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멜랑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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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경향신문 > 2019년 5월 3주 선정
살을 에는 추위가 계속되고 가로등은 이유 없이 켜지지 않으며 거대한 나무가 하루아침에 뿌리째 뽑혀 드러눕더니 수십 년간 멈춰 있던 교회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때마침 한 유랑 서커스단이 도시에 들어선다.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어마어마한 거수(巨獸)는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과 포개지고, 동시에 고래를 운반하는 불길한 트럭은 사실상 마을에 어떤 직접적인 해도 입히지 않고 그저 광장 한가운데 조용히 세워져 있는 것만으로 마을 전체를 광기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트로이 목마가 함의하는 방대한 예술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정보
저자(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났다.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유학했다. 이후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중국, 몽골, 일본,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체류하며 작품을 써왔다.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며 고골, 멜빌과 자주 비견된다. 수전 손택은 그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으로 일컫기도 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감독 벨라 타르, 미술가 막스 뉴만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사탄탱고》(1985), 《저항의 멜랑콜리》(1989), 《전쟁과 전쟁War and War》(1999), 《저 아래 서왕모Seiobo There Below》(2008), 《마지막 늑대The Last Wolf》(2009), 《세상은 계속된다The World Goes On》(2013) 등이 있다.
그의 소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다양한 국내 및 국제 문학상을 수상했다. 헝가리 최고 권위 문학상인 코슈트Kossuth상과 대문호 산도르 마라이S?ndor M?rai의 이름을 따 제정한 산도르 마라이 문학상을 비롯해, 독일의 베스텐리스테SWR-Bestenliste 문학상과 브뤼케 베를린Br?cke Berlin 문학상, 스위스의 슈피허Spycher 문학상 등을 받았고, 2015년에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했다. 2018년 《세상은 계속된다》로 같은 상 최종 후보에 또 한 번 이름을 올렸다.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국내에 알려진 이름은 ‘라슬로 크라스나호르카이’였으나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 규정과 헝가리어의 성-이름순 표기 방식에 따라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로 표기했다.
경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내과 전문의로 일하며 틈틈이 번역을 겸하고 있다. 출간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거나 잊힌 변방의 소설들을 번역해 블로그에 개인 소장하기도 한다. 옮긴 책으로 《P. D. 제임스 탐정소설을 말하다》 등이 있다.
목차
- 도입: 이례적인 상황들
협상: 베르크마이스터 하모니
결론: 추도사
옮긴이의 말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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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시몽, 토마스 베른하르트, 주제 사라마구, W. G. 제발트, 로베르토 볼라뇨,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를 떠올려보아도, 크러스너호르커이가 가장 이상한 작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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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를 잇는 타고난 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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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선보이는 통찰력의 보편성은 고골의 《죽은 혼》에 필적하며, 현대 저작의 자잘한 관심사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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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과 멜빌에 비견할 만한 헝가리 현대문학 거장의 냉혹하고 환상적인 책. 가장 오싹한 상태의 황량함에 대한 해부서이자, 그 황량함에 대한 저항의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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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쉽지 않으나 기발하게 구성된, 그리고 환상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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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란하고 자유분방하게, 살아 있는 인간의 의식을 유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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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만난 글 중에 가장 미친 것 같은 문장들.
책 속으로
지난 몇 달 동안 날로 섬뜩섬뜩 놀래는 사건들 사이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는 일은 불가능했다. 뉴스, 험담, 뜬소문, 개인적인 경험을 뒤섞고 엇갈려 보면 일관성이라곤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이를테면 십일월 초 너무 일찍 불시에 찾아든 된서리, 의문투성이의 가족 단위 참사들, 유달리 잇따르는 철도 사고들, 비행 청소년 떼거리들이 먼 수도에서 공공 기념물을 훼손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소문들 사이에 어떤 이성적인 연결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런 뉴스 항목은 어느 하나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입에 올리는 말처럼 단순히 모두 ‘다가오는 대재앙’의 징조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_14쪽
‘무언의 승인인가? 아니면 다시 내가 꿈이라도 꾸는 건가?’ 플라우프 부인은 앞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내 자신의 상상이 빚어낸 일일 가능성은 제쳤다. 그녀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두고 보건대, 저 남자가 노파를 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노파의 끊임없는 수다에 물릴 대로 물렸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한마디 말도 없이 그녀의 면상을 쳤다, 아니다, 가슴팍을 퍽 하고 쳤겠다, 그렇다, 다른 식일 리가 없다, 그런 생각에 그녀는 충격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고, 섬뜩한 공포로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불거져 나왔다. 노파는 저기 의식을 잃고 꼬꾸라져 있고, 털모자를 쓴 남자는 아무 움직임이 없다. 땀이 이마에서 다시 솟구쳤다. 대체 어쩌다가 내가 이런 수치스럽고 쓰레기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걸까?
