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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 감추어둔 말들

최명순 시집
최명순 저자(글)
모악 · 2022년 07월 29일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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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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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처럼 세상을 적시는 순정한 시어!”
“가슴 깊이 간직했던 절절한 삶의 시편!”
생활의 언어로 담아낸 사연들
최명순 시인은 오래 전부터 문학의 길로 들어서고 싶었다. 그러나 교사와 화가의 아내로 살면서 그 꿈을 미루어야만 했다. 그렇게 세상의 굽이굽이를 한참이나 돌아온 끝에 가슴 속 깊이 감추어두었던 삶의 내력을 한 권의 시집으로 풀어놓았다.
『물속에 감두어둔 말들』에는 최명순 시인이 딸이자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아온 지난날들이 순정한 생활의 언어로 담겨 있다. 이 시집 속에는 한 여인의 전 생애가 구절양장 험한 고개처럼 앞을 가로막고 굽이마다 사연이 똬리를 틀고 있다.

서운하고 분하다고 서분이였을까
넷째 딸 ‘끝자’가 두 살에 죽고
뒤따라 태어난 서분이
툇마루에 앉아 아버지는 담배만 피우고
어머니는 핏덩이를 돌돌 말아 윗목에 밀쳐놓고

서운이 서북이 제멋대로 불리다
초등학교 입학 즈음
밝고 순하게 살라 개명했지만
서분이는 질질 그림자를 끌고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서분이」 전문

아이의 이름을 이렇게 지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어려서 죽은 손위 언니의 이름도 심상치 않다. “끝자”는 이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언에 동원되기도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높은 빈도로 딸 부잣집 여식의 이름으로 선택되었다. 딸그만, 끝순, 한자로 바꾸어 종희, 그리고 차남, 후남, 남경 등은 딸을 그만 낳고 아들을 낳으라는 주술적인 바람이 들어간 이름들이다. “서운하고 분하다고 서분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는 것을 단지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어린 마음은 큰 상처를 입는다.

작가정보

저자(글) 최명순

최명순 시인은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물속에 감추어둔 말들』은 오랫동안 문학을 꿈꾸어왔던 그의 첫 시집이다.

목차

  • 1부 아름다운 이름
    봄비 / 산길 / 비로소 나를 찾아 / 새벽별 / 옛 편지 / 꿈길 / 시계 / 이별 후 / 아름다운 이름 / 자화상 / 서분이 / 능소화 / 물속에 감추어둔 말들 / 깊은 슬픔 / 이사 가는 날 / 빈집 / 산북에서 / 겨울 산

    2부 밤마다 꿈마다
    밤마다 꿈마다 / 아버지의 구두 / 또 다른 이름 / 딸에게 / 고향집 / 어머니 / 큰언니 / 부부 1 / 열무김치 / 부부 2 / 어머니의 가을 / 탯줄로 묶인 인연 / 부부 3 / 그리운 당신 / 김장하는 날 / 길 / 결혼기념일 / 일기

    3부 꿈과 사연을 찾아
    연필 / 시 1 / 밥 / 귀가 / 모닥불 / 시 2 / 병상에서 / 꿈과 사연을 찾아 / 세월 / 시 3 / 기도 1 / 장례식장 / 기도 2 / 툰레샵 호수 / 기도 3 / 병실 풍경 / 동행 / 기도 4

    4부 화가의 아내
    화가의 아내 1 / 화가의 아내 2 / 화가의 아내 3 / 화가의 아내 4 / 화가의 아내 5 / 화가의 아내 6 / 화가의 아내 7 / 화가의 아내 10 / 화가의 아내 11 / 화가의 아내 12 / 화가의 아내 13 / 화가의 아내 14 / 화가의 아내 15 / 화가의 아내 16 / 화가의 아내 17

    발문 「덕분에 마음은 봄날」ㆍ정철성

추천사

  • “어찌도 그리 꼭꼭 숨겨두었을까 물속에 감추어둔 말들이 있었네. 거기 순정하게도 곱고 굽이굽이 산의 배경이 되어 살아온 시간이 배어들은 것일까. 오랜 날들 강물이 되어 흘러가고 강을 건너 이윽고 기슭에 내린 그 말들이 저녁 무렵 들녘을 걸어온 겸손하고 단정한 이마처럼 익었다.”

출판사 서평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하다
시집 『물속에 감두어둔 말들』의 화자는 부모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딸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은 여하튼 하고 마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덕분에 서분이가 주로 갈등하는 대상은 어머니였다.

