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9인 테마 소설집
· 2023년 01월 31일
0.0
10점 중 0점
(0개의 리뷰)
평가된 감성태그가
없습니다
  •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대표 이미지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대표 이미지
  • A4
    사이즈 비교
    210x297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사이즈 비교 128x200
    단위 : mm
01 / 02
MD의 선택 소득공제
10% 12,600 14,000
적립/혜택
700P

기본적립

5% 적립 700P

추가적립

  • 5만원 이상 구매 시 추가 2,000P
  • 3만원 이상 구매 시, 등급별 2~4% 추가 최대 700P
  •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추가 최대 300원
배송안내
도서 포함 15,000원 이상 무료배송
배송비 안내
국내도서/외국도서
도서 포함 15,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도서+사은품 또는 도서+사은품+교보Only(교보굿즈)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교보Only(교보배송)
각각 구매하거나 함께 20,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20,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해외주문 서양도서/해외주문 일본도서(교보배송)
각각 구매하거나 함께 15,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업체배송 상품(전집, GIFT, 음반/DVD 등)
해당 상품 상세페이지 "배송비" 참고 (업체 별/판매자 별 무료배송 기준 다름)
바로드림 오늘배송
업체에서 별도 배송하여 1Box당 배송비 2,500원 부과

1Box 기준 : 도서 10권

그 외 무료배송 기준
바로드림, eBook 상품을 주문한 경우, 플래티넘/골드/실버회원 무료배송쿠폰 이용하여 주문한 경우, 무료배송 등록 상품을 주문한 경우
새벽배송 내일(3/26,수 오전 7시 전) 도착
기본배송지 기준
배송일자 기준 안내
로그인 : 회원정보에 등록된 기본배송지
로그아웃 : '서울시 종로구 종로1' 주소 기준
로그인정확한 배송 안내를 받아보세요!

이달의 꽃과 함께 책을 받아보세요!

1권 구매 시 결제 단계에서 적용 가능합니다.

알림 신청하시면 원하시는 정보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수상내역/미디어추천

강출판사의 2023년 테마소설집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에는 아홉 명의 여성 작가들이 쓴 남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가 만난 남자’, ‘나를 키운 남자’, ‘내가 키운 남자’, 살아오는 곳곳에 지뢰처럼 혹은 요람처럼 있었던 남자들을,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그려낸다.

모든 것이 남자들 탓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마운 남자들도 동시에 떠올랐다. 나를 밥 먹여 키워준 남자들, 내게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해준 남자들, 내게 상처를 줘서 결국은 성장하게 만든 남자들…… 여기 아홉 편의 소설들 역시 남자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남자란 무엇인가, 곤혹스럽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생물학적 남자를 떠나서 보편적 인간의 어느 한순간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다만 제각기 다른 아홉의 남자들이 한데 모여 이루는 풍경이 궁금할 뿐이다. _‘책머리에’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김이정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도둑게』 『그 남자의 방』 『네 눈물을 믿지 마』, 장편소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물속의 사막』 『유령의 시간』이 있다. 『유령의 시간』으로 제24회 대산문학상 수상.

저자(글) 박형숙

1993년 『실천문학』 가을호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부치지 않은 편지』 『아홉번째 고독』이 있다.

저자(글) 반수연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메모리얼 가든」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통영』이 있다. 네 차례 재외동포문학상을 받았으며 2020년 「혜선의 집」으로 대상을 수상.

저자(글) 이성아

이성아

1998년 단편 「미오의 나라」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2021년 장편소설 『밤이여 오라』 로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 장편소설 『가마우지는 왜 바다로 갔을까』, 소설집 『태풍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요』 『절정』, 산문집 『나는 당신의 바다를 항해 중입니다』가 있다.

저자(글) 이수경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 시작. 2020년 소설집 『자연사박물관』을 출간했고, 2023년 봄에 두번째 소설집 『너의 총합』이 출간될 예정이다.

저자(글) 이후경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 『달의 항구』, 장편소설 『저녁의 편도나무』가 있다. 김만중문학상 소설 부문 금상 수상.

