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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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기업의 비리와 음모를 둘러싸고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암투
증권사 법인영업부와 리서치센터 사이의 갈등
미스터리 한 주가 움직임의 내막을 밝히기 위한 고군분투
어두운 포스를 발산하는 냉철한 킬러들의 추격전
과거를 숨기고 평범한 척 살아가는 사람들의 드러나는 비밀
지루할 틈 없이 진행되는 속도 빠른 전개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반전
“한번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을 놓을 수 없다!”
윤성욱은 유일증권에서 건설/건자재 산업을 담당하는 시니어 애널리스트입니다. 그가 강하게 추천했던 동성건설의 주가가 미스터리 한 이유로 계속 약해서, 이 회사를 세일즈한 법인영업부와의 갈등이 불거집니다. 이 문제를 고민하던 어느 날 성욱은 형사들의 방문을 받고 경찰서에 출두하라는 안내를 받습니다. 그 이유는 동성석유의 (동성건설의 계열사로 성욱이 담당하지는 않지만, 사업관계가 많은 회사) 정혜원 과장이 (성욱이 감정을 가지고 좋아하는 여자) 실종됐고, 성욱이 그녀가 실종되기 전에 만난 마지막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실종되기 전에 네 명의 증권회사 직원들에게 우편물을 보냈고, 성욱은 그 우편물의 내용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약물을 주입 당해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그가 혼수상태에 있는 사이 우편물이 보내진 다른 세 명은 냉철한 킬러들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성욱은 그 우편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고, 거대 기업의 비리와 음모에 접근하게 됩니다. 그를 없애려고 하는 세력에 대응하여 기업의 비리를 폭로하고 범법 행위를 밝히려는 성욱의 노력이 박진감 있게 진행됩니다. 거대 기업 내에서는 비리와 관련하여 오너들과 임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권력의 암투가 진행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누가 혜택을 보고 누가 몰락하는지의 과정이 전개됩니다.
작가정보
국내와 외국계 증권사에서 13년 이상 애널리스트로 근무했으며, 글로벌 포트폴리오 스트래터지스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글로벌 매크로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며, 주식회사 림투자자문의 대표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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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지난 며칠간 추적거리며 내리던 비가 오늘 아침은 소강상태여서 성욱이 여의도역에서 내려서 회사 정문까지 달려오는 데 1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회사까지 오는데 거쳐야 하는 왕복 6차선 건널목 초록 신호의 마지막 5초를 놓치지 않은 것도 도움이 되었다. 7시 40분. 아침회의에 이미 10분 늦었다. 어제 과음한 탓에 알람 시계를 붙잡고 20여 분을 더 잔 때문이었다. 숙취가 있는 상태에서 땀이 날 정도로 달려왔다 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구토가 올라왔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가방에 있던 생수를 꺼내 조금 마셨다. 마포 오피스텔을 나오며 냉장고에서 꺼냈던 물은 어느덧 미지근해져 있었다.
이 시간에는 유일증권 본사의 6개 엘리베이터 중에 하나를 타기 위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22층 법인영업부 대회의실까지 5분 안에 도착할 것이다. 이 회의실 가운데는 30명이 앉을 수 있는 대형 회의 테이블이 놓여있다. 가운데가 뻥 뚫린 이 테이블은 실리콘밸리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 모습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단지 다른 점은 애플 본사 건물의 원형이 아니라 기다란 직사각형이라는 것이다. 테이블의 양쪽 끝에 각각 한 명이 앉을 수 있으며, 양옆으로 각각 14명씩 앉게 되어 있다. 회의실이 워낙 크다 보니 자리마다 마이크가 배치되어 있다. 멀리 앉은 사람도 쉽게 들을 수 있도록.
