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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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을 소설로 형상화하기는 ‘사자가 동물의 왕’임을 설득하는 글만큼이나 싱겁고 어려운 일이다. 그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속속들이 다 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논의하고 소개해서 과연 뭘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지 찾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진부한 중첩이 되지 않으면 엉뚱한 넋두리에 빠질 소지도 크다. 그러므로 더 큰 의문을 가져야 하고, 남들이 보지 못했던 구석을 찾아 그곳에 빛을 뿌려야 한다.
수박 겉핥기든 수박을 통째로 다 먹었든 다산 정약용(1762-1836)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안다고 해서 과연 우리는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일까? 한 인간의 모습은 다면체다. 더구나 그의 정신세계나 삶의 영역은 아무리 조각내고 조립해도 틈새는 생기고 만다. 묘하게도 틈새는 보일 때도 있지만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작가정보
자기다운 삶으로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 역사적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온 작가 정찬주는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가가 된 이래,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천착하고 있다. 호는 벽록檗綠.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국어교사로 잠시 교단에 섰다가 《월간문학》 등에서 편집자의 삶을 시작했으며,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스님의 각별한 재가제자가 되었다. 법정스님에게서 받은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마음에 품고,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지어 2002년부터 그곳에서 텃밭을 일구며 자연에 둘러싸여 집필에만 전념 중이다.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4백여 곳의 암자를 직접 답사하며 쓴 《암자로 가는 길》(전 3권)을 비롯하여, 이 땅에 수행자가 존재하는 의미와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일깨우는 수십 권의 소설과 산문집들을 펴냈다. 장편소설 《소설 무소유》 《이순신의 7년》(전 7권) 《천강에 비친 달》 《니르바나의 미소》 《천불탑의 비밀》 《다불》 《만행》 《대백제왕》(전 2권) 《가야산 정진불》(전2권)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전 2권) 《나는 조선의 선비다》(전 3권) 등, 산문집 《법정스님의 뒷모습》 《길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정찬주의 다인기행》 등, 동화 《마음을 담는 그릇》 《바보 동자》 등이 있다.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 1장
소내나루 뱃길·11
백자찻잔·20
주막집 봉놋방·30
봄나들이·41
겸상·53
남당네·65
유람과 독서·77
2장
영춘화·89
나를 지키는 집·100
꿈·110
순교의 시·121
다산화사·132
원족·142
초의·151
누비옷·163
하피첩·173
믿음과 배교 사이·183
무담씨·196
홍임이·206
찻자리·217
매조도1·228
다신계·239
3장
햇차 한 봉지·253
미리 쓰는 묘지명·265
매조도2·278
두 제자·293
홍임이 출가·303
작별·313
작가 후기 다산의 믿음과 배교 사이를 다시 사색하며·324
부록
유네스코 선정 세계의 인물, 정약용 생애·335
참고문헌·340
책 속으로
◆ 작품 중에서
- 지가 그 뜻을 생각해 본께 풀허고 나무에 비교허문 아버니는 씨요, 어메는 땅이지라우. 씨를 땅에 막 숭겄을 때는 보잘것?지만 땅이 질러내는 공은 많이 크지라우. 허지만 밤톨은 밤이 되야뿔고 씨나락은 벼가 되야뿔 듯 몸뗑이를 온전하게 맹글아 내는 거는 모다 땅의 기운이기는 허지만 끝에 가서 각 패로 나누어지는 거는 모다 씨에서 생기넌 거 같당께요. 옛 성인덜이 가르치고 질들이넌 일을 허고 예의를 말허는 끌텅은 아마도 요런 이치에서 온 거 아닐께라우?’라고 반박하는 말을 듣고 나는 뜻밖에 크게 깨달았지. 머리에 불벼락을 맞은 듯했느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서 지극히 정밀하고 미묘한 뜻이 장사하면서 세상을 살아온 할멈에 의해 겉으로 드러나게 될 줄 어느 누가 알았겠느냐?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느니라. 그때 내 방 이름을 사의재라고 짓고 나는 낡은 허물을 벗고 거듭 태어났던 게야. (p.62)
- “남당네 음식 솜씨는 괜찮더냐?”
“아버님도 만족하시고 초당제자들도 모두 좋아합니다.”
“다행이구나.”
홍씨 부인의 목소리가 힘없이 작아졌다. 등골이 찌릿찌릿하다면서 두 손으로 허리를 잡았다. 통증이 하체로 내려가면 두 다리까지 결린다고 했다. 잠시 후 홍씨 부인은 속에서 쓴물이 넘어오는지 마른침을 삼키기도 했고 목덜미가 굳어지는 것 같다며 도리질을 했다.