저자(글) 하명희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불편한 온도』 『고요는 어디 있나요』가 있다. 전태일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 백신애문학상 수상.

목차

  • 책머리에

    김이정 | 하이엔드 라이프
    박형숙 | 정화된 밤
    반수연 | 빅터 아일랜드
    부희령 | 콘도르는 날아가고
    이경란 | 다정 모를 세계
    이성아 | 유대인 극장
    이수경 |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이후경 | 사양관(斜陽館)
    하명희 | 오래된 서점에서

출판사 서평

■ 작가 노트

김이정 | 하이엔드 라이프
“오디오를 좋아한다. 때론 음악보다 오디오를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릴 적 집에 있던 진공관 라디오부터 지금 듣고 있는 빈티지 오디오까지, 내가 음악을 들은 기기들을 생각하면 가끔 내 인생 전체를 오디오의 역사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한때 오디오에 빠져 있을 땐 중고 스피커나 튜너, 앰프를 사러 남의 집을 겁 없이 드나들었다. 남자 혼자 있는 집을 방문해 청음을 하고 무거운 스피커를 차에 싣고 오기도 했다. 집에 와서 케이블과 안테나, 잭을 연결하는 것도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전기와 전파에 대한 이해도 없이 그것들을 무사히 연결해 소리가 나기까지의 과정은 늘 어렵고 힘들었다. 간혹 연결이 잘되어 아름다운 음악이 예고도 없이 흘러나올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잘못 연결해서 잡음이 스피커를 찢어버릴 것처럼 쏟아졌다. 그때마다 나는 매뉴얼을 읽지 않는 습관을 탓했다. 찾아보고 읽어보면 될 것을 나는 늘 무턱대고 덤볐다. 대부분 기기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겨우 이해했다. 내겐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이 가는 대로 겁 없이 따라가고 나중에 후회했다.
어느 밤, 대리운전 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에 도착했는데 주차까지 완벽하게 해주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에 울컥했다. 힘껏 곧추세운 등뼈들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내 모습이었다. 빈티지 오디오가 정이 가듯 남자도 이젠 연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박형숙 | 정화된 밤
“이 소설은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을 모티브로 썼다. 본문에서 인용된 시는 리하르트 데멜의 「두 사람」의 일부이다.
쇤베르크의 곡은 어렵지만 새로운 자극을 준다. 공연장에서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의 연주를 들은 날도 그랬다.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뭐라 말할 수 없는, 불편하지만 싫지는 않은, 언젠가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덮쳐왔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리하르트 데멜의 시를 접했다.
남자는 자신의 유전자가 섞이지 않은 아이를, 그러니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해 리하르트 데멜은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한다. 같은 물음을 소설 속의 M씨에게 던져보았다. M씨는 속 시원히 답해주지 않았다. 하여 나는 M씨의 일상과 내면을, 과거와 현재를 따라가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해왔던 M씨에게도 이 문제는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M씨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신을 반추하는 가운데 힘겹게 자신의 실제 모습에 가닿는다. 이를 지켜보는 나는 여성 작가로서 그의 인간적인 고뇌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따름이었다. M씨는 보편적인 남자(men)일까? 아니면 단지 자신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 남자(a man)일까?
1899년 25세였던 쇤베르크는 3주 만에 이 곡을 작곡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청중들의 반발을 샀지만 지금은 19세기 쇤베르크의 대표곡으로 손꼽힌다고 하니 그 내용과 형식 모두 급진적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곡에는 쇤베르크가 결혼하기 전의 감정이 투영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훗날 그의 아내는 다른 예술가를 따라 떠나고, 쇤베르크는 그 후 일체의 감정을 탈각시킨 것 같은 무조주의로 돌아섰다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핏줄은, 혈연은 늘 옹호되어야 할까? 핏줄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인간에게는 종종 이런 본능을 넘어서는 감정이나 행위가 있다. 물론 핏줄에 대한 부정 또한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정화된 밤이란 누구나 맞이할 수 있는 밤은 아닌 것 같다. 마치 쇤베르크의 까다로운 음악처럼.”

