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잊힌 퇴조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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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제도’의 역사에 무지한 정치적 대응은 위험하다. 자유주의 사상 및 실천과 진지하게 대결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한국 현실에서 자유주의라는 쟁점은 누구나 쉽게 비난하는 대상이지만 제도 배치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된 적은 별로 없다. 현실 제도는 특이하게도 자유주의적 제도 실천이 ‘자연화’라고 할 만한 수준에서 공고화돼왔으나, 정치 이념의 지형은 쉽게 비자유주의적 대안을 찾아 표류했다.
1991년은 1987년 위기의 정세에서 통치 집단이 유신 체제의 특성으로부터 벗어나 제도를 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전환하려 시도한 시점이었다. 1991년을 다시 보려는 것은 어떤 ‘자유주의적 전환’의 시도가 있었고 그 제도 편제들의 유산이 지금도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91년은 현 제도와 구조가 형성된 출발점이었다. 책은 1991년을 ‘잊힌 퇴조의 출발점’으로 규정한다. 2017년을 1987년에 바로 이어 붙여 승리의 역사로 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기 그지없을 이런 이의 제기는 현 시점 한국 사회의 현실을 되짚어보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자유주의 제도에 대한 논의가 부재함에 따라 그 제도 질서의 지양으로서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 또한 불가능하게 됐다. 책은 자유주의적 전환의 세계적 맥락에 대한 질문을 한국화하며 그러고 나서 비로소 자유주의의 지평을 넘어설 수 있는지를 묻는 데로 나아간다.
작가정보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중국의 ‘단위체제’와 노동정책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빙엄튼 대학 페르낭브로델 센터 방문연구원, 한신대 중국지역학과 교수, 서섹스대학 글로벌정치경제연구센터 방문연구원,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 비판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대 중국 사회의 변동, 세계체계 분석, 마르크스주의적 접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생각하는 마르크스〉, 〈중국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 〈자본주의 역사강의〉,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 등이 있고, 역서로 〈장기 20세기〉,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등이 있다.
작가의 말
위기를 위기로 인정하고 돌파하려면 그것을 분석할 정교한 관점과 틀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현 한국 사회에서 위기를 살펴볼 분석의 관점은 혼란스럽고 그 때문에 더 큰 혼동이 생기기도 한다. 이 때문에 우리가 어떤 위기에 처해 있고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를 심각한 ‘분석의 부재’ 상황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 반대편에선 부족함을 ‘의지의 과잉’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분석의 부재 상황이 오래 누적되다 보면 그것이 왜 문제인지조차 성찰하지 않은 채 분노와 의지가 모든 것을 대체하게 되고, 더 나아가 다소 ‘비관적’인 분석이 나오면 거기에 대해 쉽게 비난이 쏟아진다.
목차
- 1부
한국 사회에 자유주의 헤게모니는 있나: 서문을 대신하여
2022년 20대 대선 평가: 촛불의 오해, 차도 응징, 그리고 자유주의라는 질문
되돌아보는 1991년: 87 정세의 자유주의적 포섭의 시도와 잊힌 퇴조의 출발점
1991년 연표
2부
2016년 촛불 항쟁과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의 지속
2008년, 경계를 넘어선 연대로 나아가지 못한 촛불
참고 문헌
책 속으로
현 집권당은 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취약성을 1970년대 이래 지속돼온 영남 지역주의로 대체하려는 강한 원심력을 항상 보이며, 현 야당은 자유주의적 주도권의 심각한 취약함을 대체로 1991년을 전후한 시기에 형성된 통일운동 중심의 민족주의로 치환하는 방식의 원심력을 강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__20쪽
