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바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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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진 시인의 ‘시는 죽었다’는 선언의 배경에는 현학적이고 지나치게 요설적이어서 소통이 되지 않는 작금의 난해시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한편 시는 죽었다는 역설입니다. 니체와 마찬가지로 이여진 시인은 시의 절대적 가치와 역할을 아직도 믿고 싶으며 그 주체인 시인이 ‘죽어버린’ 상실의 시대에도 그러한 자긍심을 잃지 말자는 주장인 것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습니다. 허무는 이 시집 전반에 흐르는 정서입니다. 허무는 곧 인생무상(無常)하다는 탄식으로 이어집니다. 무상은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여 똑같지 않음을 의미하는 불교의 근본 교리입니다.
작가정보
해송海松
전남 해남군 화원면에서 출생하여 여섯 살 때 목포로 이사, 초, 중, 고를 졸업하고 병역을 필한 후에 공직생활을 했다.
월간 〈문예사조〉에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하여 문학생활을 시작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와 안양문인협회에서 열정적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공무원 퇴직 후 거주지인 안양의 복지관, 노인대학 등에서 〈한글교실〉〈문예교실〉등 강의를 하며 시니어 명예복지사로 봉사활동 중이다.
제 1시집 〈혼돈의 세월, 못 다한 노래〉
제 2시집 〈별의 연가〉
제 3시집 〈저 눈물 강 건너〉
제 4시집 〈너도 꽃 이었구나〉
*인터넷 카페〈너도 꽃 이었구나〉
[http://cafe.daum.net/jjyj077]
목차
- 작가의 말...이여진
시해설...박희주
시(詩)는 죽었다
스치는 바람이라!
제 1 부
시(詩)는 죽었다
화개살(華盖煞)
시인의 노래
당사주
인생 좌판
인생 도리짓고땡
두더지 게임
시詩는 죽었다
사주 팔자
소멸
부고[訃告]
선(線)
수술
구멍
염 (殮)
영여 (靈輿)
어째야 쓰겄냐
역마살
죽 떠먹은 자리
첫 키스
포만의 허탈
레테의 강 1
레테의 강 2
레테의 강 3
제 2 부
줄은 있어야 돼야
줄은 있어야 돼야
세월(마검포 밤 낚시)
담배
보름달
겨울 밤
바람1
바람 2
재개발
이명(耳鳴)1
이명(耳鳴)2
저승 꽃
인공 눈물
낮 달
옛 생각
결실
봄 달
호원의 봄
그 사람
사랑이 진실일까
로또 복권
제 3 부
망향(望鄕)
祝 손자 탄생
단절
낚시
옛 주막
부정의 손
그 바람은 오지 않는다
우유 골 창 외딴집
향수(鄕愁)
북항(北港)
숭어
어머니와 달(용서)
첫 눈
안단네 막걸리 집
애인(愛人)
타향 같은 고향 밤
고향 산
옛 집에서
봄 밤
원 점
눈 보라
제 4부
애송(愛誦)
행운사 가는길에
당신별
들 꽃
아내는
낙엽의 노래
가는 님
북항(北港)에서
해운대 밤바다
찾게 되거든
별의 연가
유달산
혼자 가려네
메아리
산사(山寺)의 밤
허수아비
초연(初戀)
속삭임
별아!
스치는 바람이라!
화장(火葬)
너도 꽃이었구나
겨울 바다에
가을은
능소화
코스모스 꽃 길
봄이 오면
나 치매 걸리거든
눈 감으면
홀로 견뎌야 합니다
가자가자
초롱꽃
홀로 견디기 10
폭우
인연의 덫
과거사 5
당신만 남으면
책 속으로
화개살
고향집
흐드러지게 피었던
아카시아 향에 묻히어
늘 혼자였지
기억할 수없는 유년의 꿈들은
해방과 6.25로 휘몰아 가버리고
폐허된 땅위에
늘 혼자였어.
막내의 귀염쯤은 보릿고개에
넘어 버리고
인생 첫 문 앞
사춘기에도 늘 혼자였어
고독이라는 병을 앓으며
시인이 되겠다고
200자 원고지로 휴지통은
쌓이고 종이 값 아깝다며
엄마는 비웃고
시인이랍시고
내 뱉는 서툰 시어들이
가을바람에 흩어져 가는 날
거짓 사랑도 했었지
보석위의 빛난 저택에
호화롭게 거드름을 피우며
읊어대는 거짓 소리는
휴지통에 장미꽃으로
펴나는 황홀한 꿈도 꾸었다.
