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마두금을 통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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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총서 (123)
작가정보
작가의 말
몸 낮추고
무릎 꿇어
손을 내밀어야 곁을 주는 풀꽃처럼
오오랜 눈 맞춤 후에야
비로소 내 안에 들어와
한 줄 시로
피어난
영혼의 뼈
목차
- ● 시인의 말
제1부
가난에게 묻다 12
파문을 씹는 몽돌 13
탱자나무 가시 14
시간의 수장(水葬) 16
노루의 송신음 18
바가지를 깨다 20
쉼표 한번 찍어 봐 21
하루치 햇살 주문해 놓고 22
수다를 비우는 찻잔 23
말랑한 고요, 흔들지 마 24
그 아이의 모시밭 26
~다가, 로 푼 가을 산 28
내 영혼의 카테고리 30
블랙홀이 있는 동쪽 32
못갖춘마디 꿈틀 34
기습의 연쇄반응 36
소리 낳는 물고기 37
새벽, 명사십리 38
제2부
물의 기억 40
어느 저무는 날의 사유 41
바람이 마두금을 통과할 때 42
깃발 44
수제빗집 46
대나무의 방향 47
모음의 오후 48
선구 몽돌 해변 50
파도의 후음 52
코로나 블루 53
짱뚱어해변 54
그 남자의 등짝 56
바람의 길 57
꿈꾸는 대나무 58
씨종자 60
새파란 계절로 다시, 일어서라 61
지문 62
제3부
마시멜로 같은 만나 64
가창오리 떼 65
유모 66
겨울 공룡 68
화사(花蛇) 70
그림 문자 71
사이의 봄 72
연잎꿩의다리 73
평사리 골목 소묘 74
고백의 세레나데 75
묻고 싶은 까투리 안부 76
풀꾹새 우는 사연 78
눈치는 짧고 다리는 길어야 79
피, 딱지 맞다 80
가시연꽃 82
벼랑 83
제4부
쑥부쟁이 86
화농의 계절 87
나이에게 88
너, 술 취했니? 89
꺼지지 않는 밤 90
죽지 꺾인 새 91
불면, 어둠의 내부 92
지칭개꽃 94
녹차 잎의 기억 95
잘 무른 밤 96
무딤이 들 허수아비 97
붉은 깃발 98
톡, 별난 맛 99
지하철 100
난 아직 보낼 수 없습니다 102
꽃무릇 104
먹줄 한번 튕겨놓고 105
▨ 정영선의 시세계 | 유성호 109
추천사
-
정영선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그 안에서 누군가를 간절하게 호명하고 무언가를 고독하게 증언하는 일을 아름답게 수행한다. 때로는 솟구쳐 오르는 상승의 감각으로, 때로는 한없이 가라앉는 하강의 감각으로, 그녀의 시는 다채로운 음역(音域)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어둑하게 가라앉은 견딤의 원리를 동반하면서 자기 언어를 구성해 온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시간에 대한 따뜻하고도 미학적인 응시, 삶에 대한 깊은 기억, 예술과 신성에 대한 증언 등으로 자신만의 시의 성채를 구축한다.
책 속으로
[파문을 씹는 몽돌]
바닷가에서 몸을 다진 몽돌은 파도를 먹고 산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다갈다갈 파문을 씹는 어금니 소리
거친 파도엔 닥다그르 배꼽 웃음 웃어젖히는
뼛속 깊이 응축된 닥닥한 자존이
세파에 부대끼며 모서리가 닳아
잘 다듬어진 목청으로 걸어 나온다
천 년을 쏟아내고도 짱짱하게 살아 있는 소리의 몸
밤이면 둥근 세월 포개 누운 몽돌밭에
달빛이 자늑자늑 뭉툭해진 세월의 귀를 쓰다듬는다
[바람이 마두금을 통과할 때]
난산의 신음 앓으며 새끼를 겨우 낳은 어미 낙타
뇌 속 깊이 박음질 된 촘촘한 고통이
끌어안을 수 없는 날선 가시 되어
어미이기를 망각한 채
핏덩이 새끼에게 젖 물리기마저 거부하네
바람의 위로에도 초점 깊이 박힌 트라우마
마두금을 즐겨 켜던 몽골 유목민들은
우울 앓는 낙타의 슬픈 잔등에다
뜻 모를 마두금을 걸어주네
사막을 떠돌던 모래바람이 긴 손가락으로
마두금 현을 밀고 당기며 밤낮 모성애 혼을 불러들이네
신 내린 듯 신 내린 듯 몸을 떠는 마두금
음계의 바늘이 혼을 키질하며
굳게 닫힌 마음판 관통하여 짐벙진 굿판 벌이다가
고요 속 애절하게 나 앉다가
명치끝 종소리로 피어나네
혼령에 이끌리듯 맺혔던 한 풀리듯
조여 있던 우울의 고삐 툭, 끊어지네
봇물 터지듯 우물 깊은 어미 눈에 눈물이 흐르네
별 무리 돋는 밤
마침내 가출했던 모성이 소환되어
젖배 곯은 새끼를 품 안에 들이네
지금도 마두금을 켜던 사막 바람이 몽골초원 떠돈다네
[내 영혼의 카테고리]
내 영혼이 뿌리박고 있는 집이 하나 있다
속 재료가 기도로 채워진 집에는 평안과 번민이 공존하며 산다
느슨한 자아를 채근하는 조급증과
잘못된 습관 베어내지 못한 아집이 똬리 틀고 산다
시를 찾아 낯선 길을 재촉하는 갈증이 살고
생각 꼭지를 비틀어야 영양분을 공급 받는 허기진 시가
창백한 낯빛으로 기다리는 곳
새벽을 일으켜 경건으로 엎디는 실팍한 무릎과
작은 것에 감사를 입히려는 입술의 고백과
밤잠 버리고 단을 쌓아 기도를 피워 올리는 끈덕진 엉덩이가 살고
터진 솔기 사이로 한숨같이 넋두리같이 무시로 새어 나오는 하늘 방언이 타래실을 푸는 곳
잘 덥혀진 내 영혼의 집에는
포도넝쿨같이 청청 줄기 벋어 튼실한 송이로 영글기를 바람 하는 푸른 기도의 어미가 산다
기도를 먹고 자란 아이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곧은 길 위에 선다
출판사 서평
정영선 시인의 이번 시집은 시인 자신의 진솔한 경험과 기억, 그리고 지나온 시간을 향한 그리움을 선연하게 담아놓은 심미적 성과로 다가온다. 그녀가 쓰는 서정시는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반추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열망을 진정성 있게 들려준다. 가령 그녀의 시는 일상 속에서 깨달아가는 삶의 지혜를 간결하고 응축된 언어적 문맥으로 흡착하여 거기에 자신만의 구체적 경험을 얹어가는 시선과 필치를 한결같이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시는 그리움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들이는 힘을 견지하면서, 자신의 실존적이고 종교적인 경험을 충실하게 들려준다. 이처럼 구체적 경험과 그리움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세계가 말하자면 그녀의 서정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발원한 물줄기들은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호명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무언가를 향한 고독한 증언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기본정보
ISBN | 9788961043281 |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05월 05일 (1쇄 2023년 05월 01일) | ||
쪽수 | 128쪽 | ||
크기 |
131 * 210
* 11
mm
/ 312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현대시 기획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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