자유주의 제도 질서 체제에 대한 논의가 부재함에 따라 생겨난 결함은 그 제도 질서의 지양으로서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 또한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또는 사회주의적 기획이 항상 19세기 고전 자유주의를 타깃으로 삼는 퇴행적 방식으로 진행되게 만들었다.__21쪽
민주당 집권 세력은 자신들은 감찰 대상에서 제외하고 외부의 ‘적들’을 척결 대상인 ‘적폐’로 삼는 식으로 좌표를 설정했고 지금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니 문제 많은 중국식 시진핑 체제에도 미달하는 결과만 얻을 수 있었을 따름이다.__62쪽
20대 대선은 향후 정치 구도가 두 가지 길로 분기될 것임을 보여준다. 두 민주 계보를 중심으로 자유주의 중도 세력이 재형성되고 강화되는 길과 두 세력을 밀어내고 두 거대 정당이 영남당과 포퓰리즘 간의 적대적 공생을 강화하는 길이다.__67쪽
자유주의 사상 및 실천과 진지하게 대결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며, 그것은 일시적으로 보수적 사회주의 형태로 출현했다가 곧 분노의 정념들의 대치를 동반한 새로운 권위주의의 변형으로 귀결될 뿐이다.__74쪽
1980년(광주민주화운동), 1970년(전태일 분신), 1960년(4·19 혁명), 1950년(한국전쟁) 등 굵직한 사건들로 기억되는 0 자로 끝나는 연도와 비교해보면 1 자로 끝나는 연도에는 별로 기억될 일이 없는 듯 보인다. 1991년도 그렇다.__81쪽
1991년을 단지 한 해가 아니라 1987년을 전후해 시작된 어떤 사건과 구조, 질문들이 1990년대 방식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결절점이라고 좀 더 넓게 이해해보면, 꼭 좁게 그해 한정돼 벌어진 일이 아니더라도 1989년이나 1990년쯤 전개되기 시작한 쟁점, 또는 1992년부터 1994년 사이 조금 늦게 터진 쟁점, 그리고 그 후과로서 1996년까지 지속되고 1997년 출로를 찾지 못한 채 남겨진 쟁점들을 모두 1991년이라는 계기로 모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__82쪽
주체의 의지만 두드러져 분명한 적들을 가시화하는 작업들만 되풀이하고, ‘우리’는 늘 승리의 역사로 서술되고 약한 부분은 덮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고, 통치 계급에 대한 분석은 밀려나고 ‘남은 잔재’와 ‘우리 진보 세력’을 나누는 감별의 절차가 대부분 분석을 대체한다면 어떻게 전진이 가능할까.__140쪽
대중에 대한 상찬으로 가득 찬 이론적 낙관주의는 결국 대중 스스로를 환상에 빠져들게 하고 정세의 엄혹함을 회피하게 만드는 알리바이에 불과할 수 있다. 더욱이 정세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 기초해, 절망 속의 대중들이 표출하는 탈정치화의 전망을 대중적 봉기로 오해해서는 안 되는 시점에 등장하는 이론적 오해는 대중에게 독이 될 뿐이다.__196쪽
한국 사회에서 늘 되풀이되는 것이지만 국가가 위험 관리를 시장에 넘기고 그것을 개인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에 맡기는 언어를 구사할 때 대중적 위기감이 고조되는 것이다.__226쪽
출판사 서평
◎ 왜 1987년이 아니라 1991년이 중요하나
1991년을 단지 한 해가 아니라 1987년을 전후해 시작된 어떤 사건과 구조, 질문들이 1990년대 방식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결절점이라고 좀 더 넓게 이해해보자. 꼭 1991년 그해 벌어진 일이 아니더라도 1989년이나 1990년쯤 전개되기 시작한 쟁점, 또는 1992년부터 1994년 사이 조금 늦게 터진 쟁점, 그리고 그 후과로서 1996년까지 지속되고 1997년 남겨진 쟁점들을 모두 1991년이라는 계기로 모아 살펴볼 수 있다.
1991년은 격동의 해였다. 특히 5월에 많은 일이 집중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해의 일들은 한 해 전인 1990년 1월 22일 이뤄진 민자당 3당 통합의 후과로서 전개된 것인데, 집권 세력 내의 분열과 경합, 이와 맞물린 야당의 복잡한 대응, 1987년 이후 영향력을 키워온 재야와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 세력의 대응이 더해져 양상이 매우 복잡해졌다.
1991년은 1987년 위기를 ‘자유주의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에서 난점과 갈등이 집약되어 표출된 시기였다. 지배 구조의 측면에서 보자면 준전시 체제하에서 위로부터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한 유신 체제를 개방 지향적 자유주의적 경제 구조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던 시점이었다. 3당 통합은 그런 시도의 일환으로 등장했고 재벌 개혁의 시도가 부분적으로 시작됐다. 사회운동 세력은 이런 상황에서 ‘PD 3파 통합’과 ‘전노협 해소’를 거치며 노동운동 현장에서 철수하고 합법 혁신정당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는데 이는 적지 않은 혼란을 불러왔다.
