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여행
2018년 고양시 화정도서관에서 20주 동안 진행된 ‘수필로 쓰는 〈고맙습니다 내 인생〉 자서전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자선전 쓰기반을 졸업한 16인의 합동 수필집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 출간되었다.
친구의 권유로, 책을 낸 옆집 친구가 부러워서, 여행하는 동안 메모해놓은 것을 글로 정리해 보고 싶어서, 딸이 무작정 등록해줘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고 싶어서, 아내가 가자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명예퇴직 후 사는 게 허전해서,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서, 어머니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서 등등 ‘고맙습니다, 내 인생’ 자서전 쓰기반을 찾아온 사연은 참으로 다양했다.
글쓰기 기본 이론을 배우면서 매주 한 꼭지씩 글을 써내려갔다. 자신의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결정적 장면 세 가지, 내 인생의 변곡점, 내가 살았던 집, 나의 소중한 물건, 노래에 얽힌 추억 등 매번 다른 기억들을 소환하면서 즐거움과 괴로움,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수필을 한 편씩 완성해 나갔다.
기억을 들춰내는 일이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다. 기억에 묻어 있는 감정이 즐겁고 좋은 것보다 슬프고 아픈 것들이 많을 수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이들은 매주 수필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면서 한번도 자신을 돌아본 적이 없었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전적 에세이 쓰기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세세하게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고도 했다.
‘자선전 쓰기반’ 지도강사 강진 소설가는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 우리는 화정도서관 교양교실에 모였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카랑코에 화분이 우리들을 맞아주었고 뜻밖의 꽃을 보고 웃으며 한마디씩 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도서관에서 준비한 반려식물이었습니다. 생명력 강하고 꽃이 오래 가는 카랑코에처럼 지치지 말고 다함께 끝까지 가자는 말씀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 ‘고맙습니다, 내 인생’ 강의는 모두 끝났습니다. 여기 묶인 글을 썼던 시간도 이미 과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글쓰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한 우리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도 끝이 없습니다”라며 새로 글쓰기에 입문한 제자들을 격려했다.
작가정보
목차
- 책을 펴내며 나를 찾아가는 여행 · 강진 · 5
이서연 -11
엄마는 원더우먼 | 나비가 쓴 편지 | 수녀님, 나의 수녀님
김현아 -21
우리 옆집에 귀신이 산다 | 민지의 서른 살 인생 | 고위험 산모 병실
박영순 -33
민요와 장구 장단 | 아버지와 고등어와 장어 | 어린이 바이엘 하권 악장 p.83 | 건강 100세 위한 스트레칭
최영란 -49
가장 슬픈 기억 | 월광 소나타 | J와 비 오는 고궁
하미자 -61
꽃단지 | 땅거미 지는 시간 | 센토 사쿠라유
이경열 -71
나의 애장품 나팔 | 내 친구, 어린왕자 | 어머니의 실패
김정순 -85
변하지 않는 것 | 명의, 내 어머니 | 꽃이 진 자리
정봉례 -97
아버지와 극장 | 한산 모시 저고리와 치마 | 붓으로 그린 연잎
배재환 -107
어머니의 STEREO 전축 | 뻐꾸기와 소쩍새 | 기억의 장소들 | 2000. 5. 5. 금. 비. 배. 태섭. 둘째 못함. 순자 울다
정경수 -127
물망초 | 생 장 삐에 드 뽀르 | 어떤 만남 | 나의 4·19
조혜원 -141
시애틀의 비 내리던 날 | 안나의 백지편지 | 독서야행, 당신이 잠든 사이
김동자 -157
나는 죄인이 아닙니다 | 내 마음의 보석상자 | 세 사람
김수현 -171
내 생애 첫 그림책 | 외할머니 | 스무 살 된 줄무늬 피케 셔츠
황수경 -181
수국 | 그립고, 그리운 엄마
채정남 -189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한 권의 책 | 처음 가본 미장원 | 어느 팥죽집 이야기 | 비 오는 날의 지축역
최경량 -203
큰딸이 처음 사준 카메라 | 아버지 은수저 | 더 큰 선물
책 속으로
「나는 죄인이 아닙니다」 중에서
-
김동자
-
엄마는 팥빙수를 좋아하신다. 점심을 많이 먹어서 배부르다며 팔을 내젓는 엄마를 모시고 시원한 카페로 들어갔다. 팥빙수를 한 입 먹으며 아버지 생각이 났다보다.
“얘, 느 아버지는 팥칼국수를 좋아했잖니.”
팥빙수를 사드릴 때마다 빠트리지 않는 말씀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6년째다. 올해가 86세이신 엄마의 마음속에는 엄마보다 훨씬 젊은 아버지가 여전히 살아계신다.