뼈를 깎은 노력에
지혜의 탑을 쌓아
이제는 빛나라
소리 없는 아우성
고울 려(麗)별 진(辰) 이름이
밤 별 인걸
빛을 볼 수 있겠어
월에 화개살이 들어
지혜롭게 빛나지 못하고
밤 별 되어
외로운 소리를
내뱉고 있다.
화개살.
**자기가 쌓아온 부귀와 명성을 모두 덮어버리는 액운.
시인의 노래
하늘처럼 살았다.
바다처럼 살았다.
그리움 밤 별 되어
옹이 된 한으로
홀로 반짝
부르는 노래
시인의 노래.
석양 빛 따라
성급히 반짝이는 별 하나
밤에만 선명한 너의 빛
고울 려 별 진
밤에만 빛나라
시인의 노래.
잠깐
세상에 아침이 오면
별빛도 사라져
부르다 말겠지
시인의 노래.
*이여진 (麗고울려 辰별진)
당사주
생년월일시
12운성에 걸쳐 앉아
길흉화복을 점치는구나
울타리 밖에서
넘보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야
이집 여자 기운이 세서
집안 살림 온전할 때가 없겠구나
어허, 샛서방하고 살 팔자야
부적 써!
10만 원 짜리 하나 써서
마누라 베개 속에 넣어 둬
집안 편안할 탱께
당 사주 그림책을
탁 덮는다.
얼른 10만원을 꺼냈다.
인생 좌판
좌판에 올려놓았던
사랑 그리움
그리고
미움
다 팔리고
하나 남았다.
허무 虛無
마저 팔리면
인생 좌판 걷어야겠지.
인생 도리짓고땡
콩콩 팔
두두 륙
삼삼 세
새새 이
통통 장
쭉쭉 팔
철철 육
팔팔 새
구구 이
짓고 망통이다
짓고 따라지
한 끗 차이
인생 도리 짓고 땡.
두더지 게임
인생 두더지 게임
작은 산
큰 산
불쑥불쑥 튀어나와
앞 길 가로 막네
망치로 내려치고
내려치고
비껴나서도
다시 솟아나는
작은 산
큰 산
인생 두더지 게임.
시詩는 죽었다
詩는 죽었다
이별의 님
가는 길 위에
진달래꽃 뿌려주던
애달픈 순정
작은 새들도 세상을 떠나는
황량한 허무 앞에서
치매 초기의 웃음으로
왜 사냐 건 웃지요
마음 숨겨 하는 자책
이세월이라 말 못하고
웃음으로 답한다
이제 시詩는 죽었다.
유有의 시작이 무無였다면
무無의 시작은 유有인가
시어詩語 한마디 한마디의
난잡스러운 배열은 혼란스럽고
병명 없는병을 앓으며
종이통장 종이신문대형서점에
날 좀 가져가세요
줄서있는숱한 출판사의 이름표들
손바닥보다 작은핸드폰 속에서
시작하고끝나니
속 끌어 모아뱉어내는 시어詩語들은
이제갈 곳이 없다.
박제가 되어 먼지 낀 채
서재 안에 쌓인 흔적들
노래하던 옛 시인
하나둘 세상 떠나가고
겉 멋든 시인들의
과장된 미사여구에
이제 시는 죽어야 할 것 같다.
아니 죽었다.
사주팔자
주어진 여덟 글자
아내와는 격산(隔山)
자녀는 극자(極子)
연월일시
한글자만 뒤 바뀌었으면
인생사
부귀공명
만고강산 유람하며
시나 읊었을까
허허 웃으며
돌아보니
숙명을 딛고 선
운명이었네.
사주팔자.
소멸
몸 전체의 어디에선가부터
소멸되기 시작 한다.
발끝에서
머리카락 하나까지
재질이 쇠가 아닌 뼈라
쉽게 부서지고
머리 가슴 아래가
온통 백발로 변했으니
어느 때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시속 70km
모든 것이 빠르다.
바람처럼 스치고 지난다.
영원으로 묻힐 그날을 위해
어느 부분 하나까지도
소멸시켜버리는 조급함.
어디론가 피해야 되는데
발길을 뗄 수 없어
엉거주춤 서있다.
부고[訃告]
부고를 받았다.
올 때는 순서대로갈 때는
순서 없다.
인생 가는 길알고 있었다면
사는 방법 또한 달랐겠지
10년 연배10년 후배사이에 끼어
엉거주춤사실은 모르지
않나먼저 갈 줄당신이
뒤에 올 줄모르면서
살아간다
세상 떠나도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이 시점에부고장을 받는다.
