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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둘레에서 모든 장르를 아우르다
‘내리문고’의 두 번째 도서 〈세 사람을 위한 레시피〉가 출간되었다. ‘내리문고’는 한국 문학의 미래를 제시해 줄 20대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수록했다.
도서 〈세 사람을 위한 레시피〉는 열두 명의 젊은 작가들의 문학적 지향점과 성취를 확인하고, 한국 문학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 가늠해 볼 기회를 마련한다. 수록 작품으로는 시, 소설, 논픽션, 문학비평, 문화비평과 같이 장르에 따른 경계를 세우지 않고 두루 실었다. 이처럼 제약 없는 작품을 통해, 젊은 작가들의 생동하는 문학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정보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이후로 마땅한 커리어 갱신은 없다. 직업도 수입도 없이 시골에 처박혀 삶의 의미 따위를 고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청춘을 연료 삼아 망망대해 같은 인생을 몇 년이나 표류한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 들어서는, 창작이란 행위에 열중했던 대학 시절이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모호하고 희미하게만 느껴지는 일상 속에서, 대체 어떤 지루하고 평범한 직업에 종사해야만 인생이니 예술이니 하는 가증스러운 고민과 결별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바퀴처럼 구르고 혀로 쓴 시입니다. 학교에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기에 사람이 되면 예술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예술은 그것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언가 목숨을 걸고 해본 적이 없던 만큼 이제는 목숨을 걸고 해보려고 합니다. 그 결과물은 시가 아닐 테지만 제가 십 수년간 바라던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다시 만날 때는 저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영원한 가치를 찾아 나섭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익숙하고도 소중한 것들을 말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저는 이 세상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아직은 순간의 반짝임이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잠깐일지라도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들이 좋습니다. 평생 그 빛을 쫓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짧은 글로 더듬어가듯이 그려내기에는 아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더 알지 못해 아쉽고 더 잘 그려내지 못해 미안한 이야기들입니다.
장주영은 1996년 5월 28일 대한민국 서울시에서 태어났다. 공부를 너무 잘해서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꼭 서울대에 보내려고 했는데, 역시 문학이 더 재밌어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갔다.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보는 만큼 많이 쓰는 기록자다. 친구들에게 취미로 하던 작사 작곡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칭찬을 들은 후 걸그룹 러블리즈에게 타이틀곡을 선물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피아노 치는 것과 RPG 게임하는 것을 좋아한다. 달콤한 디저트와 산책을 좋아한다. 인디밴드들을 좋아한다. 돌봐주는 길고양이가 있었다. 누군가 “끔a찍하고 무서운 세상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고 쓴다면 장주영은 “끔찍하고 무섭고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고 쓰는 작가다.
중앙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있다. 올해로 10년 차 오타쿠다. 25살이 되기 전에 탈오타쿠 하는 것이 목표지만 큰 기대는 안 한다. 다만 그 전에 학교는 졸업하고 싶다.
세상에서 숫자 3을 제일로 좋아하는 사람.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3이 좋은데, 그래서 그런지 가족도 3명, 제일 친한 친구도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쭉 3명씩 몰려다녔다. 지하철 3번이나 33번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을 때마다 묘한 쾌감을 느낀다. 요리에서도 삼세판의 규칙은 깨지지 않는다. 한 번 짜고, 한 번 싱거우면, 그다음은 무조건 맛있다고 믿는다.
목차
- 시
추백리(雛白痢) 외 4편 / 김동원
베리 외 4편 / 최정헌
소설
사냥꾼의 해안 / 김도언
방방에 두고 온 것 / 진종후
소에 / 한제윤
조명 없이, 더듬어가며 / 이주섭
속삭임과 속삭임 / 장주영
논픽션
밴드가 아이돌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 데이식스의 앨범 스토리텔링: 물리학과 사랑의 책 / 김효정
장래희망은 탈케이팝입니다 / 조아정
세 사람을 위한 레시피 / 한예지
문학비평
고장난 카세트와 테이프 유령들 - 강성은의 〈Lo-fi〉에 나타나는 유령: 소리의 리듬들 / 한상우
문화비평
광고는 영원한 움직임이다 - 한국 펨버타이징의 성장과 과제 / 이다연
책 속으로
긴 생을 살진 않았지만 앞으로의 기다림이 길기에 / 나는 생에 대해 노래할 자격이 있다
- 김동원, 〈추백리(雛白痢)〉, 9쪽.
