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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

역사를 아로새긴 한국의 옛 다리를 찾아서
이영천 저자(글)
루아크 · 2021년 09월 10일
8.4
10점 중 8.4점
(3개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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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징검다리에서부터 장대교량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다리, 그 내밀한 이야기
이 책은 한국의 옛 다리와 근현대 다리에 얽힌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냈다. 1부에서는 신안군 추포도 노두길, 경복궁 취향교, 청계천 광통교, 진천 농다리, 정조대왕이 건넌 한강 배다리 등 우리 옛 다리 10곳을 살폈고, 2부에서는 군산 뜬다리부두, 철원 승일교, 성수대교, 남해대교, 진도대교 등 근현대 교량 10곳을 찾았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 그 행간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한 번쯤 되짚어보게 한다. 공학이 빚어낸 다리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여정은 ‘다리’라는 시설물에 얽힌 역사를 알아가는 데 있어 또다른 즐거움을 줄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영천

방장산을 병풍 삼아 쇠꼴을 베던 전북 고창의 궁벽한 시골에서 자랐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했고, 20세기 마지막 해에 기술사가 되었다. 산업단지와 신도시를 설계한 엔지니어링사를 거쳐 건설사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고속도로, 철도, 대심도지하도로, 초장대교량, 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자사업에 오랜 시간 힘을 쏟았다. 공학을 바탕에 둔, 그러면서도 무겁지 않고 유연한 인문학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목차

  • 들어가는 말

    1부 옛 다리, 우리 이야기를 찾아서

    - 끈끈한 공동체를 하나로 이어주던 추포 노두길
    - 단종의 넋을 기리는 주천강 쌍 섶다리
    - 물의 섬, 그곳을 지키는 무섬 외나무다리
    -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진천 농다리
    - 아름다운 향기로 세상을 취한 경복궁 취향교
    - 동쪽 길목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은 살곶이다리
    - 능원 신장석을 가져다 만든 청계천 광통교
    - 한 도시의 영광과 쇠락을 지켜본 강경 미내·원목다리
    - 누각을 품은 이채로운 아름다움 태안사 능파각
    - 역사의 파도를 과감하게 넘어선 한강 배다리

    2부 근현대 다리 속 숨은 역사를 찾아서

    -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군산 뜬다리부두
    - 역사의 버거운 무게를 떠안은 한강철교
    - 한강 최초의 인도교 한강대교
    - 친일파 투기꾼 때문에 생겨난 공주 금강철교
    - 아픔과 탄식, 희망의 다리 부산 영도대교
    - 분단의 상흔을 오롯이 품은 철원 승일교
    - 노량해전 자리에 부끄럽게 놓인 남해대교
    - 무너져내린 한강의 기적 성수대교
    - 명량해전 바다에 도박처럼 세워진 진도대교
    - 정한으로 빚어낸 미투리 안동 월영교

책 속으로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도 가는 길은 가히 다리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아니, 신안 섬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다리 박물관이다. 목포에서 압해도 가는 압해대교는 3경간 닐슨로제 아치교다. 압해에서 암태도 가는 길에는 ‘1004대교’라 명명한 다리, 곧 연속보의 접속교에 3주탑 현수교와 2주탑 사장교가 높은 위용을 뽐내며 나란히 서 있다.
암태도 주변 곳곳에는 노두(路頭)를 만든 흔적들이 남아 있다. 썰물을 이용해 짧은 거리 갯벌을 건너는 장치로 설치한 것들이다. 나룻배의 쓰임새와는 전혀 다른 갯벌에 낸 길이다. 수심의 영향으로 배로 건너는 게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는 징검다리를 놓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중 암태도와 추포도를 잇는 노두가 으뜸이다.
_19쪽_끈끈한 공동체를 하나로 이어주던 추포 노두길

쌍 섶다리에 대한 유래가 재미나다. 숙종 24년(1698년) 11월 6일자 실록은 “노산군을 단종으로 묘호는 장릉(莊陵)으로, 그의 비(妃)는 정순(定順)으로 묘호는 사릉(思陵)이라 정하여 시호(諡號)를 추상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노산군을 왕으로 복권시킨 것이다.
해가 바뀌기 전, 단종과 정순왕후 위패를 종묘에 안치시키는 일을 마무리한다. 약 250년 만에 왕 지위를 되찾은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699년, 수차례에 걸쳐 장릉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수리한다. 윤7월 23일에서야 가까스로 능 수리를 마쳤다고 실록은 기록한다. 그러고는 강원 관찰사에게 장릉에 참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 관찰사는 우마차에 갖은 제수용품을 싣고 원주를 떠나 장릉으로 향한다. 길은 험한 산길에 구불구불 물길이다. 장릉을 60여 리 남겨두고 주천강에서 섶다리를 만난다. 다리는 낡아 있고 홑 섶다리였다. 백성들은 냉담하기만 하다. 처지가 난감해지려는 순간 이내 단종에게 제향(祭享)하는 관찰사 행렬임을 알아본 백성들이 발 벗고 나선다. 홑 섶다리로는 수레가 지날 수 없다. 주천리와 신일리 백성들이 각각 하나씩 섶다리를 새로 만든다. 그렇게 쌍으로 된 섶다리가 놓인다.
_33-35쪽_단종의 넋을 기리는 주천강 쌍 섶다리

