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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쓸모

그리움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신동호 저자(글)
책담 · 2015년 05월 26일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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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쓸모 상세 이미지
『세월의 쓸모』는 추억으로만 머물지 않는 세월에 대한 기억의 향연, 신동호 시인의 사진 에세이이다. 시인의 단상은 오래되고 촌스럽고 낡은 사진에서 시작하여, 인간적인 허허실실 즐거움의 현장을 배회하다가 현재의 슬픔과 고독에 날카롭게 귀착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세월의 회고가 단지 추억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향한 어떤 ‘쓸모’의 지점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신동호

신동호

저자 신동호는 강원도 화천 강마을에서 편물기술자인 어머니와 다정하기만 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안개 가득한 춘천의 순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며 문학에 젖었다. 강원고 재학시절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1992년 〈창작과비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시집이었던 《겨울 경춘선》은 1990년대 거리의 청춘들에게 보내는 절창의 연서였다. 20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는 역사의식의 서정적인 시화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금은 한양대 겸임교수로 있다. 시집으로 《겨울 경춘선》 《저물 무렵》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산문집으로 《유쾌한 교양 읽기》 《꽃분이의 손에서 온기를 느끼다》 《분단아, 고맙다》 등이 있다.

목차

  • 프롤로그 수많은 ‘나’를 만나시게 되길…

    1부 바람의 속도를 경외하다
    숨바꼭질 前後|못 찾겠다 꾀꼬리|감각|봉의산|흐르는 강물처럼|월미식당|극장|강촌역|방앗간|이발소 그림|등화관제|겨울 경춘선|동네 목욕탕|종로서적|오징어놀이|국기하강식|장촌냉면집|골목

    2부 삶은 자주 단순하다
    구슬|연탄|똥|아이스케키에 관한 연구|고무신 사용법에 대한 보고서|캐시밀론 담요|개에 관한 고찰|한반도 모양 자|화토|파카 45|경월소주|비둘기호|서울우유|신문지 한 장|라라|롬멜 전차|스피드 스케이트|양미리|라디오 키트|간드레 불빛|원기소|못난이 삼형제|짐자전거|은하수|공중전화

    3부 이름 부를 수 있는 것이 모두 아름다움으로 살아 빛나는 저녁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이 한 권의 책|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滿月|회상|영아의 告白|똘이장군|별이 빛나는 밤에|원주율|소나기|보고 싶어요|여로|괴도 루팡|도망자|설빔|제비우스|미제 아줌마|스무 살|율리시스|편지

책 속으로

수많은 ‘나’를 만나시게 되길…

과거가 쌓여서 지금의 ‘나’가 된 건가요? 세월이 ‘나’를 구성한 건가요? 지금의 ‘나’로 살기 위해 예전의 ‘나’로 살았단 말입니까? 지금의 ‘나’는 다가올 어느 날을 위해 웃고 울고 있는 건가요?

아닐 겁니다. 어떤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어지는 연속성 안에서 인간의 마음은 안전하다고 느낀다지만 불행하게도, 불연속적인 ‘나’는 너무나 많습니다. 과거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고, 수많은 ‘나’를 만나는 일만으로도 세상은 놀랍도록 다채롭습니다. ‘나’는 어떤 것과도 다른 시간이, 뒤섞인, 소중한 존재입니다.

세월은 수평으로 쌓이지 않고 수직으로 서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뒤죽박죽. 시간은 기억과 맞닿자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가져오면 되는, 그러면 그 자체로 의미를 갖게 되는, 비로소 세월도 시간도 ‘나’에게 쓸모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억지로 이어 붙이던 논리가 사라지자 모든 ‘나’가 지독히 평범한 것들과 함께 안갯속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많은 ‘나’를 건져냈을 때, 마구 버려지던 것들이, 마구 잊었던 것들이, 낡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 것들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입니다. 오래된 사진첩의 젊은 어머니는 ‘나’를 낳기 위해 예비하고 있는 어머니가 아닙니다.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였고, 잠시 ‘나’는 그저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낡은 것, 지나간 것, 또 애매한 것을 사랑합니다. 그건 모든 ‘나’를 사랑하는 일일 겁니다. 손을 내밀어 무엇인가를 움켜쥐어봅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머문 당신의 눈길이 고맙습니다

_프롤로그, 5-6쪽

숨바꼭질 前後

국가가 나를 키워주려 한다. 나는 (누가 나를 키워주기엔) 너무 많이 고독해보았다. 머리를 박박 깎고 교복을 입어보았다. 우편물 하나에서도 권력의 공포를 보았다. 아들이 어렵게 사춘기를 넘어섰는데 국가는 나를 어린애 취급하려 한다. 그런 취급이 익숙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러기엔 너무 오래 외로웠다.