반수연 | 빅터 아일랜드
“남자가 없는 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일찍 죽었고 오빠들은 각자의 가정으로 가버렸다. 마흔에 과부가 된 어머니는 함께 사는 네 딸 대신에 죽은 남자를 원망하고 오지 않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보냈다. 어머니의 생은 남자의 유령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했다. 나의 생은 그런 어머니의 생과 좀체 유리되지 못했다. 나는 남자를 모른 채 남자가 없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자랐다.
세상에 남자 없는 이야기가 어디 있을라구, 화끈한 연애 소설이나 써야지. 남성 서사를 써보자 했을 때 재밌겠다며 맞장구쳤던 걸 이 소설을 쓰는 내내 후회했다. 나의 대부분의 성장 과정 속에서 남자는 부재했고 남겨진 여자는 불행했다. 그러니 나는 남자를 몰랐다.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아 갓난쟁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웠지만 여전히 나는 남자를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남성 서사라는 게 뭐란 말인가.
산문집을 내느라 두 달을 한국에 머물다 어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마감이 지난 작가노트를 쓰려고 노트북 컴퓨터를 열었다. 집이 캐나다에 있으니 돌아온다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비행기를 타기 전 친구들에게 보낸 작별 문자에는 곧 한국으로 돌아오겠다, 고 썼다. 언제부턴가 어디가 나의 원점인지 헷갈린다. 어디로 가는 게 돌아오는 건지 모르겠다. 이젠 돌아온다는 표현을 쓸 때면 모르는 문제를 받아 든 것처럼 잠시 골똘해진다. 골똘해질수록 더 미궁이다.
모국어가 없는 곳에서 그것의 부재를 써온 시간이 길었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했던가. 그건 끊임없이 모국과 모국어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남자 이야기를 쓰는 동안 나는 남자 없는 여자들의 삶을 더 오래 생각했다. 남자의 부재는 여자의 불행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을까. 내가 보고 겪은 삶은 얼마간 그랬다. 하지만 두어 달 남자 이야기를 쓰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모국과 이국. 남자와 여자. 어쩌면 중요한 건 그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고 나니, 원점이 어딘지 더 모르겠다. 그래서 남자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도 같다.”

