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넌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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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박병수
경남 창녕 출신으로 2009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했다.
현재 영남시 동인, 시산맥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작가의 말
● 프롤로그(prologue) 첫 번째 세상 암흑, 두 번째 세상 암흑, 세 번째 세상 암흑, 그리고, 사막 詩,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이 있다. 천리밖에 그 말의 집이 있을 것이다.
목차
- 차례
● 프롤로그(prologue)
1부
사이렌
열흘
에덴의 깊은 밤
신을 드립니다
식음하는 당신을 식음하는
이주자의 달
부엉이와의 동행일지
사막을 건넌 나비
흑점
짐승과 연못
2부
저문 강
인셉션
안개제국
이때의 아이들
개미집
머큐리
반영월식
빙궁(氷宮)
일곱 난쟁이와 나타샤
무거운 돌
3부
나비문신
황무지?
귀환
검은 눈이 사라진?쥐와 넝쿨장미와 나와 고양이와 작은
사과 하나가 배달되는 낮 12시?
탈무드의 어원을 떠올릴 때
애벌레
키워드
유리물고기
석총(石塚)
거울
4부
숭어
익사자
낡은 액자
붉은 눈
달콤한 칩거
손잡이
절지새
짜부예차카 이야기
알키투더스 추모기
경계의 술사들
감나무통신
■시집 해설
어둠과 밤을 가로질러-박병수의 시 세계 / 구모룡
책 속으로
[시집 해설]
어둠과 밤을 가로질러
-박병수의 시 세계
구모룡(문학평론가)
우나무노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더 많은 빛이 아니라 더 많은 볕임을 말한 바 있다. 차가운 빛이 아니라 따스한 빛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어두운 시대를 경험하면서 내린 실존의 진단이다.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려 한 인간의 역사가 더 짙은 암흑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어둠과 빛은 낮과 밤처럼 삶의 양면이다. 이 둘은 빛 속에서 그림자를 거느리듯이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박병수 시인의 시적 사변은 단연 어둠과 밤을 지향한다. 그는 현대의 이성과 계몽이 몰아낸 심연으로 다가서려 한다. 물론 시인의 의도는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한다. 고갈과 폐허의 내면의식이 외부의 어두운 풍경과 만나고 있다.
돌아보니 안개 대신 모래를 흘리면서 바람이 바람의 방향으로 걸어간다 액막이 무녀가 다녀간 뒤 반세기 전의 내가 반세기 후의 무릎에 기대어 잠이 들어 있었다 무너진 집터에는 흰개미가 갉아먹은 문설주와 서까래, 폐허에 머무르다 성체가 된 나비는 꽃이 판 구덩이로 돌아왔다 혼몽을 이마에 묶으면서 명부를 찾는 동안 여름에 진 꽃의 저주가 사막이 되지는 않았지만 바닥의 얼룩을 닦아내자 사막은 시작되었다 허물어진 벽 뒤에서 어금니의 말이 모래를 남기고 사라진다 무덤 이전, 나비 이전의 나의 손이 낙타를 끌고 왔다 꿇은 자의 무릎은 목을 조여도 무릎이었다 안개가 부족해서 하늘의 소리를 듣는 새벽, 모래알 하나마다 천개의 유령이 살고 있다 사막을 벗어나려 