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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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첫 수필집을 내면서
1부 그 새벽 벚꽃
마흔여섯 기념메달 12
가지산 설화雪花 18
독도 뮤지컬 25
그 새벽 벚꽃 32
문맹을 벗는 사람들 37
산딸기 택배 43
이름없는 포지션 48
솔방울 꽃 53
2부 아버지의 숲
어머니의 강정틀 60
주인 잃은 일항사 면허증 66
아버지의 숲 72
왕바람나무 78
중부동 망향비 84
그녀도 아내가 필요하다 89
시사時祀를 올리고 95
홍화紅花 101
3부 나는 통장님
‘무한대’ 상패 108
어머니의 손등 114
나는 통장님 120
화장하는 여자 127
침묵극 〈물의 정거장〉 133
양봉의 여정 140
문해文解 인터뷰 146
광안리에 산다 153
4부 예고 없는 이별
사교춤이 어때서 160
이웃 언니 167
내 친구 말지 수녀 173
겨울 진객 178
예고 없는 이별 184
반 평 작업장 190
노적봉의 소나무 195
인생 수업료 202
공생과 상생 205
작품론
《아버지의 숲》, 자아성장과 일을 결속한 진지한 서사
박양근(문학평론가, 부경대명예교수) 212
출판사 서평
《아버지의 숲》, 자아성장과 일을 결속한 진지한 서사
문학은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어떤 형식이든 작가의 일생이 글쓰기에 담겨진다. 그중에서 수필은 다른 장르보다 개인의 생각과 삶과 경험에 더 직접적인 목소리를 낸다. 그가 누구인가는 수필 한 편만으로도 족히 알 수 있고 한 권의 수필집을 읽는다면 가족사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작가는 개인의 삶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 권의 수필집에 넉넉히 담을 수 있다.
작가가 태어난 고향은 해방 이후 귀환한 동포들로 이루어진 양산시 물금면 중부동 마을이다. 그곳은 “별스럽지 않은” 동네이지만 동박새가 찾아오고 물맛 좋은 옹달샘도 있고 명절에는 사물놀이를 하며 함께 부대끼며 사는 마을이다. 그 마을 사람들의 삶을 통해 작가는 함께 일하며 살아야한다는 교훈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현 삶을 살펴보아도 두레정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쉰이 넘은 늦깎이에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연이어 대학원 석사 과정을 하고 있다. 토탈아트 강사를 했고 지금은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깨쳐주는 문해교육 강사와 거주지 광안동에서 통장직을 맡고 있다. 문단활동을 보면 2012년 《수필과비평》 신인상을 수상하고 몇몇 문예전에서 입상하고 등단 8년차를 맞이하면서 첫 수필집을 발간하였다. 공부와 봉사와 문학이 그녀의 인격적 아이콘이라고 할 정도로 매사에 최선을 아끼지 않는다. 오죽하면 〈나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라는 유머 넘치는 작품을 썼을까. 이렇듯 지금도 워킹 맘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가 김경자이다.
1. 솔숲도 솔방울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 출생하고 성장한 환경은 개인의 미래를 좌우한다. 이것을 문학에서는 토포필리아라는 공간애로 부른다. 생활공간은 인간의 심신 상태를 결정하고 과거의 장소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글을 낳게 한다.
김경자는 공간적 이동을 통하여 자신의 삶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첫 장소는 중부동과 오봉산과 그 자락에 자리한 초등학교이다. 등단작 〈솔방울 꽃〉은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작품으로서 작가의 사람됨의 근원을 추론케 한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교실에 필요한 물품을 자급자족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겨울이면 학교 뒷산으로 올라가 난방용 솔방울을 주웠던 추억과 감상이 잘 드러나 있다. 오봉산과 학교는 “일하는 자는 먹을 수 있다”는 삶의 본질과 진실을 가르쳐주고 가난할수록 부지런하라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경쟁이 아니라 왜 함께 살아야 하는가, 그 가치를 고향에서 배운 것이다. 성장 후 다시 모교를 방문했을 때 그간 키를 키운 솔나무들이 ‘묵묵히 자라거라’ 라는 성장과 성찰을 일러주는 스승이 되어있음을 보고 그 소회를 담담히 적고 있다.
