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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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으로 본 고흐의 일생’은 지치고 힘든 나를 위로한다.
목적지에 도달했다 해도 또 다른 곳을 향해 걷고 또 걷는 것.
별에 다다를 때까지 걷는 것.
걷다가 걷다가 별이 되면 은하수로 흐르는 것이 인생.
고흐는 화가 인생 10년 동안 유화 900여 작품과 드로잉 1,100여 작품을 완성했으며,
기적같이 딱 한 작품만 팔렸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고흐의 작품이 훗날 역사상 최고가를 형성할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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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이동연 작가는 KBS 해피FM 〈그곳에 사랑이 있었네〉에 다년간 출연하며 ‘예술가와 뮤즈’를 다루었고, 그때 고흐를 방송한 인연으로 이 책을 내놓게 되었다.
주요 저서로 《명작 뒤에 숨겨진 사랑》《명작에게 사랑을 묻다》《예술, 사랑에 미치다》《심리학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심리학으로 들여다본 그리스 로마 신화》《심리학으로 읽는 손자병법》《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기》《대화의 연금술》(삼성생명 콘텐츠 제공) 《그래, 한 박자 느리면 어때》《명작으로 읽는 통섭의 한국사》《365일 니체》《이기는 리더십 10》《CEO형 인재》《행복한 꿀잠》등이 있다.
소설 작품으로는 《삼별초》가 있으며, 《소설 손자병법》을 곧 발간할 예정이다.
온라인 기업 콘텐츠(E-Learning)에 베스트셀러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과 《조선 야사로 본 비즈니스 전략》《김진명의 고구려 한민족 최강의 리더십》등이 출시 중이다. 삼성SDS, 우리은행, 한국산업단지공단 등 주요 경영잡지에 기고했고, YTN, SBS, MBN, BBS, WBS, EBS 등의 방송 매체와 KIRD(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EMC, 대학교, 공무원 핵심 리더 과정 등에서 강의를 해왔다.
목차
- ● 해바라기가 피었습니다
해바라기가 피었습니다
구필 화랑의 유능한 화상
첫사랑이 남긴 붓 한 자루
걷고 또 걷고… 인생은 길을 걷는 것
천 마디 말보다 한 장의 그림
● 둥지
케이, 이 손이 불꽃을 견딜 시간만큼이라도
창녀와의 동거
지위나 명예를 탐하지 않는 자연인으로
감자 먹는 사람들
두 사람이 좋은데 왜 주위에서 반대할까
둥지
● 노란 집을 빌리다
파리의 인상파와 물감 가게
철학 논쟁의 중심에 선 구두 한 켤레
고갱과 탕기 영감
세가토리의 임신과 고뇌
가자, 아를로
지누 부인
노란 집을 빌리다
집시들의 순례지 생트마리드라메르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 우체부 룰랭
단테를 닮은 외젠
● 고흐와 고갱, 가까이하기엔…
고흐와 고갱의 자화상 교환
별밤지기
해바라기
같은 모델, 다른 묘사
아를의 포도밭
같은 듯 다른 고갱과 고흐
배려하려 서로 애썼지만…
〈안녕하세요, 쿠베르 씨〉 앞에서 안녕치 못했던 두 사람
왜 고흐는 렘브란트에게 감동했을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사이
● 스스로 택한 고독의 길
케이, 만약 우리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우아하려 한 어머니
두 개의 빈 의자
펜싱 검을 든 고흐
그림 한 점 팔릴 기미도 보이지 않고
레이, 의사의 전형
뒤집힌 게
폴 시냐크의 권유, “지중해로 갑시다”
헌병대장과 청어 두 마리
스스로 고독을 택하다
차라리 용병으로 갈까
● 별이 빛나는 밤에
생레미 요양원
지누 부인과 별이 빛나는 밤
형, 내 아이도 빈센트라 부를래
별과 길과 사이프러스
어머니, 저에겐 캔버스가 밭이에요
요양원의 돌 벤치
고흐의 전시를 위해 결투까지 신청한 로트레크
봄이 오기 전 먼저 피는 아몬드꽃
파놉티콘 사회
과찬의 평론은 부담스러워
● 들판과 밀밭과 까마귀와 뿌리
비탄에 잠긴 노인
오베르의 들판
피아노 치는 마르그리트
테오와 조카가 아프대요
밀 이삭이 속삭이는 소리
거친 붓 터치, 섬세한 묘사의 최고봉
고흐와 로트레크와 발라동
가셰 박사가 나보다 더 우울한 것 같아
까마귀 나는 밀밭
드러난 뿌리
책 속으로
화가로 살겠다고 결심한 고흐는 그 즉시 프랑스 농민화가 쥘 브르통Jules Breton을 찾아갔다.
걷는 것도 좋아하고 교통비도 아낄 겸 해서 1주일 이상 걸어서 갔다. 그러나 스튜디오를 둘러보고는 브르통을 만나보지도 않고 발길을 돌렸다. 그림은 아주 좋았지만 힘겨운 농부의 삶을 그리는 스튜디오가 너무 화려했던 것이다. 고흐의 눈에는 브르통도 말과 삶이 다른 브뤼셀의 고위 성직자들처럼 보였다.
‘그래, 내 그림으로 사람들을 어루만지자. 힘겨운 실상을 그림으로 그리자. 한 장의 그림이 천 마디의 설교보다 더 감동이지. 그림을 본 사람들이 고흐는 마음이 참 따뜻하다고 말하게 하자.’
그는 이 결심을 파리 구필 화랑에서 그림을 판매하던 테오에게도 알렸다. 테오도 크게 기뻐하며 형이 좋은 화가가 되도록 최대한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뒤 고흐는 벨기에의 브뤼셀 왕립미술학교로 갔고, 고대 미술과 흉상 등 데생 과정에 등록했다. 하지만 1년도 채 못 되어 그만두었다. 그림 수업을 받기보다는 혼자 익히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
고흐는 시엔과의 동거 사실을 가장 먼저 테오에게 알렸다.