나의 어머니는 곰보였습니다
그 흉터가 무에 그리 부끄러웠는지
길에서 마주쳐도 나는 딴청만 부렸습니다
어머니 아래로 열하나를 낳아 열은 돌 안에 잃고
마지막 외삼촌 하나만 건진 외할머니는
딸이라서 글을 가르치지 않았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버스도 잘 타고 셈도 아주 잘하는 여장부였습니다
일찍 청상이 되어 큰살림을 꾸리며
항상 문 칸 방에는 멸치 장사 소쿠리 장사들을
재워주고 먹여주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왜 그리도 싫었던지
…(중략)…
큰언니가 첫아들을 낳았을 때
그리고 내가 선생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평생 좋다 나쁘다 별말이 없던 어머니였는데
그런 어머니에게 따뜻한 밥상 한번 차려 드리지 못한 게
내내 억울하고 속이 상합니다
내 나이 스물여섯에 돌아가셨으니 철도 들었으련만
-「어머니」 부분

부모의 흠을 드러내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금기에 가깝다. 그런데 화자는 천연두를 앓고 난 후 어머니의 얼굴에 남았던 상처를 언급한다. 어린 시절의 화자는 어머니가 부끄러웠다. 장애가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라고 해도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었다는 자책을 면할 수가 없다.

큰언니는 내게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항상 먼발치에 서 있고
씻기고 재우고 업어준 것은 큰언니였지요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막내가
언 가슴에 생손앓이로
열여섯 살 차이이니 딸 같다 했습니다
아이에서 소녀로 처녀로 너울너울 날아갈 때마다
큰언니는 내 허물을 벗겨주고
은빛 금빛 새 날개를 달아 주었지요

나 시집간 이듬해 어머니 돌아가시고
삼년 후 딸을 낳자 큰언니는 외할머니였습니다
나를 키우듯 여전히 딸에게 빵도 구워 주고
인형도 사주고 옷도 책도 사주었습니다
그런 큰언니가 나를 몰라봅니다
뉘시오, 어디 사시오 묻습니다
-「큰언니」 부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생계를 짊어진 어머니는 막내까지 보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 큰언니였다. 큰언니의 손에서 막내는 아이, 소녀, 처녀를 거쳐 성장했고 결혼도 했다. 막내가 딸아이를 낳자 큰언니는 이모가 아니라 외할머니의 역할을 스스로 차지했다. 그런 큰언니가 사람을 몰라보는 치매에 걸렸다. “그런 큰언니가 나를 몰라봅니다”라는 말은 서글프다. “뉘시오, 어디 사시오”라고 묻는 말은 더욱 쓰라리다.

화가의 아내로 살아온 나날
‘화가의 아내’ 연작은 최명순 시인이 감내해야 했던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팔자 순하라고 수수팥떡”을 생일마다 잊지 않고 챙겨 주었는데 딸이 데려온 신랑감은 화가였다. 어머니는 “많고 많은 사람 중에 / 하필이면 가난한 그림쟁이냐고 / 내내 푸념하셨”(「화가의 아내 1」)다는 대목에서 화가 아내의 삶도 순탄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림이 전혀 돈이 될 수 없던 시절엔
변변한 저녁 한 끼 살 수 없는 그가 야속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림이 돈이 되어 쌀도 사고 술도 사오는 날
왜 나는 가슴이 저릴까
-「화가의 아내 2」 부분

돈이 될 수 없던 시절은 길었다. 그래서 야속했다. 그런데 돈이 가져온 것에는 무엇인가 빠져있다. 그래서 가슴이 저린다. 우리는 둘 다 가질 수 없다. “남루한 줄만 알았던 내 인생이 화려했음”과 “쓸쓸하기만 한 줄 알았던 내 인생이 따뜻했음”을 알면 족하지 않은가?(「화가의 아내 14」) 이 정도의 만족이라면 충분히 쓸쓸함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이 우울하고 막막할 때 최명순 시인은 “시라는 것에 기대어 / 나를 다독이고 쓰다듬는다”. (「시 2」) 이 시집을 통해 비로소 누군가의 아내이자 생활인의 자리에서 문학의 길로 들어선 최명순 시인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88071494
발행(출시)일자 2022년 07월 29일
쪽수 112쪽
크기
131 * 210 * 11 mm / 268 g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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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점 중 10점
/고마워요
우연히 기대없이 구입한 시집인데 보면서 계속 눈물이 났어요.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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