아버지는 61세 되던 12월에 고혈압으로 두 번째 쓰러지셨다. 지금의 딱 내 나이 때이다. 을지로 6가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하셨다. 6인용 병실이 없어서 2인용 병실에 며칠을 혼자 계실 때다. 아버지와 나, 둘만이 창밖에 쏟아지는 함박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고 문이 열렸다. 정장으로 말쑥하게 차려 입은 젊은 두 남자가 들어섰다. 얼굴에는 더 없이 선한 미소를 머금고.
자신들은 아픈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기도해주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교회 전도사였다. 아버지에게 기도를 해주겠단다. 아버지는 극구 사양하셨다. 나는 눈 속을 뚫고 온 그들을 생각하며 아버지를 설득했다
“아버지 기도만 받아보세요.”
아버지는 억지로 눈을 감는다. 전도사가 먼저 ‘사랑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따라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하아∼느님’이라고 따라했다. 곧이어 전도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때 아버지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죄인이 아닙니다’라고. 이번에는 전도사들도 눈을 떴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요지는 ‘자신은 충청도 산골에서 농사만 짓던 무지렁이다. 하지만 60평생 남에게 해 입히지 않고 정직하게 살려고 애썼다. 자식들도 욕먹지 않게 키웠고 동기간들과도 우애있게 지냈다. 이웃들하고도 서로 도우며 살았고, 부자는 아니라도 집에 찾아와 손 벌리는 사람 빈손으로 보낸 적 없었다. 사람의 도리는 하고 살았는데 왜 죄인이냐’는 거였다.
아버지는 ‘죄인’이라는 단어를 도덕적 기준으로 해석하셨고 얼굴은 노기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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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장소들」 중에서
「기억의 장소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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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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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1987년 종로
서울 종로 낙원상가 옆 아구찜골목 동편 한옥 동네. 그간 개발제한으로 낙후되어 있던 지역인데, 지난 1년 사이에 재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옛 한옥의 지붕과 뼈대는 살리고 내부만 현대식으로 바꾸었다. 모두 살림집이 아닌 상가 건물로 변신했다. 특색 있는 카페, 식당, 빵집, 전통찻집, 레지던스호텔이 옛스런 좁은 골목길을 따라 줄지어 있다. 퇴근 후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장소로 되살아났다.
1987년 여름 종로. 그 해 봄부터 정국은 가팔랐고 최루탄은 매웠다. 시청 광장과 종로와 대학로가 민주화의 함성과 최루탄으로 범벅이 됐던 시절. 나는 삼일빌딩에서 ‘소’를 키우고 있었다. 그 시절 명동, 을지로, 청계천상가, 낙원상가와 피맛골과 그 주변 주택지는 데모대가 백골단과 경찰의 추적을 피해 숨었던 피난처였다. 명동과 을지로와 종로에서 ‘소’나 키우던 넥타이부대가 데모대에 합류했을 때 6·29선언이 나왔다. 우리는 함성을 질렀고 그날 저녁 ‘소’도 잊어버린 채 낙원상가 옆에서 밤새 술을 마셨다. 주인도 손님도 민주화의 그 열매가 마치 자신의 공인 양 의기양양했다. 술값은 받지도 내지도 않았다. 지금의 저 종로 뒷골목에 한때 그런 때가 있었다. 한때 거기 우정과 연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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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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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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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정식으로 성악 레슨을 받아본 적도 없다. 성악은 취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음악 선생님이 성악을 전공해보라는 권유가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타고난 성량과 좋은 음색을 가졌다고 음악 선생님께서 칭찬해주셨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당시 성악곡 LP판을 들으며 악보도 없이 LP판 뒤 커버에 인쇄된 가사만을 가지고 성악가 흉내를 내며 불렀던 것 같다. 특히 공부하다가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이중 유리창문을 닫고 혼자서 노래 부르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등산을 가면 산에서도 부르고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그다지 큰 거리낌 없이 노래를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들으면 즐거워하며 많은 갈채를 보내준 것 같다. 특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안 조그만 마을 광장, 성당과 숙소에서 우연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이 노래들을 통해 수많은 현지인과 순례자들에게 기쁨을 선사한 것 같아 아직도 마음이 흐뭇하다.
2013년 내 환갑 때 아내가 선물로 기념 CD를 내주겠다고 했다. 다른 어떤 선물보다 더욱 값지게 생각되었다. 인간의 목소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윤기가 떨어질 뿐 아니라 고음에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 와이프는 내 목소리가 늙어서 더 녹슬기 전, 아직도 윤기가 있을 때 녹음하자고 했던 것 같다. 다행히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조카가 외삼촌의 환갑기념 음반 반주를 기꺼이 해주겠다고 해서 음반 제작이 용이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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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ISBN | 9791187413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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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출시)일자 | 2018년 11월 30일 |
쪽수 | 212쪽 |
크기 |
148 * 210
* 18
mm
/ 356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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