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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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민주주의 대한민국 역사의 뿌리는
근대 시기 민중 주도의 반외세 반봉건 투쟁
그러나 우리 교육 현장에서 역사는 그저 내신 성적, 수능 과목, 취업 목적 등 교과 선택 과목으로만 소구되고 있다. 시험 후에 기억에서 사라지는 옛날이야기 정도일 뿐이다. 그 안에서도 한국 근대사의 비중과 가치는 다른 시대 역사에 비해 과소평가되어있는데 그 이유는 한국 근대사가 ‘실패한 역사’로 낙인찍혀 있기 때문이다. 2015 개정 교과로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20%,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73%가 근현대사로 구성되어있지만 그 내용은 3.1운동 전후 독립운동사와 일제 강점기 활약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역사서나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 소재로 활용되는 근대사 또한 주로 일제 강점기 시기의 이야기이다.
역사 교류를 통한 남북 민간 교류에 힘쓰고 있는 저자는 만주 항일 무장 투쟁에 대해 조사하던 중 독립운동의 뿌리가 근대 시기에 일어난 민중 주도의 반봉건 반외세 투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농민전쟁, 갑오개혁 등 근대에 일어난 핵심 사건이 실패로 점철되었고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 근대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쓰인 기록으로 실패의 역사, 감추고 싶은 역사로 인식되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36년간의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는 데 핵심 역할을 한 투쟁의 역사이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주 민주주의 대한민국 역사의 시작 또한 근대 시기에 일어난 민중 투쟁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정보
2001년 ‘한반도 평화와 6.15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통일연대’ 사무처장으로 금강산 민족통일대토론회 실무를 맡으면서 북녘을 오가기 시작해 이후 15년 동안 일상적으로 북을 오가며 다양한 남북 민간 교류를 연결했다.
2004년 인도적 지원 단체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를 창립했으며, 2018년 이만열 교수와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를 창립해 상임이사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우리는 통일 세대》, 《좌충우돌 아줌마의 북맹 탈출 평양 이야기》가 있다.
그는 북의 수많은 탁아소와 유치원, 학교를 드나들고 공장을 짓는 현장을 둘러보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알게 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왜곡된 북의 모습의 아닌 북 사회의 시스템과 공동체 사회의 특장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남북이 5.000여 년 동안 하나의 역사로 살아왔음에도 많은 부분에서 민족사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음을 느끼고 남북 민간 교류 못지않게 역사적 쟁점 또한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이러한 필요에 의해 우리 근대사에 대한 북과 남의 인식 차이를 살펴보고 서로 공감할 만한 영역을 정리해서 집필했다. 우리 근대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남북 역사 교류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와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 들어가며
1부 한국 근대사의 시작
근대의 시작
미국, 조선을 침략하다
조선 침략을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공모
일본, 본격적으로 조선을 침략하다
2부 외세 침략의 벼랑 끝에서 반외세 근대화 투쟁이 시작되다
조선을 사이에 둔 열강들의 눈치 게임
조선 민중의 애국심과 투지를 보여준 임오년 군인 투쟁
개화사상의 탄생과 갑신정변
3부 농민군과 갑오개혁, 근대화의 빛이 되다
조선의 봉건 체제를 뒤흔든 농민 혁명
반봉건ㆍ반외세 투쟁 갑오농민전쟁
일본군과 농민군의 전면전
근대화 개혁을 향한 꺾이지 않는 의지
혁신 정권 수립과 갑오개혁
4부 반외세 근대화 투쟁의 맥을 이어가다
아관파천과 대한제국의 선포
대중 참여형 애국문화운동, 만민공동회
조선의 독점적 지배권을 획득한 일본
5부 반일 의병운동으로 독립 의지를 만방에 알리다
반일 의병운동의 시작
일본의 수탈에 맞서 싸운 반일 의병운동
을사조약을 반대한 의병들의 투쟁
전국적 규모로 확대된 반일 의병운동
일본의 강압에도 계속된 반일 의병대의 활약
정치 투쟁과 애국문화운동으로 이어진 반일 의병운동
책 속으로
남연군묘 도굴이 실패하자 협박으로는 통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미국은 본격적인 조미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도굴 실패 3년 후인 1871년에 ‘신미양요’가 일어났지만 우리 역사에는 이 사건에 대한 공식 평가가 없다. 일부에서는 ‘미국 배가 길을 잘못 들어 강화도에 들어왔다가 손돌목 군사들이 포를 쏘자 즉자적으로 보복한 것이며 원래 침략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돌아갔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신미양요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견해이다.