유일증권 본사 건물은 여의도공원을 마주하고 죽 늘어서 있는 고층빌딩들 중에 하나로, 철제 프레임을 제외한 외관을 전부 유리로 마감한 모던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법인영업부 대회의실 외벽은 전부 통유리로 처리되었다. 대회의실의 이 외벽 앞에 서면 여의도공원 전체를 아래 45도 각도로 한눈에 보는 것이 가능하다. 공원 북쪽에 위치한 사모정과 제일 남쪽에 위치한 자연생태의 숲이 어떠한 시야 방해도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시원한 개방감은 몇몇 회의 참석자들에게 가끔 공중에 떠 있다고 느끼게 하기도 한다!) 여기에 복도 쪽 벽 또한 통유리로 시공되어서 사람들은 이 법인영업부 대회의실을 ‘어항’이라고 부른다. 이 거대한 어항 안에서 법인영업부 소속 영업직원 10명과 리서치센터 소속 스트래터지스트, 이코노미스트, 애널리스트 (기업분석가)를 포함하는 15명이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모여 회의를 한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성욱은 본인의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이른 아침에 형사가 찾아와서 이유도 밝히지 않고 경찰서에 출두할 것을 요구하고 갔다는 것이 뭔가 찝찝하고 불안했다. ‘뭣 때문일까?’ ‘왜 강력계 형사들이 정 과장에 대해서 묻지?’ ‘정 과장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정 과장이 무슨 불법에 연관된 것일까?’ ‘아니면 혹시 누구에게 납치되었나?’ ‘월요일 저녁에 같이 식사할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여러 가지로 고민해봐도 뚜렷한 이유를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리곤 정 과장에게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스스로 자제했다. 이유도 모르는 상태에서 괜한 전화로 좋은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욱은 여전히 묵직한 머리로 그렇게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다가 경찰서에 가서 이유를 알기 전에는 이런 상상들이 부질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전까지는 최대한 업무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오늘 오후에는 이유를 알게 될 테니까.
성욱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마친 뒤 23층 본인 자리에 와서 졸고 있었다. 숙취가 여전한데다 아침 형사들의 방문에 따른 불안감도 모자란 잠을 만회하고 싶은 본성은 누그러뜨리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건물 외벽 유리에 머리를 기대고 비몽사몽 중에 책상 위의 유선전화에서 울리는 벨이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점심시간에 유선전화가 울리는 일은 흔치 않다. 이 시간에는 받지 않아도 실례가 아니기에 그냥 무시하려고 하였으나, 전화는 집요하게 울렸다. 눈을 뜨고 번호를 본 성욱은 약간 긴장하였다. 법인영업부 김 상무였다. 전화를 받을 것인지 약간 고민한 성욱은 수화기를 들었다. 성욱이 자리에 있다는 걸 알고 전화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 무슨 급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한갓 전화 받는 것 때문에 김 상무와 괜한 트러블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예 상무님.”
“윤 과장, 식사하셨어?”
“예, 구내식당에서 했습니다.”
“나도 오늘은 구내식당에 가야 할 것 같은데 반찬이 괜찮았으면 좋겠구먼……. 아무튼 오전에 보내준 자료는 잘 받았어요.”
“예, 뭐 더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성욱이 약간 찔리는 마음으로 말했다. 권 형사와 김 형사가 돌아간 이후 성욱은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서에서 부르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 그의 어두운 상상력을 자극해 집중력을 흐트러뜨렸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했다. 그래서 신경 써야 하는 법인영업부 요청자료도 대충 작성한 후 상희에게 마무리해서 보내게 했던 것이다.
“윤 과장이 보내준 자료를 보면 좋은 얘기만 쓰여 있는데, 지금 기관이 원하는 건 안 좋은 얘기들이라고. 리스크 관리를 하려고 하는 거니까…… 뭐가 안 좋아서 계속 언더퍼폼 (같은 업종에 있는 다른 주식들과 비교하여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현상) 하는 건지 체크하려는 거지. 오늘도 건설주들 중에 혼자서 빠지고 있는데 뭐 알고 있는 거 없나?”
성욱은 김 상무가 열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윤 과장 자료를 보냈던 기관투자자에게 한 소리 들은 듯했다. 동성건설 주식의 계속되는 상대적 약세에 관해 추가적인 정보가 없는 성욱은 방어적으로 대꾸했다.
