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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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과 그림자의 시선
‘말들의 흐름’ 시리즈, 여덟 번째 에세이『농담과 그림자』의 작가 김민영은 공장 노동자서부터 선생님까지 직업에 따라 시선을 달리하면서, 독자들이 처한 현실과 닮은 지점에서 농담을 건네고 있다. 당신을 웃기려는 농담도 아니고, 구태의연한 말장난도 아니다. 당신이 속한 현재를 용인하면서 그것을 긍정도 부정도 아닌 시선으로 머물게 한다. 그렇게 냉소에 가까워지려는 농담으로, 모두가 공통으로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지루함을 견뎌내게 한다.『농담과 그림자』는 삶의 지침서가 아니다. 이 책은 곧 당신이 맞이하게 될 심심함 끝에 생각나는 술친구처럼 머무른다. 혹은 한밤중에 전화를 해도 혼내지 않을 친구처럼 머무른다. 당신은 여기서 일말의 불안들, 회사에 대한, 생활에 대한, 연애에 대한, 속내를 애써 감출 필요가 없다.
“오염된 언어. 조금 더 지루한 사람이 되고 싶다.” _본문 중에서
마치, 그의 농담은 밀란 쿤데라의『농담』에 나오는 “모두 끝났다. 공부, 운동에 동참하는 것, 일, 우정, 모두, 사랑도,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에서 더는 가망성을 찾지 않는 루드비크의 절규처럼, 모든 품위를 끝낸 자의 체념 끝에서 수행된다. 다시, 이것들을 복귀해 내기 위한 성급함이 아닌, 제자리의 심심함에 머물러도 좋을 농담을 해내고 있다.
어쩌면, 당신이 연애를 하면서 다른 대상을 갈구해내는 때가 오듯이, 더 나은 직업도, 더 나은 역할도 모두 불만의 다른 표면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사적이면서 현실적인 외관을 하고 있으면서, 인내의 공동체를 이루려는 곁눈질 역시 하고 있다. 어쨌든 살아가야 하는 당위성에 봉착한 당신은 원하지 않는 현재를 감내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곁눈질했다가, 다시 곁눈질을 거두기를 반복하면서, 이 책은 모두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위무한다.
그러나 각자가 인내하는 내용은 다를 것이다. 공장 노동자, 록키드, 연애를 유지하는 자, 선생님까지, 당신은 저자의 역할을 따라다니면서, 계층의 고단함으로부터, 계층이 편평해지는 불가결한 농담을 찾게 된다. 이 책은 농담을 통해, 소시민이 처한 부조리를 계층에 따라, 더한 것에서 덜한 것으로 이동해 옴으로써 농담의 내면을 착실히 관찰하고 있다.
당신의 과거사부터,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의 형편까지, 어떤 농담을 해왔는지, 그것의 쓸모가 모두를 환호시키지 않는 것에 동참하게 된다. 여기에는, 지나간 슬로건이 있으며, 통속적인 노래가 있으며, 군중의 기억이 있으며, 농담이 시시해진 연인이 있으며, 레코드를 사 모으던 시절이 있으며, 막연한 질문을 받는 선생님이 있으며, 표정을 끝낸 인부가 있다. 이것은 모두의 기억에 조금씩 묻어 있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기억의 끝에서 옅은 물비린내가 났다.”_본문 중에서
결국, 농담은 슬픈 것, 빠져나온 것, 망각된 것과 어울린다. 퇴근 시간의 회색 담장과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 루머와 죽어가는 자들 속에, 자전거가 덜어내는 풍경 속에, 전염병과 ‘말들의 사태’ 속에, 무결해 보이는 숲속에, 섬광이 파고드는 빈 교실에, 희고 빳빳한 병원 시트 위에, 농담은 일꾼의 농담이었다가, 구경꾼의 농담이었다가, 산책자의 농담이었다가, 제 몸을 감각하는 사람의 것이 된다.
