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통영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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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전문기관 추천도서 > 문학나눔 선정도서 > 2023년 선정
조명희 『언니, 우리 통영 가요』 출간
“치마에서 도깨비바늘을 떼 주던 사람이
손바닥을 펴 오래 쥐었던 섬을 보여 준다”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신화의 탄생
발칙하고 섬뜩한 위트에 담긴 한 편의 드라마
이 책의 총서 (123)
작가의 말
다시 그날이어도 나는 그 나무 아래겠다
하도 보아 꽃엔 덜 아플 수 있지만
정작
무는 개는 짖지 않았다
2023년 봄
조명희
목차
- 1부 치마에서 도깨비바늘을 떼 주던 사람
세
미란이
입춘
삭히지 않은
도로 폭 좁아짐
가파도
쟈가 갸
천등
망해사
80A
팝콘
번개탄
산딸기는 떨어져도 그만
인생 즐기는 니가 챔피언
2부 남녘은 많은 핑계가 따뜻해지는 곳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스라이
부족
월령리
환장
독수리 오형제
하나 마나 바나나
땅끝 해안도로
압록
이치
잠깐만
되돌아온 말
이이불이
폭탄세일
내변산
자서전
스프링은 스프링
3부 생선이 비린 맛 빼면 뭐 있나
#2580#
간혹
통갈치조림
도다리쑥국
광명역
카공족
용도 변경
꽃문살
파문
인경이가 신호등을 건넌다
닮았대요
하마터면
고군산 군도
다육 식물
돌비 서라운드
4부 봄이 오려면 얼마나 걸려?
배달의 민족
대처 방법
쌍무지개 차차차
꽃차는 잘 받았습니다만
회복
삼례
바글바글
음악 분수쇼
18
일요일엔 믿고 싶었다
3분 미역국
테트라포드
사랑합니다
조강지처
해설
유머로 자신을 바로 세우는 시인
-조성국(시인)
추천사
-
조명희의 시는 과감하고 다정하다. 시의 행간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것이 있다. 귀퉁이가 뜯겨나간 지도, 이름이 두 개인 나, 다 빠져나가 느슨해진 브라 속까지. 시인의 세계 속에서 마지막 문장을 밟으면 직각으로 떨어지며 투신한 얼굴을 만나게 된다. 아직 발각되지 않은 은밀한 살갗, 그래서 더욱 그립고 무서운 나의 뒷면. 꺼져 있던 그곳에 조명희의 문장이 반짝하고 불을 켠다. 오래 거기 있었지만 까마득히 잊었던 서늘한 눈빛과의 조우.
조명희의 시는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행을 따라 들어가면 마지막 문장에 매달려 있는 창백한 손이 있다. 독자는 재빨리 돌아 나오지 못하고 벼랑 밑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이끌리듯 다가설 것이다. 거기엔 실어증에 걸린 얼굴들이 매달려 있다. “어디선가 본 익숙한” 얼굴이기도 하고, 내가 “빌려 살던” 너이기도 하다. 분명한 건 선을 긋고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았던, 잊고 싶은 얼굴들이다. 조명희의 시는 그 얼굴들이 하는 말을 적는다. 표정을 바꾸고 체위를 바꿔 여러 사람이면서 한 사람이기도 한 그 목소리는 마침표 없이 이어진다. 그건 시인이 대신 받아쓴 우리들의 목소리이다. 우리가 벼랑에서 무참히 밀어 버렸던 수많은 얼굴을 마주 보는 “흑백사진” 같은 한 시인의 사원이다.