미국의 공식 역사서에서는 신미양요를 ‘United States-Korea War of 1871(1871년 조미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신미양요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미국이 국가적으로 벌인 전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 미군은 제너럴셔먼호에 대한 진상 조사는 물론 개항도, 수교도 달성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갔다. 얻어간 것이라고는 ‘수(帥)’ 자가 적힌 조선 군대의 깃발이 전부였다. 1871년 조미전쟁은 미국이 최초로 패배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미국 최초의 패전이 베트남전쟁(1963~1969)이라고 알려졌지만 역사상 미국을 처음으로 몰아낸 것은 바로 조선이었다.
-p25~31
군인들의 일본 공사관 습격은 단순한 폭동이 아니라 일본의 수탈로 민중의 경제적 궁핍이 심화된 현실을 각성하고 민중 수탈의 주범인 일본을 타격한 반외세 자주화 투쟁이었다. 또 군인에게 최소한의 급료마저 주지 않는 부패한 조선 봉건제의 악행을 처단하고 생존권을 확보하려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의로운 투쟁이었다. 즉 반외세 반봉건 민주주의 항쟁이었다.
일부에서는 임오년 군인 투쟁이 신식 군대와 구식 군대 사이의 차별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군인들의 애국적인 투쟁에 대한 모욕이다. 차별에 대한 항거가 아님은 신식 군인이었던 별기군도 구식 군인들과 함께 이 투쟁에 합세했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이처럼 임오년 군인 투쟁은 일본과 청의 무력간섭과 군인들의 정치적 미성숙 등으로 실패했으나 우리 근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 투쟁이 성공하지 못했으며 결국 외세를 더욱 깊숙이 끌어들인 계기에 불과했다는 견해는 재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p66~67
갑신정변은 실패했으나 외세의 침략이 강화되고 봉건 통치 제도가 한층 부패하던 시기에 나라를 구하려 한 애국적이며 진보적인 투쟁의 발자국은 뚜렷이 남았다. 실패한 정변이었으나 그들이 내세운 뜻과 의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개화사상과 갑신정변은 조선이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고 낡은 질서의 피폐와 궁핍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뚜렷이 보여주었다 .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일 갑신정변이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민비가 청나라를 끌어들여 갑신정변을 망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갑신정변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조선 민중의 염원이었던 ‘반외세 반봉건’의 기치를 명확히 들고 우리나라 근대화 운동의 횃불이 되어주었다.
-p91~92
농민군이 제기한 폐정 개혁안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제기된 문제들이었다. 농민군이 지방 자치 기관인 집강소를 설치하여 봉건 관리들의 행정 사업을 통제한 것은 우리나라 역사 발전에 큰 의의를 가지는 사건이었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오던 봉건 제도가 더는 지탱할 수 없으며 임종의 시기에 다다랐다는 역사적 확인이었다.
봉건 정부는 근대적 개편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고 노비 제도의 철폐, 국가 체계의 근대적 개편, 봉건적 수탈 체계의 정비 등 갑오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간섭을 물리치고 근대적 개혁인 갑오개혁이 수행된 것도 갑오농민전쟁의 영향이었다.
농민전쟁은 민중을 반일 투쟁으로 불러일으켰으며 투쟁 과정에서 정치 사상적으로 단련시켜 반일 투쟁 역량을 강화시켰다. 진압군의 탄압으로 수많은 농민군 지휘관이 희생되었으나 전쟁의 경험과 교훈을 얻은 많은 지휘관과 군중은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면서 각종 형태의 반일 투쟁을 계승 발전시켜나갔다.