“어머님, 피곤하시면 쉬십시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너도 쉬거라.”
홍씨 부인은 학유가 나간 뒤 부엌으로 나가 찬물을 들이켰다. 그러자 속에서 넘어 오르던 쓴물이 잠시 가라앉았다. 그러나 방으로 들어온 홍씨 부인은 다시 답답해했다. 탁한 기운이 기도를 막는 것도 같았다. 급체한 것처럼 이마에서는 진땀이 나고 현기증이 났다. 홍씨 부인은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자리에 누웠다.
‘영감은 영감 자신만 사랑할 줄 알지 나는 생각하지 않는구려.’(pp.178-179)
- 그런데 잠시 후 정약용이 갑자기 크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래도 내가 중국에서 온 한 신부를 살렸지. 조선의 천주학을 살린 셈이었지.”
“영감마님, 천주학이란 말씸 함부로 허지 마시랑께요. 누가 들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간당께요.”
“남당네가 날 고발하겠나. 내 얘기를 들어보게.”
“그때 신부님이 잡혀갔다면 조선 천주학의 운명이 어찌됐겠나. 피바람이 또 불었겠지. 상감마마와 채제공 어른은 아마도 내가 신부님을 피신시킨 줄 아셨을 거네. 한영익의 밀고를 받은 사람이 이 진사와 나뿐이었으니까.”
“그란디도 신부님을 구해주셨그만요.”
“사람들은 나를 배교자라고 불렀지. 허나 내가 신부님을 피신시켰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를 그렇게만 부를 수는 없을 거네.”
“지가 볼 때는 영감마님의 맘속에는 천주님이 겨신 것 같그만요. 그란께 천주학쟁이지라우.”
“외배내신(外背內信)이란 말도 있네. 겉으로는 배교했지만 속으로는 믿고 있다는 말이네. 어쨌든 참 얄궂은 운명이지 뭔가. 한영익 진사하고 나와 사돈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서제(庶弟) 약횡이 한 진사 누이동생하고 혼인을 했으니 말이네.” (p.191, p.194)
- 정약용은 이전과 같이 종이에 몇 번 연습을 하더니 바로 천 조각을 폈다. 그런데 지난번에 그린 「매조도」와는 조금 다르게 그리기 시작했다. 오래된 고매 두 가지를 그리더니 잔가지를 눈에 띄게 줄였다. 꽃망울 개수도 적고 더욱이 멧새는 한 마리만 그렸다. 붓 가는 데가 적다 보니 지난번 그림보다 단조롭게 보였다. 또 어찌 보면 욕심을 줄인 듯하여 담박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약용은 매우 흡족한 얼굴로 홍임 모에게 말했다.
“꽃을 피운 묵은 매화나무는 나일세.”
“기림은 반짓만 기리신 거 같은디 뗄롱허니 앙근 쬐깐헌 새는 누구당가요?”
“묵은 매화가 나니까 당연히 홍임이지. 멧새 깃털만 초록으로 그린 까닭은 우리 홍임이에게 초록 빛깔의 저고리를 입힌 것이네.”(p.236)
- 기러기 끊기고 잉어 잠긴 천리 밖
해마다 오는 소식 한 봉지 차로구나.
雁斷魚沈千里外
每年消息一封茶
차 한 봉지를 받으며 홍임 모녀의 안부를 짐작한다는 시였다. 홍씨 부인과 자식들의 눈치 때문에 더 이상 자세하게 쓰지 못하는 편지였다. 홍임 모 또한 윤종진이 읽어주는 한자의 시구만 듣고서도 정약용이 하지 못한 말까지 알아들었다.
기러기는 강진으로 오고 싶지만 날지 못하는 정약용이고, 초당 연못에 잠기어 있는 잉어는 두말할 것도 없이 홍임 모였다. 햇차 한 봉지를 받을 때마다 ‘아, 홍임 모녀가 잘 있구나!’ 하고 안도하는 정약용의 안타까운 마음이 담긴 시였다.(pp.263-264)
- “나가 으째서 중 될라고 맴 묵은지 아요? 주지스님이 그란디 시상 사람덜은 뭐든지 가질라고 허고 중은 뭐든지 버릴라고 헌다고 그랍디다. 나는 주지스님 고 말씸이 가슴에 꽉 백혀부렀어라우. 나는 아부지도 버리고…… 글도 버리고…… 꿈도 버릴라요…….”
