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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억압, 반항으로서의 연애, 사랑하고 증오하는 피아노. 소년의 진술 속에는 상상과 현실이 온통 뒤섞여 있다. 상현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를 가엾게 여기다가도 어느 순간 낯선 것을 보듯 거리를 두게 된다. 활자 사이서 내도록 방황하다 마침내는 취약한 그를 응원하고 사랑하게 된다.
소년은 철저히 아래까지 내려간다. 상현의 사랑은 차라리 자해에 가깝고, 그의 성장은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 내려가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소년은 부딪치고 또 부딪친다. 조개가 고통으로써 진주를 품어 내듯, 고통을 통해 마침내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파멸로 이어지는 심리적 고립을 보여주는 듯 허공으로 툭툭 던져지는 뭉뚝한 문장들. 현실과 망상을 가로지르는 독백. 그 속에는 고통받는 한 소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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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총서 (1)
작가정보
1996년 2월 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서울에서 보내다가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랑, 가장 싫어하는 것은 폭력이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사랑과 미움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찾고자 대학에선 심리학을 전공했다. 그렇게 공부하며 세상엔 생각보다 더 많은 병이 많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런 마음의 병에 대해 이야기를 쓰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에도 부합했다. 그렇게 '병'과 '호르몬'을 결합해 실험자의 마음으로 한 편의 글을 썼다. 아직까지도 사랑과 미움의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글을 쓰며 세상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목차
- 작가의 말 ㆍ 4
1부 | 투여기 ㆍ 9
2부 | 폭식기 ㆍ 37
3부 | 거식기 ㆍ 55
4부 | 사춘기 ㆍ 73
5부 | 회복기 ㆍ 109
책 속으로
첫문장
나는 오늘 문학을 보았다. 문학은 재미있었다. 나는 아빠가 없다. 엄마도 없었으면 하겠다.
20쪽
간밤의 꿈을 복기해본다. 낯선 것투성이다. 서서히 낡아가는 기분이다.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창처럼 내 가슴을 관통한다. 내 심장은 그 빛에 충전되어 서서히 몸을 움직인다. 나는 꿈을 꾸기 위해 움직인다.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학교에 간다. 낮잠을 참는다. 심장이 방전된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 햇살은 창 너머에서 서서히 져 간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잠을 자러 침대에 올라탄다. 네 발 달린 침대야 제발 달려줘. 잠으로부터, 꿈으로부터. 내가 망각하도록 해 줘. 하지만 잠 속의 꿈 속의 내 속의 선생님은 여전히 낯설고 새로웠고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불행은 천천히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깊숙이 들어서서 우리 안에 뿌리를 틀어 앉는다고. 마치 뱀처럼.
57쪽
그렇게 며칠을 보내니 살이 빠졌다. 몸무게만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볼록했던 가슴이 들어가고 잘록했던 허리가 평평해지고 펑퍼짐했던 엉덩이가 작아졌다. 하지만 가슴에 생긴 멍울은 여전히 아팠다. 나는 병원에 가고 싶었다. 병원에 가면, 의사를 만나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을까.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 만약 밝혀지면 전 국민이 보는 뉴스에도 나오지 않을까? 아마 제목은 이럴 것이다. 16년간의 교묘한 독살 시도. 뭐 이런 제목으로 티비에 나오겠지. 엄마는 대체 언제부터 나에게 호르몬을 먹인 걸까.
79쪽
그날 저녁 나는 눈물을 닦은 하얀 휴지들을 구겨 침대 머리맡에 일렬로 늘어놓았다. 그리고 손깍지를 껴 배 위에 놓고 그 밑에 누웠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마 죽은 사람 같을 것이다. 그것도 헌화를 아주 많이 받은. 그 꽃마저 나에게 내가 줬다는 생각이 들자 쓸쓸해졌다.
116쪽
“아까부터 이야기했잖아요. 엄마가 먹는 경구 호르몬제를 내가 먹는 물에 음식에 섞어서 나한테 먹인다니까요. 나를 여자로 만들려고. 내가 남자가 되지 못하게 하려고.”
