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갑 평전(1925~2013)
없습니다
도서+사은품 또는 도서+사은품+교보Only(교보굿즈)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20,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Box 기준 : 도서 10권
로그아웃 : '서울시 종로구 종로1' 주소 기준
이달의 꽃과 함께 책을 받아보세요!
1권 구매 시 결제 단계에서 적용 가능합니다.
알림 신청하시면 원하시는 정보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2013년 12월, 박근혜 정권이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 위치한 민주노총을 폭력적으로 침탈했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파업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서였다. 철도노조 명예 조합원인 이수갑은 “이 나라가 망했다”며 탄식했다.
다음 날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병원으로 실려간 그는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기력이 쇠한 노혁명가는 그 다음날 아침,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89년 험난했던 혁명가의 길에 장엄한 마침표를 찍었다.
대대로 머슴을 살던 집안에서 1925년 태어난 이수갑 선생은 식민지 조국에서 가난과 싸워가며 노동자로 성장했다. 1945년 마침내 온 해방, 그러나 외세와 제국주의 부역자들이 판치는 조국의 현실은 그로 하여금 철도 노동자로 평탄하게 살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와 조선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9월 총파업, 10월 인민항쟁을 겪으며 조국의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염원했지만 한반도는 한국전쟁과 정전을 거치며 적대적인 분단 체제가 들어섰다.
이수갑 선생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조직이 사라진 가운데서도 “대중 속에서, 현장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혁명의 기본 원칙”이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60~1970년대 혁신계열 정당에서 활동했고 1980~1990년대 성장하는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 가운데서 전민련, 범민련 등 재야운동과 민주노동당에 힘을 보탰다. 2000년대 철도노조 명예 조합원이자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1990년대부터 이어온 반전·반제 아시아 공동행동(AWC)에도 열정적으로 함께해 국제 연대에도 앞장섰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이나 노동자들의 총파업 집회에도 어김없이 참석했다.
그가 떠난 후, 철도노조는 조합 간부가 수배 중임에도 이수갑 선생의 장례를 철도노조장으로 치렀다. 그를 따르던 노동운동, 진보운동의 후배들은 정신 계승 사업회를 창립해 그의 삶과 계급투쟁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책 『이수갑 평전』역시 그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작가정보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지금은 지리산 자락에서 소설과 어린이책을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쓴 어린이책으로는 『누가 뭐래도 우리 언니』, 『작은 씨앗이 꾸는 꿈, 숲』 등이 있으며 『경성을 쏘다』, 『아파치 최후의 추장 제로니모』 등의 청소년 소설도 썼습니다. 장편 소설 『가마우지는 왜 바다로 갔을까』로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목차
- 화 보
작가 서문 "혁명의 전사를 기리며"
1.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전사
2. 해군 수송부에 징용되다
3. 마루보시 사택 투쟁
4. 철도 노동자가 되어
5. 부활하는 부역자들
6. 오르그가 되어
7. 피의 3·1절
8. 혁명가의 아내
9. 삼형제
10. 전쟁과 토지개혁
11. 진보당 중앙위원
12. 국회의원에 낙선하다
13. 혁명가의 가족
14. 통일사회당 비밀 당원
15. 명동성당의 두 거인
16.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으로
17. 아시아의 별
18. 구속된 노동자들을 위하여
19. 영원한 철도 노동자
20. 마지막 싸움
뒷이야기
이수갑 선생 약력
책 속으로
작가 서문 중에서_18~19쪽
실로 이수갑은 평등과 평화를 위해 싸워온 한국 진보 운동의 거의 모든 중요한 조직에 몸을 담았던 핵심 인사 중 한 명이다.
21살의 철도 노동자로 조선공산당에 가입한 이래 남로당, 진보당을 거쳐 진보 운동의 암흑기이던 1960년대와 70년대에도 사회대중당, 통일사회당, 사회민주당 등 혁신 계열 정당마다 상급 간부로 활동했다. 1980년대 들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이후에는 전민련, 전국연합, 범민련, 전국민중연대에서 의장 급으로 활동했다. 팔순이 넘어서도 민주노동당 고문, 철도노조 고문, 구속노동자후원회 고문,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자문위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고문으로 수십 년 젊은 후배들과 함께했으며 특히 ‘미일 제국주의 아시아 침략과 지배에 반대하는 아시아 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의장으로서 한국 진보 운동의 국제화에 큰 역할을 한다.
혁명가의 길_161쪽
이수갑은 이제야말로, 상부로부터의 내려와야 할 연락선이 사라져 버린, 선이 끊어진 혁명가가 되었다. 운동가들 사이의 속어로 ‘선 떨어진’ 사람이 된 것이다. 상부의 지시를 받을 수 없게 되니 전에 자신을 지도했던 이가 남긴 말이 새삼 떠올랐다.
“이제부터는 대중 속에서, 현장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시오. 혁명의 기본 원칙에 입각하여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해서 활동하라는 뜻이오. 이것이 진정한 혁명가의 길이오. 이 동지, 절대로 혁명 운동에서 이탈해서는 안 되오.”
혁명의 선배로부터 마지막으로 하달 받은 지시였다. 창의력을 발휘해서 현장에서 활동하라, 어떠한 지시도 못 받더라도 노동계급의 창발성으로 독자적으로 과업을 수행하라는 말을, 이수갑은 가슴 깊이 새겼고 평생을 간직했다.
