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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봉 저자(글)
한겨레출판사 · 2022년 07월 22일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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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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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맥없이 망해가는 세계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 우리를 위한 성장과 치유의 서사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
카지노에서 태어나 카지노에 버려진 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의 희로애락과 도시의 흥망성쇠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장강명의 《표백》, 강화길의 《다른 사람》,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서수진의 《코리안 티처》, 김유원의 《불펜의 시간》 등 1996년 제정되어 오랜 시간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한겨레문학상이 스물일곱 번째 수상작 《카지노 베이비》를 출간한다. 8인의 심사위원들은 “안정적인 서사 구조, 매력적인 캐릭터와 더불어 사람과 장소의 내력을 살뜰히 아우르는 작가의 넓고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고 평하며 총 응모작 171편 가운데 강성봉 작가의 《카지노 베이비》를 올해의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카지노 베이비》는 카지노 특구에서 나고 자란 ‘전당포 아이’의 성장 소설이다. 탄광촌이었다가 카지노 마을이 된 도시 ‘지음’을 배경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도시의 흥망성쇠를 아이의 눈으로 조망한다.

심사를 맡은 서영인 문학평론가는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아이, 너무 많은 일을 겪어 살아온 시간에 대해 끝끝내 함구하는 할머니, 이 두 비밀 사이의 긴장에 주목”했다고 밝혔으며, 소영현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이 “동양 최대의 광업소였던 사북 지역의 흥망성쇠를 환기”하는 작품이자 “지역 개발과 관광 산업 육성이라는 미명 아래 공공의 이름으로 카지노 사업을 운영하고, 돈의 논리로 지역 경제와 공동체를 망가뜨린 시간의 지층을 담은 보고서”라고 평했다. 조해진 소설가는 이 소설에서 “남은 자들, 살아 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작가가 “소설 속 인물들이 품은 저마다의 사연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생생하게 구현”해냄으로써 “놀라운 흡입력”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카지노 베이비》는 예고된 끝을 향해 맥없이 망해가는 세계 한가운데서 거기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이들에 집중”하며 “개발과 탐욕에 취한 우리가 지금 어떤 꼴이 되어버렸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로, “다음으로 넘어가려면, 이전과는 다르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되묻고 있음을 강조했다.

소설 속 ‘지음’은 작가가 어린 시절 살았던 탄광 인근 마을의 기억과 군 제대 후 카지노 근처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을 녹여 탄생시킨 공간이다. 현직 출판 편집자이기도 한 수상자 강성봉 작가는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위태로운 한국 사회의 문제의식이 압축된 지음이란 가상의 도시를 생생하고 핍진하게 묘사해냈다.
선정 및 수상내역
2022년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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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강성봉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원주에서 자랐다.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3년간 잡지 기자로 일하며 시장과 동네, 바닷가와 산골 사람들의 일상을 취재하러 다녔다. 현재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만드는 출판사 편집자다.

작가의 말

지음이란 공간은 제가 어릴 적 잠시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머물렀던 지역을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취재를 위해 여러 번 찾았고, 탈고할 때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완성하고 모텔 방 밖을 나왔을 때, 지음은 실제 그곳과 전혀 달랐습니다. 당연하게도 지음은 기억과 상상, 실제의 요소들이 뒤섞여 재창조된 가상의 공간입니다.

이 소설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가운데 주식과 부동산, 비트코인 투자 광풍이 휘몰아치던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쓰였습니다. 지음은 탄광 위의 도박장, 그러니까 산업화 시대의 기반 산업 위에 올라탄 투기와 유흥 산업의 기이한 구조, 침체된 상황에서도 투자 활기만은 넘쳐나던 팬데믹 당시의 사회 분위기,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승일로의 위태로움을 반영하는 동시에 환기하려고 만든 공간입니다. 다만 그러함을 비판하기보다는 그러함에도 끈질기게 제 길을 찾아 나아가는 생명력에 주목하고자 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하늘이라는 아이와 더불어 지음이라는 땅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을 깊게 연결합니다. 이 책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음을 믿고, 그 이야기를 발견하고 사랑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것입니다.