선(線)
넘을까 말까
선 앞에 서면
나서지도 되돌아
서지도 못하는 망설임
풀 길 없는 수수께끼
쾌락과 공포의 갈림길에서
넘지도
물러서지도 못 한 채…
엉거주춤 서있다.
선 앞에.
수술
전신마취아련한 꿈속에 젖어
잠속으로 빠져 든다
전광판엔 [수술중]
다 벗겨놓고
의사도 간호사도
숨져가는 신체하나
뉘어놓고 살피겠지
어디서부터 메스를 그어가를 것인가
병든 내장을 잘라내고
바늘로 꿰매고
반창고로 덮어버리면 완료
회복이 덜 돼 굳은 신체를
회복실에 올려
깨어나기 기다리겠지
전광판엔 [회복중]이 재촉하고
몽롱한 잠속에서
엄마를 찾는다
"엄마 어딨어"
"여보 정신 나? 나야 나"
게스름하게 뜬 눈에
엄마, 아내 얼굴이 오버랩 된다.
구멍
남자는 몸에 아홉 개의 구멍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연륜이 짙어갈수록구멍부터 망가진다.
구멍들이 망가지기 시작하면
늙음의 시초고
망각의 강에 이른다.
아차돌이킬 수 없구나
새 구멍일 때 아낄 걸너무 늦었다.
염 (殮)
퇴주잔을
사발째 벌컥벌컥 마시고
병풍 뒤로 들어서니
염사들의 손에
반쯤 미이라가 되셨다.
부드럽고 포근하신
어머님의 모습이 아닌
나무토막을 감아가는
염사들의 손놀림에
눈물은 빗물처럼
얼굴을 감아 내리고.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이
이리 처참하고
삭막한 모습으로
전개되는 현실에
나 또한 무너져 내린다.
믿을 수 없는 사실 앞에
영육을 갈라서는 비정한 숙명
그렇게 육신을 버려야하는
영혼의 통곡에
퇴주잔 한 사발 더 마신다.
영여(靈輿)
늘 혼자였어
아니 바람이 친구였지
곁을 맴돌며
끌었다가 놓아 버리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니 바람은 친구도 아니었어
혼자서만 살다가
혼자서 떠났어
혼자서 끝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가
그 끝이 어디인 줄 모르는…
그렇게 떠났어.
상여喪輿에 앞서
만장萬丈 따라 슬프다.
어째야 쓰겄냐
어째야 쓰겄냐
마음은 청춘이라더니만
무너지는 육신의허무 앞에
맘까지도 늙어버린다.
자신 없는 몰골은
안으로만 움츠러들고
어적어적 걷는 모습이
상늙은이 되었구나
어째야 쓰것냐
앞선 세월 살던 이들
북망산 가고
이제 내 차례인 듯도 싶은데
도대체가 실감이 나지 않네
사춘기 열정의 겁 없는 결단에
녹아나던 소녀들
가버린 세월이 오래고
챙기고 살펴봐도
살래살래 고개 흔드는육체의 상중하
치매 초기라도 되는지
시력까지 흐려져사람 얼굴까지 헷갈린다.
어째야 쓰것냐
머리 아래가 온통 백발이니
마음이 먼저 주저앉는다.
참말로 이젠
값싼 수의 한 벌
관 하나짊어지고 걷다가
차례 되면
스스로 관속에들어가 눕자
편안한 마음으로.
역마살
역마살이 붙어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떠도는 팔자.
지지리도 운이 없는 놈이야
하긴 인생사
어디 안주할 곳이 있더냐
바람처럼 떠돌다
잠시 멈추면
내 집이 아닌가
바람이 멈추는 날
함께 멈추지
역마살.
죽 떠먹은 자리
정성들여 끓인죽 한 그릇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두신 엄마의 정성
긴 겨울 밤
허기진 배고픔에
엄마 몰래
한 숟갈 떠먹었다.
아빠도 엄마도 몰랐다.
죽 떠먹은 자리.
첫 키스
달 없는 밤 별빛
찬란하게 쏟아져 내리던
그날 밤
산기슭 바람마저
우리 사랑 축복하듯
서로를 품어 돌아
입맞춤을 하고 말았다.
어둠에 수줍음을 가리고
행복한 순간들
이제는 창이 되어 가슴 찌르는
고통으로 남아
역주행을 해서라도
닿고 싶은 그날의 산기슭
상념으로
바람마저 서글픈
외로운 한 점이 되어
세월에 희석되어
흩어져 가고 있는가
낱알 되어
마음은 그 산기슭
달 없는 별빛 속에
나누던 첫 키스를 생각한다.
