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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언어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 비판
바리에테 신서 32
로베르트 팔러 저자(글) · 이은지 번역
b · 2021년 0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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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지키는 성숙한 언어”
?성인언어?는 로베르트 팔러(Robert Pfaller)의 Erwachsenensprache. ?ber ihr Verschwinden aus Politik und Kultur(2018)을 옮긴 책이다. 이 책은 거대한 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미시적 차이에 대한 관심으로 옮기는 데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팔러는 정체성 정치에 대해 “정체성 정치는 신자유주의다”라는 아돌프 리드의 말을 인용하고, “진보적인 평등 대신에 능력주의를 요구하며 ‘능력 있는’ 여성, 소수자성, 게이와 레즈비언의 부상을 지속적으로 꾀하는 신자유주의 정치”라는 낸시 프레이저의 말로 보충한다. 팔러는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시각을 가질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차라리 자신들의 과거, 출신, 혹은 지금 서 있는 지점으로 시선을 돌린다며 문화적, 인종적, 종교적, 성적 등등의 정체성을 부상시키는 정치에 숨은 모순과 역설을 서술한다.
정체성이 ‘나’의 모든 기분과 심적 상태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긍정하는 것이라면 ‘나’와 관계없는 모든 것은 견디지 못한다. 팔러는 심리적 차원에서 불쾌함을 참지 못하는, 이렇듯 겉보기에만 진보적인 전개는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나르시시즘으로서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보편적인 것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의 부재에 빠지고 타인을 괴물로 보며 사회의 공론을 형성하지 못하는 탈연대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는 자아가 나르시시즘적이 되는 것은 특정한 시대에서 특정한 사회적 실천과 제도가 낳은 효과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나르시시즘에서 유래한 정체성은 특정한 시대에서 만든 제도인 대중 교육,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에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성인언어?는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 비판’을 부제로 달고 이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책에서 팔러는 “정치적 올바름은 언어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상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그것이 특정한 시대에서 만든 제도인 만큼 탑다운 방식이며, 또 대중 교육인 만큼 그 언어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위생적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언어가 소위 ‘순수하고’ ‘순결한’ 단어들로 상부구조를 구축하는 경우 이 상부구조는 가장 잔혹한 현실을 은폐한다. 팔러는 이 사례를 미국의 CIA에서 찾아 보여준다. 인용하면, “예를 들어 CIA가 이른바 ‘물고문’과 같은 자신들의 고문 방식을 ‘강화된 심문 기술’로 표기하는 것은 어딘가 섬뜩한 방식으로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진실을 드러내 보인다.”
이 책에서 팔러는 정치적 올바름의 개념과 역사도 길게 설명하지만 강조하는 점은 이것의 사회적 실천이다. 즉 서구사회가 최근 수십 년간 현실에 대한 놀라운 맹목을 보여주고 있는 데에는 정치적 올바름이 기관, 위원회, 협회, 실행 방법, 양육 습관, 겉보기에 자명한 ‘아비투스’, 생생한 도덕 원칙, 유행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장치’ 속에 이데올로기로서 존재하여 실천되고 있음을 역설한다는 점이다.

?성인언어?는 정체성에 매몰된 채 투덜대는 여러 ‘나’가 성인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성숙’이라는 특정한 태도를 제안함으로써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팔러는 “수십 년 동안 사이비 정치가 사람들의 감수성을 고취함으로써 그들을 오히려 어린애로 만들어버린 데 대해 ‘성인언어’는 어린애처럼 좋은 생각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확보하여, 다른 사람이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성인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고려하는 언어에서의 성숙이다”라고 설명한다.

이 책의 총서 (13)

작가정보

저자(글) 로베르트 팔러

Robert Pfaller : 19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빈과 베를린에서 철학을 수학하였으며 시카고, 베를린, 취리히, 스트라스부르에서 문화학을, 린츠에서 문화이론을 가르쳤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빈 응용예술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린츠 예술대학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 [상호수동성](2000), [타인이라는 환상](2002), [어떻게 살 것인가](2011), [성인언어](2017) 등이 있다

번역 이은지

중앙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 독어독문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2014년 창비 신인평론상 수상으로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였으며 동료 비평가들과 〈요즘비평포럼〉을 운영 중이다. 한겨레 칼럼 〈2030 리스펙트〉, 〈2030 잠금해제〉에 연재하였으며 르몽드 웹진 〈르몽드 문화톡톡〉 코너의 필진으로 참여한 바 있다. 저서로는 [문화, on/off 일상](공저)이 있다