_37쪽
고래를 보는 것, 한편으로 보고 있는 전체를 전반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꼬리지느러미, 마르고 갈라진 철회색 껍질과, 중간쯤 아래 기이하게 부풀어 오른 몸체, 하나로도 족히 수 미터에 이르는 등지느러미를 가늠해보는 일은 대단히 가망 없는 과업 같았다. 그냥 너무 크고 너무 길었다. 눈에 전체가 한꺼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고, 죽은 눈은 제대로 쳐다볼 기회도 없었다. 벌루시커는 어기적어기적 걷고 있는 줄에 간신히 몸을 끼워 넣고서, 마침내 기발하게 받쳐서 활짝 벌려놓은 턱까지 이르렀는데, 그는 어두운 목 안을 들여다보거나, 시선을 멀리 떼어 바깥 몸의 양쪽 깊은 구멍에 쑤욱 잠긴 두 개의 작은 눈을 찾아보거나, 눈 위로 낮은 쪽 이마에 있는 두 개의 분수공을 알아보거나, 이들 부위를 따로따로 떼어 보고 있어서, 다 같이, 어마어마한 머리를 그냥 통합된 전체로 보는 일은 불가능했다.
_150~151쪽
그는 소위 음악예술원 학장으로 수십 년을 지내는 동안 시달렸던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끝도 없는 어리석은 공격들, 텅텅 빈 멍한 눈길, 활짝 피는 지능이라곤 전적으로 결여된 젊은이들, 썩은 영혼의 아둔한 냄새, 압박으로 다가오는 사소한 일, 안이한 만족, 강한 자부심과 무겁게 짓누르는 낮은 기대감, 아무리 가볍다 해도 이런 것들로 자신은 거의 붕괴될 참이었다. 그는 피아노를 도끼로 박살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여지없이 눈을 반짝거리는, 자신이 떠맡았던 옛날 말썽꾸러기들을 잊고 싶었다. 책임자의 의무로 여러 구색의 술 취한 개인 지도교사들과 눈이 촉촉한 음악 애호가들을 모아들여야만 했던 ‘심포니 대관현악단’을 잊고 싶었다. 다달이, 이런 가증스럽고, 마을 결혼식 자리를 빛내는 데도 부족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능력한 악단의 얄팍한 재주에 의심 하나 없이 아주 열렬히 보내는 청중들의 천둥 같은 환호도, 그들에게 음악이라는 습관을 들이려던 끝없는 노력과 신성한 악보 한 가지 이상은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줄곧 되뇌던 헛된 탄원도 잊고 싶었다.