부희령 | 콘도르는 날아가고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가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교통사고가 났다. 내가 열두 살 되던 해 겨울의 일이다. 아버지는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고 꽤 긴 시간 병원에 머물렀다. 어머니도 이따금 집에 들를 때 말고는 여러 달 동안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부모가 없는 집에서의 생활은 새롭고 자유로워 좋았으나, 새 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조숙하지만 방치된 아이로 세상을 대면하면서 기이한 경험을 자주 했다. 이전에는 세상 사람들을 막연히 어른과 아이로 나누어 생각했으나, 이후로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범주가 더 선명해졌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머릿속에서 사람들을 분류하는 방식은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끼어드는 범주나 선입견 없이, 분류하지 않고 사람을 만나기가 꽤 어려운 일이 되었다.
열두 살 여자아이의 눈과 목소리를 다시 꺼내 쓰는 일은 상쾌했다. 너무 두툼한 외투를 입어서 움직임이 굼뜬 상태로 살아오다가 겉옷을 벗어 던진 느낌이었다. 비로소 본래의 나로 돌아온 것 같은 과장된 활력이 샘솟았다. 물론 부처의 말씀에 의하면, 세상에는 나라는 게 없고 또 내가 아닌 것도 없다. 그러나 열두 살 여자아이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에 가장 부합했다.
숨어 있던 자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담임 선생으로부터 “부모님들에게 ‛10월 유신’ 국민투표에 꼭 찬성해야 한다고 말씀드려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나, 온종일 칠판만 바라보고 앉아 있어야 하는 학교가 싫어서 과학실에 불을 지를 계획을 짜던 나, 사람들 앞에서 네번째까지 딸인 걸 알고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고 말하는 엄마를 미워하던 나, 버스 요금이 없는 줄 알면서도 무턱대고 버스에 탔다가 차장 언니에게 쫓겨 내려야 했던 나. 그 모든 내가 금지와 권위의 철조망으로 휘감겨 있던 흑백의 시절을 총천연색으로 다시 살아보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이경란 | 다정 모를 세계
“오래 미루어왔던 충치 치료를 받고 있다. 치과만큼 가기 싫은 곳이 또 있을까 싶게 치과 치료는 공포스럽다. 외면해봤자 호전될 가능성은 결코 없다는 점에서 충치를 인생의 축소판으로 간주해도 될까. 몇 회에 걸쳐 신경 치료를 받았는데 오래 방치한 탓으로 신경을 감싼 세포들이 석회화 되어버려 치료가 까다롭다는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그 말이 내게는 삶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겁내지 말고 정면으로 돌파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말로 확대되어 들렸다.
세번째 신경 치료에서 의사는 ‘파일’이라 불리는 가느다란 도구를 치아에 꽂은 채 방사선 사진을 찍게 했다. 모니터에 띄워진 내 치아에 가늘고 길쭉한 침 같은 것이 두 개 꽂혀 있었다. 신경의 위치와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할 때 이렇게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놀랍다. 저 미세한 선들이 고통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의사는 모니터를 확인한 다음 다시 뾰족한 기구로 치아 깊은 곳을 찔렀다.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 인정사정 보지 않고 후벼 파지 않으면 통증을 없앨 수 없다. 그것이 두렵다면, 혹은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친다면, 발치밖에 방법이 없을 것이다. 다음 순서는 이가 뽑혀 나간 자리를 텅 비워두고 상실을 감내하거나, 인공 치아를 이식하는 것일 테고. 마취가 된 상태라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고 다만 약간의 압력이 전달될 뿐이었지만 지레 겁을 먹고 자꾸 움찔거리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비로소 해결을 향해 한 발 내딛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느껴졌다면 내가 너무 얄팍한 사람일까.
애초 치료를 받으려 했던 치아는 사실 다른 것이었다. 막상 치과에 가보니 지금 치료받고 있는 치아가 더 많이 상해 있었고, 그 양옆의 치아도 이미 상한 상태였다. 이것들의 치료가 끝나면 애초 걱정되었던 치아의 치료를 시작한다고 했다. 예상을 벗어난 진단과 치료 순서인 셈이다. 닮지 않았나, 인생과?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 방치하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몸은, 치아는 참으로 정직하다. ‘다정’은 그것을 몰랐을까. 그럴 리가. 치료가 마무리되면 취약해진 치아를 잘 보존하고 돌보면서 지내야 할 터이다. ‘다정’도 그쯤은 알게 되었을 것이고.”

이성아 | 유대인 극장
“해외여행을 하면서 두어 번 정도 혐오 발언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한번은 은발을 곱게 빗어 넘긴 자그마한 할머니로부터, 한번은 10대 백인 소녀들로부터. 그때 알았다. 혐오의 언어는 번역이 필요 없다는 걸.
할머니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충격이 너무 커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10대 소녀들이 우르르 몰려가면서 나를 향해 그런 말을 했을 때는, 나도 가만 있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욕설을 줄줄이 읊었다. 물론 한국말로. 오해를 살까봐 변명을 하자면, 나는 욕설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어의 찰진 욕설은 나의 흥미로운 채집 대상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살 떨리는 모욕이 되는 말이, 진한 애정을 표현하는 말로 둔갑하는 걸 볼 때면 한국말이 신비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채집해놓은 것이 마침내 진가를 발휘했다. 나는 마치 책을 읽듯이 욕설을 나열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소녀들이 움찔하더니 겁먹은 강아지들처럼 꽁지를 내리고 도망쳤다. 나는 욕 배틀에서 승리한 것처럼 쾌감마저 느꼈지만, 오랫동안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그것이 소설의 씨앗이 되었다.”

