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밥: 미음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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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보다 환자가 훨씬 더 용기 있는 사람이야.”
6년 만에 출간하는 산문집 『병원의 밥 : 미음의 마음』 역시 병원에서의 단상이 모여 있다. 평소 중환자를 살피고 외래 진료와 수술 스케줄로 눈코 뜰 새 없는 그이지만, 언제나 짬을 내어 기록하고 복기하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아온 노력의 결과다. 이번에 모인 글에 주목할 것이 있다면, 병원에서의 음식을 중심에 두었다는 점이다. 1부에서는 의사 자신의 ‘병원의 밥’을 모았고, 2부에서는 환자들의 ‘병원의 밥’을 묶었다. 여기에는 ‘카페인’이 들어간 커피 음료, 혹은 담배와 같은 ‘기호품’까지 폭넓게 적용된다. (물론 병원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들이다.)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이지만 오히려 너무 일상적이어서 때를 놓치기도 일쑤인 ‘밥’도 병원 안에서는 한 끼 한 끼 소중하며 저마다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이 책의 시리즈 (25)
작가정보
목차
- 프롤로그 병원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 나의 )
병원의 밤은 길고 밥은 없다
오늘 밤은 잠을 자고 싶지 않네요
불가능 작전 1
불가능 작전 2
차이니스 레스토랑 신드롬을 아시나요
할 수 있는 일을 했지만
용기 있는 사람
처음이자 마지막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기대와 예상은 언제나 다르다
취향의 숲
달콤한 것들은 모두 녹아내려
밥이라도 먹을까? 우리
( 환자의 )
이건 정말 맛이 없어요
매일매일이 이렇게 힘든 거야
미음의 마음
가장 맛있게 밥을 먹는 사람
몰래의 의미
마음이 모이고 모이면
개와 늑대의 시간
겨울 딸기는 슬프다
좋지 않다, 정말
봄꽃처럼 환하게
퇴원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
에필로그 돌아오는 길은 항상 가는 길보다 길지 않아
추천사
-
원래는 따뜻했을, 차갑게 식은 음식을 먹으며 의사 선생님은 생각에 잠긴다. 환자 생각, 수술 생각, 학창 시절의 기억…. 환자든 보호자든 의사든 병원에 왔던 모든 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평안한 마음이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기록들. "나도 예전에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사람이었어."라고 말씀하셨다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그 환자를 처음 만나 상담했던 10년 전 얼굴을 순간 함께 떠올린 작가의 아득함도.
책 속으로
본과 3학년 내과 수업 시간. 그날도 나는 짜장면으로 점심을 먹고 강의실에 앉아 졸고 있었다. 그러다 잠결에 들리는 교수님의 말에 나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차이니스 레스토랑 신드롬.”
중국음식처럼 조미료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어지럽고 무력감을 호소하는 증상이 특징인 증후군. “물론 논란이 있지만 이런 병이 있다고도 합니다….” 시험에는 절대 안 나올 것이라며 농담처럼 단 한 줄의 설명만 하셨는데, 그 말은 나의 뇌리에 박혔다. 드디어 짜장면과 나의 불화의 원인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중국음식점에 가면 당당하게 말했다. 차이니스 레스토랑 신드롬 때문에 짜장면을 먹을 수 없다고.
45-46쪽 차이니스 레스토랑 신드롬을 아시나요 중에서
책을 다 읽은 날부터 나는 문어와 낙지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대단한 철학이나 심오한 논리보다는, 나의 뇌 한쪽에서 이들을 음식으로 인식하지 않기 시작했다. 마치 촛불이나 식탁, 신발을 보면서 맛있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문어와 낙지를 보아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낙지와 문어를 식재료가 아닌 생명체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85-86쪽 취향의 숲 중에서
수술실 출입문 밖 복도에는 환자를 들여보내고 공허감에 두리번거리는 보호자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 속에서 훌쩍거리는 누나와 여동생이 보였고, 한구석에 작아져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나는 가족들 곁으로 다가갔다.
“밥이라도 먹을까? 우리.”
약간 넋이 나간 채 수술실에서 나온 나를 본 아버지의 말이었다. 아무도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우리는 밥이라도 먹기로 했다. 엄마가 수술을 위해 들어간 아침 8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103쪽 밥이라도 먹을까? 우리 중에서
“병원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콧줄을 끼고 있어. 이것으로 밥을 먹고 물을 마시지. 힘들었지?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야. 환자는 매일매일이 이렇게 힘든 거야.”
환자는 매일매일 힘든 거야. 이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모두 숙연해졌다. 우리는 레빈 튜브를 빼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아무도 농담을 하지 않았다.
121쪽 매일매일이 이렇게 힘든 거야 중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여러 이유로 미음을 먹는다. 환자들은 대체로 미음을 싫어한다. 맛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나는 환자들에게 천천히 끝까지 드셔보시라고 말씀드린다. 미음을 먹고, 죽을 먹고, 밥을 먹다 보면, 밥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분명 올 것이다.