“지난겨울 길거리에서 딸과 함께 떨고 있는 한 여자를 만났어. 모델료를 주고 내 빵도 주었지. 지금보다 더 좋아지면 결혼할 거야. 그것만이 그녀와 아이를 구할 수 있는 길이야.”
테오는 형이 열심히 그림만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창녀와 동거한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가족들도 반대하며 “왜 하필 창녀냐?”고 했고, 고흐는 “따스한 위로와 생리적 필요 때문”이라고만 답했다.
*
시엔이 떠나고 마우베와도 소원해지면서 고흐는 한동안 텅 빈 작업실에서 혼자 칩거했다. 무엇보다 시엔과 그녀의 두 자녀를 버렸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사실 고흐 탓이 아닌데도 이 자책감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혼자 외롭게 지내던 고흐는 도저히 궁핍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새로 이주한 뉘넌Nuenen으로 찾아갔다.
‘지위나 명예를 탐하지 않는 한 마리 개처럼 자연인으로 살겠다.’
고흐는 그렇게 결심하고 헛간에 아틀리에를 꾸몄다.
고흐가 그리려는 대상은 영웅, 위인, 화려함, 미인이 아니었다. 황량한 대자연과 그곳에서 살기 위해 움직여야만 하는 바로 그 존재들이었다.
고흐는 어떤 것이든 미화하는 것을 싫어했고, 삶의 실체적 진실로만 화폭을 채워 나갔다. 그는 1885년 겨울 파리로 떠나기까지 이곳에서 2년 동안 450여 작품을 완성했다.
*
그녀(세가토리)는 격정적인 고흐가 다른 화가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도 간파했다. 그나마 로트레크가 고흐의 술친구로서 다정다감하게 대하고 있었다. 로트레크는 카페에 앉아 있는 고흐의 옆 모습을 파스텔로 스케치한 작품도 남겼다.
세가토리는 고흐와 화가들의 세계를 알고 나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임신한 아기 때문에 미술밖에 모르는 고흐와 결혼했다가는 고생길이 훤했다. 그뿐 아니라 고흐의 앞길마저 막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가토리가 보기에 고흐는 세속과 무관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 한마디로 보헤미안이었다. 그녀는 이토록 낭만적이고 혁신적인 예술가를 만나보지 못했는데, 아쉽지만 고흐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고흐를 만나 결혼을 원치 않는다고만 말했다. 그러고는 아기를 지우고 자신의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
어쨌든 고갱은 고흐와의 공동생활에 의구심을 품었다. 그런데 고흐는 테오가 보내주는 생활비를 나눠 쓰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그렇게 1년 정도만 노란 집에서 수도승처럼 작업하면 고갱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타히티로 갈 경비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욕을 북돋아주었다. 거기에 테오의 권면도 있어서 고갱은 결국 아를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 무렵 고흐는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렸다.
*
고갱은 과묵한데 외향적이었고, 고흐는 말은 많은데 의외로 내향적이었다. 고갱은 배포도 있고 해박해서 어쩌다 한마디 던질 때마다 좌중을 생각에 잠기게 했다. 게다가 고갱은 복싱과 펜싱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그림을 그리다가도 틈틈이 일어나 원투 스트레이트를 뻗으며 몸을 풀고 펜싱 검을 들고 혼자 연습하곤 했다.
고흐는 고갱과 함께 드라가르 카페는 물론 아를의 원형경기장, 무도회장까지 두루 다녔다. 고갱이 오고 나서 노란 집에는 한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당시에는 인상주의의 거장 모네의 작품이 선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고갱의 작품은 간간이 팔렸지만 고흐의 작품은 누구도 사지 않았다. 그래서 형편이 조금 나은 고갱이 캔버스천 등을 사와 고흐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
고흐는 자신이 좋아하는 룰랭과 지누 부인, 밀리에를 방종의 이미지로 묘사한 고갱에게 이때부터 서운한 감정을 갖기 시작한다. 일설에는 고갱이 노란 집에 온 뒤, 이미 고흐와 친밀한 관계였던 지누 부인을 가까이하려 하면서 고흐와 고갱, 지누 부인 사이의 분위기가 미묘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고흐는 화가 공동체를 발전시켜보려고 노력했다.
*
고흐가 즐겨 마신 술은 압생트로, 알코올에 약초가 들어가 초록빛이었으며, 싸구려 압생트일수록 도수가 높아 80도가 넘는 것도 있었다. 당시 분위기가 워낙 술에 관대했던 데다 고흐는 밥 대신 싸구려 압생트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술에 취해 밤샘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날도 카페에서 고갱과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고흐는 고갱이 자신을 하필 술주정뱅이 눈으로 그렸다고 화를 냈다. 급기야 두 사람은 모두가 보는 가운데 고함을 지르며 싸웠다.
*
고갱에게 성스러운 것은 몽상이며 추상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예술이란 ‘표절’ 아니면 ‘혁명’이었다. 자기만의 세계를 드러내면 혁명이고, 아니면 표절인 것이다. 물론 고흐는 오브제의 에너지를 끄집어내려 했기 때문에 묘하게도 두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고갱과 고흐가 아웅다웅하면서도 끝내 서로를 존중한 것은 이 때문이다.
파브르 미술관에 다녀온 뒤 고흐와 고갱 사이에는 그림 스타일에 대한 논쟁이 더 자주 벌어졌다. 두 사람의 논쟁이 얼마나 격렬했던지 고흐는 ‘전율적’이라며 한탄했다. 고갱은 본래 박식했으며 거만한 태도로 유명했다. 스스로 자신이 위대한 화가임을 잘 알고 있다고 할 정도였으며, 자기중심성도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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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은 화가 일을 냉철하리만큼 성스러운 소명으로 여겼다. 고흐는 이런 고갱의 신념을 존경했으며, 고갱 또한 비록 성격은 맞지 않았지만 예술가로서 고흐의 천재적 자질을 귀하게 보았다.