다시 사막을 걸어간다 모래를 뿌리면서 바람의 방향을 가늠한다 모래가 공중에서 흩어지면 종횡으로 떠다니는 유령의 음문, 혼몽도 악몽처럼 귀신이 남긴 응답이어서 낙타에 기댄 잠은 꽃을 보게 되었거나 이미 죽은 나비였다 명부에 들지 못한, 잠은 구천을 떠돌다가 모래언덕을 걷고 있다 혼몽은 암설지대를 지나면서 금이 가기 시작한다 무릎의 입속에서 모래를 꺼내주었다 귀신이 다닌 길을 피하면서 산을 오를 까닭이지만, 모래는 한 번도 산을 오른 적이 없다 숲속으로 들어서자 벌레의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돌아서서 한참 동안 바라보니 바람이 슬은 나비였다 (「사막을 건넌 나비」 전문)
표제시인 「사막을 건넌 나비」는 시 속의 주인공이 “혼몽”의 단계를 지나 꿈에서 만나는 이미지들을 기술한다. 혼몽은 밝음에서 어둠으로, 각성에서 가벼운 수면으로 기우는 과정을 말한다. 이는 달리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접어드는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안개가 모래로 바뀌는 사태도 이러한 경계의 표현이다. 흐르는 바람은 의식의 지향에 다를 바 없으며 혼몽 상태에서 자아는 분열한다. 곧 잠으로 진입하면서 꿈속에서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고 존재의 거처라고도 할 수 있는 폐허가 된 집터의 풍경에 도달한다. 꿈속의 주인공은 낙타를 거닐고 사막을 걷는다. 안개로 상징되는 물은 끝없이 모래로 고갈된다. 말은 사라지고 생명은 소진한다. 악몽으로 환각을 보면서 귀신의 응답을 듣거나 구천을 떠돈다. 모래언덕을 지나고 돌과 눈이 쌓인 지역을 거치면서 숲속에 당도하는데 여기서 “벌레의 울음소리”를 듣고 바라보니 “바람이 슬은 나비”가 나타난다. “모래가 흩어지면 종횡으로 떠다니는 유령의 음문”이 보이고 “명부에 들지 못한” “죽은 나비”가 출현하는 이미지들이 말하듯이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꿈의 장면들이다. 시 속의 서사는 입몽에서 각몽에 이르는 하나의 단면을 진술하고 있으나 사막, 폐허, 죽음을 거치는 경험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못 심각하다. 아슬하게 귀신을 피하여 숲에 이르는 경로가 신생의 자각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섣부른 의미 부여를 허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비”에 투사된 자아의 표정이 그렇다. 단지 일시적인 악몽으로 그치는 이미지들이 아니라면 지독한 자기부정이나 환멸 의식이 개입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와 같은 고갈과 소멸의 판타지는 「사이렌」에서 거듭 변주된다.
바람이 사이렌처럼 울어댔다 나는 낮과 밤이 왕래하는 창가에 앉아 바람의 세기와 유리창의 흔들림을 바라보며 담장 아래 고여 있는 사계절 꽃물로 낯익은 소년의 머리색깔이나 바꿔 놓고 있었다 사이렌은 요란했다 바람이 되고 남은 오후는 사이렌이 되는 게 분명했다 하나로 모은 귀는 사이렌의 것이었다 그런 후에 천천히 먼지가 되어가는 사람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마른 꽃으로 묶은 날은 골목길을 걸어가도 서러웠다 소년은 낡은 천 조각에 싸여 있던 한번 본 남자보다 더 오래 남자가 되어야 할 것이고 사이렌은 슬픔만큼만 창문을 열고 소년 곁에 서 있었다 바람은 경광등 불빛처럼 급하게 달려가고 한번 본 남자는 그보다 더 오래 누워있는 사람들을 이미 만난 적 있다 소년은 창가에 서 있는 사이렌을 머리맡에 옮긴 후에 마른 꽃대로 쓰러진다 태풍이 오고 여름이다 바닷물이 다 쏟아질 때까지 우기이다 해가 바뀐 후에도 사이렌 소리는 요란하고 창문을 열고 있던 소년이 시신처럼 흐느낀다 (「사이렌」 전문)