목차

  • 1부 전당포 가족
    시장과 도서관 ㆍ 그림자 아이 ㆍ 부다스 지저스 ㆍ 할머니 전당포 ㆍ 도롱이못

    2부 카지노 베이비
    스피드전당포 ㆍ 엄마의 연애 ㆍ 목사와 브로커 ㆍ 제삿날 ㆍ 쪽박공원 ㆍ 블랙잭 ㆍ 랜드

    3부 할머니의 유산
    의료원 ㆍ 6월의 눈 ㆍ 이야기 ㆍ 불지킴이 ㆍ 아이들의 땅

    작가의 말
    추천의 말

추천사

  • 한 비밀이 또 한 비밀을 지키고 돌본다. 몰락과 붕괴를 살아낸 사람들의 그 이후를 기대하게 된다.

  • 이 소설의 매력은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에 날카롭게 가닿아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따뜻하고 온화한 이야기가 가진 힘에서 나온다.

  • 예고된 끝을 향해 맥없이 망해가는 세계 한가운데서 거기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이들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혹은 모두가 살아 있는 일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때 제대로 살아 있고자 한 아이의 손을 잡기로 한 작품이다.

  • 이 삭막하고 야멸찬 역사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품어보겠다는 고집, 《카지노 베이비》는 그 안간힘을 기어이 설득해 내는 소설이다.

  • 소설을 읽고 이 아이를 사랑하게 되면 이제 달리기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온 힘을 다해 박수를 쳐주고 싶을 것이다.

  • 남은 자들, 살아 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이 소설은 고요히, 그러나 강렬하게 헌사를 보내는 듯하다.

  • 《카지노 베이비》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이야기를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 안정된 호흡과 짜임새 있는 진행만으로도 오랜 시간 구체적인 소설 쓰기의 노력이 (약간의 몸서리를 치면서) 짐작되는 작품이다. 그런 이야기를 만나면 우리는 그것을 타고 인생을 항해하게 된다.

책 속으로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
돈을 얼마나 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갚지 않은 건 확실하다. 열 살이 넘어서도 난 전당포에 있었으니까. 보육원이 아니라 전당포에 아이를 맡긴 아빠나 덜컥 아이를 맡은 전당포나 흠, 긴말은 하지 않겠다. 하면 할수록 상상을 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길. 버림받은 아이의 이야기라고 우울하게 시작하진 않는다는 것. _11쪽

나는 안다. 나처럼 비밀 많은 아이를 세상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바로 그림자 아이다.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존재하진 않는단 뜻이다. 정말 나에겐 어릴 적 사진이 한 장도 없다. 나만 혼자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도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진 않는단 얘기다. _27쪽

“너도 마찬가지야. 이미 넌 네가 누군지 알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네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네가 진짜 그렇지는 않다는 거다.”
보자기를 터는 박수 할아버지 너머로 범바위골 갈색 나무들이 천천히 흔들렸다. 바람을 타고 박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에게 밀려왔다.
“요즘엔 중이 제 머리만 잘 깎고 선무당도 사람 제법 살리거든.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자기 운명은 스스로 찾아가는 거다. 무엇보다 이미 넌 스스로 그럴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니까. 내가 넌 가물이라고 하지 않았니. 그러니 이제 그런 얄궂은 웃음이랑 집어치우고 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좀 잘 들여다봐라. 암, 그건 다른 누구도 해줄 수 없지.” _43~44쪽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기보다 엄마가 슬퍼할까 봐 교회에 간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사이 어디쯤 되는 거다. 엄마 옆에서 빠끔빠끔 찬송가를 따라 부르고, 기도하는 교인들을 몰래 눈을 뜨고 훔쳐보는 게 재밌다. _61쪽

“아무리 시간이 금이래도 전당국에 맡길 순 없지, 로렉쓰라면 몰라도.”
할머니의 말과는 다르게 나의 시간은 전당포에 맡겨져 있었다. 한번 내린 눈이 검게 질척일 때까지 녹지 않는 거리. 빛이 무릎 밑으로 내려앉아 여름에도 서늘한 거리. 인도에 빽빽한 차들 위로 먼지가 반짝이는 거리. 그 전당포 거리 한 모퉁이에서 나는 세상을 내다보았다. _65쪽

아저씨들의 얘기가 길어지자 용 사장님이 한마디 한다.
“카드 치러 와서 야부리만 털면 돈은 언제 따 가냐. 회장님이든 교주님이든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돈 앞에서는 임자 없는 거라. 잘난 놈이든 못난 놈이든 게임 앞에서는 평등하다, 이 말씀이야. 일단 테이블에 앉으면 다 같은 인간이라는 거지.” _108~109쪽