“오전에도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회사도 잘 모르겠다고 오히려 저에게 물어보고, 다른 건설 애널리스트들도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어떤 특정 펀드가 회사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작정하고 파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벌써 정보망에 잡혔어야 하는데, 참 이상하네…… 윤 과장, 이거는 우리가 한영이나 고산건설 대신에 동성을 채워 넣자고 쎄게 세일즈한 거니까, 동성이 적어도 다른 건설주들 수익률은 따라가야 한다고. 지금같이 심각하게 언더퍼폼하면 앞으로 기관투자자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지금 상당히 민감한 상황이야.”
김 상무가 최대한 화를 참으며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성욱은 더욱 부담스러웠다. 애널리스트는 기업분석 잘하는 것보다 주가를 맞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격언이 새삼 그의 마음에 와닿았다. 동성건설 혼자서 이렇게 빠지다가는 정말 잘릴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잠깐 스쳤다. 애널리스트들은 매년 1년짜리 근로계약서를 갱신하기에 회사가 계약 갱신을 거부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다른 증권사와 계약하지 못하면 바로 실업자 신세가 된다. 물론 흔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 시장에 동성건설이 인명피해가 난 사고를 은폐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서대문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 몇 명이 사망했다는 거야. 이게 신빙성이 있는 얘긴가? 요새같이 뉴스가 빠르게 퍼지는 세상에 이런 사고를 은폐하는 게 가능해?” 김 상무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다시 물었고, 성욱은 조금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아마 아닐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요새는 인명사고 은폐는 CEO 형사처분 사항이기 때문에 불가능하구요. 뭐 지난 30~40분 동안에 이런 큰 사건이 일어났지 않은 한은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제가 조금 전까지 동성건설 사람들과 통화했거든요.”
성욱의 대답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 없이 김 상무는 다시 질문했다.
“그럼 동성그룹 관련돼서 뭐 들은 게 있나? 지금 보면 건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성그룹주들이 약하잖아. 기관들이 왜 그런지 궁금해하는데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네. 전체 그룹 주들이 출렁거리니까 온갖 루머는 난무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분명치 않은 거지.”
성욱은 김 상무의 말에 동성그룹주들의 주가를 급히 거래시스템에서 체크해 봤다. 동성건설을 비롯해 동성텔레콤, 동성전자, 동성기계, 동성제약, ㈜동성 전부 2~3%씩 하락하고 있었다.
“정말 그렇네요. 저는 건설만 신경 쓰고 있었어서 동성그룹의 다른 주식들이 같이 약한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룹에 대해서 특별히 들은 것은 없습니다.” 성욱은 자기도 지금 알아서 약간 놀라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지금 시장에는 동성그룹 관련해 여러 가지 루머가 난무하는데, 그중 하나는 동성석유의 지분 20%를 가지고 있는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가 동성의 2차전지 사업을 반대한다는 거야. 윤 과장은 뭐 들은 거 없나? 윤 과장 석유에 친한 사람들 있잖아……”
성욱은 잠깐 생각한 후에 천천히 대답했다.
“상무님, 이것도 말씀하신 대로 상식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지분 가지고 있는 회사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걸 원하는 주주가 있을까요?”
“그래 나도 알아. 그런데 루머는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는 기존 탄소 에너지 사업을 하니까 동성그룹의 2차전지 사업을 반대하고, 그것 때문에 동성그룹주가가 빠진다는 거야.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기관들이 궁금해하니까 한번 좀 알아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루머들 때문에 그룹주들이 이렇게 빠진다는 게 좀 믿기 어려운데요.” 성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구도 빠지는 이유를 정확히 모르니까 여러 루머들이 생기는 거지. 또 한 가지 나오는 얘기는 회장님이 연세가 많으시다 보니까 두 형제가 회장 승계를 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거지.”
“예? 서로 회장이 되기 위해 경쟁하면 아무래도 지분경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을 거고, 그러면 주가는 오히려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성욱이 혼란스러운지 다시 물었다.
“음 지금 나오는 얘기는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다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치부를 들춰내기 위해 싸운다는 거야. 과거와 현재의 비리와 불법을 서로 폭로할 거라는 소문이 있어. 그러면 주가에는 좋을 수가 없지.” 김 상무가 다시 바리톤으로 얘기했다.