저문 골목길의 단절은 어디 갔는가? 가끔 친구들은 술래를 두고 슬쩍 집으로 가버렸다. 또 가끔 너무 잘 숨은 나를 두고 술래는 찾기를 포기했다. 어둡고 배고프고 무서웠다. 나를 버리고 간 친구라니? 나를 찾아주지 않는 국가라니? 자주 세계와 단절된 골목길은, 그러나 스스로 어른이 되는 공간이었다.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기차에 홀로 남겨지곤 했다.

국가의 관리 하에서 키워질 때 추방은 두렵다. 자칫, 대한민국으로부터 유기(遺棄)되기 쉽다. 그러나 날은 저물어 고독하고 고독이 서로를 부른다. 술래가 나를 찾아 저녁으로 데려갈 때 그건 꼭 승리를 의미하지 않았다. 발견됨으로써 술래 또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오늘 우리는 서로를 구출해야 할 골목길에 다다랐다.

_1부, 15-17쪽


동네 목욕탕

늙은 아버지가 사우나, 찜질방엔 없고 목욕탕엔 있다. 타일은 늘 미끌거렸다. 물때 때문이었을까. 사람이라면 으레 풍기기 마련인 물비린내도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들이, 일주일 내내 험한 소리를 들은 아버지들이 귀를 씻고, 일주일 내내 발을 씻지 않은 어린 아들의 살을 벅벅 밀어주던 아버지들이, 때를 벗겨내는 만큼 계급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아버지들이, 일요일 아침이면 목욕탕에 가득했다.

몸이 으스스하도록 겨울바람이 불면 김이 뽀얗게 서린 동네 목욕탕이 생각난다. 살이 벌게지도록 때를 밀어주시던 아버지가 거기 있었다. 수건을 접어서 이태리타월에 집어넣는 방법을, 나는 지금 아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명절 앞이면 아들을 데리고 되도록이면 작은 목욕탕을 찾는다. 온탕에 몸을 담그면 아랫도리부터 뜨끈뜨끈하게 아버지 생각이 올라온다. 그런 날이면 나도 모르게 아들에게 바나나우유를 권한다. (아버지는 삼강사와를 사주셨다. 왜 삼강사와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걸 마시는 재미로 온탕의 고통을 참았을 것이다.)

옷을 벗는 일은 간혹 세월을 확인하는 일이다. 벗은 몸뚱아리를 보는 일은 매번 세월을 확인하는 일이다. 구석구석 때를 밀다가 사타구니에 자란 흰털을 발견하는 일은 세월의 거리를 가늠하는 일이다. 발뒤꿈치나 팔꿈치를 사랑하게 되려면 때를 밀어보아야 한다. 아들의 등을 밀어주다가 문득 “어깨가 믿음직하다”고 느껴보려거든 사우나 말고 동네 목욕탕의 키 낮은 의자에 앉아보아야 한다

_1부, 53-55쪽

파카45

(스승은 인생의 길에 등불을 밝혀준다.) 시인은 자기 삶에 당당했다. 작은 몸 어디에서 삶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이 솟아 있었다. 갓 입학한 고등학교 한문 시간에 시인을 보았다. 그분에게 매료되어 백일장에 나가게 되었고 또래들 보다 늦게 문예부

출판사 서평

인생은 더디더라도 한곳으로 간다
“오늘 당신께서 강이 그립다면 세월이 곧 당신이 되어버린 까닭입니다.
당신이 흘러서 여기까지 왔다면 이미 강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품고 말이지요.”