-p127~128
갑오개혁은 개화파가 시작한 근대 개혁 운동을 계승해 조선의 근대적 발전의 길을 더욱 확대해나갔던 역사적인 운동이다. 또 갑오개혁은 일본이 군대를 주둔시켜놓고 내정 간섭을 감행하고 있던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추진한 개혁이다 .
일부 역사가들은 당시 조선이 일본군에 점령되어있었으며 일본 이 내정 개혁안을 강요하고 있었으므로 갑오개혁이 친일적인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거꾸로 된 해석이다. 갑오개혁은 갑오농민군이 제시한 폐정 개혁 요구들을 기반으로 조선 정부에서 ‘옛 법과 다른 나라의 법을 참작하여 실정에 맞게 개혁을 진행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독자적으로 진행한 근대 개혁이다. 군국기무처가 결정한 개혁안들은 그 후 조선의 근대 개혁 운동의 발전을 추동하는 요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근대 개혁 운동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p151
1904~1906년 초에 벌어진 반일 의병운동은 이전 시기의 의병운동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의병대 지휘층 구성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여러 계층이 참가함으로써 의병대의 폭이 넓어졌다.
19세기 말 의병 지도층이 유생들이었다면 이 시기에는 신돌석, 김순현을 비롯한 평민 출신 의병장들과 노동자, 지식 청년들도 참가했다. 1906년 강릉에서 교원의 지도 아래 200명의 학생이 일진회 사무실을 습격하고 반일 의병운동에 참가했으며, 12월에는 충주에서 광산 노동자들이 의병에 궐기했다. 이것은 러일전쟁을 빌미로 한 일본의 무력 침략과 을사조약이 강요된 후 나타난 움직임이었다.
이 시기에는 소규모 반일 의병대들이 큰 의병대로 통합되었다. 민종식의 지휘하에 정산과 청양의 의병대가 통합되었으며 비인과 남포의 의병대들도 통합되었다. 1906년 초부터 경상도 청송, 의성, 영해, 영양의 의병대들이 신돌석 의병대를 중심으로 통합되었고, 최익현 의병대를 중심으로 순창, 구례, 광양, 장성 등지의 의병대들이 통합되었다.
비록 이들의 투쟁은 실패했으나 반일 의병대들의 통합은 의병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이 시기의 의병운동은 국권 회복, 구국 항전의 뚜렷한 목표와 구호를 제기했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 반일 의병운동을 확대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p228~229
첫째, 반일 의병운동은 우리 민족의 열렬한 애국정신을 국내외에 보여주었다. 조선을 강점하려고 날뛰던 일본은 수많은 군대와 헌병, 경찰 등이 총칼로 위협하기만 하면 손쉽게 조선 민중들의 애국정신을 말살하고 영원한 식민지 노예로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일 의병운동은 일본의 이러한 계획이 완전히 무산시켰다. (…) 의병운동은 조선의 정치적 침략에도 타격을 주었다, 의병들은 차관 정치 이후 반일 투쟁을 더욱 강화해 지방에서 일본의 차관 정치를 집행하던 군청을 파괴 소각하면서 군수들을 처단했다. 그 결과 지방에서 차관 정치를 실행할 수 없었다. (…) 셋째, 전체적인 반일운동의 발전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주었으며 민중을 반일 투쟁에 적극적으로 진출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의병운동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국권 회복을 위한 애국 투쟁에 힘차게 나서도록 고무했으며, 특히 당시 벌어지고 있던 애국문화운동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 애국적 지식인들로 하여금 정치 투쟁과 애국문화운동을 강력하게 벌여나가도록 만들었다.