이수경 |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내가 무섭니?”
언젠가,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에게 장난삼아 물었던 적이 있다. 아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좀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엄마가 그렇게 무섭게 하지는 않았는데? 너보다 힘도 약하고……” 하고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아이가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권력이니까요. 그렇게 물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고, 오래도록 마음에 두었다.
언젠가 중학생 소녀와 부모의 갈등을 보여주고 상담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가 저러면 더 무섭죠, 엄마보다.”
중학생 소녀의 아빠가 그 애의 엄마보다 특별히 더 무서울 만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나, 나는 ‘본능적으로’ 아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권력.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어도 태생적으로 갖게 된 힘.
그 권력과 힘에서 느끼는 폭력의 가능성과 두려움.

이 소설이 꼭 ‘남자’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옛날, 어디에서든 명석하고 건강했던 나의 엄마가 유약한 ‘남자’ 아버지의 ‘힘’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지던 어떤 날을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그도 모르게 갖게 된 권력과 힘에 대한 두 아이의 말.
이제는 청년이 된 그들에게도 주어질지 모를 그것에 대한, 아직은 무해한 이야기였다.”

이후경 | 사양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가. 이번 소설은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마로니에 꽃이 피고 지던 토지문화관에서 5월과 6월을 보내면서 내내 이 소설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쓴 시간은 얼마 안 되고, 무엇을 쓸지 결정하는 데 시간을 다 보냈다. 이것저것 마음에 두었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건드려보았으나 매번 엎어야 했다. 글이 나가주지 않았다. 숨 쉬듯 눈이 내리던 아오모리의 풍경만이 계속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 이야기는 안 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오모리에서 만난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선 언젠가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그건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자가 아니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번 소설은 남자에 대해 써야 했기에 아예 처음부터 젖혀놓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다른 글은 써지지 않고 봄이 지나 초여름에 접어들도록 내 눈앞에는 눈 내리는 풍경만이 아른거렸다. 나는 소설을 시작도 못한 채 초조해하기만 했다.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점심을 먹고 나면 텅 빈 세미나실에 들어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상아색 마로니에 꽃들이 보였다. 푸른 나뭇잎의 갈라진 손가락을 세었다. 일곱 개, 마로니에 나무는 칠엽수로도 불린다고 했다. 건물 처마에 집을 지었는지 작은 새들이 오르락내리락 부산스러웠다. 주인공을 남자로 바꿔 써볼까, 생각했다. 눈 내리는 빈 들판에 중년의 한 남자가 막막하게 서 있었다. 그 얼굴 위로 다시 여자의 얼굴이 겹쳐졌다. 남자의 탈을 씌운다고 될 얘기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번 소설집에선 빠져야겠다고 포기하려는데 문득, 남자 얘기를 먼저 쓰고 여자 얘기를 나중에 쓰면 되잖아, 하는 생각이 솟아났다. 이 글은 ‘사양관 1’이고, 나중에 ‘사양관 2’를 쓰는 거야. 그럼 정말 쓰고 싶던 얘기는 나중에 할 거니까 여기서는 부담 없이 얘기를 풀어도 되잖아.
그 생각이 겨우 소설을 시작하게 해주었다. 글은, 여전히 머뭇머뭇, 잘 나가주지 않았지만 도망만 치지 말자고 나를 달랬다. 그런데 처음을 벗어나니 오히려 이 글이 원래 쓰려던 글인 것처럼 편해졌다. 낯선 ‘현준’을 조금씩 알아가는 일이 설렜고, ‘유경’이 피아노를 치는 여자란 것도 알게 되었다. 유경의 얘기를 먼저 썼다면 현준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으리라.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유경도 피아노하곤 거리가 먼 여자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이 글을 먼저 썼어야 했다. 나는 현준이 좋아졌으니까. 피아노를 치는 유경도 마음에 드니까. 애인과 이별하고, 친구와 사별하고 홀로 떠난 눈의 나라에서 비로소 상실의 슬픔을 제대로 바라보는 한 남자한테 나는 서서히 스며들었다. ”

