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은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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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197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했다. 1998년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로 데뷔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해로가」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낙서문학사』 『처음의 아해들』 『놀러 가자고요』 『성공한 사람』, 중편소설 『71년생 다인이』 『죽음의 한일전』, 청소년소설 『처음 연애』 『착한 대화』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 장편소설 『야살쟁이록』 『율려낙원국』 『군대 이야기』 『첫경험』 『똥개 행진곡』 『왕자 이우』 『별의별』 『조선통신사』, 산문집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 『웃어라, 내 얼굴』, 기타 『광장시장 이야기』 『따져 읽는 호랑이 이야기』 등이 있다.
목차
- 당신이 떠나기 전에
육칠월 해로가
팔구월, 고추 따다가
시월 다사다난
동지섣달 소 보듯
정이월에 떠나는
삼사월 코로나
오월, 풀도 살아보겠다고
작가의 말
추천사
-
나는 김종광 소설의 오랜 독자다. 내가 이해하기에 그는 삶을 들이쉬어 소설로 내쉬는 소설가다. 도무지 소설이 될 수 없으리라 여겨지는 평범한 사연조차 비범한 이야기로 뒤바꿔버리는 연금술사이기도 하다. 이 소설 역시 그가 들려주는 처연하게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돌아보면 그의 소설은 언제나 아름다웠으니 새삼스러울 리 없건만 어느 때보다 가슴이 저렸다. 그러니까 나는 결코 쓸 수 없고 흉내낼 수도 없는 소설임을 알아버렸다. 부끄러운 일인데도 부끄럽지 않은 까닭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위로를 받아서다. 연금술사의 마지막 과업이 스스로 순금이 되는 것이듯 김종광은 삶과 하나가 되어 마침내 스스로 소설이 되었다. 그가 보여준 경지가 바로 이렇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사실은 내게 유례없는 행운이다.
책 속으로
공책을 때때로 사진첩 바라보듯 했다. 글자가 과거를 비추었다. 측은한 기억들이 짠했다. _8~9쪽
기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듬해 봄에는 매년 그러했듯이 남편이 못자리하고, 논을 갈고, 모내기 조수를 하고, 모 땜빵을 할 것임을. 남편은 농사꾼이니까. ‘농민의 자존심’을 지켜야 하니까. _50쪽
이렇게 당신 무덤에 와서 인사부터 하지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이 무덤 속인가요? 오서성님네 불당인가요?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내가 모르는 어디겠지요. 당신 몸은 무덤에 있는데, 당신 위패는 한참 떨어진 절에 있고, 꿈속의 당신은 어디 있는 게요? 어디에 있든 좋으니 좀 자주 와요. _68~69쪽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서러워요. 당신 장례식 때 내가 수백 번 들은 말이 뭔지 아세요?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밥 먹으라는 말이었어요.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이기도 하지요. 애들이고 조카고 밥 먹으라고 닦달했어요. 나는 안 먹어도 안 고픈데 자식들이 안 먹는 건 못 견디겠더라고요. 당신이 죽었는데 밥이 넘어가나요. 넘어가데요.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밥이 슬그머니 넘어가데요. _69쪽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왜 나보다 먼저 갑니까. 갔어도 내가 먼저 가야 했는데. 아뇨, 잘 갔어요. 나 먼저 가고 영감 혼자 어떻게 살았겠어요. 나니까 혼자 살았던 거예요. 혼자 살아갈 거고요. _78~79쪽
하지만 계속 걱정이다. 이젠 안다. 자식 걱정은 죽는 날까지 끝날 수 없다는 것을. 그 걱정을 혼자 한다, 혼자. 남편과 함께 해야 걱정하는 재미라도 있는데, 혼자 하니 아무 재미가 없다. _178쪽
실제 기억인지 지어낸 기억인지 어렴풋하지만, 연극이 끝나갈 때쯤 남편이 기분의 손을 꼭 잡으며 속삭였다. (…) 여보,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아무래도 남편이 그랬을 리가 없어. 엉터리 기억 아니면 꿈속의 일 같아. _273쪽
키가 작은 것도 내 탓, 아픈 것도 내 탓. 부족한 엄마는 원망투성이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은 게 아닌데, 나도 하고 싶은 일, 꿈이 있던 젊음이 있었다. 늙고 병들고 망가진 모습, 나 자신도 싫다. _281쪽
출판사 서평
“자네나 나나 오늘 또 하루를 살았구먼.