두 화가는 공히 자연 모방을 버리고 강력한 색채로 입체감과 명암을 단순화하며 자연을 과감히 변화시켰다. 하지만 고갱은 대상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했으며, 고흐는 대상 속에서 어떤 환상을 포착해내려 했다.
그래서 같은 해와 달과 별, 산과 나무, 꽃이라도 고흐의 작품을 보고 난 뒤에는 달리 보인다. 고흐의 그림을 보고 나면 같은 대상인데도 하나하나가 개성을 지닌 독특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
또한 고갱은 화가의 명예와 현실적 성공에 관심이 컸지만, 고흐는 그것에 무관심했고 혼신을 기울여 창작하는 데만 몰두했다. 그런 고흐에게 고갱은 “생각을 해가며 그려보라”는 충고도 했다. 그럴 때면 고흐는 이렇게 대꾸했다.
“대상마다 각기 열렬한 기질이 있소. 이를 감동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색채입니다.”
그리고 고갱의 그림을 가리켜 자기 의도대로 변형한 ‘추상화’라고 중얼거렸다.
고갱은 고흐가 생각 없이 그린다고 비웃고, 고흐는 고갱이 대상을 무시하며 그린다고 비판했다. 같은 작업 공간에서 서로의 작업을 격려해도 모자랄 판에 둘은 서로를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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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그림을 보면 후반기로 갈수록 중요 부분에 유화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이 돋보인다. 이 기법은 이미 렘브란트, 루벤스 등도 사용했는데 고흐가 더 극적으로 활용했다. 원색의 물감을 빛이 닿는 부분에 덧칠해주면 실제 사물처럼 역동성이 두드러질 뿐 아니라 화면이 입체적으로 변한다. 이렇게 되면 회화가 조소彫塑처럼 된다. 그래서 고흐의 작품을 실물로 보면 복제물과는 다른 차원의 인상을 받게 된다. 입체감에서 오는 깊은 감동이 전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
마침내 고흐는 1889년 9월 파리에서 개최된 앵데팡당 전에 초대되었다. 파리 시민들은 이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고흐의 그림 〈붓꽃〉과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만나게 된다. 관람객들은 그전까지 보아온 다른 작가들과 근원적으로 달라 파격이라며 처음엔 낯설어했지만, 보면 볼수록 편안해진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전시회가 끝나고 나서도 테오를 만날 때마다 고흐의 그림을 본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감탄했다.
*
고흐가 아를로 떠난 지 3년여 만에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탕기 영감, 카미유 피사로, 아르망 기요맹 등이 찾아왔다. 테오는 이들과 함께 형이 머무를 장소를 상의했다. 피사로가 평소 여러 화가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러 가는 곳이라며 오베르를 소개했다. 파리 근교의 우아즈강을 끼고 있는 시골 마을이었다.
오베르의 밀밭은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된 풍광과 어울렸다. 오베르에는 마침 폴 가셰Paul Gachet 박사가 살고 있었다. 가셰는 정신과 의사인데다가 박사 논문도 우울증에 관해 썼다. 또 아마추어 화가로서 예술가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가셰 박사는 자칭 예술가들의 심리에 정통하다며 피사로, 마네, 르누아르, 세잔 등을 가끔 진단도 하고 치료도 해주었다. 테오는 형보다 먼저 가셰 박사를 만났다. 테오에게 고흐의 증세를 들은 가셰 박사는 정신병과는 전혀 무관하며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
고흐는 라부 부부의 여인숙 3층에서 5월 20일부터 7월 29일까지 약 70일 동안 기거하며 80여 작품을 남겼다. 매일 한 작품 이상을 그린 셈이다. 고흐는 이 시기에 비록 파이프를 물고 담배는 피웠지만 압생트도 끊고 독서와 편지, 예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고흐가 얼마나 정확히 움직였던지 동네 사람들은 고흐를 칸트처럼 ‘움직이는 시계’라 불렀다. 그런 고흐가 아낌없이 시간을 보낼 때는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더불어 장난을 칠 때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웃들은 고흐를 세상 어느 누구보다 건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
보들레르도 춤을 ‘팔다리로 부르는 시’라 했던가.
바람이 분다. 밀밭이 황금색 물결로 출렁이는데, 고흐는 물랭루주에서 보았던 춤을 기억하며 그대로 춰본다. 어디선가 총소리 한 방이 들렸다. 밀 이삭을 파 먹으려는 까마귀 떼를 쫓기 위해서 그러는 모양이다. 평소 추지 않던 춤을 추니 세상이, 밀밭이 돌고 돌고 또 돈다. 하늘도 태양도 돈다.
고흐는 새하얘진 얼굴로 가슴을 부여잡고 하숙집 계단을 올라갔다. 주인 부부와 딸이 놀라서 물었다.
“왜 얼굴이 그렇게 창백해요? 가슴에 있는 그 빨간 자국은 뭐고요?”
“아무 일도 아니에요. 페인트 자국일 뿐…….”
출판사 서평
■ 한 편의 드라마틱한 소설처럼 읽히는 ‘그림과 함께 보는 고흐의 일대기!’
-고흐의 작품을 볼 때 슬픔으로 고뇌를 치유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갈 용기를 얻는다.
이동연 작가는 KBS 해피FM 〈그곳에 사랑이 있었네〉에 다년간 출연하며 ‘예술가와 뮤즈’를 다루었고, 그때 고흐를 방송한 인연으로 이 책 고흐 일대기인《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를 내놓게 되었다.
이 책은 총 7개 장(〈해바라기가 피었습니다〉, 〈둥지〉, 〈노란 집을 빌리다〉, 〈고흐와 고갱, 가까이하기엔…〉, 〈스스로 택한 고독의 길〉, 〈별이 빛나는 밤에〉, 〈들판과 밀밭과 까마귀와 뿌리〉)으로 나눠 고흐의 일생을 연대순으로 도판 자료 170여 점과 함께 소설을 읽듯 흥미진진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그래 자연에 폭풍의 드라마가 있듯 인생에 역경의 드라마가 있지. 그래도 약간의 여유와 약간의 행복이 있어. 그 형태를 실루엣으로 느끼게 하고 싶어.”