카지노에서 태어나 카지노에서 사는 아이. 호텔 직원들은 다들 그 아이를 카지노 베이비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저만 몰랐죠. 그러니까 저한테 맡겼던 그때가 벌써 세 번째였어요! 결국 어떻게 됐겠어요? 둘이, 아니 아기까지 셋이 랜드에서 쫓겨나고 말았죠. 그리고 저도 쫓겨났고요. 손님에게 돈을 받고 아이를 맡아서 문제가 됐거든요. _125쪽

내가 깨어났을 때 건너편 침대에 할머니가 잠들어 있었다. 구급차를 같이 타고 병원에 올 때까지 멀쩡했는데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기절했다고 한다. 사흘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나를 찾느라 남은 힘을 다 써버린 거였다. 내가 랜드에 가지만 않았어도 할머니는 괜찮았을 거라고 나는 잠든 할머니를 내려다보며 수십 번은 생각했다. 할머니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나 혼자 깨어 있는 것이 무섭다고 나는 엄마를 안고 울었다.
“그래, 지키는 게 어려운 거야.”
엄마는 내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지키는 게 어려운 거야.”
엄마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고,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_220쪽

국밥집 처마 아래 그 뜨거운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는 흰 눈이 점점이 녹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눈물은 다시 얼어붙어 고드름이 되고 땅에서부터 조금씩 자라났다. 누군가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은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든 간에 생의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힘이 있다고 했다.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는 그 눈물의 힘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국밥집 처마 아래에서 흘린 눈물이 살면서 할머니가 흘린 마지막 눈물이었다. _244쪽

긴 이야기 끝에 죽음이란 꽉 차버리거나 텅 비워버리는 거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할머니는 그냥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 옛날 할아버지는 지음에서 꽉 차거나 텅 비워지고 있었다. 눈물을 흘릴 새도 없이 반드시 살아남아야겠다고 할머니가 굳게 마음먹은 것도 그때였다. _253쪽

할머니가 다 말해주진 않아서 이제 어떤 이야기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됐지만 나는 더 묻지 않았다. 할머니가 나에게 말해주었으니까. 애들은 억만금 주고도 살 수 없는 어른들의 희망이자 미래라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맞춰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그 아이들이 스스로 세상을 만들도록 어른들은 잘 맡았다가 세상에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_262~263쪽

죽음이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것이란다, 그래서 슬퍼할 필요는 없지, 그렇게. _265~266쪽

어른들은 땅에 불을 지른다. 땅을 깎고 파낸다. 땅을 사거나 팔고 빼앗거나 빼앗긴다. 땅 위에 뭔가를 지었다가 허물어뜨리고, 다시 또 짓고 허물어뜨린다. 왜? 무엇 때문에? 질문과 답은 언제나 제각각이고 제멋대로다. (…) 나에게, 엄마에게, 삼촌에게, 그리고 할머니에게 주어진 질문과 답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그냥 물을 수 있는 사람은 그냥 묻고,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답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은 온 마음으로 묻고 답해야 한다. 끈질기게 살아가면서, 두 발을 딛고 선 그곳이 넓은 땅이든 좁은 땅이든, 평평한 땅이든 가파른 땅이든, 멀쩡한 땅이든 부서진 땅이든 상관없이. _295~296쪽

출판사 서평

이 소설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가운데 주식과 부동산, 비트코인 투자 광풍이 휘몰아치던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쓰였습니다. 지음은 탄광 위의 도박장, 그러니까 산업화 시대의 기반 산업 위에 올라탄 투기와 유흥 산업의 기이한 구조, 침체된 상황에서도 투자 활기만은 넘쳐나던 팬데믹 당시의 사회 분위기,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승일로의 위태로움을 반영하는 동시에 환기하려고 만든 공간입니다. 다만 그러함을 비판하기보다는 그러함에도 끈질기게 제 길을 찾아 나아가는 생명력에 주목하고자 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하늘이라는 아이와 더불어 지음이라는 땅입니다._‘작가의 말’에서