인생은 더디더라도 한곳으로 간다
세월은 어떻게 내일의 희망으로 변주되는가


추억으로만 머물지 않는 세월에 대한 기억의 향연, 신동호 시인의 사진 에세이. 시인의 단상은 오래되고 촌스럽고 낡은 사진에서 시작하여, 인간적인 허허실실 즐거움의 현장을 배회하다가 현재의 슬픔과 고독에 날카롭게 귀착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세월의 회고가 단지 추억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향한 어떤 ‘쓸모’의 지점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신동호 시인은 이번 에세이를 통해 세월의 흔적을 반추하며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의 희망을 가늠한다. 풍경, 사물, 사람에 대한 회고로 구성된 1~3부는 모두 60여 꼭지의 사진과 단상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의 어린 시절을 형성했던 ‘춘천 봉의산’과 ‘육림극장’, ‘경춘선’과 ‘강촌역’, ‘동네 목욕탕’과 ‘골목길’에서 결성하고 결행했던 사랑의 결기와 우정의 연대에 관한 오랜 전설로부터, ‘구슬’, ‘연탄’, ‘똥’, ‘아이스케키’, ‘고무신’, ‘화토’, ‘경월소주’ 등 지금은 사라지거나 지금도 금굼히 명맥을 이어오는 존재들에 얽힌 즐겁고 정겨운 서사까지, 그리고 친구와 누이의 이름을 호명하거나 어머니의 아득한 품을 향한 견고한 그리움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오랜 세월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길로 안내한다. 그 길은 바로 ‘모든 나’에 이르는 길이다.

시인 신동호의 세월, 그의 길

신동호 시인은 80~90년대 한국의 암울한 시대상을 노래하며 분단과 분열을 비롯한 현대사의 좌절을 딛고 화해와 소통, 이해로 가는 길을 모색하였다. 신동호 시인에 대하여 김형수 시인은 “비장한 패배의 자리보다 작은 승리의 자리에 관심이 더 크다”라고 썼고, 최준 시인은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 많고 눈물 많은 친구가, 여리고 한없이 감성적이기만 한 순결한 영혼이, 밤낮으로 시나 아파하다가 가야 행복할 일생이 삼십 년 저쪽에서 까까머리 검정 교복처럼 씨익, 웃고 있다”고 썼다. 신동호 시인은 강원고 재학시절 만 19세의 나이로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했고, 첫 번째 시집이었던 ≪겨울 경춘선≫(1991)은 1990년대 거리의 청춘들에게 보내는 절창의 연서로 열렬히 읽혔다. 20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2014)는 백석문학상 최종심까지 오르며 역사의식의 서정적인 시화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에 펴내는 ≪세월의 쓸모≫는 세상을 구성하는 것이 역사나 정치의 맥락이 아니라 인간의 여백에 놓인 일상임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사라져간 것들은 존재의 크기만큼 추억을 남긴다

“자기 삶의 확신은 고독의 시간과 비례한다. 문학의 시간은 스스로를 유배하는 시간이고 그 시간의 양만큼 삶은 단단해진다.” _본문 속에서

세월은 수평으로 쌓이지 않고 수직으로 서 있다. 여기저기 뒤죽박죽 흩어진 것만 같았던 시간들이, 기억과 맞닿아 하나의 추억으로, 그리고 단단한 희망으로 도약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오늘을 성찰하고 내일을 희망하는 필사적인 열망이다. 사라져간 것들은 존재의 크기만큼 추억을 남긴다. 엄밀히 말해, 세월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세월은, 오늘의 나를 표상한다. 나의 세월은 내가 지금까지 지나온 길이다. 그 세월을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내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저자와 함께 그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모두 한때,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 모두 거기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 추천사

그는 유년시절 숨바꼭질 이야기를 한다. 후지타 쇼조가 말하는 ‘미아의 경험’, ‘추방된 유형의 경험’, ‘방황의 경험’은 그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일까. 카프카는 술래잡기 놀이 와중에 웅덩이에 숨은 자기 머리를 밟고 지나가면서도 끝내 자신을 찾지 않는 지독한 소외의 경험을 토로한 바 있는데, 신동호도 그런 고독 깊은 곳에 가 있는 걸까. 그러나 그는 고독이 서로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발견된다는 것은 서로를 구출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존재의 잠적이 존재의 확인으로 가는 길이었음을 이 한 권의 책은 보여준다.
그의 문학, 그의 외로움이 그물에 걸려 허둥대는 시대를 건너 흐르는 강물처럼 빛나길 바란다. 물 맑은 상류에 남겨둔 희망을 발견하는 길이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신동호가 문학으로 자주 발견되길 바란다.

_도종환(시인, 국회의원)

근대문학이 숨을 멎기 전에 기록해야 할 지상의 마지막 풍경들을 그는 놓치고 싶지 않았나 보다. 기억의 향연 같다. 시인 신동호의 심연을 구성했던 것들, 그의 내면에 사리처럼 박힌 감수성의 알갱이들. 세계를 조직하는 것이 역사나 정치의 맥락이 아니라 인간의 여백에 놓인 일상임을 이처럼 실감나게 보여준 산문이 또 있었을까.

_김형수(시인)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85494050
발행(출시)일자 2015년 05월 26일
쪽수 211쪽
크기
150 * 215 * 20 mm / 386 g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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