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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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대학의 기업화 추세 속에서 대학의 공공성이 부정되고, 대학, 지식인, 인문학의 존재 의미가 쇠퇴하고 있다. 1970년대 미국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카우프만의 진단이, 지금 한국에서 한층 심각하고 복합적인 각도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이유다.” -조형근(사회학자)
작가정보
(Walter Kaufmann)
1921년 독일의 유대계 가문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에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니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7년부터 1980년에 타계할 때까지 프린스턴 대학교의 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종교철학, 역사철학, 미학 등을 넘나들며 다수의 철학서를 쓰고 번역했으며, 니체 전집을 편집하고 번역하면서 니체 전문가로 명성을 얻었다. 철학자, 교수, 번역가, 서평가, 편집자, 시인 등 다양한 이력으로 활동하며 인문학과 인문학 교육 방식에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했다. 저서로는 『이단자의 믿음(The Faith of a Heretic)』, 『죄의식과 정의 없이(Without Guilt and Justice)』, 『네 가지 차원의 종교(Religions in Four Dimensions)』, 그리고 실존주의에 관한 여러 권의 뛰어난 편저서가 있다.
한국저작권센터(KCC)에서 일했고 출판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번역서로는 빌 브라이슨의 『언어의 탄생』과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조지프 캠벨의 『영웅의 여정』과 『신화와 인생』, 찰스 밴 도렌의 『지식의 역사』 등이 있다.
목차
- 서론 9
1장 네 가지 종류의 정신 25
2장 읽기의 기술 91
3장 서평의 정치학, 번역과 편집의 윤리학 143
4장 고등 교육에서 종교의 위치 199
5장 선견은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237
6장 학제 간 시대 275
감사의 말 315
개정판 서문(솔 골드워서) 319
해제│소크라테스적 질문을 되살리기 위한 브레이크는 어디에?(조형근) 342
옮긴이의 말│21세기에 다시 묻는 인문학의 미래(박중서) 348
찾아보기 357
추천사
-
인문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공부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학생,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으나 분과학문과 대학의 관습이라는 벽에 부딪혀 혁신의 희망을 잃은 인문학자, 그리고 장사꾼이 개발한 인문학이라는 신종 비즈니스 아이템에 신물이 난 인문학 독자 모두에게 권한다. 신랄하지만 성찰적이고 예리하게 인문학의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고민하는 독서가, 서평가, 작가, 교수, 번역가, 심지어 편집자인 카우프만의 이 책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모르던 미래의 인문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터널 속에서 어떻게 써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던 나에게도 어느새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
대학의 기업화 추세 속에서 대학의 공공성이 부정되고, 대학, 지식인, 인문학의 존재 의미가 쇠퇴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학령인구의 감소라는 인구학적 충격까지 겹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1970년대 미국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카우프만의 진단이, 지금 한국에서 한층 심각하고 복합적인 각도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이유다.
책 속으로
또 한 가지 문제는 1970년대에야 대두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위협적이다. 인문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젊은이들이 교사로서 일자리를 찾기가 갑자기 거의 불가능해진 것이다. 여기에는 주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1940년대의 출생률 급증이(즉 베이비 붐이) 지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1960년대 내내 이루어진 단과 대학과 종합 대학의 급속한 성장이 갑작스레 중단되고 말았다. 한때는 교사가 부족했기 때문에 훌륭한 대학원생이라면 박사 학위 과정을 다 마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높은 봉급을 주겠다는 초빙 제안을 받았지만, 그 시기가 지나자 새로운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둘째로 지난 사반세기 동안 워낙 많은 자리가 (종신 재직권을 부여하는 교수 직위도 포함해서) 젊은 사람들로 채워졌기 때문에, 은퇴로 생기는 빈자리가 드물어졌기 때문이다.(11)