계산한다 거리가 뜨겁지 정오에 해는 제일 높은 곳에 있고 방금 폭염특보 외출 자제 문자가 왔을 정도로 검은색은 모든 빛을 흡수한다던데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으면 햇빛의 힘이 셀지 옷걸이의 힘이 셀지 궁금해지는 열대 과일
- 최정헌, 〈나나〉, 27쪽.
늦가을 저녁 하늘로 상흔 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산 중턱 솔숲에서 이른 야영을 준비하던 사냥꾼은 무성한 솔잎과 잔가지 사이로 연기의 끄트머리를 언뜻 보았다. 꺼림칙한 징조였다. 사냥꾼은 굳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육포와 야채가 익어가던 냄비를 모닥불 위로 뒤엎고 발갛게 남은 잔불을 밟아 꺼트렸다. 사슬 갑옷의 끈을 단단히 여민 사냥꾼은 칼과 활을 어깨에 걸었다. 그는 빠르게, 하지만 침착하게, 미리 점찍어두었던 전망 좋은 낭떠러지로 이동해갔다.
- 김도언, 〈사냥꾼의 해안〉, 33쪽.
혀가 잘리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에서 한두 번 보았고 할머니가 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러니 콱 혀 깨물고 죽지. 매일 밤 여덟 시에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할머니는 항상 그 말을 한다. 처음 들었을 때 그 충격이란. 말은 안 했지만, 이후로 나는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일주일간 내 머릿속에서 할머니는 혀가 잘린 채 지하철역 앞에서 장사를 하다 죽어 있었다. 반 토막이 난 혀가 바닥에 엎드린 할머니 뒤통수 위에 올려진 채로 살아 있는 듯 팔딱거렸다.
- 진종후, 〈방방에 두고 온 것〉, 65쪽.
지독하게 오래된 눈물까지 게워내고 나자 소에는 별안간 옥수수 하나에 무너져버린 걸 다른 사람도 아닌 희준에게 들켰다는 사실에 두려워졌다. 잦은 말다툼에서 희준의 비논리적 논쟁 방식에 비장의 무기를 던져준 꼴이었다. 소에가 게슴츠레 희준을 올려다보자 희준은 턱 보조개가 들어갈 정도로 환하게 웃어 보였다. / “걱정 마. 사람이 옥수수 때문에 좀 울 수도 있지 안 그래?”
- 한제윤, 〈소에〉, 105쪽.
뭉개져 절단된 손가락에서도 손톱은 자라난다. 접합된 손가락의 끄트머리에서 자그마하게 새로 자라나는 손톱은 아기새처럼 연약하다. 조그마한 새 손톱은 부러지기 쉬워서 아주 조금씩 손질해야만 한다. 그래서일까, 요셉은 아직도 손톱이 길어지면 나를 부르고는 한다.
- 이주섭, 〈조명 없이, 더듬어가며〉, 118쪽.
그때 나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어. 나는 연주를 멈추고 전화를 받았지. 전화는 짧았어. 전화를 끊고 나는 피아노 뚜껑을 닫았어. 심장이 뛰었어. 그때 나는 내 심장을 느꼈어.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내 심장을 느낀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 나는 피아노 앞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어. 한 손은 피아노 뚜껑 위에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전화기를 붙든 채. 슬프지 않았어. 고통스럽지도. 그저, 없었어. 아무것도. 내 안에.
- 장주영, 〈속삭임과 속삭임〉, 143쪽.
모든 멤버들이 노래를 부르고, 작사하고, 작곡해서 앨범과 음악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 있게 곡의 의도와 비하인드를 소개한다. 그들은 이미 한 명 한 명 돋보일 수 있는 아티스트이자 밴드 그룹이다. 이런 데이식스의 모습은 곧 ‘데이식스=오직 음악’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어 냈다. 어떤 수단을 통하지 않고 진득하게 자신들의 음악성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일종의 고집 같은 것이 묻어난다. 이제 대중은 이들의 이런 모습을 안다.