핵심이 살아 있으면 조직은 죽지 않는다는 말도 가슴에 새겼다. 남로당도 전평도 다 깨어져 버렸지만, 자신이 혁명 정신을 지키고 있는 한 운동이 와해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자신처럼 당의 마지막 지침을 지키고 있는 조직원들이 또 있으리라 믿었다. 시간이 아무리 걸리더라도, 그들과의 연결을 포기해서는 안 되었다.
길고도 외로운, 혼자 걷는 혁명의 길이었다.
조봉암의 진보당에서 함께 활동한 이수갑_167쪽
또한 이수갑은 조봉암이 자본주의를 상대로 하는 싸움에서 자신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기록한다. 후대의 진보 학자들은 이 부분을 간과하고 조봉암의 평화통일론만 강조하는데, 실제 조봉암은 통일문제보다 자본의 독재를 비난하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쏟고 있었다. 후대 학자들은 조봉암이 북한과의 우호적인 평화통일을 주장해 남한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평가하지만, 실제 조봉암이 민중 다수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경제적 평등주의 정책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오히려 남한 민중의 다수는 전쟁을 일으킨 원흉으로써 북한 정권을 증오하고 있었다. 민중이 바라는 것은 북한과 합치는 게 아니라, 하루빨리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1980년 민주화의 봄 문턱에서_203쪽
1980년 4월 21일 강원도 사북의 동원탄좌 노동자들이 일으킨 격렬한 파업농성이 그 시발이었다. 점거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 한 명이 광부들의 투석에 맞아 숨지기도 한 큰 사건이었다. 박정희의 뒤를 이어 전두환, 노태우의 신군부가 전권을 장악하고 있던 계엄령 치하였지만 이수갑과 김말룡은 즉시 사북으로 달려가 사태 해결을 도왔다.
두 사람은 탄광 사건 직후에는 한국노총 내 김금수, 천영세 등의 도움을 받아서 청계피복노동조합, 원풍모방노동조합, 콘트롤데이타노동조합 등 몇몇 민주노조들과 함께 한국노총 점거농성을 벌이는 등 활약했다.
철도노조 명예 조합원, 이수갑_274~275쪽
이수갑에게는 명예 조합원이 더욱 뜻 깊었다. 해방되던 해 21살 청년으로 철도 노동자가 된 이래 지금까지 60년간을 단 한 해도 휴지기 없이 어떤 형태로든 진보 운동에 가담해 온 그였다. 명예 조합원증을 받아 든 그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한 장의 증명서에는 전평의 해체와 전쟁, 기나긴 독재시대라는 역사적인 단절에도 불구하고 까마득한 후배들이 그가 걸어온 길을 알아주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청년 시절 못 다 이룬 꿈을 다시 꾸는 기분이었다.
이수갑은 철도노조 명예 조합원이 된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집회나 시위에 참여할 때면 꼭 철도노조 조끼를 입고 나갔다. 그 무렵 노조 조끼에는 국민 철도 사수, 철도 공공성 사수, 철도 민영화 반대 같은 투쟁 구호가 커다랗게 적혀 있어 조금 민망할 법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혁명가의 마지막 길_287~295
이수갑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된 것은 87살이 되던 2011년부터 일 년에 몇 번씩 제주도에 내려가 노숙 농성을 하면서였다.
제주도 남쪽 해안 마을인 강정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기로 확정한 것은 민주당 노무현 정부였다.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목인 국토 최남단에 해군기지를 두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건설 작업은 극우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화 되었다.
(...)
당사자인 이수갑은 그러나 집안에 누운 채 텔레비전을 통해 집회를 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시위대에 목소리를 보태고 싶었다. 불과 1년 전인 88세까지만 해도 주요 시위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그만큼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았다.
(...)
다음 날 새벽, 이수갑의 혈압이 급작스럽게 떨어졌다. 수술이 무사히 잘 끝났다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갔던 가족들이 면회를 오고 있던 아침 9시, 그는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끝내 숨을 놓아 버렸다. 2013년 12월 24일, 향년 89세였다.
기본정보
ISBN | 9791185009186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6월 01일 |
쪽수 | 300쪽 |
크기 |
152 * 225
mm
|
총권수 | 1권 |
Klover 리뷰 (0)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문장수집 (0)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판매가 5,000원 미만 상품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
반품/교환방법
* 오픈마켓, 해외배송 주문, 기프트 주문시 [1:1 상담>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반품/교환가능 기간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반품/교환비용
-
반품/교환 불가 사유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2)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3)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4)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5)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이상 ‘다운로드’를 받았거나 '바로보기'로 열람한 경우
6)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7)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8) 세트상품 일부만 반품 불가 (필요시 세트상품 반품 후 낱권 재구매)
9) 기타 반품 불가 품목 - 잡지, 테이프, 대학입시자료, 사진집, 방통대 교재, 교과서, 만화, 미디어전품목, 악보집, 정부간행물, 지도, 각종 수험서, 적성검사자료, 성경, 사전, 법령집, 지류, 필기구류, 시즌상품, 개봉한 상품 등 -
상품 품절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2)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분 좋은 발견
이 분야의 베스트
이 분야의 신간
-
내가 겪은 6.25 피난일기와 광해군의 중립외교10% 19,800 원
-
그레고리 헨더슨 평전10% 29,700 원
-
시민과 함께 읽는 여순사건10% 13,500 원
-
농업·임업정책(3)10% 28,800 원
-
조선상식문답10% 225,0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