고종이 건청궁을 지으면서 그 아래 남쪽에 판 연못이 바로 향원지(香遠池)다. 시기는 불명확하지만 1867년에서 1873
년 사이로 추정된다. 이 자리는 조카를 쫓아내고 죽이기까지 한 세조가 1456년 연못을 파 섬 안에 ‘비취빛 이슬’을 뜻하는 취로정(翠露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던 곳이다. 고종은 향원지 동남쪽에 담장을 쌓고 동쪽 담장에는 인유문(麟遊門)과 봉집문(鳳集門)을, 남쪽 담장에는 정중문(正中門)을 달아 출입을 통제한다. 고종은 연못을 네모지게 파고 한가운데에 둥근 섬을 만들고는 그 안에 2층짜리 멋들어진 목조 정자도 짓는다. 향원정(香遠亭)이다. 어떤 향기가 그리 멀리까지 나아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름만은 정말 그럴듯하다. 건청궁 정문에서 계단을 내려와 향원정으로 향하는 자리에 널다리를 놓는데, 길이 32미터, 너비 1.65미터 규모였다. 고종은 다리를 취향교醉香橋)라 이름 붙였다. 역시 어떤 향기에 그리도 취했는지 의문이다. 권력이라는 달콤한 향기였을까? 아니면 나라와 백성을 살피지 못한 우매한 향기였을까?
_68쪽_아름다운 향기로 세상을 취한 경복궁 취향교

이곳에 돌다리가 생기게 된 것은 이방원 때문이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난 이방원은 이곳 살곶이벌에서 사냥과 군사훈련을 즐겨했다. 세종 1년(1419년 2월 21일) 실록에 “상왕이 살곶이벌 동쪽 증산(甑山) 근처에 이궁(離宮)을 건립하여 낙천정(樂天亭)이라 이름하였다”라는 기록이 전한다. 낙천정에서 대마도 정벌을 논의하고, 정벌이 이뤄진 뒤에는 축하연을 열기도 했다. 세종은 이방원에게 수시로 문안을 다녔고, 아버지가 죽고 나서도 낙천정에 들러 휴식을 취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자주 등장한다. 이방원은 살곶이벌 어딘가, 아니면 무척 아름다웠다는 저자도에 ‘별궁과 정자가 딸린 낙천정’을 지어 기거하다시피 했다. 이궁과 정자를 무시로 드나드는 것도 부족해 그곳에서 생활하기까지 한 이방원 그리고 수시로 문안을 다닌 세종. 그들은 살곶이내(중랑천) 건너는 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세종 2년(1420년 5월 6일) 실록에는 “상왕의 명으로 영의정 유정현과 박자청에게 살곶이내에 다리 놓는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공사는 다시 이방원의 명으로 약 20여 일 뒤 중단된다. 장마에 대비해 도성 안 개천(청계천) 정비에 모든 인력과 장비가 쓰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방원이 살곶이 들판과 훈련장, 사냥터 그리고 낙천정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낙천정에서 바라본 한강 경치는 일품이었다 한다. 살곶이 널돌다리가 완공된 때는 최초 가설일로부터 무려 63년이 지난 성종 14년(1483년)에 이르러서다.
_80-82쪽_동쪽 길목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은 살곶이다리
뜬다리부두로 군산은 비로소 대형 항만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규모 있는 항만을 갖춘 근대 군산은 여기서 연유한다. 뜬다리부두가 군산을 존재하게 한 1등 공신인 셈이다. 대규모 항만시설이 들어서기에 지형적으로 부적합한 군산에 뜬다리부두는 혁명적 시설이었다. 군산항에 3000~4000톤급 배, 곧 길이 85~90미터에 이르는 배가 접안해 효율적으로 작업하려면 뜬다리부두 두 개를 한 쌍으로 연결해 운영해야 했다. 옛 군산세관에 전시된 〈군산항 수축공사 준공평면도〉에는 뜬다리부두의 세세한 규격이 기록되어 있다. … 군산항은 1905년 1차 축항공사를 시작으로 1938년까지 네 차례의 항만공사가 진행되면서 총 네 쌍의 뜬다리부두가 들어섰다. 지금은 각 쌍이 해체되고, 단일 기능을 하는 세 개의 뜬다리부두만 모양이 변한 채 남아 있다. 연결다리 폰툰에 매단 5미터 길이 세 가닥 뜬다리는 없어졌다. 그 자리를 다른 폰툰이 대신하며 한 쌍을 구성하던 개개 구조물도 모두 사라졌다. 남아 있는 뜬다리부두 크기와 모양도 처음과는 많이 다르다. 바깥 폰툰 일부가 퇴적된 펄에 묻혀 이제는 그 기능마저 거의 잃고 말았다.
_139-141쪽_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군산 뜬다리부두