이 시에서도 변화는 바람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막을 건넌 나비」에 등장하는 두 자아인 ‘반세기 전의 나’와 ‘반세기 후의 나’는 여기서 “나”와 “소년”의 관계로 치환한다. 바람이 사이렌으로 바뀌면서 “천천히 먼지가 되어가는 사람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떠오르고 “낡은 천 조각에 싸여 있던 한번 본 남자”가 등장한다. 이 남자는 “그보다 더 오래 누워있던 사람들을 미리 만난” 사람이다. 모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바람과 사이렌은 죽음의 방향을 표현한다. ‘나’의 자리에서 소년이 “시신처럼” 흐느끼는 데 이르러 시적 자아가 소년을 투사함을 알 수 있다. ‘한번 본 남자’보다 “더 오래 남자가 되어야 할” 소년은 ‘나’의 분신에 가깝다. 폐허 혹은 죽음이 난무하는 세계에 존재하는 소년의 이미지는 어떤 의미일까? 이는 사회적 자아(me)를 넘어서 진정한 자아(I)의 모습을 갈구하는 소망과 연관된다. 이는 「에덴의 깊은 밤」에서 어둠과 밤을 가로질러 “울지 않는 아이의 표정으로 개와 나는 에덴으로 돌아간다”는 진술에 등장하는 시적 자아에 상응한다. ‘아이’와 ‘소년’은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삶의 표징이다. 폐허 이전의 기원인 에덴의 지평에 존재하는 이상적 자아라 하겠다. 「식음하는 당신을 식음하는」에 등장하는 “크리스토포루스”는 ‘그리스도를 업은 자’를 의미하는 성인이다. 그가 등에 업어서 강을 건넌 아이가 그리스도였으니 “열광하는 어둠”에 휩쓸린 시적 화자가 갈구하는, ‘거듭난 삶’의 표상에 다를 바 없으리라 생각한다. 분명 시인은 고갈과 폐허, 어둠과 밤의 시간 이후에 회심의 공간을 간구한다. 하지만 이를 두드러지게 드러내지 않는다.
달무리를 나이테로 읽는 밤이라네 시계 속의 부엉이를 껴안고 잠이 드네 꿈을 꾸지 않아야 하였었네 나는 사막을 걷고 있네 처음 본 타클라마칸 바람은 구멍이 숭숭하네 구멍 속의 구멍으로 인기척이 들리네 얼굴 가린 사람들이 나를 밟고 지나가네 몸 여기저기가 무너져 내리네 발목이 사라지고 가슴 부위가 산란되네 어떤 별이 코끼리처럼 슬피 울며 부서진 나를 먼 곳으로 데려가네 사람이 그리워지네 풀 한 포기 없는 모래강이 내 몸에서 만들어지네 낯선 울음이 황사를 저으며 다가오네 모래 속에 묻혀있던 아직 썩지 못한 어떤 이가 흐린 별을 툭툭 차며 걸어오고 있네 처음 만난 사람과 낯선 길을 동행하네 꿈이 깰까 두렵네 하늘과 땅은 모래주머니, 부엉이가 잠에서 깨어나면 모래주머니가 터질 것이네 아무도 모르게 부엉이를 죽이고 있네 (「부엉이와의 동행일지」 전문)
이 시가 말하듯이 시인에게 “밤”의 정황은 지속적이다. 시적 화자는 꿈을 거부하지만 꿈의 서사는 반복된다. 사막을 걷고 바람이 부는 가운데 죽음 혹은 자아의 소멸이라는 환상이 재귀적 반복의 이미지로 거듭 등장한다. “풀 한 포기 없는 모래강이 내 몸 속에서” 만들어지는 경험을 겪고 “처음 만난 사람과 낯선 길을 동행”하면서 오히려 “꿈이 깰까 두렵네”라고 시적 화자는 진술한다. 죽음 충동이 하나의 시적 지평이 되었다. 