“아, 그런가요…… 동성건설이나 건자재 직원들에게서는 그런 낌새는 전혀 없는데…… 하긴 그룹 승계 관련 일들은 시장이 더 빠르게 알기 마련이지만.”
“아무튼 기관들이 많이 궁금해하니까 얘기한 것들 좀 알아봐 주세요. 동성그룹 관련해 어떤 얘기라도 들리면 바로 알려주고.”
“예 알겠습니다. 뭐 잡히는 거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건각에게 백미러를 통해 한 쌍의 헤드라이트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까만 택시는 덤프트럭을 추월하여 1차선으로 달려 나갔다. 건각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들보다 약 1km 앞에서는 까만 쏘렌토가 시속 90킬로의 속도로 서울 방향으로 텅 빈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었다. 반면 주차장에서 쏘나타를 픽업한 헌각은 건각을 따라잡기 위해 150킬로의 속도로 헤드라이트를 끈 채 빠르게 운전했다.
영종대교를 약 4km 남긴 지점에서 형호와 건각과 헌각은 3자 통화를 시작했다. 토요일 새벽이라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에는 이들과 까만 택시를 제외하고 운행하는 차를 찾을 수 없었다. 차량 4대만의 새벽 도로.
“까만 택시가 오는 게 보인다. 몇 킬로로 오고 있나?” 2차선으로 운행하는 형호가 말했다.
“정확하게 110킬로 입니다. 크루즈 쓰는 것 같습니다.” 1차선으로 달리는 까만 택시를 3차선 약 100m 뒤에서 따라가는 덤프트럭에서 건각이 대답했다.
“헌각이는?” 형호가 물었다.
“1차선 200m 뒤에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오케이 나는 이제 1차선으로 들어간다.” 1차선에 들어간 형호가 속도를 110킬로 약간 밑으로 줄이자 백미러에서 까만 택시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건각아, 빨리 들어와라!”
“옙!” 건각은 속도를 높여 까만 택시와의 거리를 대부분 만회하여 이제는 바로 옆 2차선으로 따라붙었다. 이제 까만 택시는 앞과 옆이 쏘렌토와 덤프트럭에 의해 막힌 형태가 되었다.
“헌각아, 너도 빨리!” 형호의 지시에 헌각도 엑셀을 바닥까지 밟아 까만 택시 바로 뒤로 따라붙었다.
택시 운전사는 아까부터 따라오고 있는 덤프트럭이 신경 쓰였지만 따라만 올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서 110킬로로 크루즈를 맞춰놓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앞에 검은 SUV가 점점 다가왔고, 어느 정도 가까이 왔을 때 크루즈를 조정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쏘렌토로 보이는 SUV도 110킬로를 유지하기에 건들기를 그만두었다. 크루즈를 신경 쓰는 사이 어느덧 덤프트럭이 바로 옆 차선으로 붙었다. 덤프트럭의 시끄러운 바퀴 소리가 택시 안 음악감상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택시 운전사가 속도를 늦춰 덤프트럭 뒤로 빠져서 나갈 것인가를 잠깐 고민하는 순간 뒤에서 갑자기 헤드라이트가 밝아졌다. 헌각이 쏘나타의 헤드라이트를 켰기 때문에.
앞뒤 양옆으로 막혔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운전사에게 갑자기 공포감이 밀려왔고, 이순간 덤프트럭이 차선을 침범해서 까만 택시의 오른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어어어어……”
운전사는 반사적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고 까만 택시는 가드레일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그 충격으로 차체가 가드레일 반대편으로 도로와 45도 각도로 틀어진 후 공중에서 팔랑개비처럼 1~2번을 돌고 땅 위에서 1~2번을 더 돌고 멈추었다. 마치 F1 포뮬러 경주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경주로와 직각을 이루며 공중에 떠서 여러 번 돌다가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였다.
헌각은 충돌 직전에 쏘나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서 이미 4차선으로 빠져나온 상태였다. 건각도 덤프트럭을 1차선으로 밀어붙인 후 까만 택시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속도가 떨어지는 사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서 3차선으로 빠져나왔다. 백미러 뒤로 도로 위에 오른쪽 45도 각도로 틀어져서 연기가 나고 있는 뒤집어진 까만 택시가 보였다. 전조등은 꺼지지 않아 갓길을 밝히고 있는 멈춘 택시. 사고 지점 뒤를 체크했지만 보이는 헤드라이트는 없었다.