-p269~271
출판사 서평
실패로 점철된 한국 근대사 바로잡기의 시작
우리나라 근대화 시점부터 다시 바라보기
역사란 승자의 입장에서 쓴 기록이라고 하지만 그와 다른 시선으로 한 나라의 역사를 바라보면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근대사는 우리 민족의 시선이 아닌 열강 특히 일본의 시각에서 기록되었다. 대부분 사람이 한국 근대사의 시작을 1876년 일본과 맺은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조선의 항구가 열리고 서양의 문물이 물밀듯 들어오던 시기로 보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에 의해 규정된 근대의 시작 시점부터 다른 시선으로 접근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근대사의 시작 시점을 서구의 근대화가 태동한 시기와 동일하게 보고 있다. 17세기 우리나라에서도 봉건적 질서가 서서히 무너지고 토지 거래와 상업, 수공업, 광산업 등을 통해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다. 지배 계급이었던 양반이 몰락하고 신흥 돈주 그룹이 생겨났으며 시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17세기 후반에는 실생활에 도움이 되고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실학이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서양 문물이 소개되면서 새로운 문물을 배우고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근대화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라고 보고 있다.
승자가 아닌 자국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근대사
반봉건·반외세 투쟁, 자주적 근대 국가를 꿈꾼 민중 주도의 역사
2001년부터 남북 민간 교류 활동을 해온 저자는 남과 북이 사회 시스템과 체제는 다르지만 5,000여 년 동안 하나의 역사로 살아온 민족이기에 역사 교류야말로 서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근대 시기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남과 북의 인식 차이를 살펴보고, 외세에 의존해 근대화를 이루려했지만 실패로 끝난 지배층의 역사가 아닌 민중 스스로 자주적 근대화를 이루려던 움직임을 한국 근대사의 새로운 이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 페리 제독이 쏜 공포탄 소리에 놀라 강제 개방한 일본과 달리 정체가 불분명한 서양 배의 침입에 민중들이 힘을 합쳐 몰아낸 ‘제너럴셔먼호 사건’은 서구 열강의 무단 침략에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결심과 자신감을 높여준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열강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늦추는 데 기여했다.
- 미국이 일으킨 단순한 해프닝으로 알고 있는 1871년 ‘신미양요’는 미국이 국가적으로 작정하고 벌인 조미전쟁이었지만 미국이 최초로 패배한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하다.(그러나 우리는 1969년 베트남 전쟁을 미국 최초의 패전으로 알고 있다.)
- 신식 군대와 구식 군대 사이의 차별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는 ‘임오년 군인 투쟁(임오군란)’도 사실은 신구 군인들이 함께 부패한 봉건제의 악행을 처단하고 생존권을 확보하려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의로운 투쟁이었다.
- 친일 개화파들에 의한 무장 정변으로 ‘3일천하’를 누리고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갑신정변’은 오히려 외세 침략이 더 거세지고 봉건 통치 제도가 한창 부패되고 있던 시기에 나라를 구하려고 한 애국적이며 진보적인 투쟁으로 반외세 반봉건의 기치를 명확히 들고 우리나라 근대화 운동의 횃불이 되어준 근대 개혁운동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 서학(가톨릭교)에 반대하며 조선의 신앙과 철학을 지키고자 한 ‘동학운동’은 종교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유생, 군인, 농민 등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자 했던 일본에 맞서 싸운 반일 투쟁의 시초가 된 사건으로 ‘갑오농민전쟁’으로 명명하고 있다.
- 일본군이 조선을 점령하고 있었던 상황과 일본의 내정 개혁안 시행으로 인해 친일적 개혁이라고 왜곡 평가받고 있는 ‘갑오개혁’은 갑오농민전쟁을 통해 제시된 폐정 개혁 요구를 기반으로 자주적으로 진행한 근대 개혁이며 후대의 근대 개혁운동의 중요한 밑거름인 된 사건이다.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탈 다툼 속에서 우리 민중이 주도적으로 시도한 개혁운동은 아쉽게도 실패했지만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끊임없이 반일 의병운동을 벌였고, 이는 훗날 애국문화운동, 3.1만세운동, 만주에서의 항일 무장 투쟁 등 민족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어 마침내 36년간의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나라의 독립을 찾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승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역사관이 아닌 자민족을 중심에 두고 바라보는 역사는 우리에게 다른 시각을 열어준다. 이 책은 세계정세를 읽지 못하고 스스로의 안위만을 위해 서구 열강의 패권 다툼에 휩쓸리다가 일본에 나라를 내어준 지배층의 역사가 아니라 반봉건 반외세 투쟁을 통해 우리 민족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자주적 근대 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민중 주도의 역사를 보여주고, 이것이야말로 한국 근대사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91191266450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7월 30일 |
쪽수 | 274쪽 |
크기 |
141 * 206
* 20
mm
/ 459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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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특히 한국근대사는 일본과 얽힌 문제들을 제대로 보고 판단하는 바로미터라고 볼 수 있어요. 이 책에서는 우리 근대사의 주요 사건인 신미양요,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농민전쟁, 갑오개혁의 오해와 진실을 풀어내고 있어요.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 그 자체이자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어 기록된 사실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 사실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고를 통해 맥락을 이해하고, 편견을 찾아내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해요. 역사적 사실이 가진 의미가 시대에 따라,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가의 올바른 관점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어요.