시인은 에로스보다 타나토스에 이끌린다. “문득 내 행적이 누군가에게 꽂힌 암전이었나, 천변에 핀 꽃들에게서 화살촉을 보았다//난치성우울증을 앓고 있는 슬픔의 심부에서 목을 조였을 화살들, 촉 끝에 깊이 박혀 붉게 번전 꽃들//붉은 색을 마주하면 돌아와 준 슬픔들이 다정하다//나는 지금 죽은 자들이 가득 찬 사과의 껍질을 깎고 있다”(「흑점」에서)라는 구절이 말하듯이 시적 화자는 사물들로부터 죽음의 흔적을 만나는 저녁의 시간에 익숙하다. 물론 “붉은 색을 마주하면 돌아와 준 슬픔이 다정하다”라는 진술에 역설의 기미가 있다. 타나토스가 생성하여 환기하는 생의 의미가 아닐까? 이는 “누군가 어둠을 뚫고 있네”로 끝나는 「저문 강」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밤의 강을 “거슬러 오를” 의지를 지닌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시인의 시적 경향 전체를 대변하진 않는다. 여전히 시인의 시적 세계는 “만져보면 모든 것이 녹이 슬고”(「안개 제국」에서) “폐가의 날들”(「이때의 아이들」에서), “순장 당한 세월”(「낡은 액자」에서)이 기억되는 지향 속에 있다. 시인은 “무작정 폐허를 꿈꾸고 있었으므로” “나는 조각난 날개로 가설된 행궁이다”(「개미집」에서)라고 말한다.
출판사 서평
[책속으로 이어서]
해를 밀어올린 전갈이 제 몸을 뒤집어 밤을 건너는 동안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달과 별의 사체였다 우는 것과 울음소리를 듣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달빛은 벌레가 되고 울음 속에 갇혀 울고 있는 짐승은 양이 되는 신목의 그루터기, 나눠가진 잠을 들고 사람들이 사라진다 무거운 잠을 가진 사람은 너무 많은 칼이 만든 돌멩이처럼 멀리 더 멀리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달이 부서진다 별똥별이 쏟아진다 어둠을 떠돌다가 아무렇게나 떨어져 죽은 달과 별의 눈가를 닦으며 혼자 잠들고 혼자 잠을 깨는, 벌레여! 그들의 무덤 아래 내가 잠 들었으니 새들을 이어붙인 수레라고 할지라도 나의 잠을 네 곁으로 옮겨 놓지 못하겠구나 잠을 만들고 남은 조각으로 사다리를 만들었으니 사람들이 새겨 놓은 소원들로 하늘은 어두워졌다 벌레의 울음이 담을 넘다 스며 있다 말라붙은 울음은 파내야겠다 울음을 파낸 자리에 해의 뼈가 발견되었다 흙이 묻은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으니 또 저녁이 되었구나 무거운 것 하나를 놓아버린 흔적, 깊은 구멍처럼 울어대는, 벌레여! 너의 잠을 움켜쥔다 아무리 멀리 던져도 돌이 돌에 부딪친다 (「황무지」 전문)
도저한 내면 풍경을 발화하고 있다. 이 시에서 외부와 내부는 연상과 환상의 연쇄로 이어진다. 의식과 무의식이 겹쳐 있어서 자아의 바깥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 설혹 어떤 “황무지”가 실재한다고 하더라도 이 시가 말하는 사건과 이미지들은 ‘내향 투사’의 산물이다. 해가 있는 낮은 사라지고 “밤을 건너는 동안” 꿈속의 이야기이다. 종말을 담은 영화의 한 장면같이 하늘에서 달과 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사라진다. 온통 생존이 벌레의 처지가 되었는데 이러한 벌레들의 “무덤 아래” 시적 화자가 잠들어 있다. 도무지 잠에서 헤어나 타자의 곁으로 갈 수 없다. 낮이지만 어두운 하늘이고 빠르게 저녁이 되고 만다. 새의 비상도, 사람들의 소원도, 울음마저 말라붙은 “황무지”이다. 여기서 “무거운 것 하나를 놓아버린 흔적, 깊은 구멍처럼 울어대는, 벌레여!”라고 화자는 탄식한다. 