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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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수상 작가 이주란 첫 장편소설
_박연준(시인)
일상적 풍경에서 강렬한 감정의 파동을 만들어내는 독보적인 감수성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주란 소설가가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한 첫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부터 젊은작가상 수상작(「넌 쉽게 말했지만」), 김유정문학상 후보작(「한 사람을 위한 마음」) 등이 수록된 두번째 소설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까지, 조용한 위트와 무심한 온기, 말과 말 사이의 여백으로 정서를 전달하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이주란 작가가 쓴 첫 장편소설이다.
2021년 〈주간 문학동네〉 연재를 통해 독자들에 먼저 선보인 뒤 세심한 퇴고 과정을 거쳐 출간된 『수면 아래』는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함께해오다 결혼한 두 사람이 아이를 잃는 커다란 상실을 겪은 뒤 다시 삶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두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아픔에 이혼을 택했지만, 완전히 이별하지는 못한 채 가까운 곳에서 일상을 나누며 살아간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을 공유한 두 사람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며 일상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잔잔하지만 널리 퍼지는 수중의 파동처럼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작가정보
목차
- 수면 아래
작가의 말
추천사
-
나는 이주란의 소설을 사랑한다. 그의 소설은 극적인 장면 없이 고루 팽팽하고, 대단한 플롯 없이 완벽하며, 시 없이 시로 가득하고, 청승 없이 슬픔의 끝점을 보여준다. ‘도-’라는 음계만으로 이루어진 음악 같고, 연노랑으로 그린 핏물 같고, 발 없이 멀리 가는 구두 한 켤레 같다. 내가 잘 아는 세계, 잘 아는 사람이 오래 지켜온 비밀을 모아둔 화단 같다.
이번 소설의 인물들은 새처럼 조금, 지저귀듯 말하고 초식동물처럼 천천히 오래 먹는다. 날씨와 식사, 수면으로 이루어진 일상을 돌보는 일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돌봄이다. 이주란이 만든 작고 가벼운 종이배 위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 슬픈데 한 톨의 격정도 없이, 기어이 순해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깨끗해진 기분이다. 누군가가 나를 씻기고, 먹이고, 재운 것 같다.
책 속으로
그거 죽은 나무야. 물 안 줘도 돼요.
두 아이는 호스를 잡은 채로 멀뚱히 사장님과 내 쪽을 바라보았다. 한낮의 오후 햇살이 기울어진 채로 빈틈없이 내리쬐고 있었고 작은 무지개가 생겨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도 줘볼래요.
줘도 소용없어요.
살아날지도 모르잖아요.
그러진 않을 텐데…… 줘봐 그럼.
사장님은 마치 혼잣말처럼,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고 아이들은 계속해서 그 나무에 물을 주다가 근처에서 한창 자라나고 있는 다른 작물들에도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_35~36쪽
주차장엔 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빈 의자들이 있었다. 가죽은 이미 오래전에 다 벗겨지고 없었고 뼈대도 낡을 대로 낡아 있었으나 종종 모자 쓴 노인들이 거기 앉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예전에 우경과 함께 살던 집의 주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리고는 했다. 전화번호는 저장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싶으면서도 안면을 익히며 살아온 시간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전화를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만 그립다는 것인가, 그리운 것은 어쩌면 고마운 것과 닮아 있구나 생각했다.
_65~66쪽
어떻게 지냈어요?
그냥 평범하게 지냈어요.
어려운 거네요.
뭐가요?
평범하게 지내는 것.
유진씨는요?
저도 그런 편이에요.
좋네요.
_77쪽
나는 숨을 참으면서 테이블에 놓인 내 몫의 주스를 마셨다. 남들처럼 텔레비전에서 본 방법을 메모해두었다가 장을 보고, 맛은 없지만 몸에 좋다는 주스를 만들어 먹고, 누군가와 복숭아를 따러 가자는 약속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혼자서는 어려웠겠지. 정말 어려웠을 것이라고, 어쩌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두 사람 몫의 건강주스를 만들어 집을 나섰다.
_82~83쪽
어머니는 그 깨가 눈에 들어온 순간에 겨우 안도감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해인씨가 그래도 깨를 뿌린 음식을 한 번은 먹었구나. 깨라는 건 가만히 생각해보면 안 뿌리려면 안 뿌릴 수 있는데, 깨를 뿌릴 마음이 남아 있구나. 그도 아니라면 해인씨가 뿌렸든 남이 뿌렸든 어쨌든 깨를 뿌린 음식을 먹긴 했구나. 잠시나마 안도했다는 것. 집에 가서도 얼마간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방 한구석에 떨어진 깨를 생각하며 너무 걱정하지 않으려고, 아니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 깨라니. 그 얘길 전해들으면서 어쩐지 시시하다 생각했고 참 슬펐습니다. 저는 시시한 것들을 사랑하고 시시한 것은 대체로 슬프니까요.
