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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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은 제목이 없어서 차례에는 각시의 첫 행을 두었다. 본문에는 번역과 함께 원문이 된 영문 시를 함께 실었는데 원문 텍스트는 에밀리 디킨슨 아카이브에 올라와 있는 시인의 필사 원고를 바탕으로, 번역문학가이자 '파시클' 대표 박혜란이 직접 기획하고 선택하여 편집, 번역했다.
작가정보
시인
에밀리 디킨슨 Emily Elizabeth Dickinson (1830-1886)
미국 매사추세츠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살며 평생 1800편의 시를 남겼다. 자신의 시를 직접 출판하거나 세상에 거의 공개하지 않았지만 소수의 친구와 가족, 지인들에게 보여주기를 좋아했다. 800여 편의 시를 직접 필사하고 편집한 손제본 형태의 파시클fascicle 40권에 보관했고 더러는 편지봉투를 뜯어 그 안에 적어두기도 했다. 주변의 일상과 자연을 시에 담아 사랑, 죽음, 상실, 영원함, 아름다움, 글쓰기와 읽기의 즐거움을 노래한 시인은 당시 청교도의 엄숙함이나 가부장적 질서, 물질주의 생활양식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리듬과 형식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유했다. 현재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미국 시인 가운데 한 명이며, 많은 후배 시인들과 비평가는 물론 음악가와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페미니스트 뮤즈이기도 하다.
연세대와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강의와 번역을 오래했고 지금은 틈틈이 에밀리 디킨슨 시를 번역해 모았다가 시집으로 만들고 있다.
주요 번역서: 『딸은 축복 속에 자란다』 (들녘출판사), 『남녀가 평등한 페미니즘 동화 흑설공주 이야기』 (뜨인돌출판사), 『흑설공주 이야기 2 -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신화』 (뜨인돌출판사), 『젠더와 민족 (그린비출판사)』, 『플롯찾아읽기 - 내러티브의 설계와 의도』 (강출판사) 외
목차
- 이렇게 명랑한 꽃 한 송이 So gay a Flower
작은 말 한마디 넘쳐흘러 14 / 장미꽃이 그만 피었을 즈음, 선생님 16 내 친구는 분명 새일 거야 18 / 여름 하늘을 보는 것은 20 / 이렇게 명랑한 꽃 한 송이 22 / 하늘에 앉은 나비는 24 / 여름의 최후는 기쁨 26
그녀가 놀다 죽었다 She died at play
두 개의 석양을 보냅니다 30 / 겨울 내 방이었는데 33 / 산들바람에 설?다 36 / 그 끝까지 천둥처럼 쌓였다가 38 / 사랑받는 이들은 죽을 수 없어 40 / 모든 정황들을 액자로 42
그가 당신의 영혼을 만지작거린다 44 / 영혼에게는 손님이 있어 46 / 그녀가 놀다 죽었다 48
캘버리 여제 Empress of Calvary
나의 조물주는 날 52 / 데이지는 살포시 태양을 따라가다 54 / 저 아래 발들은 수없이 비틀댔겠지 56 / 천천히 오라 에덴! 58 / 나는 “아내”다 그 노릇은 끝냈다 60 / 순백 선거의 권리로 얻은 내 것 62 / 신성한 작위는 나! 64 / 내가 양위되었다 나는 그들의 것이기를 멈추었다 66 / 가을에 만일 당신이 오고 있다면 68 / 나의 강이 당신에게 흘러가니 70 / 내 삶은 종결 전에 두 번 닫혔다 72 / 사랑이 뭐든 할 수 있다 해도 죽은 사람을 일으키진 못해 74 / 그녀가 준 불멸 76