열 살 나이에 보았던 작은 솔방울 종이 유년의 꿈을 키워 주었다면 지금 보이는 솔방울은 더도 덜도 아닌 알맞게 늙은 내 모습이면 싶다. 어린 시절에서 지금까지의 삶을 이루도록 해준 곳이 오봉산과 학교라는 생각이 든다. 지천명이 되었을 친구들도 어디선가 솔방울 불빛을 생각하고 있을 것만 같다. 난롯불을 지피기 위해 흘렸던 매운 눈물이 없었다면 어찌 지금의 내가 있을 건가. 타다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솔방울 꽃이 그립기만 하다.
-〈솔방울 꽃〉 일부
작가는 자연을 지켜볼 때 향수나 아름다움에만 도취하지 않는다. 〈중부동 망향비〉도 향수라는 그리움 외에 고향주민들의 근면과 화합을 예찬한다. 그녀가 거쳐 오고 있는 세월의 길은 낭만적 여유보다는 자력과 자조의 보행으로서 과거를 되살려낸다. 실제 그녀의 인생 간이역은 방송통신대학 시절의 주경야독, 이름 없이 봉사하는 총무직책들, 문해 교실을 거쳐 마침내 광안리 통장직에 다다르고 있다. 시골 강가에서 자란 아이가 도시의 통장을 하게 된 모습은 결코 작은 걸음이 아니다. 비유하면 솔방울이 어느덧 솔숲이 된 것과 다름없다.
성장을 위한 전환점을 밝힌 글은 〈마흔여섯 기념 메달〉이다. 46세의 중년 여인이 자신의 인내심과 자신감을 시험하기 위해 하프마라톤에 도전한다. 질주의 땀을 흘리면서, 또렷하게 자신을 성찰하면서, 성취감 인내심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기록은 사회적 인격체의 원동력이 무엇임을 고스란히 알려준다. 인생에도 마라톤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메시지는 뭉클한 여운도 남긴다. 이후 매사를 마라톤을 할 때처럼 끈기 있게 노력하는 그녀를 곁에서 지켜볼 때면 생활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이다.
작가의 “일 사랑”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예고 없는 이별〉 〈새벽 벚꽃〉 〈이름 없는 포지션〉 〈문맹을 벗는 사람들〉을 손꼽을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성장을 모티프로 하여 자전적 역할을 한다.
〈예고 없는 이별〉은 사회 초년생이 겪는 성장통이 주제이다. 여고를 졸업한 후 발령받은 첫 근무지인 일광면 바닷가 이천마을에서 그녀는 책무와 사랑과 관용과 여유로움을 배워간다. 그때 처음 바다를 만나고 지금까지 바다 가까이에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성년기 삶의 일부임을 반영한다.
쉰 중반의 나이에 만학의 이름으로 시작한 방송통신대학 공부는 〈그 새벽 벚꽃〉에서 감동적으로 회상된다. 독서실에서 야간 자습을 마치고 귀가하는 봄날 밤이면 새하얀 벚꽃 무리가 그녀의 모습을 비추어준다. 철마다 피는 목련꽃, 해바라기, 국화의 유혹을 외면해야 했다. 각종 봉사활동과 가정살림과 직업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런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격려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무정명사’라는 주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식물이든 무생물이든 사계절에 맞추어 자신의 의지를 동작으로 표현한다.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는 생명이 있으나 움직이지 않는 무정명사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이치에 따라 거듭날 뿐인데 감정을 가진 유정명사의 사람들은 그것을 만끽하는 순간 온몸으로 꽃의 생기를 받아들인다.
-〈그 새벽 벚꽃〉 일부
김경자의 생활과 활동 구역이 도시로 옮겨진다. 주거지의 통장 직책을 맡은 것이다. 통장은 뒷자리에서 그림자처럼 모든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솔방울을 따던 오봉산 시절처럼 〈나는 통장님〉에 그려지는 4년 동안 작가는 동네살림을 주부처럼 돌보고 주민들을 가족인양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다. 소녀 가장, 폐지 줍는 할머니, 기초생활 수급자들을 돌보면서 낮은 곳에 임하는 역할을 사랑하기조차 한다. 스스로 “주민을 자주 만나야 하는 통장직이 활동적인 나에게 딱 맞는 일”이라는 확신은 남으로부터 받은 도움만으로도 다른 남에게 봉사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풀이되고도 남음이 있다. 명예를 탐하는 사람이 많은 오늘날, “나는 **님”이라고 당당히 자신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통장님〉의 문맥은 〈문맹을 벗는 사람들〉로 이어진다.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에게 가르쳐주는 문해 수업은 늦깎이에 공부를 한 작가에게 남다른 감회를 준다. 본인도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한 만학도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아직도 문맹자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경자는 주경야독의 체험을 공유하면서 희망이 무엇인가를 전수해준다. 사람은 살아가는 한 모두 학생들이다 “사명감과 조력자로서 의무를 하다 보면 작은 희망 나무가 골목 끝에 곧게 설 것이다.”라는 깨침은 실천자만이 외칠 수 있는 담론이 아닌가.