저자는 한국 근대사의 외세 침탈과 개혁 실패를 승자의 시선이 아닌 자국민 중심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 민족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어요. 한국사를 배울 때 근대사 부분이 가장 싫었던 기억이 나네요.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루저의 역사로 보였던 거죠. 그러나 진짜 루저는 일본이에요. 무조건 항복 선언을 했으니까요. 우리는 비록 식민지가 되었어도 굴하지 않고, 해방되는 그날까지 목숨 바쳐 항일 투쟁,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자랑스럽고 떳떳해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음을 기억해야 해요. 바로 한국 근대사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 우리 역사와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이 책은 역사인식에 담긴 오류와 편견을 바로잡아 지금 우리가 봐야 할 진실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려주고 있어요.
단순히 한일 관계의 갈등을 과거의 일로 여겨선 안 될 것이, 일본은 아직까지 과거사 반성은커녕 역사 왜곡을 주도하고 있어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일본이 일으킨 일련의 전쟁은 일본의 대외 침략과정이며, 세계역사는 전쟁범죄로 다루고 있어요. 심각한 점은 일본 우익이 쓴 교과서나 역사서에서 일본의 대외침략이 있는 그대로 서술되지 않고 파렴치하게 미화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일본 헌법은 흔히 평화헌법으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전쟁포기와 군대 불보유를 규정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아베 전 총리가 집권하면서 개헌을 추진하던 것이 최근 전 총리 피살 사건과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 압승으로 개헌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요. 개헌을 하면 일본은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는 뜻이에요. 더욱 우려되는 건 미국이 일본의 군사력 강화와 개헌을 환영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런 시기에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우리만 애써야 할까요. 이번 광복절에 기시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공납과 현직 관료들의 참배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가 매년 광복절마다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지도부가 예를 표하는 게 멈출 수 없는 관습이 됐다는 발언은 용납하기 어려워요. 또한 욱일기는 일본의 전범기로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인데, 현재 일본 해상자위대의 자위함기로 사용되고 있어요. 정부가 오는 11월 일본에서 열리는 해상자위대 창설 70주년 관함식 참가를 검토 중이라고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어요. 과연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욱일기를 인정한다는 게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는 걸까요.
ϻ
윤이 좋아하는 한국사!
근대사도 관심이 많은데 근대사만 집중적으로
배울 기회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준비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근대사>예요.
근대사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이 책으로 궁금증을 해소해보았어요.
한국 근대사, 외세 침탈과 개혁 실패는 숨겨야 할 역사일까?
승자의 시선이 아닌 자국민 중심으로 역사 바라보기
지금까지 우리 근대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쓰인 기록으로
실패의 역사이자 감추고 싶은 역사로 인식되고 있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나라를 되찾는 데 핵심 역할을 한
투쟁의 역사이며, 대한민국 역사 또한 근대 시기에
일어난 민중 투쟁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한국 근대사의 시작
외세 침략의 벼랑 끝에서 반외세 근대화 투쟁이 시작되다
농민군과 갑오개혁, 근대화의 빛이 되다
반외세 근대화 투쟁의 맥을 이어가다
반일 의병운동으로 독립 의지를 만방에 알리다
이렇게 5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한국의 근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게
살펴보면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보았어요.
2015 개정 교과로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20%,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73%가 근현대사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3.1운동 전후 독립운동사와 일제 강점기 활약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어요.