_184쪽
그는 홀로, 이제 오로지 두 개의 깜빡거리는 전구의 불빛을 받으며 누워 있는 고래를 바라보았다. 고래는 우스꽝스러운 꾸지람까지 막 하려고 하는데(‘네가 얼마만큼 문제를 일으켰나 봐봐, 너는 누구에게도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는데…’) 짐차 저 깊은 안 어딘가에서 예상치 못하게 불명확하게 잘게 끊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이런 소리를 내고 있나, 금방 그 목소리를 알 듯도 했다. 그리고 금세 알게 되다시피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뒤편에 있던 문에, 이전에 추리한 대로, 거처로 마련된 구역으로 이어지는 데에 다다라, 양철 벽에 귀를 대고, 몇 마디 말을 주워들었는데(‘… 나는 모습을 선보이라고 했지, 여기서 어리석은 이야기들을 지어내라고는 안 했어. 그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거야. 돌려세워…!’) 서커스 단장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_260쪽
‘나는 바보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왕에게 당신 나라는 쓰레기라고, 좋은 말, 제대로 된 말을 하고 싶은데.’ ‘멍청한 소리 좀 마.’ 큰 애가 동생 뒤에서 흉측하게 얼굴을 찌푸렸고 벌루시커는 역시 큰 아이의 동조도 얻으려고 질문을 했다. ‘어째서? 그러면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저요? 저는 좋은 경찰이 되고 싶어요.’ 소년은 자랑스레 대답했지만 낯선 사람에게 자기 계획의 전모를 드러내기를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감옥에 넣고요.’ 그가 팔짱을 끼고 문설주에 어깨를 기댔다. ‘모든 술꾼하고 모든 바보를 다.’ ‘술꾼들도, 맞아.’ 작은 아이가 동의하고, ‘술꾼들에게 죽음을!’ 고함을 지르고서, 팔짝팔짝 뛰고 방 안 여기저기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_293쪽
하지만 이제 그는 그를 다르게 보았다. 머리에 챙 달린 모자를 쓰고, 복숭아뼈까지 내려오는 우체부 외투를 걸친 그는 점심께 집으로 들어선다, 가볍게 처음 노크를 하고, 계세요, 말을 하고, 일이 끝나면, 찬합 도시락을 어깨에 철커덕거리며 걸치고 자신의 어설픈 부츠가 응접실의 고요한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도록 발끝으로 살금살금 복도를 따라 걸어가, 더욱 조용히 움직여 입구에 다다른다. 그렇게 그는 적어도 다음번 방문까지 집주인의 집착으로 무거웠던 집의 분위기를 밝혀주며, 신비로운 박애로, 다정한 관심과 상당히 복잡한 ‘단순성’으로 그를 치유했다. 집주인의 모든 요구를 시중드는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닌 줄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도록 감동적인 신중함으로 둘러싸고 그런 심오한 항구성으로, 정말 말뜻 그대로 진력하며 지성으로 돌봤다.
_330쪽
왜냐하면 아무리 우리가 찾는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혐오와 절망에 맞아떨어지는 대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똑같은 무한의 격노로 우리는 우리의 도상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공격했다. 우리는 상점을 부수고 들어가,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은 창밖으로 집어던지고, 아스팔트 위에서 내리밟았다. 그 물건을 움직일 수 없다면 쇠막대나 부서진 셔터로 쾅쾅 박살을 냈다. 그런 뒤 드라이기, 비누, 빵 덩이, 상의, 정형용 교정화, 음식 통조림, 책, 가방, 어린이 장난감, 우리가 밟고 지나간 알아볼 수 없는 파괴의 잔해들을 지나, 길가에 주차된 차들을 뒤집었고, 적막한 표지판과 광고판을 잡아떼고, 누군가 안에 불을 밝혀놓고 가버리는 바람에 전화교환실을 차지하고 파괴했다. 우리가 그 건물 현관으로 몰려든 인파와 한참 복대기다 벗어날 때는 이미, 거기서 역시 발밑에 밟혔던 두 명의 전화교환수는, 의식을 잃고, 맥없이, 무릎에 손을 축 늘어뜨린 채 낡은 넝마처럼 벽에서 미끄러져 누워 있었다.
_385쪽
‘벌루시커는요! 의사 양반, 저기, 벌루시커 본 적 있어요?’ 그 이름의 언급에 속닥거리는 군중의 소리가 삽시간에 멈췄고, 그 여자는 전전긍긍 군인들의 눈치를 살피고, 군인들은 이제껏 하려던 대화가 이 말이라도 되는 듯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한편 의사는 에스테르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고개만 가로저었다.(그런 뒤 경고의 형태로 ‘하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에 좋은 때가 아닙니다…’ 하고 속삭였다) 군인 중 한 명이 종이 한 장을 꺼내, 손가락으로 죽 따라가다가, 어느 한 지점을 쿡 찌르고선 이를 그의 동료에게 보여줬고, 그 동료는 그런 뒤 눈을 에스테르에게 고정했다가 지끈지끈 소리쳤다. ‘벌루시커 야노시?’ ‘예.’ 에스테르는 그들 쪽으로 돌아섰다. ‘제가 말하던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 말에 그들은 ‘문제의 그 인물’에 대해 그가 아는 모든 바를 털어놓으라고 요구했다.