1905년 경부선과 경의선이 개통된다. 1911년에는 일제의 대륙 진출을 위한 압록강철교와 호남선 일부, 경원선 일부가 개통되면서 철도 수송량은 급증한다. 이는 피식민지 한반도를 군사기지화하려는 일제의 철도망 구축 계획에 기인한다. 한강에 추가로 철도용 다리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도 대두되는데, 한강철교 B선이 1912년에 A선과 같은 모습으로 신설된다. 한강철교 A선은 핀 프릿 트러스(Pin Prat Truss) 구조인데, B선을 만들면서 1913년 5월 A선 트러스 강재를 교체하고 일부 교각도 보강한다. 일제는 이때 A선에서 뜯어낸 트러스 강재의 사용처를 구상한다.
조선총독부는 제1기 치도사업(治道事業)을 시행 중이었다.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전쟁은 전 세계에 경기 침체와 높은 물가 상승을 가져왔다. 특히 강재와 유류 가격이 급등했다. 총독부는 제1기 치도사업 중 동래~경주, 전주~논산 구간의 도로 사업을 제2기로 순연시키고, 그렇게 확보한 예산과 한강철교 강재를 가지고 한강에 보도步道다리 건설을 계획한다. 1916년 3월 기공식이 열렸는데, 예산은 66만 원이었다. 하지만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각종 자재비가 폭등해 1차에 8만 원, 2차에 12만 4000원의 증액이 불가피했다. 다행히 날씨 등 공사 여건이 좋아 비용 일부가 다시 절감되면서 1917년 10월 총 공사비 83만 4000원으로 다리가 완공된다.
_161-162쪽_한강 최초의 인도교 한강대교

1926년 부산과 영도 사이에 다리 놓을 준비를 한다. 동경대 교수를 초빙해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대규모 교량을 구상한다. 이듬해 일제는 두 개의 대안을 수립하지만, 최종적으로 해상 교량인 연륙교(連陸橋)가 채택된다. 그러자 반대 여론이 들끓는다. 특히 해운업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도선 폐지는 물론 다리가 놓이면 남항과 북항을 오가는 해로가 막혀 영도를 빙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해저터널은 물론 대형 페리(Ferry)로 건너는 방안까지 대두되는데, 이때 야마모토 우타로라는 기술자가 등장한다. 가동교(可動橋) 특허 보유자로 미국에서 공부한 토목공학자다. 그는 도개교를 제안한다. 그의 구상과 설계를 보고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야마모토는 부의원을 설득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이는데, 모형을 만들어 의원들 앞에서 시현까지 한다. 이런 노력으로 최종적으로 도개교(안)가 선정된다.
_184-185쪽_아픔과 탄식, 희망의 다리 부산 영도대교

한국전쟁 전까지 철원은 38선 북쪽에 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속한 땅이었다. 당시 북한 정권은 한탄강을 건너는 다리를 구상하는데,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장으로 일하던 김명여를 설계 책임자로 임명하고 1948년 8월, 한탄교(漢灘橋)라는 이름으로 공사를 시작한다. 공사는 지금의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 대내리·문혜리를 연결하는 구간이다. 지역 주민들도 동원되는데, 성인 남성은 매월 20일 이상 공사에 참여해야 했다. 사회주의식 동원 체제다.
다리는 동송읍 쪽 교대와 교대에서 10미터 폭의 제외지 통로 역할을 하는 교각이 먼저 완성된다. 그 상부에는 말굽 모양 아치를 달았다. 또 한탄강 한가운데에 교각을 세우고 동송읍 방향에서 철근콘크리트로 상로식 2열의 긴 역 로제아치를 만들어갔다. 이렇게 한탄강 중간까지 완성된다. 이 구간에는 2열 아치 위 양쪽으로 상판을 떠받치는 기둥을 7개씩 세워 각 8칸의 작은 모양 아치 형하(桁下)를 만들었다. 한 쌍의 로제아치는 수평재를 걸어 이어 붙였다. 큰 아치 위에 좁고 길쭉한 아치가 올라간 형상이다. 다소 촘촘하지만 앙증맞다. 그러나 이즈음 한국전쟁이