고흐가 어느 날 릴케가 쓴 ‘큰 슬픔이 우리를 자신에 얼마나 더 가깝게 하는가’라는 글을 보고 했던 말이다.
이처럼 고흐는 멋진 풍광보다는 그 내면을 끄집어낸 그림을 그리고, 미화된 삶보다는 인생 그 자체를 그렸다. 그러면서도 길지 않는 고흐의 삶은 인간이 경험할 만한 사연이 모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희로애락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흔적이 그림에 담기면서 역사상 최고의 공감을 일으키는 명작이 탄생한 것이다.
고흐의 출생은 평범했다. 1853년 네덜란드의 시골 준데르트에서 태어나 네 살 아래 동생 테오와 벌판을 뛰놀며 자랐다. 일찍이 학교를 그만두고 16세에 구필 화랑의 헤이그 지점에 취직해 그림 판매상이 되었는데, 영업 솜씨가 좋아 19세에 영국 런던 지점으로 승진 발령을 받았다. 여기서 하숙집의 딸 외제니 로이어와 달콤한 관계를 맺는데, 나중에 그녀에게 정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져 자청해서 파리 본점으로 떠났다. 실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 화랑을 그만둔 그는 어려운 사람을 돌보며 살겠다고 신학교로 간다. 광산촌으로 가서 전도사로 활동하던 중 성직자들의 위선에 실망해 신앙을 버리고는 깊은 번민 끝에 결심한다.
‘그래, 내 그림으로 사람들을 어루만지자. 힘겨운 실상을 그림으로 그리자. 한 장의 그림이 천 마디의 설교보다 더 감동이지. 그림을 본 사람들이 고흐는 마음이 참 따뜻하다고 말하게 하자.’
고흐는 이 결심을 파리 구필 화랑에서 그림을 판매하던 테오에게 알렸고, 테오도 기뻐하며 형이 좋은 화가가 되도록 최대한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고흐가 천직을 찾은 과정이다. 그 뒤 37세까지 10년 동안 고흐는 파란만장한 화가의 삶을 살았다. 이 기간에 유화 900여 점과 드로잉 1,100여 점을 완성했는데, 그중 팔린 작품은 딱 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고흐의 작품이 훗날 역사상 최고가를 형성할 줄을…….
화가 인생 10년 동안 유화 900여 점과 드로잉 1,100여 점을 완성하다
화가로 첫발을 내디디면서 세웠던 모델이 시엔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춘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를 돕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으로 발전했지만, 양가의 반대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뒤 고흐는 시엔과 그녀의 두 자녀를 버렸다는 후회로 괴로워한다. 사실 고흐 탓이 아닌데도 이 자책감은 평생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런 심적 부담에서 비롯되었을까? 그가 그리려는 대상은 영웅, 위인, 미인, 화려함 등이 아니었다. 황량한 대자연과 거기서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이런 리얼리즘적 특징이 〈감자 먹는 사람들〉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은 고흐의 염문설과도 관련이 있다. 물론 염문설은 한 성직자가 고흐의 모델이 되지 말라며 선동하기 위해 꾸며낸 거짓이었다. 당시 고흐는 옆집에 살던 마르호트 베헤만과 열애 중이었다. 그녀는 고흐보다 열두 살 연상으로 직물공장 사장이었는데, 그녀의 가족이 혹시 경영권이 고흐에게 넘어갈까 봐 둘 사이를 반대했다. 이 사랑도 이루지 못하자 고흐는 파리로 떠나 테오의 집에서 기거한다. 그 시대 아방가르드였던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이 자주 모였던 곳이 몽마르트르의 카페 탕브랭이었다. 이 카페의 여주인 아고스티나 세가토리가 고흐에게 호감을 가져 둘은 연인관계로 발전하고 임신까지 하게 된다.
이 시기 고흐의 무겁고 진지했던 화풍이 인상파의 영향으로 한껏 밝아졌으며, 고흐는 세가토리에게 결혼하자고 졸라댔다. 하지만 세가토리는 수입이 한 푼도 없는 고흐의 미래를 불안하게 보고 안녕이란 말도 없이 고향 이탈리아로 떠나고 말았다.
마침 테오가 결혼할 때가 되어 고흐도 테오의 집에서 나와야만 했다. 딱히 파리에서 오갈 곳이 없어진 고흐는 테오의 도움으로 남프랑스 아를로 내려가 노란 집을 얻었다. 그는 이곳에 아틀리에를 꾸미고 파리의 화가들을 불러 공동체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꾼다. 그 일환으로 여러 화가들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고갱만이 이에 호응했다. 아를에서 고흐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지누 부인과 우체부 룰랭을 만났다. 그리고 유럽 최고 재벌가의 아들인 외젠과는 친구가 되었다. 이곳에서 고흐의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병에 담긴 15송이의 해바라기〉 등이 탄생했다.
“수렁에 빠진 예술계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찬사
하지만 고갱과 고흐가 그림 스타일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 급기야 고갱이 머나먼 타히티로 가기 위해 노란 집을 떠나게 된다. 그때까지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팔리지 않는 데다가 고갱까지 떠나자 고흐는 주체할 수 없는 실망 속에 빠져든다. 무엇보다 이대로 가다가는 더 이상 그림도 그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 물감조차 사기 어려웠던 것이다. 절망의 나락 속에서 고흐의 눈에 고갱의 펜싱 검이 보였다, 그는 부지불식간에 그 검으로 자기 귀를 잘랐다. 급기야 헌병이 달려오고, 이때부터 고흐가 미쳤다는 소문이 아를 지역 전체에 퍼졌다. 그래도 작업에 열중했지만 헌병대에서 수시로 고흐를 불러 조사했다. 그럴 때마다 지누 부인과 룰랭 가족 달려와 고흐를 감싸주었다, 이런 정황이 고흐를 또다시 자책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다.