이른바 지식이란 그 자체로 보상이라는 둥, 그리고 진리가 이끄는 곳 어디든지 따라간다는 둥 상투적 표현은 자칫 우선순위라는 중대한 질문을 무시해버리고 만다. 지식이라고 해서 항상 동등한 보상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미국 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사람의 비서의 아버지에 관한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몇 년을 허비하라며 학생과 교수를 독려하지 않는다.(이제는 일부 학자가 실제로 연구하고 있지 않을 법한 주제의 사례를 생각해내는 것도 더 이상 쉽지 않은 지경이다.)(16)
1930년대에 독일 대학은 순수 전문가주의의 도덕적 파산의 완벽한 패러다임이 되었다. 당시의 주도적인 독일 현학자 상당수는 사회의 믿음과 도덕과 정치에 대해 질문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어쨌거나 그것은 그들의 직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봉급을 받는 이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현학자들인 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교육을 덜 받은 동료 시민들보다 오히려 더 무비판적으로 나치 국가의 새로운 믿음과 도덕과 정치에 열광했다.(60)
미국에서 그 전환점은 2차 대전 이후 매카시 시대와 겹쳤는데, 그 시기에는 합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위험하게 되었다. 따라서 점점 더 학술적이 되는 편이 오히려 더 안전해졌다. 슬픈 이야기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소심한 타협주의자였다. 그중 상당수는 학교가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안전과 아울러 보호된 환경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굳이 가르치는 일을 택했다. 공부를 마치고 나서도 학교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72)
대부분의 학교들은 자기네 학생을 ‘선별하려’ 했고 이를 위해 경쟁시험을 이용했다. 그리하여 신속하게 전체 교육 시스템이 변화했다. 새로운 교사가 다수 필요해졌으며, 교직원의 채용과 승진에 어느 때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이 갑자기 관여되었다. 수많은 사람에 대한 신속한 가치 평가를 돕기 위해 모든 층위에서 정량 측정이 필요해졌다. 따라서 시험과 간행이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해졌다.(255~256)
미국에서는 국립과학재단의 설립과 아울러 교수들에게 연구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국방부의 결정이 이런 경향에 추진력을 더해주었다. 보조금을 받은 과학자들은 더 많은 수입과 위신을 얻었으며, 심지어 인문학 교수들도(특히 철학에서) 인문학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과학적으로 보이는 프로젝트를 제안할 경우에는 국립과학재단이나 국방부의 보조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금세 발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젊은 학자들 가운데 명석하고 진취적인 이들이 인문학에서 사라지게 되었다.(260)
선견자는 외톨이다. 자기 시대의 상식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이들은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고, 자신의 선견을 상술하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한다. 이들은 대개 기존 언어가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종종 심각한 의사소통의 문제를 직면한다.
반면 현학자는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고, 자기네 엄밀성과 전문가주의에 자부심을 가지며, 자기네 합의나 공통적인 ‘요령’에 크게 의존한다. 이들은 보통 동시대의 선견자에게 적대적이며, 특히 자기 분야의 선견자를 그렇게 대하는 반면 과거의 일부 선견자를 오히려 신봉한다.(25)
인문학 분야의 수많은 교수와 학생들은 ‘과학’을 모범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누적적 진보에 대한 실증주의적 믿음을 여전히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괴테는 자신의 과학적 발견이 시인으로서 자신의 작품과 완전히 다르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양쪽 모두 선견과 관계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괴테가 고안했던 과학사란 과학을 인간의 맥락에 놓았기 때문이었다.(32)
현학자 간의 합의는 학파마다 현저히 다르지만 대개는 불관용적이게 마련이다. 규칙이 지속적으로 의문시되면 게임에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학자가 들어가서 다양한 퍼즐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전체 틀을 의문시하는 사람이 바로 선견자다. 또는 아인슈타인의 비유를 좀 더 발전시켜 설명하자면, 덩굴 식물이 기어올라 번성하는 나무를 베어 넘어트리기 위해서 미리 표시하는 사람이 바로 선견자다.(38)