152쪽
창밖을 보니 세상이 하얬다. 흰 양들이 소리 없이 희생양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엄마 심부름으로 신문을 사러 밖으로 나가서 걷는데 눈에 신호등이 들어왔다. 신호등의 초록불과 빨간불에서 이미 지나간 크리스마스를 떠올린다. 어떻게든 실낱 같은 희망을 나는 그런 곳에서 찾았다.
출판사 서평
이 글을 읽는 건 빛이 없는 동굴 속을 맨발로 걷는 것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마주하는 건 병을 숨기려 약을 먹고, 그 약에 부작용이 생기고, 그 부작용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약을 먹는, 그런 일 같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언합니다. 당신이 이 기록에서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보리라고.
한 인간의, 한 소년의, 한 인생의 분투를 보리라고.
- 『작가의 말』에서
섹슈얼리티와 정체성 혼란,
자해로서의 사랑
여기 한 소년이 있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눈에 띌 만큼의 재능은 없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너는 이뤄야 해. 너를 위해 이만큼 희생했으니까.” 소년은 철심을 칭칭 감은 분재 묘목처럼 어머니의 억압과 학대 아래 통제된 채 자라난다.
그런 소년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문득 선생님의 자기소개 같은 건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칠판에 하얗게 썼던 이름만 기억났다. 김인섭.(p.15)” 상현은 선생님의 꿈을 꾼다. 현실의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환상 속 세계에서 소년은 선생님과 사랑을 나눈다. “나는 꿈을 꾸기 위해 움직인다. … 또다시 잠을 자러 침대에 올라탄다.(p.20)”
소년은 새장을 깨뜨리기 위해 사랑한다. 여자도, 남자도 사랑한다. 어머니에게 반항하기 위해, 일탈하기 위해, 사랑이 주는 위안으로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의 사랑에는 목적도 방향도 미래도 없다. 소년의 사랑은 차라리 자해 같다. 그럼에도 사랑은 상현의 삶을 관통한다. 소년은 그렇게 부딪치고 부딪치며 성장한다.
뒤엉키는 환상과 현실
『호르몬 소년』은 망상장애를 겪는 주인공 상현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소년의 독백 속에서 상상과 현실은 뒤섞인다. 『호르몬 소년』은 한낮의 악몽처럼 일상에 균열을 내고 환상과 상상을 그 안에 밀어 넣는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차츰 흐려진다.
“책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기분이에요.
올해 읽은 책 중 여운이 가장 긴 소설입니다.” - 독자 리뷰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의 『날개』는 분열된 자아를 가진 주인공의 독백을 따라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왜곡된 서술인지를 판단하는 데에 혼란을 겪는다.
『호르몬 소년』 또한 마찬가지의 트릭을 활용해 독자들이 심리 추리 퍼즐을 풀어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정말 상현에게 연락처를 남긴 선생님에게는 아무 의도가 없었는지, 어머니가 상현에게 호르몬제를 먹인 것은 사실인지….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심지어 주인공 상현 본인마저도.
반복되는 고통,
여전한 희망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살아간다. 희망이 있다면 인간은 어떤 고통이든 참아낼 수 있다. 『호르몬 소년』이 주는 고통스러울 만큼의 자극에도 이 책을 놓을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일 터다.
상현은 저 아래 바닥까지 내려간다. 그리고 바닥에서 비로소 다시 살아난다. “난 영원히 상처를 잊을 수 없겠지. 하지만 내 흉터인 꿈은 깨면 휘발되는 것(p.152)” 회복의 과정은 더디고, 다음 단계가 성장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본질이다. 시간은 변화를 불러온다. 그러나 그 변화가 성장인지 퇴화인지는 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5부 〈회복기〉에서 독자들은 스스로 되묻게 된다. 상현의 변화는 성장인가, 아니면 퇴보인가, 혹은 정체인가. 혼란스런 물음 사이에서 독자들은 생이란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여정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한 희망을 가지고.
기본정보
ISBN | 9791197880124 |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8월 12일 | ||
쪽수 | 154쪽 | ||
크기 |
116 * 181
* 16
mm
/ 30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잇다름 콩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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