‘왜 나는 늘 이렇게 끝나지? 가족과도 연인과도 이제는 이웃까지도……. 무엇 때문에 매사가 내 본래 뜻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걸까? 결국 테오와도 사이가 나빠지는 것은 아니겠지? 상상만 해도 몸서리칠 일이야. 테오가 나 때문에 쓴 돈이 도대체 얼마야? 꼭 갚아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돈을 벌 방법은 그림밖에 없다. 그런데 팔리지 않으니 어쩌면 좋은가. 언젠가 팔리긴 하겠지만, 그때까지 테오에게 의지해야 하다니…….’
이런 외로운 상황 속에서 고흐는 어릴 적 듣던 자장가나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달랬으며, 수시로 찾아오는 룰랭을 의지하며 견뎌내려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고흐를 ‘빨간 머리 미치광이’라 부르고 아이들이 무서워 외출하지 못한다며 헌병대에 고흐를 격리시켜 달라는 탄원서를 계속 넣었다. 이 모든 것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일방적인 악평이었지만, 민원제기에 시달린 헌병대장은 고흐를 입원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때 룰랭이 이렇게 탄식했다.
“세상에, 고흐처럼 정 많고 여린 사람을 우리가 품어주지 않으면 어떡하는가!”
그 뒤에도 고흐의 창작 열정은 지속되었다. 〈올리브나무의 숲〉,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첫걸음〉, 〈황혼의 산책〉, 〈비탄에 잠긴 노인〉 등등 희대의 명작을 계속 쏟아냈다.
고흐의 작품 중 〈붉은 포도밭〉 딱 한 점이 팔리다
드디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인전에 고흐의 작품이 우여곡절 끝에 전시되었다. 비평가들의 의견도 갈렸다. 색채가 너무 강렬해 야만적이라는 의견이 다수였으나 딱 한 사람, 알베르 오리에만이 고흐의 작품이 진흙 속의 진주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오리에는 〈메르퀴르 프랑스〉지에 기고한 ‘고독한 화가 고흐’라는 글에서 “수렁에 빠진 예술계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마침내 고흐의 작품이 이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판매되었다. 구매자는 외젠 보흐의 누이 안나 보흐. 안나도 화가였지만 부호의 취미 생활 정도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흐의 작품 중 〈붉은 포도밭〉을 구입했다. 동생인 외젠과도 친하고 가난한 고흐를 도우려는 뜻도 있었지만, 그녀는 고흐의 예술을 좋아했다. 안나는 〈붉은 포도밭〉을 고급 액자에 넣어 집에 걸어두고 손님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이 그림이 너무 뛰어나 제 작품 활동을 못할 지경이랍니다.”
3월에 개최된 앵데팡당 전에는 고흐의 유화 10점이 전시되었다. 몸이 아픈 형을 대신해 전시회에 다녀온 테오가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형. 이미 형은 성공하고 있어. 형의 그림이 얼마나 관심을 끄는 줄 알아? 모네도 전시된 작품 중에 형의 그림이 으뜸이라 했고, 다른 화가들도 우리 집까지 찾아와 형의 다른 작품을 보더니 도무지 따라갈 수 없다며 감탄했어. 형, 제발 건강해. 형이 건강을 회복했다는 소식보다 더 큰 기쁨은 내게 없어. 형…….”
그날 고흐는 요양원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밝혔고 테오도 찬성했다. 탕기 영감, 카미유 피사로, 아르망 기요맹 등 고흐를 아끼는 사람들이 테오와 함께 고흐의 거처를 물색한 끝에 파리 근교의 우아즈강을 끼고 있는 시골 마을 오베르로 결정했다. 특히 오베르의 밀밭은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된 풍광과 잘 어울렸다.
또한 오베르에는 예술가들의 심리에 정통하다는 가셰 박사가 있었다. 그에게 피사로, 마네, 르누아르, 세잔 등이 찾아와 상담도 받는다는 것이다. 가셰 박사는 테오에게 고흐의 증세를 듣더니, “정신병과는 전혀 무관하며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고흐는 오베르에서 라부 부부가 운영하는 가장 저렴한 여인숙으로 갔다. 여기서 〈오베르 마을의 거리〉, 〈정원 속의 마르그리트 가셰〉, 〈피아노 치는 마르그리트 가셰〉, 〈오렌지를 든 아이〉 등 고흐의 명작 탄생 행렬이 이어진다.
누가 고흐에게 총을 쏘았을까? 자신인가? 타인인가?
그런데 어느 날 〈황혼의 풍경〉을 그리던 중 갑자기 테오와 어린 조카가 그리워진 고흐는 곧바로 파리 테오의 집으로 갔다. 그때 안방에서 테오 부부가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생겼는데도 회사에서 월급을 안 올려준다며, 아무리 형의 그림을 팔려고 애써도 팔리지 않아 너무 힘들다는 푸념이었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던 고흐는 잠시 뒤 정신을 차려 조용히 집을 나와 오베르로 돌아갔다. 그리도 다시 작품에만 전념했다. 〈오베르의 계단〉, 〈구름 아래 밀밭〉, 〈까마귀 나는 밀밭〉 등을 잇달아 그렸고, 〈나무뿌리와 기둥〉도 그렸다. 그러던 중에 그림을 그리러 밀밭에 나갔다가 총상을 입은 채 여인숙으로 돌아왔다. 누가 고흐에게 총을 쏘았을까? 자신인가? 타인인가? 의사가 가슴에서 총알을 빼내자 의식이 돌아왔으나 그는 이틀 뒤에 숨졌다. 이때 고흐의 주머니에서 동생 테오에게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이 나왔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림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이 책은 고흐의 사연 많은 인생을 그림과 함께 살펴보게 해준다. 고흐의 작품이 지닌 특징은 살아 있는 한 부딪쳐야 하는 어떤 역경 앞에서도, 살아 있기 때문에 슬퍼하면서도 폭풍을 뚫고 가는 역동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생동하는 에너지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고흐의 작품을 볼 때 슬픔으로 고뇌를 치유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갈 용기를 얻는다. 다음은 고흐가 자신의 삶과 인생과 자연을 반추하며 만든 작품을 감상할 독자들에게 남기는 명언이다.