다른 티끌 다른 신화 Other Motes Other Myths
당신을 따라다니는데 당신은 계속 바뀌고 80 / 당신을 칭찬해도 - 될까요? 그렇다면 해볼게요 82 / 어제는 역사 84 / 삼월은 기대의 달 86 / 공기에게서 공기를 추방하라 88 / 달은 바다에서 멀다 90 / 나는 아름다움으로 북적이다 죽으리라 92
낯선 비춤 Strange Illumination
죽은 사람들을 동정하기가 더 쉽지만 96 / 나는 길에서 떨어진 몇몇 외딴집들을 알고 있다 99 / “신앙”은 근사한 발명품 102 / 여행의 환희 104 / 고통에는 - 빈칸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106 / 한 줄기 빛의 영웅적 행위 108
인카네이션 Incarnation
그들의 대화는 전설이 자라듯 느리다 112 / 마음의 어귀들이 그렇죠 114 /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면 줄어들겠지 116 / 화산들은 시실리에 118 / 말은 애정의 한 징후 120 / 언어로 만든 육신은 좀처럼 122 / 그녀는 죽었다 - 이렇게 그녀는 죽었다 126 / 왜 그분들은 천국에서 나를 문전박대하시나요? 128 / 나는 나의 문장을 읽었다 차근차근 130 / 죽음이 아니었다, 내가 일어났고 132 / 불멸은 거창한 단어 134 / 골목을 지나 그것은 이어졌다 들장미 덤불 속을 지나 136
번역 후기
시 원문 찾아보기
책 속으로
이렇게 명랑한 꽃 한 송이에
마음을 빼앗겼으니
비통한 마음이었다 -
그렇다면 - 아름다움은 고통인가?
전통은 알아야 한다 -
21쪽
산들바람에 설?다
땅에서 우리를 사뿐 들어올려
다른 장소에 내려놓는데
그가 한 말은 찾지 못했다 -
우리를 돌려보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제정신으로 내려오니
마법에 홀린 땅에서
그동안 조금 더 새로워졌다 -
35쪽
그 끝까지 천둥처럼 쌓였다가
장대히 부서져 사라지리라
창조된 온갖 것들이 숨는 동안
이것은 - 시가 되었을 것이니 -
37쪽
그녀가 놀다 죽었다 -
시간을 대여해 얼룩 묻혀가며 갖고 놀다
다 써버리고는
말썽꾸러기 까불대듯 고꾸라져
꽃단장한 침상 위에 누웠다 -
47쪽
순백 선거의 권리로 얻은 - 내 것!
왕실 인장印章을 받은 - 내 것!
진홍 감옥 -
옥중 암호로 얻은 - 내 것!
창살로 - 가릴 수 없다!
비토 -
그리고 - 비전의 - 여기- 내 것!
무덤의 철회 - 내 것 -
작위 얻고 - 승인받은 -
훌륭한 선서 - 열광적 선언!
세월이 슬쩍하는 동안은 - 내 것!
61쪽
당신을 따라다니는데 당신은 계속 바뀌고,
다른 티끌 속에서 -
다른 신화를
당신은 요구한다.
프리즘은 색이 전혀 없었다
다만 색들이 노는 소리를 들었을 뿐 -
81쪽
나는 아름다움으로 북적이다 죽으리라
아름다움이 내게 자비를 베풀기를
내가 오늘 숨을 거둔다 해도
당신 앞이라면 -
93쪽
고통에는 - 빈칸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
그것이 시작되었던 때 - 아니 그것이 없던
때가 언제였는지 -
그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94쪽
한줄기 빛의 영웅적 행위
그렇게 낯선 비춤
가능성의 느린 도화선에 불을 붙인
상상력
109쪽
글은 과거가 현재에 존재하는 방법이다. 주류의 역사, 전통, 계보 속에 존재한다 해도 계속 마주치며 언급하고 다시 기록하지 않는다면 그저 과거의 흔적일 뿐이며 지금 여기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내가 사라지려는 찰나 나를 알아보는 누군가(들)에 의해 나의 존재는 계속 의미 있게 되는 일, 그것이 바로 읽을 만함 아닌가 싶다.
