌을 때 아세로라의 집도 같이 불탔다.(59면)
아세로라가 빳빳하게 코팅된 노란 종이를 집어 들었다. 테두리가 갈색으로 빛바랜 종이는 네모나게 접힌 자국이 있었다. ‘남산 보고’라는 붉은 글자 아래 ‘신문보도안’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뒷장에는 노트를 찢은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가로획이 길고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듯한 필체. 동거인의 글씨였다. 아세로라는 노란 종이를 앞뒤로 보며 글자들을 비교했다. 동거인이 쓴 글자는 앞의 한자를 한글로 풀이해놓은 것이었다.
(…)
하이쎈스. 동거인의 필명 하이쎈스. 신문보도안에는 하이쎈스 사씨의 죄목이 이어졌다.(94~95면)
“하숙생들이 당신을 뭐라 부르는 줄 알아?”
어느 날 마주앉아 양말을 개던 남편이 사귀자에게 말했다.
“하이쎈스래. 당신더러.”
(…)
사귀자는 코를 벌름거리며 비어져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 학생이 참 매너가 굿이야.”
사귀자는 복주머니처럼 잘 접은 양말들을 바구니에 넣으며 말했다.
“오케바리, 나이스바리.”
일 맛의 가락을 타며 사귀자가 바구니를 들고 마루로 나갔다. 그런데 ‘하이’는 뭔 뜻일까. 하이, 안녕, 그런 건가? 사귀자는 속으로 생각하며 차례차례 양말 주인들의 방문을 두들겼다.(115~116면)
사귀자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루주 뚜껑을 열었다. 작달막한 통을 돌리자 해당화처럼 환한 자줏빛 루주가 꽃향을 내며 부드럽게 솟아올랐다. 척 봐도 브랜드 달린 고급 루주 같았다. 사귀자는 주책맞게 이러면 안 된다 싶으면서도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눈앞이 뿌예졌다. 그 루주가 그런 일을 불러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순영 학생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을 때 전에 써줬던 것보다 큰 종이가 바닥에 깔려 있어 내심 놀라긴 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순영 학생은 사귀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한자가 가득한 종이를 손으로 짚어가며 똑같이 따라 써달라고 했다. 사귀자는 한획 한획 정성을 들여 썼다. 그 글자 중에 ‘김일성 만세’가 있는 줄도 모르고.(133면)
“아주머니, 앞으로는 아는 글자만 쓰시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글자 따라 쓰지 말고, 아주머니가 진짜로 아는 것만 쓰고 살아요.”
그 남자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사귀자는 되묻고 싶었다. 제가 아는 게 뭔가요. 진짜로 아는 거, 좋은 게 뭔가요.(185면)
출판사 서평
“처음부터 그랬어. 주소는 못 만들었어.”
남산빌리지 상가 건물의 비밀스러운 교습소
부모가 횡령 사건에 휘말리며 가족 모두가 흩어지게 된 상황, 아세로라는 부모를 떠나 할머니 사귀자의 ‘명필 교습소’에 머물게 된다. 허름한 남산빌리지 상가 건물의 201호에는 사귀자, 202호에는 아세로라가 살게 된다. 할머니 사귀자는 온두라스 음식을 좋아하고 늘 곱게 화장을 하며 봉긋한 머리 볼륨을 유지한다. 말다툼을 할 때도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고 누구에게나 ‘슨생님’ 하고 꼬박꼬박 존칭한다. 교습소 소파에 누워 나초 먹는 것을 좋아하고 ‘할머니’라는 말에는 질색하는 사귀자는 어쩌다 해마다 겨울이면 빌리지에서 흘러 온 ‘똥물’이 동파되는 낡은 상가에서, 제대로 된 주소도 없이 살게 된 걸까.
한편 손녀 아세로라는 동생 칭퉁이를 잃었다. 칭퉁이는 희귀 면역질환을 앓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온갖 과자는 물론 고기나 정제곡물도 먹을 수 없었고 때로는 햇볕에도 피부가 짓물렀다. 빛과 물과 음식들은 칭퉁이 몸에 반점을 만들고 가렵게 했다. 아픈 것보다 치사한 것이 싫다는 칭퉁이는 누나 아세로라에게 몰래 먹지만 말아달라고, 초콜릿을 먹는다면 자기 앞에서 먹어달라고 부탁한다. 어느 날 부모는 돼지갈비를 몰래 먹고 돌아와 방향제를 뿌리고 서비스로 받은 요구르트를 숨겨둔다. 아세로라는 칭퉁이를 배신한 부모를 사랑할 수 없다. 칭퉁이를 보내고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에 괴로워하던 아세로라는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없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스스로 배를 때리고 물건들을 헤집어놓아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교습소 물건들을 헤집던 어느 날, 아세로라는 ‘노란 종이’ 한장을 발견한다. 종이에는 ‘하이쎈스’라고 불리던 간첩 사씨가 소시지 부침 등으로 하숙생들을 꾀어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이쎈스는 할머니의 필명. 그날 이후 아세로라는 할머니를 간첩이라고 믿고 그동안 내뱉던 반말도 거둔 채 사귀자의 행적을 살핀다.