살아야지, 악착같이 살아야지, 달리 어쩌겠나.”
농촌의 이야기를 채집해온 작가 김종광
면민 실록의 문을 열다!
“고대로의 시골을 이야기에 담고팠다. 시골 자체를 쓰는 소수 정예 작가들의 기록 곳간에 보태지기를 바란다. 시골에 대한 ‘소수 의견’도 뭉치면 ‘소중한,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 즉 실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_「작가의 말」에서
『산 사람은 살지』는 1998년 등단 이래 23년간 작품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김종광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그동안 농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써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애정과 관심을 원 없이 뿜어내며 ‘고대로의 시골’을 구현해냈다. 티브이 속 잠시 머물다 가는 꾸며진 시골이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서의 시골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김종광표 ‘시골소설’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김종광 소설은 현실에서 ‘루저’나 ‘늙은이’로 낙인찍혀 밀려난 사람들끼리 모인 ‘잉여(剩餘) 현실’에도 복잡하게 생동하는 삶이 있다는 것을 ‘충청도 개그맨의 시선’으로 그려낸다.”라는 동인문학상 심사평처럼 이번 소설 역시 70대 시골 토박이 여인의 생동하는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특유의 위트 있는 문체로 이야기의 무게중심을 잡았다.
시골장편소설 시리즈 ‘면민 실록’의 첫걸음
『산 사람은 살지』는 충남 안녕시 육경면 역경리에 사는 김동창ㆍ이기분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주로 기분이 2010년부터 기록한 일기와 상부(喪夫)하고 2019~2020년을 살아가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기분이 과거에 쓴 일기를 2019년과 2020년에 들춰 보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현재를 짚어본다. 이 일기는 실제로 홀로 남으신 작가의 어머니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더욱 현실적이다.
작가는 시골의 핍진성에 유독 공을 들였는데 그것은 “텔레비전의 시골은 ‘연출된(왜곡하고 조작한)’ 시골”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작품 속 시골은 도시인이 잠시 머물며 그 정취를 만끽하고 농사에 실패하더라도 허허 웃어넘기는 그런 공간이 아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시골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산다는 상상을 해본 적 없고, 나중에 죽어 묻힐 자리까지 봐두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특히 실감나는 충청도 사투리가 작품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그래서 진짜로 가고 싶은 규, 안 가고 싶은 규?”
“잘 모르겄어야. 별로 가고 싶진 않은디 해놓은 말이 있어서.”
“그럼 목욕이나 가셔유. 목욕하시고 저희랑 점심이나 드셔유.”
“따져대면 어쩐다냐?”
“까먹었다고 하슈. 잘 까먹으시잖유.”
에라 모르겠다. 작은애 차 타고 내뺐다. _243쪽
2020년까지 기분이 겪었던 사건들과 그에 대응하는 기분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이토록 평범한 사람도 수많은 풍파를 겪으며 살았고 결국 악착같이 오늘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 세상에 평범한 사람이란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작가에게 모든 인물은 기록해야 할 특별한 대상이다. 동창은 8남매 중 막내이고 이 작품에는 8남매와 그 배우자들, 조카들, 동네 사람들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육경면에 살고 있는 사람들, 즉 면민의 이야기는 『산 사람은 살지』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네 부모님 이야기
“이젠 안다. 자식 걱정은 죽는 날까지 끝날 수 없다는 것을.”
『산 사람은 살지』는 2019년 5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월별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농가에서는 달마다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농사일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파악한다. 시골이라 하면 평상에 한적하게 앉아 있는 노인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소설 속 시골은 도시 못지않게 바쁘다. 과거에는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현재에는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끊임없이 농사일을 하는 기분 부부의 모습에서 자식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부모는 자식을 걱정하고, 자식은 부모를 걱정하는 모습은 여러 매체 속 흔한 장면이지만 작가가 구축한 촘촘한 역경리의 모습 덕에 현실적인 감동으로 다가온다.
기분은 조카네 과수원에서 일하고 온 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사과 하나 잘못 땄다고 그르케 지청구허면 내 체면이 뭐가 되냐. 그래도 내가 지 작은어머닌데 동네 사람 앞에서 학교 선생처럼 따박따박 훈계를 해대니, 아이구 창피해.”