- 김효정, 〈밴드가 아이돌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 데이식스의 앨범 스토리텔링: 물리학과 사랑의 책〉, 175쪽.
나와 친구들은 관성의 힘으로 C 그룹을 사랑했다. 그러다 보니 사랑하는 행위 자체가 관성이 되었다.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에게 사랑하지 않는 시간은 공허하고 무료했다. 방황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것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자주 화를 냈다.
- 조아정, 〈장래희망은 탈케이팝입니다〉, 215쪽.
결국, 그건 내가 직접 맛을 보며 알아가야 할 문제다. 그 답을 알기 위해 나는 또 몇 번의 짠맛과 밍밍한 맛을 봐야만 했다. (다행히도 맨 처음 만든 고추장찌개만큼 끔찍한 맛은 아니었다) 덕분에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지금, 나에게는 하나의 확고한 요리 철학이 생겼다. ‘한 번 짜고, 한 번 싱거우면, 그다음은 무조건 맛있다.’
- 한예지, 〈세 사람을 위한 레시피〉, 223쪽.
음악의 최소 단위를 무엇으로 전제할 수 있을까. 말을 바꾸어 음악을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환원해본다면 그것은 아마 소리에 해당할 것이다. 이때의 소리는 음(音)에도 악(樂)에도 해당하지 않는 가장 순수한 양식의 운동, 청세포를 자극하는 파동에 지나지 않는다. 소리는 음악의 전제이면서 음악 아닌 것, 음악이 되지 않은 것, 위상이 설정되지 않고 그에 따라 의미가 배태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소리는 단순히 들리는 것이라는 대상에 머문다. 소리는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고 의미하지 않는다. 소리는 감각의 텅 빈 기호며 관념에 불과하다.
- 한상우, 〈고장난 카세트와 테이프 유령들 - 강성은의 ‘Lo-fi’에 나타나는 유령: 소리의 리듬들〉, 231-232쪽.
페미니즘 맥락의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아도, 광고의 스토리텔링 요소에서 성 역할 고정관념과 성적 대상화를 피하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 전개될 것이다. 각성한 소비자들의 의식과 가치를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펨버타이징의 과도기 속 소비자들은 페미니즘 메시지가 상업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펨버타이징의 성장이 사회 흐름의 변화에 유익한 영향을 가져올 것을 기대하고 있기에, 펨버타이징의 연속된 등장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 이다연, 〈광고는 영원한 움직임이다 - 한국 펨버타이징의 성장과 과제〉, 282-283쪽.
출판사 서평
내일의 작가가 여는
문학의 미래 미리보기
○ 도래할 작가와 도래할 문학
열두 명의 젊은 작가가 세상에 처음 내보이는 작품은 시, 소설, 논픽션, 문학비평, 문화비평으로, 기성 문단의 틀로는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기성 문단이 포용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글’은 독자와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는 문단의 경직성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그들의 역동적인 문학이 가진 불확실성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동적인 문학 속에는 한국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담겨 있다. 또한, 한국 문학의 미래는 곧 도래할 작가가 품고 있다.
○ 문학이 외면받는 시대에도 꿋꿋이 분투하는 문청들
젊은 작가들은 문단의 바깥과 대중의 안에서 치열하게 창작한다. 그중 대부분은 ‘습작품’으로 불린 채 사라진다. 그리고 제도 문학으로 재단되지 않는 작품은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젊은 작가들은 분투를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빚어낸 ‘습작품’은 한국 문학을 지탱하고 미래를 열어나간다.
‘내리문고’는 문학에 대해 품고 있는 열정과 진정성, 응답 없는 세계를 향한 질문이 담겨 있다면 장르의 구분을 두지 않고 게재하였다. 이를 엿봄으로써 한국 문학, 더 나아가 문학의 넓은 전망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6898823 |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11월 27일 | ||
쪽수 | 288쪽 | ||
크기 |
147 * 210
* 21
mm
/ 531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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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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