홍임이는 뒷말을 목이 메어 더듬거렸다. 어느새 눈가에는 눈물이 흘렀다. 홍임 모도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면서 홍임이를 꼭 껴안았다.
“내 앞서 눈물이란 눈물은 다 흘리고 가부러라잉. 으디 가서 몰래 짜면 어메 맴은 홍어창시멩키로 썩어불 팅께.”
“어메가 으째서 우요. 어메 ?는 디서는 안 울 팅께 울지 마쇼잉.”(pp.309-310)
- “불쌍한 홍임 어미는 잘 있느냐?”
“홍임이 따라서 대둔사로 갔습니다요.”
“중이 됐구나, 우리 홍임이가.”
정약용은 홍임 모녀의 소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 뒤 곧 숨이 멎은 듯 잠이 들었다.(p320)
출판사 서평
정약용이 사랑한 여인,
혜장, 초의, 차(茶)와 제자들
사람 사는 세상에서의 다산 정약용
역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을 소설로 형상화하기는 ‘사자가 동물의 왕’임을 설득하는 글만큼이나 싱겁고 어려운 일이다. 그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속속들이 다 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논의하고 소개해서 과연 뭘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지 찾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진부한 중첩이 되지 않으면 엉뚱한 넋두리에 빠질 소지도 크다. 그러므로 더 큰 의문을 가져야 하고, 남들이 보지 못했던 구석을 찾아 그곳에 빛을 뿌려야 한다.
수박 겉핥기든 수박을 통째로 다 먹었든 다산 정약용(1762-1836)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안다고 해서 과연 우리는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일까? 한 인간의 모습은 다면체다. 더구나 그의 정신세계나 삶의 영역은 아무리 조각내고 조립해도 틈새는 생기고 만다. 묘하게도 틈새는 보일 때도 있지만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작가 정찬주가 찾아낸 다산의 틈새는 어디였을까? 정찬주는 처음부터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다산에 대한 이야기는 할 생각이 없었다. 현군(賢君) 정조의 지지 아래 자신의 역량을 펼쳤던 청장년 시절, 천주교 신앙과 관련해 받았던 시련의 시간들, 그리고 그 여파에 휩쓸려 겪어야 했던 기나긴 유배 생활과 저작 활동, 또 유배에서 풀려난 뒤 보낸 쓸쓸하고 울분에 찬 만년. 물론 이런 이야기들만으로도 훌륭한 한 편의 소설은 완성된다. 소설이라는 입체적인 구상과 묘사가 잡아내는 핍진함은 역사가나 학자들이 조명한 정약용의 면모들과는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정약용을 다룬 소설은 쓰기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황인경과 이수광의 작품 외에 정약용을 소설로 그려낸 작품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정찬주는 자신의 소설에서 정약용을 주인공으로 그려내지는 않았다. 물론 정약용이 서사의 중심임은 분명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는 이 소설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을 배경으로 안배하면서 배경 속에서 드러난 물상들이나 사람들을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전 생애를 다루는 듯하면서도 18년 동안의 유배 시기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75년의 생애에서 이 18년이 갖는 의미가 크기는 하다. 우리 사상사에서 굵직한 비중을 차지하는 저서들과 이념들이 이 시간 동안 쓰여지고 빚어졌다. 그렇다고 그 빛나는 저서들과 이념의 내용과 영향, 가치가 이 소설의 주된 골자이지도 않다. 작가의 시선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지점에 줄곧 머물러 있다.
소설은 유배기와 해배解配이후의 사건을 교차시키면서 진행되는데, 그 사건의 동력을 제공하는 이는 정역용 자신이 아니다. 정약용이 유배객으로 살 때 들인 소실小室 남당네(홍임 모)와 그녀가 낳은 딸 홍임이의 이야기가 한 축이 되고, 강진에 유배 살면서 만난 남도 땅의 제자 18명의 이야기가 또 한 축을 이룬다. 이들이 있어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정약용 유배생활의 틈새가 드러나고 채워진다.
자칫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쉬운 유배 생활을 혼신의 힘과 정성으로 뒷바라지한 남당네(홍임 모). 늦둥이로 태어나 쓸쓸한 유배의 삶에 빛과 위안, 아비로서의 위치를 일깨운 홍임이. 두 사람에 대해 정약용은 누구보다 각별한 애정과 염려를 아끼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삶은 정약용이 미칠 수 없는 영역으로 멀어져가기만 한다. 위대한 학자이자 철학자였지만, 사랑하는 피붙이조차 뜻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정약용의 삶은 보기보다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암울하고 참담하다.