많은 환자들이 퇴원할 때쯤 이런 말을 한다. “처음에는 미음도 못 먹었는데….” 이제 입맛이 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나 시작이 있다. 미음은 건강한 미래를 향한 작은 시작이다. 미음의 마음은 환자들의 미래를 지켜주는 작은 용기다.
129쪽 미음의 마음 중에서
시간이 지나고 회복할 때가 되면, 전자레인지가 바빠진다. 환자식을 나눠 먹는 것으로는 보호자의 병원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보호자는 편의점에서 즉석밥을 사 온다. 다른 음식들도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친지들이 가져다준 다른 반찬거리도 그때서야 병실마다 있는 작은 냉장고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과일도 각종 간이식도 편의점에서 올라온다. 전자레인지 속에 음식을 넣고 '땡' 소리를 기다린다. 환자와 보호자가 각자의 밥을 먹기 시작하는 것, 반복되는 전자레인지의 '땡' 소리는 수술 환자의 퇴원할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신호다.
184-185쪽 퇴원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 중에서
출판사 서평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종합병원 흉부외과
의국에서 쌓여가는 ‘의사의 밥’
그 사연은 다름 아닌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환자든 보호자든 의료진이든, 지금 병원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 그것은 의사에게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마음이라서, 겨우 손에 든 커피 한 잔 따뜻할 때 마시지 못하고 책상에는 반쯤 먹다 만 삼각김밥 같은 것들이 뒹굴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곧 한 사람이라도 건강하게 병원을 떠날 수 있기를 염원하며 최선을 다 하는 마음이다.
의사도 언제나 의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머리를 삭발하고 수술장으로 들어간 어머니를 발 동동 구르며 기다리기도 하고, 생식을 금지 당한 아버지의 항암 치료 과정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눈물을 훔치기도 하며 영락없는 환자의 보호자가 되기도 했다. 여동생과 함께 엄마 몰래 떡볶이를 만들어 먹다가 설탕 대신 붕산을 넣는 바람에 그길로 입원해야 했던 어린 시절 웃지 못할 추억도 꺼내놓았다.
그런 개인적 경험에 덧붙여, 낙지나 문어와 같은 두족류를 먹지 않게 된 음식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은 같이 일하지 않는 비건 동료를 떠올리기도 하고, 전공의 시절 질리도록 먹었던 불어터지다 못해 딱딱하게 굳어버린 짜장면 등 의국 한켠에서 쌓여가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활자 위를 잔잔히 흐른다. 의료진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눈앞의 음식.”이라고 답할 만큼 치열한 곳이 병원이라서 물론 먹지 못한 끼니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고인이 된 환자의 영정을 앞에 두고 장례식장에서 먹었던 날카롭게 매운 육개장과 같은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이것은 드라마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병원 그 자체의 삶이자 인생이다. 전기톱으로 가슴뼈를 열고, 망가진 심장 판막을 고치고, 터진 대동맥을 잇는 일. 흉부외과 전문의의 하루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미음에서 죽으로, 죽에서 밥으로,
회복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환자의 밥’
병원에서의 ‘미음’은 곧 회복의 시작을 뜻한다. 환자가 수술이 끝나면 며칠간 금식이 이어지다가 가장 먼저 먹는 것이 미음이기 때문이다. 비릿하고 아무 맛도 나지 않지만 미음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나아가 곧 죽을 먹고, 또 밥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뜻한다. 그러다 보면 퇴원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병원의 밥에는 미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 내 식당 조리실에서는 매일 다양한 환자의 경우의 수를 일일이 고려한 환자식이 준비된다. 콧줄을 통해 제공받는 유동식, 저염식, 특정 성분을 제외한 특수식 등등 환자 개개인의 상태와 예후를 고려하여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병실로 배식되어온 하얀 식판을 받아든 대부분의 환자는 짜거나 싱겁거나 맛이 없다고 한다.
투병중인 환자가 조금이라도 기력을 차릴까 싶은 기대로 면발까지 직접 뽑아 정성껏 만든 냉면 한 그릇, 수술 후 금식하는 남편이 안타까워 집에서 몰래 쑤어다 먹인 호박죽, 그들이 먹은 것은 ‘음식’이 아닌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에는 죄가 없다.
이 책에는 병원에서 각자에게 허락된 혹은 허락되지 않은 ‘밥’들의 나열을 통해 병원에서의 긴박하기도 하고 때로는 평온하기도 한 일상을 짧은 다큐멘터리처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여기에는 의료진과 환자의 생생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이 먹어야 힘을 내지.” 어느 보호자의 말씀처럼, 우리는 절망스러운 순간에도 먹어야 힘을 낼 수 있다. ‘밥심’으로 어려움도 헤쳐갈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 예고 없이 아플 수 있고,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전혀 없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환자든, 보호자든, 의료진이든 병원에 온 모든 사람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지금과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의료진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그들의 헌신적인 노고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며, 모든 생명은 귀하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부디 이들을 포함한 누구나의 건강하고 안전하고 평온한 일상이 유지되기를 바라며.
기본정보
ISBN | 9791191187441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9월 15일 | ||
쪽수 | 196쪽 | ||
크기 |
116 * 181
* 14
mm
/ 184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띵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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