자아는 추락한 벌레와 같아서 잠에서 벗어나는 출구는 없다. 그러므로 황무지는 시적 자아의 몸이자 의식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폐허에서 놓여나는 길은 결코 없는가? 그건 아니다. 다만 시인의 시적 지평이 세계에 대한 환멸과 자아 소멸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어떠한 자전적 연유에서 내적 황폐함으로 의식을 견인하는가에 대하여 알기 어렵다. 가령 「일곱 난쟁이와 나타샤」와 같은 시편은 비교적 시적 조사(poetic diction)에 충실하다. 백석의 시에 일곱 난쟁이와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병치하는 패러디 기법을 원용하였다. 백석을 흰 눈 또는 각설탕으로 치환하거나 그의 시 속의 ‘나타샤’를 시적 화자가 만나는 과정을 연상한 방법이 재미있게 읽힌다. 비상하는 새의 귀환을 “지도를 펼쳤다가 알맞게 접는 순간 새들이 돌아온다”(「귀환」에서)라는 결구로 맺은 「귀환」이나 의식과 심리의 안과 밖을 병치하고 있는 「검은 눈이 사라진 쥐와 넝쿨장미와 나와 고양이와 작은 사과 하나가 배달되는 낮 12시」, 그리고 소녀의 욕망을 “문신”이라는 이미지를 얻어 표현한 「나비문신」과 같은 시편들이 아름답다. 「탈무드의 어원을 떠올릴 때」는 가마솥에 소머리를 삶아 고우는 이야기인데 이를 ‘심우도’를 연상하게 하는 어떤 배움으로 승격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시편은 박병수 시인의 시작에서 주류가 아니다. 가령 여름이라는 절기의 노동과 삶을 말하는 「애벌레」에 있어서도 시적 자아와 벌레를 동일시하는 퇴행 욕구가 발현한다. “실어증이 발병하기 전이라네 나의 잠은 샛강처럼 마르다가 성충이 된 벌레, 눈은 겨우 끔벅인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유리물고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무의식의 시학을 지향하는 시편들이 주된 흐름이며 대부분 난해의 커튼을 드리운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백일몽은 존재를 해방한다고 한다. 낮의 꿈은 의식의 소산에 가깝다는 말인데 밤의 꿈은 프로이트의 말대로 억압된 욕망의 분출에 상응한다. 자주 어둠과 밤으로 기운 박병수의 시편들은 백일몽의 기미는 거의 없다. 황무지 혹은 폐허의 자리에 잠든 자아가 있으며 자기를 부정하는 우울과 소멸 충동에 시달린다. 간혹 「멜랑콜리아」나 「인셉션」과 같은 영화를 연상하게 만드는 시편들도 있으나 시인의 의도는 영화를 실마리로 자아를 말하려 한다. 나르시시즘과 다른 자기부정의 무거움이 주조를 형성하고 있다. 「거울」이 진술하고 있듯이 시인은 거울 속의 “페병쟁이 아버지”를 지우려 하거나 자아의 분열과 무화(無化)를 거부하지 않는다. 박병수의 시편들은 나르시시즘의 표백이 아니라 고통받는 자아를 껴안고 존재를 부정하는 극단의 상상력을 나타낸다.
시인이 상정하는 구체적 삶의 정황은 “사실상 물속에 살고 있는지도 몰라 더 깊은 심해로 떠날 수도 뭍으로 오를 수도 없는 방치된 어떤 풍문”(「숭어」에서)과 흡사하다. 그림자, 어둠, 밤은 시인이 삶을 말하는 표상들이다. “나의 잠은 물방울에 갇혀 있다 집은 어둠을 비우려고 창문쪽으로 기울었다”라는 결구를 지닌 「익사자」는 “밤의 묶음”이라는 존재의 상황을 표출한다. 시인의 시적 자아들은 때론 “벌레의 눈”(「붉은 눈」에서)을 하고서 잠들지 못하고 슬픔과 고통의 강인 아케론을 배회하거나 “죽음보다 깊은 잠”(「달콤한 칩거」에서)에 빠진다.