_423~424쪽
‘문제의 그 남자는,’ 에스테르 부인이 일단 왁자한 웃음이 잦아들자 말했다. ‘심신상실 상태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 말은 정신이 모자라단 말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중령은 어깨를 으쓱했고, ‘정신병원에 그를 가둬두죠. 적어도 내가 가둘 수 있는 사람은 있군요’ 덧붙이고는 콧수염 아래 굼틀굼틀 억누른 미소로, 아니 웃고는 못 배길 또 다른 농담을 대비하라는 주의를 환기시키듯 뜸을 들였다. ‘이 미친 마을 전체는 가두지 못한다고 해도….’
_465쪽
전 그저 불길만 바라보며 생각했죠, 나인가? 내가 아닌가? 그리고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확신이 설 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이런 짓을 저지른 게 나인지 아닌지 몰라서, 그러니까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던 거죠, 그래서 결국 자신에게, 이왕지사 이런 거, 지금은 이 자리에서 토끼는 게 더 낫다고 타일렀죠… 그래서 게르만 지구를, 도통 모르게 헷갈리는 엄청난 작은 골목들을 가로질러 가요, 그래야 방금 내가 떠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공동묘지 문 옆에서 숨 돌리려고 멈춰서 이렇게(그는 그들에게 보여줬다) 쇠창살에 기대 서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제 바로 뒤에서 말을 거는 거예요. 씨발, 말버릇이 나빠 죄송합니다, 그놈들이 나도 덮치러 왔구나, 저는 보통 겁먹은 토끼처럼 내빼지는 않아요, 비서관님도 저를 봐서 알아보시겠지만, 누가 그런 식으로 말
출판사 서평
“서구 문명이라는 이름의 암울한 역사에 대한 통찰!” _ 맨부커 심사위원단
“현대 저작의 자잘한 관심사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_ W. G. 제발트
《사탄탱고》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이번엔 ‘리바이어던’을 불러내다!
헝가리의 어느 작은 마을, 살을 에는 추위가 계속되고 가로등은 이유 없이 켜지지 않으며 거대한 나무가 하루아침에 뿌리째 뽑혀 드러눕더니 수십 년간 멈춰 있던 교회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때마침 한 유랑 서커스단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를 보여준다며 도시에 들어서고, 온갖 소문과 편집증이 난무한다. 데뷔작 《사탄탱고》에서 체제에 유린당한 사람들이 고통의 쳇바퀴에 포박되는 과정을 탱고의 스텝-앞으로 여섯 스텝, 뒤로 여섯 스텝-이라는 형식으로 구현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저항의 멜랑콜리》에서 다시 한번 ‘세상의 끝과 그 너머’를 그리기 위해 이번에는 ‘고래’를 선택했다.
이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어마어마한 거수(巨獸)’는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과 포개진다. 동시에, 이 고래를 운반하는 불길한 트럭은 사실상 마을에 어떤 직접적인 해도 입히지 않고 그저 광장 한가운데 조용히 세워져 있는 것만으로 마을 전체를 광기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트로이 목마가 함의하는 방대한 예술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W. G. 제발트의 말처럼 이 소설이 보여주는 통찰의 보편성은 ‘모든 현대 저작의 자잘한 관심사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단락 구분 하나 없는 광대한 검은 강 같은 활자들에는 녹아든 메시지는 어느 하나로 압축되기 어렵다. 그것은 작가가 건너지른 동유럽의 격변사이기도, 각 계급의 사회적 의식 형성에 대한 냉혹한 성찰이기도, ‘한낮의 악마’라고도 했던 멜랑콜리의 진창에 붙박인 인간의 운명이기도, 키치와 블랙코미디에서 그리스비극을 이끌어내려는 시도이기도, 또는 그 모두이기도 하다.