“무엇이든 시작이 어려울 수 있지만 용기를 내세요. 꾸준히 하다 보면 다 잘될 거예요.”
_빈센트 반 고흐
기본정보
ISBN | 9791191215694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01월 27일 |
쪽수 | 272쪽 |
크기 |
154 * 211
* 21
mm
/ 570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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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을 꼽으라면은 아마 이 책 < 그림으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가 아닐까합니다. 일단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는 가독성이 상당히 높았고, 그동안 읽은 고흐에 관한 책 중에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고흐의 생활과 그에 연관된 그림들이 잘 소개되어 있어서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 이동연 작가는 KBS 해피 FM < 그곳에 사랑이 있었네 > 에 다년한 출연하며 ' 예술과와 뮤즈'를 다루었고, 그때 고흐를 방송한 인연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꽃같은 정열로 그림을 그렸던 화가의 일생을 그림으로 들여다 본다니 참 매력적인 주제가 아닐수 없고 글솜씨 또한 좋아서 아주 재미있습니다.
저는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참으로 좋아하는데요. 강렬한 노랑 색조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해바라기의 모습이 다른 화가의 해라바기의 모습과는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해바라기 그림과 얽힌 고흐의 이야기는 짠하면서도 열정으로 다가옵니다. 해바라기는 고흐에게 절망을 뛰어넘는 희망이 상징이라고 하는데 그 사연을 들으니 안타까움도 듭니다. 어머니에게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고흐는 간혹 ' 내가 죽은 형 대신 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고 하는데요.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린 고흐의 바로 위에 형때문에 어머니는 일년 뒤에 태어난 고흐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빈센트의 해바라기 그림이 어쩌면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한번도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한 오랜 슬픔이 서려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추측을 많이 하더라구요.
고흐는 모두 12점의 해바라기를 그렸는데, 해바라기의 강렬한 노랑 색조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고흐는 아무리 힘겨운 일이 있어도 이 색조를 보며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 고흐의 소년 시절은 어땠는지도 들려주는데 고흐의 본래 꿈은 화가가 아니라 파브르 같은 곤충학자였다고 합니다. 곤충의 이름을 알아내고 관찰하며 수집하고 분류하고는 했다고 하는데요. 그외에 언어적인 재능도 뛰어나서 여러 언어를 공부했다고 하네요. 고흐에게 있어서 미술은 그야말로 취미였던 셈이죠. 목사 집안의 폐쇄적인 교육관때문에 어린시절은 집안에 갇혀 생활을 했었고 16살이 되어 고흐는 파리의 화상 아돌프 구필이 세운 구필 화랑의 사원이 됩니다. 판매도 잘하고 손님들에게 인기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러다 거의 30이 다 되어 마침내 찾은 천직, 화가로 살겠다고 결심한 고프는 구필 화랑에서 그림을 판매하던 동생 테오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되는데 테오도 크게 기뻐하며 형이 좋은 화가가 되도록 최대한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하네요.
반 고흐의 첫사랑과 실연의 아픔 이야기, 창0 시엔과 함께 살며 그링을 열심히 그렸지만 수입이 없어 궁핍했던 시절, 그외 그를 스쳐간 다양한 여인들과 그의 그림으로 만난 인연들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그와 얽혀 그가 그린 그림들을 소개하면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지루함이 없이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갑니다.
늘 생각하지만 고흐의 마지막 이야기는 쓸쓸하고 안타까운데 많은 이들이 고흐가 37세의 나이에 정신병원을 오가다 권총으로 자0을 하면서 생을 하면서 생을 마감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다르게 그의 생의 마감을 이야기합니다. 누가 고흐에게 총을 쏘았을까? 고흐 자신인가? 그렇다면 실수인가? 분명한 것은 자살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살을 하려던 사람이 피를 흘리며 숙소까지 걸어갔을 리 없기때문이다. 고흐가 남긴 물건을 정리하는데 가운데 주머니에게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 한통이 나왔는데 그 편지는 테오에게 물감값을 부탁하는 내용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의견으로는 자신이 가장 의지하고 미안하게 생각을 했던 동생 테오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자신까지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생을 마감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의견도 일리가 있는데 저는 그동안 걸어서 숙소까지 피를 흘리며 갔다는 사실을 몰랐거든요.. 흠..
빈센트 반 고흐와 네 살 어린 동생 테오 반 고흐는 20여 년간 900여 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요. 서로가 서로에게 정말 각별했던 사이였던 것 같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몰랐던 고흐의 그림들도 많이 소개하고 있어서 참으로 좋았던 책입니다.
고흐의 작품만을 따로 본적은 없기에 고흐의 작품이 대거 등장하는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가 매우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고흐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동시에 그림과 함께 고흐의 일대기를 소설처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더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고흐의 성장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현재 가장 유명한 화가이기도 하고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그렸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있지만 화가시절 그의 형편은 정말 넉넉치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동생 테오의 지원과 그의 곁에 머물렀던 많은 여인들이 있었기에 그의 삶은 비어져 있지 않았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사랑과 그리고자 하는 자신만의 뚜렷한 대상이 있었기에 그가 남긴 작품들에 오늘날 우리들이 열광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그림에 대한 그만의 뚜렷한 시각은 정형화된 미술교육과 화풍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것이 오늘날 이토록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을 사랑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별이 빛나는 밤과 많은 해바라기 작품들을 통해 고흐를 알게 되었고 그의 성격이 괴팍했다는 어줍잖고 단편적인 편견으로 고흐를 알고 있었는데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를 통해 고흐에 대해 알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동안 다양한 그림서적들을 읽었지만 '고흐'만을 다룬 책은 처음이라 그런지 그의 삶과 작품을 좇는 일이 의미있는 경험이 되었다. 그런 어려운 환경속에서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는 사실도 꽤 놀라웠다. 이 책을 통해 고흐의 작품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눈앞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그림을 이해하고자 할 때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의 상황이나 심리, 시대적 배경을 알고 있을 때
그림이 더 와닿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화가에 대해서도 그림을 통해 더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반복이 될 때 화가의 작품 중 처음보는 작품이라도 화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표현했는지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림과 함께 화가의 일생을 설명한 책이 참 좋다.