“안 가시면 될 거 아닙니까. 그런 소리 들으면서 왜 가셔요?”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가만히 있으면 돈이 나오냐?” _172~173쪽
‘그럼에도’ 산 사람은 살지
이 작품에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기분은 몸이 약해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자살을 세 번이나 시도했고, 50년 동안 동고동락한 남편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부고가 온다. 70대인 기분 주변에는 죽음과 병과 요양병원이라는 우울한 단어들이 가득하지만, 읽는 사람은 오히려 삶을 생각하게 된다. 온몸이 성한 데가 없고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나이인 기분도 오월의 풀처럼 일어나 오늘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고 역경리에 혼자 남게 된 기분에게 사람들이 걱정 어린 말을 건네자, 기분은 낙천적이고 어딘가 느긋한 말투로 이렇게 답한다. “산 사람은 살지 뭐가 걱정이냐.”
기분은 또 남편 무덤의 풀을 뽑아댔다. 풀들도 살아보겠다고 저리 악착을 떠는데 산 사람이 못 살겠나. 살 것이다. 힘껏 살 것이다. _332쪽
기본정보
ISBN | 9791191278873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1월 29일 |
쪽수 | 336쪽 |
크기 |
132 * 201
* 25
mm
/ 386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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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은 살지>는 몇 해 전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으신 어머니를 위해 집필한 8편의 연작소설이라고 한다. 우리들의 부모님 또는 조부모님 세대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분이 종종 써온 일기가 <산 사람은 살지> 라는 책이 되었다. 평생을 광부, 농부로 고달프게 살아온 남편이 식도암으로 먼저 떠난 후 홀로 남겨진 오지랖댁(기분)이 살아온 날들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남겨진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셔서 전쟁도 겪으시고, 고된 농사일로 고생만 하시다가 떠나신 할아버지, 할아버지 생각을 하실때마다 눈물 흘리시며 계속 살아가시는 할머니.
몇 십년을 함께한 배우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매번 느끼면서도 산 사람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 인생인가보다.
‘술만 마시고 식사를 안해도 남편이 살아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사무쳤다. 남편은 동반자였고 친구였고 뒷배였고 지킴이였고 그 모든 것이었다. 남편은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이었고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다.’(p.126)
‘추수가 끝난 들판, 볼수록 남편이 그립다. 우리는 왜 그리 아등바등 살았을까. 소 먹이는 짚 거두려고 가으내 겨우내 뒹굴던 논바닥. 기왕지사라지만 , 이가 부득부득 갈린다. 그렇게 살 필요가 없었다.’ (p.188)
‘풀들도 살아보겠다고 저리 악착을 떠는데 산 사람이 못 살겠나. 살 것이다. 힘껏 살 것이다.’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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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남편이 숨 놓는 순간을 보지 못했다. 자식 한 놈 지켜보지 않는데, 50년을 부비고 산 아내도 곁에 없는데, 어쩌자고 그냥 갔나.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갈 수 있나. 허망하네, 참 허망하네요. 기분의 울음소리가 온 동네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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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7 <육칠월 해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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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전까지 아내분은 10분에 한 번씩 남편을 살펴보았는데, 갑작스레 남편이 회관청소를 가라고 했다. 마치 곧 죽음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렇게 아내가 회관청소를 다녀오니, 남편의 코에서 흘러나온 피냄새와 함께 죽음을 목격했다. 전부터 죽을 때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던 남편은 아내에게 좋지 못한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마지막 배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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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은 산다는 건, 너무 마음 아픈 말이다. 생사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이 인생은 때때로 정말 잃을 게 없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 그럼에도 우린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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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의 삶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이 책을 읽고, 그 시대와 이야기들을 부모님과 함께 나누어봐도 좋을 것 같다. 부모님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과 과거의 힘들었던 시기들을 물어보면서, 어떤 삶을 사셨는지 이제 우리가 조금이나마 얄심히 살아오신 두 분을 위로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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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세대를 이해하고 싶고, 함께 소통을 하고 싶다면 더 추천하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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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설령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 시대에는 당연했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이고 그 세대와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부모님보다는 조부모님 세대라 세대차가 나서 공감할 수 없다고 덮어두었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기분이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닌 기분 자체일 수 있게 되었던 전환점은 수식어가 붙는 역할에서 완전히 분리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에서 나왔다.
어떤 계절,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오롯이 나와 내가 연결되어 있는 가족의 의미와 관계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나의 관점에서의 상대방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가면으로 살지 않고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솔직한 화법으로 마주하니 내가 봤던 책들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라서 더 특별하고 재미있었다.