책 속으로
엄마는 양은 밥상만 한 땅뙈기에 세 들어 살았단다 이래도 저래도 산다는 게 세상에 세 들어 사는 거라 겁이 없었단다
나도 엄마 배 속에 세 들어 살았단다 사글세란 그렇단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 줄 수 없으면 방 빼는 거란다
그날도 엄마는 밭에 갔단다 팔 걷어붙이고 김장 무 몇 개 뽑고 잠시 쉬어 다시 끙, 하니 내가 뽑히더란다
줄 세는 없고 주인 얼굴 한번 보자고 서둘러 나왔단다
세상에 나와 세 치르다 한 시절 가고 탯줄 묻은 자리 오동나무 꽃만 환장하더란다
나도 환장한단다
-「세」 전문
미란이는 양계장 집 막내딸이었다
도시락엔 언제나 달걀프라이가 있었고 노른자 같은 두 번째 분단의 분단장이었다
생물 시간에 듣지 못한 유정란 이야기나 오종종 병아리 떼 몰고 다니며 등판 까진 암탉 이야기를 들려주던 미란이
같은 날 낳은 알도 일찍 병아리 되는 놈 있듯 2교시 끝나고 도시락 뚜껑부터 까던 미란이는 취업도 빨라
달걀판 세던 눈썰미로 경리부장을 넘보기도 했다고
그런 미란이가 저세상도 일찍 넘봐
동창회 날이면 삶은 달걀 같은 미란이 얘기를 한다 추가로 나온 계란탕을 퍼먹으며 그때로 간다
-「미란이」 전문
응, 응,
그럼 이따 봐
2월은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점점 짧아지고
약속 시간이 더디 와 십 분이면 족한 거리를 돌아 돌아 걷는다 작업 차량이 차지한 도로의 복판을 피해
신발보다 싸다는 타이어뱅크 앞으로 지나칠까 온누리통신 쪽으로 갈까 차라리… 변두리엔 언덕배기가 많아 담벽 무늬엔 틀린 그림이 없다 쑥부쟁이 앉았던 자리 돌멩이 얹는다 새싹 딛고 오르라고 고층 건물 사이 사라지는 겨울의 볕뉘
화장품 가게에 들러 진달래 립스틱을 샀다 그새 노면엔 새로운 방향의 화살표가 그려지고
저쪽에서 그가 손을 흔든다
-「입춘」 전문
그때 왜 하필 배터리가 나가냐고
벌써 6년째 똑같은 말을 하는 오빠는 많이 무덤덤해졌는지 썰기 시작한 홍어의 굵기가 일정하다
삭히지 않은 홍어라니
젓가락이 모두 같은 접시를 향했다
그날 엄마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데,
흘린 초고추장을 닦으며 오빠는 그때를 재연했다 병상에 누워 허공을 젓는 엄마
나는 오빠의 손을 잡는다
자고 가라는 말을 들을걸
이미 톨게이트를 들어서고 있었다 눈발은 아까보다 거세게 내리고
와이퍼가 어지럽다 집으로 가는 길이 맞나? 눈송이들이 나를 에워싼다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엄마가 즐겨 부르던 찬송가였다 정화수를 떠 놓던 습성이 새벽기도로 바뀌며 비비기보다는 모으기에 익숙해진 손
이제는 포갤 수 있는
예고에 없던 폭설로 정체가 시작되었다 낯익은 이정표를 보고서야 창문을 내린다 손바닥에 내려앉는 눈송이
엄마의 손을 잡는다
가장 부드러운 살이었다
-「삭히지 않은」 전문
내 이름은 두 개다
아버지 술 드시고 출생 신고 하러 가 면서기랑 농담 따먹기 하다 한자의 획을 잘못 그어
엄마는 취학통지서를 받아 들고 어디다 꼬불쳐 놓은 자식 있느냐며 아버지를 닦달하였단다
쥐어뜯긴 아버지는 맨정신으로 면사무소에 다녀와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나를 가리키며
쟈가 갸여
없는 살림에 이름 하나 더 생겼다고 달라지진 않아 반반 치킨처럼 두 이름을 나눠 썼는데
쟈는 동아전과 두 권 값을 받아 한 권으로 떡볶이를 사 먹으려 했으나 갸가 보이지 않고
갸는 완행버스 타고 도시로 나가려 했으나 쟈가 보이지 않아
쟈와 갸는 서로에게 들키는 일이 없었다
가끔 대신 살긴 했지만
-「쟈가 갸」 전문
어릴 적 봄은 동춘서커스가 몰고 다녔지
침대는 가구가 맞고 스프링은 과학이 아니지 차력사는 칼을 휘둘러 온몸이 얼어붙었지
이듬해 서커스가 오기까지 풀리지 않던 스프링
임산부와 노약자 우선은 아저씨들의 스프링 덕이지 보조로 나온 옆트임 롱스커트 여인을 보며 스프링 스프링
보조 스프링은 한 번 더 스프링이지 베개를 베고 잠든 날은 여러 개의 칼을 낳는다든가 날을 낳는다든가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고 말하면 코흘리개들의 스프링은 개구멍이 되지 선데이서울을 보며 구멍을 키우는
내 스프링은 봄날은 간다가 아니지 먼저 보겠다고 튀어 오르는 스프링이지
저만큼 봄날이 오고 있거든
-「스프링은 스프링」 전문
언니,
우리 통영 가요
첫눈 오는 날 아는 동생이 통영에 가잔다 생선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도다리쑥국을 먹잔다
그 사람은 일 년에 한 번 꼭 통영엘 간대요
나는 통영에 여러 번 가 봤고 중앙시장에서 도다리쑥국을 먹었고 함께한 그 맛을 이제는 잊을 만한데
언제 갈까?
동생은 이른 봄에 가자 하고
나는 겨울 가기 전에 가자 한다
언니, 그거 알아요?