젊은 시절 남산 아래서 남편과 함께 ‘큰별하숙’을 운영하던 사귀자는 비싼 소시지 부침을 노릇하게 구워 반찬으로 내놓는가 하면 손끝이 야무져 하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하숙생들은 사귀자를 ‘하이쎈스’라고 불렀다. ‘하이’의 의미는 잘 몰라도 센스가 좋다는 칭찬에 사귀자는 입이 벌어지곤 했다. 하숙생들 중에서는 순영 학생이 가장 예뻤다. 부탁을 해도 맨입으로 하는 법이 없고 하숙비를 밀리지도 않고, 꼬박꼬박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데다 명문대를 다니는 순영 학생. 사귀자는 자신의 딸 샛별이도 순영 학생처럼 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순영 학생은 사귀자에게 ‘명필’이라며 종종 글씨를 써달라는 부탁을 한다. 기계로 쓴 것보다도 잘 쓴다고 추켜세우며 고급 루주를 쥐여주며 해 오는 부탁에, 사귀자는 몇번인가 글씨를 써주게 된다. 까막눈 사귀자는 그저 그림 그리듯 순영 학생이 보여주는 글씨를 따라 썼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김일성 만세’라는 말이 있었다니……
계속 궁금해하고 계속 아파하면서 살아가기
등기부에 등록되지 않은 건물에 살면서 행여나 누군가에게 들킬까 숨을 죽이고 빛이 새어나갈까 커튼을 치는 사람들, 아픔을 호소해도 그 아픔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당한 사람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를 말하다 소리 없이 사라진 사람들까지. 소설은 세상에 의해 ‘없는 존재’가 되어 지워져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명랑함으로 풀어낸다. 숨어살지언정 자신만의 스타일은 멋지게 뽐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더라도 또다시 새로운 사랑에 가슴이 뛰기도 한다. 그러면서 소설은 말한다. 계속 궁금해하고 계속 아파하는 것이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라고. 왜 누군가는 없는 존재가 되어 살 수밖에 없고 어째서 누군가는 영영 없는 존재가 되어야만 했는지, 계속해서 묻고 아파하는 일이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고. 이곳에 남은 존재들은 또한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을 통해 자신 앞에 놓인 삶의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다고.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손을 맞잡을 수 없”고 이미 떠나간 존재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겠지만, 아세로라는 그들을 기억하며 춤을 추고 사귀자는 그들을 위해 글씨를 쓴다. 위태로운 존재들을 더이상 잃지 않기 위해 ‘없는 층’ 주변의 인물들은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원을 그리며, 원 주변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끝내 우리에게도 손을 내민다. 지금 가장 주목받는 작가 김멜라가 당신 앞에 더없이 유쾌하고 따듯한 동시에 한없이 먹먹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소설을 선사한다.
기본정보
ISBN | 9788936439088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05월 30일 |
쪽수 | 332쪽 |
크기 |
129 * 189
* 26
mm
/ 460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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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공부는 조금 할 수 있었다. “는개가 내리는 날에…” “드레드레 핀 철쭉을…” “남산타워는 잣스러웠다.” 첫 페이지부터 쏟아지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에 당황하며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는개는 보슬비란다. 드레드레 물건이 많이 매달려 있거나 늘어져 있는 모양이란다. 잣스러웠다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쓰지 않는 단어를 왜 쓸까?
181쪽 문장 “사귀자가 기억하는 말을 첫 줄에 적힌 그 하나였다.”는 “사귀자가 기억하는 말은 첫 줄에 적힌 그 하나였다.”의 오기가 아닌가 한다.
(내용 중에서...)
천장 위에 다른 사람의 화장실을 얹고 사는 게 어떤 일인지 생각했다._21쪽
노인은 어떻게 노인이 될 수 있었을까._29쪽
한 획 한 획 정성을 들여 썼다. 그 글자 중에 ‘김일성 만세’가 있는 줄도 모르고._133쪽
세상엔 존재하지만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의 신작 속에 등장하는 '사귀자' 할머니, 한때는 '하이쎈스'라 불리던 시기를 지나고 옆 호엔 그녀의 손녀 아세로라가 살고 있다.
동생 칭퉁이를 잃은 소녀, 그들에게 펼쳐지는 세상은 7. 80년대의 소시민이 겪은 풍파와 삼대에 걸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진 것 없는 자들의 수월치 않은 삶을 조명한다.
열심히 살아보고자 발버둥 쳤고 일만 열심히 하며 살았던 그들, 소설 속에는 정치범부터 사기꾼, 철거민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에서 녹록지 않은 삶을 영위해 간 삶을 그린다.
누군가는 세상에 나아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보고자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등기부에 등록되지 않은 건물에 살며 하루를 견디는 자들이 있는 곳, 저자는 이들의 삶이 퍽퍽하지만 역설적으로 맑은 기운으로 그려냈다.
뼈아프게 다가오는 웃픈 현실에 대한 그림들이 머릿속에 담겨 내내 지워지지 않은 내용들은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부여한 인생의 한구석이라도 밝은 빛이 내리길 소망하게 되는 소설이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