“지키는 게 어려운 거야”
카지노 베이비, 세상에 서다

《카지노 베이비》는 과거 탄광촌이었다가 카지노와 리조트 단지로 바뀐 고장 ‘지음’의 풍상을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다. 지음은 과거와 현재, 토박이와 외지인들이 뒤섞인 곳으로, 랜드가 있는 지장산 기슭은 웨스트부다스, 지음교회를 중심으로 한 읍내는 이스트지저스로 불린다. 그 사이에 모텔촌과 전당포들이 모여 있는 슬립시티가 자리한다. ‘나(동하늘)’는 아기 때부터 슬립시티의 전당포에 맡겨진 열 살 즈음의 아이다. 전당포 주인을 할머니, 그 딸과 아들을 엄마와 삼촌으로 여기며 자랐다. ‘나’는 출생의 비밀을 우연한 기회로 하나둘 알아가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카지노 베이비’가 되었는지 정체성을 찾아간다.
3부로 구성된 소설은 ‘나’의 기억과 회상, 상상을 통해 지음과 지음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1부 〈전당포 가족〉은 ‘나’의 가족과 그들이 사는 도시 ‘지음’ 이야기다. 열 살이 넘은 ‘나’는 출생 신고도 되어 있지 않고 학교도 다니지 않는 ‘그림자 아이’다. ‘나’는 전당포 주인을 할머니, 그 딸과 아들을 엄마와 삼촌으로 부르며 가족처럼 살고 있다. “랜드가 무너진다!”고 외치고 다니는 삼촌, 불안증에 시달리는 엄마, 이 가족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은 억척스럽게 도시에서 살아남은 할머니뿐이다. “아무리 시간이 금이래도 전당국에 맡길 순 없지, 로렉쓰라면 몰라도”라고 말하는 ‘동영진 여사’는 노름꾼은 노름꾼처럼 생각하고 전당포 주인은 전당포 주인의 일을 하면 된다고 ‘나’를 가르친다. ‘나’는 자신이 왜 전당포에 맡겨졌는지 궁금해하지만, 그 이유를 알려주는 어른은 주변에 없다. 그런 ‘나’에게 범바위골 박수 할아버지는 자기 안을 먼저 들여다보라고 말할 뿐이다. 한편 ‘나’는 거듭 지음이 물에 잠기는 꿈을 꾸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장면들을 본다. 실제로 전당포 거리의 도로엔 구멍이 뚫리고 거리에 물이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광업소가 있던 지장산 중턱에는 카지노가 들어섰다. 산을 깎아 골프장을, 인공 눈을 뿌려 스키장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리조트에서, 어른들은 카지노에서 각자의 게임을 즐겼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몰려들어 랜드의 호텔과 리조트는 미어터졌고, 기회를 놓칠세라 지음에 땅을 사뒀던 외지인들은 랜드로 올라가는 길목에 아파트와 모텔, 싸구려 리조트를 지었다. 광부 사택과 포장마차 거리는 슬립시티와 전당포 거리로 바뀌었으며 그곳에 꿈을 저당잡힌 사람들은 지음을 이스트지저스로, 지장산을 웨스트부다스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음 땅의 이름은 천천히 지워지고 “지음이 흔들린다! 랜드가 무너진다!”라는 외침만 남게 되었다._87~88쪽

2부 〈카지노 베이비〉는 ‘나’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스피드전당포 주인 용 사장과 엄마의 전화 통화를 우연히 엿들은 것이 계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들이 다 진실인지 혼란에 빠진다. ‘나’는 꿈에서 자꾸 보았던 카지노의 전경을 확인하고 싶어져 용 사장에게 카지노를 구경시켜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카지노를 방문한 날, 랜드에 큰 지진이 발생하며 건물이 무너진다. ‘나’는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침내 깨닫는다.

나는 그날 밤 이야기를 듣고 세 번 놀랐다. 첫째, 어쩌면 내 이야기일지 몰라서. 둘째, 생뚱맞게 염 목사님의 이름이 튀어나와서. 나만 빼놓고 다들 아는 걸까? 평소 할머니는 염 목사님을 “목사가 아니라 뿌로커”라고 부르곤 했는데 그것과도 관련이 있나? 뿌로커가 뭐냐고 묻자 할머니는 “돈이 부르면 워디든 가고, 돈이 시키면 뭔 일이든 하는데, 그게 돈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는 눔들”이라고 했었다._127쪽

3부 〈할머니의 유산〉은 ‘나’가 할머니를 통해 듣게 된 가족과 지음의 이야기다. 할머니는 지진 후 아수라장이 된 지음에서 ‘나’를 찾느라 고군분투한다. 그러다 붕괴된 카지노 건물에서 ‘나’를 발견함과 동시에 쓰러진다. ‘나’는 병실 할머니 곁을 지키며 할머니가 들려주는 가족의 내력, 나아가 전당포와 지음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된다. 한때 석탄을 캐기 위해 오르던 길이 이제는 도박을 위해 오르는 길이 된 풍경을, ‘새마을 대운’이 끝나고 ‘올림픽 대운’을 거쳐 ‘월드컵 시대’까지, 그 역사의 음화가 할머니의 입으로 소상히 밝혀진다. 이로써 그간 알고 있었거나 상상했던 것, 기억하고 있던 것들의 빈틈을 채워나간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와 엄마, 삼촌은 할머니가 남긴 유산을 찾아 함께 떠난다.