하명희 | 오래된 서점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던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기사를 본 것이 몇 해 전이었다. 그날 나는 집에서 나와 말 그대로 정처 없이 걸었다. 걷다 보니 내가 살았던 동네였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서점이었다. 그날 서점에는 어딘지 쓸쓸해 보이고 무언가를 찾는 듯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동안 서점에 오고 가던 추억을 풀어놓으며 서점 주인에게 인사를 하러 들른 사람들이었다. 나는 디귿자 책장 구석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다가 뜻밖에도 당혹스런 기억과 마주하게 되었다.
벽에는 삼십 년 전 상연되었던 연극 포스트가 붙어 있었다. 그 연극을 보지는 못했지만 포스터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할 말을 찾지 못하던 열일곱의 내가 떠올랐다. 그러자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연극을 같이 보자고 했던 그 애도 딸려 나왔다. 도대체 이 작은 서점은 내게 무엇이었을까. 얼마나 많은 기억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날부터 한 달 동안 직원처럼 매일 서점을 드나들었다.
나는 하루에 딱 하나만 이 서점이 좋았던 점을 적어나갔다. 하루종일 책을 봐도 눈치를 주지 않았던 것, 오로지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책을 읽다가 지겨울 땐 서점에 온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것, 그들의 꿈이나 일상을 엿들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던 것, 외로울 땐 아무 말 안 하고 고독할 수 있었던 것, 책을 안 사고도 그냥 나올 수 있었던 것, 책을 읽을수록 이상하게 더 고독해졌던 것. 좋았던 것들은 날마다 쌓여갔다. 그리고 한 달이 다 되어갈 때 나는 이렇게 적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가도 그곳에 이 서점이 있었던 것. 이 서점을 드나들 땐 내가 소설가가 될지 몰랐지만 막연하게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시작이 이 서점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제야 이 소설의 첫 문장이 시작되었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88982183133
발행(출시)일자 2023년 01월 31일
쪽수 276쪽
크기
128 * 200 * 28 mm / 450 g
총권수 1권

Klover 리뷰 (0)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Klover리뷰를 작성해 보세요.

문장수집 (1)

문장수집 안내
문장수집은 고객님들이 직접 선정한 책의 좋은 문장을 보여주는 교보문고의 새로운 서비스입니다. 마음을 두드린 문장들을 기록하고 좋은 글귀들은 "좋아요“ 하여 모아보세요. 도서 문장과 무관한 내용 등록 시 별도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리워드 안내
구매 후 90일 이내에 문장수집 작성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드립니다.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판매가 5,000원 미만 상품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나는 그저 슬픔의 찌꺼기를 쏟는 것뿐이다.
문득 삼십 년 뒤의 내 모습이 보였다. 얼룩이 있었다.
미가가 말했던 그 얼룩...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교환/반품/품절 안내

  • 반품/교환방법

    마이룸 > 주문관리 > 주문/배송내역 > 주문조회 > 반품/교환 신청, [1:1 상담 > 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오픈마켓, 해외배송 주문, 기프트 주문시 [1:1 상담>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반품/교환가능 기간

    변심반품의 경우 수령 후 7일 이내,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반품/교환비용

    변심 혹은 구매착오로 인한 반품/교환은 반송료 고객 부담
  • 반품/교환 불가 사유

    1)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2)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3)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4)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5)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이상 ‘다운로드’를 받았거나 '바로보기'로 열람한 경우
    6)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7)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8) 세트상품 일부만 반품 불가 (필요시 세트상품 반품 후 낱권 재구매)
    9) 기타 반품 불가 품목 - 잡지, 테이프, 대학입시자료, 사진집, 방통대 교재, 교과서, 만화, 미디어전품목, 악보집, 정부간행물, 지도, 각종 수험서, 적성검사자료, 성경, 사전, 법령집, 지류, 필기구류, 시즌상품, 개봉한 상품 등
  • 상품 품절

    공급사(출판사) 재고 사정에 의해 품절/지연될 수 있으며, 품절 시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이메일과 문자로 안내드리겠습니다.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1)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 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2)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