부모님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사랑하는 마음을 책으로 담은 작가님의 마음이 참 따뜻하게 여겨졌다.
그래, 산 사람은 살지.
��✨��✨��
p.332 당신 큰누님마저 돌아가셨답니다. 수원 큰애네 부부가 마스크 쓰고 문상 다녀왔어요. 작은애랑 사위는 여기 장지로 오실 때 간대요. 저는, 안 갈래요. (중략) 기분은 또 남편 무덤의 풀을 뽑아댔다. 풀들도 살아보겠다고 저리 악착을 떠는데 산 사람이 못 살겠나. 살 것이다. 힘껏 살 것이다.
��✨��✨��
작가 어머니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그 자체로 시골 풍경을 담고 있으며, 홀로 남은 노모의 처지와 마음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남편을 보낸 뒤 혼자 남은 노모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몸은 나날이 늙어가고 자식들은 그런 노모를 걱정한다. 하지만 노모를 향한 자식들의 걱정은 자식은 향한 노모의 걱정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노모는 그렇게, 자신의 일기를 뒤적이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
노모의 세계는 나의 세계와 다르다. 그렇기에 때론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내가, 노모보다 몇 십 년은 늦게 태어난 내가 노모의 세계를 알기 위해선 먼저 그의 삶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책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소설은 그러한 과정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한국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좋은 것이기도 하고 씁쓸한 것이기도 하며, 어쩔 수 없는 마음이기도 하다.
p.281.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은 게 아닌데, 나도 하고 싶은 일, 꿈이 있던 젊음이 있었다. 늙고 병들고 망가진 모습, 나 자신도 싫다.
나이 들어 늙어가는 모습은 천양지차다. 누구나 맞는 죽음이지만 그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도 모두가 다르다. 하지만 모두가 늙고 죽는다는 것은 같다. 살아온 날들이 남은 날보다 적은 한 노인의 삶을 <산 사람은 살지>를 통해 엿보았다. 작가 김종광은 이 소설이 시골장편소설 시리즈'면민 실록' 의 첫걸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의 배경은 시골 마을이다. 주인공은 70대 기분 할머니이다. 그런데 기분이 사는 마을 이름이 '안녕시 육경면 역경리' 이다. 역경. 우리 사회 노년들 특히 할머니들의 삶은 역경 그 자체였을 것이다. 기분 할머니도 힘겨운 삶을 살았다.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며 오늘을 산다.
p.7. 터 기(基) 가루 분(粉), 기분은 뜸하게 글을 썼다.
소설의 첫 문장이 알려주듯이 이야기는 기분의 기록으로 시작한다. 60 이 넘은 나이에 매일은 아니지만 일기처럼 일상을 담은 기분의 기록이 이야기의 큰 흐름이다. 또 다른 흐름은 기분의 꿈속에 찾아오는 남편, 시누이 그리고 동서들이다. 그들은 기분을 찾아와 그들이 살아온 날들을 하소연하며 기분은 오래 건강하게 살라고 말한다. 꿈속에서 만나는 이들은 죽은 이들도 있고 살아있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살아오던 기분에게 큰 상심이 생긴다. 남편의 죽음. 살았을 때 따뜻한 말 한마디 안 해주던 사람이었지만 옆에 있을 때 몰랐던 무언지 모를 감정들이 기분을 혼란스럽게 한다.
기분의 삶은 힘들고 또 고달팠다. 농사 일하고 손위 동서들 눈치 보고 엄한 남편 시중들며 그렇게 노년을 맞았다. 그런데 기분은 선천적으로 약했고 병을 달고 살았고 병원비가 만만치 않게 들었다. 그래서 돈을 모을 여력도 없었고 그렇게 근근이 힘든 노동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효심이 남다른 삼남매가 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기분을 지켜주던 남편의 자리를 대신하는 자식들의 효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분이 늘 걱정하며 안쓰러워하는 자식 사랑이 더 큰 까닭에 자식들의 이야기는 부수적인 것이 된다. 남편에 대한 기분의 사랑과 자식에 대한 기분의 사랑이 아름답게 담겨있는 책이다.