무성한 숲도 한 그루의 나무가 떨어뜨린 솔방울에서 시작한다. 희망은 작가의 정체성을 이루는 아이콘이다. 그 희망이 〈이름 없는 포지션〉에서 총무라는 직책을 통해 거듭 구체화한다. 김경자의 성품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서 생색내는 자리를 마다하고 묵묵히 뒤에서 받쳐주는 자리를 찾는 그녀는 신망의 열매도 거둔다. 직책과 직분의 뜻은 분명 다르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달콤한 맛과 향을 주는 과일나무가 있어 그때 길이 생긴다”는 설명은 직책보다 직분이 중요하다는 풀이가 된다. “무정명사”로 구현한 작품들을 모으면 작가의 인성의 발자취와 작가정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 부모는 형상으로 말한다
인간은 유전자를 통해 부모의 혈통과 특징을 이어받는다. 부모는 자연이나 사물의 형상을 통해 자신들의 꿈과 삶의 지혜를 자식들에게 전달하고 전수하고 싶어 한다. 그때 선택되는 형상은 도시에 사는가, 시골에 사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김경자의 경우 초기시절의 삶은 자연에 인접한 시골에서 이루어지므로 부모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자연과 결부된다. 아버지의 경우는 마당에 서 있는 나무와 양봉을 하는 산과 숲이고, 어머니에게는 살림살이와 관계된 강정틀과 손등이다. 작품집 제목을 《아버지의 숲》으로 붙인 것도 자신의 정신적 뿌리와 유산이 부모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부모의 삶이라는 모티프로 이루어진 대표작 중의 하나가 〈왕바람나무〉이다. “모두 잠든 밤중에도 우리 집을 지켜주는 나무가 있다”는 처음부터 두 존재성을 갖는다. 하나는 집 마당에 서 있는 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을 지키는 아버지다. 나무는 삼복이 지날 때까지 큰 그늘을 만들어주어 “바람나무집”이라는 택호까지 가져다준다. 작가도 점점 왕바람나무에 수호신과 대들보와 파수꾼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희비애락을 동행한 왕바람나무는 수백 년을 더 살았던들 오로지 무정명사라는 이름만 남길 것을 알았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 가족에게 마지막까지 자신을 헌납한 바람나무는 내 나이 쉰 중반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바람나무는 변하지 않는 마음 속 보석이다. 진정 미래를 읽어내는 만리경이었다.
-〈왕바람나무〉 일부
“가족에게 마지막까지 자신을 헌납”한 대상은 나무만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왕바람나무는 가계를 책임지고 가족과 집안을 외풍으로부터 보호하는 아버지에게 닿는다. 가장을 대주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렴한 공직생활을 그만둔 아버지는 뜻한 바가 있어 양계와 양봉을 시작하였다. 그중에서 인생의 1/3을 차지한 양봉은 변덕스런 날씨와 주변 동네 사람들의 문제와 고독한 산속 생활을 이겨내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곁에서 지켜본 작가는 아버지의 산막 생활을 잊을 수 없다. ‘꽃이 많을수록 근심거리가 많아진다’는 역설은 아버지의 심사를 이해한 딸의 아픔을 반영한다. 봄꽃이 피면 산으로 떠나는 아버지에게 딸로서 작가는 라디오를 꼭 챙겨준다. 그것은 아버지의 산 속 삶을 지켜주는 유일한 반려자이다. 인생의 반려자는 꼭 사람일 필요가 없다. 함께 있고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면 어떤 것이든 반려자이다. 그 감성적 시선 덕분에 작품은 시종 정겨운 체온을 유지한다.
숲 풍경은 오직 아버지의 바라기였다. 어디로 이동하더라도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하늘과 숲이었다. 아버지에게 숲은 꿈이었다. 많은 사람은 도시에서 꿈을 꾼다. 아버지는 화려한 조명 끝에서 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숲에서 꿈을 찾았다. 도시가 발전될수록 멀리 있던 숲은 가까이 다가오고 그럴수록 아버지의 꿈도 가까워졌다.