이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면 어디선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니는 안 본 것도 아주 본 것처럼 얘길 하네.” 그건 칭찬도, 감탄도, 빈정거림도, 꾸짖음도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할머니는 당부했다.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알고 나서도 분노하지 않거나 스스로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되면 그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라고. 언젠가 정말로 그런 때가 되면 이 길에서 시작된 이야길 해봐야겠다. 그저 혼자 걷기 시작했을 때는 그 길이 끝날 때까지 계속 걸어가는 거라고 할머니가 그랬으니까._295쪽

문제적 상상력, 진진한 캐릭터, 넓고 깊은 서사의 힘
재난의 시대를 거쳐 이윽고 마주한 치유와 성장의 이야기

돈 때문에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에서 출발한 《카지노 베이비》는 한 아이의 성장담을 통해 현시대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기어이 희망을 지켜내는 서사로 완결된다. “할머니의 일터가 ‘올림픽’ 다방에서 ‘월드컵’ 전당포로 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의 역사는 개발 자본에서 투기 자본으로 전화해온 자본주의를 고스란히 반영한다.”(서영인 문학평론가) 소설은 인간 욕망의 금자탑이 우뚝 솟는 과정과 결국은 무너지는 모습까지를 박진감 넘치게 풀어간다. 다양한 인물 군상이 재난을 마주하는 각기 다른 반응들도 그 재미가 진진하다. 아이의 시선으로 묘사되는 어른들의 복잡다단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흡입력을 발휘한다. 나아가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애정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생명력을 선사한다. 카지노 랜드는 결국 흔들려 무너져내렸지만, 도시가 붕괴한 뒤에도 그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기반이 무너져내렸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닌, 앞으로 그들이 살아나가야 할 붕괴 이후의 삶이기 때문이다. “끈질기게 살아가면서, 두 발을 딛고 선 그곳이 넓은 땅이든 좁은 땅이든, 평평한 땅이든 가파른 땅이든, 멀쩡한 땅이든 부서진 땅이든 상관없이.”(296쪽) ‘나’가 마지막에 “지음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삶을 향한 그러한 용기 덕분이리라.
“우리는 모두 지금 시대가 어떤지에 대해서만큼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개발과 탐욕에 취한 우리가 지금 어떤 꼴이 되어버렸는지에 대해서도. 이제 무엇을 중시해야 할까.”(양경언 문학평론가) 그다음을 물어야 하는 때, 《카지노 베이비》가 오롯이 설득해낸 이 낙관의 장면은 그래서 더욱 미덥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넓고 깊은 서사, 섬세한 문장과 문제적 상상력이 조화를 이룬 《카지노 베이비》이후 강성봉 작가의 행보가 기대된다.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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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0408423
발행(출시)일자 2022년 07월 22일
쪽수 312쪽
크기
150 * 210 * 20 mm / 521 g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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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문학상 수상작들을 읽고 있다. 투기자본주의의 한가운데 던져져서 어땋게 살아가야 할 지 모르는 ‘아이’와 같은 현재의 우리가 보아야 할 문제의식과 켜켜이 쌓인 시간을 견뎌낸 할머니에게 듣는 이 세상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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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시선이 닿지 않았던 곳에 강렬한 조명이 비춰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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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탄광촌 위의 카지노라는 설정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주변의 세계가 무너진다고 느낄 때 우리는 절망하기 쉽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재미와 감동을 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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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나에게 당부했다.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알고 나서도 분노하지 않거나 스스로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되면 그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라고. 언젠가 정말로 그런 때가 되면 이 길에서 시작된 이야길 해봐야겠다. 그저 혼자 걷기 시작했을 때는 그 길이 끝날 때까지 계속 걸어가는 거라고 할머니가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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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질문과 답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그냥 물을 수 있는 사람은 그냥 묻고,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답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은 온 마음으로 묻고 답해야 한다. 끈질기게 살아가면서, 두 발을 딛고 선 그곳이 넓은 땅이든 좁은 땅이든, 평평한 땅이든 가파른 땅이든, 멀쩡한 땅이든 부서진 땅이든 산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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