성욱은 김 형사와 파자 배달부의 갑작스러운 결투를 작은 눈이 완전히 동그랗게 될 정도로 놀라서 보다가,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에 격투하는 둘 옆을 빠져나와 23층 엘리베이터 로비로 달려 나왔다.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지만 모든 엘리베이터가 1층에 있었다. 시간이 없다! 엘리베이터가 10층까지 오도록 기다리던 성욱은 인내심을 잃고 비상계단으로 향하였다. 문을 열고 급히 내려가던 성욱은 22층 법인영업부 층에서 비상구 문을 열어젖히고 나왔다.
아차! 그냥 내려갔어야 했지만, 워낙 하루에도 몇 번씩 방문하다 보니 본능적으로 22층에서 멈춘 것이다. 성욱은 2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주춤하였다. 다시 비상계단으로 가서 회사 로비까지 내려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숨어 있을 것인가? 다시 비상계단으로 갔을 경우 피자 배달부를 마주칠 것이 너무 두려웠다. 피자 배달부가 22층을 지나쳐서 내려갈 수도 있지 않은가? 22층을 선택한 성욱은 법인영업부 안쪽으로 들어왔고 휴대폰이 없음을 인지하고 투명유리문에서 최대한 떨어진 안쪽 책상으로 달려가 전화기를 들었다. 건물 외벽 유리 바로 앞에 있는 책상의 전화기를.
정희는 형호가 쏘나타에서 내린 직후, 증권사들과 여의도공원 사이의 16차선 도로를 건너 유일증권 본사 23층과 22층이 보이는 여의도공원 벤치에 고배율 쌍안경을 가지고 자리 잡았다. 공원에는 주말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상쾌한 봄밤을 즐기고 있었으며, 정희에게 신경 쓰는 이는 찾기 어려웠다. 쌍안경으로 23층에 초점을 맞추자 조명이 켜진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성욱이 보였다. 조금 후 성욱이 놀라서 번쩍 일어서는 모습이 보이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마 보스가 경찰을 작업하는 중이리라. 보스와 경찰의 대결은 유리창 안쪽 이어서 보이지 않았다. 몇 분 후 성욱이 22층의 유리창 옆 책상에서 전화를 드는 것이 보였다. 이 순간 보스가 달리는지 헐떡거리며 전화했다.
“놈이 보이나?”
“한층 아래요. 제일 안쪽 유리창 쪽. 빨리요. 전화하고 있어요.” 전화가 끊겼다.
성욱이 112를 누르자 신호음이 울렸다. 두 번 만에 여자가 받았다.
“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여보세요. 여기 여의돈데요. 누가 저를 죽이려 하고 있어요.” 성욱은 작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어느 빌딩인지 말하지 않았음을 알아채고 다시 말하려 했다.
“유이……” 이미 늦었다.
법인영업부 자동문을 열고 들어오는 배달부가 보였다. 성욱은 전화기를
기본정보
ISBN | 9791198042408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11월 15일 |
쪽수 | 364쪽 |
크기 |
135 * 200
* 29
mm
/ 566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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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형이 문자를 보냈다. 책을 냈다고.
그래서 그날 당장 서점에 갔다. 음, 쫌, 뭔가, 약간 구린 느낌의 표지였다. 이걸 사야하나 싶었다. 그래도 사촌형이 썼다하니 한 권 정돈 살 수 있겠다 싶었다.
솔직히 놀랐다. 뭐랄까~ 장면이 상상되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한 번 쥐면 놓을 수 없다는 얘기는 좀 과장이 된 듯 하지만, 실제 읽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최근에 본 것들 중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엄청난 재미를 보장하는 그런건 아니지만, 신박한 분야(애널리스트)의 경험과 약간의 추리와 빠른 전개가 주는 사이다미(美)를 추구한다면 읽어보시라. 왠만한 영화보다 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