ㅡ〈아버지의 숲〉 일부
〈아버지의 숲〉은 아버지만의 장소가 아니다. 아버지에게 숲은 돈벌이의 장소이면서 자식들이 잘되기를 원하는 꿈의 공간이다. 산중에 유택을 마련해 달라는 유언도 후일 찾아올 자녀들에게 숲의 진실과 교훈을 알려주려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인지 모른다. 부모란 항상 가족을 위해 살고 죽고 기억되고 싶어 한다.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강정틀과 손등으로 나타난다. 그녀의 어머니도 살림도구로써 모정을 표현한다. 강정틀은 직사각형 자작나무로 짜인다. 〈어머니의 강정틀〉에 소개되는 자작나무틀에는 어머니의 음식 솜씨뿐만 아니라 이웃과 지인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어머니의 자애심이 담겨있다. 작가도 강정을 “어머니표 최고의 간식”으로 표기하면서 어머니의 넉넉한 배려심을 기억하고 본받으려 한다. 자식들에게 주는 모정은 어머니의 손을 거친다. 은목서와 매화와 유채꽃 등 갖가지 꽃이 새겨지는 강정을 ‘꽃판’에 비유한 기법도 늙어가는 어머니에 대한 애상심리에 연유한다. 나아가 낡은 강정틀을 손질하여 소중히 간직하는 자세야말로 어머니가 직접 보여준 교훈을 이어 받으려는 몸의 언어이다.
여자의 세월은 손등에 내려앉는다. 남자의 세월이 굽은 어깨에 놓인다면 여자의 나이는 손등으로 헤아릴 수 있다. 현모양처를 꿈꾸며 시집을 가서 자식을 낳고 키우는 동안 때로는 자식을 먼저 보내면서 가슴엔 못이 박히고 섬섬옥수였던 손에는 주름이 생긴다. 여자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릴수록 손의 주름은 굵어진다. 작가도 남매를 둔 엄마가 되면서 어머니의 손등이 무엇임을 절감한다. 한때 젊었던 어머니가 온통 주름진 할머니가 되었다.
생의 무게보다 더 무거웠을 속내의 짐이 눌린 탓인지 한 번 생성된 혈관의 도드라짐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하얀 손등에 돋은 핏줄과 좁고 굽은 등은 삶의 궤적을 홀연히 나타낸다. 시간이 치유이며 약이다. 힘들고 긴 고통의 시간은 바람처럼 흘렀다. 그렇게 어머니는 크고 작은 일을 겪었지만 상황 대처를 잘하여 차츰 마음이 안정되었다. 스스로 거름이 되어 곡선으로 엎드린 정맥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어머니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의지의 표상이다.
- 〈어머니의 손등〉 일부
작가는 손등에 돋은 핏줄로 여인이 거치는 세월의 흐름을 전한다. 사 남매는 아버지의 강인한 생활력과 어머니의 자상한 보살핌 덕분에 평범하지만 화목한 가정을 각자 이루었다. 그들은 부모의 굽은 허리와 손등 주름을 헛되이 할 수 없다. 핏줄의 강이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한 노고와 사랑을 물려주고 물려받는 것이다. 가문 잇기가 어디 쉬운가. 쇠락한 몸이라는 형상이 부모의 가장 진솔한 이미지라 하겠다.
3. 일하는 존재는 아름답다
인류학적으로 인간을 호모 라보르라고 부른다. 일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존재자는 몸을 움직여 생산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할 때 살아있음의 의미를 얻는다. 《아버지의 숲》이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전할 때 중심적 정서는 일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친밀감이다. 노동을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삶 자체를 완성하는 인간조건으로 풀이하고 있다. 작가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족과 사회를 위하여 일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성을 지켜나간다. 당연히 그녀 주변의 친구와 지인들은 대부분 일하는 사람들이고 수필에 등장하는 모습도 일이라는 소재로 탄탄하게 묶여진다.