그림으로 말할 수 없었다 책에서는 이런 전개로 일생을 풀어나가면서
그림과 글이 읽히기 쉽게 적절하게 배치가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책 한권을 읽으면서도 그림과 글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고흐의 일생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기는하지만
초반에 형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처음 접한 듯하다
(그동안 이렇게 한권을 통해 화가의 일생을 접하기 보다 다양한 책에서 뜨문뜨문 접했기 때문에
몇가지의 이야기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린시절 부터 나오니 고흐의 그림들이 왜 이렇게 표현될 수 있었는지
어쩌면 고흐의 슬픈일생의 이야기는 왜 그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었는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표지에 써있는 글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림밖에 없었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이 말이 참 가슴아프게 와닿는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시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림을 많이 보고 마음을 알아주는 것으로라도
마음을 전해주어야 하지않을까.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고흐가 그린 그림을 따라가며 그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이동연 작가는 고흐의 삶의 행적을 그림으로 설명하면서 그가 추구한 예술을 분석하고, 그의 그림을 평했다. 더불어 고흐를 사랑했던 지인들 및 동생 테오와 고흐가 사랑한 여인들의 이야기를 싣고, 고흐와 함께했던 화가들의 작품 및 그들과 고흐의 관계를 설명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받으며 어렵게 그림을 그렸고, 고갱과 같이 살다 불화를 겪고 결국 자신의 귀를 잘랐으며, 삶의 끝자락에는 요양 병원에 갇혀 그림을 그린 사실 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러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지만, 이 책은 특히 그 시기에 그린 그림들을 같이 실어 고흐의 이야기를 풍부한 시각으로 전한다.
고흐의 인생을 그림으로 감상하며 읽는 경험은, 고흐를 오감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그가 느낀 것이 표현된 그림을 보며 감탄하고, 때로는 함께 좌절감을 느꼈다. 그런 과정에서 그의 그림 또한 좀 더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사실은 고흐가 자살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의혹이다. 이 책에서 구성해 낸 시나리오에 따르면, 그는 사람 머리 높이까지 길게 자란 밀밭에서 춤을 추다가 까마귀 떼를 쫓으려 쏜 농부의 오발탄에 맞았다. 그리고 숙소로 힘겹게 걸어 가 주인장 앞에서 쓰러졌다. 의사가 총알을 급히 빼냈고, 곧 회복할 것이라고 진단했으나, 총상 부위의 감염으로 테오의 손을 잡고 웃는 얼굴로 떠났다. 그리고 그가 남긴 그림들만이 남아 그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의 그림으로 구성해 낸 고흐의 인생 이야기라는 점에서 고흐의 삶과 예술의 정수를 전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흐를 좋아해서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그 중 이 책이 단연코 압권이다. 임파스토 기법으로 그려진 고흐의 그림은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실물로 보아야 더 감동적이라고 한다. 언젠가, 꼭, 고흐의 그림을 보러 가야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그의 삶은 불우했고 죽음까지 비극적으로 보인다. 동생을 비롯해 조카의 태어남을 기뻐할 정도로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컸으나 말년에 그를 괴롭혔던 정신병은 예술을 하지 않았다면 이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명작을 탄생시킨 화가의 삶이라고 하기엔 안타까울 정도이다.
고흐는 네덜란드 사람이지만 살아생전 여기저기를 많이 이동했고 그런 그의 발자취는 흥미롭게도 그가 그린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현대인들은 그가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서 고흐의 삶을 그 어떤 화가보다 더 자세히 알 수 있는데 특히 그의 심리적인 부분이 편지에 많이 언급되어 있고 그와 관련해서 그린 그림들까지 더해지면 새삼 유명하다고 알고 있던 그림뿐만 아니라 그가 생의 순간순간 그린 그림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이번에 만나 본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도 이런 흐름의 맥락에서 볼 때 고흐가 그린 그림들은 당시 고흐의 불안정한 심리라든가 동료 화가들과의 교류, 특히 고갱과의 관계나 가족들과의 관계, 자신이 작품 활동을 위해 머물렀던 지역의 사람들과도 관련해서 이야기를 읽으며 그 그림들을 보면 그 자체로 고흐의 일대기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워낙에 유명한 화가이고 그의 생애와 예술혼, 그리고 작품활동과 그 결과물을 따라가는 내용을 담은 책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그건 그만큼 고흐라는 인물이 가진 작품 그 자체의 매력도 있겠지만 그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영향을 준 그의 삶이 한편의 영화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내용 전반에 걸쳐서 고흐와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을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고 그와 관련한 이야기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림으로 본 고흐의 일생’라는 부제가 참 잘 어울리는 작품이였다.
개인적으로는 고흐의 정물화만큼이나 풍경을 담아낸 작품을 좋아해서인지 들판이나 과수원, 자신이 지낸 마을 풍경을 담은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그리고 그와 관련된 가족 이외의 여러 인물들의 인물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기도 하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자주 보던 그림인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의 카페 테라스 등..
대표작 뿐 아니라
처음 보는 다양한 그림을
많이 소개해 주어서 좋았다
동화 속 예쁜 집처럼
아담한 <오베르 시청>,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탄생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준
유럽 농촌 물레방아간이 담긴 작품,
<뉘넌의 물레방아>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중
여러분은 어떤 그림을 좋아하나요?
저는 <밤의 카페 테라스>를 좋아합니다
특히 아름다운 테라스에
밝은 별빛이 담겨있어 좋은데요
<그림으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의 저자는 멋진 말을 남기셨어요
"별빛은 오롯이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빛난다.."