이렇듯 한국 근대사의 비중과 가치는 다른 시대의
역사에 비해 과소평가되어 있고, 세세하게 배울 기회가
많지 않은데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근대사>를
통해 자세하게 배울 수 있어서 더욱 좋았어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내용도 있어서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며 되짚어 보았어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근대사>에서
세세한 내용까지 배울 수 있어서 우리의 근대사를
이해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되어서 한국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휴가 끝에 마주한 광복절 + 한국사
8월 6일부터 남편의 여름 휴가 시작.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전주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주변 볼거리, 변산반도, 만리포 해수욕장 등 나름 철저한? 계획을 세워 그 쪽 동네를 둘러보고 여행을 마무리 지었어요. 이틀 후 아이들은 2박 3일간 성당캠프를 또 가게 되었어요. 집에 아이들이 없으니 조용한게 남편이랑 딱히 할 일이 없어 안보던 티비 채널을 열심히 돌렸어요. 그렇게 해서 우연히 본 채널이 “벌거벗은 한국사”였죠. 곧 다가올 광복절을 맞아 최태성 선생님의 특별 강연이었는데, 평소 역사에 흥미 없던 저에게 새로운 역사적 시각을 갖게 했어요. 광복절까지 재방을 3일을 연속해서 봤어요. 교과서에서 까맣게 써 가며 외우던 내용과는 좀 다른 내용의 뒷내용들이 소개되었는데 반성하는 시간도 갖고 좀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그렇게 역사 채널과 함께 남편의 열흘 동안의 여름 휴가는 마무리가 되었고 16일에는 “책세상맘수다”에서 책 서평에 당첨된 “한국근대사”가 도착했어요.
: 한국 근대사 고찰
한국 근대사는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하게 된 이후부터 광복 이전 까지의 시기를 말하는데,
초4인 첫째를 위해 서평 신청했기에 좀더 자세한 설명을 위해 인터넷 자료도 찾아봤어요.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근대사 시작부터 여러 지역에서 반일 의병운동이 일어난 사건들을 끝으로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한 챕터는 맨왼쪽 사진처럼 디자인해서 구분하고 있어요. 본문은 매우 진지한 듯 텍스트가 주를 이루고 있고, 다이어그램과 지도, 그 당시 사진 자료를 통해 내용 이해를 돕고 있어요.
이 책은 연령대가 초등에서 중등 정도로 본다는데, 초 4인 큰 아이가 "너무 재미없을 것 같다. 지루해 보인다."가 첫인상이었어요. 매우? 좋지 않았어요. 내용을 짧게 편집했기 때문에 다행히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 조금 읽어 보더니 내용에 금방 푹 빠져 열심히 읽고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모바일이나 테블릿PC, 다양한 학습만화 등 흥미 위주의 매체를 많이 다루다 보니 '한국 근대사'처럼 클래식한 편집이 많이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기 쉬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또한 게임 좋아하는 전형적인 남자아이 둘째에게 쉽게 권하지 못하겠어요.
이 책을 약 일주일 동안 읽으면서 나름 간추린 내용들을 정리해 봤어요.
: 강화도 조약
1. 일본의 종이화폐로 조선에서 사용이 가능했고, 일본 사람이 조선의 구리화폐 사용 가능 허가는 일본화폐로 조선의 구리와 동을 약탈하려는 술책.
2. 조선의 근대화를 촉진시킨 것이 아니라 자주적 자본주의 발전을 가로막고 조선 경제를 황폐화시켜 근대화의 길을 왜곡시켰다고 볼 수 있다.
30년 전에 중고등시절 외웠던 강화도 조약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7월달에 다녀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아이와 함께 본 민비시해 사건에 대해서도 이 책의 민비 일당이 저지른 다양한 사건들을 마주하니 곱지 않은 시선들로 가득하게 되었어요.
: 민비 일당의 만행
1.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관심
2. 1871년 조미전쟁에서 미국을 막아낸 조선이 겨우 4년 후인 1875년 일본의 운요호 침략으로 무너졌다. 이는 민비 일당이 국방력 강화 대책 수립에 관심이 없고, 군 관련 세금은 부패한 관리들이 대부분 가로챘기 때문이다.