세월의 바람 속으로
흩어져가며.
포만의 허탈
혈육의 정까지도 접어버린
희생이 안겨준 작은 결실
이제야 안정을 찾은 정점에서
느끼는 허탈감
결국 낡은 육신으로 남아
지친 몰골로 꽂은
정점의 깃발
허무하다.
인생
순간이 영원인 것을 느끼지 못하고
부질없는 정점을 향한 질주
어리석음에
맺히는 눈물.
신기루를 찾아 헤매온 세월
부질없었다.
레테의 강(1)
-사랑의 추억
이제 왔는가
뭘 그리 살필 일 많아서
더듬거리다 왔는가
시작도 끝도 없는
쾌락에 젖어
멈칫멈칫
미련이 남아
걸음 떼지 못하는
모습이 불상타
내려놓으소
강물 한 사발 들이키면
한줌 재 되어
사라질 것을
비워버리소
가벼운 마음으로
저 강을 건너야제
이승의 연이란 지우소
돈도 명예도
부질없는 것 아니던가.
망각의 강이라지만
빛나는 사랑의 추억만큼은
지울 수 없다네
레테의 강도.
출판사 서평
추천사 도서를 추천한 사람과 추천 문구
귀소본능(歸巢本能)에 따른 간절한 귀거래사
-이여진 시인론
박희주(시인, 소설가)
인간의 삶이 각박해지고 지구의 환경이 심각해져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시인은 탄생하고 시대정신을 담은 시는 노래로 불리어지기 마련입니다. ‘시인은 언어를 통해 삶의 무게를 태워 아름다운 힘으로 변화시켜 마음속에 꽃을 피우고 고통스러운 삶을 견딜 불꽃의 에너지를 만든다’는 어느 평자의 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현대인의 정신적 고뇌를 상징하고 인간 실존의 고통을 형상화한 초상 〈절규〉를 그린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하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그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 자신조차 스페인독감을 비롯하여 류머치스 등 수많은 병마에 시달려 왔으나 81살까지 비교적 장수한 인물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전 지구촌이 팬더믹의 고통을 앓고 있는 중에 생면부지의 이여진 시인의 작품을 만나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스치는 바람이라』라는 한 권의 시집으로 묶기 위한 것이었지요. 전혀 알지 못하는 시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편견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 자유롭습니다. 원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별한 소감은 추억에 대한 소환이자 간절한 귀거래사였습니다. 추억은 바로 뭉크가 그린 ‘본 것’, 그의 인생살이를 조망하며 군더더기를 생략하고 강렬한 붓 터치로 그려낸 내면의 감정들이었습니다. 이제 곧 돌아가야 한다는 인간의 숙명 앞에 안타까움과 회한의 정서들은 작품 곳곳에서 진솔하게 배어 나왔습니다.
프로필을 보면 이여진 시인은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출신으로 공무원 생활을 마감한 후에도 노인대학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왕성한 집필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기 초에 문단에 나온 이여진 시인은 그동안 『혼돈의 세월, 못 다한 노래』 『별의 연가』 『저 눈물강 건너』 『너도 꽃이었구나』 등 네 권의 시집을 상재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이번 시집의 자서(自序)에서 “유한한 육신을 영원인 양 걸머진 채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 이제 버거웠던 짐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며 영생을 위한 준비 그 망각의 잔을 마시려는 시간이 되니 나를 이어온 인연들에 감사와 용서를 비는 마음 또한 회한의 눈물로 맺힌”다며 “육신만을 위하는 생멸(生滅)의 결과가 얼마나 허무하고 부질없었던 것인가”라고 술회합니다.
문학의 종언이라는 말이 회자된 지도 꽤 지났지만 우리의 문학예술은 시일이 지날수록 더욱더 번성하는 것만 같습니다. 책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에 밀려 독자를 상실한 지 오래 되었지만 작가 또한 넘쳐납니다. 거기에 따른 작품의 하향화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 반면에 제4차 산업혁명의 대두가 가져온 현대인들의 정신적 혼란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문학의 역할이 다시 부각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시문학은 기술의 발전과 세태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에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인간에 대한 통찰을 제안하고 반추하며 재설정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여 성별과 연령의 구분 없이 높은 선호도를 보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좌판에 올려놓았던
사랑 그리움
그리고 미움
다 팔리고
하나 남았다
허무(虛無)
마저 팔리면
인생 좌판 걷어야겠지
-「인생 좌판」 전문
이여진 시인의 시적 언어는 세련되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고급스럽지 않고 평범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살갑게 다가옵니다. 직접 구분한 제1부에서 인생을 좌판에 비유하고는 사랑과 그리움, 미움 등 굴곡진 정서를 초월하여 결국은 허무에 닿은 여정을 노래합니다. 관념의 언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인생살이의 어려움이 이 짧은 단편 속에 담겼습니다. 이런 유형의 시편들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정조로 다가옵니다. 다음의 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이름을 소환하여 의미를 부여합니다.