145쪽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대한 언급이나 시에 관한 시에서 흥미로운 점은, 디킨슨이 시인임에도 독자의 입장에서 시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시인은 읽히는 순간에 벌어지는 머리와 마음의 화학작용을 알고 있다. 소위 감동이라 부르는 어떤 작용. 독서의 상황에서 시는 읽히는 순간 의미를 정서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찰나의 존재이며 읽힘이 다시 말이 되고 글이 되면서 시는 계속 존재한다. 디킨슨의 시가 지금 우리들에게 남겨지는 방식처럼, 시인이 직접 읽고 다시 쓰기도 하고 수잔처럼 시를 잘 보존하려는 누군가 덕분에 보존되기도 하며, 알고 공개하자 하는 강한 바람의 메이블 토드처럼 적극적으로 의미에 개입하며 때로 시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렇게 시의 독서가 출판으로 이어졌을 것이며, 그렇게 연구되었을 것이다. 후대의 문헌학자와 문학 연구자들도 기록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시인과 시인의 시를 보존할 것이다. 파시클은 해체되었고, 흩어진 필사 원고들은 경매장과 박물관으로 가고 법정으로도 가겠지만 그러면서 시는 남았다.
149쪽
출판사 서평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
다른 시간을 함께하는 고고한 페미니스트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 / 그것은 우리가 숨쉴 때부터 존재했고 /
그것이 나갈 때 문상객들이 그것과 마주치는 / 우리 죽음의 순간
에밀리 디킨슨의 번역시집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가 나왔다.
〈파시클〉출판사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기획에 따라 선정하고 번역한 작품 55편을 7장으로 모아 편집하고 2019년 11월 15일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를 출판했다.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는 에밀리 디킨슨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경탄하고 삶과 고독과 죽음, 상실과 경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특히 이 시집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훌쩍 넘어 존재한 시인의 페미니스트 면모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은 제목이 없어서 차례에는 각시의 첫 행을 두었다.
본문에는 번역과 함께 원문이 된 영문 시를 함께 실었는데 원문 텍스트는 에밀리 디킨슨 아카이브에 올라와 있는 시인의 필사 원고를 바탕으로, 번역문학가이자 〈파시클〉 대표 박혜란이 직접 기획하고 선택하여 편집, 번역했다.
가급적 시인의 단어 선택, 시행 구분, 연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여 원문 텍스트를 구성, 그를 바탕으로 번역했고 디킨슨의 필사 원고를 텍스트로 번역하였기에, 20세기에 출간된 디킨슨 전집들에 기반한 기존 번역들과는 시의 구성과 내용이 다소 달라 이전에 볼 수 없던 신선하면서도 고전적인 디킨슨의 시 세계를 소개한다.
여성 자아가 강하게 드러난 시들
순백 선거의 권리로 얻은 - 내 것!
왕실 인장印章을 받은 - 내 것!
진홍 감옥 -
옥중 암호로 얻은 - 내 것!
창살로 - 가릴 수 없다!
……………………………………………….
오, 만일 내가 - 남자였다면 -
“흰옷”을 입었다면 -
그리고 그들이 - 노크했던 - 저 작은 손이라면 -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에는 다른 에밀리 디킨슨의 시선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주제의 시들이 실렸지만 다른 시집보다 여성자아가 강하게 드러난 시들이 유독 많다.
특히 「캘버리 여제! Empress of Calvary!」 장에서는 여성 존재 자체의 존엄과 자부심과 삶 속에 경험되는 억압과 배제의 부조리를 들춘다.
시의 자아는 처음에는 가부장 아래 선택권 없는 약한 존재였다가 모순과 불평등과 억압을 인식하고 새로 태어날 것을 다짐하기도 하고 이제는 스스로 우뚝 섰음을 홀연히 또는 비장하게 선언하기도 한다.
기독교 문화와 언어가 일상이던 시절을 살던 시인으로서는 당연하게도 기독교적 색채가 진한 시들 역시 많은데 현대의 독자들로서는 시를 따라가며 시대착오적이거나 진부하다고 여기는 순간 여지없이 수수께기와 같은 반전이 나타난다.