언제부터인가 늙고 병든 노년의 삶은 요양원에서 끝을 맺는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도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하고 만다. 하지만 기분은 아직은 고향 집에 머물고 있다. 이야기의 말미에 기분은 남편의 산소를 찾아 큰 시누이의 부고를 알리며 이제 살아있는 사람은 자신과 요양병원에 있는 동서뿐이라고 말한다. 지치고 병든 노년의 삶이 얼마나 힘들지 아직은 모르지만 이제 곧 우리에게도 닥쳐올 것이다. 어린아이를 돌보던 어머니를 아이가 컸다고 서로 모시지 않게다고 서로 등 떠미는 자식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슬펐다. 아팠다.
가난 때문에 교육 기회를 잃어버리고 먹고살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던 분들의 노년이 너무나 초라하고 쓸쓸하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자식의 행복을 위해 여관방을 전전하는 노년의 이야기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기분의 기록과 꿈을 통해 만나본 노년의 삶은 쓸쓸하고 힘겹다. 또 고단하다. 이제는 조금 덜하지만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친 우리 부모님들의 삶이 안타깝게 마무리되지 않도록 조금 더 부모님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p.332. 살 것이다. 힘껏 살 것이다.
안타깝고 가슴 시린 이야기는 마지막 문장으로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해준다. 누구보다 힘겨운, 고달픈, 아픈 삶을 살아온 70대의 기분 할머니도 삶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데 우리 젊은이들도 삶을 조금도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다. 삶을, 어른을 대하는 자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교유서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산 사람은 살지』
ϻ김종광(지음) | 교유서가(펴냄)
그렇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목숨이 붙어있는 한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등단 후 청소년 소설에서 성인소설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김종광 님의 소설. 그중 시골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눈에 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 시골에 계신 친척도 없어서 방학에도 딱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만나는 친구들. 방학 내내 시골에서 지냈다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작품 속 인물 이기분 여사님. 어딘가 낯설지 않다. 70년대를 살아낸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 시골의 정취가 묻어있다. 긔절을 살아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집 온 지 1년 만에 시아버지 대소변은 물론 어린 시동생, 시누이 빨래까지 해야했다고 한다. 남편에게 맞고도 신고는커녕 가정폭력이 당연한 시절의 이야기. 시어머니 시집살이며, 동서들의 간섭에 말 한마디 못하는 여자 이기분 씨. 책을 펼치자마자 그녀의 삶으로 쓰윽 미끄러져 들어갔다.
충청도 사투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매력적인 이기분 씨. 책은 수십년 전 쓴 이기분 씨의 일기속으로 그녀의 삶을 더듬어본다. 이기분.... 이기분... 나는 자꾸만 이분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언제 오롯이 자신의 이름을 불려봤겠는가? 그녀들의 아버지는 이름을 함부로 지었다. 밑에 동생은 아들을 낳으라고 지은 이름들. 이름 속에 자기 자신이 아니라 미래의 남동생 터를 터주는 이름들 아닌가? 결혼하자마자 ○○댁, ○○이 엄마로 살아간 무명의 여자들, 그녀들이 모두 우리들의 엄마다.
ϻ편견의 시대, 남녀 차별의 시대, 그 모진 세월을 살면서도 이기분 씨는 문학을 아는 여자였다. 놀라웠다. 이 분의 일기는 얼마나 생생한지! 냄새, 소리, 촉감이 다 전해지는 일기를 본 적이 있는가?
버려야겠다. 이제 그만 목숨을 놓아버려야겠다며 물로 뛰어들었던 기분 씨. 희한한 일이지. 남편은 처음으로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기분아! 기분아!......."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 장면이 두고두고 생각하고 왜 이렇게 슬픈지.... 물에서 끌어낸 기분 씨에게 문중의 남자들은 침이라도 뱉을 기세다. 소문나면 이 동네 쪽팔려 못 산다며 다들 쉬쉬하는 김 씨 문중 남자들.
평생 무뚝뚝했던 남편. 그 마지막 임종의 순간을 못 본 기분씨. 혼자 죽어간 남편을 떠올리며 울던 기분씨. 먼저 간 남편이 남겨준 돈은 돈 그 이상이었다. 이 장면에서 많은 독자들이 울었을 것이다. 든든한 기둥이었던 아들도 성장해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다... 충청남도 안녕시 육경면 역경리 토박이 여인 이기분 님. 당신의 기억 곳간에서 꺼낸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교유서가 서포터즈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역경리에 사는 기분 씨-
나이 22살에 시집와 평생 아픈 몸을 이끌고 3남매를 낳고 살았다.