〈반 평의 작업장〉은 동네 구두수선공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세상이 풍요로워질수록 백화점에서 옷과 구두를 사지만 낡으면 수선하지 않는다. 리폼집이나 구두수선집의 경기가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그런 풍조를 경고하듯 좁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구두수선공이 의연하다. 그곳을 ‘일인 회사’라 명명하고 일흔 중반의 수선공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두 발과 열 손가락을 움직이는 모습을 경배하듯 그려낸다. 절묘하게 새 구두가 되는 상황엔 경이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장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흘끗 보았더니 섬세함이 엿보이는 열 손가락 끝부분에 굳은살이 있었다. 내공이 쌓여 빛나는 훈장처럼 보인다. 검은 구두약이 손등에 묻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완성도가 빠른 손놀림 덕분에 고객의 기분까지 가벼워진다. 가득히 쌓여 있는 일감은 그저 사장의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 〈반 평의 작업장〉 일부
구두수선공이 일하는 도시의 작업장이 〈산딸기 택배〉에서는 시골로 옮겨진다. 중학교 입학부터 사귐이 시작된 친구는 학창 시절에 나룻배를 타고 낙동강을 오가며 등교한 아이이다. 그때 지켜본 자연의 감화력 때문인지 지금은 어엿한 농업전문경영인의 아내로서 삶을 살아간다. 매년 딸기철이면 옛 중학시절의 동창에게 산딸기를 택배로 보내준다. 그녀의 자상한 친절은 “삶의 목적은 신앙에 가까운 믿음으로 살 때 이루어진다”는 희망으로 이어진다. 산중 산딸기조차 주인의 꿈을 먹고 자란다. 성공도 꿈을 이루려할 때 가능하다는 진실을 전하고 있다.
〈이웃 언니〉는 형제 이상으로 사귀는 지인을 소개한다. 손재주가 많은 지인은 크리스털 공예와 천연 화장품을 만드는 기술을 작가에게 전수해 준다. 성실하면 누군가 독립인격체가 되도록 도와준다는 일화는 “배우고 익힌 것을 남에게 전하는 봉사”의 진정한 가치를 강조한다.
사람은 자신만이 소유한 것을 남에게 쉽게 주지 않는다. 물건도 그렇지만 무형자산이라면 더더욱 남에게 주기 어렵다.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면 전수받을 수 있겠지만 대가가 전부는 아니다. 그녀는 동생 같은 나에게 큰언니의 마음으로 베풀었다. 사랑과 믿음이 서로에게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그녀가 베푼 사랑과 서로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의 중년의 삶을 지켜주는 그녀는 내게는 울타리이자 가장 가까운 동행인이다.
- 〈이웃 언니〉 일부
〈내 친구 말지 수녀〉는 수녀가 된 초중등학교 친구를 통해 봉사와 희생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수녀 친구 소개는 자신이 본받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그 취지를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기에 앞서 가난한 자에게 봉사하는 것이 사랑의 실천임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 그것이 수녀의 본분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어느 정도는 본받아야 할 본모습이라는 것이다. 삶을 바치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가릴 필요는 없지만 그 사람이 자기에게서 먼 사람일수록 진정한 섬김의 대상이 된다는 말은 신앙적인 고백에 가깝다.
김경자는 늘 주어진 자리에서 제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그녀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누구나 ‘총무체질, 천상통장’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신뢰는 그가 누리는 지위나 직책이 아니라 그가 감당하는 직분에 있음을 《아버지의 숲》을 통해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작가의 수필은 읽을 가치를 갖는다. 수필도 필체가 아니라 필력이 본 생명일 것이다.
덧붙이며
모든 수필가들은 자신의 수필집을 갖기를 원한다. 진솔하고 솔직하게 생의 희비애락을 기록하려는 표현욕망은 자신의 인생론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봉사와 공부의 배움터인 《아버지의 숲》은 김경자 작가에게 존재자로서 자신을 응시하고, 가족애를 중시하는 서정의 여과장치 역할을 한다.
〈첫 수필집을 내면서〉에서 작가는 평범한 삶을 추구하면서 “더 높은 곳을 향해 발돋움하는 기쁨”으로 수필을 대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수필이 “세상을 읽을 수 있는 혜안과 넓은 시류를 돌아보는 자아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의식은 작품집 전반에 흐르는 삶의 정수精髓라 하겠다.
수필을 쓸 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들여다보겠다는 진지성이다. 들추는 것이 아니라 응시하는 것. 그 자세가 기도 같은 고백서를 만들어 낸다. 김경자의 《아버지의 숲》을 정독하면서 평자가 새삼 생각해보는 말은 수필은 영육의 거울이라는 점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87500131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12월 27일 |
쪽수 | 232쪽 |
크기 |
148 * 210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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