소크라테스는 현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외톨이였고, 당대의 상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자신의 선견을 상술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선견자가 되지 않는 것을, 그리고 사실상 반(反)현학자가 되는 것을 핵심으로 삼았다. 그는 당대의 믿음과 도덕을 검토했고, 합의에 대한 무비판적인 의존에 근거한 지식의 주장을 조롱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지어 가장 유명한 교사들, 정치인들, 대중적 예언자들도 포함해서) 얼마나 무지하고 혼미하고 잘 속는지를 보여주려 애썼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세 번째 유형을 체화한다.’(43)
‘언론인을 네 번째 유형으로’ 정의하는 것은 유용할 수도 있다. 문자적 의미대로 이해할 경우 언론인은 당일치기로, 즉 즉각적 소비를 위해 글을 쓴다. 자신의 상품은 내일이면 김이 빠져버릴 것이기 때문에, 지금 팔리지 않으면 결코 팔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언론인에게는 방대한 연구를 위한 시간이 없고, 현학자의 엄밀함 선호 취향이 없다.(44)
힐튼 호텔에 머물면서 단지 창밖을 내다보기만 하는, 또는 공항에서 그곳까지 오는 도중에 충분히 구경했다고 자처하는 여행자라면, 실제로는 이렇게 멀리까지 여행을 무릅쓸 만한 가치까지는 없었다고 서슴없이 장담할 것이다. 그는 항상 전적으로 잘못된 뭔가를 발견할 것이며, 종종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우월한 기술을 보유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문화 충격을 회피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에서 끝나버린다면 이국적인 장소를 찾아가고 진정으로 다른 문화를 방문하는 여행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태도로 플라톤을 읽어보았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104)
우리가 읽는 저자를 향한 또 다른 태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고, 저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약간의 지력을 갖고 있고, 저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는 공통의 추구에 참여함으로써, 그리하여 너로서의 텍스트의 목소리에 직면함으로써, 몇몇 오류를 초월하려 시도할 것이다.’ 앞서 말한 주해적, 독단적, 불가지론적 접근법과 비교해서 이 네 번째 접근법을 지칭하는 한 마디가 있다면 유용할 듯하다. 약간의 불안도 없지는 않지만, 나는 이를 ‘변증법적(dialectical)’ 접근법이라고 부를 것이다.(107~108)
우리는 반드시 텍스트가 우리에게 말을 걸도록 허락해야 하며, 텍스트의 남다른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고, 그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와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려 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텍스트가 우리에게 도전을 제기하도록, 충격을 주도록, 거스르도록 허락해야 한다.(113)
저자와 독자와는 별개로, 서평에는 두 가지 핵심 인물이 관여한다. 바로 편집자와 서평가다. 편집자의 역할은 중대하다. 편집자는 자기네 지면에 어떤 책 서평을 할 것인지, 누가 할 것인지, 얼마나 걸릴 것인지, 언제 게재할 것인지, 얼마나 두드러지게 게재할 것인지를 결정한다.(145)
학생들이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된 번역은 원래 작품에 관한 논의의 토대로서 기능하도록 설계되어야 마땅하다. 즉 저자의 어조와 의미, 남다른 목소리를 포착하려 노력해야 한다. 번역자의 주된 임무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번역자가 화려한 문체를 무디고 지루한 표현으로 바꿔놓는다거나 저자가 말하지 않은 내용을 말하도록 만든다면, 번역자는 저자에게 제대로 봉사하지 못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포크너 같은 어려운 저자라든지, 또는 『피네건의 경야』 같은 수수께끼 같은 작품을 마치 신문처럼 읽을 수 있는 손쉽고도 진부하고도 언론인다운 산문으로 바꿔놓을 경우, 번역자는 독자를 오도하는 셈이다.(157)
『톰 소여의 모험』은 분명히 고전이지만, 만약 윌슨의 말이 사실이라면 편집자들이 작업한 것 대부분이야말로 사소하고도 불필요한 것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윌슨에 따르면, 편집 과정에서 열두 명 이상이 동원되어 『톰 소여의 모험』을 뒤에서부터 읽어나갔는데, 그래야만 그 책의 의미나 문체에 의해 정신이 산란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폴리 이모(Aunt Polly)’가 어디서는 대문자 A로 시작되고 어디서는 소문자 a로 시작되는지 그리고 의성어 ‘슈욱(ssst)’의 s가 어디서는 세 개이고 어디서는 네 개인지를 결정해야 했다.(172~173)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이 워낙 중요하거나 여러 판본의 차이가 워낙 중요하므로 학생들이 상이점을 고려하지 않고 텍
출판사 서평
인문학과 대학 교육에 미래는 있는가?