세상의 길은 감나무로 이어졌다 구름 사이를 걸어왔거나 어둠 속을 날아왔거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겨울에 떠난 어머니가 그늘 드리우며 감나무 가지마다 앉아 밤낮없이 감나무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석 달 가뭄에도 끊이지 않는 울음의 뿌리는 어디일까 감나무 밑동을 더듬을 때 오돌토돌 물기 숨긴 가파른 껍질이 만져졌다 감꽃이 필 때부터 집안 어딘가에서 떫은 감물이 말매미 울음으로 스며 나와 꼭꼭 씹은 구름이 마당 귀퉁이에서 우표처럼 부풀었다 처마 밑에서 어미 제비가 배냇짓 집을 짓고 꼬리조팝나무는 제비집을 바라보며 고봉밥을 차리곤 하였는데 떫은 감물 말고는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다 내 몸의 뜬눈들이 감나무 가지마다 흔들리고 붉은 눈시울이 꼭지에서 떨어졌다 시월이었다 (「감나무통신-에필로그」 전문)
박병수의 시편에서 가족사의 편린은 두드러져 있지 않다. 부모가 등장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로 등장하는 시편들이 있다. “불편한 공기처럼 먼지를 닦아내면/죽어버린 아버지,/무릎으로 부축하니 당신이 만져진다”로 끝을 맺는 「손잡이」가 아버지에 대한 헌시라면 인용한 「감나무통신」은 어머니에게 바쳐진다. 무엇보다 이 시를 시집의 에필로그에 두었다는 의도를 주목한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하여 삶의 원천인 물의 의미를 회상한다. 생명의 물은 바로 기원의 어머니이며 그 물이 흐르는 감나무가 자아의 중심에 서 있다. “떫은 감물”을 아는 “나”는 감나무가 있는 유년의 풍경에서 나무의 철학을 익힌다. 신산한 삶의 가운데 감나무가 있고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 감나무를 바라보며 시적 화자는 “붉은 눈시울”로 홍시 같은 눈물을 흘린다. 회한을 품은 생의 감각이 민활하다. 어쩌면 이러한 감각이야말로 박병수 시인의 시적 가능성이자 지속성이 아닌가 한다. 폐허를 딛고서 가느다랗게 푸른빛을 예감하는 지각이 요긴하다. 「경계의 술사들」이 말하고 있는 지평이 이러한 기대를 담보한다. 길에서 죽은 고양이와 자동차의 바퀴 그리고 그 주변의 벚나무들을 어울려서 “내가 잠든 곳은 새 떼를 꿀컥 먹어버린 늙은 고양이의 뱃속, 달의 눈을 파먹고 왕벚나무의 나이테에 숨어버린” 경계라고 말한다. 이미지들을 얻고 조합하는 기교가 빼어나다. 「알키투더스 추적기」나 「자각몽」에 내재한 긍정의 기미들이 또한 종요롭다. 전자의 경우 “그의 집은 언제나 불빛 없는 깊은 바다”이었지만 “불빛 환한 그의 집”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얻는다. 후자는 여행과 순례를 통하여 밤을 지나면서 “꿈에서 본 동뢰(同牢)”를 경험하고 사랑을 다시 찾는다. 비록 신화에 의탁한 발상이지만 환멸의 터널을 지나 생의 활기를 얻는 대목이다. “이제 그만 이글루 이글루의 천장을 장식할/불빛에 대해서 고민하지”(「빙궁」에서). 얼어붙은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대지의 기운을 호흡할 때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86871645 ( 1186871644 ) |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12월 24일 | ||
쪽수 | 120쪽 | ||
크기 |
130 * 210
* 14
mm
/ 206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창연기획시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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