하늘처럼 살았다.
바다처럼 살았다.
그리움 밤 별 되어
옹이 된 한으로
홀로 반짝
부르는 노래
시인의 노래.
석양 빛 따라
성급히 반짝이는 별 하나
밤에만 선명한 너의 빛
고울 려 별 진
밤에만 빛나라
시인의 노래.
잠깐
세상에 아침이 오면
별빛도 사라져
부르다 말겠지
시인의 노래.
-「시인의 노래」 전문
하늘처럼 바다처럼 살았어도, 밤에만 빛나라는 이름에 남다른 의미를 붙여 주문(呪文)처럼 불러도 남는 건 역시 허무한 마음, 그러니 그가 신앙으로 여겼던 시마저도 죽일 수밖에요. 그래서 감히 선언합니다. 시는 죽었다고.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블로거의 “더는 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깨달은 일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찬미한 모든 것은 세상에 존재치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시는 신이나 사랑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죽었고 사랑은 없다는 말처럼 저 또한 시가 싫어졌다고 내뱉게 되었습니다. …시는 죽었습니다. 미안한 이야기입니다만 당신들께선 시체 썩은 냄새가 납니다.”고 힐난한 글이 떠오릅니다. 여기에서 ‘당신들’이라는 복수는 시와 시인들을 싸잡아 일컬은 게 틀림없습니다. 그도 한때는 시가 신이나 사랑을 대체할 우상이라 믿었을 겁니다.
시詩는 죽었다
이별의 님 가는 길 위에
진달래꽃 뿌려주던
애달픈 순정
작은 새들도 세상을
떠나는 황량한 허무 앞에서
치매 초기의 웃음으로
왜 사냐 건 웃지요
마음 숨겨 하는 자책이
세월이라 말 못하고
웃음으로 답한다.
이제 시詩는 죽었다.
유有의 시작이 무無였다면
무無의 시작은 유有인가
시어詩語 한마디 한마디의
난잡스러운 배열은
혼란스럽고 병명 없는
병을 앓으며
종이통장 종이신문
대형서점에 날 좀 가져가세요.
줄서있는
숱한 출판사의 이름표들
손바닥보다 작은
핸드폰 속에서 시작하고
끝나니 속 끌어 모아
뱉어내는 시어詩語들은 이제
갈 곳이 없다.
박제가 되어 먼지 낀 채
서재 안에 쌓인 흔적들
노래하던 옛 시인
하나둘 세상 떠나가고
겉멋 든 시인들의 과장된 미사여구에
이제 시는 죽어야 할 것 같다.
아니 죽었다.
-「시는 죽었다」 전문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신을 포함해 사람들이 신처럼 떠받들던 일체의 절대적 가치가 그 본질적 의미를 잃고 허무해짐을 의미합니다. 달리 말해 최고 가치의 상실로 인한 허무주의의 도래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는 신의 죽음으로 유럽에 허무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경고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 즉, 비극적 상황 앞에서도 자긍심을 잃지 않는 고귀한 정신이 필요함을 설파했습니다.
이여진 시인의 ‘시는 죽었다’는 선언의 배경에는 현학적이고 지나치게 요설적이어서 소통이 되지 않는 작금의 난해시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한편 시는 죽었다는 역설입니다. 니체와 마찬가지로 이여진 시인은 시의 절대적 가치와 역할을 아직도 믿고 싶으며 그 주체인 시인이 ‘죽어버린’ 상실의 시대에도 그러한 자긍심을 잃지 말자는 주장인 것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습니다. 허무는 이 시집 전반에 흐르는 정서입니다. 허무는 곧 인생무상(無常)하다는 탄식으로 이어집니다. 무상은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여 똑같지 않음을 의미하는 불교의 근본 교리입니다. - 시집 『스치는 바람이라』 시 해설中 p152-157
-
기본정보
ISBN | 9791189259204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3월 30일 |
쪽수 | 168쪽 |
크기 |
128 * 206
* 16
mm
/ 334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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