2020년대에 다시 읽는 현대의 고전
지난해 한 대선 후보가 지방 국립대를 찾은 자리에서 ‘인문학이라는 것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을, 대학 교육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관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대학은 기업에서 쓰일 인력을 생산하는 곳이므로 인문학보다는 ‘실용적인’ 전공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대두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0년을 전후하여 본격화된 대학의 인문학 전공 통폐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더불어 대학 구조조정이 논의되면서 가장 먼저 타깃이 된 것도 인문학이었다. 전통적인 인문학, 즉 문사철 학과들은 좀 더 실용적이라고 여겨지는, 학생들을 모집하기 용이한 길고 낯선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 이런 흐름과 더불어 인문학의 ‘쓸모’에 관한 논의도 등장했다. 인문학의 존재 가치를 그 실용적 쓰임새에서 찾으려는 흐름인데, 이를테면 ‘인문학적 경영’이나 ‘비즈니스 인문학’ 등의 트렌드가 그것이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동안 오프라인 강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그간 쌓여온 고등교육 시스템의 문제가 전면화되기도 했다. ‘수백만 원짜리 인강’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며 대학 교육 무용론이 대두된 것이다.
이런 총체적인 인문학의 위기, 대학의 위기 상황에서 ‘인문학의 미래’라는 제목의 책을 펼치는 것은 새삼스럽다. 미국의 학자 월터 카우프만은 『인문학의 미래』에서 1970년대 당시 미국 대학의 현실과 인문학 교육에 관해 날카롭게 진단하고, 인문학자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부터 인문학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까지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철학자, 교수, 번역가, 서평가, 편집자, 시인 등 다양한 이력으로 활동한 카우프만은 단순히 추상적인 논의에 그치지 않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제 학술, 출판, 교육 영역에 밀착해 있는 논의를 전개한다.
『인문학의 미래』는 한국에도 세 번째로 소개가 되는 책이다. 1998년, 2011년에 번역되어 학계 안팎에서 널리 읽혔던 이 책을 전면 새롭게 번역하여 다시 펴냈다. 1970년대 미국 상황에 바탕해 쓰인 책이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도 대단히 동시대적인 논의로 읽힌다. ‘정량 측정’이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고, 학술적 진보는 자연과학 모델에 의존하고, 대학은 자율성을 잃고 기업과 자본에 종속되어가던 당시 미국 학계의 상황이, 바로 지금 한국의 고등교육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인문학을 왜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가?
인문학자가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
카우프만이 이 책에서 겨냥하는 일차적인 독자이자 변화를 촉구하는 대상은 ‘인문학자’, 인문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 인문대학의 교수들과 행정가들이다. “인문학이 표류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인문학 분야의 사람들은 목표에 대해서 거의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며, 카우프만은 인문학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짚는다. 첫째,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업적의 보전과 육성을 위해, 둘째, 목표를 숙고하고 대안에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 셋째, 선견(vision)을 가르치기 위해, 넷째, 비판적인 정신을 육성하기 위해. 『인문학의 미래』는 이 네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고심하고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가에 관한 신랄한 비판이자 상세한 안내다.
카우프만은 먼저 “네 가지 종류의 정신”, 즉 인문학자의 네 가지 유형을 분류함으로써 논의의 기초를 다진다. 선견자, 현학자, 언론인, 소크라테스 유형이 그것이다. 선견자란 말 그대로 선견(vision)을 보유한 인물로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시대를 앞서 나가기 때문에 종종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현학자는 ‘현미경주의’를 그 특징으로 하는, 중세 스콜라 철학자와 유사한 유형이다. 이들은 엄밀함을 강조하지만 자칫 사소함에 매몰될 수 있다. 언론인은 즉각적 소비를 위한 글을 쓰며, 이들은 그 특성상 엄밀한 검토나 연구와 거리가 멀다.(카우프만은 한나 아렌트가 이런 언론인 유형에 속한다고 비판한다.) 소크라테스 유형은 그 유일무이한 사례이자 모범인 소크라테스에서 볼 수 있듯 기존의 합의와 믿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가장 필요한 존재인 동시에 가장 희귀한 존재다.
카우프만은 이 유형들 모두 각각의 필요와 장점을 갖는다고 보았지만, 현대 대학 현장에서 주로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이 현학자 유형으로 채워지면서 선견자와 소크라테스 유형이 설 자리를 잃게 됐다고 비판한다. 이런 경향은 카우프만이 짚는 미국 대학 교육의 위기를 가져온 두 가지 계기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첫째, 2차 대전 이후 대학이 팽창하면서 선별을 위한 경쟁시험이 일반화되고 정량 측정의 시대가 도래했다. 둘째, 1957년 스푸트니크 충격이 실증주의의 확산을 가져오며 모든 학술적 진보가 자연과학 모델에 의존하게 됐다. 이런 상황들은 현미경주의에 대한 천착을, 지나친 전문화로 인한 지식의 분절을 가져왔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연구중심대학-산학협력모델’ 시스템 아래의 인문학자들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독서에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할까?
