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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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야 할 지 조언 좀.
작가는 이런 삶에 답까진 아니더라도 인생의 다양한 길을 책을 통해 읽어 준다. 노년의 섹스, 순수한 예술에 대한 사랑, 나는 누구로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까지. 살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고민은 이미 남들도 했던 고민이라는 사실! 심지어 수많은 작가도 같은 고민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읽다 보면 당연한 건 없다지만 어떻게 살면 좋을 지 조금 생각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짠 맛, 단 맛, 쓴 맛, 오묘한 맛을 경험하고 생각하는 작가의 개성 있는 문체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의무, 역할, 사랑, 가족, 여성, 남성처럼 한 단어로 명료하게 정의되어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의 규칙은 과연 누가 정하며, 누구를, 혹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무엇이 진정 나 자신을 위한 걸까? 계속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져야만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을 수 있음을 나는 새삼 느꼈다. 설령 안내된 포장도로 대신에 맨발로 자갈길을 밟게 된다 해도, 그것은 내가 찾은 나의 길일 터였다.
-들어가는 말 중에서
작가정보
어린 시절부터 지존 급 몸치인 탓에 자연스레 책과 가장 친하게 지냈다. 집에 있는 세계 문학 전집을 독파하며 문학 소녀의 꿈을 키우다 우연히 접한 칼 세이건의 책 『코스모스』로 "머릿속에 별이 켜지는 경험"을 하며 열두 번을 읽기도 했다. 결국 장래 꿈도 과학자로 바뀌어 지금은 물리학자로 살고 있다. 하지만 책덕후 본성은 여전해서 문학 작품은 늘 끼고 산다.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하는 글쓰기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에는 인류세와 에코바디』, 『인공지능이 사회를 만나면』의 공저자로 참여했다. 이 책에서는 1%(미만)의 과학과 99%의 문학에서 끌어낸 다채로운 인생 물정 이야기와 작가의 솔직과감한 자기 고백을 실었다.
목차
- 제 1 부. 사랑이 정말 이런 건줄 알았더라면
1. 페미니스트지만 섹스는 하고 싶어
에리카 종 『비행공포』 - 16
2. 포도는 발효되면 포도주가 되는데, 사랑은 발효되면 무엇이 될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 32
3. 찰나의 사랑, 칼끝의 행복필립 로스 『죽어가는 짐승』 - 54
4. 사랑은 달콤한 환희 속에서 파멸하는 것?
산도르 마라이 『결혼의 변화』&『열정』 - 66
5. 나의성적취향은어느부위?
다니자키 준이치로 『미친 노인의 일기』 - 78
제 2 부. 고독하고 은밀한 몸의 속사정
1. 연애를 책으로만 배웠을 때 벌어지는 참사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 90
2. 21세기 안나 카레니나는 어떤 모습일까?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하우스프라우』 - 102
3. 비낭만적 사랑과 사회
미셸 우엘벡 『투쟁 영역의 확장』 &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 118
4. 몸으로 살아가는 괴로움록산 게이 『헝거』 - 134
5. ‘내가 생각하는 나’는 과연 나 그대로일까?
주나 반스 『나이트우드』 - 150
제 3 부. 어쨌든 우리는 행복을 갈망한다
1.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그리고 쾌락의 묘약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 『금지된 섬』 - 176
2. 러셀 선생님, 우린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 194
3. 더 나은 세상을 꿈꿀 권리마지 피어시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 208
4. 좆브라냐 젖브라냐, 그것이 문제로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이갈리아의 딸들』 - 224
제 4 부. 깨달음은 늘 한 박자 늦지만
1. 인간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에리카 종 『죽음의 공포』 & 필립 로스 『에브리맨』 - 238
2.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 260
3. 단 한 번, 그리고 웃픈 블랙 코미디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276
4. 내 속엔 나도 모르는 내가 아직도 많아루크 라인하트 『다이스맨』 - 288
책 속으로
『비행공포』를 한 줄 요약하자면 아마 이 문장이 되리라. "페미니스트지만 섹스는 하고 싶어." 눈치채셨듯 몇 해 전 베스트셀러 제목 패러디다. 혹은 "보지와 굶주림과 머리의 굶주림 사랑의 평화를 유지하는 법에 관한 고민 기록서"라 해도 좋겠다. 과연 무슨 수로 여성의 욕망과 사랑, 독립적인 삶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1973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지속되는 고민 말이다. 미국 성해방 운동을 이끌었던 68혁명 세대 페미니스트 작가는 이사도라의 목소리를 빌어 고백한다.
"나는 평생 페미니스트로 살았다. (중략) 그러나 문제는, 페미니즘의 구호들과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남자 몸에 대한 갈망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였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페미니스트지만 섹스는 하고 싶어〉, 에리카 종 『비행공포』, 28쪽〉.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는 처음 만난지 무려 53년 만에, 드디어 첫 섹스 기회를 맞았다. 게다가 낭만적이게도 선상의 로맨스다. 과연 어떤 자세로? 어떻게? 나는 궁금해서 책을 열심히 넘겼다.