3. 1881년 개화파의 주장으로 신식 군대인 별기군 창설했으나, 집권 수구 세력의 일본을 끌어들여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계산때문에 별기군 훈련교관으로 일본인 파견. 무위영 소속 군인들에 급료 지불 사건으로 불만이 커지면서 임오년 군인 투쟁으로 번졌다. 군인들이 흥선대원군이 재집권하길 바라며 별기군에 있는 일본인을 몰아냈다. 민비는 도망가고 고종은 다시 흥선대원군을 앉혔으나 정치적 야욕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일본과 청나라 무력 침략은 다시 시작되었다.
조미전쟁에서 승리했던 조선인이 민비 일당으로 인해 일본에게 무너졌지요. 이런 사건 하나하나 '한국 근대사'를 읽으면서 화가 날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재미가 더해졌어요.
: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을 가정
1. 갑신정변이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2. 민비가 청나라를 끌어들여 갑신정변을 망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1898년 민권운동, 20세기 초 애국문화운동, 반일 의병운동 등 갑신정변을 계승 발전시키며 전개되었을 것임
: 교과서 더하기 한국근대사
이 책을 통해 미국, 중국, 일본이 수시로 작디작은 우리나라를 노리고 서로 싸웠지만, 중간중간 위기를 극복하며 오늘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수많은 조상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음을 다시금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편한 삶을 누리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감사함이 더 늘었죠.
5학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사를 배울 예정인 큰 아이를 위해 서평에 도전했는데, 제가 더 이책에 푹 빠지게 되었네요. 이유는 30년 전 업적을 위주로 배운 교과서에 반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내용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한국사 교과서는 아직 살펴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사건들을 어떻게 정리해 놨을지는 모르겠지만, 배우기 전이나 배우는 중에 '한국근대사' 책을 통해 미리 알고 교과서를 대한다면 좀더 비판적이고 폭넓은 시각으로 접하기 때문에 흐름 파악이 쉬울 듯 해요.아니 짧고 굵직한 사건들만 다룬 교과서만 보기엔 요즘 책들이 너무 잘 나왔기 때문에 읽지 않은 친구들은 안타깝다고 해야겠죠. 그만큼 아이들에게 꼭 읽혀봐야할 필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초록비책공방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근대사
실패를 넘어 자주적 독립 국가를 꿈꾼 민중의 역사,
우리는 의무교육 기간 그리고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의 교양 한국사 시간을 모두 합쳐 최소한 12년 동안, 만화책을 통해서건 아동문학(역사) 전집 등등…. 우리의 근대사를 보고 듣고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항일무장투쟁의 백두산 호랑이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전투를 영화화됐으니, 조금은 알려져 있겠지만, 전설의 백두산 호랑이 오동진 장군의 이름은 낯설다. 일본 관군과 밀정을 900여 명을 처단했다는 그는 일본 밀정의 계략에 빠져 체포되기도…. 우리 근대사, 이 책을 보면서 한참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부제처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아픔 근대사를 하나하나 적고 있다. 역사 교과서에서 단편적으로 3.1만세운동의 유관순, 중국 땅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영웅들 김좌진, 홍범도…. 그리고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근대사의 핵심사건인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농민전쟁, 갑오개혁 등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렇게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은 패배하지 않았나?, 이들의 패배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체계적인 연계와 전략의 부재를 꼽는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 보자. 통신수단도 정보공유도 무척 어려웠던 시기에 이렇게 산발적으로나마 일어난다는 자체가 당시의 민중들은 감정적으로 무척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리라.
지은이 김이경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현재 진행형인 남북분단의 모순은 여전히 한반도의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안다면, 미래 개척에 어떤 힘이 되지 않을까?, 우리 민족의 근대사가 현재의 문제해결에 과연 도움이 될까? 라는 문제의식에서 역사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톺아본다.