18명을 헤아리는 강진 제자들의 삶은 또 어땠을까? 생사고락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은 정약용이 가장 고난의 시기를 살 때 함께 뜻을 모았고, 정약용의 부족한 점을 채워 학문적으로 매진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들이 어떤 야심과 기대를 가지고 정약용 문하에서 배움의 길을 갔든, 유배의 삶이 길었고 해배 이후의 삶도 순탄치 않았던 정약용에게 그들은 많지 않은 제자군弟子群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자신의 재능과 포부를 실현한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들의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자 긴 기다림의 시간에 지쳐 하나둘 정약용을 등지거나 심지어 배신까지 했지만 소설을 읽노라면 그들을 탓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소실댁 남당네와 서녀 홍임이. 투박하지만 진심을 다해 정약용을 스승으로 섬겼던 남도의 제자들. 그들이 겪는 애환과 좌절, 서툰 욕심과 지극히 인간적이라서 외면할 수 없는 몸짓들이 이 소설에서 우리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넉넉히 제공한다.
나는 작가 정찬주가 이들을 소설의 전면에 내세우면서 “잡초라 하여 어찌 이름이 없겠는가? 무명의 꽃이라 해서 밟혀도 어찌 아픔이 없겠는가?” 하는 화두를 던졌던 것 같다. 역모와 흉계, 아첨과 이해관계로 이합집산하는 도성에 틀어 앉은, 속 보이는 무리들의 작태들을 보고 신물이 난 정약용에게 과연 누가 진정한 도반道伴이었는지 묻고, 암시적이면서도 당연히 드러날 법한 대안을 이 소설에서 구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도 땅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울의 말쑥한 표준어가 아니라 구수한 남도의 사투리를 쓰고 있다. 전혀 놀랄 게 없는 일인 데도 나는 소설의 대화 가운데 8할 정도를 차지하는 사투리의 구사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나는 고향이 호남이 아니라 이 사투리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같은 구절을 여러 번 읽는 수고를 들여야 했지만, 내 고향 사람들이 쓰는 사투리들,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사람들이 쓰는 사투리들을 떠올리면서 내가 남도의 어느 동네에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내 이웃이고 나와 함께 흙을 묻히고 냇물의 물을 마시면서 미역을 감는 듯한 짜릿한 현장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사람들의 냄새가 물씬 나는 작품이다. 정약용 역시 18년 동안 유배를 살면서 이 걸쭉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에게서 그가 어디서도 맡을 수 없었던 사람 냄새를 맡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정약용은 18년 유배기 가운데 첫 해인 1801년 2월에서 11월까지 10개월 정도는 경상도 장기 땅에서 지냈고, 그곳에서도 상당한 작품과 저서를 썼다.)
정약용은 유배를 살면서 생애 가운데 가장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히 장담하건대 새소리나 물소리만큼이나 정겨운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과 지낸 그때가 가장 사람답게 산 시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약용의 마음을 헤아려 진솔한 사람들의 사연으로 정찬주는 소설을 꾸몄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도 ‘다산의 유배’ 아닌 ‘다산의 사랑’인 듯하다. - 임종욱(문학평론가, 소설가)
집필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매듭짓는 〈다산의 사랑〉 결정판
작가는 2012년에 초판을 내고 나서 2018년에 2백자 원고지 50여 매를 증보하고 2020에 또 50여 매를 증보하여 개정판을 냈다. 작가는 불가피한 사정과 아쉬움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2018년 증보한 내용(278-292쪽)은 다산초당에서 함께 살았던 소실의 딸인 홍임을 위해 그린 매조도의 행방을 추적한 내용인바, 홍임 모가 재가하게 될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사헌부 감찰직을 버리고 고향 영천으로 내려간 성균관 입학 동기이자 친구인 이인행에게 그 매조도를 보내버린 이야기이다. 그 매조도로 인해서 홍임이 의붓아버지에게 피해를 볼 수도 있고, 정약용 입장에서는 본처 홍씨 부인에게 항상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2020년에 두 번째로 증보한 내용(183-195쪽)은 정약용의 외배내신(外背內信), 즉 겉으로는 배교한 척했으나 마음속으로는 천주교를 믿었던 문제를 다룬 이야기다. 1794년 11월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천주교도 윤유일과 지황, 최인길의 도움을 받아 한양으로 잠입했다. 