작가의 말

정체성 정치가 급부상하며 누군가의 정체성을 위해 대신 싸워주는 수많은 대행자들이 등장하지만 실제 당사자들의 안위에 기여하기보다는 그러한 대행 기관들을 만들어내고 소위 배운 이들의 밥그릇을 보전해주는 양상으로 흘러간다. 이는 책에서도 그렇고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정체성 정치가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둔갑한 상황은 다수의 사람들을 상호수동적으로 만들어 소외시키고, 이를 통해 먹고사는 소수의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오늘날 고등교육기관이 그러한 소수의 사람들의 양성소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은 심히 우려스럽다. 알량한 말장난이 대단한 정치적 실천이나 운동으로 변신하는 동안 실제로 물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바로 그러한 ‘운동’들의 활동 무대인 SNS의 이용량이 엄청나게 증가하였고, 이는 유무형의 수익으로 환산되어 누군가의 주머니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다. 서로를 향한 사적인 관심의 무수한 연결망이 특정 국가, 특정 기업, 특정 개인을 향한 부의 집중을 가속화하며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부의 불평등이 영속화하는 상황은 결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 저자는 이처럼 어린아이 같은 나르시시스트들이 날뛰고, 그런 개인들의 감수성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정치가 득세하며, 성숙한 시민으로서 연대할 수 있는 공론장이 파괴되는 양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한다. 문화 유형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을 참조하여 오늘날의 사회가 피해자의식의 문화 중심으로 재편되는 조건을 살펴보는가 하면, 니체의 원한 개념을 역사적,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하여 오늘날의 맥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하기도 하고, 종교마다 상이한 신의 형상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하여 나르시시즘적 자아의 구성 원리를 독해하기도 한다. -(<옮긴이 후기>에서)

목차

  • 서문 9
    1. 성인언어 13
    2. 실망시키는 실망한 자 73
    3. 하얀 거짓말, 검은 진실 81
    4. 타인은 어떻게 우리에게 괴물이 되는가 133
    5. 겸손함의 잘난 척하는 제스처 169
    6. 정체성의 수상한 보물 189
    7. 기만은 기만당하는 자들을 얻는다 215
    8. 아이 같은 신. 기저자아 231
    결론 243

    미주 249
    참고문헌 279
    옮긴이 후기 297
    찾아보기 302

책 속으로

이처럼 꼼짝없이 통제당하는 사회는 다중으로 분열하게 된다. 위임받은 계급은 생산성을 중시하는 기구에서 관료적인 기구로 분열된다. 차별받는 머나먼 이웃들을 향한 숭고한 도덕 감정과 그들로부터 차별의 높은 이익을 얻는 중산층은, 그러한 감정과 그에 속하는 경직된 학문적 은어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하층으로부터 분열된다. 피해자집단 및 이익집단은 다른 집단으로부터 분열된다. 평등을 위해 투쟁하거나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는 이들은 특혜를 요구하는 집단으로부터 분열된다. 이처럼 해방의 외양 아래 전혀 반대의 것이 실현된다. 연대뿐만 아니라 성숙함 또한 저지당한다. 평등을 향한 노력은 중요하지 않은 경미한 문제 영역으로 방향을 틀고, 정당한 분노는 곤혹스러울 만큼 정확한 언어규제로 인해 재갈이 물리거나 의기소침하게 된다. -(31쪽)

PC에 대한 강령적인 ‘성서’[정전]가 없다는 상황을 통해 PC가 이데올로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 이는 이데올로기의 존재 방식에 관한 매우 형편없는 오판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관념이나 문자로 존재하기보다는 기관, 위원회, 협회, 실행 방법, 양육 습관, 겉보기에 자명한 ‘아비투스’, 생생한 도덕 원칙, 유행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장치’ 속에 존재하니 말이다. 그리고 특권화된 서구사회는 최근 수십 년간 현실에 대한 놀라운 맹목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대학의 일자리 공고나 임용의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학자들은 예컨대 이주민들 사이의 범죄와 같은 특정한 소재에 대해 다뤄야 하는지를 놓고 스스로를 검열하거나 집단적으로 검열한다. -(49쪽)