성경과 기독교 교리의 어휘들을 시어로 삼은 화자는 어쩌면 교회와 가정에 순종하는 신실한 백인 중산층 여성같기만도 한데, 꼼꼼히 읽다 보면 어느새 신성모독으로 가득한 것도 같으니 어리둥절한 동시에 통쾌한 해갈이 아닌가.
화자는 자연을 즐기고 신과 죽음에 질문을 던지고 고독한 존재로서, 상실의 아픔에 잠겨있으면서 동시에 천장의 거미줄을 걷어내고 양말을 기우고 빵 반죽에 쓸 밀가루를 체에 밭치는 생활인이기도 하다.
반쯤 의식 없던 여왕 -
하지만 이번에는 - 적임이라 - 기립했으니,
의지에 따라 선택도 거부도 할 수 있는데,
내가 선택한 건, 그저 왕관 하나
역사와 전통 속 자신만의 언어로 벼린 시
나의 의지는 그것의 단어를 위해 노력하다
실패하지만, 유산과도 같은
성찰적 내 것의 황홀을 -
즐거워한다 -
「이렇게 명랑한 꽃 한 송이 Sogaya Flower」와 「그녀가 놀다 죽었다 She died at play」는 19세기 미국 동부 작은 도시 백인 중산층 여성의 일상 속에서 사랑을 얘기하고 미학적 경험을 노래하며 여러 흥미로운 질문과 상상을 펼친다.
「다른 티끌 다른 신화 Other Motes Other Myths」와 「낯선 비춤 Strange Illumination」 에서부터는 이전 시들의 사색이 언어적 고민으로 좀 더 심화되면서, 시는 역사와 전통 속에서 자신 만의 언어로 자리잡기를 모색한다.
「인카네이션 Incarnation」은 언어의 문제에 좀 더 집중하여 시를 비추는데 시인은 자신의 언어를 인간의 몸으로 현실세계를 살았던 신이라는 예수의 존재에 유비한다.
「죽음이 아니었다, 내가 일어났고 It was not Death, for I stood up」의 시들은 당시 기독교 교리와 종교적 신념과는 조금 다른 수준에서, 어쩌면 지금으로서도 낯선, 현실과 죽음과 불멸을 상상한다.
숙제로 남은 시의 수수께끼
나는 아름다움으로 북적이다 죽으리라
아름다움이 내게 자비를 베풀기를
내가 오늘 숨을 거둔다 해도
당신 앞이라면 -
생명력과 생각과 감정은 풍부히 흐르지만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그렇듯 번역 역시 과하지 않고 오히려 간결하고 정갈하다.
군더더기 하나 없다. 얼핏 보면 설명이 부족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길 수도 있을 만큼 다소 건조한 느낌, 명쾌히 이거다 단정짓지 않는 어휘들은 시의 의미와 감정을 가급적 원문 그대로 옮기려 노력한 번역자의 의도가 실렸다. 21세기 한국 독자에게는 현대 시가 아닌데다 낯설고 어려울 수도 있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번역하는 이유로,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얻은 시학적 깨달음을 시읽기의 독법으로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에밀리 디킨슨은 보편적으로 보이는 인생의 이야기로 시작해서는 번번이 예상과 전혀 상관 없이 해독의 숙제를 남기고 끝맺는데 시읽기는 독서 게임이며 이 게임을 해나가는 자체가 인지 예술이라 보는 번역자는 이 게임을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파시클과 번역
우리는 제정신으로 내려오니
마법에 홀린 땅에서
그동안 조금 더 새로워졌다
〈파시클〉은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으로 내러티브 이론을 공부하였고 서울대학교 에서 석사, 박사 과정 중 에밀리 디킨슨 시를 읽으며 점차 매료되어 페미니즘 시학으로 전공을 바꿔 연구해온 번역문학가 박혜란이 번역해 모아둔 에밀리 디킨슨 시를 한 권 한 권 시집으로 만들고 있다.