출판사 서평

옛 다리에 깃든 우리 이야기,
숨은 역사를 따라 걷다

인류는 끊임없이 길을 개척해왔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일은 때론 과감했고, 때론 저돌적이었다. 길을 찾고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인류는 여러 수단을 동원했는데, 그중 다리 건설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음’과 ‘매개’를 상징하는 다리는 그 속뜻처럼 끊어진 곳을 메꾸거나 연결하면서 사람과 물건을 날랐고, 더 나아가서는 문화와 문명을 퍼뜨리는 통로가 되었다. 그렇기에 ‘다리’를 단순히 물적 시설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이상의 의미를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시적 형태의 징검다리에서부터 첨단 기술력이 투영된 사장교나 현수교 같은 초장대교량에 이르기까지 다리는 인간의 필요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리고 그 필요는 역사 속에서 종교와 정치,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되곤 했다. 이를테면, 불교에서 다리 짓기는 ‘현세에 대한 공덕을 쌓는 일’로 여겨졌다. 유독 사찰 앞에 무지개다리가 많은 건 그래서다. 궁궐에는 반드시 금천(錦川)을 흐르게 하고 그곳에 다리를 두었는데, 궁에 들면서 ‘삿되고 잡된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라’는 의미다. 조선 후기 고종은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찾아온 기념으로 건청궁을 짓고는 그 앞에 연못을 파고 멋들어진 정자를 앉힌 뒤 취향교라는 다리를 놓았다. 절대 지존으로서 위엄을 과시하려는 대단히 권력 지향적 행위였다. 또 일반 백성들은 재액(災厄)을 물리치기 위해 정월대보름 밤에 다리밟기 놀이를 즐기곤 했다.
그러나 그 긴밀한 연결은 때로 아픈 기억과도 함께였다. 근현대 한국사에 등장하는 다리들이 그렇다. 다리는 식민지 시대 수탈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는가 하면, 분단과 독재의 시간을 거치면서는 권력자들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한강철교와 영도대교, 뜬다리부두, 승일교, 진도대교가 상징하는 역사다. 허상으로 가득한 ‘한강의 기적’ 속에서 수많은 이의 아픔과 슬픔을 자아내는 건축물이 된 다리도 있다.
이 책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는 1000년을 버텨낸 다리에서부터 불과 수십 년 전 지어진 현대식 다리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담긴,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찾아 보여준다. 공학이 빚어낸 다리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여정은 다리라는 시설물에 얽힌 역사에 알아가는 데 있어 또다른 즐거움을 줄 것이다.

“하나의 시설물로서 다리가 놓이게 된 사유와 과정, 그 속에 담긴 사연은 모두 제각각이다. 이 책은 다리가 발달되어온 순서대로 숨은 이야기를 찾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때론 삶의 애환을 그릴 것이고, 때론 역사 속에서 저질러진 잘잘못을 말할 것이다. 또는 아쉬운 실수나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을 거론할 것이다. 세세하고 작은 역사가 큰 역사를 대변하는 이야기도 언급할 것이다. 이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공학이 빚어낸 다리를 찾아가는 이야기 길이 되어줄 것이고, 함께 건너는 다리가 될 것이다.”_들어가는 말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옛 다리 위주로 살폈다. 징검다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정조대왕이 을묘년 화성으로 행행하던 길에 건넌 배다리에서 끝이 난다. 지은이는 우리 고유 풍속은 물론 거대 담론으로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간직한 다리의 뒤안길에 눈길을 준다. 그 속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묻는다. 2부에서는 근현대 교량을 찾아간다. 이야기는 이식된 근대가 만들어낸 상처 가득한 다리에서 시작해 가장 최근 지어진 사장교와 현수교를 지나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작은 다리에서 끝을 맺는다. 각각의 이야기는 주로 아픈 이면을 들춰낸다. 다리가 선사한 넓고 빠른 길은 필연적으로 지역 발전과 도시 확산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파생된 토지자본 이득에 우리 삶과 정신이 어떻게 매몰되었는지 책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지은이는 다리가 ‘둘 사이의 간극’을 메꾸는 존재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간극을 극복했다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가능하다고도 말한다. 알량한 권세나 힘으로 다른 이를 짓누르려 할 때 갈등이 생겨나는데, 다리는 그런 질시와 반목을 상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 실린 이야기, 그 행간에 담긴 메시지가 우리 앞에 놓인 무수한 길 중 최적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88296538
발행(출시)일자 2021년 09월 10일
쪽수 264쪽
크기
155 * 208 * 26 mm / 460 g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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