그래서 당신은『농담과 그림자』를 아무 데나 펼쳐도 좋다. 당신은 농담과 그림자 사이에 있다. 저자의 농담에 맞장구쳐도 좋고 무심해도 좋다. 당신이 이 삶을 버거워 할 때쯤, 이 책을 펼치면 된다. 그리고 머리맡에 놓아두면 된다. 농담의 잔상이 당신의 주변을 맴돈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불평할 곳 없는 피로를 달래기 위해 농담을 사용할 것이다. 당신은 조금 홀가분하게 일상을 맞이할 것이다. 당신의 소요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목차
- 공단일기
연애와 농담
서로의 날들
백색 섬광
반복과 일상의 숭고미
위악에 관하여
Wata & Frusciante
심수봉과 서정?
비자나무 숲과 810
몸의 생경함?
돌아온다는 것?
책 속으로
맹렬했던 추위가 점차 누그러질 때쯤 나는 퇴사했다. 마지막 날 쉬는 시간에도 나는 골목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 공장의 콘크리트 담장을 바라보며 곧 돌아가게 될 학교의 언덕을 떠올렸다. 집에서 서울의 학교까지는 버스와 지하철과 또다시 버스를 거치는 두 시간 반 거리였는데, 길고 지루한 통학 시간보다 교정과 강의실에서 보내야 했던 시간들이 나에겐 더 어려웠다. 강의를 듣고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선배들이 따라준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말이 끊어지는 빈자리마다 표정을 잃었고 불현듯 넓어진 세상의 이질감을 낯설어했다._ 20쪽
농담은 서로를 가깝게 만들기도,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농담의 본질은 거리에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사람과 상황 사이의 거리. 각자가 가진 마음의 모서리에 서로 긁히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또는 조금 더 윤활한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서로를 매끄럽게 매만지는 거리. 물론 그 거리는 장난 또 실없음으로 치부되는 농담의 가벼운 속성으로부터 기인한다. _29쪽
일상은 단단한 것이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타인의 아침이 막연하고 낯설 만큼, 각자의 일상이란 견고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작은 균열 하나에 쉽게 무너지는 것이기도 하다. 별다른 일 없이 반복되는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너무나 단단해서 연약할 수밖에 없는 일상을 흔들림 없이 지키는 일은 그래서 필사적이고 절박한 일이다. 일단 쳇바퀴에 올라탄 이상 쉬지 않고 달려야만 하고 그것이 쳇바퀴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일 뿐이다._65쪽
입 밖으로 꺼낸 말보다 속으로 감춘 말이 언제나 더 많다. 늘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는 무슨 말을 하지 않았는지가 항상 더 중요하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해지는 수많은 의미들.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저 말들이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는 어떤 지점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 말의 빈자리, 도넛의 구멍을 찾는 것. 곳곳에 감춰져 있는 말의 여백에 따라 우리가 뱉은 말은 진실이 되기도, 진실처럼 보이려 애쓰는 거짓이 되기도, 허울에 감춰진 욕망이 되기도 한다._77쪽
나에게 결여된 것. 결핍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없는 것, 내 안에 비어 있는 공간을 끊임없이 채우고자 욕망하는 것이 인간이며, 욕망은 삶의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선택들을 모아놓은 결과물은 결국 나의 삶 자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핍을 어떻게 대하는지의 문제는 곧 삶 전체를 어떻게 대하는지의 문제가 되고야 만다._128쪽
출판사 서평
■ ‘말들의 흐름’
열 권의 책으로 하는 끝말잇기 놀이입니다. 한 사람이 두 개의 낱말을 제시하면, 다음 사람은 앞사람의 두 번째 낱말을 이어받은 뒤, 또 다른 낱말을 새로 제시합니다. 하나의 낱말을 두 작가가 공유할 때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쓰여지지 않은 문학으로서 책과 책 사이에 존재하며, 오직 이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잠재합니다.1. 커피와 담배 / 정은2. 담배와 영화 / 금정연3. 영화와 시 / 정지돈4. 시와 산책 / 한정원5. 산책과 연애 / 유진목6. 연애와 술 / 김괜저7. 술과 농담 / 편혜영, 조해진, 김나영, 이주란, 한유주, 이장욱8. 농담과 그림자 / 김민영9. 그림자와 새벽 / 윤경희10. 새벽과 음악 / 이제니
기본정보
ISBN | 9791190999076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6월 15일 | ||
쪽수 | 132쪽 | ||
크기 |
126 * 206
* 15
mm
/ 162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말들의 흐름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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