그래서 고흐의 작품 중
별이 있는 그림을
더욱 더 좋아할 것 같은 예감이에요ㅎ
이야기, 그리고 사랑
고흐의 일생을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부분이 너무 좋았다
하숙생활 때 찾아온 첫사랑 외제니,
케이,
작품 속 모델이자
아픈 결말이 되어버린 사랑.. 시엔,
마르호트..
이렇게 많이 사랑한 이성이 있었지만
양가의 부모님의 반대로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었다
이렇게 고독과 외로움,
사랑에 메말라있던 그의 일생은
어린시절의 결핍된
모성애, 부성애에서
시작된것은 아닐까 싶다
고흐의 형이 있었지만
태어난 날에 죽었기 때문에
고흐의 어머니는 또 형처럼 가버릴까,
고흐에게
많은 정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형의 이름을 그대로
고흐로 이름을 지은 것은
아이-고흐에게 큰 상처인 것을 몰랐을까..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엄마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까웠다.)
아버지는 목사 였기 때문에
더욱 살가운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읽는 내내
이제는 행복해 졌으면 좋으련만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편안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지 못한
고흐의 이야기가 특히나
마음이 아팠다..
고흐와 고갱
고흐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테오,
고갱과 함께 지냈던 길다면 길었던
짧은 8주의 생활..
고흐와 교류했던
살가운 이웃들,
고흐가 존경하고 좋아했던 화가들의
이야기들도 재밌었다
특히 고갱과 함께 지내던 시기에
비슷한 주제, 같은 주제를 가지고
다른 화풍을 소개해주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고갱과 고흐가
각각 중요시 여기는 부분을
콕 짚어 서로간에 지적이 있던 이유까지
알려줘서 좋았다
멀고도 가까운..
빈센트 반 고흐 하면
너무 유명한 화가이기 때문에 그런지
오래된 과거의 위대한 사람으로 여겨졌는데
살아있다면 70대 정도라니
가까운 시대의 사람이구나
새삼 느껴졌다 ㅎ
풀리지 않은 진실
고흐의 마지막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자살, 총상으로 인한
감염으로 죽었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있다고,
밀밭에 갔던 고흐는
타살일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이야기 해주고 있다.
까마귀 떼를 쫓는 용도였던 권총.
그리고 자살 하려던 사람이 굳이..
피를 흘리며 숙소까지 걸어온 상황이
자살이라고 결론 짓기 어렵다 라고...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혹은 미술사에 관심이 있다면
놓치지 말고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반 고흐의 일생에도 관심이 많아서인지 반 고흐의 작품이 담기거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하게 되는 것 같다.
그 덕분에 만나게 된 또 한권의 반 고흐의 책,
지친 나에게 힐링을 할수 있는 시간을 줄것 같았다.
' 그곳에 사랑이 있었네 '에서 고흐에 대한 방송한 인연으로
고흐의 일대기에 대한 책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님,
책속에는 7파트로 나눠 고흐의 작품과 함께 연대순으로 고흐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고
도판 자료에는 170여점의 고흐의 작품을 만날수 있도록 해 두었다고 한다.
" 무엇이든 시작이 어려울 수 있지만 용기를 내세요.
꾸준히 하다 보면 다 잘될 거예요. " 빈센트 반 고흐
1853년 네덜란드의 시골마을인 준데르트에서 태어나 네살 어린 동생 테오와 자랐고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화랑에 취직을 해서 그림 판매상을 했으며
사랑도 하고 실연도 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를 가기도 했다는 반 고흐,
다시 화랑에서 그림을 판매하던 중 테오의 지원을 받아서 그림을 그리게 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작품들을 남기게 된 고흐의 인생이 정말 파란만장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림뿐 아니라 영화와 같은 삶을 살다가 간 고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흐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부분과 알지 못하는 부분들을 알게 되는 것에
기대하게 되기도 했고 흥미를 가지게 되기도 했는데
도판 자료에 담겨 있는 많은 작품들중에 아는 작품이 많지 않아서
새로운 작품들을 볼수 있었던 것이 이책을 읽어서 제일 좋았던 점이었던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와 네 살 어린 동생 테오 반 고흐는 20여 년간 900여 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해요.
편지의 내용만 봐도 둘의 사이가 얼마나 각별한지는 느낄 수 있는데 고흐가 화가가 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정신적 물질적으로도 많은 지지를 해준 사람이 동생 테오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고흐에게 희망의 상징이 된 해바라기 그림 을 만나볼 수 있는데 해바라기가 있는 농장의 그림은 고흐가 그린 여인의 초상 뒷면에 그림을 그려야 할 정도로 궁핍한 시절을 보냈다고 해요. 고갱에게 선물한 두 송이 해바라기의 작품도 감상해 볼 수 있어요.
고흐의 소년시절에는 미술은 취미로 파브르 같은 곤충학자가 꿈이였다는 흥미로웠어요.
소년시절부터 붓 한자루를 남기고 떠난 가슴아픈 첫사랑 이야기 그가 사랑한 여인들 이와 관련된 작품들도 함께 만나볼 수 있어요. 투박하더라도 정직한 그림을 계속 그리겠다는 고흐 테오의 생일선물로 그렸다는 감자 먹는 사람들
고흐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던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사람 우체부 룰랭은 자청해서 모델도 되어주고 고흐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롤랭은 고흐의 편이 되어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해요. 고흐를 다정하게 보살펴주었던 롤랭의 가족 초상화도 만나볼 수 있어요.
두 대가 고흐와 고갱의 자화상 교환 이들의 관계와 작품세계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고 고갱과 헤어지게 된 고흐는 좌절감에 휩싸여 충동적인 행동은 다시 봐도 너무 안타깝기만 하네요.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롤랭 가족까지 떠나게 되면서 자신을 미치광이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더해져 의심과 불안한 감정이 망상으로까지 이어져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오로지 테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고흐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고흐의 죽음 그리고 고흐가 남긴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많은 여운을 남겨주네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림밖에 없었다.
그외에는 아무것도······.(p269)
그림으로 본 고흐의 일생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다양한 고흐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로웠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까지 관심있게 볼 수 있었어요.
"창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