헝가리의 은둔자, 예술가들의 예술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작가가 선사하는 황홀한 문학 체험
지난해 알마는 소설 《사탄탱고》를 출간해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를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는 벨라 타르 감독의 전설적인 촬영 기법과 7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화제를 모으며 먼저 한국에 소개된 바 있다. 수전 손택이 “남은 생애 동안 매년 한 번씩은 반드시 보겠다”는 말로 상찬했던 영화의 압도적 스케일에 매혹된 관객들은 원작을 만나길 기다려왔고, 소설 《사탄탱고》의 출간은 그 오랜 갈증에 단비를 내렸다. ‘헝가리의 은둔자’ ‘예술가들의 예술가’로만 알려진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기존에 소개된 세계 문학들이 가닿았던 지평 너머의 경험을 선사하며 ‘낯선 황홀함’을 찾아 헤매던 독자들의 영토에 착지했다.
이번에 알마가 두 번째로 선보이는 《저항의 멜랑콜리》는 작가 특유의 묵시화(?示畵)를 한층 장대한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을 두고 “서구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암울한 역사에 대한 통찰”이라고 평가했다. 이 소설 또한 벨라 타르 감독의 영화 <베르크마이스터 하모니(Werckmeister Harmonies)>로 만들어졌다. 아직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BBC가 선정한 2000년 이후 100대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알마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또 다른 대표작 《저 아래 서왕모(Seiobo There Below)》 《세상은 계속된다(The World Goes On)》 《마지막 늑대The Last Wolf》 등도 순차적으로 소개한다. 문학이 밀어 올릴 수 있는 세계의 한계를 의심하지 않는 독자라면 이 컬렉션을 통해 무엇으로 수식해도 미지(未知)로 남을 한 거장에 대한 평가를 저마다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용암처럼 퍼붓는 문장,
몰락하고 또 저항하는 캐릭터,
소설 밖에서 소설을 지배하는 멜랑콜리
많은 포스트모던 작가들이 광기의 시선으로 파헤친 현실을 다루지만,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이 중 ‘가장 이상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서술은 한 문장으로 한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 허다하다. 《저항의 멜랑콜리》의 영문판 번역가이자 시인인 조지 시르테스(George Szirtes)는 이를 “느리게 흐르는 용암 같은 서사”라고 비유했다. 헝가리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서사에는 일련의 생생한 캐릭터들이 서로 치밀하게 얽혀 있다.
서커스단이 몰고 온 ‘고래’에 겁먹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혼란을 키우는 사이,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는 에스테르 부인은 마을을 장악하겠다는 계략을 짠다. 그녀의 남편 에스테르 죄르지는 과거 뭇 이웃의 존경을 받는 음악학교 학장이었으나 수년 전 스스로 세상에서 격리되기로 결심한 이후 온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는, 늙고 병약하며 ‘애매모호한 명망가’이다. 그가 아직 가느다랗게 세상과 연결되는 순간은 서른다섯 살의 청년 벌루시커가 식사를 챙겨주기 위해 그 ‘우울한 침실’에 방문할 때다. 밤낮으로 자신만의 ‘코스모스’에 사로잡혀 별과 달과 태양을 떠들며 마을을 배회하는 벌루시커는 비록 속세의 눈에는 그 나이 먹도록 사람 구실 못하고 술과 몽상에 찌든 마을의 백치이지만, 에스테르에게는 바깥의 난장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구도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세계에 ‘저항’하는 이 둘의 기묘한 우정은 에스테르 부인을 통해 현현되는 파시즘과 충돌하며 마을을 잠식한 공포와 불안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제목에 들어간 단어 ‘멜랑콜리’는 정작 책 속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번역자 구소영의 말대로라면 ‘표지 밖’에서 활동하며 독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 증상의 근본적인 두 개념은 ‘두려움(공포)’과 ‘슬픔(실의)’이다. 또한 <뉴요커>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자신의 사적인 낙원(Edens)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들의 내면을 덜 아름다운 동시에 더 아름답게” 만든다. 이 같은 아이러니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라고 스스로를 수식했던 크러스너호르커이만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기본정보
ISBN | 9791159922527 ( 1159922527 ) |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5월 13일 | ||
쪽수 | 536쪽 | ||
크기 |
137 * 220
* 36
mm
/ 626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알마 인코그니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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