서평가, 번역가, 편집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윤리는?
인문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책을 읽는 일, 그리고 책을(지식을) 선별하여 소개하는 일이다. 카우프만은 네 가지 읽기, 즉 주해적 읽기, 독단적 읽기, 불가지론적 읽기, 변증법적 읽기의 특징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맥락적으로 텍스트를 파악하는, 저자의 전체 작품과 저자가 속한 역사적 배경 안에서 텍스트를 읽어낼 수 있는 변증법적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문학의 미래』는 사회 안에서 지식을 유통하는 역할을 하는, 저자와 독자 사이에 끼어 있는 ‘중개상’인 서평가, 번역가, 편집자에게도 자신의 일을 견주어볼 수 있는 윤리를 제시한다. 현대의 독자는 서평, 번역, 편집에 크게 의존한다. 그렇기에 무엇을 간행물에 실을 것인가, 어떤 텍스트에 관해 다룰 것인가, 무엇을 번역하고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카우프만은 식별 능력을 갖추지 못한 편집자, 학파의 성향에 따라 편중되는 지면 등이 가져오는 서평의 문제를 살펴본다. 그리고 저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포착해야 하는 번역자의 의무, 그 과정에서 상실되는 원문에 관해 독자들에게 설명을 제공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도 논한다. 특히 번역서에서 이런 정보들을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지에 관해 상세하게 살펴본 대목은 학술서 번역과 편집의 교본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다. 또 비판적으로 선별하지 않고 저자의 모든 작품을 전집으로 담는 식의 출간 방식을 비판하며 편집 과정에서 갖추어야 할 식별 능력에 관해 설명한다. 이런 인문학의 중개상들, 편집자와 번역가는 자신들이 어떤 지식을 독자들에게 왜 소개하는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지식을 보전하고 육성하는 인문학의 책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해야 한다.
선견은 가르칠 수 있는가?
학제 간 연구 커리큘럼의 제안
『인문학의 미래』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는 카우프만이 제시하는 한 학기 분량의 수업 커리큘럼이다. 카우프만은 지나치게 분절되고 전문화된 대학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주요 주제로 다루는 강의를 통해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카우프만은 ‘형벌’이라는 문제를 놓고 한 학기의 수업을 구축하자고 말한다. 이 통합 강의에는 철학, 종교, 고전학과의 그리스 비극, 러시아 소설, 정치 이론과 심리학과 사회학과 인류학, 법학 등 여러 분야의 교수들과 문헌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더해 학생들이 직접 재판을 방청하고, 관련 예술 작품으로 강의를 보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가 예시하는 또 다른 주제는 ‘죽어감’이다. 이 역시 다양한 학문 분과에서 필수로 다루어지는 주제다. 이 강의에서 괴테와 릴케 등이 쓴 죽음과 관련된 시, 케테 콜비츠와 같은 예술가의 작품을 과학과 의학의 문제와 밀접하게 다룸으로써 죽어감이라는 문제를 숙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학제 간 연구를 통해 학생들은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고, 주제를 다각도에서 살펴보고, 현실 문제와의 관련성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카우프만이 이런 제안들을 통해 달성하려 하는 것은 앞서 살펴본 인문학의 목적, 즉 선견을 가르치고 비판적인 정신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인문학자와 학생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법, 사회제도, 의학 등 여러 분야에 인문학의 선견과 비판 정신이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협력과 기여를 기피할 때 인문학에 미래가 있을지 의심스럽다며, 인문학은 “진지한 문제들에 대해서 더 나은 이해를 얻도록, 그리하여 우리가 더 인간적이 되도록” 도울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기본정보
ISBN | 9791192107844 ( 1192107845 ) |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2월 18일 | ||
쪽수 | 372쪽 | ||
크기 |
138 * 226
* 28
mm
/ 608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Future of the Humanities/Hughes, James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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