_124쪽
우경이 두고 간 자전거는 아직 그대로 공터 한편에 세워져 있다. 요즘 나는 잠이 좀 줄었으며 겨울이 오는 게 조금 두려운 정도의 마음이다. 한 번, 조금 운 적이 있었고 이렇게 자주 비가 내린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매일 비가 내리는 날씨가 이어졌다. 매장은 가을에 조금 바쁘다가 날이 쌀쌀해지면서 한동안 무척이나 한가했는데 사장님은 한가하면 또 한가한 대로 좋다는 이야기였다.
_171쪽
환희야, 너 깨 잘 터니.
네.
그거 어떻게 잘해?
잘할 수 있으니까 잘할 수 있어요.
그렇구나.
네, 저는 개미도 키우고요, 모충도 좋아하고요, 또 춤도 잘 추고요, 영어는 배우는 중이고요.
즐겁겠다.
근데 슬퍼도 괜찮아요.
왜 슬퍼도 괜찮아?
슬퍼도 괜찮으니까요.
_181쪽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요즘 나는 우리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만 자유로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냥, 난 우리가 괜찮았으면 좋겠어.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순간에, 정말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출판사 서평
깊은 상실을 공유하고 헤어짐을 택한 두 사람
삶의 파동에 흔들리며 조금씩 나아가는 그들의 이야기
나는 이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우경과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우리는 열일곱 살에 처음 만났다. 삶의 반 이상을 함께해왔고 중간에 한 번 결혼을 했다가 헤어진 적이 있다. 결혼식을 하던 날에는 평소 말수 적은 나의 어머니와 우경의 동생 우재까지, 넷이서 차례로 울었던 것 같다.
_12~13쪽
해인은 매일 아침 마을버스를 타고 ‘해동중고’라는 이름의 한 중고물품점으로 출근한다. 그녀의 일상은 새로 들어온 중고 물품을 닦아서 진열하고, 종종 물건을 팔러 가게에 들르는 장미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가게 근처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등의 작은 일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녀는 가끔 우경을 만난다. 우경은 해인과 같이 동네를 걷기도 하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해인의 집에 와서 함께 카레를 먹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나누기도 한다. “한 번 결혼을 했다가 헤어진 적이 있”는 그들은 일상에서 때때로 즐거운 순간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즐거움은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기억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힌다.
우경이 더없이 좋다고 느낄 때마다 왜인지 그날의 우경이 천천히 떠오르곤 한다. 우리는 누구도 그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낸 적이 없다.
_51쪽
두 사람이 이야기하지 않는 ‘그날 일’. 해인의 서술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에서는 (아마 차마 말할 수 없기에) 분명히 언급되지 않지만, 우리는 그 일이 두 사람이 베트남에서 아이를 잃고 돌아온 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해인과 우경이 말없이 공유하고 있던 커다란 상실의 아픔은 잔잔하게 이어지는 듯 보였던 풍경에 전혀 다른 색채를 덧입힌다.
그리고 어느 날 우경은 해인에게 상사로부터 베트남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아픔을 딛고 나아가고자 하는 우경, 괜찮느냐는 물음에 여전히 괜찮다고 대답할 수 없는 해인. 우경은 해인에게 그곳에 함께 가자고 말하고, 그로 인해 그동안 깊은 수면 아래 아픔을 묻어둔 채 지내온 두 사람의 관계에 고요한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그냥, 난 우리가 괜찮았으면 좋겠어.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순간에, 정말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수면 아래』는 해인의 일상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베트남에 함께 가자는 우경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 그녀는 뜻하지 않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다행히 그녀의 주변에는 온기어린 인물들이 있다. 이주란의 소설에는 늘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어딘지 허술해 보이면서도 마음이 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해인과 함께 분식을 사먹고, 달리기를 싫어하던 그녀에게 함께 달려보자고 제안하는 장미씨, 진해에서 함께 해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진씨, 실없는 듯하지만 뜻하지 않은 순간에 위로를 주는 성규, 천진하게 ‘슬퍼도 괜찮으니까 슬퍼도 괜찮다고’ 말하는 어린아이 환희. 이주란의 소설에는 커다란 슬픔의 크기와 비례하는 커다란 온기가 존재한다고 말해볼 수 있을까? 이 이야기가 극적인 사건 없이도 이토록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온기어린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커다란 감정의 진폭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수면 아래』를 읽는 내내 마음이 저릿한 이유를 알 듯도 하다. 그것은 비단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떤 안도에서 비롯된 동요가 아닐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위로가 아니라, 심장이 저릿할 정도의 강력한 위로. 혼자가 아니었다는 생각, 누군가가 함께여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큰 소리로 울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러한 감정을 이해할 것이다.
“시 없이 시로 가득하고, 청승 없이 슬픔의 끝점을 보여준다”는 박연준 시인의 서평처럼, 이주란의 소설은 음악이 없는 음악이기도 하다. 가사 없이도 곧바로 마음을 파고드는 애잔한 선율처럼, 단 몇 문장으로도 이 소설 속의 공기와 정서가 읽는 이의 마음에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200쪽으로 그리 길지 않은 이 소설이 이만큼의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주란의 문장이 가진 불가사의한 힘 덕분일 것이고, 그건 우리가 이주란을 읽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54687843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8월 12일 |
쪽수 | 200쪽 |
크기 |
135 * 200
* 15
mm
/ 358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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