몸 전체 성한 데가 없는지라 자살기도를 할 정도 힘들게 살아왔지만 남편의 욱하는 성질 참아가며 자식들 번듯하게 키워 이제는 좀 괜찮겠거니 했건만 남편이 식도암에 걸렸다.
가난한 살림에 가장으로서 탄광과 농사일을 병행해가며 살아온 남편이자 노인회장이란 타이틀은 결국 남편 성화에 못 이겨 마을회관 청소를 하러 간 사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야 만다.
사람이 든 자리는 잘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듯이 불같은 성미를 둔 남편이 무서워 제 감정조차 표현하지 못하고 살던 기분 씨는 자신의 아픈 병 때문에 약 값과 병원행을 하며 살아온 미안함은 남편이 자식들에게 눈치 보지 말라며 꿍쳐 모아둔 돈을 발견하고 더욱 복잡한 감정이 복받친다.
간간이 자신이 쓴 일기를 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글들 속에서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어릴 때는 어리다는 이유로 걱정, 장성하고는 혼인이 안돼 걱정, 당신의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른 채 더 늙어가면 자식들에게 폐 끼칠까 봐 운동하며 살아가는 하루의 일들, 아프더라도 요양원에 가기 싫다는 생각들을 그린 감정선들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는 남편이 미웠지만 정작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이도 남편이었고 자식들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말도 알아주는 이도 남편이었으니 그가 끝까지 남기고 간 집안 곳곳 흔적이 어찌 쉽게 잊힐 수 있을까?
- 술만 마시고 식사를 안 해도 남편이 살아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사무쳤다. 남편은 동반자였고 친구였고 뒷배였고 지킴이였고 그 모든 것이었다. 남편은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첩첩 동서들 시댁 살이, 하나둘씩 부고 소식이 들려오는 지인들의 소식들, 그래도 여전히 계절은 돌아오고 밭이며 논이며 감자, 고추, 깨 농사를 해야만 하는 농촌의 일상들을 그린 작품 속 내용들은 부모 당신들도 힘들고 병을 앓고 있어도 함께 늙어가는 자식 걱정에 노상 걱정을 붙들어 두고 사는 모습들이 마음속 한편에 찡함이 올라온다.
-이제 안다 자식 걱정은 죽는 날까지 끝날 수 없다는 것을. 그 걱정을 혼자 한다. 남편과 함께 해야 걱정하는 재미라도 있는데, 혼자 하니 아무 재미가 없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인생 뭐 있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게 되는, 아등바등 살다 간 남편에 대한 원망과 아련함이 전해오는 글들은 저자의 8편 속에 담긴 글을 통해 소설 같지 않은 우리들의 삶을 보는 듯했다.
자신이 쓴 글을 통해 다시 삶의 의욕을 되찾는 기분 씨는 욕심내지 말고 긍정적으로 살자고, 현실에 만족과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고 생각하는 부분이 글 곳곳에 공감하며 읽은 문장들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긴다.
-끌탕 말아요. 나는 사는 날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암만~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그게 인생 아닌감유....
중간중간 충청도의 느긋한 사투리를 통해 간간이 터지는 유머와 해학을 통해 단짠의 맛을 느껴보게 한 작품, 다음 작품에선 어떤 울림을 줄지 기대가 된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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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병이든 짐승병이든 전염병 돌면 자식들 보기가 어려워진다. 자식들도 알아서 안 내려오지만 부모 처지에서도 내려오라는 말을 못한다. 먹고사는 걱정만 없으면 아무 걱정도 없는 시대가 될 줄 알았는데, 전염병 걱정으로 해가 뜨고 지는 시대라니. 살 만큼 산 사람들이야 뭐가 걱정인가. 더 살아야 할 젊은이들이 안타깝다.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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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시아버지 치매가 오시더니 치매 판정 받으시고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자기와 아들이 힘들까봐 급하게 가신거라며 많이 힘들어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많이 힘들어하셔 근처로 모시고와 자주보며 지내고 있는 시점에 읽게된 산 사람은 살지. 주인공인 기분 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 시어머니 모습이 보인다. 늘 자식 걱정인 우리 시어머니가 읽는 내내 생각났다.
70.80대 어머님들의 삶이 녹아 있는 책을 통해 부모님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더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책의 마지막 "끌탕 말아요. 나는 사는 날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문장이 긴 여운을 남긴다. 죽지못해 산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산 사람은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있는 삶의 다른 걱정들을 안으며 또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