1987년 ‘직선제 쟁취’라는 변화에 과도하게 몰두해 이후 벌어진 중요한 변화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1991년의 제도적 변화가 낳은 후과 속에서 아직도 대립과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두 가지 제도 변화가 대표적이다. 경제 관리 측면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종료되고 자유주의적 시장 관리 방식이 자리 잡았다. 또 공권력의 중심이 안기부에서 검찰로 이동하면서 ‘법치’의 제도화가 이때 이뤄졌다. 즉 1991년은 한국 자본주의 축적 구조를 유지하는 통치성의 수선기로서 경제 자유주의와 법률 자유주의가 제도적 수선을 거쳐 새롭게 결합하는 계기였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보면 우리는 통치 집단에 대한 전면적 분석은 하지 않고 주체의 의지와 역량만을 앞세웠음을 알 수 있다. 책은 1987년 이후 한국 역사를 단순히 ‘위대한 민중 승리의 역사’와 ‘계속 지속돼야 할 적폐 청산의 역사’로 보는 관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 한국 사회에 자유주의 헤게모니는 있나
“자유주의 사상 및 실천과 진지하게 대결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며, 그것은 일시적으로 보수적 사회주의 형태로 출현했다가 곧 분노의 정념들의 대치를 동반한 새로운 권위주의의 변형으로 귀결될 뿐이다.”
“자유주의 헤게모니 수립의 취약성은 ‘영남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집권 세력과 ‘포퓰리스트’에게 장악된 민주당 간의 적대적 공생으로, 결국 비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의 득세라는 위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책은 자본주의 질서의 ‘통치’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자유주의 제도 실천의 변천을 통해 살펴본다. 즉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자유주의 제도’의 착근과 변용의 역사 속에서 검토한다. ‘적폐 청산’이나 ‘87 체제론’의 관점이 아니라 자유주의 통치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1991년 이후 30여 년간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수립하려는 시도가 반복됐는데도 지속적으로 실패한 맥락에서, 자유주의 제도가 어떤 위기를 겪고 어떤 돌파를 했는지를 분석한다.
한국 현실에서 자유주의라는 쟁점은 누구나 쉽게 비난하는 대상이지만 제도 배치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된 적은 별로 없다. 현실 제도는 자유주의적 제도 실천이 공고화돼왔으나 정치 이념의 지형은 비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의 원심력이 발휘되면서 계속 회피됐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1991년은 자유주의 제도에 토대한 한국 자본주의의 전반적 점검기였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혼종적 결합을 보이던 자유주의 제도 결합이 유신으로 단절된 뒤, 유신 체제의 특성으로부터 탈피해 제도를 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전환하는 시도가 본격화하는 시점이 바로 1991년이었다고 볼 수 있다.
◎ 2022년 20대 대선 평가: ‘정치의 사법화’와 ‘자유주의 제도’의 질문
책은 2022년 대선 과정을 ‘차도 응징’이라고 지칭한다. 즉 ‘문재인 정부의 칼을 빌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응징한다’는 구도가 두드러졌다. 20대 대통령 선거의 특이성을 이해하려면 차도 응징이라는 태도가 나온 이유, 특히 촛불에 참여했고 문재인 정부 등장에 어느 정도 우호적이었던 세력들에게서 그런 태도가 나온 이유를 찾아봐야 한다. 이들이 선거에 직면해, 대체 민주당 세력은 ‘제도’와 ‘통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묻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의 사법화’(‘적폐 청산’)와 ‘자유주의 제도’에 대한 질문이다. 문재인‑민주당 집권 세력이 정권을 상실하게 된 것은 언론과 공안 권력 두 세력을 완전히 자기 통제하에 두지 않으면 몰락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또 제도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경시와 대중이 자신들을 지지한다는 착각과 맞물려 무모한 모험주의적 시도를 한 결과였다. 여기서 ‘자유주의’가 어떻게 폐기되고 무너지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정보
ISBN | 9791187572398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12월 09일 |
쪽수 | 240쪽 |
크기 |
142 * 212
* 22
mm
/ 459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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