이 책은 구한말 위정척사의 유생 활약상과 그들의 한계, 평민 출신의 의병장 신돌석(신현호)의 투쟁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에 참여한 숫자와 투쟁횟수를 적어두고 있는데…. 일제가 작성한 통계 속에서 보이듯, 반일 의병 운동사, 당대의 민중은 끊임없이 투쟁했었음을 알 수 있다.
의병대의 해산 원인
씁쓸한 역사, 19세기 말 반일의병운동은 1896년을 기점으로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다. 실상 그 이유는 왕이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고종이 왜 의병대 해산 조칙을 내렸을까? 그리고 왜 유생들은 왕의 지시에 따라 해산했는가? 바로 여기에 봉건주의적 사고가, 유생들에게는 충군사상이, 강역보다 민중보다 더 중요한 가치였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조선 백성 모두가 하나가 되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계급 질서가 자리했다. 유생들은 민중을 믿지 않았으면, 그들의 행동 여하에 따라 의병 활동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생각이 결국 의병대의 단결력과 전투력을 약화시켰다. 안으로는 계급 질서, 밖으로는 일신의 안일과 같은 맥락에서 기회를 노려, 공을 세우고 입신양명의 길을 모색하려는 의도 또한 없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당대의 모습이었다.
반일의병운동 종말의 원인
우선은 일제의 가혹은 탄압이다. 항일의병뿐만 아니라 아예 마을을 초토화해버렸다. 1907년에서 1910년 한일병탄 때까지 하루에 수십 명씩을 죽였다. 1907년 7월부터 12월까지는 3,627명, 하루에 38명가량을 학살한 셈이다. 이들은 그냥 죽이는 정도가 아니라 고문, 총살, 사지 찢기, 가슴 도려내기 등 인간의 공포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수단과 방법으로 보여주기식, 경고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1907년 이후 많이 생겨난 의병조직은 위에서 살펴봤듯이 자연스럽게 조직됐고 분산활동을 했던 터라, 전술통일은 없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왜 우리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나 하는 점은 수많은 연구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 속에서 어떻게 의지를 잃지 않고 싸울 수 있었는가, 불투명한 미래, 강하기만 한 일본제국, 수십 년간의 풍찬노숙 끈질기게 싸웠던 독립군들, 이들은 어떻게 조국 해방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이런 미래에 관한 신념과 확신의 뿌리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습된 무기력, 어떻게 하더라도 그 환경을 피할 수 없다면, 여기에 순응하고 마는데…. 여전히 항일투쟁의 역사에 관한 연구는 부족하다. 사회 심리적인 접근 등에서 새롭게 연구될 필요가 있다. 지은이는 남과 북의 근대사에 관한 인식 차이를 좁히고 서로 공감할 만한 영역을 정리해서 집필했다고 했다.
일제 잔재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일제청산은 진행 중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을사오적에 대한 심판도 끝나지 않았다. 뒤틀린 역사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이완용의 후손들은 몰수된 이완용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국가를 상대로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 윤리적 책임감도 그 흔하디흔한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이유는 간단하다. 일제강점기를 한국의 발전 기초가 됐다는 얼빠진 소리를 하는 이들이 당당하게 이를 주장하며, 일본의 극우단체와 손을 잡고, 사실을 왜곡시키고, 힘이 없어서 땅을 빼앗기고 침탈을 당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하는 듯…. 왜 이런 역사 인식이 통용될까,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일제 잔재청산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올해 광복절 기념사를 한 대통령, 그 내용은 여전히 실망스럽다. 역사의식이 빵점이다. 아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 일제의 망령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 책은 우리 근대사가 결코 힘이 없어서 강토를 빼앗겼다. 어쩔 수 없이 내줬다가 아니라 전제군주국 대한제국이 망한 것이다. 1919년 대한민국이 일어섰고, 이름 없는 수많은 민중의 끊임없는 독립투쟁이 이어졌다. 근대국가를 이루기 위한 민중주도의 역사가...반외세, 반봉건투쟁... 이런 역사를 패배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광복도 그저 열강에 의해 주어진 은전일 뿐이지 않겠는가? 이제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 근대사의 정리가 필요하지 않겠는지,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