정치적 올바름의 미국식 제안자들을 비롯하여 이와 유사한 이데올로기 프로그램(이에 대한 세계 도처의 협력자들을 포함하여)이 간과하는 것은 언어가 소위 ‘순수하고’ ‘순결한’ 단어들로 상부구조를 구축하는 경우이다. 심지어 이 상부구조는 가장 잔혹한 현실을 은폐함으로써 이를 통해 현실이 실현 가능하도록 작동한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들을 지속적으로 ‘실패한 국가’로 규정하고 끝없는 내전의 무대로 몰아넣고, 자국민을 지나치게 많이 감옥에 가둬놓으면서-심지어 그들은 정확한 표현으로 명명하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 대상들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단어에 관해서 민감하게 굴고 그 누구의 감정도 해치지 않으려고 신중을 기하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잔혹한 현실과 민감한 언어가 짝을 이뤄서 조화롭게 발맞춰 걷는다면, 그 맥락을 추론하고 섬세한 언어를 사용하는 정치인들을 공격하여, 그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게 분명한, 매우 섬세하게 은폐된 현실의 잔혹함을 들춰내는 것이 올바르지 않겠는가? 슬라보예 지젝이 친절하게 강조한 바에 따르면, 감수성 예민하고 위생적인 언어를 둘러싼 노력은 소수자 내지 사회적 약자 집단과 관련해서뿐만 아니라, 잔혹한 현실 자체에도 적용된다. -(〈3. 하얀 거짓말, 검은 진실〉, 125~126쪽)

성인이 삶에 통상적으로 따르는 불가피한 부가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을 요즘의 대다수 사람은 전적으로 피할 수 있는 경험으로 여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찮고 사소한 일로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그들에게는 적어도 ‘미세 차별’이거나, 충분히 피할 수 있는 폭력적인 상실의 경험을 반복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미세 차별을 감수해왔던 다른 사람들은 미세 차별이야말로 그러한 경험을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거대한 행복’의 상실은 정신분석의 견해에 따르면 불가피하게 직면할 수밖에 없는, 따라서 비역사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을 연민하고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마저 똑같이 비역사적이지는 않다. 이에 대해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보여주었듯이 특별히 부합하는 시대가 있다. 특정한 집단적, 문화적 핸디캡은 개인으로 하여금 원한의 태도를 갖도록 자극하거나 그러한 태도를 강화시킬 수 있다. -(133~134쪽)

소위 정체성을 둘러싼 포스트모더니즘적 투쟁은 이러한 관점에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치 전략으로 이해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고 이 정체성에 스스로를 맞추도록 독려한다. 그것을 넘어서는 모든 것, 즉 개인을 사적인 관심과 친숙하고 인종적인 연결이나 성적인 제약을 갖는 사람을 넘어서, 세계시민, 시민 혹은 귀부인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개인들은 전혀 요구해서는 안 된다. 모든 보편주의는 그들에게 낯선 것이 된다. 고유의 뿌리와 문화적 출신 조건과의 모든 비판적 불화 또한 낯선 것이 된다. 슬라보예 지젝은 이에 대해 적확하게 설명하기를, 오늘날 혁명적 연대의 모토는 ‘차이를 인정하자!’가 아니다. 그에 따르면 문제는 “문화의 동맹이 아니라, 문화의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투쟁의 동맹, 모든 문화의 내부에서 정체성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그것을 억압하는 존재에 맞서 싸우는 것 간의 동맹이다.” 우리가 우리의 무언가를 위해 싸워야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멍청한 정체성의 특수성이 아니라, 이 정체성을 비판적으로 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체성과 결별하는 자리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 보편성이어야 한다. 이 보편성은 같은 투쟁을 하는 다른 이들과 우리가 연대하도록 해준다. -(197~198쪽)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시리즈명, 원서(번역서)명/저자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89898571
발행(출시)일자 2021년 08월 20일
쪽수 303쪽
크기
152 * 224 * 20 mm / 448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바리에테 신서
원서(번역서)명/저자명 Erwachsenensprache/Pfaller, Ro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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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가 너무 심하게 pc 주의에 심취되어 보게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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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정치, 공론장 무너뜨리는 사이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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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의 무언가를 위해 싸워야만 한다면, 그것은 (...) 정체성(...)이 아니라, (...) 보편성이어야 한다. 이 보편성은 (...) 우리가 연대하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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