"죽었소."
아, 그랬다. 그랬던 것이었다. 80대의 섹스란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아무런 힘도 없는 그의 육체를 비아냥거리는 애무로 자극하기 시작했고, 그는 수난을 견디지 못하고 선실로 돌아가 버렸다. (중략) 새벽까지 그를 생각하던 그녀는 마침내 그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는다." 우와, 프로렌티노는 진정한 선수였다! 계획된 발기부전이라니!
(〈포도는 발효되면 포도주가 되는데, 사랑은 발효되면 무엇이 될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43쪽〉.
책 마지막에서 러셀은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불행은 의식이 분열되거나 통합을 이루지 못한 데서 생긴다.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자아 내부에 분열이 생기고, 객관적인 관심과 사랑의 힘에 의해 자아와 사회가 결합되어 있지 않으면 자아와 사회는 통합될 수 없다. 행복한 사람은 자아의 내적인 통합이나 자아와 사회가 이루는 통합의 실패로 고통받지 않는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의 인격은 분열되어 있지 않으며, 세상에 대항하여 맞서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 먹고살 만한데도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사회가 요구하는 자아와 내가 욕망하는 자아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러셀 선샌님, 우린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204쪽〉.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 봐요.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내게는 이 질문이 이 소설을 통틀어 가장 가슴 깊이 박히고 또 기억되는 문장이다. 아프다. 많이 아프다. 예술 지망자에게 이보다 더 잔혹한 질문이 또 있을까? 모든 것을 버리고 선택한 예술가의 길에서 수십 년 애쓴 끝에 도달한 결론이 "고작 이런 수준이라니. 나는 재능이 없었어"일 수도 있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270쪽〉.
기본정보
ISBN | 9791191651003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4월 26일 |
쪽수 | 312쪽 |
크기 |
127 * 188
* 24
mm
/ 405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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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야' 이 책은 담백한 표지와 편안한 제목으로 봐서 가벼운 수필인가 했었다. 그런데 웬걸 내용은 단단하게 꽉찬 서평 덩어리였다. 부담없이 쉬면서 읽으려고 출발했는데 끝나고 나니 실컷 공부를 한 느낌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다양하고 가벼운 에피소드로 잠깐씩 빠져나갔다 들어오는 기회에 아무튼 힘든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읽지 않았던 책들이 잘 소개되어 있어서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그런 책들을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장들도 좋고 아주 균형이 잘 잡혀있다는 생각이다.
간편하지만 마음이 뿌듯한 브런치를 준비하며 그에 맞게 고른 책.
브런치를 만들 땐 욕심이 많다. 소세지도 넣고, 빵도 굽고, 이왕이면 건강에 좋다는 셀러드도 찾아 넣는다. 이 책도 그렇다. 다양한 좋은 책을 알기에 좋고, 작가의 글을 읽는 재미가 있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늦은 오후에 일어나 기지개 펴며 펼친 책은 기분 좋게 덮을 수 있었다. 만족한 브런치 식사였고 만족한 독서였다.
<제1부. 사랑이 정말 이런 건줄 알았더라면>
책을 읽는건 내가 아직 가 보지 못한 삶을 간접 체험 하는 것라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책을 참 많이 읽어야 한다. 아직 까지 사랑 한 번 제대로 하지 못 한 나는 아무래도 간접 체험을 통해 남들보다 뒤쳐진 연애 스킬을 키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1부엔 여러 모양의 사랑이 담겼다. <비행공포>, <콜레라 시대의 사랑>, <죽어가는 짐슴>, <결혼의 변화>, <미친 노인의 일기>에서 각국 작가가 보여주는 여러 사랑의 모습을 보면 나도 정말 이 책의 작가처럼 긴 한 숨 끝에 한 마디를 뱉게 된다.
"정말 아무것도 당연한 게 없구나."
내 성적 취향은 뭘까? 글쎄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다. 노인이 되면 어떤 사랑을 해야 할까. 아직 내겐 까마득히 멀다고 생각되는 그 날의 사랑에 대해 상상해보는 것은 내가 지금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로 이어졌다.
리뷰 글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내 생각을 하기 전에 먼저 남의 생각을 들어 버리는 것은 좋지 않다는 개인적인 호불호다. 그렇지만 이 책은 좋다. 좋은 책을 소개해주며 이게 왜 좋은 책인지 슬며시 알려준다. 누군가가 그랬다. 과학자의 글이라 그렇다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음... 이건 이런 느낌이군..."정도로 말하는 느낌이라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과학자가 쓰는 책 리뷰는 어떤 느낌일까. 그것이 궁금하다면 한 번 펼쳐보면 좋다. 정말 좋다.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더 책을 찾아 읽고 싶어지는 충동이 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