그러나 주문모의 밀입국은 이벽의 동생, 별군직(別軍職) 무관 이석에 의해 채제공에게 보고되고 만다. 이석과 함께 있었던 정약용은 오위(五衛)의 무관인 부사직(副司直) 신분이었다. 정약용은 역관 최인길 집으로 달려가 주문모 신부를 남대문 안쪽 강원숙 집에 피신시켰다.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었다. 이후 주문모 신부는 강원숙 사랑채 다락방에 숨어 6년을 지냈다. 이를 보면 정약용의 외배내신(外背內信)은 분명한 것이라며 작가는 소설로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인간 정약용의 따뜻한 슬픔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은 동문 밖 밥집 노파를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지난날의 교만을 버린다. 초당으로 가서는 본연의 선비로 돌아가 강학을 열고 밭뙈기를 일구며 농부들의 수고를 경험한다. 그러던 중에 다산은 남당포 여인을 동암에 들였고 홍임이라는 딸을 얻는다. 초로의 나이에 늦둥이를 보았으니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훗날 홍임에게 주려고 꽃핀 고매(古梅)에 새 한 마리가 나는 그림을 그려둔다. 한때 다산은 유배생활의 후유증으로 반신마비가 와 절망했다. 그러나 홍임 모가 날마다 차(茶)로 병수발을 하여 다산이 다시 집필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침내 다산은 해배가 되어 고향 마재로 간다. 뒤에 홍임 모와 홍임이도 마재로 갔지만 곧 초당으로 돌아오고 만다. 초당과 마재의 공기는 견디지 못할 만큼 달랐다. 그래도 다산은 생이별을 감내할 뿐이다. 마재의 아내와 가족들도 신산하기는 마찬가지. 다산은 홍임 모가 덖어 올리는 햇차로 그녀의 외로운 살림살이를 짐작할 뿐, 몇 해가 지나 그마저도 아득해지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는다.
물론 그림자의 삶으로 울었던 이가 홍임 모만은 아니다. 어린 딸 홍임은 20세가 넘어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빛을 가지려고 살았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며 살겠다.’고 백련사에서 머리 깎고 출가를 해버린다. 마재의 아내 홍씨 부인도 안타깝기는 닮은꼴이다, 다산이 강진에서 18년 유배생활을 했다면 아내 역시 마재에서 18년 유배생활을 한 셈이었으니까. 그런 아내가 시집올 때 입고 온 붉은 치마를 다산에게 보낸다. 초당에 소실 홍임 모가 있음을 알고 자신을 잊지 말라며 붉은 치마를 보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다산은 아내의 마음도 모르고 가위로 잘라 두 아들에게 주는 글을 써 보낸다. 자식에게 훈계를 하는 하피첩(霞?帖)이다. 사람들은 하피첩을 두고 다산의 자식사랑을 흠모하지만 아내인 홍씨 부인의 가슴에 번진 피멍은 모른다.
어찌 이뿐일까. 다산이 가장 사랑했던 제자 황상은 초당에 오지 않고 늘 겉돈다. 다산이 눈을 감을 무렵에야 모든 제자들이 하나둘 떠나버린 뒤 마재로 올라간다. 황상은 다산에게 붓과 먹, 그리고 부채를 선물 받는다. 황상은 다산의 임종을 보고 제자로서 문상객을 받는다. 장례가 끝나자 황상은 마재에서 강진까지 상복을 입고서 뚜벅뚜벅 걷는다. 봄날 햇살이 따가웠지만 스승을 잘 모시지 못한 죄인이라는 생각으로 하늘을 보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서 스승이 준 부채도 꺼내지 않는다. 황톳길을 걷고, 강을 건너고, 산을 돌아서 천릿길을 걸어 내려온다. 초당시절 다산의 집필을 많이 도왔던 이청은 다산을 배반하고 출사의 꿈을 이루려고 했지만 끝내는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출세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을 내 주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여 씁쓸했지만 어리석은 그의 생이 왠지 측은했다. 이러한 군상들이 다산의 길고 짙은 그림자가 되지 않았을까.
참과 거짓은 세월이 금을 긋는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 아래서도 자신의 인생을 꽃 피울 수 있다. 그러나 살 줄 모르면 아무리 좋은 여건에서도 죽을 쑤고 마는 것이 인생의 과정이다. 귀양살이에서도 꿋꿋하게 살았던 다산은 오늘까지 숨을 쉬면서 후손들 앞에 당당하게 서 있다. - 법정스님
기본정보
ISBN | 9791159161421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11월 20일 |
쪽수 | 341쪽 |
크기 |
150 * 210
* 29
mm
/ 573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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