가자미를 입에 넣고 국물을 뜨면 입안에 바다가 요동친대요 그것도 쑥 향으로
그 사람이 그랬어요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과
이미 끝장난 사람 둘이 앉아 통영에 가자 한다
도다리는 한쪽으로 눈이 쏠려 있다는 걸 알 듯 우리도 이제는 사람에 대해 알 때가 됐는데
-「도다리쑥국」 전문
문에도 살이 있어
성혈사에 갑니다 문창살을 보러
일주문에 들어서니 독경 소리 햇빛을 그러모으네요
대웅전엔 여러 사람이 한 방향이고 노스님은 춤을 춥니다 이승에서 떠돌지 말라고 손 흔듭니다
요령은
요령 피울 새 없습니다 흰 국화 사이 강아지풀 씨 퍼뜨리는 것을 봅니다
많이 깨끗한 날입니다
어서 가시라고 편히 가시라고 발걸음 떼지 못한 영혼을 올려 보냅니다 얼마 동안 저리 서 있었을까요
보내 놓고 다시 불러 보는 마음이란
몇 걸음 올라서니 나한전
문창살부터 보입니다 물고기가, 학이, 연꽃이, 연 가지 타고 노는 동자승이 있습니다
자꾸 들여다볼수록
나를 찾게 됩니다
-「꽃문살」 전문
출판사 서평
걷는사람 시인선 85번째 작품으로 조명희 시인의 『언니, 우리 통영 가요』가 출간되었다.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2012년 《시사사》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시집 『껌 좀 씹을까』를 묶으며 자신의 시세계를 활발히 펼쳐 보였다.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사람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아내면서도 서늘한 위트를 잃지 않는 조명희의 매력적인 시집이 다시 한번 우리에게로 당도한 것이다.
조명희는 유머러스한 태도와 예리한 시선으로 자신이 지나온 생애를 훑는다. 이때 첫 수록작이 시인의 탄생을 알리는 신화의 서막으로 동원된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시집에는 “나도 엄마 배 속에 세 들어 살았단다 사글세란 그렇단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 줄 수 없으면 방 빼는 거란다”(「세」)라는 표현처럼 시인의 생애를 톺아보게 하는 핍진한 시편이 거듭 등장하는데, 조명희의 재치에 무르익은 필력이 더해져 시집을 아우르는 분위기와 상징에 힘을 싣는다. 가령, “내 이름은 두 개다”라는 의미심장한 선언이 “아버지 술 드시고 출생 신고 하러 가 면서기랑 농담 따먹기 하다 한자의 획을 잘못 그어”라는 반전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쟈와 갸는 서로에게 들키는 일이 없었다//가끔 대신 살긴 했지만”(「쟈가 갸」)라는 능청스러운 결말로 귀결되는 것이다. “나도 환장한단다”(「세」)라는 시인의 독백이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던 독자의 감탄으로 번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생명과 사물이 가진 고유성을 적극 활용하여 독자를 과거의 한 장면으로 건너가게 하는 일에도 능숙하다. 독자는 “신발보다 싸다는 타이어뱅크 앞으로 지나칠까 온누리통신 쪽으로 갈까” 고민하는 시인을 따라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입춘」) 속에 섞여드는가 하면, “저세상도 일찍 넘”보는 “양계장 집 막내딸”(「미란이」) 미란이를 회고하는 동창회에 초대받기도 하고, “첫눈 오는 날”에 “언니,/우리 통영 가요”(「도다리쑥국」)라는 제안을 받으며 지나간 사랑의 씁쓸함과 입안에 요동치는 바다를 곱씹어 보기도 한다. 이렇듯 사랑과 우정, 탄생과 죽음 등 인간사에 깃든 오묘한 무늬가 켜켜이 쌓여 조명희만이 선보일 수 있는 무한한 신화로 완성된다.
조성국 시인은 해설을 통해 “조명희 시인의 방 불빛은 항상 다소곳했지만, 이제야 생각하니 그렇지 않았다. 내가 주눅 들 만치 “인생을 즐기는 챔피언”이었다.”라고 말하며 시집의 고요함이 내포한 “발칙한 섬뜩함”에 주목한다. 또한 “역마살 낀 듯이 돌아다닌 곳곳마다 서사의 형상이 그려지듯 빚어져서 그닥 낯설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면 사람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뜻이다.”라고 짚어내며 조명희의 행보를 지지한다.
추천사를 쓴 손미 시인은 조명희 시에 드러나는 과감하고도 다정한 면에 주목한다. 특히 “시인의 세계 속에서 마지막 문장을 밟으면 직각으로 떨어지며 투신한 얼굴을 만나게 된다. 아직 발각되지 않은 은밀한 살갗, 그래서 더욱 그립고 무서운 나의 뒷면. 꺼져 있던 그곳에 조명희의 문장이 반짝하고 불을 켠다.”라고 진단한다. 이 시집에 담긴 드라마를 펼쳐 본다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손미)는 무궁무진한 하나의 생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2333687 |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02월 28일 | ||
쪽수 | 144쪽 | ||
크기 |
126 * 201
* 12
mm
/ 251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걷는사람 시인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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