〈파시클〉은 앞서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 시리즈로 첫 권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을 비롯해 그림시집 『멜로디의 섬광』 『어떤 비스듬 빛 하나』 『바람의 술꾼』 『장전된 총』을 펴낸 바 있다. 이번에 함께 출판한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와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를 더해 시선집 시리즈 세 권이 되었다.
〈파시클〉은 또 에밀리 디킨슨이 자신의 시를 40여 편씩 묶어 필사하고 손수 제본한 각각의 시집의 이름이기도 하다.
에밀리 디킨슨을 보는 다양한 해석과 시각, 새로운 접근들
그렇게 비상하여 멀어지며 결코 한숨짓지 않으니 그것이 슬픔의 방법이다
19세기 당시 휘그당을 이끌었던 가문에서 태어나 결혼하지 않고 외부 세계와도 교류 없이 살았던 에밀리 디킨슨. 생전 공개하지 않았던 1,800편이 넘는 시가 침대와 옷장에서 발견되었다, 평생 흰옷만 입고 살았다는 이야기들은 일화를 넘어 시인을 묘사하는데 늘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아, 그를 더 궁금하고 신비롭고 특별하게 만들거나 한편으론 이상하고 사교성 없다는 핀잔의 구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병원 기록으로 추정하면 오래도록 신경쇠약으로 고생했고 1830년 태어나 18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비혼으로 아버지의 저택에서 살았다. 10대를 보낸 애머스트 아카데미에서는 건강 탓에 학교를 쉬는 기간이 많았음에도 매우 총명하고 뛰어난 학생으로, 영어와 고전문학, 식물학, 기하학, 수학, 역사, 철학 등 학업에 열심이었다. 학교에서 수잔 헌팅턴 길버트를 비롯해 평생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는데 친구들에게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수수께기 담은 시들을 보내거나 시쓰기에 대한 애정과 열망을 고백하기도 하고 가까운 이들에게 상실과 아픔에 대해 격려와 위로를 담은 쪽지들을 보냈다.
은둔에 들어간 것으로 여겨지는 30대 중반 이후 평생 병석에 있던 어머니를 돌보고 가사를 책임지느라 고되었을 것이지만 56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시쓰기에 충실했다. 한편 디킨슨의 호밀빵은 유기농 레시피로 유명하고 시인의 정원은 정원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식물표본집도 식물학자들에게 중요한 자료로 남아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개인적으로는 소중한 이들과 사별하며 겪은 상실과 변화들이 시인의 언어와 사상의 흔적이 되어 후대 독자들에게 숙제를 남겼다.
시대에 따라 문학이론, 비평 방식이 바뀌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에밀리 디킨슨에 관한 다양한 해석과 시각을 담은 영화나 드라마들도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그녀가 놀다 죽었다
그녀가 놀다 죽었다 -
시간을 대여해 얼룩 묻혀가며 갖고 놀다 다 써버리고는
말썽꾸러기 까불대듯 고꾸라져 꽃단장한 침상 위에 누웠다
……………………………………………….
그녀와 죽음은 서로 아는 사이지만
정적 속에 만나는 친구여서
인사하고 지나치며 단서 하나 남기지 않는다
시의 어느 구석 한 군데도 시와, 시를 통해 본 삶과 죽음과 존재에 관한 애정과 경외심을 찾지 못할 곳이 없다.
왜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권하는지 묻는다면 이런 대답은 어떨까 한다.
“내가 읽은 책 한 권으로 인해 온몸이 오싹해졌는데 그런 나를 어떤 불로도 따뜻이 못한다면, 그게 시예요. 마치 정수리부터 한 꺼풀 벗기듯 몸으로 느끼신다면, 그게 시예요. 오직 이런 식으로만 나는 시를 알아요. 다른 방법 있나요?”
_에밀리 디킨슨,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 중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6125783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11월 15일 |
쪽수 | 158쪽 |
크기 |
129 * 205
* 12
mm
/ 184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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